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현이 차를 한잔 마시고는 힘겹게 입을 뗐다.“예정 씨, 대표님이 정말 결혼했어요.”하예정이 두 눈을 깜빡였다.“지난번에 대표님이 결혼반지를 낀 걸 봤다고 하지 않았어요?”‘그런데 왜 또 결혼 얘기를 하는 거지?’성소현이 머뭇거리다가 말했다.“결혼반지를 낀 걸 보긴 했지만 내가 마음을 접게 하려고 일부러 결혼반지를 낀 거라고 요행을 바랐거든요.”심효진이 물었다.“그럼 지금은 확신해요? 전 대표님이 정말 결혼했어요?”성소현이 고개를 끄덕였다.“대표님이 카카오 스토리에 결혼 사실을 밝혔어요. 이 일은 이미 관성의 상류 사회에서 엄청 들끓고 있거든요. 수많은 사람들이 대표님의 아내분이 누군지 궁금해하고 있어요. 지금 전씨 그룹과 전씨 저택 앞에 기자들이 쫙 깔려있어요. 내가 오기 전까지 아무런 기사도 나지 않은 걸 보면 아직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나 봐요.”하예정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언론에서 그 사람의 결혼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많아요?”심효진과 성소현이 동시에 쳐다보자 하예정이 쑥스럽게 웃었다.“우리랑 아예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서 지금까지 별 관심이 없었거든요. 평생 만날 일도 없을 텐데 굳이 뭐 하러 신경 써요, 안 그래요? 그 사람을 신경 쓸 시간에 공예품이나 더 만들어서 돈이나 더 벌겠어요. 그 사람을 알게 된 것도 효진이한테서 들은 거예요. 효진이가 하도 그 사람 얘기를 많이 해서 알게 됐거든요.”그러자 성소현이 말했다.“대표님은 관성의 최고 재벌 집 도련님이자 전씨 그룹의 주인이에요. 신분도 귀하고 얼굴도 아주 잘생겼어요. 지금까지 연애한다는 소리도 못 들었는데 갑자기 결혼 발표를 하니까 다들 이 난리인 거죠. 기자들은 대체 뉘 집 딸이길래 대표님의 아내가 됐는지 엄청 궁금해해요. 기자들뿐만 아니라 나도 궁금해요.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 오빠도 알아내지 못하더라고요. 전씨 가문의 사모님이 대체 누구일지...”성소현은 찻잔에 차를 한잔 더 따르고 목을 축인 후 계속하여 말을 이었다.“가장 불쌍한 건 나예요. 진
심효진은 성소현에게 마구 휘둘려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녀는 성소현의 손을 떼어내면서 말했다.“소현 씨, 난 정남 씨랑 소개팅만 한 게 다예요. 내가 여쭤봐도 아무 대답 없을 거라고요.”“소정남 씨와 소개팅을 했다고요?!”성소현이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소정남 씨도 우리 관성에서 몸값이 가장 비싼 싱글이란 말이에요.”심효진이 소정남과 소개팅했다는 말에 성소현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심효진도 재벌가의 딸이고 그녀의 고모는 김씨 가문의 사모님이라 평소 상류층의 연회에 고모와 함께 자주 출석하곤 했으니까.다만 심효진이 도 사모님의 생일 파티에서 벌러덩 누운 이후로 고모는 두 번 다시 심효진을 데리고 연회에 참석하지 않았다.“예정의 남편이 소개해줬어요.”하예정이 웃으며 솔직하게 인정했다.“우리 남편이 소 대표님의 덕을 많이 본 건 사실이에요. 대표님께서 업무가 다망하고 아직 미혼이다 보니 효진이와 어울릴 것 같아서 과감하게 한 번 얘기해봤어요.”“예정 씨 남편분도 참 대단하시네요. 소정남 씨의 도움도 받고 전씨 그룹에서 꽤 잘 나가잖아요. 소정남 씨는 전 대표님의 오른팔이라 그룹 내에서 전씨 일가의 다른 도련님들보다도 지위가 높아요. 회사 동료들뿐만 아니라 우리 같은 사람들도 소정남 씨에게 도움을 받고 싶어 할 정도라니까요. 아쉽게도 소정남 씨는 전 대표님과 절친한 사이이고 전 대표님이 날 싫어하다 보니 소정남 씨도 덩달아 날 보면 멀리 피하더라고요. 난 그분 도움을 받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요.”심효진과 하예정은 말을 잇지 못했다.‘소 대표님이 이 정도로 대단했어?! 성소현 씨와 같은 재벌 집 따님도 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싶어 안달이라니. 소정남 씨가 이 정도면 전 대표님은... 굉장히 어마어마한 분이시겠지!’하예정은 혼자만의 생각에 푹 빠졌다.‘전 대표님의 도움을 받는 자는 관성을 휩쓸고 다닐 수도 있겠어!’“효진 씨, 그래서 소정남 씨는 어땠어요?”성소현은 인제 소정남을 통해 전 대표님의 아내가 누구인지 알아내고 싶었다.
