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시인데 아직도 안 일어났어?”“태윤 씨 요즘 업무가 바빠서 늘 야근했어요. 좀 더 자게 해요.”장소민이 말했다.“걔 평상시엔 새벽 3시까지 일하고 집에 돌아와도 다음 날 아침 조깅하러 나가는 애야. 너 만나고 나서부터 게을러지기 시작했지? 예정아, 태윤이 너무 챙겨주지 마. 남자든 여자든 지나치게 챙겨주면 결국 본인만 상처받아.”“엄마, 지금 뒤에서 날 험담해요?”전태윤이 방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정장 차림에 훤칠한 체구를 드러내며 멋지게 다가왔다.다만 아직 외투를 걸치지 않았고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전부 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장소민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가까이 다가갔다.“엄마가 고작 너 게으르다고 한마디 했을 뿐인데 바로 나오네? 다행이야, 널 더 욕하지 않아서. 요즘 기온이 올라가긴 했지만 아침엔 여전히 쌀쌀해. 얼른 외투 입어. 또 감기 걸려서 예정이만 힘들게 하지 말고.”장소민은 평소 남편에게 했던 대로 아들에게 외투를 입혀주려 했다.전태윤은 얼른 스스로 옷을 입었다.그는 사실 하예정이 입혀주길 바랐지만 넥타이도 혼자 맸다.이때 하예정의 목소리가 주방에서 들려왔다.“어머님, 태윤 씨 또 감기 걸리면 그땐 매일 한약 한 컵씩 먹일 거예요.”전태윤의 잘생긴 얼굴이 확 어두워졌다.장소민은 웃으며 며느리에게 말했다.“태윤이 한약 먹는 걸 제일 싫어해.”“엄만 몰라. 엄마 며느리가 글쎄 나 챙겨줄 때 그냥 지나가는 말로 양약이 부작용이 크다고 했더니 의사한테 바로 얘기해서 한약으로 싹 다 바꾼 거 있지. 그리고 매일 나한테 한약 한 컵씩 먹였어. 나 진짜 토 나오는 거 참으면서 겨우 먹었다니까.”장소민이 두 눈을 반짝이며 덤덤하게 말했다.“자고로 쓴 약이 병을 고칠 수 있어. 예정이도 네가 빨리 낫길 바라서 그랬겠지. 게다가 네가 양약이 부작용이 크다고 했으면서 뭘 원망해? 너 때문에 한약으로 바꾼 건데 뭐가 문제야? 네 몸 꼭 잘 챙겨. 엄마 걱정하게 하지 말고. 그리고 예정이가 지금 가게 나갈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
전태윤의 말을 들은 장소민이 버럭 화를 냈다.“아내가 무조건 아침을 차려야 한다고 누가 그래? 집안일도 당연히 하는 거라고? 천만에, 예정이는 너한테 빚진 것도 없는데 뭣 하러 널 양반처럼 모셔야 하니? 태윤아, 네 아빠를 봐. 제발 아빠를 본보기로 삼아. 너의 이런 마인드는 아빠랑 비교하면 한참 멀었어. 얼른 마음가짐 고쳐 써. 대체 뭘 배운 거야? 우리 집안에 시집온 여자는 전부 사랑받고 있어. 너만 예정이를 하녀 취급해. 그러면서 뭐? 당연한 거라고? 오늘 내가 왔으니 망정이지 네 할머니가 오셨다면 바로 지팡이 들어서 널 한바탕 두들겨 팼을 거야.”“예정아, 예정아.”장소민은 아들을 한바탕 욕한 후 주방에서 분주히 음식 차리는 하예정을 불렀다.하예정이 부랴부랴 주방에서 나왔다.“어머님, 왜요?”“이리 와.”장소민이 며느리에게 가까이 오라고 하더니 직접 앞치마를 풀어주며 아들에게 말했다.“너 그 외투부터 벗고 넥타이 다 풀어. 이따가 다시 해.”전태윤이 곧이곧대로 했다.장소민은 아들에게 앞치마를 두르더니 주방으로 떠밀며 말했다.“가서 아침 차려. 예정이는 쉬고 있어. 너 집에서 하는 양반 버릇 당장 고쳐.”하예정이 재빨리 말했다.“어머님, 괜찮아요, 제가 할게요.”“예정아, 너 이러면 태윤이 버릇 나빠져. 쟤는 내가 낳은 아이라 내가 잘 알아. 뼛속까지 이기주의라 모든 이가 제 위주로 돌아가야 한다고 여기는 애야. 너 태윤이랑 함께 지낸 몇 개월 동안 많이 속상했지?”하예정이 속으로 구시렁댔다.‘역시 아들을 아는 건 엄마뿐이야.’전태윤은 전에 모든 이가 그의 위주로 돌아가야 하고 그가 중심이 되어야 했다. 게다가 속이 엄청 좁아 걸핏하면 삐졌다.부부는 두 차례 갈등을 빚었고 최근에 변해가고 있는데 완전히 고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또 언젠가 버럭 화를 내며 그녀와 갈등을 빚고 냉전을 벌일지 모른다.“엄마, 대체 누가 엄마 친자식이에요?”전태윤이 앞치마를 두르며 구시렁댔다. 그는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주방에 들어가더니 몰
