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정은 친언니가 주형인과 만나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다가 이혼하는 모습까지 모조리 지켜봤다. 그들은 하마터면 못 볼 꼴까지 볼 뻔했다. 이에 하예정은 이 세상 아무에게도 기대지 말고 오직 본인 스스로 버텨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사이라 해도 온전히 의지할 순 없었다.오늘은 나와 한 이불을 덮고 자도 언제 딴 사람에게 달려갈지 모를 게 배우자이니까.“지금 내가 속이 좁다는 거야?”전태윤의 중저음의 목소리가 한없이 싸늘하게 들려왔다. 마치 이 한겨울 추위처럼 서늘했다.그는 하예정을 몹시 신경 쓰기에 그녀의 모든 걸 알고 싶었다.그녀가 먼저 알려주지 않고서는 인제 와서 그가 속 좁고 사소한 일에 화낸다고 몰아붙이다니.‘이게 사소한 일이야? 노동명처럼 덜렁대는 성격도 다 아는데 내가 걔한테 전해 들어야겠어? 노동명이 말해주지 않고 나도 더 묻지 않으면 예정이는 아마 평생 말하지 않겠지.’하예정은 그의 관심에 감동하지 않을뿐더러 도리어 말해봤자 그가 집에 없으니 아무 소용 없다고 했다.“내 뜻은 태윤 씨가 너무 쉽게 화낸다고요. 항상 자기중심적이고 다른 사람이 조금만 마음에 내키지 않게 행동하면 바로 화내잖아요.”전태윤은 장점이 아주 많지만 단점도 존재했다.완벽한 사람은 없으니 하예정도 그에게 완벽을 요구하진 않았다. 그녀 또한 결점투성이니까. 다들 흔하디흔한 보통 사람이다.하예정이 그의 단점을 말했으니 그가 고칠 수 있으면 고치고 만약 못 고치겠다면 번마다 마찰을 빚으며 서로 맞춰가야 한다. 결국엔 그녀가 참는 법을 배우거나 아예 이 점을 무시하고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전태윤이 전화를 끊었다.이에 하예정은 어이가 없었다.“내 전화를 끊어? 더 화났다는 거야?”그녀도 분노가 차올라 휴대폰을 침대에 내던지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내가 이렇게까지 명확하게 얘기했는데 아직도 화를 내? 마음대로 하라고 하지 뭐. 내가 굳이 달래줘야 하나?!”그는 결국 하예정이 모든 일을 그에게 말해주길 바라는 걸까?그녀가 혼잣말로 구시
몇 분 후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더니 잠깐 고민하다가 바닥에 내려와 제 물건을 정리하고 방으로 돌아갔다.‘태윤 씨 방에서 안 잘래.’하예정은 홧김에 제 방으로 돌아가서 잤다.그 시각 전태윤도 씩씩거리며 화를 내고 있었다.하예정의 문자를 읽었지만 답장을 보내지 않고 바로 삭제해 버렸다.그의 머릿속엔 단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하예정이 그를 속 좁은 남자라고 말하며 가족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전태윤은 휴대폰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안을 빙글빙글 돌아다녔다. 그는 짜증 난 마음을 달래다가 결국 커피 한 잔 내렸다.커피를 마시며 애써 마음을 가라앉힌 후 겨우 일에 몰입하기 시작했다.전태윤은 밤을 새울 작정이었다.하예정은 처음에 뒤척이며 잠들지 못하다가 한 시간이 지나니 슬슬 화가 가라앉았다.‘처음 있는 일도 아닌데 내가 번마다 태윤 씨 때문에 이렇게 화를 내면 제 명에 못 살아. 전혀 그럴 가치가 없다고.’그녀는 곧바로 마음을 다잡고 잠을 청했다.‘화낼 테면 내라지 뭐! 누가 신경 쓴대! 속 좁긴, 매사에 자기중심적이야. 자기도 사사건건 나한테 얘기하지 못하면서 왜 난 모든 걸 보고해야 하는 건데? 아니, 집에도 없으면서 내가 말한다고 바로 날아와?’그 일은 사실 하예정도 나설 필요가 없었다. 이경혜의 자기소개로 이미 주씨 집안 두 모녀가 지릴 정도로 식겁했고 마지막 결정을 내린 건 언니 하예진이었다.하예진은 우빈이를 생각하며 합의를 보기로 했다.이는 언니의 결정이고 하예정은 언니의 모든 결정을 존중한다.그런데 정작 전태윤은 노동명이 다 아는 사실을 본인이 모른다면서 꼬투리를 잡았다.노동명은 하예진의 회사 대표이고 또 마침 회사 문 앞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으니 당연히 알게 될 터! 하예정이 일부러 노동명에게 알려준 것도 아니다.그녀는 왠지 전태윤이 아무나 다짜고짜 질투하는 느낌이 들었다.그날 밤 하예정은 매우 늦게 잠들었다. 출장 간 전태윤은 커피 두 잔을 마시고 나서야 날이 밝을 때까지 업무에 몰입했다.
