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정남은 소씨 가문의 인맥을 이용하여 그녀의 조상들까지 낱낱이 캐냈다. 심지어 그녀의 할머니가 아이를 몇 명 낳았고 그중 몇 명이 살아남았는지 등 그녀 자신도 모르는 사실을 낱낱이 알고 있었다.그녀는 아버지 형제자매가 다섯 명인지라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이를 다섯 명만 낳은 줄로 알고 있다.언젠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던 중 소정남은 그녀의 아버지는 원래 9명의 형제자매가 있었는데 그중 5명만 살아남았고, 4명은 유아기에 사망했다고 말했다.의아해난 그녀가 집에 와서 아버지에게 물어보니 아버지마저도 그 사실을 모르고 계셨다. 할머니께 다시 물어보니 그것이 사실이라고 말하면서 앞에 네 아이는 모두 요절하고 뒤에 다섯은 모두 살아남아 그녀의 아버지마저도 자신이 네 명의 형제를 잃은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하신다.예전에는 생활 조건이 좋지 않아 많은 사람이 아이를 많이 낳았지만, 아이가 죽는 일이 흔히 있다고 한다.그 일은 심효진으로 하여금 소씨 가문이 생각보다 더 강하고 무섭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자신은 소정남 앞에서 발가벗은 것처럼 비밀이 하나도 없지만 정작 자신은 소정남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 그녀는 소정남과 소씨 가문의 힘이 두려워 비록 소정남을 좋아하지만, 한동안 그 사랑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소정남은 실망했지만 낙담하지 않았다.“좋아요, 얼마든지 기다릴게요. 당신이 나에 대해 잘 알고 내 여자친구가 되려고 할 때까지 말이에요. 그리고 더 나아가 당신이 나와 결혼하고 싶어 할 때까지 기다릴게요. 하지만 지금 왜 나의 여자친구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지 말해줄 수 있어요? 연애하면서 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될 텐데도요?”심효진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이사님, 난 당신 뒤에 있는 소씨 가문의 힘이 두려워요. 아무도 베일에 싸여있는 당신네 가문을 진정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당신들은 알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뭐든 똑똑히 파헤칠 수 있잖아요. 우리가 소개팅하기도 전에, 당신은 이미 나와 내 가족 모두를 정확히 알고 있었어요. 난 당신이 가문
이쪽의 소정남은 고백에 실패했지만, 저쪽의 전태윤 부부는 깨 쏟아지는 신혼의 달콤함을 즐기고 있었다.저녁 식사 후.하예정은 소파에 앉아 TV를 보았고, 전태윤은 부엌에서 설거지하고 있었다. 하예정은 이런 생활이 너무 만족스럽고 행복하다.잠시 앉아 있던 그녀는 일어나서 부엌문에 기대어 설거지하는 전태윤을 지켜보았다.“왜, TV 보기 싫어?”그녀의 시선을 느낀 전태윤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고는 설거지를 계속하였다.“평소 드라마를 잘 안 봐서 그런지, 채널을 돌려도 보고 싶은 드라마가 없어요. 다 예전만 못한 것 같고, 이펙트도 너무 과장된 거 같고. 아무래도 내가 나이가 많은 탓인 것 같네요.”전태윤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이제 몇 살인데 나이가 많다고 그래? 평소에 늘 밤늦게 돌아오는 당신이 언제 드라마를 볼 시간이 있겠어? 나도 TV 볼 시간도 없고 드라마 볼 시간도 없지만, 당신의 평가에는 인정해. 우리 회사에도 프로듀서가 있고, 직접 제작한 드라마도 있는데, 당신이 좋아할지 모르겠어.”“됐어요, 안 봐요, 드라마에 빠지면 매일 드라마만 보고 싶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게 돼요. 아직 채 만들지 못한 물건이 많은데 드라마 볼 시간이 있으면 공예품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 돈 더 벌 거예요.”일 얘기가 나오자, 하예정은 갑자기 전태윤에게 물었다.“태윤 씨, 당신 어머니께서 나에게 예의를 배우라고 말씀하셨는데, 배워야 할까요? 혹시 어머니께서 내가 예의범절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셔서 예의를 배우라고 권하시는 거 아니에요?”전태윤은 깨끗하게 씻은 접시를 넣으면서 말했다.“아니야, 우리 엄마는 당신에 대해 매우 만족하셔. 그날도 봐봐, 엄마가 나더러 부엌에 들어가 일하라고 하셨잖아. 완전 당신 편이야, 당신이 싫으면 이렇게 도우라고 하시겠어?”어머니가 하예정을 싫어한다 해도 그에게 영향 주지는 않았다. 그는 어머니에게 좌지우지되는 사람이 아니니까.“엄마는 기질이 좋은 당신이 예의를 배우면 더 좋아질 거로 생각하신 거지 다른 뜻은 없어. 물
