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건물이 하도 많아 임대비용을 받다가 지쳐 쓰러질 정도라는 걸 누가 상상이나 해봤을까?심씨 일가가 바로 이런 재벌 가문이다.“그냥 효진이랑 소 대표님이 계속 만나게 놔둬요. 서로 알고 지내다 보면 사랑이 싹틀 거예요.”성소현한테서 소정남에 관한 얘기를 듣자 심효진과 소정남은 같은 부류의 사람인 듯싶었다. 둘은 모두 시끌벅적한 걸 좋아하고 소정남이 생생 정보통이다 보니 모든 가십거리를 제일 먼저 알게 된다.“소 대표님께 물어봤는데 효진 씨를 아주 좋게 보고 있더라고. 대표님께 시간을 좀 줘. 알아서 움직이실 거야. 인제 곧 구정이라 회사 전체가 바삐 돌아치고 있어. 소 대표님의 직급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설 연휴가 시작되면 대표님도 개인감정을 케어할 시간이 생길 거야.”전태윤이 출장 가는 동안 소정남과 전이진은 함께 회사에 남아 분주히 보내야 한다.하예정은 알겠다며 머리를 끄덕였다. 실은 그녀도 심효진을 멀리 시집 보내고 싶지 않았다. 만약 심효진과 소 대표가 함께 있으면 전태윤에게도 매우 유리하다. 소 대표의 도움을 받고 승승장구하여 연봉도 오르고 두 사람의 경제조건도 점점 더 여유로워질 테니까.‘나 지금... 친구 팔아서 돈을 벌려는 거야?’그들 부부는 소개팅에 관한 얘기를 한참 나눴다. 하예정은 팩을 뗄 시간이 다 돼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잠시 후 그녀는 화장실에서 나오더니 곧게 침대 머리맡에 다가가 슬리퍼를 벗고 침대에 누우며 옆자리를 툭툭 쳤다.“태윤 씨, 이리 와요. 내 몸 따뜻하게 녹여줘요. 몸이 따뜻해지면 금세 잠들 것 같단 말이에요.”전태윤은 표정이 확 어두워졌다.“날 핫팩 취급하는 거야?”“핫팩은 충전해야 하잖아요. 당신은 충전할 필요도 없고 핫팩보다 더 따뜻하니 가성비 굿이에요.”전태윤은 말문이 턱 막혔다.그는 가까이 다가와 그녀를 향해 누워서 가볍게 이마를 톡 두드렸다.“그럼 난 너한테 핫팩 말곤 다른 용도는 없는 거야?”“당신한테 달라붙어 몸을 녹이는 것 말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알겠다고요. 나 다 기억해요. 금방 혼인 신고했을 때도 아니고 말이야.”하예정이 하품을 해댔다.“태윤 씨, 얼른 자요. 내일 출장 간다면서요. 푹 자야 머리도 맑아져요.”그녀는 고개를 들어 가까이 다가가더니 전태윤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여보, 잘 자요.”전태윤은 순간 짙은 눈빛으로 돌변하여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이대론 도저히 놓아줄 수 없었다.그는 깊은 눈동자로 하예정의 예쁜 얼굴을 뚫어지라 쳐다봤다.하예정은 평소 화장기 없이 민얼굴로 자주 나다니지만 피부관리에 엄청 신경 쓰다 보니 얼굴이 매끄럽고 촉감이 좋았다.그녀는 타고난 미모를 지녔다.전태윤은 그녀를 처음 봤을 때 이 점을 바로 인정했다.다만 미인을 너무 많이 봐오다 보니 처음 그녀를 봤을 때 아무런 느낌이 없었을 뿐이다.“예정아, 방금 날 뭐라고 불렀어?”그가 처음 여보라고 불렀을 때 하예정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전태윤은 그 뒤로 아무리 생각해봐도 가슴만 답답할 따름이었다.