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윤이 온화한 표정을 지었다.이에 기자들은 어안이 벙벙했다.아니나 다를까 아내에게 푹 빠진 전씨 그룹 도련님은 사모님의 이름만 물었어도 온화한 표정으로 바뀌었다.전태윤은 최근에 아내와 함께 여기저기 놀러 다닐 때 이토록 자상한 표정을 지었었다. 평소에 그는 차갑고 카리스마가 넘쳐 가까이 다가갈 수조차 없다.사랑의 힘이 이렇게 대단한 거였구나. 그토록 차갑고 냉정한 남자도 자상하고 애틋한 사람으로 바뀔 수 있다니.“아내는 재벌가 출신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 전씨 일가의 사모님이 되었으니 명문가의 부인으로 거듭난 건 사실이죠. 이름은 하예정이고 올해 나이 26살이에요. 사실 아직 생일이 안 지나서 26살이라고 하는 것도 나이 들어 보이네요.”기자들은 감탄을 연발했다.‘맙소사, 전씨 그룹 사모님 얘기에 그토록 말을 아끼던 대표님이 이렇게 수다스러워진 거야? 잠깐! 하예정?’“대표님, 혹시 사모님 성함이 하예정이라고 하셨습니까?”방금 질문했던 여자 기자가 놀란 표정으로 전태윤에게 되물었다.전태윤은 그녀를 보더니 순간 차가운 눈빛으로 돌변하며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내 아내가 하예정인 게 뭐가 잘못됐나요?”지극히 평범한 말이지만 전태윤의 입을 거치니 무엇보다 날카롭게 귀에 박혔다. 질문했던 여자 기자는 저도 몰래 목을 움츠렸다.다만 기자들도 수많은 사람을 접했으니 전태윤이 어떤 사람인지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는 비록 늘 차가운 모습이지만 교양이 있어 누군가를 욕하거나 내쫓지 않는다. 방금 질문했던 여자 기자는 다시 용기 내어 말을 이었다.“사모님 성함이 하예정인 건 아무 문제 없지만 이 이름이 너무 귀에 익네요. 아, 생각났어요. 바로 작년 10월에 불효 손녀라는 타이틀을 얻은 그 하예정 씨 맞죠?”여자 기자는 하예정의 신분을 떠올린 후 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마치 하에정에게 무한한 기삿거리가 숨겨져 있어 끊임없이 파고들 수 있을 것 같았다.“제 아내는 불효 손녀가 아닙니다. 아내의 고향 식구들이 사악한 마음을 품고 아내와 처형을 집
“네, 아주 행복합니다.”전태윤의 굳은 표정이 또다시 사르르 녹아내렸다. 그는 온화한 표정으로 바뀌며 입꼬리가 저도 몰래 귀에 걸렸다.독감에 걸렸을 때 하예정이 밤새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그를 챙겨주었다. 비록 매일 한약을 마시라고 다그쳤지만, 역겨워서 토할 지경으로 마셨지만 아내가 그를 향한 사랑만큼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 행복과 달콤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대표님, 사모님과 초고속결혼을 하셨다는데 사실입니까?”전태윤이 솔직하게 대답했다.“네, 맞아요. 혼인신고 하기 전까지 아내를 본 적도 없었어요. 다만 그녀의 존재를 알고 있긴 했죠. 아내가 제 할머니를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거든요.”“대표님은 어르신을 위해 아내분과 결혼하셨습니까?”“맞아요, 할머니 때문에 아내와 초고속결혼을 했어요. 다만 이젠 할머니께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어요. 할머니가 끝까지 견지하지 않았다면 저는 예정이를 놓쳤을 겁니다.”“정말 의외네요, 대표님.”전태윤 같은 남자도 초고속결혼을 하다니, 다들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다.바로 이 때문에 전태윤은 혼인 신고한 지 몇 개월이 지났지만 기혼 사실을 완전히 공개하지 않았고 하예정을 지극히 보호해주었다.그랬던 그가 오늘 기자들의 인터뷰를 허락한 것은...기혼 사실을 공개하려는 걸까?몇몇 기자들이 문득 흥분하기 시작했다.그들이 전태윤을 대신하여 그의 기혼 사실을 알리는 것은 무한 영광이니까!“대표님은 초고속결혼 초기에 오늘날 아내에게 푹 빠진 팔불출이 될 거라는 예상을 해보신 적 있나요?”전태윤이 웃으며 대답했다.“전혀요. 미래의 일을 누가 예상할 수 있겠어요? 아무튼 저는 그런 능력 없어요. 여기 만약 예지력을 가진 분이 계신다면 저희 부부가 첫애를 딸 낳을지 아들 낳을지 예측해주실 수 있을까요?”기자들이 얼굴에 화색을 띠었다.“사모님께서 혹시 임신하셨나요?”전태윤이 웃으며 말했다.“아직은 아니지만 조만간 그렇게 되겠죠. 저는 귀여운 딸아이가 있었으면 좋겠어요.”뭇사람들은 흥분했던 마음이 확 가
