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윤아, 그게... 예정 씨가 너 걱정할까 봐 안 말했겠지.”노동명은 자신이 실수한 것 같아 얼른 해명했다.다만 전태윤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망했어... 나 때문에 괜히 두 사람 부부싸움 하면 어떡해? 내가 어떻게 달래야 하지?”노동명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전태윤은 누군가를 마음에 새겨두기 시작하면 상대도 그를 1순위로 두길 바란다. 한마디로 그는 지나치게 일방적인 남자였다.그의 이런 일방적인 태도에 상대는 가끔 본인이 무척 관심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또 가끔은 질식할 것처럼 숨이 턱턱 막힌다.가장 치명적인 것은 전태윤은 이를 본인의 잘못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는 단지 하예정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를 위해 무엇이든 도와주고 싶었다. 다만 하예정은 지나치게 독립적이다 보니 무슨 일이든 그에게 털어놓으며 도움을 바라지 않는다. 이에 전태윤은 그녀가 아직도 그를 향한 믿음이 부족하고 제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거라고 착각하고 있다.노동명이 다시 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 중이라고 안내음이 들려왔다.“설마 이 깊은 밤에 예정 씨한테 전화해서 따져 묻는 건 아니겠지?”노동명은 머리가 복잡해졌다.그도 단지 말을 몇 마디 더 했을 뿐인데 어쩌다 사고를 치게 된 걸까?소정남은 평소에 그렇게 오지랖이 넓어도 사고 치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아니나 다를까 전태윤은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었다.부부가 좀 전에 방금 통화하여 그녀가 이렇게 빨리 잠들지 않을 거라고 믿으며 참지 못하고 결국 전화를 내걸었다.하예정은 아직 잠들지 않아 휴대폰 벨 소리를 듣더니 이불 속에서 손을 쏙 내밀었다. 그녀는 냉큼 휴대폰을 잡고 다시 이불 안에 들어갔다.추워서 히터를 조금 켰더니 방안이 너무 건조해졌다. 그녀는 건조함이 너무 싫어 바로 히터를 껐다. 전태윤의 방엔 핫팩이 없고 천연 핫팩 전태윤은 출장 중이니 그녀는 마지못해 이불 속에 움츠리고 누워 몸을 녹였다.그 와중에 전태윤한테서 또 전화가 오니 하예정은 곧바로 물었다.“왜요? 나 지금 자려던 참인데.”
하예정은 친언니가 주형인과 만나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다가 이혼하는 모습까지 모조리 지켜봤다. 그들은 하마터면 못 볼 꼴까지 볼 뻔했다. 이에 하예정은 이 세상 아무에게도 기대지 말고 오직 본인 스스로 버텨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사이라 해도 온전히 의지할 순 없었다.오늘은 나와 한 이불을 덮고 자도 언제 딴 사람에게 달려갈지 모를 게 배우자이니까.“지금 내가 속이 좁다는 거야?”전태윤의 중저음의 목소리가 한없이 싸늘하게 들려왔다. 마치 이 한겨울 추위처럼 서늘했다.그는 하예정을 몹시 신경 쓰기에 그녀의 모든 걸 알고 싶었다.그녀가 먼저 알려주지 않고서는 인제 와서 그가 속 좁고 사소한 일에 화낸다고 몰아붙이다니.‘이게 사소한 일이야? 노동명처럼 덜렁대는 성격도 다 아는데 내가 걔한테 전해 들어야겠어? 노동명이 말해주지 않고 나도 더 묻지 않으면 예정이는 아마 평생 말하지 않겠지.’하예정은 그의 관심에 감동하지 않을뿐더러 도리어 말해봤자 그가 집에 없으니 아무 소용 없다고 했다.“내 뜻은 태윤 씨가 너무 쉽게 화낸다고요. 항상 자기중심적이고 다른 사람이 조금만 마음에 내키지 않게 행동하면 바로 화내잖아요.”전태윤은 장점이 아주 많지만 단점도 존재했다.완벽한 사람은 없으니 하예정도 그에게 완벽을 요구하진 않았다. 그녀 또한 결점투성이니까. 다들 흔하디흔한 보통 사람이다.하예정이 그의 단점을 말했으니 그가 고칠 수 있으면 고치고 만약 못 고치겠다면 번마다 마찰을 빚으며 서로 맞춰가야 한다. 결국엔 그녀가 참는 법을 배우거나 아예 이 점을 무시하고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전태윤이 전화를 끊었다.이에 하예정은 어이가 없었다.“내 전화를 끊어? 더 화났다는 거야?”그녀도 분노가 차올라 휴대폰을 침대에 내던지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내가 이렇게까지 명확하게 얘기했는데 아직도 화를 내? 마음대로 하라고 하지 뭐. 내가 굳이 달래줘야 하나?!”그는 결국 하예정이 모든 일을 그에게 말해주길 바라는 걸까?그녀가 혼잣말로 구시
