그는 무슨 수를 써도 부소경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뼈 저리게 깨달았다.부소경이 무력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자신은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그는 부소경 만큼 담대하지도 않고 치밀하지 않았다.5분 뒤, 엄선우가 고신걸을 끌고 나타났다.반호영에게 호되게 두들겨 맞은 고신걸은 이틀이나 지났는데도 얼굴에 멍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였다.신세희를 본 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넌 참 용감한 놈이야.”부소경이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은….”고신걸은 의아한 표정으로 부소경을 바라보았다.“무례한 놈! 남성 부소경 대표님도 몰라? 어디서 감히 대표님 앞에서 눈을 똑바로 떠?”겁에 질린 서도영은 다급히 고신걸에게 주의를 주었다.“부 대표님, 안녕하세요. 그런데 무슨 일로….”고신걸은 고개를 돌려 신세희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이 여자는….”사실 그는 이 여자가 부소경의 애인이냐고 묻고 싶었다.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부소경이 말을 가로챘다.“엄 비서! 고신걸 저 자식의 혀를 도려내고 사지를 찢어버려. 그렇다고 죽이지는 말고.”고신걸과 서도영 일행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부소경을 바라보았다.한참이 지난 뒤에야 고신걸은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대표님… 제발 이러지 마세요.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요….”“내 아내랑 어떻게 아는 사이지?”부소경은 신세희를 끌어안으며 고신걸에게 물었다.“그날 호텔에서 만나기 전까지는 둘이 만난 적 없지 않나?”극심한 공포에 질린 고신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말 안하면 그 혓바닥을 도려내 버릴 거야.”“말할게요!”고신걸은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저는 저분이 부 대표님의 아내분인 줄도 몰랐습니다. 그… 그러니까 고소정이 연극 좀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고소정 그 여자랑은… 하룻밤 같이 잔 사이인데 이 일만 성공하면 저랑 결혼해 준다고 해서….”“제발 살려주세요….”“끌고 나가서 혓바닥 자르고 사지를 찢어 버려.”부소경은 무표정한 얼굴로 엄선우에게
서시언이 말했다.“서울 구씨 가문과 최씨 가문은 오래 전부터 사이가 좋았잖아요. 구경민 씨는 원래 최씨 가문의 최여진과 결혼식을 올리기로 되어 있었는데 세희 친구 때문에 결혼이 파토났다고 하더라고요.”“세희의 친구가 파렴치한 불륜녀라고 욕을 하더라고요. 끼리끼리 모인다면서요.”“저는 그때 재활센터에 있어서 제대로 된 소식을 알아볼 수 없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여자 완전히 미친 여자죠.”신세희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그 사람들은 참 거짓을 사실이라고 우기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네. 윤희 언니만 억울하겠어.”“윤희 언니?”“그래. 윤희 언니는 지금 행방불명이 됐는데….”그런데 이때, 부소경의 핸드폰이 울렸다.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부성웅이었다.부소경은 통화버튼을 누르고는 짜증스럽게 물었다.“무슨 일이시죠?”수화기 너머로 부성웅의 지친 목소리가 들려왔다.“소경아, 너….”그는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하고 싶은 말씀이라도 있으시면 하세요! 또 세희가 다른 남자랑 있는 걸 목격했나요?”부소경이 날이 선 목소리로 물었다.한참 뒤에야 부성웅은 입을 열었다.“소경아, 네 엄마… 묘소가 어디야?”부소경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사실 그의 아버지는 6년 전에 묘지를 찾아간 적 있었다.엄선우가 차를 운전해서 그를 데리고 갔었다.“엄마는 당신 보고 싶지 않을 거예요!”부소경이 말했다.“네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내가 네 엄마를 찾아가지 않은 건 네 큰엄마 때문이기도 하지만 너도 나한테 구체적인 주소를 안 알려줬잖니.”“아빠에게 한 번만 기회를 줘. 네 엄마 찾아가서 인사라도 하고 올게.”“싫어요.”부소경이 말했다.“소경아, 이 말만은 내가 안 하려고 했는데 네 엄마는 나를 사랑했어. 그 여자가 나를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르잖아.”부소경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엄마가 죽기 전에 못 이룬 소원이 있다는 건 그도 알고 있었다.그건 평생 남남처럼 살아 온 남자를 다시 한 번 만나는 것.물론 둘이 결혼식도 올린 적