“대표님은 왜 액세서리를 30세트 선물하셨나요? 무슨 의미라도 담긴 겁니까?”전태윤이 본능적으로 대답했다.“별 뜻 없어요. 한 달에 30일이니 우리 예정이한테 액세서리를 30세트 선물해서 매일 다른 스타일로 치장해주고 싶었어요. 그뿐입니다.”뭇사람들은 입이 쩍 벌어졌다.“대표님이 플렉스 하셨네요!”다들 부러워서 미칠 지경이었다.남자 기자마저 하예정이 부럽고 질투 났다.그들은 전태윤과 함께 어울리지 못하는 걸 천만다행으로 여겼다. 안 그러면 전태윤에게 비교당해 여자친구조차 찾기 힘들 테니까. 전태윤은 그야말로 사치의 끝판왕이었다.“대표님, 사모님은 이경혜 씨의 외조카이신데 정작 대표님은 성기현 대표님과 사이가 안 좋으신 거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사모님을 위해서 성씨 그룹과 잘 지내보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성씨 그룹 성소현 씨가 공개적으로 대표님께 고백했고 대표님을 엄청 좋아하신 거로 알고 있습니다. 이젠 성소현 씨와 하예정 씨가 사촌지간이 되었네요. 이 일은 어떻게 대처하실 생각입니까?”전태윤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사석에서 우린 친척 사이지만 업계에서는 서로 양보 없어요. 다들 제 실력으로 자리를 지켜내야죠. 성소현 씨가 저에게 호감을 가졌던 건 알고 있지만 제가 사랑하는 건 오직 제 아내 하예정 한 명뿐입니다. 우리 부부는 이미 약속했어요. 평생 둘이서 영원히 함께하기로 맹세했거든요. 제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성소현 씨를 마주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요?”기자가 또 물었다.“대표님은 아직 성씨 일가를 방문한 적이 없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만.”“이모님 온 가족이 설 연휴에 여행을 떠나셨고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제가 텅 빈 별장을 방문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기자는 말문이 막혔다.전태윤이 차분하고 조리 밝게 인터뷰를 이어갔지만 기자들은 여전히 궁금증을 내려놓지 못했다. 성씨 일가에서 전태윤이 하예정 남편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일까?소문에 의하면 성소현과 하예정 사이가 엄청 좋고 둘은 서로 사촌지간인 걸 확인하기 전부
“이상한가요? 우리 형제들은 모두 요리할 줄 알거든요, 특히 여섯째의 요리 솜씨는 관성 호텔의 셰프보다 더 뛰어나죠.”여기자들은 부러운 눈길로 말했다.“사모님은 정말 행복하시겠네요.”“나는 내가 더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집 예정이는 나한테 아주 잘해주거든요. 요리도 아주 맛있게 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만 골라 요리하곤 해요.”여기자들은 물어보면 물어볼수록 부러워 죽을 것만 같았다.이 젊은 부부는 비록 지금 카메라 앞에 함께 나오지는 않았지만, 전태윤의 표정에서 만으로도 그의 결혼 생활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결혼 생활의 세세한 일들을 더 물어본 뒤 기자들은 이 인터뷰를 끝내기로 했다.“참, 내 와이프는 조용하고 평범한 생활을 보내길 바라고 있으니, 알고 싶은 게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요, 시간을 짜내 인터뷰를 받을게요.”“전 대표님, 저희는 절대 대표님의 허락 없이 사모님을 방해하지 않을 겁니다.”기껏해야 몰래카메라를 찍는 것뿐이지, 하예정의 앞을 가로막으며 방해하지는 않을 것이다.전태윤은 경호팀을 불러 기자들을 배웅했고, 기자들이 떠난 후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소정남은 전화를 받자마자 전태윤을 나무란다.“너 도대체 연차를 끝낸 거야 만 거야? 일을 시작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회사에 돌아오지 않고 있어? 이 회사가 대체 네 회사야 내 회사야?”연차가 끝나고 회사 일을 시작하자마자 소정남은 바빠서 쩔쩔맸다.예전에 전태윤이 있을 때는 그 정도로 바쁘지는 않았지만, 전태윤이 회사로 돌아가지 않자, 무슨 일이든 소정남 스스로 주인 노릇을 하며 처리해야 했으니, 불평을 할 수밖에...분명 전 씨의 회사인데, 소 씨인 소정남이 죽어라 일하고 있다.오늘은 밸런타인데이여서, 그는 저녁에 일찍 퇴근하여 심효진에게 꽃다발을 선물하고, 밥을 사주고 싶었다.이미 꽃집에 전화를 걸어 꽃다발도 주문했다.“나 방금 기자들과 인터뷰했어.”“어떤 인터뷰?”전태윤은 이 인터뷰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다. 소정남은 요즘 심효진과 사귀기 위해