몇 분 후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더니 잠깐 고민하다가 바닥에 내려와 제 물건을 정리하고 방으로 돌아갔다.‘태윤 씨 방에서 안 잘래.’하예정은 홧김에 제 방으로 돌아가서 잤다.그 시각 전태윤도 씩씩거리며 화를 내고 있었다.하예정의 문자를 읽었지만 답장을 보내지 않고 바로 삭제해 버렸다.그의 머릿속엔 단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하예정이 그를 속 좁은 남자라고 말하며 가족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전태윤은 휴대폰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안을 빙글빙글 돌아다녔다. 그는 짜증 난 마음을 달래다가 결국 커피 한 잔 내렸다.커피를 마시며 애써 마음을 가라앉힌 후 겨우 일에 몰입하기 시작했다.전태윤은 밤을 새울 작정이었다.하예정은 처음에 뒤척이며 잠들지 못하다가 한 시간이 지나니 슬슬 화가 가라앉았다.‘처음 있는 일도 아닌데 내가 번마다 태윤 씨 때문에 이렇게 화를 내면 제 명에 못 살아. 전혀 그럴 가치가 없다고.’그녀는 곧바로 마음을 다잡고 잠을 청했다.‘화낼 테면 내라지 뭐! 누가 신경 쓴대! 속 좁긴, 매사에 자기중심적이야. 자기도 사사건건 나한테 얘기하지 못하면서 왜 난 모든 걸 보고해야 하는 건데? 아니, 집에도 없으면서 내가 말한다고 바로 날아와?’그 일은 사실 하예정도 나설 필요가 없었다. 이경혜의 자기소개로 이미 주씨 집안 두 모녀가 지릴 정도로 식겁했고 마지막 결정을 내린 건 언니 하예진이었다.하예진은 우빈이를 생각하며 합의를 보기로 했다.이는 언니의 결정이고 하예정은 언니의 모든 결정을 존중한다.그런데 정작 전태윤은 노동명이 다 아는 사실을 본인이 모른다면서 꼬투리를 잡았다.노동명은 하예진의 회사 대표이고 또 마침 회사 문 앞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으니 당연히 알게 될 터! 하예정이 일부러 노동명에게 알려준 것도 아니다.그녀는 왠지 전태윤이 아무나 다짜고짜 질투하는 느낌이 들었다.그날 밤 하예정은 매우 늦게 잠들었다. 출장 간 전태윤은 커피 두 잔을 마시고 나서야 날이 밝을 때까지 업무에 몰입했다.
“급할 거 없어요, 예정 씨. 아침 천천히 드세요. 언니분한테 방금 전화가 왔는데 우빈이를 가게에 보냈다고 해요. 효진 씨가 가게에 있으니 우린 이따가 바로 가게로 가면 돼요. 언니분 집으로 헛걸음을 할 필요가 없어요.”하예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식탁 앞에 앉았다.숙희 아주머니는 오늘 그녀에게 갖가지 소로 된 만두를 빚어주었고 흰 쌀죽과 깍두기 밑반찬도 있었다.깍두기라...하예정은 휴대폰을 꺼내 작은 접시에 담긴 깍두기를 사진 찍어 속 좁은 태윤 씨에게 보내주었다.물론 태윤 씨는 그녀에게 답장하지 않았다.하예정은 혼잣말로 구시렁댔다.“예정 씨, 만두가 맛없어요?”숙희 아주머니는 구시렁대는 하예정을 보더니 자신이 빚은 만두가 맛없는 줄 알고 조심스럽게 물었다.“예정 씨는 어떤 만두소를 좋아하세요? 말만 하면 내일 바로 빚어드릴게요.”“아주머니, 저 음식 안 가려요. 무슨 소든 다 잘 먹어요. 아주머니도 이리 와서 앉아요. 우리 함께 얘기 나누며 먹어요.”전태윤이 집에 없으니 숙희 아주머니도 훨씬 편해졌다.물론 하예정 앞에서 전태윤도 조금은 자상해지지만 그가 여태껏 쌓아온 카리스마에 아주머니는 함께 식탁에 마주 앉아 음식을 먹는 게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아주머니는 태윤 씨 아홉째 동생을 몇 년 동안 돌보면서 태윤 씨랑도 알고 지낸 지 오래되셨죠? 태윤 씨가 너무 일방적이고 자기중심적이란 생각은 안 드세요? 상대가 저에게 일말의 숨김도 없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말이에요!”숙희 아주머니는 죽을 두어 모금 마시다가 그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주머니는 관심 조로 하예정에게 물었다.“예정 씨,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을 하세요?”하예정은 깍두기를 집으며 말을 이어갔다.“어젯밤에 태윤 씨랑 싸운 것 같아요. 지금은 아마 또 냉전기에 들어선 것 같고요.”숙희 아주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하룻밤 사이에 도련님과 사모님이 또 싸우시다니, 게다가 지금은 냉전 중이고...’“예정 씨, 어쩌다가 태윤 씨랑 싸우게 된 거예요?”요즘