“급할 거 없어요, 예정 씨. 아침 천천히 드세요. 언니분한테 방금 전화가 왔는데 우빈이를 가게에 보냈다고 해요. 효진 씨가 가게에 있으니 우린 이따가 바로 가게로 가면 돼요. 언니분 집으로 헛걸음을 할 필요가 없어요.”하예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식탁 앞에 앉았다.숙희 아주머니는 오늘 그녀에게 갖가지 소로 된 만두를 빚어주었고 흰 쌀죽과 깍두기 밑반찬도 있었다.깍두기라...하예정은 휴대폰을 꺼내 작은 접시에 담긴 깍두기를 사진 찍어 속 좁은 태윤 씨에게 보내주었다.물론 태윤 씨는 그녀에게 답장하지 않았다.하예정은 혼잣말로 구시렁댔다.“예정 씨, 만두가 맛없어요?”숙희 아주머니는 구시렁대는 하예정을 보더니 자신이 빚은 만두가 맛없는 줄 알고 조심스럽게 물었다.“예정 씨는 어떤 만두소를 좋아하세요? 말만 하면 내일 바로 빚어드릴게요.”“아주머니, 저 음식 안 가려요. 무슨 소든 다 잘 먹어요. 아주머니도 이리 와서 앉아요. 우리 함께 얘기 나누며 먹어요.”전태윤이 집에 없으니 숙희 아주머니도 훨씬 편해졌다.물론 하예정 앞에서 전태윤도 조금은 자상해지지만 그가 여태껏 쌓아온 카리스마에 아주머니는 함께 식탁에 마주 앉아 음식을 먹는 게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아주머니는 태윤 씨 아홉째 동생을 몇 년 동안 돌보면서 태윤 씨랑도 알고 지낸 지 오래되셨죠? 태윤 씨가 너무 일방적이고 자기중심적이란 생각은 안 드세요? 상대가 저에게 일말의 숨김도 없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말이에요!”숙희 아주머니는 죽을 두어 모금 마시다가 그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주머니는 관심 조로 하예정에게 물었다.“예정 씨,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을 하세요?”하예정은 깍두기를 집으며 말을 이어갔다.“어젯밤에 태윤 씨랑 싸운 것 같아요. 지금은 아마 또 냉전기에 들어선 것 같고요.”숙희 아주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하룻밤 사이에 도련님과 사모님이 또 싸우시다니, 게다가 지금은 냉전 중이고...’“예정 씨, 어쩌다가 태윤 씨랑 싸우게 된 거예요?”요즘
“태윤 씨야말로 날 온전히 한 가족으로 대하지 않는다고요. 본인도 못 하면서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요구한대요? 태윤 씨는 전형적인 내로남불 스타일이에요. 무릇 본인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고 조금만 어긋나면 내가 저를 한 가족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화를 내잖아요! 그땐 나도 홧김에 태윤 씨한테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속 좁은 남자라고 했어요. 그리고 태윤 씨가 바로 전화를 꺼버렸죠. 내가 다시 문자를 보내도 아무 답장이 없어요. 늘 이런 식이에요. 화나면 답장도 안 하고 전화도 안 받고 어린 여자애들처럼 왜 그런대요.”숙희 아주머니는 말을 잇지 못했다.‘사모님의 분석이 아주 정확해요. 도련님은 바로 그런 사람이에요.’전태윤은 어려서부터 후계자로 길러졌고 동생들도 전부 그의 위주로 지내왔다.