전태윤은 어이없는 표정이었다.“정남아, 난 네가 나에게 격려와 지지를 줬으면 좋겠어! 예정이가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불안해.”“알았어, 지지해! 난 널 전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지해! 네가 무엇을 하든, 난 널 영원히 지지할 거야! 태윤아, 나는 항상 너의 가장 충실한 추종자야! 그러니 힘내, 하늘이 무너져도 키가 큰 너는 그 구멍으로 솟아날 수 있을 거야! 솟아 못나면 산산조각이 나면 되지 뭐.”“...”“하지만 계속 숨겼다가 어느 날 예정 씨가 무심코 진실을 알게 된다면, 분명히 더욱 화를 낼 거야! 아마도 널 차버리고 이혼할지도 몰라. 몰아치는 폭풍우에 맞는 것보다 스스로 폭풍우를 맞이하는 게 덜 당황하지 않겠어? 만약 예정 씨가 화가 나 널 대꾸하지 않겠다고 하면, 우리 둘이 짝지어서 살면 되겠네, 하하! 나도 너희 둘이 알콩달콩한 모습을 매일 지켜보지 않아도 되고 말이야.”그럼 같이 열심히 와이프 쫓아다니면 될것이다.“...나는 이 전화를 걸지 말았어야 했어. 너 아주 신나 하고 있네? 아예 의자 가져다 놓고, 주전부리를 먹으면서 연극을 보지 그래?”“역시 나를 아는 사람은 태윤이 너뿐이야!”소정남은 자기가 가십거리를 보기 위해서라는 것을 대범하게 인정했다.“태윤아, 어찌 되었든 간에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하예정 씨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 넌 다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할 거야. 그건 그렇고, 오늘 밸런타인데이인데, 낭만을 모르는 너한테 내가 제안 하나 할게, 와이프한테 꽃다발을 선물하는 걸 잊지 마!..”“이미 돈으로 접은 장미 9,999송이 준비했어, 곧 가게에서 배송할 거야. 그리고 각각 디자인이 다른 보석 장신구도 30세트 준비했고, 별장 하나랑 새 차도 선물로 준비했어. 이 정도 선물이면 충분할까? 내가 뭐 더 준비해야 할 게 있을까? 아 맞다, 명품백도 30개 정도 사줘야겠어, 한 달 동안 매일 다른 백을 들고 다닐 수 있게 말이야. 옷도 수십 벌 더 사고, 스킨케어랑 화장품도 사야 할 것 같아. 아휴, 네가 말하지 않았더라
어쨌든 하루 이틀은 기다려야 한다.그래서 개학하기 전에 학생들이 새 학기에 써야 할 학습 자료를 다 챙겨 받아야 할 것이다.각 학년 학생이 어떤 학습 자료를 필요로 하는지 알아야 서점으로부터 필요한 자료들을 배달받을 수 있다.심효진은 걸레를 제자리에 놓으며 말했다.“어젯밤에 이미 물어봤어, 리스트도 다 작성해 놨고 말이야. 내 가방 안에 있으니, 꺼내서 한번 훑어봐봐. 그리고 다시 서점에 전화하여 요 며칠 빨리 보내달라고 해.”보통 개학 하루 이틀 전이나 개학 당일 학생들은 선생님이 지정했거나 사라고 조언한 학습자료를 구입하는데, 이때는 서점이 가장 바쁜 시기이기도 하다.하예정은 이미 언니와 숙희 아주머니에게 부탁하여 개학 당일 가게에 와서 도와달라고 했다.하예진의 토스트 가게는 이미 인테리어 회사에 연락하여 가격을 협상했고 정월 대보름 이후에 착공할 예정이었다.학생이 개학하면 정월 대보름 전에 하예진은 동생을 며칠 도와줄 수 있다.“그래 어디 봐봐.”하예정은 카운터 앞으로 돌아와 앉았고, 심효진의 가방에서 그녀가 작성한 리스트를 찾아 꺼낸 후, 컴퓨터를 켜고 이 리스트에 적힌 책 이름들을 컴퓨터에 입력하려고 했다.심효진도 가까이 다가왔다.그녀는 의자를 하나 끌고 와서 하예정의 옆에 앉아 그녀가 컴퓨터를 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컴퓨터가 켜지니 하예정은 습관적으로 뮤직부터 틀었고, 즐겨 듣는 「보고싶다」를 선곡했다.“또 이 노래야, 너 이 노래 엄청나게 좋아하네.”“응, 한번은 태윤 씨의 차를 탔는데, 그때 차에 틀었던 노래가 바로 이 노래였거든, 정말 듣기 좋았어.”“참, 네 남편은 오늘 아무 서프라이즈도 없었어? ”심효진은 갑자기 이렇게 물었다.“응? 갑자기 무슨 서프라이즈야? 오늘이 무슨 날인데?”“달력을 보면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 수 있을 거야.”“그냥 14일이잖아, 뭐가 특별해?”하예정은 말하다가 갑자기 눈치채고 웃었다.“아, 밸런타인데이? 난 명절에 민감하지 않아. 우리 부부가 잘 지내면 하루하루가 밸런타인데이
전씨 가문의 사모님은 지금 심효진이 가장 궁금해하는 사람인데, 그녀는 그 사모님이 대단한 테크닉으로 얼음처럼 차가운 전 대표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생각했다.최근에 그녀는 전 대표의 불타는 결혼생활에 관한 소문을 많이 들었다.그녀는 소정남더러 그 사모님에게 자신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소정남은 전 대표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자 전 대표가 결혼한 사실을 제일 처음 알게 된 사람이기도 하다.그러니 분명 전 씨 사모님과 만난 적이 있을 것이다.그러나 소정남은 그녀의 부탁을 거절했다. 그는 전 대표가 스스로 공개하지 않는 한, 먼저 사모님의 정체를 폭로할 수 없다고 말했다.그의 거절은 심효진을 며칠 동안이나 우울하게 했다.소정남은 지금 그녀에게 구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요구를 거절한 것을 보면, 전 대표가 자기 부인을 얼마나 철저히 보호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모처럼 그에 관한 뉴스가 떴으니, 어떻게든 들어가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봐야 했다.“뭐가 볼 게 있어, 이미 결혼했다는 사실에 관한 이야기일 거야.”하예정은 실소를 터뜨리며 말을 이었다.“왜 그렇게 열심히 전씨 가문의 사모님이 누구인지 알려 하는 거야? 