“태윤 씨야말로 날 온전히 한 가족으로 대하지 않는다고요. 본인도 못 하면서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요구한대요? 태윤 씨는 전형적인 내로남불 스타일이에요. 무릇 본인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고 조금만 어긋나면 내가 저를 한 가족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화를 내잖아요! 그땐 나도 홧김에 태윤 씨한테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속 좁은 남자라고 했어요. 그리고 태윤 씨가 바로 전화를 꺼버렸죠. 내가 다시 문자를 보내도 아무 답장이 없어요. 늘 이런 식이에요. 화나면 답장도 안 하고 전화도 안 받고 어린 여자애들처럼 왜 그런대요.”숙희 아주머니는 말을 잇지 못했다.‘사모님의 분석이 아주 정확해요. 도련님은 바로 그런 사람이에요.’전태윤은 어려서부터 후계자로 길러졌고 동생들도 전부 그의 위주로 지내왔다.그가 전씨 그룹을 장악한 뒤로 할머니든, 부모님이든 전부 두 손을 내려놓고 전적으로 이 그룹을 전태윤에게 맡겼다. 전씨 그룹에서 그의 말이 곧 진리이다.동생들도 회사에서 여전히 그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전태윤은 천성이 일방적인 데다가 그런 환경 속에서 지내다 보니 무릇 자기중심적인 성격으로 거듭났다.그는 모든 걸 지배하는 데 적응했고 모두가 그에게 순종하는 것에 익숙해졌다.하예정은 본인 인생을 전태윤에게 지배당하기 싫었고 그에게 순종하며 의지하는 것도 익숙지 않았다.이에 전태윤은 그녀에게 홀시 당했다는 느낌이 들었다.그를 중시하지도 않고 한 가족으로 여기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다만 하예정의 말처럼 전태윤은 그녀에게 완전히 솔직했던가?“아주머니가 저 대신 날짜를 기록해주세요. 태윤 씨가 이번엔 며칠이나 냉전을 벌일지 지켜봐야겠어요. 나도 이젠 문자 안 보낼래요. 그래봤자 아무런 답장이 없잖아요. 누가 알아요? 내 카톡을 아예 삭제했을지. 만약 진짜 삭제했다면 평생 태윤 씨를 재 추가하지 않을래요!”숙희 아주머니가 답했다.“태윤 씨가 조금 일방적이긴 하죠. 하지만 제가 볼 땐 태윤 씨가 예정 씨에게 중시 받지 못하고 늘 남처럼 제외당하는 느낌이 들어서 화나신
하예정은 숙희 아주머니가 계속 청소하는 걸 보더니 별생각 없이 먼저 집을 나섰다.숙희 아주머니는 그녀를 입구까지 바래다주고 엘리베이터를 탄 모습까지 확인한 후에야 방에 돌아와 황급히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태윤은 처음에 전화를 받지 않았다.아주머니가 연속 세 번 걸어도 받지를 않았다.아주머니는 마지못해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도련님, 사모님께서 약 드셨어요.」1분도 채 안 돼 전태윤한테서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예정이가 무슨 약을 먹었는데요?”그의 말투는 평소처럼 차분하고 냉랭했다. 다만 아주머니는 그를 잘 알기에 지금 몹시 긴장하고 있다는 걸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사모님께서 어젯밤에 제대로 못 자서 머리 아프고 눈이 시려서 진통제를 드셨어요.”전태윤은 아무 말이 없었다.‘놀랐잖아! 아주머니도 참, 똑바로 얘기하실 것이지. 난 또 예정이가 약 먹고 자살하려는 줄 알았잖아. 내가 괜한 생각을 했네.’하예정은 누구보다 밝은 성격이라 자살은 생각지도 않을 것이다.그런 그녀가 전태윤을 위해 자살을 한다? 전태윤은 어이없다는 듯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난 예정이한테 심효진보다 못한 존재야.’