전태윤은 테이블을 거두고 행주를 깨끗이 씻은 후 손들 씻고 돌아서서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며 웃었다.“당신이 배우고 싶으면 배우고, 배우기 싫으면 그만둬. 난 상관 안 해.”하예정은 그의 손을 잡고 베란다로 가서 그의 어깨에 기대어 바깥의 고층 빌딩을 바라보았다.“맞은편 빌딩 창문에 불빛이 얼마 안 남았네요. 모두 설 쇠러 고향에 돌아갔나 바요.”“내일 아침 우리도 돌아간다고 할머니께 말씀드렸더니 할머니께서 진작 사람을 시켜 방을 치워놓으셨대.”전태윤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서로 머리를 기대고 앉아있는 이 시각이 더없이 달콤하고 따듯했다.“예정아, 우리 전씨 고택은 매우 낡았으니 꺼리지 마.”“얼마만큼 낡았는데요? 흙벽돌 기와집인가요? 아니면 초가집이에요?”전태윤은 웃었다.“그 정도는 아니야. 조상께서 남기신 오래된 집이어서 비록 매년 보수하고 있지만, 낡아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어. 그리고 우리는 대가족이 함께 살고 있다고 예전에 당신에게 말했었던 것 같은데...”“고택이 얼마나 큰가요?”“우리 집 조상들은 꽤 오래전부터 장사를 시작하여 약간의 재물이 있었고, 집은 면적이 꽤 넓어 그때 당시에 놓고 말하면 호화 저택이라고도 할 수 있었어. 비록 집집이 따로 있지만, 서로 연결되어 모두 하나의 대문을 통해 출입하고 있어.”“그렇게 오래 되였는데도 아직 사람이 살 수 있는걸 보면 정말 든든하게 지은거네요.”전태윤은 가볍게 웃었다.“우리가 따로 집을 지을 돈이 없어서 조상들이 남긴 오래된 집에서 모여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부터 그들은 진짜 고택을 떠나 지금의 서원 리조트를 세웠다. 젊은 세대에겐 서원 리조트도 고택에 속했다. 형제들은 모두 자기 소유의 별장에 살고 있어 명절이 되여야만 비로소 리조트로 돌아가곤 했다.“별장도 한 채 있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집도 전액으로 샀는데, 어떻게 집을 지을 돈이 없겠어요? 위 세대분들이 옛것을 그리워하셔서 고택에서 살고 계신 거겠죠.”전태윤이
하예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도 일깨워 주었다.“당신도 옷을 더 입어요. 감기에 걸리면 매일 한약으로 시중 들어드릴 테니.”“당신이 매일 지켜보는데, 내가 어떻게 감히 아플 수 있겠어?”그 며칠 동안 먹은 한약은 그를 평생 두렵게 한다.하예정에게 옷을 가져다주려고 방에서 나오던 전태윤은 그녀의 핸드폰 벨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하예정은 핸드폰을 꺼내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비로소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누구세요?”그녀가 이렇게 묻는 것을 듣고 전태윤은 낯선 번호라는 것을 알아챘다.전화 저편의 사람은 바로 말하지 않았다.“누구세요?”하예정이 다시 물었다.“누나, 나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하예정은 안색이 변하면서 곧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누나, 끊지 마, 방해하지 않을게, 만나지도 않을 테니 그저 얘기만 좀 해. 누나, 나 미칠 것 같아.”김진우는 하예정에게 전화를 끊지 말라고 애원했다.그는 어머니가 정말 하예정에게 보복할까 봐 비록 그녀가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전화마저 어머니에게 도청당하고 있어 서점에 가서 하예정을 볼 엄두도 못 냈고, 전화도 하지 못 했다. 이 한 통의 전화를 걸려고 그는 거금을 들여 자신을 감시하는 경호원을 매수하였고, 상대방의 휴대전화를 빌려 하예정에게 전화를 거는 중이다.하예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김진우가 오랫동안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고, 전화도 하지 않은 건 심효진의 공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젠 김진우가 자기를 포기하고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다시 전화할 줄은 몰랐다.“누구 전화인데?”전태윤은 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고, 상대편에게 누구세요라고 묻는 것 외에는 다른 말을 하지 않자 조금 궁금해 났다.그는 옷을 그녀의 어깨에 걸쳐주면서 다시 물었다.“스팸 전화야?”“김진우예요.”전태윤은 눈살을 찌푸렸다.김진우가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건가?김 대표는 진작부터 두 회사의 합작이 끊긴 일에 대해 이야기하려