그 사모님이 누구든지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그 정체를 안다 해도 만나지 못할 사람인데...”한번 만나기도 어려운 사모님한테 남편을 다스리는 테크닉을 배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그리고 또 자신과 전태윤의 달콤한 감정 관계를 떠올리며 굳이 전 씨 사모님에게 테크닉을 배울 필요가 없다고 느껴졌다.전태윤은 그녀를 충분히 사랑하고 있다.“그 신비한 사모님의 정체를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저번에 성소현이 나랑 전화 통화할 때도, 그 사모님을 아는 사람이 없냐고 물었었어.”심효진은 하예정과 자리를 바꿔 앉았다.하예정은 관심이 없는 것 같지만, 그녀는 흥미가 가득했다.“그래? 나랑은 이런 얘기한 적도 없었어.”성소현은 설을 쇠러 여행을 갔다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심효진은 뉴스를 클릭하며
어쩐지 이상하다 했지, 이모와 유전자확인 검사를 하자마자 전태윤이 출장을 간 것은 그의 고귀한 신분이 들통날까 봐 이모와의 만남을 피한 것이었다!결혼 후 4개월 동안의 여러 가지 일들을 떠올리며 그녀의 얼굴빛이 점점 창백해졌다.심효진은 마우스를 잡은 그녀의 손이 떨리는 것을 보았다.“예정아, 너 괜찮아?”하예정의 격렬한 반응에 놀란 그녀는 얼른 가서 하예정을 흔들었다.하예정은 꼭두각시처럼 가만히 앉아, 심효진이 자신을 어떻게 흔들어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컴퓨터 화면만 멍하니 바라보며, 전태윤의 확대된 잘생긴 얼굴을 바라보았다.맞아, 그 사람이야!매일 잠자리를 같이하는 사람인데, 잘못 볼 리가 없다.점점 신뢰하고 있는 가장 가까운 남편이 자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속이고 있는 큰 사기꾼이라니!“예정아, 나 놀라지 마, 말 좀 해봐, 너 이러니 너무 무서워! 나... 예진 언니한테 전화할 거야.”심효진은 절친의 반응 없는 모습을 보며 서둘러 휴대전화를 꺼내 하예진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하려고 했다.당황한 심효진은 하예진의 연락처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주소록을 샅샅이 뒤졌지만, 한참 후에야 그 전화번호를 찾을 수 있었다.종잇장처럼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하예정의 반응은 너무 무서웠다.해예진은 자기의 가게에 있었다.“효진아, 무슨 일이야? 예정이한테 점심때 밥 먹으러 안 간다고 전해줘.”그녀는 여동생이 점심을 같이하자는 줄 알았다.“예진 언니, 지금 어디예요? 빨리 와줘요, 예정이가 이상해요!”심효진의 말을 들은 하예진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재빨리 아들을 안고 가게를 뛰쳐나가 지나가는 차를 불러세웠다.운전하던 노동명은 차를 급히 세웠다.그가 차에서 내리려는 순간, 하예진은 이미 주우빈을 안고 차에 올라탔다.“기사님, 어서 빨리 관성 중학교로 가요!”노동명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 가게 문도 안 닫고...”“노 대표님?”해예진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또 당신이에요?”어떻게 매번 노동
전호영의 전화를 받은 고현은 잠시 멈추고 쉴 수 있는 핑계를 주었다.고현은 자신의 하이힐을 신고 걸어 다니는 자태를 감시하고 있는 진미리에게 말했다.“엄마, 호영 씨 전화예요.”“그래.”고현은 소파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와 앉았고 그녀의 걸음걸이 자태를 보던 진미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따라왔다.남자의 분장에 익숙해진 고현이 치마로 갈아입고 하이힐을 신으면 진미리의 요구대로 잘 걸을 수 없었다. 재벌가 딸들의 우아한 자태로 걷는다는 것은 하늘을 오르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고현은 하이힐을 신고 삐뚤삐뚤 걸어 다녔다.어쨌든 진미리는 고현이 하이힐을 신고 걷는 모습이 매우 못마땅했다.고현은 소파에 앉자마자 바로 하이힐을 벗어 던졌다.진미리는 고현의 상황을 살피지도 않은 채 하늘을 찌르는 듯한 굽 높은 신발을 신고 걷는 연습을 시켰다. 비록 연회에 참석할 때 신을 하이힐은 그렇게 높지 않지만 말이다.고현은 내심 불만이었다.하지만 진미리는 굽 높은 신발로 연습을 해야 연회 때 신어야 할 하이힐을 쉽게 신을 수 있다고 했다.“호영 씨.”고현은 부드럽게 전호영을 불렀다. 그녀는 지금처럼 전호영의 전화를 기다린 적이 없었고 또한 이렇게 부드러운 말투로 전호영의 이름을 부른 적도 없었다.그녀는 성격이 차가운 편이라 전호영을 사랑하게 되더라도 그에게 부드럽게 대하지 않을뿐더러 다른 여자들처럼 애교도 부리지 않았다.가끔 고현이 전호영과 이야기할 때 약간의 웃음을 띠면서 말을 건네기만 해도 전호영은 며칠 동안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다.“오후에 회사에 돌아가지 않았어요. 반나절을 쉬려고 우리 부모님 집으로 왔어요.”고현의 부드러움은 전호영이라는 이름을 부를 때만 사용됐고 다시 입을 열어 말했을 때는 말투가 정상으로 돌아갔다.전호영이 물었다.“괜찮으세요? 어디 아픈 건 아니죠?”그녀는 워커홀릭이라 결혼하기 전의 전태윤처럼 평일에 쉬는 일이 거의 없었다. 주말이 되어 집에서 쉰다 해도 사실 업무를 처리하기 위함이었다.고현은 가끔
