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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3화

전태윤은 테이블 위의 술병과 술잔을 모조리 바닥에 쓰러뜨린 후 테이블 위에 엎드리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예정아, 하예정... 나 너 아니어도 얼마든지 잘 살아...”

소정남과 노동명은 처음에 그가 뭐라 말하는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계속 곱씹으니 소정남이 가까이 다가가 귀를 쫑긋 세웠다.

“하예정, 나 너 없어도 잘 산다고.”

“쟤 뭐래?”

노동명은 소정남의 괴이한 표정을 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

소정남은 허리를 곧게 펴고 만취한 전태윤을 보면서 그에게 되물었다.

“얘 초고속 결혼하고 지금까지 예정 씨 때문에 취한 게 이번이 몇 번째지?”

맨 처음 계약서를 작성할 때 하예정의 건성건성한 태도가 마음에 걸려 이들 둘을 불러서 함께 술 마시고 인사불성이 되어 강일구가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때부터 강일구도 대리기사라는 신분이 생겨 정정당당하게 하예정을 마주했다.

“그래놓고 뭐? 예정 씨 없어도 잘 살아? 참나.”

소정남은 술에 취한 절친을 비웃었다.

“예정 씨 앞에 가서 말해야지 술에 취해 우리한테 말해서 뭐하냐고? 네가 예정 씨 앞에서도 나 당신 없이 잘 산다고 말할 수 있으면 내가 네 성을 따른다.”

전태윤은 벌떡 일어나더니 소정남의 어깨를 꽉 잡고 그를 마구 흔들어대며 외쳤다.

“하예정, 대체 내가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잘못했다고 사과도 했고 네가 친정에 가고 싶다고 해서 보내도 줬어. 대체 뭘 더 어쩌란 말이야? 똑똑히 들어. 나만 원한다면 밖에 나랑 결혼하고 싶다는 여자가 줄을 섰어! 하예정 너 아니어도 얼마든지 잘 산다고!”

소정남은 그에게 휘둘려 머리가 어지럽고 그의 술주정에 참지 못하고 맞받아쳤다.

“그래, 예정 씨 아니어도 넌 얼마든지 잘 살아. 그러니까 예정 씨랑 이혼하고 너 좋다는 여자랑 결혼하면 될 거 아니야.”

“이혼 생각은 꿈도 꾸지 마. 나 절대 이혼 안 해! 넌 내 거야! 평생 내 여자라고. 난 너만 가질래! 꼭 너여야만 해... 그래야 한다고. 이 손 절대 안 놔. 계약서에 사인 안 할 테니까 이번 생에 나랑 계약서 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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