“도련님, 사모님께서 아침 드실 때 저한테 다 얘기하셨어요.”숙희 아주머니가 한숨을 내쉬었다.“도련님, 제가 볼 때 도련님이 꼭 짚고 넘어가셔야 할 것 같아요. 도련님께서 왜 사모님을 좋아하시는지, 사모님의 어떤 점이 좋은지 말이에요. 도련님 요구대로 사모님을 바꾸려고 하지 마세요. 진짜 그렇게 변하면 도련님은 사모님을 계속 좋아하실까요?”“예정이는 나한테 아무 얘기도 안 해요. 노동명이 다 아는 걸 내가 모르는 게 말이 돼요?”“그럼 도련님은 사사건건 사모님께 얘기하셨나요? 잊지 마세요. 도련님은 아직도 사모님께 본인 정체를 숨기고 있어요. 정작 도련님이야말로 사모님께 너무 많은 걸 숨기고 있다고요.”전태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아주머니는 대체 누구 편이에요?”“저야 당연히 도련님 편이죠. 이게 다 도련님 잘 되라고, 도련님을 위해
하예정이 가게에 왔을 때 마침 소정남이 가게 안에서 걸어 나왔다.그는 걸어가면서 고개 돌려 손 인사를 했는데 상대는 안 봐도 심효진일 게 뻔했다.소정남은 하예정을 보더니 깍듯이 인사했다.하예정도 그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소정남과 너무 친하지도 않고 그의 진짜 신분을 알게 되니 사뭇 어색해졌다.소정남도 그녀와 딱히 화젯거리가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친구의 아내였기에 친구가 없는 장소에서 너무 가까이 지낼 필요도 없었다.“예정 씨, 저는 이만 회사로 돌아갈게요.”“네, 조심히 돌아가세요.”소정남이 웃으며 차에 올라타고는 곧장 자리를 떠났다.하예정은 그제야 가게에 들어갔다.안에 들어서자마자 카운터에 놓인 커다란 장미꽃다발이 보였는데 대충 봐도 99송이는 될 듯싶었다. 장미꽃 외에도 심효진이 평소 즐겨 먹는 간식거리가 한가득 놓여있었다.소정남은 꽃과 간식거리 외에도 심효진이 평소 애용하는 스킨케어 제품을 몇 세트 선물했다.심효진은 주우빈을 안고 카운터 안에 앉아있었다. 그녀는 한창 과자 봉지를 뜯어 우빈이와 나눠 먹다가 하예정을 보더니 활짝 웃었다.“정남 씨가 간식거리를 한가득 보내왔어. 우리 가게 지키면서 실컷 먹자. 이것들을 다 먹으려면 지루할 틈도 없겠네.”“이모.”주우빈이 하예정을 부르더니 또다시 심효진의 손에 쥔 과자 봉지에 눈길을 돌렸다.심효진은 포장을 뜯고 안에서 과자 한 점 꺼내 우빈에게 먹여줬다. 주우빈은 오물오물 씹으면서 작은 손을 봉지 안에 쏙 넣었다.“우빈이 너무 많이 먹지 마. 그러다 밥맛 없을라.”심효진은 우빈에게 좀 더 나눠준 후 봉지를 닫았다. 아이에게 간식을 너무 많이 먹이면 제때 밥을 먹지 않으려 하니까.하예정은 간식거리와 스킨케어 세트들을 바라보며 친구에게 장난치듯 말했다.“정남 씨가 네가 뭘 좋아하는지 제대로 파악했네. 전부 네가 잘 먹는 간식이고 평소 애용하는 브랜드 제품이잖아.”전태윤은 하예정에게 간식도 사준 적 없고 화장품도 선물한 적이 없다.하예정이 성소현에게 받은 마스크팩을 붙이면
결국 그녀는 체면도 무릅쓰고 성소현에게 소정남에 관한 얘기를 캐물었는데 소정남이 누군가를 다스리려면 상대는 죽지 못해 사는 꼴이 된다고 했다.그는 상대가 모든 걸 조금씩 잃어가고 그 속에서 차츰차츰 절망감을 느끼며 가슴을 후벼 파듯이 무척 괴롭힌다고 한다.하여 심효진은 만에 하나 소정남을 거절했다가 그의 심기를 건드려 괜한 전태윤만 괴롭힘을 당할까 봐 걱정했다.“일단 시도는 해볼게. 걱정 마. 나 자신을 무리하게 굴지는 않을 테니까.”심효진은 전태윤을 걱정하는 건 제쳐두고 절대 그녀 자신을 무리하게 몰아붙이진 않을 것이다.“예정아, 어젯밤에 소현 씨 집에 안 갔어? 예진 언니가 우빈이 데려왔을 때 모습 보고 나 깜짝 놀랐잖아.”그 일만 생각하면 하예정은 화가 울컥 치밀어 주씨 집안 사람들을 또 한 번 맹비난했다.김은희와 주서인이 언니네 회사에 찾아가지만 않았어도 하예정은 지금 전태윤과 싸울 일이 없었을 텐데!다만 전태윤의 성격대로라면 둘은 조만간 싸울 게 뻔하다. 얼마나 더 싸워야 서로 날 선 감정이 둥글둥글해질 수 있을까?“효진아, 저녁에 퇴근하고 우리 함께 바에 가서 술 한잔해.”심효진이 웃으며 대답했다.“남편이 출장 가고 없으니 너 제법 대범해졌다.”“집에 있어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우린 서로 신경 안 써.”말투가 이상한 걸 보아 부부싸움을 한 듯싶었다. 