장소민은 아들에게 속은 기분이 들어 아침 먹을 때 일부러 하예정에게 잘해줬다. 이에 질투 난 아들이 씩씩거리며 말했다.“엄마, 난 주워온 아이예요?”장소민이 그를 힐긋 바라보며 말했다.“이게 바로 내가 딸과 아들을 대하는 태도야.”‘녀석, 또 한 번 날 속여봐.’전태윤은 말문이 막혔다.배불리 먹은 후 하예정은 전태윤을 배웅하러 집 아래로 내려갔다.“사실 나 드레스가 한 벌 있어서 새로 살 필요 없어요.”하예정이 남편에게 말했다.“드레스는 비싼 데다가 1년에 한 번이나 입을까 말까예요. 사서 옷장에 넣어둘 뿐인데 그러다가 내가 살쪄서 못 입으면 더 낭비잖아요. 입을 만한 드레스 한 벌만 있으면 돼요. 새로 살 필요 없어요. 이제 곧 구정이라 이것저것 장만해야 할 것들도 많으니 다 돈 나갈 구멍이에요. 나한테 상의도 없이 어머님 모셔오면 어떡해요?”전태윤은 아내의 시시콜콜한 잔소리와 불만을 들으며 차에 오르기 전 가볍게 그녀의 콧등을 어루만졌다.“예정아, 내가 늘 말했듯이 우린 조건에 맞게 사는 거야. 내가 만약 돈이 빠듯했다면 절대 이렇게 하지 않았어. 그러니까 지금 너보고 드레스를 사라고 하는 건 내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다는 뜻이야. 걱정 마, 우리 아내 드레스 두 벌쯤은 충분히 사줄 수 있어. 구정 때도 장만할 물건들 사고 어르신들께도 용돈 챙겨드리자. 우린 올해 받을 돈도 꽤 많을걸. 넌 우리 집에서 처음 설을 보내는 거라 어르신들이 세뱃돈을 푸짐하게 줄 거야.”전태윤이 일부러 한마디 덧붙였다.“그때 가서 세뱃돈 두둑이 받으면 나 절반 줘야 해. 내 덕분에 너도 우리 집안의 며느리가 될 수 있었잖아.”하예정이 실소를 터트렸다.“알았어요. 설에 받은 세뱃돈은 반반씩 나눠 가져요.”“드레스 살 돈은 이미 엄마한테 계좌 이체했어. 엄마가 재벌 집 사모님들이랑 자주 어울려서 이쪽 분야를 잘 알고 계셔. 널 위해 예쁜 드레스를 골라주실 거야. 너한테 어울리면서도 원단이 좋은지 분별할 수 있어. 그러니까 사기당할 걱정은 하지 마.”전태윤
장소민은 며느리를 회사 송년회에서 가장 빛나는 여성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에 며느리에게 가장 예쁘고 화려한 드레스를 골라주었다. 하예정은 기질이 좋은 덕에 그 드레스를 입었을 때 그 옷의 장점을 살릴 수 있었다.장소민은 드레스를 갈아입으니 마치 사림이 바뀐 것 같은 하예정을 보며 말했다.“예정아, 너는 기질이 아주 좋구나, 여기에 네가 예의까지 배운다면 꼭 상류층 규수가 될 수 있을 거야.”“어머님, 제 목표는 돈 많이 벌고, 집 한 채를 사는 거예요. 상류층 규수가 되는 데엔 관심이 별로 없는 걸요, 그리고 또 제가 어떻게 상류층 규수가 되겠어요? 저에게 뭐 내로라하는 가문이 있나, 전 그냥 작은 서점 하나 꾸려 학교랑 합작하여 많지도 않은 돈을 벌어서 살아가고 있어요. 상류층이니 뭐니, 생각해 볼 겨를도 없는걸요.”“태윤이는 벌써 집을 두 채나 샀잖아...”장소민은 자기 아들이 다른 건 몰라도 돈과 집은 아주 많이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전 학교와 좀 가까운 곳에 집을 한 채 사고 싶어요.”이 말이 나오자, 장소민은 웃으며 말했다.“좋아, 그럼, 먼저 학교와 가까운 곳에 집 한 채 마련해 둬. 이제 인테리어 한 후 환기 좀 시켰다가 나중에 너랑 태윤이 아이가 생기면 학교에 다니기 편할 거야.”하예정의 말 한마디에 장소민은 둘이 이미 진짜 부부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장소민은 웃으면서 속으론 한숨을 쉬었다.‘예정이가 내 맏며느리인 게 더는 변하지 않을 것 같으니, 앞으로 좀 더 잘 가르쳐줘야겠어. 맏형수 하기 쉽지 않을텐데...’하예정은 맏형수일 뿐만 아니라 전씨 가문의 큰 사모님이다.전씨 가문의 아홉 도련님은 모두 전태윤처럼 보통 가문의 여자를 아내로 맞이할 수는 없을 거이니, 앞으로 하예정은 그녀보다 가정조건이 몇 배나 좋은 동서들을 상대하여야 한다. 맏형수로써 동서들을 잘 다스릴 수 있을지는 모두 그녀 자신에게 달려 있다.장소민도 시어머니의 안목을 믿고 있고 하예정이 전씨 가문의 큰 사모님 역을 잘할 것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큰 쇼핑백을 들고 차에 올라탔다.곧 하예정은 차를 몰고 시어머니를 태우고 집으로 갔고 고급 차 한 대가 옆에 멈춰 서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차 안의 사람들은 창문을 내리고 하예정의 멀어져가는 차를 바라보았다.이경혜는 옆에 앉아있는 며느리에게 물었다.“청하야, 방금 그 둘 중 하나가 예정이 맞지?”유청하는 확신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아요. 예정 아가씨예요.”“예정이와 함께 있는 그 여자, 전씨 가문의 사모님 아니야? 바로 전태윤의 친어머니 말이야.”이경혜는 여전히 눈매가 좋았다.전씨 가문과 성씨 가문은 라이벌 관계라 장소민과 이경혜도 만날 때마다 서로 경계하고 있어 서로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방금 이경혜는 멀리서 자기 조카딸과 장소민이 같은 차에 타는 것을 보고, 급히 며느리에게 차를 세워 똑똑히 확인하라고 했는데 정말 장소민이었다!‘예정이가 어떻게 장소민과 함께 있을 수 있지?’“어머님, 저 사람은 전씨 사모님 같긴 하지만 진짜 전씨 사모님인지 아닌지는 얼굴을 제대로 못 봤어요, 거리가 좀 멀어서...”