그가 전씨 그룹을 장악한 뒤로 할머니든, 부모님이든 전부 두 손을 내려놓고 전적으로 이 그룹을 전태윤에게 맡겼다. 전씨 그룹에서 그의 말이 곧 진리이다.동생들도 회사에서 여전히 그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전태윤은 천성이 일방적인 데다가 그런 환경 속에서 지내다 보니 무릇 자기중심적인 성격으로 거듭났다.그는 모든 걸 지배하는 데 적응했고 모두가 그에게 순종하는 것에 익숙해졌다.하예정은 본인 인생을 전태윤에게 지배당하기 싫었고 그에게 순종하며 의지하는 것도 익숙지 않았다.이에 전태윤은 그녀에게 홀시 당했다는 느낌이 들었다.그를 중시하지도 않고 한 가족으로 여기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다만 하예정의 말처럼 전태윤은 그녀에게 완전히 솔직했던가?“아주머니가 저 대신 날짜를 기록해주세요. 태윤 씨가 이번엔 며칠이나 냉전을 벌일지 지켜봐야겠어요. 나도 이젠 문자 안 보낼래요. 그래봤자 아무런 답장이 없잖아요. 누가 알아요? 내 카톡을 아예 삭제했을지. 만약 진짜 삭제했다면 평생 태윤 씨를 재 추가하지 않을래요!”숙희 아주머니가 답했다.“태윤 씨가 조금 일방적이긴 하죠. 하지만 제가 볼 땐 태윤 씨가 예정 씨에게 중시 받지 못하고 늘 남처럼 제외당하는 느낌이 들어서 화나신
하예정은 숙희 아주머니가 계속 청소하는 걸 보더니 별생각 없이 먼저 집을 나섰다.숙희 아주머니는 그녀를 입구까지 바래다주고 엘리베이터를 탄 모습까지 확인한 후에야 방에 돌아와 황급히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태윤은 처음에 전화를 받지 않았다.아주머니가 연속 세 번 걸어도 받지를 않았다.아주머니는 마지못해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도련님, 사모님께서 약 드셨어요.」1분도 채 안 돼 전태윤한테서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예정이가 무슨 약을 먹었는데요?”그의 말투는 평소처럼 차분하고 냉랭했다. 다만 아주머니는 그를 잘 알기에 지금 몹시 긴장하고 있다는 걸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사모님께서 어젯밤에 제대로 못 자서 머리 아프고 눈이 시려서 진통제를 드셨어요.”전태윤은 아무 말이 없었다.‘놀랐잖아! 아주머니도 참, 똑바로 얘기하실 것이지. 난 또 예정이가 약 먹고 자살하려는 줄 알았잖아. 내가 괜한 생각을 했네.’하예정은 누구보다 밝은 성격이라 자살은 생각지도 않을 것이다.그런 그녀가 전태윤을 위해 자살을 한다? 전태윤은 어이없다는 듯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난 예정이한테 심효진보다 못한 존재야.’“도련님, 사모님께서 아침 드실 때 저한테 다 얘기하셨어요.”숙희 아주머니가 한숨을 내쉬었다.“도련님, 제가 볼 때 도련님이 꼭 짚고 넘어가셔야 할 것 같아요. 도련님께서 왜 사모님을 좋아하시는지, 사모님의 어떤 점이 좋은지 말이에요. 도련님 요구대로 사모님을 바꾸려고 하지 마세요. 진짜 그렇게 변하면 도련님은 사모님을 계속 좋아하실까요?”“예정이는 나한테 아무 얘기도 안 해요. 노동명이 다 아는 걸 내가 모르는 게 말이 돼요?”“그럼 도련님은 사사건건 사모님께 얘기하셨나요? 잊지 마세요. 도련님은 아직도 사모님께 본인 정체를 숨기고 있어요. 정작 도련님이야말로 사모님께 너무 많은 걸 숨기고 있다고요.”전태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아주머니는 대체 누구 편이에요?”“저야 당연히 도련님 편이죠. 이게 다 도련님 잘 되라고, 도련님을 위해