여보라는 애칭이 그다지 닭살 돋지 못하고 가벼운 감정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 두어 마디 부르곤 더 부르지 않았다.하지만 그녀가 여보라고 불렀을 때 감미로운 목소리가 전율처럼 그의 마음을 간지럽혔다.“태윤 씨.”“아니, 날 여보라고 불렀잖아.”“그게 왜요? 여보 맞잖아요. 내 여보.”전태윤은 그녀의 머리를 살짝 짓누르며 뜨거운 키스로 제 마음을 전달했다.진한 키스를 마친 후 하예정은 그가 떡하니 내려놓은 커다란 손을 뿌리치며 다시 몸을 돌리고 누워 말했다.“자요 얼른, 시간이 너무 늦었어요.”전태윤이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먼저 자. 난, 샤워하고 올게.”그는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내려와 황급히 욕실로 들어갔다.부부의 감정이 무르익어갈 때 진한 키스는 금물이다. 전태윤은 하마터면 선을 넘을 뻔했다. 애석하게도 지금은 타이밍이 적절치 못했다.추운 겨울 찬물로 샤워하는 기분은 짜릿해서 죽을 지경이었다!욕실에서 들려오는 물소리에 하예정도 다시 반듯하게 누우며 중얼거렸다.“그러게
“예정 씨, 언니는요? 언니더러 전화 좀 받으라고 해요!”김은희의 퉁명스러운 말투를 보아하니 지금 한창 분노에 차 있을 게 뻔했다.“언니는 왜요? 이미 그쪽 집안과 아무 연관이 없는 거로 알고 있는데요. 말하세요, 무슨 일이죠?”하예정이 느긋하게 물었다.아마도 주형인의 부모가 본가에서 이사를 왔는데 집 인테리어가 엉망진창이 되어 홧김에 하예진에게 따져 물을 기세인 듯싶었다.‘반응이 되게 느리네. 하긴, 인제야 알게 된 것도 그럴만하지.’그날 하예진과 주형인이 이혼 절차를 마무리한 후 김은희와 주경진은 택시를 타고 본가로 돌아갔다.다음날 바로 이사 오려고 했는데 주서인의 자녀가 학교에 돌아가 성적 수첩을 가져와야 하는 바람에 하루를 더 머물렀다.오늘 초등학교가 정식으로 방학을 했다.주형인의 부모는 주서인 가족과 함께 차 두 대로 움직여 크고 작은 짐들을 한가득 실은 채 도시에 와서 구정을 보낼 예정이었다.아침 일찍 출발한 것도 다 김은희의 작은 꼼수였다.일찍 오면 서현주더러 그들 한 가족을 위해 아침을 차려놓으라고 할 참이었으니까.시작부터 서현주의 기강을 잡을 생각이었다.다만 크고 작은 짐을 한가득 둘러업고 계단을 올라가 집 문을 열었더니 식겁하여 그만 짐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집을 잘못 들어온 게 아닌지 의심되어 여러 번 확인했지만 아들 집이 맞았다.주서인은 곧바로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주형인은 요 이틀 협력업체가 갑자기 협력을 취소하는 바람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아 가족들에게 집 인테리어가 망가졌다는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누나의 전화를 받았을 때도 그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부모님과 누나네 가족이 모두 도시에 들어왔다는 걸 알게 된 후 주형인은 그제야 이 일을 떠올리며 가족들에게 자초지종을 들려주었다. 김은희는 그 자리에서 하예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가 주씨 집안 사람들을 전부 블랙리스트에 넣은 바람에 연락이 되지 않았다. 김은희는 마지못해 하예정에게 전화했다.“언니랑 함께 있는 거 아니었어요?”김은희가 퉁명스럽게