임원들은 고빈의 주위에는 적어도 여성 지인들이 많아 그녀들과 만나면서 먹고 놀 수 있다지만, 고현은 그야말로 전호영에 의해 망가졌다고 생각했다.전호영이 아주 훌륭하고 관성의 제일 갑부인 전씨 가문 출신이라고 해도 뭐가 소용 있겠는가!동성연애는 국내 사람들이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데...“상상력이 풍부하시네요. 고빈 씨에게 드리는 꽃이 아니거든요. 고현 씨는 회사에 없어요? 나가셨어요?”전호영이 물었다.고빈은 손이 전호영에 의해 뿌리쳐졌지만, 화도 내지 않고 일부러 전호영에게 말했다.“우리 형에게 매달리더니 너무 심하게 매달린 건 아닌가 봐요? 우리 형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다니. 우리 형이 오후에 회사에 돌아오지도 않았어요. 모르셨어요?”전호영은 정말 몰랐다.그는 고현이 오늘 저녁에 그녀와 함께 연회에 참석해야 한다는 사실밖에 몰랐다.오늘 밤 두 사람이 참석하는 연회는 강성에 있는 한 재벌가의 저택에서 열리기 때문에 전호영은 일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달려왔다.그는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바로 왔다.전호영은 매일 양복을 입고 다녔기 때문에 갈아입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는 선천적으로 잘생긴 외모로 옷을 대충 입어도 쉽게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곤 했다.“호영 씨 표정을 보니 우리 형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모양이네요. 하하! 우리 형을 반년 넘게 귀찮게 하여 동성애자로 만들더니 결국 우리 형의 마음을 완전히 움직이지는 못했네요.”고빈은 동정 어린 표정으로 전호영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시간이 없어서 잔소리 그만할게요.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그럼 저는 이만.”고빈은 전호영을 뒤로 한 채 임원들과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리를 떠났다.전호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프런트 데스크로 돌아와 아직 퇴근하지 않은 직원에게 물었다.“고 대표님께서 오늘 오후 정말로 회사로 돌아오지 않았어요?”“네, 오후에 돌아오지 않으셨어요.”전호영이 다시 물었다.“어디로 가신다는 말은 안 하셨어요? 사업 때문에 나가신 거예요?”전
하예진은 말을 잇지 못하고 살며시 노동명을 안아주었다.잠시 후 노동명은 그녀를 가볍게 밀어내며 부드럽게 말했다.“돌아가서 쉬어.”“잘 자요. 동명 씨도 내일 관성으로 돌아가야 하잖아요.”두 사람은 서로 인사한 뒤 하예진은 노동명의 방을 나섰다. 노동명은 휠체어를 타고 그녀를 현관문 밖으로 나와 그녀가 옆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문을 닫았다.밤새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 말도 오고 가지 않았다.다음 날 노동명은 아침 식사를 마친 후 하예진의 배웅을 받으며 차를 타고 하루 호텔을 떠났다.하예진은 공항까지 따라가지 않고 노동명을 차에 태우고 호텔 입구에 서서 그를 배웅했다.공항까지 배웅하면 더 아쉬울 것 같았다.노동명이 타고 있던 차가 보이지 않게 되자 하예진은 그제야 경호원들과 함께 전호영이 안배해 준 차를 향해 걸어갔다.노동명이 관성으로 돌아갔으니 그녀도 계속 일을 해야 했다.바쁠 때는 시간이 유난히 빨리 지난다.날이 조금 전에 밝은 것 같았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또 저녁이 되었다.전호영은 고현이 오후에 회사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그는 평소처럼 저녁 무렵 차를 몰고 고씨 그룹으로 가서 고현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그리고 같이 밥 먹으러 가려고 했다.고현은 사업이 무척 바빠서 전호영에게 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매일 식사 시간이 바로 그와 고현이 정을 쌓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이다.그의 차는 고씨 그룹에 들어가서 늘 주차하던 곳에 멈춰 섰고 전호영은 조수석에서 꽃다발을 안아 들고 차에서 내렸다.전호영은 사무실 건물 입구에서 밖으로 나가는 고빈을 만났다. 고빈은 회사 임원 몇 명과 함께 걸으면서 얘기를 나누었다.전호영을 본 고현 일행은 멈추어 섰다.“회사엔 왜 왔어요?”고빈이 입을 열자마자 물었다.전호영은 그 물음에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제가 왜 당신 회사에 올 수 없어요?”전호영은 매일 고씨 그룹으로 왔다.그럼 전호영을 쫓아내기라도 하겠다는 의미인가!고빈이 감히 그를 쫓아낸