심효진과 소정남의 사이가 끝나지 않도록 그 사랑에 길을 열어줘야 했다.“그 사람은 당신이 결혼한 것도 알고 있고, 우리 부부 사이가 좋다는 것도 알고 있으면서 항상 당신에게 매달리고 있어. 그런데도 당신은 둘 사이엔 남매의 정만 있다고 했잖아. 내가 질투 때문에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면, 당신은 아마도 그가 당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거야.”전태윤은 시샘하는 표정을 지으며 하예정의 이마를 쿡 찔렀다.하예정은 찔린 곳을 만지작거리며 억울한 듯 말했다.“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서 줄곧 사촌 동생으로 여겼는데, 날 좋아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내 잘못 아니에요. 난 먼저 진우를 건드린 적이 없어요.”하예정은 그의 팔짱을 끼고 함께 집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은 할머니께서 안목이 높으셔서 당신한테 좋은 와이프를 골라줬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게 아닌가요?”전태윤은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맞아. 할머니는 안목이 높으셔서 나한테 아주 좋은 와이프를 골라주셨지.”“당연하죠, 내가 바로 당신의 그 좋은 와이프예요. 나니까 당신의 이런 고약한 성격을 받아줄 수 있는 거죠. 다른 여자라면 진작에 당신과 싸웠을 거예요.”전태윤은 마음속으로 다른 여자라면, 그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사랑하는 마누라님, 그럼 날 계속 너그럽게 대해 줘요. 우리 인생의 길은 아직 멀고 멀었으니 난 100살, 당신은 95살이 될 때까지 앞으로 적어도 70년은 나를 포용해야 해요.”하예정은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당신은 100살까지인데 난 왜 5년이나 적어요?”“내가 당신보다 다섯 살 많으니 내가 100살이면 당신은 95살이야. 우리 부부는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함께 죽어야 해.”“...”‘이 이기적인 남자 같으니라고. 날 100살까지 살게 하고 자기는 105살까지 살아도 되잖아! 그럼, 우리 부부는 둘 다 백 세 노인이 되는데 말이야.’하지만 95세까지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80세까지 살아도 인생을
전태윤이 덤덤하게 물었다.“난 이젠 그 여자가 기억도 안 나. 내 앞에 다시 나타나지도 않았잖아.”“기억 안 난다고요?”“내가 기억해야 해? 좋아하지도 않는데 뭣 하러 그래? 내가 기억했다가 너 질투하면 어떡해? 너야말로 나랑 평생 함께할 사람이야. 난 너만 기억하면 돼. 다른 여자들은 내게 스치는 인연일 뿐이야. 눈앞에서 지나가도 얼굴조차 기억할 수 없어.”전태윤은 여색에 관심이 없고 한없이 매정할 따름이다.이번 생에 하예정 말고는 좋아하는 여자가 더 없다.하예정이 웃으며 답했다.“나 화 안 내고 질투 안 하니까 경계할 필요 없어요.”“진짜 경계한 거 아니고 전부 진심이야. 가족 말고 가슴에 새겨둔 자가 너 하나뿐이라니까. 다른 사람은 아예 신경도 안 써.”“우리 그럼 퉁 쳐요. 김진우가 날 짝사랑한대도, 태윤 씨를 짝사랑하는 사람도 있잖아요.”전태윤은 김진우가 성소현보다 박력이 없어 쿨하게 내려놓지 못한다고 말하려 했으나 결국 입가에 맴도는 그 한마디를 삼켜버렸다.김진우는 아직 어려서 사랑을 너무 중히 여기는 듯싶다.게다가 하예정을 수년간 짝사랑해왔기에 단시간에 내려놓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부부는 서로 손을 맞잡고 거리를 산책했다. 하예정의 말처럼 지금의 거리는 전처럼 북적거리지 않았고 차량과 인파가 훨씬 줄어들었다.그들 부부를 제외하고도 거리를 산책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다들 한적한 틈을 타 식후 산책을 했다.부부는 산책하며 얘기를 나눴다. 별의별 얘기를 다 나누었지만 대부분 하예정이 말하고 전태윤은 옆에서 들어주었다.둘은 한 시간 가까이 산책한 후에야 집으로 돌아갔다.전태윤은 하예정이 샤워하는 사이에 발코니에 숨어 소정남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연결되자 전태윤은 목소리를 내리깔고 분부했다.“정남아, 김 대표한테 연락해서 관성 호텔에서 기다리라고 해. 내가 밤늦게 나갈 테니 할 얘기가 있다고 전해.”“설 후에 보기로 한 거 아니야?”소정남이 물었다.전태윤이 대답하기도 전에 그가 또다시 질문을 이어갔다.“김진
하예정이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나 영화 봐야겠어요.”전태윤은 그녀의 휴대폰을 가져가더니 서재에 가서 아무 책이나 한 권 가져와 그녀 손에 쥐여주었다.“책 봐. 책 보면 바로 잠 올 거야.”하예정은 책을 건네받고 제목을 보더니 두 눈을 깜빡거렸다.‘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어떻게 이런 책을...”그녀는 첫 장을 펼쳤다.전태윤은 그녀의 휴대폰을 침대 머리맡에 내려놓고 몸 돌려 책 내용을 확인하더니 식겁하며 바로 뺏어왔다. 그는 몹시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내가 잘못 가져왔어. 잠깐만 기다려, 잡지 가져다줄게.”그는 말하면서 책을 안고 부랴부랴 자리를 떠났다.하예정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박장대소했다.