그는 사인펜을 내려놓고 창가 옆으로 걸어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회사 문 앞에는 아직도 연예부 기자들이 둘러싸여 있었다. 소정남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인내심도 참 대단해. 어젯밤부터 쭉 지키고 있잖아. 태윤이도 그래, 애인 자랑을 조용히 할 것이지 뭘 이렇게 세상을 발칵 뒤집어?”다만 세상은 발칵 뒤집혔을지언정 사모님은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전태윤은 아내를 극진히 아꼈다.회사 사람들은 하예정을 본 적이 있지만 아무도 감히 소문을 퍼뜨리지 못했다.전씨 일가의 사람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도 가족들은 전부 입을 꾹 다문 채 한 글자도 얘기하지 않았다.오늘 관성 상류층 사람들이 만나서 하는 첫 얘기가 바로 전 대표님의 아내가 누구인지 묻는 말이다.사업 얘기를 나누다가도 맨 마지막엔 바이어들이 전 대표님의 아내가 누구인지 두어 마디 여쭙곤 한다!소정남도 귀찮아 죽을 지경이었다.그와 전태윤이 사이가 좋다 보니 적잖은 사람들이 그에게서 소식을 캐물으려 했다.다만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소정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 사태의 주인공 전태윤은 정작 차분하게 업무를 보고 있었다.점심시간이 되자 예전처럼 경호원들의 철통 보호를 받으며 관성 호텔로 가서 식사했고 늘 그래왔듯 미리 권 매니저에게 전화해 하예정이 좋아하는 요리를 몇 개 만들어서 보내주라고 했다.그리고 가는 길에 권 매니저더러 꽃 가게에 들러 꽃을 한 다발 사서 그녀에게 전해주라고 했다.오늘 하루 유독 전태윤의 예상을 벗어난 일이 하나 있다면 바로 그의 호텔 입구에서 성기현과 마주친 일이었다.성씨 그룹은 자기만의 호텔이 있고 성기현과 전태윤이 또 서로 경쟁자이다 보니 성기현이 관성 호텔에 나타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그런 그가 오늘 바이어와 함께 이곳에 온 걸 보아 아무래도 바이어 쪽에서 미팅 장소를 관성 호텔로 정한 듯싶었다.서로 마주친 두 대표님은 나란히 걸음을 멈췄다.전태윤의 뒤엔 경호원들이 서 있었고 성기현의 뒤엔 회사의 몇몇 임원과 비서
“행운아가 어느 재벌 가문의 따님인지 몹시 궁금하네요!”성기현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꿋꿋이 물었다.여동생이 대체 어떤 여자 때문에 패배를 당했는지 알아야만 했다.전태윤은 깊은 눈동자로 성기현을 쳐다보다가 잠시 후 말을 이어갔다.“성 대표님, 이건 저의 사생활이라 대답을 거부할게요.”‘이럴 줄 알았어.’성기현은 이 결과를 달갑게 받아들이며 근엄하게 미소 지었다.“대표님께서 아내분을 몹시 아끼시네요.”“결혼할 때 평생 아끼고 사랑하고 보살펴주겠다고 약속했거든요.”성기현이 겨우 대답했다.“대표님은... 그야말로 진국이시네요.”그의 여동생 성소현과 전태윤은 결국 인연이 닿지 않았다.전태윤을 포기하라고 그렇게 말렸건만 여동생은 도통 오빠의 말을 듣지 않더니 인제 결국 고통의 맛을 보게 되었다.성기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전태윤이 성소현을 사랑한다면 실은 그도 오빠로서 여동생이 전태윤과 함께하는 걸 응원해주고 동생을 위해서라도 전씨 그룹과의 불화를 개선할 생각이었다.