“응, 내일 돌아가려고. 예진이도 너무 바빠서 영향 줄까 봐 그래. 관성으로 돌아가서 우빈이도 돌봐야 예진이가 걱정하지 않지. 내가 강성으로 돌아가서 나와 우빈을 위해 강산을 다스려야 되거든. 하하!”노동명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옆에서 듣고 있던 하예진이 말했다.“나중에 빚이 쌓일까 봐 두렵네요.”노동명이 되물었다.“뭐가 두려워? 수십 조의 빚만 아니라면 다 갚아줄 수 있어. 넌 마음 놓고 가서 일해. 하늘이 무너져도 내가 버텨줄 테니까. 파산될 걱정은 하지 마.”수십 조의 빚이라고?하예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현재 하예진의 상황으로 놓고 보면 수억 원의 빚만 져도 그녀는 너무 걱정되어 흰머리가 나올 것 같았다.전태윤은 또 음성메시지를 보내왔다.“우리 처형에게 너 같은 후원자가 있으니 반드시 강성에서 성공할 거야.”노동명은 하예진에게 전태윤의 음성메시지를 들려주며 말했다.“들어봐, 태윤이가 너를 엄청나게 믿고 있어.”“항상 저를 이렇게 믿어주시는데 제가 더 열심히 해야 기대에 부응할 수 있겠네요.”“너도 혼자 견디지 말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나에게 도움을 청해. 내가 다리를 다쳤지만 머리가 다친 건 아니거든. 나도 너 대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어.”하예진은 노동명이 다리를 다쳤다는 둥 머리를 다쳤다는 둥 그런 말을 하는 것을 싫어했다.“동명 씨의 다리는 좋아질 거예요. 저는 그런 말 듣기 싫어요. 앞으로 절대로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동명 씨가 다리 나아지면 저랑 결혼도 하셔야죠.”노동명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네가 그런 말을 해 주니 내 다리도 분명 나아질 거야.”하예진은 얼굴이 붉어지더니 부끄러워하며 대답했다.“너무 오래 얘기하지 마세요. 일찍 쉬어요. 저도 방에 가서 쉴게요. 내일 또 회사 일로 많이 뛰어다녀야 하거든요.”“응, 가. 잘 자.”노동명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그녀에게 굿나잇 키스를 해달라고 암시했다.하예진은 다가가서 허리를 굽히더니 노동명의 칼자국이 있는 얼굴에 입을 맞추
“형인 씨 마음속엔 아직 네가 있을지도 몰라.”노동명이 말했다.그는 오히려 주형인이 우빈 앞에서 그의 험담을 하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주형인이 험담하면 할수록 우빈은 그를 싫어할 것이고 오히려 노동명과 우빈의 정이 더 깊어져만 갈 테니까.노동명은 마침내 우빈이 주씨 집에서 돌아올 때마다 그에게 무척 잘해준 이유를 알게 되었다.우빈도 미안했던 모양이다.주형인이 그의 험담을 했기 때문이다.“형인 씨는 저에 대한 사랑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을 거예요. 저를 사랑했다면 저를 배신하고 상처를 주는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주씨 집안 가족들이 저를 괴롭히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았을 거예요. 남자가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어떻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있겠어요? 시어머니와 갈등이 생긴다 해도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노력했을 텐데. 어떻게 시어머니와 그의 누나가 저를 비난하도록 내버려 둘 수 있었겠어요?”“그 사람은 마음이 편치 않았을 뿐이에요. 제가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만약 형인 씨와 서현주 씨가 아주 행복하게 잘 지내고 그렇게 많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금쯤은 행복하게 살면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기를 기다렸을 텐데. 제가 죽든 살든 상관했겠어요? 우빈에 대한 감정조차 옅어졌을걸요. 그들만의 아기가 생기면 우빈에 대한 감정이 워낙 깊지 않은데다 감정이 있으면 얼마나 있다고...”노동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문득 화제를 돌렸다.“맞아. 그런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과 일들을 생각하지 말자. 나 내일 관성으로 돌아갈 거야. 예진아, 나랑 같이 가서 새 옷 몇 벌 사 오자. 우빈에게 줄 장난감도 좀 골라줘. 내가 매번 선물한 장난감을 녀석이 좋아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하예진도 전남편 얘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도 진작에 태연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였지만 노동명 앞에서 전남편 얘기를 꺼내면 노동명이 질투할까 봐 걱정했다.교통사고를 당한 후 노동명도 많이 연약해졌다.주로 다리 장애로 자신감을 잃은 노동명은 마음이 매우 약해졌다.노동명