“태윤 씨 알고 보니 이런 사람이었어요.”전태윤은 얼굴이 빨개지고 귓불까지 달아올랐다.그 책은 몇 년 전에 소정남이 선물한 건데 한 번도 본 적은 없고 버리기도 아까워 그냥 서재에 보관해두었다.그러다가 하예정에게 감정이 생기면서 몰래 펼쳐봤는데 감히 그녀에게 알리진 못했다.몇 분 뒤 전태윤은 텅 빈 손으로 침대 옆에 돌아왔다.하예정이 일부러 웃으며 물었다.“잡지 준다면서요?”전태윤은 이글거리는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다.너무나도 익숙한 늑대 같은 그의 눈빛에 하예정은 웃음기를 거두고 황급히 이불을 덮으며 그를 등지고 누웠다.“나 잘래요. 이미 잠들었어요. 나랑 말 걸지 말아요. 만약 대꾸해도 그건 잠꼬대에요, 몽유병이라고요.”전태윤은 말문이 막혔다.그는 침대 옆에 앉아서 살짝 긴장해 하는 하예정을 바라보더니 뒤에서 그녀를 꼭 끌어안고 귓가에 다정하게 속삭였다.“그래, 자. 오늘 밤엔 너 안 건드린다고 약속했으니 한 말은 꼭 지킬게. 푹 쉬어 예정아.”그의 대답을 들은 하예정은 그제야 긴장을 풀고 다시 돌아누워 그와 눈을 마주쳤다. 전태윤의 눈빛은 여전히 불타올랐고 이에 하예정은 참지 못한 채 그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태윤 씨 나한테 숨기는 거 있네요. 말하기 싫으면 나도 안 물어볼게요. 언젠가 말
“태윤 씨 정말 사기꾼이에요?”하예정이 전태윤에게 물었다.전태윤은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태윤 씨 정말 사기꾼이냐고요?”하예정은 언성을 높이며 한 번 더 질문한 후에야 잠에서 깼다.그녀는 잠에서 깬 후에도 한참 넋 놓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꿈이었네. 대체 무슨 꿈을 꾼 거야.”고개를 돌려보니 늘 옆에서 일부러 그녀를 재워주던 전태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일찍 자라고 다그치더니 뭔가 숨기는 게 있었네. 태윤 씨 때문에 그런 악몽을 꿨잖아.”하예정은 휴대폰을 가져와 시간을 확인하더니 또다시 잠들었다.이번엔 아무 꿈도 꾸지 않고 달콤하게 잤다.관성 호텔.김 대표는 1층 로비에 앉아 전태윤을 기다렸다.그는 갑작스럽게 소정남의 연락을 받고 관성 호텔에 왔다. 전태윤이 시간을 짜내서 그를 만나려 한다는 말에 한달음에 달려왔다.관성 호텔에서 두 시간이나 기다렸지만 전태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불편한 기색 없이 여전히 소파에 앉아 그를 기다렸다.김종헌은 아내와 함께 관성 호텔에 왔다.심미란은 수시로 시계를 들여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호텔 밖을 내다봤다. 전태윤의 고급 경호 차량이 보이지 않자 그녀는 다시 돌아와 남편 곁에 앉으며 물었다.“여보, 전 대표님 정말 올까요?”“소 이사가 말했으니 무조건 올 거야. 전 대표는 신용을 아주 중요시하는 분이야. 여기서 만나기로 했으면 반드시 찾아올거야. 좀 더 기다려 봐. 만약 임시로 생각이 바뀌어도 꼭 우리한테 알려주실 거야. 여기서 밤새 기다리게 하지 않을 거라고.”전씨 그룹이 김씨 그룹에 위협을 줬지만 김종헌은 여전히 전태윤의 성품을 믿었다.심미란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우리가 비즈니스 업계에서 전 대표님한테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르겠어요. 저번에 연회에 참석하셨을 때 진우랑 인사도 하셨는데 고작 2, 3개월 사이에 갑자기 협력을 중단하고 우리 장사까지 가로채잖아요. 여보, 혹시 누군가가 이간질하는 거 아닐
이윤미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방윤림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방윤림에게 물었다“방 비서, 혹시 좋아하는 사람 있으세요?”방윤림은 이은화가 이윤미에게 배정해준 사람이었다. 이은화는 이윤미에게 방윤림이 그녀의 곁에 머문 순간부터 방윤림을 믿을 수 있고 그 또한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윤미가 앞으로 이씨 가문의 가주가 되지 못하더라도 방윤림은 그녀와 평생 함께할 것이며 다시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이윤미는 여러 번 방윤림을 시험한 뒤에야 방윤림을 믿기로 했다.역시 방윤림은 특별 비서직을 맡기 위해 특별히 양성된 사람답게 정말 못 하는 것이 없었다.아주 유능한 사람이었다.이윤미는 이씨 그룹이 점점 못해지고 있지만, 선조들이 세운 훈련 기지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훈련 기지의 책임자가 어디서 이렇게 대단한 아이를 찾아 기지로 데려와서 조금씩 유능한 비서로 양성했는지 모른다.문무를 겸비했을 뿐만 아니라 비주얼도 아주 훌륭했다.방윤림은 비록 전씨 가문의 도련님들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잘생긴 남자라고 칭찬받을 만큼 멋지다.이윤미가 이씨 가문에 돌아온 지 2년이나 되었지만, 이씨 가문의 비서를 양성하는 훈련 기지가 어디에 있는지 아직도 알아내지 못했다.