심효진은 입꼬리를 씩 올리며 하예정의 눈치를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예정아, 태윤 씨랑 또 싸웠지?”심효진이 몸져누웠던 그날도 두 사람은 크게 한바탕 싸울 뻔했다.이유는 전태윤이 마침 김진우가 하예정에게 꽃을 선물하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이 일로 심효진은 또 친히 김진우를 찾아가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여전히 마음을 접지 못하는 김진우를 보며 심효진도 내심 불안했다. 그렇게 열심히 설득했건만 동생은 전혀 새겨듣지 않았다.김진우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갇혀있다. 앞으로 나아가려 해도 더는 길이 없고 뒤로 물러서는 건 그가 원치 않았다. 하여 이렇게 버티고 있을 뿐
이윤미는 제법 잘 꾸민 정군호가 젊어 보이면서도 멋져 보인다고 생각했다. 이윤미는 정군호가 이은화보다 십여 세 어린 여자를 껴안은 여자 사진을 보더니 혼자 중얼거렸다.“영감님이 젊었을 때는 보기 드문 미남이었겠네. 지금도 나이가 들었지만 잘 차려입으니 너무 잘생겼군.”어쩐지 이은화가 매우 엄격하게 다스리더라니.밖에서 아들이 준 돈으로 여자와 바람을 핀 사실을 이은화가 알아버린다면 이은화는 어떤 느낌일까?같은 시간, 관성.관성 호텔에서 서원 리조트로 돌아온 하예정은 방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하예정은 여전히 너무 졸렸다.전태윤은 그녀와 함께 방으로 돌아갔다.하예정이 방에 들어가 바로 침대에 올라가서 자려는 모습을 본 전태윤은 침대에 다가가 앉더니 웃으면서 말했다.“졸리면 차에서 자도 되는데. 집에 도착하면 내가 안아서 침대에 눕혀줄 텐데.”“겨우 버티며 왔어요. 여보, 나 좀 잘게. 당신도 잘래요? 안 자면 서재에 가서 책 좀 보시겠어요?”전태윤은 그녀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얼른 자. 난 안 졸려.”하예정은 눈을 감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하예정이 몇 분 만에 달콤하게 잠든 것을 보고 전태윤은 몸을 숙여 그녀의 이마에 뽀뽀해 주었다. 그리고 손을 하예정의 평평한 아랫배에 올려놓으며 그녀의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예정아, 수고했어.”전태윤은 그 자리에서 잠시 앉아 있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침에서 나와 작은 서재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책들이 놓여 있었다. 그 책들은 임신에 관한 지식 책이었다. 전태윤은 이미 다 읽었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전태윤은 책 한 권의 내용을 모두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하예정이 임신하기 전에 전태윤은 임신에 관한 지식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나 하예정이 임신한 후에는 비록 많은 사람이 전태윤을 도와 함께 하예정을 돌봤지만, 그는 여전히 직접 아내를 돌보고 싶었다.그리고 서점으로 달려가 임신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사고는 소정남을 찾아가 소정남이 산 책들이 자신이 산 책과 비슷한 것을
이윤정은 전호영을 언급할 때 마다 이를 악물면서 전호영이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고현을 빼앗아 갔다면서 욕설을 퍼부었다.“윤미 씨 아버지께서 바람난 일을 전호영 도련님께 맡겨보는 건 어떠세요? 전호영 도련님은 안팎으로 이씨 가문을 괴롭히거든요.”이씨 가문 사람들에게는 전호영이 적수나 다름없다.이씨 가문과 이경혜 자매의 관계, 그리고 이윤미가 관성 쪽에 대한 태도를 생각하던 방윤림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방윤림은 아마도 이윤미가 관성 쪽의 사람들과 적수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여겼다.이윤미는 이씨 가문의 전임 가주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조사하려고 했다.