하예정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주서인 씨, 화장실 가서 거울 좀 비춰봐 봐요. 어머, 거울도 없겠다. 우리 언니가 돈 주고 산 거울이라 겨우 다 뜯었거든요. 뭐 그럼 휴대폰 셀카 모드로 얼굴 좀 비춰봐요. 본인이 얼마나 뻔뻔스럽게 생겼는지 보란 말이에요. 우리 언니랑 서인 씨 동생은 인제 이혼해서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대체 무슨 체면으로 우리 언니한테 집을 구해달라고 해요? 언니가 당신들 길바닥에 나앉게 했어요? 그거 다 본인들이 자초한 일이잖아요. 자업자득이라고 하죠. 헤어질 때 좋게좋게 얘기해서 언니가 받을 손해배상 비용을 선뜻 줬더라면 지금처럼 길바닥에 나앉을 일은 없었겠죠. 어휴, 오늘 날도 참 추운데 창문까지 다 뜯어버려서 집에 칼바람이 휘몰아칠 거예요. 다들 잠은 제대로 잘 런지나? 뭐 그래도 다들 파렴치한 사람이라 인원수도 많겠다, 똘똘 뭉치면 칼바람 정도는 막을 수 있을 거예요. 별일 없으면 이만 끊을게요. 이불 안이 너무 따뜻해서 좀 더 자야겠어요. 그럼 이만.”말을 마친 하예정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이어서 김은희의 휴대폰 번호를 바로 차단해버렸다.괜히 끝까지 들러붙어 전화를 걸어 귀찮게 하면 안 되니까.주서인은 화가 나서 욕설을 퍼부었다.“하예정 이게 진짜 죽으려고! 못 된 년, 말발은 또 왜 이렇게 센 건데? 저년 남편은 어떻게 참는대? 엄마, 이젠 우리 어떡하냐고?”주서인이 엄마에게 물었다.“한 가족이 짐을 바리바리 싸서 왔는데, 시댁 식구들한테도 이리로 와서 설 연휴 보낸다고 다 얘기했는데 인제 와서 다시 돌아가라는 거야?”“엄마, 안아줘요.”아빠 품에서 금방 깨난 임정한이 손을 내밀어 엄마에게 안아달라고 했다.주서인은 짜증 섞인 얼굴로 아들을 안고 주경진에게 다시 얘기했다.“아빠, 그러니까 내가 뭐랬어. 너무 빨리 하예진의 요구를 들어주면 안 된다고 했잖아! 계좌 이체하지 말라고 했잖아. 인제 봐봐, 연락 두절이야. 돈을 챙겼으니 우린 아예 안중에도 없다고. 앞으론 우빈이 만나기도 힘들 거야. 다들 그년한테
주경진은 어두운 표정으로 아내를 째려보았다.“당신 사돈댁의 어느 어르신을 찾아갔어?”“누구겠어요? 예정의 친할아버지죠. 걔네 친할머니가 입원해서 병원에 찾아갔더니 내 제안을 듣고 대뜸 2000만 원을 요구하는 거예요. 내가 안 된다고 하자 끈질기게 흥정하다가 결국 1200만 원을 줬어요. 반드시 직접 나서서 예정이를 설득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예정이는 제 언니의 이혼을 말리지도 않더라고요. 돈만 받고 약속을 어긴 셈이에요.”김은희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주경진이 그녀의 손목을 세차게 내리쳤다.“당신 미쳤어? 예정이네 가족들도 믿는 거야? 심지어 예정이는 제 할아버지와 갈등이 깊다는 걸 당신도 다 알잖아. 찾아도 하필 그 사람들을 찾아가? 당신 정말 똑똑하다가도 왜 이렇게 어리석은지 모르겠어! 1200만 원, 무려 1200만 원을 날리다니!”주경진은 아내 때문에 화가 나 눈앞이 캄캄해지고 뒤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김은희가 속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난 그저 예정이랑 말이 안 통해서 그 집 식구들을 내세울 생각이었어요. 