부소경은 부성웅의 뺨이라도 치고 싶었다.하지만 그가 했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그의 엄마는 죽는 순간까지도 부성웅을 그리워했다.엄마 얘기가 나오자 부소경은 화를 누그러뜨릴 수밖에 없었다.그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상세한 주소를 알려주었다.수화기 너머로 부성웅의 긴 한숨소리가 들려왔다.하숙민의 묘지에 찾아가는 건 그와 진문옥이 하루 동안 상의하고 얻어낸 결정이었다.최근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부성웅은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서씨 어르신과 부소경 사이에 뭔가 있는데 자신에게는 절대 입을 열지 않는다는 점이다.게다가 분명 가성섬과 관련이 있었다.부성웅이 서씨 어르신에게 그 비밀에 관해 물었지만 서씨 어르신은 대답 대신 하숙민의 묘지로 찾아가 보라고 조언했다.왜 저런 말을 했을까?부성웅은 알 수 없었다.조금 전, 그는 용기를 내서 서씨 어르신에게 전화를 걸었다.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서씨 어르신의 목소리는 힘이 많이 없어 보였지만 전달하려는 뜻은 명확했다.“성웅아! 너랑 나는 죄가 있는 남자들이야.”부성웅은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나는 살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아내를 저버리지 않으려고 했어. 그래야 진짜 남자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너도 나도 다른 생각은 못했던거지. 우리한테 상처받은 여자들도 죄가 없다는 걸 말이야.”“주희진도 그렇고 하숙민도 그렇고 그 여자들이 뭘 잘못했을까?”“하숙민은 너에게 먼저 다가가지도 않았어. 그런데 넌 그 아이의 인생을 망쳐버렸지. 게다가 그 아이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아이를….”여기까지 말한 서씨 어르신은 갑자기 입을 다물더니 헛기침을 하고 화제를 돌렸다.“어쨌든 넌 숙민이한테 죄인이야.”말을 마친 서씨 어르신은 전화를 끊었다.하지만 부성웅은 그럴수록 어르신이 끝내 하지 않으신 말이 궁금해졌다.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하숙민의 묘지에 찾아가보기로 했다.사실 부성웅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하숙민의 자리가 있었다.그는 젊었을 때 원래 박
보슬비 때문에 하숙민의 묘지는 더욱더 초라해 보였다.그녀의 묘비 앞에서 술을 잔뜩 먹고 쓰러진 남자는 반호영이었다.그의 앞에는 비에 젖은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차가운 색조의 생화는 묘비에 더 처량한 색채를 더했다.반호영은 꽃다발을 손에 꼭 쥐고 있었는데 부성웅의 경호원이 그를 바로 눕히면서 놓쳐버린 것 같았다.차가운 대리석에 툭 떨어진 꽃다발은 고독해 보이기까지 했다.부성웅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의혹을 떨칠 수 없었다.“저놈이 왜 하숙민의 묘지에 있지? 저 인간 도대체 누구야?”진문옥도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여자라서 그런지 부성웅보다 느낌이 날카로웠다.진문옥은 매번 반호영이 찾아와서 폭행한 사람이 자신뿐이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러고 보면 부성웅은 한 번도 그에게 맞은 적 없었다.게다가 반호영은 가성섬 섬주의 넷째 아들이었다.부소경과 비슷한 나이.진문옥은 갑자기 가슴이 철렁해서 경호원에게 말했다.“똑바로 눕히고 얼굴에 묻은 빗물 좀 닦아 봐. 얼굴을 좀 자세히 봐야겠어.”아내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은 부성웅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경호원이 반호영을 반듯하게 눕히고 그의 얼굴에 묻은 빗물을 닦아 주었다.다른 사람이 몸을 계속 건드리자 반호영은 드디어 눈을 떴다.가장 먼저 그의 눈에 들어온 사람은 부성웅이었다.반호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는 시뻘겋게 핏발이 선 눈으로 부성웅을 노려보며 소리쳤다.“망할 영감이! 여기가 어디라고 왔어!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당장 꺼져! 꺼지라고!”반호영은 미친 사람처럼 부성웅을 걷어찼다.다행히 경호원이 그를 막아섰고 반호영은 술에 취한 탓인지 생각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부성웅은 경호원의 부축을 받아 뒤로 물러선 뒤,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반호영! 넌 반씨 가문 자손이 아니잖아! 넌 도대체 누구야! 누구냐고!”진문옥만 그의 신분을 의심한 게 아니었다.부성웅도 그를 의심하고 있었다.부성웅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올랐다.반호영은 취기에 게슴츠레한 눈으로 부성웅을 노려보며