유청하은 너무 확신하는 말을 감히 하지 못했다.“아니, 장소민이 맞아! 분명 장소민일 거야! 난 그 집 사모님을 오랫동안 상대해 와서 설령 그녀가 얼굴을 바꾼다고 해도 알아볼 수 있어. 예정이가 장소민과 같이 있다니... 그 둘은 사이도 매우 좋아 보여, 그리고 예정이의 남편도 전씨 성을 가진 거로 기억되는데...”이경혜는 갑자기 자기가 소홀한 조카사위가 생각났다.그러고 보니 조카사위 이름을 물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청하야, 예정이의 남편이 혹시 전태윤은 아닐까? 아니면 전태윤의 동생이라던지... 아니다, 전태윤의 동생들은 전씨 그룹에 근무하지 않아! 예정이의 남편은 전씨 그룹에 근무한다고 했으니 바로 전태윤일 거야.”유청하는 혼란한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자기와 남편은 전태윤이 하예정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진작 알고 있었다는 것을 시어머니에게 들킬까 봐 두려웠다.이경혜는 유청하의 부자연
장소민은 밖에 나가서 쇼핑하는 일이 거의 없고 필요한 것은 모두 브랜드 쪽에 시켜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오늘 어쩌다 한 번 외출했는데, 이경혜한테 들킬줄이야...전태윤은 하예정을 속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경혜는 속일 수 없을 것이다.이걸 알 리가 없는 하예정은 이경혜의 말을 듣고 그저 웃으며 답했다.“이모, 잠시만 기다려 주실래요? 저 지금 어머님과 함께 있는데 먼저 집에 모셔다드리고 이모한테 갈게요.”“그러면 네 시어머니도 불러. 우리 두 집은 아직 서로 인사한 적이 없잖아. 이참에 네 시어머니도 만나보고 함께 식사하면 되겠네.”“이모, 저 먼저 어머님께 물어보고요.”하예정도 이모와 시어머니가 서로 만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두 자매에게 가장 잘 대해준 가족은 이모이다.장소민은 이모와 조카의 통화를 유심히 지켜 듣다가 하예정이 묻기도 전에 얼른 입을 열었다.“예정아, 내가 오랫동안 쇼핑을 하지 않아 그런지 오늘 이렇게 오래 걸었더니 발바닥이 시큰거려서 더 이상 돌아다니기 싫구나, 네 이모에겐 미안하다고 전하고 다음에 시간이 나면 같이 앉아서 식사하자고 해.”장소민의 말을 들은 하예정은 미안한 마음으로 말했다.“이모, 어머님께서 더는 쇼핑하기 힘들다고 하셔서 오늘은 그만하고 다음에 또 같이 식사하는 건 어때요? 맞다, 소현 언니랑 새 언니는 같이 안 계시나요?”설령 둘 다 시간이 없더라도 은퇴하여 집에 있는 이모부가 이모 옆에 동반할 수 있을 것이다.“알았어, 다음에 시간 나면 다시 약속 잡는 거로 해. 너 먼저 시어머니 집에 데려다주고, 네 남편한테 저녁에 시간 되는지 물어봐봐. 네 언니도 불러서 우빈이 데리고 같이 저녁 먹으러 오라고 해. 네 남편, 이모는 아직 못 봤잖아... 참, 이름이 뭐였더라?”“전태윤이에요. 그런데 아마도 시간이 없을 것 같아요. 제가 전에 물어봤는데, 구정이 지난 후에 이모를 찾아뵐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이경혜는 가볍게 응하며 하예정에게 운전 조심하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전태윤
가는 내내 이경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유청하는 시어머니가 자기 딸을 위해 하예정에게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걱정됐다.아직 찾은 지 얼마 안 되는 외조카보다는 자기 친딸이 더 중요한 건 사실이다.성씨 그룹에 도착하자, 이경혜는 곧장 사무실로 들어갔고, 유청하는 일부러 걸음을 늦추며 성기현에게 전화를 걸었다.“기현 씨, 어머님이 회사로 오셨어요. 곧 당신 사무실에 도착할 거예요.”성기현은 침묵을 지키다 말했다.“알았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엄마는 화가 나도 다른 일은 하지 않을 거예요.”어머니는 전태윤이 눈이 멀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전태윤은 모든 면에서 자기와 잘 어울리는 성소현이 아닌 하예정과 사랑에 빠졌고, 하필이면 하예정은 이제 그들의 사촌 여동생이 되었다.만약 이런 가족 관계가 없었다면...아마 하예정을 따끔하게 혼내줬을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하예정으로 인해 성소현이 사랑의 상처를 받게 됐으니 말이다.“전 올라가지 않을게요, 어머님 안색이 너무 안 좋아 보여요. 전 1층의 VIP룸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어머님 좀 위로해 드려요.”“그럴게요.”