싸워도 그 집 식구들끼리 싸울 뿐 난 예정이 때문에 화낼 필요가 없잖아요. 그래서 찾아간 거예요. 그 집 어르신이 마침 병원에서 아내 병원비용을 빨리 내라고 다그친다면서 800만 원이 필요하니 나더러 1200만 원을 내놓으라고 하더군요. 남은 400만 원은 예정이를 설득하는 차원에서 받는 거라면서요.”하씨 집안 할머니의 병원비용은 애초에 본인 돈으로 부담했고 나중엔 자녀들이 가족 단위로 얼마씩 대주었다. 그 돈까지 다 쓰고 나니 800만 원의 비용이 더 불어났고 이때 마침 김은희가 문 앞까지 찾아왔으니 하씨 어르신이 덥석 물지 않을 리가 없다.“당신 진짜 멍청해. 그 집안 사람들은 밑 빠진 독이야. 돈을 줘봤자 절대 돕지 않는다고!”주서인도 한마디 덧붙였다.“엄마는 내가 사람을 찾으랬지 언제 돈을 쓰라고 했어?”한편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엄마한테 언제 이렇게 많은 비상금이 있었대? 보아하니 형인이가 부모님께 돈을 꽤 많이
주서인은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누나, 나 지금 가고 있어.”주형인은 부모님과 누나네 가족이 다 온 걸 알고 얼른 일어나 서현주도 깨워서 대충 씻고 광명 아파트로 향했다.“형인아, 우리 아직 아침도 못 먹었어.”“누나, 나 도착하면 다 함께 아침 먹으러 가.”주서인이 말했다.“너 서현주랑 같이 있는 거 아니야? 걔더러 우리 아침 준비하라고 해! 나가 먹으면 사람이 많아서 몇만 원은 들 거야.”“누나, 우리도 지금 호텔에 묵고 있어. 아직 집을 못 구했단 말이야. 그 집에 아무것도 없어서 밥을 할 수가 없어.”하예진이 그녀만의 방식으로 인테리어 비용을 돌려받았으니 주형인의 집엔 물과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게다가 주방용품도 싹 다 옮겨가 텅 빈 주방에서 서현주가 밥을 해주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주서인이 침묵하다가 말을 이었다.“예진이가 우릴 모두 차단했어. 넌 어떻게 예진이랑 연락해? 우린 우빈이를 만나고 싶어도 못 보는 거 아니야?”“우빈이는 보통 예정의 가게에 있어. 그리로 가면 볼 수 있으니까 예진이한테 연락 안 해도 돼.”주형인은 예진이가 연락처를 차단한 일에 관하여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하예진이 인테리어를 무너뜨린 일은 그도 몹시 화가 나지만 후회는 전혀 없었다. 이혼 뒤 서현주가 질투할까 봐 그도 실은 하예진과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연락 안 해도 돼. 그때 가서 이를 빌미로 우빈의 양육비를 안 줘도 되잖아. 매달 60만 원씩 아끼게 됐네.”주서인은 이렇게 저 자신을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다만 주형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그는 가족들에게 이미 아들의 1년 치 양육비를 줬다는 걸 차마 얘기하지 못했다.“누나, 나 지금 운전 중이라 이따가 만나서 얘기해.”“그래.”주서인은 전화를 끊고 부모님께 말했다.“형인이 지금 오고 있대. 집에 물도 안 들어오고 전기도 다 차단해서 밥을 할 수가 없대. 이따가 다 함께 나가서 아침을 먹자고 하던데 우리 찻집에서 모닝 차를 마신 지도 오래됐으니 형인이 오면 찻집이나 가야겠어.