그녀는 이은화에게 물었지만, 이은화는 그녀에게 훈련 기지가 어디인지 알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 훈련 기지를 담당하는 사람은 이씨 가문에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사람들이고 가문의 사람들과 사적으로 교류하지 않지만,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만 알면 된다고 했다.전심전력으로 역대 가주들을 위해 최고의 특별 비서를 양성했다.이윤미는 이씨 가문의 재무 보고서를 보았지만, 교육 기지에 돈을 썼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하지만 매년 이씨 가문에서는 큰돈이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지만, 돈의 행방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가 단 한 번도 의문을 제기한 적 없었다.이윤미는 그 돈이 바로 훈련 기지에서 인재를 양성하는 데 지급되리라 추측했다.훈련 기지도 자급
한참을 울다가 이윤정은 그제야 울음을 그치고 일어섰다. 그녀는 40만 원을 세어보더니 더도 말고 딱 40만 원이었다.과거에는 40만 원은 그녀의 눈에는 돈에 속하지도 않았다.그러나 지금 40만 원이라는 돈은 이윤미의 한 달 숙박비와 식비일 수도 있다.지금의 이윤정은 관성의 여운별도 더 못한 삶을 살고 있었다.여운별은 비록 용태호에게 이용당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친동생 여천우가 매달 그녀에게 생활비를 주기 때문에 굶지는 않았다.그러나 이윤정이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었다.하지만 그녀는 강성을 떠나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이윤정은 돌아가서 그녀의 세 형수에게 복수하리라 다짐했다.정군호 형제는 정군호의 유전자를 이어받아 밖에서 내연녀를 두기 좋아했다.이윤정은 그들의 취향을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의 성질도 잘 알고 있었다. 정일범 형제 또한 이윤정에 대한 정도 깊었기 때문에 그녀가 조금만 꼬드겨도 금세 넘어올 것이다.그들 형제가 전부 이윤정에게 빠져들게 해서 세 형수님이 죽도록 화나게 하고 싶었다.어차피 이윤정의 몸은 이제 깨끗하지 않으니까.이윤정은 이씨 가문의 친자식이 아니기 때문에 정일범 형제와도 혈연관계가 없었다.그들이 이윤정에게 돈을 주고 그녀를 내연녀로 삼기만 하면 그뿐이었다. 그러면 조윤 일행도 기가 막혀 죽을 지경일 것이다.이윤정은 될 대로 되라고 중얼거리면서 병원을 떠났다.고급 병실의 거실 창문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윤미는 이윤정이 이은화를 쫓아다니며 해명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윤정은 큰 소리로 울며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이은화가 경호원에게 이윤정 손에 돈을 좀 쥐여주라고 하고 자리를 떠난 모습을 본 이윤미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저 모습을 보니 아마 포기하지 않은 모양이에요. 무슨 일을 저지를지도 몰라요.”이윤미 옆에 서 있는 방윤림이 이윤미의 반응을 살피며 조용히 말했다.이윤미는 그를 쳐다보지 않았지만, 그의 말에 동의했다.“윤정이는 지금 유일하게 잡을 수 있는 건 바로 세 오빠일 거
“엄마, 누가 저와 아버지를 해쳤는지 알아요. 세 형수님이에요. 그 술은 큰오빠가 방에서 아버지께 가져다드린 술인데 큰오빠가 그렇게 할 이유가 없잖아요. 분명 형수님들일 거예요. 엄마!”이은화가 차에 올랐다.이윤정이 앞으로 덤벼들었지만 차 문도 만질 수 없었다.운전기사가 차를 몰기 전에 이은화는 창문을 눌러 경호원들에게 이윤정을 풀어주고 이윤정이 가까이 오도록 지시했다.이윤정은 웃음 지으며 경호원을 물리치고 얼른 앞으로 다가갔다.“엄마, 저 믿으시는 거죠? 제가 말한 것은 모두 사실이에요. 엄마는 계속 병원에서 아버지를 돌보느라 아직 조사할 시간이 없으셨겠지만, 집으로 돌아가셔서 조사하기만 하면 금방 진실이 밝혀질 거예요.”이은화는 이윤정을 바라보며 대답했다.“너와 군호 씨가 남의 계략에 빠졌다는 사실을 나도 알아.”이윤정이 더욱 기뻐했다.이은화의 아이큐로 모를 리가 없었으니까.“하지만 뭐? 너희 두 사람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될 수는 없잖아.”이윤정의 희망이 갑자기 사라져버렸다.“엄마.”이윤정의 눈시울이 바로 붉어졌다.그녀는 누구보다도 고통스러웠다.이윤정의 처음은 한 영감탱이에게 빼앗겨버리고 말았다.“넌 내 딸이 아니야. 네 몸에는 우리 이씨 가문의 피가 흐르지도 않고 정씨 집안의 피도 없어. 넌 나와 군호 씨 딸이 아니거든.”“하지만, 저는 엄마와 아빠가 키운 딸인걸요. 한때 저를 소중한 보물로 여기면서 저를 아끼고 사랑해 주셨잖아요.”이은화는 피식 웃었다.“그건 우리가 네 친아버지한테 속았기 때문이야. 원망하려면 네 친아버지를 원망해. 날 원망하면 안 되지. 넌 시종 우리 가문의 딸이 아니었다. 일범이는 내 친아들이고 일범의 아내도 내 며느리야. 너의 형수님들이 널 모함했는데, 그래서 뭐? 나에게는 핏줄이 가장 중요해.”이은화는 이윤정의 창백한 얼굴을 무시하고 경호원에게 분부했다.“얘한테 돈 40만 원 줘서 보내. 얼른 가자!”이은화도 속으로 화가 났지만, 조윤과 이윤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