방윤림은 만약 전임 가주가 이은화의 손에 죽었다는 증거가 나오기만 하면 이윤미가 더는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이씨 가문을 떠나 그녀의 작은 세계로 돌아가리라 추측했다.아니, 그녀가 반드시 원래 생활로 돌아갈 것이라고 확신했다.이윤미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연약한 사람이 아니다.사실, 이씨 가문에 돌아가기 전에 이윤미는 이미 사업에 성공한 젊은 여자였다. 이윤미의 양부모가 늘 그녀의 피를 빨아들이려는 생각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회사의 대표라는 사실을 계속 숨기고 있었다.이윤미는 사람들이 그녀를 연약하고 무능한 사람인 줄로 알게 하여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이윤정일 수도 있으리라 추측하게 했다.그러나 이씨 가문의 철칙은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일이다.이윤정은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니기도 했고 또한 이윤정의 능력도 훌륭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윤정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그녀가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닌 것이 밝혀진 이상 이씨 가문을 이어받을 자격을 잃게 될 것이다.이윤미가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호영 씨도 이 사실을 알아 버린 이상 모른 체 하지 않을 거예요. 호영 씨는 원래 이씨 가문이 잘 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끼어들지 않아도 스스로 그 사실을 터뜨릴 겁니다.”“우리가 아무런 수를 쓰지 않아도 증거가 호영 씨의 손에 있는 이상 가만히 있지
아무튼, 그 여자가 어느 우두머리의 내연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정군호도 몰랐을 것이다. 아니면 그런 사람의 내연녀를 건드리지는 않았을 것이다.영상과 사진을 본 이윤미는 방윤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그냥 놔둬요. 제 카카오톡 기록도 삭제할 거예요. 제가 만약 저장해 두면 우리 어머니께서 돌아와서 저를 의심하게 되면서 제 휴대전화를 볼 수도 있으니까요.]방윤림이 회답했다.[제가 이미 저장했습니다. 윤미 씨는 식사하셨어요?”[먹고 있어요. 배달시켰거든요.]방윤림은 눈살을 찌푸렸다.[자꾸 배달 음식을 시키지 마세요. 회사에 식당도 있는데... 정 시간이 안 되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앞으로 제가 매일 요리를 해서 가져다드리겠습니다.]이윤미는 방윤림이 보낸 메시지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이씨 가문에 돌아온 뒤로 이윤미는 고군분투했다. 아무도 그녀를 관심해 주지 않았다.이은화조차도 진정으로 이윤미와 한마음이 아니었다.이은화는 이윤미 혼자만의 어머니가 아니었고 오빠와 이윤정이 어머니이기도 했다.이윤정은 이은화의 앞에서 자연스럽게 애교를 부릴 수 있었지만, 이윤미는 그런 애교를 부릴 수 없었다.다행히도 방윤림이 이윤미의 곁으로 와주었다.이윤미는 방윤림이 그녀의 곁에 있는 의미를 깨달은 뒤로 그에 대한 믿음이 가족보다 더 깊어졌고 방윤림 또한 그녀를 많이 도와줬다.방윤림이 처음 이윤미의 곁에 왔을 때 이윤미에게 앞으로 누구든 이윤미의 곁은 떠날 수 있겠지만, 방윤림만은 이윤미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방윤림이 이윤미 곁으로 파견된 그 순간부터 그는 죽지 않는 한 이윤미에게 충성하면서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만약 방윤림이 죽는다고 해도 누군가가 재빨리 그를 대신할 것이기 때문에 이윤미의 곁에는 늘 충성을 다 하는 심복이 따라다닐 것이다.방윤림은 모든 것을 할 줄 아는 진정한 능력자였다.물론 요리 실력도 훌륭하기 때문에 그가 한 요리는 매우 맛있었다.이윤미는 타자속도가 너무 늦다고 느껴 음성통화를 걸었다.