전화를 끊은 유청하는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고 1층의 VIP룸에서 기다렸다.두 모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저녁 퇴근 시간이 되어서야 이경혜는 위층에서 내려왔다.“어머님.”유청하는 급히 VIP룸을 나서 시어머니를 불렀다.시어머니의 안색은 여전히 안 좋았지만, 분노가 많이 수그러든 것 같아 이청하는 마음이 조금 놓였다.“청하야, 차 키 이리 줘, 나 혼자 집에 갈 테니. 넌 여기서 조금만 더 기다렸다가 기현이랑 같이 돌아가.”“네, 알겠어요.”유청하는 시어머니에게 차 키를 건네주었고, 시어머니는 차 키를 받고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떠나갔다.하예정은 이 일들을 전혀 몰랐다.그녀와 시어머니가 발렌시아 아파트로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아버지로부터 시어머니더러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고 재촉하는 전화가 걸려 왔다.하예정은 시
“아직이야, 식재료 좀 말렸다가 절이려고.”하예정은 너무 매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였다. 그녀는 집 안을 한 번 둘러보았는데, 숙희 아주머니와 주우빈은 보이지 않았다.“숙희 아주머니가 우빈이를 데리고 나갔어?”“응, 우빈이도 매운맛을 싫어해 숙희 아주머니한테 데리고 나가라고 했어, 이따가 밥 먹을 때 다시 오고. 예정아, 너 제부 밥은 안 해도 돼? 드레스를 고르러 간다고 하더니, 다 샀어?”하예정은 언니의 집에 있는 작은 부엌으로 들어가 식재료를 확인한 후 야채를 씻고 요리하는 것을 도왔다.“몇 벌이나 샀는걸, 시어머니가 대신 봐주셨어. 어머님은 눈썰미가 좋으셔서 골라주신 드레스들이 하나 같이 너무 예뻐.”다만 너무 비쌀 뿐이었다.그녀는 몰래 점원에게 물어봤는데, 시어머니가 픽한 가장 예쁜 드레스는 그녀의 저금으로 사면 기껏해야 두세 벌밖에 살 수 없었다.비록 전태윤이 낸 돈이라지만, 하예정은 못내 아까웠다.전태윤은 돈을 정말 헤프게 쓰는 편이다.그는 높은 수입인 만큼 높은 소비를 하였다.예전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모아 별장도 사고, 발렌시아 아파트도 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하예정의 말에 하예진은 그저 가볍게 응했다.딩동!이때, 초인종이 울렸다.“예정아, 가서 문 좀 열어봐, 내가 손이 지저분해서...”하예진은 동생에게 문을 열라고 소리쳤다.하예정은 문을 열러 부엌에서 나오며 말했다.“숙희 아주머니가 우빈이를 데리고 돌아온거겠지... 뭐하러 오셨어요?”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숙희 아주머니와 주우빈이 아니라 김은희였다.“예정 씨, 언니 집에 있어요? 언니랑 얘기 좀 나누러 왔는데... 우빈이는 있나요? 온 김에 얼굴 좀 봐야겠어요.”김은희는 지금 하예정을 좀 무서워한다.“왜 이 시간에 우리 언니를 찾는 거예요? 와서 밥이라도 얻어먹으려고 그러는 거예요? 새 며느리가 밥도 안 해 줘요? 해산물 가득 사다 요리 안 해 준대요?”김은희를 마주한 하예정은 비꼬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예전에 김은희가 자기 딸 가족을
소지훈이 웃으면서 말했다.“언제든지 연락해주세요. 참, 제가 두 박스의 물건을 배송했는데 받으셨나요? 제가 배송 기록을 확인해보니 오늘 받아보실 수 있다고 하던데.”소지훈은 관성의 특산품을 많이 샀다. 그중 정수호 부부의 영양제도 들어있었다.물론 수신자는 정윤하의 이름으로 적어놓았다.정윤하는 그의 운명적인 여신이기 때문에 정씨 가문의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했다.그리고 먼 곳에서 왔는데 빈손으로 올 수는 없었다.정윤하가 대답했다.“그건 잘 모르겠어요. 오후에 공항으로 왔기 때문에 택배가 있으면 아마 집에 배송될 거에요. 우리 엄마가 종일 집에 있으니까 택배를 받으실 거예요. 지훈 씨, 무슨 물건을 보냈어요? 너무 돈을 낭비하지 마세요.”“관성의 특산품들이에요. 지난번에 너무 급하게 가서 준비한 특산품이 많지 않았어요. 이번에 제가 좀 더 사서 이틀 전에 택배로 보냈거든요. 그럼 오늘 제가 도착하면 택배도 도착할 수 있잖아요.”“저의 부모님은 윤하 씨가 제 목숨을 구해줬다는 것을 알고도 제대로 보답하지 못했다고 저를 호되게 꾸지람하셨어요. 감사할 줄 모른다면서요. 은혜는 항상 몇 배로 갚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어요. 제가 감사할 줄 모르는 나쁜 사람이 아니거든요.”정윤하도 웃으며 말을 건넸다.“지훈 씨는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이미 저에게 보답했는걸요. 지난번에 제가 학생들을 데리고 시합에 갔을 때 제가 돈 한 푼도 낼 필요 없이 우리에게 맛있는 것도 사주시고 나가서 재미있는 것도 놀게 해줬잖아요. 그리고 특별히 저를 전 대표님 결혼식에 데려간 것도 모두 저에 대한 보답이세요.”“그래도 부족하죠. 보답은 많이 해야 해요.”몸으로 보답을 허락해 주면 더 좋지만 말이다.“지훈 씨 부모님들 너무 놓은 분들이시네요.”정윤하는 소균성 부부를 만났는데 너무 열정적이고 자상한 느낌을 받아 그들에 대한 첫인상이 매우 좋았다.소균성 부부의 소질은 매우 좋고 말씨도 매우 부드러웠다. 최민주가 자신의 손을 잡고 빙그레 웃는 모습을 본 정윤하는 최민주가 그녀를