정군호는 이윤미가 자신과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걸 눈치채고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말을 이었다.“영화도 좀 보고 쉬어야겠어.”이윤미는 아버지를 눕히고 싶어 했고 방윤림이 그녀의 뜻을 알아듣고 대신 정군호를 눕혀 주었다.“아버지, 저와 방 비서는 거실에 있을게요. 무슨 일이 있으면 불러주세요. 이따가 큰오빠도 오실 거에요.”정군호가 의아해하며 물었다.“네 오빠가 왜 와? 네가 날 이틀 동안 돌보겠다고 하지 않았어? 왜 돌보기 싫어서 그래?”“큰오빠도 아버지 아들인데 아버지께서 입원하셨는데 오빠가 와서 돌보는 게 당연한 거 아니에요? 제가 돌보기 싫은 것과 상관없는 것 같은데요. 아버지는 저 혼자만의 아버지가 아니잖아요.”정군호는 목이 메어 잠시 할 말을 잃었다.“네 오빠는 출근하시잖아.”“저도 출근해야죠. 제가 큰오빠보다 더 바빠요.”정군호가 또 무슨 말을 하려 하자 이윤미는 이은화를 내세우며 계속해서 말했다.“엄마가 저 보고 병원으로 와서 아빠와 좀 이야기도 나누라고 했어요. 한 시간 뒤에 오빠가 오신다고 하셨고요.”정군호는 이은화의 계획이라는 말을 듣고는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정군호는 이윤정의 정황을 묻고 싶었지만 감히 이윤미에게 묻지 못했다.이윤정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그녀는 지금 입원 병동 입구 근처에 숨어 대문을 바라보며 이은화를 기다리고 있었다.드디어 이은화가 나타났다!이은화가 경호원들과 함께 입원 병동을 나서자 이윤정은 재빨리 나타나 쏜살같이 달려갔다.이은화 곁의 경호원들도 만만한 실력이 아니었기에 이윤정이 다가오기도 전에 먼저 발을 내밀었다.다행히 이윤정은 반응이 빨라 경호원이 날린 발차기를 재빨리 피했다.“엄마, 나야. 윤정이.”이윤정은 큰소리로 외쳤다.이윤정이라는 말을 들은 경호원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지만, 여전히 이윤정을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했다.“엄마, 엄마!”이은화의 발걸음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가자 이윤정은 소리를 지르며 따라갔다.“엄마, 제 말 좀 들어주세요. 엄마,
이윤미가 입을 열었다.“삼촌들의 삶은 여전히 행복하게 살고 계세요.”이윤미는 정군호가 정씨 집안의 미래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정씨 집안의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이은화의 복수 수단을 두려워했던 정군호는 스스로 그 부분을 잘라 혼인 생활을 지키기로 했다. 앞으로 같은 침대에 있더라도 아무 짓도 못 하는 점에 대해 정군호도 받아들였다.조심했어야 했는데.“그럼 됐어. 윤미야, 비록 넌 네 엄마의 이씨 성을 따르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정씨 집안의 피가 흐르고 있거든. 앞으로 정씨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기면 절대로 수수방관해서는 안 돼. 네 삼촌과 고모들도 너에게 잘 대해 주시잖아.”이윤미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그분들도 지금 그들만의 일자리가 있잖아요. 그분들이 열심히 일하고 안전하게 지내시기만 한다면 생활이 나쁘지 않을 거예요. 만약 급한 일이 생기면 제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도와드려야죠.”만약 이윤미가 도울 수 없는 일이라면 예외가 없을 것이다.정군호도 이윤미의 말뜻을 알아챘다.이윤미는 이은화처럼 매우 냉정하고 정씨 집안 사람들과 감정이 없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정씨 집안에 가장 정이 깊은 사람이 바로 이윤정이였다.이윤정은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정군호는 부드럽게 웃었다.“성실하게 생활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이셔. 그리고 저의 사촌 형제들도 전부 성실한 사람들이지.”성실하거나 말거나 이윤미가 관여할 바는 아니지만, 그들이 이씨 가문의 명목으로 함부로 행동하면 절대로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이윤미는 남들이 그녀를 바둑판의 바둑알로 이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아버지, 저도 알아요.”정군호는 이윤미를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방윤림을 힐끗 쳐다보았다. 정군호는 말을 할까 말까 망설였고 그의 모습을 본 이윤미가 먼저 입을 열었다.“아버지, 하시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세요. 우리가 친부녀 사이인데 못할 말이 어디 있겠어요?”“윤미야, 사실 네 엄마 마음속에도 한 남자가 들어있어. 다만 그 남자가 자취를 감췄