고현은 전호영의 옷을 잡아당겼다.전호영은 그녀를 따라 걸으며 말을 했다.“이 대표님도 언제쯤이면 돌아오실지... 정말 이씨 가문의 이 재미있는 연극을 보고 싶네요.”고현은 전호영을 힐끗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설령 이 대표님이 남편이 밖에서 바람피우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더라고 밖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고 정군호 씨를 데리고 가서 문을 닫고 난리 칠 거예요. 호영 씨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을 거예요.”전호영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건넸다.“이윤미 씨가 있잖아요. 이윤미 씨가 이씨 가문 겉면의 평화를 깨뜨렸는데 윤미 씨의 아버지 스캔들을 숨길 수 있겠어요? 저는 믿지 못하겠어요. 윤미 씨도 쉽지 않은 사람이에요. 이씨 가문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기회를 보면서 이씨 가문의 도련님들을 한꺼번에 정리할 생각일 거예요.”“그 문제 덩이 사람들만 없다면 이씨 그룹에서 윤미 씨의 지위는 더 확고해질 수 있잖아요. 역시 이 대표님 친딸답네요. 자신의 가족들을 이토록 모질게 다루다니.”고현은 한참 말을 하지 않았다.그리고는 이윤미를 대신해 몇 마디 했다.“윤미 씨는 이씨 가문 여자들의 독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이 대표님과는 조금 달라요. 제가 장담하건대 윤미 씨는 윤미 씨의 오빠들을 최대한 이씨 그룹에서 쫓아내지 않을 거예요. 그들이 이씨 그룹에서 파벌을 만드는 것을 방지하고 사적으로 이득을 챙기는 것을 방지할 뿐이죠. 이 대표님처럼 가족들을 해치지는 않을 거예요.”전호영은 고현이 이윤미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보더니 더는 이윤미에 관한 나쁜 얘기를 이어가지 않고 화제를 바꾸었다.전호영 일행은 호텔에 들어간 뒤 전호영의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으로 갔다. 그 안에는 뷔페가 있었기 때문에 고현은 그녀가 먹고 싶은 음식들을 다 먹을 수 있었다.전호영은 정군호가 내연녀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몰래 사람을 시켜 정군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게 했다.그리고 정군호가 내연녀를 데리고 룸에 들어가면 그들
그 뒤로 이윤미가 그녀의 오빠들과 내연녀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몇 명의 형수님들이 속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형수님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후로 이윤미의 오빠들과 형수님들이 말다툼하기 시작했다.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현은 이윤미가 잘했다고 생각했다.바람을 피운 사람이 자기 오빠라고 감싸면서 오빠들을 도와 형수님들을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자기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모든 사람이 다 알지만, 본인만 모른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이때 전호영이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정군호 씨가 그렇게 멍청하지 않을걸요. 이 대표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정군호 씨는 틀림없이 나가서 바람피우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이 대표님을 도와야 한다고 봐요. 못 봤으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현장을 목격했잖아요. 이 대표님을 만나면 알려줘야 해요. 어쨌든 우리 형수님의 이모시기 때문에 우리 형수님의 친척이나 다름없죠. 안 그래요?”고현은 전호영을 꾸지람했다.“호영 씨도 정말 나쁘네요. 이씨 가문에서 난리가 났으면 좋겠죠? 그런데 저도 호영 씨를 지지할 거에요. 이러고 보니 저도 좋은 사람은 아닌가 봐요.”“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죠. 정군호 씨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보세요. 정군호 씨가 잘못한 것을 우리가 바로잡아준 거죠. 이 대표님을 위한 것이지 모함하거나 억울하게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저처럼 일편단심인 남자는 정군호 씨의 이런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요. 만약 집안의 아내가 싫으면 이혼할 것이지... 이혼하기는 싫고 또 밖에서 예쁜 여자들이랑 놀고는 싶고... 두 마리 토끼는 다 잡을 수 없는 법이죠. 하늘 아래 어떻게 그런 좋은 일이 있겠어요?”전호영은 정군호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하루 호텔도 카메라가 있었기에 정군호가 내연녀를 껴안고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꼭 찍혔을 것이다.전호영이 정군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아니었다.“이 대표님이 그토록 기가 센데
“저는 배려심이 깊은 신사에요.”고현은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리면서 전호영의 신사다운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하지만 전호영이 고현의 손을 잡고 함께 호텔로 들어가려고 하자 고현은 거절했다.전호영의 안색은 이내 어두워졌다.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시종 전호영과 연인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았다.고현이 말한 것처럼 그녀는 전호영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앞으로나란히 몇 걸음 걷더니 고현이 갑자기 멈추었다.“왜 그러세요?”전호영이 물었다.‘설마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만났나?’전호영은 앞을 보았지만,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보지 못했다.“정군호 씨예요.”고현은 낮은 목소리로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한 뒤 전호영을 잡아당겨 차 뒤로 숨었다. 