왜냐하면 전태윤은 그 누구보다 일편단심이니까.그는 누군가를 사랑하면 평생 그 한 사람만 사랑한다.하여 전태윤이 배신을 당하면 아마 평생토록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성 대표님도 진국이시죠. 사모님께서 매우 행복한 나날을 보내시잖아요. 이 업계에서 성 대표님은 팔불출이라고 소문이 쫙 났어요.”아내의 말에 성기현의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저도 전 대표님처럼 애초에 결혼할 때 평생 아내만 사랑하고 아껴줄 거라고 약속했거든요.”“성 대표님과 사모님의 감정은 모두를 부럽게 해요. 나중에 성 대표님께 팔불출이 된 비결을 여쭤봐야겠어요.”뭇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줄곧 불화를 이루던 두 사람이 팔불출이 되려는 주제로 나란히 얘기를 나누는 모습에 다들 입이 쩍 벌어졌다.성기현이 웃으며 말했다.“전 대표님은 이미 팔불출이 되셨어요.”그렇지 않으면 걸음을 멈추고 그와 얘기를 나누지 않았을 테니까.전태윤이 잠깐 침묵하
하예정은 오늘 전 대표님이 유부남인 데다가 팔불출이란 빅 뉴스를 귀가 닳도록 들었다. 그녀는 저녁에 화장대 앞에 앉아 팩을 붙이며 전태윤에게 말했다.“있잖아요, 나 오늘 종일 태윤 씨 회사 대표님의 스캔들만 들었지 뭐예요.”전태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렇지 않은 듯 그녀에게 물었다.“무슨 스캔들?”“아직 몰라요?”하예정이 머리를 돌리고 그를 쳐다봤다.“태윤 씨 대표님께서 유부남인 걸 공개 선언했대요. 다만 부인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라요. 소현 씨가 말하길 이 사건은 그들 상류층에서 엄청난 파란을 일으켰다던데요. 태윤 씨는 전씨 그룹에서 출근하는데 뭐 알아낸 거 없어요? 전씨 그룹 사모님은 대체 누구래요? 기자들이 회사 문 앞에서 엄청 오래 기다렸는데 아무 소식도 얻지 못한 채 하는 수 없이 돌아갔대요.”전태윤은 의자를 끌고 와 아내 곁에 앉아서 그녀가 붙인 팩을 쳐다보다가 팩 포장의 브랜드를 유심히 관찰했다. 이는 가격대가 있는 럭셔리 브랜드였다.“소현 씨가 줬어요. 오늘 밤에 어쩌다 한 번 효과 있나 보려고 붙였어요.”전태윤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앞으론 성소현 씨가 주는 화장품 쓰지 마. 네가 애용하는 브랜드를 내게 말하면 내가 알아서 사줄게.”“소현 씨가 엄청 많이 줬어요. 안 쓰면 다 버리잖아요. 소현 씨는 여자인데 지금 설마 여자까지 질투하는 거예요?”전태윤은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어루만졌다.“네가 날 1순위로 두지 않는 한 너의 관심사를 뺏어간 사람은 누구든 다 질투할 거야.”“참 나, 애초에 ‘난 질투 같은 거 전혀 몰라’ 라고 말한 사람이 누구였더라?”전태윤은 말문이 막혔다.“태윤 씨, 얼른 말해봐요. 그래서 전씨 그룹 사모님이 누군데요?”전태윤이 웃으며 되물었다.“넌 우리 대표님한테 별로 관심 없잖아.”“없다기보단 일부러 알려고 하지 않죠. 어쨌거나 나랑 태윤 씨 대표님은 아예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잖아요. 태윤 씨는 전씨 그룹에 다니면서도 대표님 얼굴 한 번 뵙기 힘든데 난 더 말할 것도 있