정윤하가 말을 이었다.“아저씨 싸움 실력이 너무 좋기 때문에 경호원이 필요 없다고 봐요. 그날 밤은 제가 너무 빨리 움직였어요. 제가 그날 밤 아저씨를 구하지 않았더라도 아저씨 실력으로도 충분히 그 나쁜 사람들은 해결하셨을 거예요. 제가 너무 빨리 참견해서 오히려 아저씨 실력이 드러날 기회가 없어진 거죠. 저도 아저씨의 실력을 볼 기회가 줄어든 거죠.”그러자 소지훈은 재빨리 말했다.“제가 무술 할 줄 아는 건 맞지만 윤하 씨가 생각하는 것만큼 대단하지 않아요. 그날 밤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저 혼자서는 분명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을 거에요. 제가 윤하 씨만큼 대단하지 않아요.”“우리 집에도 경호원이 있지만 저는 거의 데리고 다니지 않아요. 가끔 경호원 두 명을 데리고 외출하는 편이죠. 하지만 제가 고용한 경호원들은 몸집이 커서 다른 사람의 기세를 꺾을 수 있는 정도뿐이지 실력은 그다지 좋지 않아요. 단지 몇몇 건달들을 상대할 수 있을 실력이에요.”“만약 전업적인 사람들을 만난다면 전혀 상대되지 않을걸요. 게다가 지난번과 같은 상황을 만나게 된다면 정말 아무런 쓸모도 없을 거란 말이에요. 그런 상황에서는 윤하 씨와 같은 진정한 고수가 필요해요.”소지훈은 자기 경호원들이 쓸모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정말 애를 쓰고 있었다.어차피 소지훈의 부하들이 곁에 없기 때문에 그가 뭐라고 해도 부하들이 변명할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그들이 모두 소지훈의 눈앞에 있다고 해도 감히 변명할 수 없을 것이다.소지훈은 운명적인 여신에게 구애하기 위해 그의 경호원들을 정윤하에게 매를 맞고 경찰서까지 끌려가게 했다.그들은 지금은 회복해서 퇴원했지만, 앞으로는 정윤하가 알아볼까 봐 그녀를 피해 다녀야 했다.정윤하가 말했다.“관성의 안전 상황은 이미 매우 좋다고 봐요. 지난번처럼 사고는 조사해 보셨어요? 누군가 일부러 아저씨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노린 것 같아요. 이런 일은 매일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평소에 경호원이 필요 없는데 경호원을 많이 고용할 필요가
소지훈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어르신들이 다 그런 것 같아요. 저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잔소리도 많아요. 아버지들도 다 똑같으니 저의 어머니는 더 말할 것도 없어요. 저는 지금도 저의 아버지를 보면 저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으실까 봐 쥐가 고양이를 만난 듯 숨어다녀요.”두 사람이 차에 올라탔다.소지훈은 차를 운전하려고 했는데 정윤하가 직접 운전석에 앉는 모습을 보더니 그녀에게 물었다.“윤하 씨가 운전하려고요?”“네, 제가 운전할게요. 아저씨가 길도 익숙하지 않을 텐데. 제 차가 평범한 차라서 아저씨가 차를 몰 때 습관이 안 될 거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 차 기술도 좋아서 괜찮을 거예요.”소지훈은 차를 에돌아 조수석에 타고 안전벨트를 매면서 말했다.“저는 어떠한 차도 다 몰아봤어요. 예전에 돈을 벌지 못했을 때 자전거와 지하철 그리고 버스도 다 타봤어요. 지금 비싼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은 저의 체면 때문에 몰고 다니는 것뿐이죠.”소지훈은 저번에 정윤하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차가 아직도 차 대출을 갚지 못했다고 말했을 것이다.그는 진짜 신분을 말했기 때문에 더는 정윤하를 속이기 어려웠다.정윤하는 이해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아저씨는 지금 회사의 대표님이니 외출할 때는 반드시 좋은 차를 운전해야 해요. 우리 아버지와 오빠도 외출할 때 좋은 차를 운전하시거든요. 그러나 평소에는 2000만 원대 되는 차를 몰고 다니세요. 제가 지금 운전하고 있는 이 차는 2400만 원밖에 안 돼요. 물론 제 지갑이 넉넉하지 않아 더 비싼 차를 구매할 수 없지만요.”정윤하의 적금은 그리 많지 않았다.정합 도장에서 몇 년 동안 일하여 번 돈으로 차를 샀기에 얼마 남지 않았다.지난번에 학생들을 데리고 관성에 가서 무술 대회에 참가했을 때 정윤하는 사비를 털어 관성 호텔에 주숙했고 아이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작은 선물도 많이 샀다.하여 얼마 되지 않은 적금도 거의 다 써버렸다.정윤하는 지금 다시 저축하여 몇 년 후에 집을 한 채 사서 대출하