하예진이 물었다.“예정이에게 없고 저한테 있는 게 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동명 씨가 재활을 꾸준히 하시고 제가 관성에 없을 때 자신을 돌보고 시간이 나면 우빈을 돌봐 주세요. 우빈이도 동명 씨를 보러 자주 갈 거예요. 녀석이 지금 자기 아빠보다 동명 씨를 더 좋아하니까요.”노동명은 의기양양하면서 말했다.“그건 내가 우빈에게 진심으로 대해서 그래. 우빈이 친아빠는 늘 우빈이 앞에서 내 험담만 하거든. 우빈이는 똑똑하니까 누가 좋고 누가 나쁜지 잘 알고 있어. 우빈이 친아빠가 내 험담을 하면 할수록 자기 친아빠를 더 싫어할걸.”노동명은 고개를 돌려 하예진을 바라보았다.주형인에 관한 얘기가 언급되자 하예진의 표정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그때 하예진이 입을 열었다.“뭘 봐요? 내가 아직도 그 남자를 신경 쓰는 줄 알았어요? 그 사람은 단지 우빈이 아빠일 뿐이에요. 제가 아직도 그 사람을 사랑하는 줄 알았죠? 그 사람을 언급하면 제 기분이 가라앉을 줄 알았어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제가 어떻게 아직도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어요? 제가 아직도 사랑했다면 애초에 이혼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마음이 찢어진 이상 최대한 빨리 이혼하는 것도 좋은 일이죠.”주형인도 약속한 대로 그와 그의 가족들은 더는 하예진의 생활을 방해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의 유일한 연관성은 우빈 뿐이었다.그러나 주형인은 하예진과 노동명이 함께 있는 모습을 태연자약하게 지켜보지 못했다.그는 또 노동명이 친아버지인 자신보다 더 나은 계부로 될까 봐 두려운 마음에 우빈 앞에서 노동명의 험담을 했다.우빈이 아직 노동명을 두려워할 때, 주형인은 우빈 앞에서 노동명을 나쁜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우빈은 노동명을 대신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기도 했다.오늘날 우빈과 노동명의 사이가 매우 좋으니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주형인 부자가 만날 때마다 주형인은 우빈 앞에서 노동명이 폐인으로 되었기에 하예진과 함께 한다면서 그녀의 발목을 잡는 거나 다름없다면서 노동명의 험담했다.또
모두 웃기 시작했다.전호영은 노동명과 하예진이 돌아오면 요리들이 올라오게끔 미리 준비해 놓았다.그들은 유쾌하게 저녁 식사를 했다.식사 후 고현은 곧 자리를 떠나 고성 호텔로 박 대표를 만나러 갔다.다행히도 하루 호텔과 고성 호텔은 가까웠다. 두 호텔은 길을 건너면 바로 볼 수 있다.그러나 아무리 가까워도 전호영은 고현을 배웅해 주겠다고 고집했다.하예진은 노동명을 밀고 호텔을 나와 호텔 근처 거리를 거닐며 강성의 밤거리를 구경시켜 주었다.“기분은 좀 나아졌어?”노동명이 뒤에 있는 하예진에게 물었다.하예진은 한참 말이 없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네, 많이 나아졌어요. 앞으로 저에게 닥칠 일들이 지금보다 더 가혹할 거에요. 만약 이번 일조차 직면할 수 없다면 제가 강성에 있을 필요도 없이 관성으로 돌아가 계속 저의 레스토랑을 돌보는 게 나을걸요.”그렇게 하면 이경혜의 바람과 기대를 저버리게 될 것이다.노동명은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말했다.“다행이네. 이렇게 오래 돌아다녔는데 뭐 사고 싶은 거 없어? 원하는 게 있으면 내가 선물로 사줄게.”하예진은 웃으면서 대답했다.“제가 사면 돼요. 선물할 필요 없어요.”“난 지금 네 남자 친구거든. 앞으로 남은 인생을 함께할 남자라고. 나도 너에게 선물을 준 적 없는데. 사실 우리 집 객실이 하나 있는데 그 안에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여러 선물로 가득 차 있거든. 전부 내가 너에게 준비한 선물들이야. 어떤 것은 너에게 선물했지만 네가 받지 않은 물건들이고 어떤 것은 내가 너에게 미처 선물하지 못한 것도 들어있어. 네가 받지 않으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먼저 그 방에 넣어두었거든. 앞으로 우리가 한 가족으로 되면 그 물건들은 어차피 너의 것으로 될 테니까. 네가 가지지 않으면 우리 집안의 돈이 낭비되는 거나 다름없을 텐데. 너도 우리 가정의 돈이 낭비되는 게 싫지?”하예진은 말문이 막혔다.과거에 그녀는 노동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는 재혼하고 싶지 않고 돈만 벌고, 사업을 일으켜 우빈을 잘 키워