그녀의 경호원 팀은 고현이 위험한 줄로 알고 본능적으로 최대한 빨리 고현의 앞으로 돌진하며 위험을 막으려고 했다.“얼른 숨으세요. 저를 막지 마시고!”고현은 나지막이 경호원 팀에게 말했다.고현이 누군가의 가십거리를 보고 싶어 했던 모양이다.고현은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옷을 입은 늙은 남자를 가리켰다. 그 늙은 남자는 천가 같은 얼굴과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를 껴안고 있었다.그 여성의 곁을 지나가는 남자라면 모두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몇 번 더 쳐다보았다.“저 남자는 이윤미의 친아버지이자 이 대표님의 남편인 정군호 씨예요. 그 옆에 있는 여자는 저도 잘 몰라요. 놀랍게도 밖에서 내연녀를 만나고 있었네요. 만약 이 대표님께 들킨다면 정말 정군호 씨를 죽여놓을지도 몰라요.”이은화의 남편이라는 말을 들은 전호영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정군호와 내연녀의 동영상을 찍었다.그리고 말했다.“이 대표님은 우리 큰형의 결혼식에 가신 뒤로 계속 관성에 남아계시거든요. 아마도 정군호 씨는 이 대표님이 없는 틈을 타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양이네요”고현도 말을 이었다.“이 대표님께서 남편을 너무 엄격하게 단속하니까 정군호 씨도 아마 진짜로 바람 피우지는 못할 거에요. 기껏해야 지
고현은 사실 그대로 대답했다.“저는 어른이 된 후로 여행을 갈 시간이 없었어요. 바빠서 미치겠는데 언제 시간을 내서 놀러 가겠어요? 하지만 출장 다니면서 많은 곳은 가봤어요.”“신혼여행은 어디 가고 싶어요?”전호영이 그녀에게 물었다.고현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이었다.“저는 물이 맑고 공기가 좋은 산을 좋아해요. 조용하거든요.”“제가 잘 연구해서 산 좋고 물이 맑은 조용한 곳을 찾아볼게요.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우리 둘만의 세상을 잘살아 봐야죠.”알고 보니 고현은 산과 물이 있는 아름다운 곳을 좋아했다.전씨 가문의 서원 리조트가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이 있는 곳이고 평소에도 매우 조용한 곳이었다.“서원 리조트를 좋아해요?”“좋아하죠.그럼 서원 리조트에서 신혼여행을 즐기려고요?”전호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그건 아니고요. 그곳은 우리 미래의 집이고 신혼여행은 당연히 딴 곳으로 가야죠.”이때 고현이 자신을 스스로 비웃으며 말했다.“제가 지금 시집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벌써 신혼여행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네요. 호영 씨와 함께하면 쉽게 호영 씨 의도대로 따라간단 말이죠. 저의 총명함과 자제력 모두 호영 씨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니까요.”“현이 씨가 아직도 이 일을 고민하고 있다니. 제가 아직도 부족한가요?”전호영은 자신이 고현을 오랫동안 쫓아다녔다고 느꼈다. 그는 모든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고현을 대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시집을 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하여 전호영은 자신이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어떤 방면에서 잘하지 못했는지 알고 싶었다.“아니에요. 충분히 잘하셨어요. 우리 데이트도 별로 안 하고 평소에도 일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아직 결혼까지 할 정도로 감정이 깊지 않은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말처럼 하루 못 보면 일 년을 못 본 것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저는 몰라요. 그런 감정을 못 느낀다는 건 제가 호영 씨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인 것 같아요. 어
경호원 팀은 그들의 전 대표님이 전호영에게 떠밀려 마이바흐 차에 들어가는 모습을 버젓이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차는 곧 고씨 그룹을 빠져나왔다.고빈이 중얼거렸다.“호영 씨는 정말 내가 본 형부 중 가장 오만방자한 형부였어. 처남인 나에게 조금도 아부하지 않고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다니.”고빈은 중얼중얼하긴 했지만,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만약 고빈이 정말 친형이 있다면 그는 전호영이 그의 친형을 해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따라갔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친형은 사실 여자였다. 그의 누나 고현은 시집가야 하는 여자였다. 전호영은 그의 누나와 어울리는 남자였기 때문에, 또 전호영이 고빈의 부모님께 고빈이 너무 방해한다고 고자질하면 안 되었기에 고빈은 더는 따라가지 않았다.지금 고씨 가문에서 전호영은 고현 남매보다 체면이 훨씬 섰다.“고빈 씨가 안 따라왔죠?”전호영은 차를 몰면서 조수석에 앉은 고현에게 물었다.고현은 돌아볼 필요도 없이 이내 말을 이었다.“고빈이는 입만 살아서 그렇지 정말 따라오지는 않을 거예요. 호영 씨가 우리 부모님 앞에서 고빈의 고자질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죠. 고빈은 저보다 10분 먼저 태어났지만 지금 정해진 여자친구가 없거든요.”“저도 호영 씨랑 짝을 지으니 저희 부모님의 눈길도 자연스레 고빈의 몸으로 옮겨졌어요. 호영 씨가 제 동생의 고자질하면 저희 부모님은 그를 욕하다가 결국 결혼 재촉 문제로 돌아가거든요. 제 동생은 결혼 재촉을 엄청 무서워하거든요.”고빈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고정된 여자친구를 찾지 못한 일에 관해 고현도 마음이 조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그녀에게는 전호영이 있었지만, 고빈의 짝은 아직 어디에 있는지...예전에는 고현은 고빈과 이윤미를 맞세워주려고 했지만, 고빈은 이윤미가 재미없다고 느꼈고 이윤미 또한 고빈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이윤미 곁에 방윤림이 있었다.전호영은 빙그레 웃었다.“저도 항상 고빈 씨의 고자질하고 싶지 않아요.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