하예정이 가게에 왔을 때 마침 소정남이 가게 안에서 걸어 나왔다.그는 걸어가면서 고개 돌려 손 인사를 했는데 상대는 안 봐도 심효진일 게 뻔했다.소정남은 하예정을 보더니 깍듯이 인사했다.하예정도 그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소정남과 너무 친하지도 않고 그의 진짜 신분을 알게 되니 사뭇 어색해졌다.소정남도 그녀와 딱히 화젯거리가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친구의 아내였기에 친구가 없는 장소에서 너무 가까이 지낼 필요도 없었다.“예정 씨, 저는 이만 회사로 돌아갈게요.”“네, 조심히 돌아가세요.”소정남이 웃으며 차에 올라타고는 곧장 자리를 떠났다.하예정은 그제야 가게에 들어갔다.안에 들어서자마자 카운터에 놓인 커다란 장미꽃다발이 보였는데 대충 봐도 99송이는 될 듯싶었다. 장미꽃 외에도 심효진이 평소 즐겨 먹는 간식거리가 한가득 놓여있었다.소정남은 꽃과 간식거리 외에도 심효진이 평소 애용하는 스킨케어 제품을 몇 세트 선물했다.심효진은 주우빈을 안고 카운터 안에 앉아있었다. 그녀는 한창 과자 봉지를 뜯어 우빈이와 나눠 먹다가 하예정을 보더니 활짝 웃었다.“정남 씨가 간식거리를 한가득 보내왔어. 우리 가게 지키면서 실컷 먹자. 이것들을 다 먹으려면 지루할 틈도 없겠네.”“이모.”주우빈이 하예정을 부르더니 또다시 심효진의 손에 쥔 과자 봉지에 눈길을 돌렸다.심효진은 포장을 뜯고 안에서 과자 한 점 꺼내 우빈에게 먹여줬다. 주우빈은 오물오물 씹으면서 작은 손을 봉지 안에 쏙 넣었다.“우빈이 너무 많이 먹지 마. 그러다 밥맛 없을라.”심효진은 우빈에게 좀 더 나눠준 후 봉지를 닫았다. 아이에게 간식을 너무 많이 먹이면 제때 밥을 먹지 않으려 하니까.하예정은 간식거리와 스킨케어 세트들을 바라보며 친구에게 장난치듯 말했다.“정남 씨가 네가 뭘 좋아하는지 제대로 파악했네. 전부 네가 잘 먹는 간식이고 평소 애용하는 브랜드 제품이잖아.”전태윤은 하예정에게 간식도 사준 적 없고 화장품도 선물한 적이 없다.하예정이 성소현에게 받은 마스크팩을 붙이면
결국 그녀는 체면도 무릅쓰고 성소현에게 소정남에 관한 얘기를 캐물었는데 소정남이 누군가를 다스리려면 상대는 죽지 못해 사는 꼴이 된다고 했다.그는 상대가 모든 걸 조금씩 잃어가고 그 속에서 차츰차츰 절망감을 느끼며 가슴을 후벼 파듯이 무척 괴롭힌다고 한다.하여 심효진은 만에 하나 소정남을 거절했다가 그의 심기를 건드려 괜한 전태윤만 괴롭힘을 당할까 봐 걱정했다.“일단 시도는 해볼게. 걱정 마. 나 자신을 무리하게 굴지는 않을 테니까.”심효진은 전태윤을 걱정하는 건 제쳐두고 절대 그녀 자신을 무리하게 몰아붙이진 않을 것이다.“예정아, 어젯밤에 소현 씨 집에 안 갔어? 예진 언니가 우빈이 데려왔을 때 모습 보고 나 깜짝 놀랐잖아.”그 일만 생각하면 하예정은 화가 울컥 치밀어 주씨 집안 사람들을 또 한 번 맹비난했다.김은희와 주서인이 언니네 회사에 찾아가지만 않았어도 하예정은 지금 전태윤과 싸울 일이 없었을 텐데!다만 전태윤의 성격대로라면 둘은 조만간 싸울 게 뻔하다. 얼마나 더 싸워야 서로 날 선 감정이 둥글둥글해질 수 있을까?“효진아, 저녁에 퇴근하고 우리 함께 바에 가서 술 한잔해.”심효진이 웃으며 대답했다.“남편이 출장 가고 없으니 너 제법 대범해졌다.”“집에 있어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우린 서로 신경 안 써.”