전호영은 더는 묻지 않았다.엘리베이터가 두 사람을 1층으로 안내했다.전호영은 엘리베이터에서 고현에게 뽀뽀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었다.그는 고씨 그룹에서 고현에게 체면을 세워 주어야 했다. 어쨌든 고현은 고씨 그룹의 대표님이니까.전호영이 차를 몰고 고현과 함께 고씨 그룹을 떠났고 고현의 운전기사와 경호원들도 두 사람 뒤를 따랐다.식사를 마치고 나면 고현은 또 박 대표와 약속이 있었다.전호영은 그들이 하루 호텔에 도착했을 때 하예진과 노동명은 아직 호텔에 돌아오지 않았다.하예진 일행은 약 30분 뒤에야 호텔로 돌아왔다.하예진은 어두운 얼굴로 노동명을 호텔로 밀고 들어갔다. 노동명은 계속 고개를 돌려 말을 걸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못 듣는 체했다.노동명은 그녀가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위로의 말을 아무리 많이 해도 하예진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고 노동명도 더는 위로하지 않았다.하예진은 스스로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위층으로 올라가 전호영이 안배해 준 식사하는 룸에 도착해서야 하예진의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동명이 형.”전호영은 하예진이 노동명을 밀고 들어오는 것을 보더니 급히 일어나 하예진을 도우려고 했다.“호영 씨, 동명 씨가 혼자 몇 걸음 걸을 수 있어요.”하예진은 전호영의 도움 없이 노동명의 휠체어를 식탁 앞에 세웠고 노동명은 스스로 일어나 두 걸음 걷다가 다시 탁자 앞에 있는 걸상에 앉았다.고현도 일어섰다. 그녀는 예의 바르게 두 사람과 인사를 했다.“돌아오는 길에 차가 막혀서 오래 기다리게 했네요.”하예진은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강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돌아왔다.“괜찮아요. 저희도 온 지 얼마 안 됐어요. 언니, 일은 다 처리했어요?”모두 자리에 앉은 후 고현은 두 사람에게 각각 따뜻한 차 한 잔을 따라주며 관심 있게 하예진에게 물었다.“다 처리했어요.”하예진이 대답했다.“잘됐네요. 노 대표님, 내일 돌아가시려고요?”고현은 나지막이 물었다.노동명이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예진이 보러 온 것뿐이
“엄마.”고현은 진미리의 전화를 받았다.“현아, 퇴근했어?”“네, 막 퇴근하려고 그래요. 왜 그러세요?”“드레스 말고도 평소에 입을 옷도 몇 벌 더 사줄까?”고현은 생각하지도 않고 바로 거절했다.“필요 없어요.”고현은 단지 내일 저녁 연회에 드레스를 입고 참석하여 사람들에게 그녀가 사실 여자라는 것을 알려주어 전호영이 동성애자가 아닌 정상적인 남자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다. 사람들이 더는 색안경을 끼고 전호영을 보게 하고 싶지 않았다.다들 전호영이 고현을 삐뚤어지게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항상 색안경을 끼고 전호영을 바라보았으나 고현은 정상적인 남자라고 여겼다.진미리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왜 필요 없어? 여자 신분을 회복하려고 하는 거 아니었어? 내일 저녁에만 드레스 입고 계속 남자 옷을 입고 다니려고?”“네. 원래대로 다니려고요.”고현은 이제 그녀의 가짜 가슴 근육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약간 태평공주기 때문에 가슴 근육을 사용하지 않고 양복을 입어도 남자처럼 보였다.진미리는 계속해서 설득했다.“신분을 드러내기로 했는데 왜 또 남자 행세를 하려고 해? 얼마나 힘들어.”“엄마, 그건 제 습관이에요. 20년 동안의 습관을 단번에 고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엄마, 저의 요구대로 사주세요. 앞으로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하시려면 엄마 아드님 걱정 좀 하세요.”“빈이 그 자식은 걱정해도 소용없어. 그럼 엄마는 네 요구대로 드레스를 사줄게. 그리고 평소 입을 옷도 몇 벌 사 갈게. 옷장에 넣어두었다가 입고 싶을 때 꺼내서 입어.”“알겠어요.”“그래. 넌 퇴근해. 난 네 아빠랑 밥 좀 먹어야겠어. 네 아빠가 오랜만에 쇼핑하니 너무 힘들대. 먼저 밥 먹고 나서 다시 옷 보러 돌아다닐게.”진미리는 전화를 끊었다.고지호가 곁에 물었다.“현이가 싫대?”고진호 부부는 고현의 도도한 분위기에 어울리는 옷들을 많이 봤다.“현이가 싫다고 해도 우리가 집으로 사가서 현이 옷장에 넣어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