“예정아, 너 소현 씨 어머님이랑 함께 한 유전자 확인 검사 결과 나왔지?”전태윤은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더는 본인에 관한 스캔들을 듣고 싶지 않았으니까.그는 단지 사랑에 빠졌다는 걸 자랑하고 싶어서 카카오 스토리에 유부남이란 사실을 공개했을 뿐인데 이렇게 큰 여파가 몰아올 줄은 예상치 못했다. 그의 아내까지 종일 그에 관한 스캔들만 들었으니 말이다.“소현 씨가 내일 결과서를 가지러 간대요.”전태윤이 알겠다며 대답한 후 곧이어 말을 이었다.“만약 결과서에 너랑 소현 씨 어머님이 혈연관계가 있다고 나오면 꼭 다시 만날 거야. 그땐 내가 너랑 함께 성씨 일가에 못 갈 것 같아. 내일 출장 가야 하거든.”하예정이 머리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난 또 태윤 씨가 출장 안 가도 되는 줄 알았어요.”전태윤은 묵묵히 그녀를 바라봤다.역시나 그녀는 전태윤이 빨리 출장 가길 바랐다.다만 그는 너무 두려웠다. 출장 갔다가 돌아오면 하예정이 아예 그를 기억하지 못할까 봐...“티켓 끊었어요? 몇 시 비행기예요? 내가 공항까지 바래다줄게요. 내일 아침 일찍 깨나서 태윤 씨 짐 정리를 도와줄게요.”하예정은 자신이 매우 자상하다고 느껴졌다. 남편이 출장 가니 짐 정리도 도와주고 공항까지 바래다주니 말이다.“오전 10시 35분 비행기야. 공항까지 바래다줄 필요 없어. 오전에 회사로 돌아가서 서류들 챙기고 동료들도 함께 가야 해. 회사에서 공항까지 가는 전용차를 마련해줬어.”하예정은 알겠다며 대답했다.‘그래, 그럼 난 홀가분하고 좋지.’“너랑 소현 씨 어머님 검사 결과가 나오면 내게 문자 보내. 출장 중엔 매우 바삐 돌아칠 거야. 보통 밤늦은 시간엔 문자 볼 시간이 나. 그러니까 문자만 보내면 내가 알아서 볼 거야.”“네, 결과 받으면 바로 문자 보낼게요.”전태윤은 출장 중에 바쁘니 밤이 깊어야만 문자를 확인할 수 있다고 일부러 강조했는데 이는 하예정이 낮에 그에게 전화했다가 성소현도 함께 있을까 봐 두려워서였다.“아 참, 효진이랑 소 대표님 일은 우리
집에 건물이 하도 많아 임대비용을 받다가 지쳐 쓰러질 정도라는 걸 누가 상상이나 해봤을까?심씨 일가가 바로 이런 재벌 가문이다.“그냥 효진이랑 소 대표님이 계속 만나게 놔둬요. 서로 알고 지내다 보면 사랑이 싹틀 거예요.”성소현한테서 소정남에 관한 얘기를 듣자 심효진과 소정남은 같은 부류의 사람인 듯싶었다. 둘은 모두 시끌벅적한 걸 좋아하고 소정남이 생생 정보통이다 보니 모든 가십거리를 제일 먼저 알게 된다.“소 대표님께 물어봤는데 효진 씨를 아주 좋게 보고 있더라고. 대표님께 시간을 좀 줘. 알아서 움직이실 거야. 인제 곧 구정이라 회사 전체가 바삐 돌아치고 있어. 소 대표님의 직급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설 연휴가 시작되면 대표님도 개인감정을 케어할 시간이 생길 거야.”전태윤이 출장 가는 동안 소정남과 전이진은 함께 회사에 남아 분주히 보내야 한다.하예정은 알겠다며 머리를 끄덕였다. 실은 그녀도 심효진을 멀리 시집 보내고 싶지 않았다. 만약 심효진과 소 대표가 함께 있으면 전태윤에게도 매우 유리하다. 소 대표의 도움을 받고 승승장구하여 연봉도 오르고 두 사람의 경제조건도 점점 더 여유로워질 테니까.