정윤하가 웃으며 캐리어를 들어주려고 하자 소지훈은 그녀가 도와주지 못하게 막으며 말했다.“내 캐리어에는 옷 몇 벌만 들어있어서 무겁지 않아요. 도와줄 필요 없어요. 게다가 저도 다 큰 성인 남자인데 어떻게 윤하 씨를 제 캐리어를 들게 할 수 있겠어요?”“멀리서 오셨으니 손님이시잖아요. 소시지 두 개도 남겼는데 아저씨께서 매운 거 싫어하시니 제가 안 매운 거 남겨놨어요. 제 소시지는 매운 고춧가루를 넣었는데 엄청 매워요.”소지훈은 그녀가 건네준 소시지 두 개가 들어있는 작은 봉지를 건네받아 하나를 꺼내 한입 물었다.정윤하는 그녀가 산 다른 간식들을 모두 소지훈에게 건네주었다. 소지훈이 그 봉지를 받을 때 정윤하는 한 손으로 캐리어를 당기고 다른 한 손으로 아직 다 먹지 않은 소시지를 먹으면서 걸어갔다.소지훈은 그녀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소지훈이 필요 없다고 하는데도 정윤하는 그를 대신해 캐리어를 끌어주었다.소지훈은 정윤하가 자신의 캐리어를 끌도록 놔두었다.정윤하는 캐리어를 끌고 앞장서서 걸었고 소지훈은 그녀의 뒤를 따랐다.두 사람은 그렇게 소시지를 먹으면서 걸어갔다.정윤하가 가지고 있던 소시지를 다 먹자 소지훈이 또 다른 간식을 건네주었다.주차장으로 도착한 두 사람은 이미 그 간식들을 다 먹었다.정윤하는 입에 기름기를 가득 머금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소지훈을 도와 캐리어를 차 트렁크에 넣으며 말했다.“정말 잘 먹었어요. 평소에는 우리 엄마가 밖에서 파는 간식 같은 것들을 먹지 못하게 하거든요. 위생적이지 못하다면서요. 아주 가끔 먹어도 자꾸 잔소리하세요. 하지만 저는 그런 간식들이 정말 맛있거든요.”“가끔 한두 번은 괜찮아요. 자주 먹지 않으면 되는데. 정말로 좋아하면 식자재를 사서 직접 만들어서 드세요. 그러면 최소한 위생과 안전은 보장할 수 있잖아요.”정윤하가 말을 이었다.“제 요리 솜씨로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우리 엄마께서 그런 간식들을 맛있게 잘하세요. 그런데 간식들을 해주기
정윤하는 흔쾌히 대답했다.“좋아요. 우리 엄마한테 저녁에 밥 좀 더 하시라고 부탁할게요. 아저씨가 우리 엄마가 하신 요리를 좋아하신다는 소식을 들으면 우리 엄마가 매우 기뻐하실 거예요.”소지훈이 웃으며 말했다.“아주머니가 만든 요리들이 정말 맛있어요.”“오늘 저녁에 많이 드세요. 아저씨, 저 먼저 운동 좀 하고 이따가 공항으로 마중하러 갈게요. 저녁에 봐요.”“그래요. 저도 이제 비행 모드로 전환해야 해요. 저녁에 봐요.”소지훈은 작별 인사를 하면서도 통화를 끊는 것을 매우 아쉬워했다. 그는 정윤하 쪽에서 전화를 끊은 후에야 휴대전화를 귓가에서 뗐다.소지훈의 휴대전화 배경 화면 사진은 정윤하의 사진 이였다. 정윤하가 전태윤 부부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 소지훈은 정윤하의 사진을 몇 장 찍어 그녀에게 보내주면서 자신의 휴대전화에도 보관해 두었다. 그리고 정윤하의 사진을 그의 휴대전화 배경 화면 사진으로 설정했다.휴대전화를 켜면 정윤하를 바로 볼 수 있었다.정윤하의 안색은 환했고 미소가 밝고 청춘의 활력이 넘쳐 소지훈은 그녀를 보면 볼수록 더 좋아졌다.비행기가 관성을 떠나 연성 공항에 착륙하기까지 이미 몇 시간이나 흘렀다.비행기가 안전하게 착륙하자 소지훈은 이내 휴대전화의 비행모드를 정상상태로 돌려놓았다.그러자 그의 휴대전화에는 끊임없이 메시지가 들어오고 있었다. 정윤하가 소지훈에게 자신이 공항 출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메시지를 보냈던 것이다.소지훈은 정윤하에게 전화를 걸었다.정윤하가 바로 받았다.“아저씨, 도착했죠? 저도 방금 도착해서 공항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제가 큰 종이에 글씨로 이름을 적어놓았어요. 아저씨가 나오시면 아저씨 성함이 한눈에 보이실 거예요.”소지훈이 웃으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지금 비행기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어요. 캐리어를 가지러 갔다가 금방 나갈게요.”“괜찮아요. 기다릴게요. 뭐라도 좀 드셨어요? 집에 가는 길에 드실 간식 좀 사드릴게요. 집으로 가는 길에 좀 드세요. 공항은 우리 집에서 좀 멀거