“여기서 잠만 자지 말고 일어나 봐! 당신 아직 내 얼굴도 못 봤잖아! 왜 잠만 자고 있어?”“일어나라고! 일어나서 내가 누군지 좀 말해줘 봐!”말을 마친 반호영은 아이처럼 구슬피 울었다.키가 180이 넘는 남자가 실성한 듯 울고 있었다.부성웅은 경호원에게 묘지 관리인을 불러오라고 시켰다.10분 뒤, 묘지 관리인이 도착했다. 반호영을 본 관리인은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이… 이 사람은 이틀 전에 왔던 사람인데요? 올 때 제사용 음식을 잔뜩 사왔던데 설마 그걸 먹으며 여태 버틴 걸까요?”“이틀 동안… 여기 있었다고?”이곳은 공동묘지였다. 가족이나 지인을 보러 오는 사람도 잠시 자리를 지키고 떠나는 곳.누가 이런 곳에서 사람이 이틀이나 지낼 줄 알았을까?반호영은 이틀 전 신세희에게서 주소를 받고 이곳에 왔다.그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엄마를 위해 꽃을 사고 먹을 것과 술을 사왔다. 그리고 여기 앉아서 술을 마시며 이틀을 보냈던 것이다.그는 술 취한 상태로 여기서 잠들면 죽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어차피 모든 것을 잃었다.가성섬도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어릴 때부터 그는 궁금한 게 있었다. 왜 아버지라는 사람은 자신에게 그렇게 쌀쌀맞은지, 어머니는 왜 한 번도 자신에게 관심을 준 적 없는지. 사실 그들은 그의 친부모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게다가 그들이 원수로 생각하는 사람의 아들이라니.그를 여태 키워준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었다.그러니 무슨 낯짝으로 다시 가성섬에 돌아간단 말인가?하지만 남성은?그의 아버지와 친형이 남성에 살지만 남성은 반호영을 받아주지 않았다.이 세상에 그를 받아줄 곳이 있기나 할까?그는 세상이 미웠고 부모가 미웠다.땅 속 깊은 곳에 잠든 이 여자를 파내서 제대로 따져 묻고 싶었다. 왜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버려두고 떠났는지! 왜 하필 그였는지!하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자신의 생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두 아이를 출산한 여자가 한 아이를 살리려고 가성섬에 숨겼던 그 마음을 생각하니
“성웅이 너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숙민이 죽은지도 벌써 7년이야. 어떻게 지금 와서 죽은 사람을 욕 보일 수 있어?”서씨 어르신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왔다.“성웅아, 그리고 말은 똑바로 해야지! 넌 숙민이한테 결혼식도 주지 않았어. 남자가 있다고 해도 그 아이는 미혼 신분이었다고! 널 위해 순결을 유지할 의무는 없어! 넌 가정이 있는 주제에 숙민이를 만났잖아!”서씨 어르신의 호통에도 부성웅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그는 여전히 씩씩거리며 말했다.“그렇긴 하지만 남성 사람들, 그리고 가성섬 사람들은 다 알죠! 하숙민이 제 여자였다는 사실을 말이에요!”“그 여자가 제 아들을 낳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런데 그 여자 무덤 앞에 어떤 남자가 찾아왔어요. 제 예상이 맞다면 이 남자 역시 하숙민의 아들이겠죠!”“그 여자 아들이라고요! 어르신! 아들 나이가 몇 살인지 알아요? 그 아들이 누군지 아냐고요?”“반호영이요! 가성섬 반씨 가문의 귀공자 반호영이라고요! 어르신, 사실대로 말해주세요. 저한테 숨긴 비밀이 혹시….”부성웅은 감히 말을 잇지 못했다.너무 수치스럽고 모욕적이었다.그는 반호영이 하숙민과 가성섬 섬주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라고 단정지었다.망할 여자!그러고도 내 앞에서는 순정파 연기를 수십 년이나 하다니!평생 나를 사랑할 것처럼 해놓고!죽기 전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평생 나를 죄책감 속에 살게 해놓고!사실은 두 남자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던 거야?아들을 둘이나 낳다니!가증스러운 여자!부성웅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콧구멍으로 뜨거운 숨결을 내뱉었다.수화기 너머로 서씨 어르신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러니까 성웅이 네 말은 반호영이 자기 엄마 무덤을 찾아갔다는 거야?”“그 말씀은 저 녀석이 하숙민의 사생아가 맞다는 거네요!”부성웅은 바로 전화를 끊고 경호원에게 명령했다.“더러운 자식! 저 자식은 저 자식 엄마가 나를 속이고 다른 남자랑 낳은 사생아야!