어르신은 계속 말을 이었다.“둘째부터 손댈까 아니면 셋째부터 손댈까?”전태윤은 아무 대답도 없었다. 괜히 그때 가서 할머니가 동생들에게 그가 시킨 일이라고 뒤집어씌우면 안 되니까.“둘째가 낫겠지? 둘째한테 누굴 소개해주면 좋을까?”전태윤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그가 알고 있는 젊은 여자는 안 그래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데 전이진에게 아내감을 소개해주라는 건 아예 그더러 절에 가서 스님이 되라는 것보다 힘들었다.할머니도 전태윤이 마땅한 여자를 추천해줄 거란 기대가 없었다.“안 들어가고 뭐 해?”전태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어르신은 한심하다는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곧 출장 가는데 얼른 들어가서 예정이랑 얘기라도 몇 마디 더 나눠야지!”뭐든지 할머니가 미리 가르쳐줘야 했으니...할머니는 한숨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그해 전태윤을 키울 때 모든 걸 가르쳐줬지만 유독 한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을 놓쳐버렸다. 그랬더니 결국 이 녀석은 무뚝뚝한 사내가 되어 여자의 마음을 도통 읽을 줄 모른다.할머니는 한 사람을 사랑하는 건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니 딱히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다.‘내 생각이 짧았어. 너무 단순하게 여겼단 말이지.’전태윤은 잠시 침묵하다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예정이 지금 날 위해 짐을 싸며 흥얼거리고 있잖아요?”할머니는 입이 쩍 벌어졌다.하예정은 짐 정리를 마친 후 다시 한번 전태윤의 일상용품을 체크하고 나서야 캐리어를 잠갔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캐리어를 사진까지 찍었다.그녀는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캐리어를 끌며 밖으로 나가려는데 두어 걸음 걷다가 문 앞에 서 있는 할머니와 전태윤과 마주쳤다.“할머니.”하예정이 웃으며 인사하고는 캐리어를 끌고 앞으로 다가갔다.“태윤 씨가 출장 가야 해서 제가 대신 짐을 싸줬어요.”손주 며느리가 손주에게 이토록 자상하니 할머니는 마냥 기뻤지만 겉으론 내색하지 않았다.“다음부턴 태윤이 혼자 정리하게 놔둬. 배고프지? 태윤이가 아침 다 차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전태윤은 또 카톡으로 하예정에게 1000만 원을 보냈다.하예정은 이를 확인하더니 냉큼 말했다.“나 돈 있어요.”그가 준 생활용 카드만 해도 돈이 바닥난 적이 없었다.“내가 출장 가면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고 구정이 코앞이라 장만해야 할 것들도 많을 거야. 다 돈 들어갈 일이니 어느 정도 남겨두고 있어. 그리고 네가 알아서 장만해.”전태윤의 이유는 아주 충분했다.“구정 전에 본가로 돌아가서 설 연휴를 보낼 거야. 본가엔 친척들이 많아서 선물을 많이 준비해야 해. 뭘 드리면 좋을지 할머니께 여쭤보고 미리 사놔. 1000만 원으로 부족하면 바로 얘기해. 더 줄게.”그의 대답을 들은 하예정은 1000만 원을 받아야만 했다.혼인 신고한 지 한참이 지났는데 그는 처음으로 하예정을 데리고 본가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꺼냈다.전에 상견례를 할 때 그는 부모님과 이모 삼촌들에게 이리로 오라고 통보만 했었다.어르신은 전태윤의 말을 듣더니 두 눈을 반짝거릴 뿐 아무 말 없이 미소만 지었다.하예정이 발코니에 가서 꽃에 물을 줄 때 어르신은 봄이를 안고 손자 곁에 다가와 나지막이 속삭였다.“설에 예정이 데리고 가서 어디서 지내려고?”본가일지 아니면 아무 집이나 찾아서 어물쩍 넘어갈 것인지 몹시 궁금했다!“할머니, 우리 집 진짜 본가 말이에요, 제대로 정리하면 안에 들어가서 지낼 수 있겠죠?”할머니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물론이지. 정리하면 얼마든지 들어가서 지낼 수 있어.”지금의 전씨 일가 저택은 전태윤의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직접 쌓아 올린 건물인데 리조트 형식이고 이름은 서원 리조트이다.전씨 가문의 조상님들이 남겨주신 집이야말로 진정한 본가이고 고풍스러운 느낌을 물씬 풍긴다. 서원 리조트와도 차로 10분 거리라 매우 가깝다.매년 설마다 할머니는 손자들을 데리고 본가에 돌아가 조상님들께 향을 피운다.“우린 설 때마다 본가에 돌아가 며칠 지내잖아.”진정한 본가는 더욱 저력이 있지만 면적이 서원 리조트보다 작다. 다만 이렇게 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