말투가 이상한 걸 보아 부부싸움을 한 듯싶었다. 심효진은 입꼬리를 씩 올리며 하예정의 눈치를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예정아, 태윤 씨랑 또 싸웠지?”심효진이 몸져누웠던 그날도 두 사람은 크게 한바탕 싸울 뻔했다.이유는 전태윤이 마침 김진우가 하예정에게 꽃을 선물하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이 일로 심효진은 또 친히 김진우를 찾아가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여전히 마음을 접지 못하는 김진우를 보며 심효진도 내심 불안했다. 그렇게 열심히 설득했건만 동생은 전혀 새겨듣지 않았다.김진우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갇혀있다. 앞으로 나아가려 해도 더는 길이 없고 뒤로 물러서는 건 그가 원치 않았다. 하여 이렇게 버티고 있을 뿐
그녀는 몸을 홱 돌려 다시 사무실에 돌아갔다. 그 동료는 아직도 신이 나서 사람들과 수다를 떨었다.하예진은 곧게 그 동료에게 다가갔다.상대는 그제야 하예진이 다시 돌아온 걸 알아챘다.누구 험담을 하다가 당사자에게 바로 현장을 잡히는 건 실로 난감한 일이었다. 그 여자 동료는 어쩔 바를 몰랐다.“혹시 노 대표님을 짝사랑하세요?”하예진의 한마디에 그 여자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아니거든요.”상대가 부인했다.“그런데 왜 나랑 대표님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소문을 퍼뜨리는 건데요? 재미있어요 이 상황이? 나 방금 그쪽 말투에서 엄청 질투하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쪽 대표님 짝사랑하는 게 틀림없어요. 그래서 항상 날 겨냥하는 거고요. 다들 믿거나 말거나 난 대표님께 아무 감정도 없어요. 맞아요, 나 이혼했어요. 쓰레기 같은 남자가 바람을 피웠는데 그럼 이혼을 안 하고 남겨뒀다가 함께 구정이라도 보내야 하나요? 내가 이혼했다는 이유만으로 대표님을 꼬시려는 것처럼 함부로 말해도 돼요? 다들 해도 해도 너무 하네요 진짜! 노 대표님은 정정당당한 분이세요. 나랑 대표님은 일말의 감정도 없어요. 만약 있었다고 해도 대표님이 굳이 당신들에게 숨길 가치가 있을까요?”하예진이 싸늘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쳐다보며 냉랭하게 말했다.“한 번만 더 함부로 입을 놀리고 루머를 퍼뜨렸다가 비방죄로 확 고소해버릴 줄 알아요!”말을 마친 그녀는 곧게 사무실을 나섰다.여자 동료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다른 사람들은 전부 차갑게 자리를 떠난 하예진을 쳐다봤다. 다들 그녀가 좀 전에 했던 말을 똑똑히 들었다.왠지 모두에게 경고장을 날리는 듯한 기세였다.회사에서 하예진에 관한 루머가 너무 많아 진짜 비방죄로 그들을 전부 고소한다면...“얼굴 왜 그래?”하예진이 얼굴을 긁힌 상처가 아직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이를 본 노동명이 관심 조로 그녀에게 물었다.“며칠 뒤면 나을 거예요. 관심해줘서 고마워요 대표님.”하예진은 그의 책상과 2미터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