정군호도 그럴 용기가 없었다.이은화는 자식마저 내쫓을 수 있는 사람인데 데릴사위야 더 말할 것도 없었다.이은화는 몸을 돌려 떠났다.이윤미는 이은화를 배웅해 주러 나가면서 정군호의 안부를 물었다.“넌 여기서 군호 씨랑 얘기를 나누고 있어. 한 시간 뒤에 너의 큰오빠가 오실 거야. 장남으로서 네 아빠를 돌보는 일은 일범이가 앞장서야지.”이윤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몇 마리 대화를 나누다가 엘리베이터 입구에 도착했다. 이윤미는 멈춰 서서 이은화가 경호들과 함께 떠나는 것을 바라보았다.그녀는 돌아서서 병실로 돌아갔다.방윤림은 정군호에게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주었고 정군호도 방윤림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가주나 후계자 주변의 특별 비서들은 가문의 심복이기 때문에 아무도 감히 얕보지 못했다.이은화조차 방윤림에게 예의를 갖추곤 했다.“윤미야.”정군호는 이윤미가 돌아온 것을 보더니 환한 미소를 지으며 친딸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았다.“아버지, 기분이 어때요? 좀 나아졌어요?“이윤미는 정군호의 병상 앞에 앉아 예의를 갖추어 물었다.가장 친한 부모님이어야 하는데 이윤미는 친아버지를 손님을 대하듯 정중하게 대했다.친근해질 마음이 눈곱만치도 없었다.일주일 동안 입원한 정군호의 안색은 여전히 창백하고 핏기가 없어 보였다. 적어도 열 살은 더 먹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이윤미도 정군호가 마음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신체적인 통증과 신체장애가 정군호의 마음을 심하게 괴롭힌 데다 병원에서 관리를 못 한 탓으로 그는 늙어 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래도 많이 나아졌어. 곧 퇴원하실 수 있을 거야. 네 엄마도 날 세심하게 보살펴 주셨거든. 매일 직접 밥도 먹여 주셨어.”정군호는 부드럽게 말을 꺼냈다.이은화는 확실히 매일 삼시 세끼를 직접 먹여 주었지만, 음식이 따뜻하든 차갑든 상관없이 정군호의 입에 쑤셔 넣었다.밥이 뜨거울 때는 정군호의 혀가 빨개질 정도로 뜨거웠고 차가울 때는 그의 마음마저 차가워질 정도로 차가웠다
20분 후, 두 사람의 차가 병원 주차장에 멈춰 섰다. 방윤림은 먼저 차에서 내려 빠른 걸음으로 이윤미의 차 앞으로 걸어갔다. 이윤미가 차에서 내리자 방윤림은 그녀의 물건을 들어주었다.이윤미는 아버지에게 영양제 두 박스와 과일 한 바구니를 사 왔다.“주세요. 무거워요.”방윤림은 이윤미가 과일을 들게 하지 않았다. 이윤미가 일반 여자들보다 힘이 센데도 말이다.그는 어릴 때부터 무술을 익힌 사람으로서 힘이 더 드셌기에 과일 한 바구니를 들기에는 아주 거뜬했다.이윤미도 사양하지 않고 방윤림에게 과일 바구니를 들라고 했고 그녀는 한쪽 손으로 영양제 박스를 들었다.두 사람은 병원으로 걸어갔고 길을 가던 도중에 이윤미는 이윤정을 만났다. 이윤정이 구석에 숨어 있는 것으로 보면 아마 이은화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이윤미는 이윤정을 보았지만, 이윤정은 이윤미를 못 본 눈치였다.방윤림이 이윤정을 힐끗 보더니 이윤미에게 물었다.“쫓아낼까요? 가주님께서는 분명 윤정 아가씨를 보고 싶지 않을 겁니다.”이윤미는 담담하게 대답했다.“내버려 둬요. 우리가 엄마를 만나지 못하게 해도 윤정이는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포기하지 않으면 계속 꿈을 꾸게 되는 법이죠. 꿈은 언젠가 깨질 텐데.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보고 싶어요.”방윤림은 말을 잇지 않았다.두 사람은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이윤정은 아는 사람들에게 들킬까 봐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사실 그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병원에 오는 사람들은 전부 진료를 받거나 환자를 방문하는 사람일 텐데 누가 낯선 사람에게 신경 쓸 여유가 있겠는가!이윤정은 강성에서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일반 사람들은 그녀가 누구인지 관심조차 없었다. 다들 삶을 위해 뛰어다니며 노력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돈을 더 버는 것이 남을 관심하는 것보다 더 중요했다.이윤미와 방윤림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정군호가 입원한 고급 병실에 도착했다.이은화의 경호원들은 병실 복도 밖에서 지키고 있었다.