전태윤은 피식 웃었다.“우리 소 대표님도 이렇게 친근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네요.”“제가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요. 뭘.”전태윤은 크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네네, 소 대표님은 높은 분이 아니십니다. 제 신분으로도 소 대표님을 만나고 싶어도 줄을 서야 하는데. 저와 정남이가 절친이 아니었다면 아마 돈을 많이 내놓는다고 해도 소 대표님을 만나지 못할걸요.”소지훈이 말했다.“제가 너무 바빠서 그래요. 전 대표님도 아시다시피 우리와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바쁘잖아요.”“제가 간단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그래요. 그럼 일단 연성에 가셔서 윤하 씨를 만나세요. 제가 먼저 정남에게 연락할게요.”소지훈이 대답했다.“무슨 일이 있으시면 정남이한테 말씀하세요. 두 분이 친구라서 말하기 더 편할 거에요. 그리고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한 저한테 연락하지 마세요.”처음 사랑을 맛본 소지훈은 한창 뜨거운 열정으로 정윤하를 따르고 있었다.게다가 소지훈 부모님도 매일 그에게 결혼 재촉을 했다. 정윤하가 다른 남자들이 가로채 갈까 봐 늘 소지훈더러 연성으로 가서 정윤하에게 구애하라고 재촉하셨다.정윤하는 소지훈의 운명적인 여신이었다. 그가 정상적인 남자가 될 수 있을지는 모두 정윤하에게 달려 있었기에 정윤하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었다.소지훈의 부모는 너무 급한 나머지 소지훈이 정윤하에게 고백하지 않았다고 투덜거리며 아들 대신 정윤하에게 구애하고 싶었다.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던 소지훈은 정윤하를 만난 뒤로 급하게 고백하면 그녀가 놀라게 할까 봐 두려웠다. 그러나 두 사람이 알게 된 시간이 아직 짧기에 좀 더 익숙해진 뒤로 고백하려고 했다.정이 깊어지면 모든 일이 쉽게 풀리기 마련이다.소지훈은 이번에 연성에 가서 기회를 보면서 정윤하에게 고백하려 했고 또 정씨 가족들 앞에서 잘 보이고 싶었다.소지훈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자신이 정윤하보다 10살 많은 나이가 많다는 점이다. 만약 세는 나이로 계산하면 11살이나 더 많았다.“알겠어요. 알겠어요. 하
전태윤이 말했다.“모든 이 대표님은 실력이 훌륭하고 충실한 특별 비서를 두었기 때문에 분명히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거야. 만약 그 특별 비서가 살아있다면 찾아서 현임 이 대표님의 죄를 밝힐 수 있을 텐데. 만약 그 틀별 비서도 죽었다면 이 일은 정말 조사하기 어려울 거야. 40~50년이나 지났으니까. 이따가 소 대표님께 전화해서 전임 이 대표님의 비서가 누구인지, 그 사람이 아직 살아있는지, 살아있다면 어디에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해볼게.”소씨 가문도 증거를 수집하기 어려울 것이다.전호영이 말을 이었다.“그건 내가 알아볼 수 있어. 내가 고진호 씨를 조사해 보는 게 더 편리할 거야.”사실 이씨 가문의 어르신들을 찾아가서 물어보면 금방 알 수 있었겠지만, 그들을 찾아가면 이은화가 눈치채기 쉬웠다.어쩌면 전임 이 대표의 비서가 죽지 않았을 수도 있었고, 현재 이은화도 그 비서를 찾고 있을 수도 있었다.“그래. 그럼 소식이 있으면 나한테 알려줘.”“알았어. 둘째 형이 혼인 신고를 했다니, 부러워 죽겠어. 나와 이진 형이 동시에 할머니께서 주신 사진을 받았는데 이진이 형은 혼인 신고까지 했는데 난 아직도 고현 씨 뒤를 쫓아다니고 있다니. 휴.”진지한 이야기를 마친 전호영은 전태윤과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어쨌든 전호영과 전태윤 모두 할일도 없이 한가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수다를 떨었다.전태윤이 말을 이었다.“누가 반년 동안이나 아무 짓도 하지 말라고 했어? 그러니까 이진이 보다 늦지. 내가 보기엔 고현 씨도 너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던데, 너도 얼른 더 노력해서 내년에 결혼해야지. 이런 일은 나한테 말하지 말고 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해. 난 좀 쉬어야겠어.”전태윤은 전호영의 하소연이 듣기 싫었는지 이내 통화를 끊었다.애초에 전호영은 고현이 남자같이 생겼다고 무척 싫어했기 때문에 일부러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강성으로 가서 고현의 여자 신분을 폭로하려고 했다.전태윤이 전화를 끊어도 전호영은 화를 내지 않고 혼자 중얼거렸다.“자기만 행