진문옥이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반씨 가문 사람들 다 못생겼잖아! 키도 작고! 얘 어딜 봐서 반가놈들을 닮았어!”부성웅은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다시 제대로 봐!”부성웅은 주저하며 고개를 들고 반호영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반호영은 여전히 날뛰고 있었다.“망할 영감! 죽여버리겠어! 이거 놔!”그는 경호원들의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지만 이틀이나 무덤 앞에서 술만 마신 그로서는 그들을 당해낼 힘이 없었다.게다가 술기운 때문에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반호영은 사실 계속 살아갈 생각이 없었다. 엄마의 무덤 앞에서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그가 계속 몸부림치면서 그의 머리카락이 흩어졌다.물기를 머금은 머리카락이 그의 이마를 가렸다.검은 머리카락과 창백한 이마가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다.선이 고운 날카로운 눈썹과 이글거리는 두 눈, 그 밑으로 조금 야위었기는 했지만 선명한 이목구비가 보였다.부성웅은 흠칫하며 어깨를 떨었다.그가 내뱉듯이 말했다.“소경… 소경이야! 우리가 잘못 봤어! 쟤 반호영이 아니라 내 아들 소경이야!”진문옥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여보! 당신 너무 화가 나서 이성을 잃었어? 쟤 소경이가 아니라 반호영이야! 당신 아들과 닮은 사람이라고.”“그… 그치! 쟤는 소경이가 아니지. 소경이는 엄마를 더 많이 닮았어! 가끔 숙민이 모습이 보이기도 하니까.”부성웅은 눈물을 닦으며 다급히 말했다.진문옥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여보, 당신 늙어서 옛날 모습들이 잘 기억 안 나지? 자세히 보니까 반호영 저 녀석은 당신 어렸을 때를 많이 닮았어.”“뭐… 뭐라고?”그는 저도 모르게 뒤로 뒷걸음질쳤다.진문옥이 말을 이었다.“이제 알 것 같아. 왜 유리와 소경이, 그리고 신세희랑 서씨 어르신까지 우리한테 반호영이 우릴 공격한 건 신세희랑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했는지.”“왜 저 자식이 매번 우리를 찾아올 때면 나한테만 손을 대고 당신은 내버려뒀는지 이제 알 것 같아.”“여섯 살 유리까지
부성웅은 예상치 못했던 전화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게다가 전화하자마자 이런 질문이라니.진문옥이 물었다.“누구야?”“신세희.”진문옥은 왜 이 시간에 신세희에게서 전화가 왔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여기 없다고 해!”한편 경호원에게 붙잡힌 반호영은 여전히 악을 쓰고 소리지르고 있었다.“내가 누군데? 엄마한테 버림받고 아빠한테까지 인정받지 못한 쓰레기야!”“난 쓰레기야! 어차피 반씨 가문 핏줄도 아니고 남성 부씨 가문 막내아들도 아니라고!”“부성웅! 이 망할 영감! 내가 누구라고 생각해? 세상이 이렇게 큰데 내가 있을 곳은 없어! 반호영 내 자리는 없다고! 아니 난 반씨가 아니지. 부씨인가? 나 부씨 맞아?”“누가 나를 인정해 줬지? 난 성도 물려받지 못한 사생아야! 반씨 가문 자식도 아니고 부씨 가문 핏줄도 아니라고! 난 도대체 누구지?”“부성웅! 오늘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엄마한테는 나중에 저승에 가서 사과할게!”반호영은 여전히 분노한 표정으로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깊은 절망과 자괴감, 복합적인 감정이 뒤섞인 표정이었다.그는 아이처럼 울고 소리를 질렀다.“아버님?”수화기 너머로 신세희의 다급한 목소리가 재차 들려왔다.며칠 사이에 고소정 모녀 사건도 있었고 부소경과의 다툼에 오래 못 만난 서시언까지 만나느라 사실 반호영 생각을 할 겨를이 별로 없었다.한 시간 전, 그녀는 부소경과 함께 경찰서를 들렀다.고신걸은 처벌을 받기 전에 고소정을 한 번 만나고 싶어했다.경찰서에 도착하니 고소정과 고신걸은 서로 네가 잘못했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었다. 신세희와 부소경은 조용히 경찰서를 나왔다.그들이 나오기 전, 고소정은 미친듯이 부소경에게 애원했다.“대표님, 한 번만 저에게 기회를 주세요. 저 정말 대표님 사랑해요! 해외에 있을 때부터 대표님이 어떤 분인지 다 알고 있었어요.”“저는 결혼한 적도 없고 명문 대학을 나왔어요. 명분 없는 애인이라도 상관없어요. 대표님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게요. 그러니 제발 저를 경찰서에서 빼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