‘나 지금... 친구 팔아서 돈을 벌려는 거야?’그들 부부는 소개팅에 관한 얘기를 한참 나눴다. 하예정은 팩을 뗄 시간이 다 돼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잠시 후 그녀는 화장실에서 나오더니 곧게 침대 머리맡에 다가가 슬리퍼를 벗고 침대에 누우며 옆자리를 툭툭 쳤다.“태윤 씨, 이리 와요. 내 몸 따뜻하게 녹여줘요. 몸이 따뜻해지면 금세 잠들 것 같단 말이에요.”전태윤은 표정이 확 어두워졌다.“날 핫팩 취급하는 거야?”“핫팩은 충전해야 하잖아요. 당신은 충전할 필요도 없고 핫팩보다 더 따뜻하니 가성비 굿이에요.”전태윤은 말문이 턱 막혔다.그는 가까이 다가와 그녀를 향해 누워서 가볍게 이마를 톡 두드렸다.“그럼 난 너한테 핫팩 말곤 다른 용도는 없는 거야?”“당신한테 달라붙어 몸을 녹이는 것 말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알겠다고요. 나 다 기억해요. 금방 혼인 신고했을 때도 아니고 말이야.”하예정이 하품을 해댔다.“태윤 씨, 얼른 자요. 내일 출장 간다면서요. 푹 자야 머리도 맑아져요.”그녀는 고개를 들어 가까이 다가가더니 전태윤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여보, 잘 자요.”전태윤은 순간 짙은 눈빛으로 돌변하여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이대론 도저히 놓아줄 수 없었다.그는 깊은 눈동자로 하예정의 예쁜 얼굴을 뚫어지라 쳐다봤다.하예정은 평소 화장기 없이 민얼굴로 자주 나다니지만 피부관리에 엄청 신경 쓰다 보니 얼굴이 매끄럽고 촉감이 좋았다.그녀는 타고난 미모를 지녔다.전태윤은 그녀를 처음 봤을 때 이 점을 바로 인정했다.다만 미인을 너무 많이 봐오다 보니 처음 그녀를 봤을 때 아무런 느낌이 없었을 뿐이다.“예정아, 방금 날 뭐라고 불렀어?”그가 처음 여보라고 불렀을 때 하예정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전태윤은 그 뒤로 아무리 생각해봐도 가슴만 답답할 따름이었다.여보라는 애칭이 그다지 닭살 돋지 못하고 가벼운 감정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 두어 마디 부르곤 더 부르지 않았다.하지만 그녀가 여보라고 불렀을 때 감미로운 목소리가 전율처럼 그의 마음을 간지럽혔다.“태윤 씨.”“아니, 날 여보라고 불렀잖아.”“그게 왜요? 여보 맞잖아요. 내 여보.”전태윤은 그녀의 머리를 살짝 짓누르며 뜨거운 키스로 제 마음을 전달했다.진한 키스를 마친 후 하예정은 그가 떡하니 내려놓은 커다란 손을 뿌리치며 다시 몸을 돌리고 누워 말했다.“자요 얼른, 시간이 너무 늦었어요.”전태윤이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먼저 자. 난, 샤워하고 올게.”그는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내려와 황급히 욕실로 들어갔다.부부의 감정이 무르익어갈 때 진한 키스는 금물이다. 전태윤은 하마터면 선을 넘을 뻔했다. 애석하게도 지금은 타이밍이 적절치 못했다.추운 겨울 찬물로 샤워하는 기분은 짜릿해서 죽을 지경이었다!욕실에서 들려오는 물소리에 하예정도 다시 반듯하게 누우며 중얼거렸다.“그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