“형, 통화하기 편해?”전호영은 고현을 호텔 밖으로 배웅하고 그의 사무실로 돌아온 뒤로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얼른 말해. 무슨 일인지.”전호영이 웃으며 대답했다.“내가 형한테 보낸 사진과 동영상은 이 대표님 남편이 바람을 피운 증거들이야.”전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호영이 계속해서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이 대표님의 남편 정군호 씨인데 젊었을 때는 멋있었는데 재주가 없어서 이 대표님 남편으로 되었거든. 이씨 가문에서는 사장님이라고 불리웠지만 사실 존중 받지 못하고 아내에게 의지해 살아야 했어. 이 대표님도 남편을 엄격하게 관리했기에 매달 생활비를 주지 않고 매일 용돈 10만 정도만 주었어.”“이전에 바람을 피우려다가 이은화에게 혼이 난 뒤로 감히 바람을 피우고 싶어도 피우지 못했어. 이번에 이 대표님이 관성에 가서 형 결혼식에 참석한 뒤로 관성에 보름이나 머물게 되었는데 정군호 씨가 그 틈을 타 바람을 피울 기회를 얻었던 거야. 이 대표님이 아신다면 분명 한바탕 소란을 피울 거야.”“요즘 이씨 가문도 난장판이야. 이씨 가문의 아들들이 밖에서 내연녀를 두었는데 윤미 씨가 그 사실들을 폭로하는 바람에 지금 아들과 며느리들이 한창 떠들썩하게 지내고 있거든. 만약 이 대표님과 정군호 씨 일까지 폭로된다면 더욱 혼란스러워질 거야. 형, 형수님께 말씀드려봐. 무슨 계획 있으신지. 지금 이 틈을 타서 폭로할 수도 있으니까.”전태윤이 나지막이 물었다.“정군호 씨가 이 대표님의 남편이란 말이지?”“그럼, 고현 씨가 알려줬거든. 난 정군호 씨가 누군지도 몰랐어. 고현 씨가 강성의 토박이라 이씨 가문과 접촉할 기회가 많아서 정군호 씨를 알아봤거든. 고현 씨가 연회에 참석할 때 정군호 씨와 이 대표님이 함께 온 것을 봤대. 틀림없을 거야.”“이씨 가문의 그 이윤미 씨도 좀 재미있는 사람 같아. 이윤미 씨도 어느정도 수단은 있지만 그래도 도덕은 있는 편이네. 아쉽게도 이 대표님과 같은 사람을 어머니로 두었지.”이윤미가 이씨
이윤미는 제법 잘 꾸민 정군호가 젊어 보이면서도 멋져 보인다고 생각했다. 이윤미는 정군호가 이은화보다 십여 세 어린 여자를 껴안은 여자 사진을 보더니 혼자 중얼거렸다.“영감님이 젊었을 때는 보기 드문 미남이었겠네. 지금도 나이가 들었지만 잘 차려입으니 너무 잘생겼군.”어쩐지 이은화가 매우 엄격하게 다스리더라니.밖에서 아들이 준 돈으로 여자와 바람을 핀 사실을 이은화가 알아버린다면 이은화는 어떤 느낌일까?같은 시간, 관성.관성 호텔에서 서원 리조트로 돌아온 하예정은 방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하예정은 여전히 너무 졸렸다.전태윤은 그녀와 함께 방으로 돌아갔다.하예정이 방에 들어가 바로 침대에 올라가서 자려는 모습을 본 전태윤은 침대에 다가가 앉더니 웃으면서 말했다.“졸리면 차에서 자도 되는데. 집에 도착하면 내가 안아서 침대에 눕혀줄 텐데.”“겨우 버티며 왔어요. 여보, 나 좀 잘게. 당신도 잘래요? 안 자면 서재에 가서 책 좀 보시겠어요?”전태윤은 그녀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얼른 자. 난 안 졸려.”하예정은 눈을 감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하예정이 몇 분 만에 달콤하게 잠든 것을 보고 전태윤은 몸을 숙여 그녀의 이마에 뽀뽀해 주었다. 그리고 손을 하예정의 평평한 아랫배에 올려놓으며 그녀의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예정아, 수고했어.”전태윤은 그 자리에서 잠시 앉아 있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침에서 나와 작은 서재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책들이 놓여 있었다. 그 책들은 임신에 관한 지식 책이었다. 전태윤은 이미 다 읽었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전태윤은 책 한 권의 내용을 모두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하예정이 임신하기 전에 전태윤은 임신에 관한 지식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나 하예정이 임신한 후에는 비록 많은 사람이 전태윤을 도와 함께 하예정을 돌봤지만, 그는 여전히 직접 아내를 돌보고 싶었다.그리고 서점으로 달려가 임신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사고는 소정남을 찾아가 소정남이 산 책들이 자신이 산 책과 비슷한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