고빈도 이윤미가 그녀만의 사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어쩐지 고현이 이윤미를 마음에 들어 하더라니! 이윤미는 양부모 밑에서 잘 살지 못했지만 작은 풀처럼 굳세게 성장했다. 젊은 시절 이윤미는 그녀의 지력와 담력으로 그녀만의 상업 왕국을 만들어냈다.대단한 장사꾼이다.고현이 늘 고빈과 이윤미를 맺어주려고 한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아마 고현은 지금도 포기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하예진이 나타났기에 이씨 가문의 차기 후계자가 누구인지는 아직도 미지수이다.이윤미가 후계자 자리에서 물러나면 자유롭게 시집갈 수 있고 데릴사위도 데려오지 않아도 될 것이다.고현도 이런 점을 고려해 아직도 고빈과 이윤미를 맺어주려고 했다.“누나, 알겠어. 그런데 윤미 씨 곁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있어.”고빈은 일부러 귀띔해 주었다.그는 고현을 단념시켜 더는 그와 이윤미를 엮지 말았으면 했다.고빈은 이윤미의 능력을 감상할 수는 있지만, 남녀 간의 설레는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게다가 이윤미 곁에는 수호자 방윤림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고현은 동생을 보며 말을 건넸다.“윤미 씨 옆에 누가 있든 너와 무슨 상관? 내가 윤미 씨 곁에 누가 있다고 말한 것도 아닌데 왜 또 이 화제를 끌어들여? 혹시 네가 윤미 씨에게 관심 있는 거 아니야? 왜 윤미 씨를 언급할 때마다 그 일을 떠올려?”고빈이 당황해하며 대답했다.“아니... 절대 아니거든!”고현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빈을 바라보았다. 고빈은 자신이 누나가 파놓은 큰 구덩이에 뛰어들었다고 느꼈다.“누나, 난 정말 윤미 씨에게 관심 없어. 싫어하는 건 아니고 그냥 순수하게 감상할 뿐이야. 그런데 내가 감상하는 여자들이 너무 많아.”고빈의 여성 지인들이 많이 언급되면 고현은 얼굴이 바로 어두워지곤 한다.“빨리 진정한 여자 친구를 찾아봐. 호영 씨가 고자질하지 않더라도 넌 계속해서 이렇게 빈둥거리면서 놀 수는 없잖아.”고현은 큰누나티를 팍팍 내며 고빈을 혼내고 있었다.고빈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나도 여자
고현은 그 빨간 작은 상자를 들고 열어보더니 다시 닫으며 고빈에게 물었다.“이건 너의 여성 지인들을 달래기 위해 산 거 아니야?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야.”그녀는 그 작은 상자를 고빈에게 던져주었다.“난 이런 액세서리들이 부족하지 않아. 호영 씨가 요 며칠 동안 나에게 보석과 여자 옷, 그리고 하이힐 등을 미친 듯이 사줬거든.”고현은 여성 물건들이 부족하지 않았다.그녀 자신도 돈이 많으니, 마음에 들면 아무리 비싸도 살 수 있었다.예비 시어머니도 귀한 보석들을 고현에게 많이 주셨다.단지, 그녀가 이런 여성 액세서리들에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전씨 할머니도 그녀에게 몇 가지 귀중한 보석들을 주셨다. 할머니는 민국에서 태어나 집안이 부유했지만, 그 뒤로 몰락한 적이 있었고 또다시 부자가 되었다.어르신이 소장하고 있는 보석 중 일부는 골동품이었기에 매우 귀중했다.할머니는 몇 명의 며느리를 얻은 뒤로 그 며느리들에게도 조금씩 나누어 주었고 또 일부를 남겨두었다.원래는 손녀가 태어나면 대부분 물건을 주려고 했지만 결국 소원을 이루지 못하셨다.손자며느리가 생겨도 전씨 할머니는 손자를 위해 손자 며느릿감을 골라주시고 모두에게 평등하게 소중한 보석 액세서리들을 선물했다.어르신은 돈이 너무 많아서 이렇게 많은 것을 나누어주었지만 그녀의 창고에는 여전히 많은 액세서리가 남아있다.할머니는 앞으로 누가 그녀에게 증손녀를 낳아주면 큰 상을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하지만 전씨 가문에 시집온 여자들은 희망을 품지 않았다.전씨 가문은 소문난 아들 천국이었다.몇 세대에 걸쳐 딸이 태어난 적 없었다.며느리들은 그녀들이 그렇게 운이 좋아 수많은 사랑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는 딸을 낳으리라는 희망조차 품지 않았다.고빈은 질투하며 말했다.“누나는 호영 형이 생기니까 이제 동생도 잊은 거야? 호영 형이 누나에게 준 선물은 호영 형의 성의이지, 내 마음이 아니잖아. 남매 사이에 내가 처음으로 목걸이를 선물했는데, 받지 않으려 하니 너무 속상하다. 이 목걸이는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