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현은 자신이 잘못 본 거라고 생각했다.전태윤은 이동할 때 보통 롤스로이스를 타고 다녔고 경호원들이 탄 검은 차가 몇 대 따라다니곤 했다. 그리고 전태윤이 이곳에 나타날 리도 없었다.그의 가족 중에 관성 중학교에 다니는 애가 없어 성소현은 더는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하예정의 서점 문 앞에 도착한 성소현이 차를 세우자마자 마침 하예정이 주우빈을 안고 나왔다.“예정 씨, 내가 올 줄 알았어요?”성소현이 차에서 내리며 웃었다.“우빈이까지 안고 날 마중하러 나왔네요?”“그게 아니라 우빈이랑 슈퍼 좀 다녀오려고요.”성소현이 가까이 다가와 주우빈을 안으려 하자 주우빈은 고개를 홱 돌려 하예정의 목을 끌어안으며 말했다.“이모가 안아줘요.”그러자 하예정이 그녀에게 설명했다.“우빈이 점점 좋아지고는 있지만 평소 같이 지냈던 우리랑만 붙어있으려고 해요.”“주씨 가문 인간들 정말 쓰레기만도 못한 인간들이에요!”귀여운 주우빈을 안을 수 없었던 성소현은 화를 주체 못 하고 주씨 가문 사람들을 한바탕 욕했다.“예정 씨 언니랑 그 남자는 이혼했어요?”“네, 어제 이혼했어요. 재산도 나눠 가졌고 인테리어 비용도 전부 돌려받았어요.”주우빈과 함께 슈퍼로 가려 했던 하예정은 성소현이 오자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혹시 유전자 검사 결과 나왔어요?”이경혜 없이 성소현 혼자 온 걸 보고 아무래도 두 사람이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다고 짐작했다.“검사 결과 아직 안 나왔어요. 내일 점심에 엄마가 가지러 가기로 했어요. 오늘은 내가 기분이 안 좋아서 얘기나 좀 하려고 온 거예요. 예진 씨랑 효진 씨랑 얘기 나누면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엄마도 함께 오고 싶어 하셨는데 내가 오지 말라고 했어요. 그래야 내게 제대로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전태윤을 수년간 짝사랑한 성소현에게 짧은 시간 내에 그에 대한 마음을 접으라고 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녀는 마음이 찢어지듯이 아팠지만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가족들 앞에서는 눈물을 보일 수가 없었다.그
성소현이 차를 한잔 마시고는 힘겹게 입을 뗐다.“예정 씨, 대표님이 정말 결혼했어요.”하예정이 두 눈을 깜빡였다.“지난번에 대표님이 결혼반지를 낀 걸 봤다고 하지 않았어요?”‘그런데 왜 또 결혼 얘기를 하는 거지?’성소현이 머뭇거리다가 말했다.“결혼반지를 낀 걸 보긴 했지만 내가 마음을 접게 하려고 일부러 결혼반지를 낀 거라고 요행을 바랐거든요.”심효진이 물었다.“그럼 지금은 확신해요? 전 대표님이 정말 결혼했어요?”성소현이 고개를 끄덕였다.“대표님이 카카오 스토리에 결혼 사실을 밝혔어요. 이 일은 이미 관성의 상류 사회에서 엄청 들끓고 있거든요. 수많은 사람들이 대표님의 아내분이 누군지 궁금해하고 있어요. 지금 전씨 그룹과 전씨 저택 앞에 기자들이 쫙 깔려있어요. 내가 오기 전까지 아무런 기사도 나지 않은 걸 보면 아직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나 봐요.”하예정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언론에서 그 사람의 결혼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많아요?”심효진과 성소현이 동시에 쳐다보자 하예정이 쑥스럽게 웃었다.“우리랑 아예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서 지금까지 별 관심이 없었거든요. 평생 만날 일도 없을 텐데 굳이 뭐 하러 신경 써요, 안 그래요? 그 사람을 신경 쓸 시간에 공예품이나 더 만들어서 돈이나 더 벌겠어요. 그 사람을 알게 된 것도 효진이한테서 들은 거예요. 효진이가 하도 그 사람 얘기를 많이 해서 알게 됐거든요.”그러자 성소현이 말했다.“대표님은 관성의 최고 재벌 집 도련님이자 전씨 그룹의 주인이에요. 신분도 귀하고 얼굴도 아주 잘생겼어요. 지금까지 연애한다는 소리도 못 들었는데 갑자기 결혼 발표를 하니까 다들 이 난리인 거죠. 기자들은 대체 뉘 집 딸이길래 대표님의 아내가 됐는지 엄청 궁금해해요. 기자들뿐만 아니라 나도 궁금해요.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 오빠도 알아내지 못하더라고요. 전씨 가문의 사모님이 대체 누구일지...”성소현은 찻잔에 차를 한잔 더 따르고 목을 축인 후 계속하여 말을 이었다.“가장 불쌍한 건 나예요. 진
심효진은 성소현에게 마구 휘둘려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녀는 성소현의 손을 떼어내면서 말했다.“소현 씨, 난 정남 씨랑 소개팅만 한 게 다예요. 내가 여쭤봐도 아무 대답 없을 거라고요.”“소정남 씨와 소개팅을 했다고요?!”성소현이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소정남 씨도 우리 관성에서 몸값이 가장 비싼 싱글이란 말이에요.”심효진이 소정남과 소개팅했다는 말에 성소현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심효진도 재벌가의 딸이고 그녀의 고모는 김씨 가문의 사모님이라 평소 상류층의 연회에 고모와 함께 자주 출석하곤 했으니까.다만 심효진이 도 사모님의 생일 파티에서 벌러덩 누운 이후로 고모는 두 번 다시 심효진을 데리고 연회에 참석하지 않았다.“예정의 남편이 소개해줬어요.”하예정이 웃으며 솔직하게 인정했다.“우리 남편이 소 대표님의 덕을 많이 본 건 사실이에요. 대표님께서 업무가 다망하고 아직 미혼이다 보니 효진이와 어울릴 것 같아서 과감하게 한 번 얘기해봤어요.”“예정 씨 남편분도 참 대단하시네요. 소정남 씨의 도움도 받고 전씨 그룹에서 꽤 잘 나가잖아요. 소정남 씨는 전 대표님의 오른팔이라 그룹 내에서 전씨 일가의 다른 도련님들보다도 지위가 높아요. 회사 동료들뿐만 아니라 우리 같은 사람들도 소정남 씨에게 도움을 받고 싶어 할 정도라니까요. 아쉽게도 소정남 씨는 전 대표님과 절친한 사이이고 전 대표님이 날 싫어하다 보니 소정남 씨도 덩달아 날 보면 멀리 피하더라고요. 난 그분 도움을 받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요.”심효진과 하예정은 말을 잇지 못했다.‘소 대표님이 이 정도로 대단했어?! 성소현 씨와 같은 재벌 집 따님도 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싶어 안달이라니. 소정남 씨가 이 정도면 전 대표님은... 굉장히 어마어마한 분이시겠지!’하예정은 혼자만의 생각에 푹 빠졌다.‘전 대표님의 도움을 받는 자는 관성을 휩쓸고 다닐 수도 있겠어!’“효진 씨, 그래서 소정남 씨는 어땠어요?”성소현은 인제 소정남을 통해 전 대표님의 아내가 누구인지 알아내고 싶었다.
그는 사인펜을 내려놓고 창가 옆으로 걸어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회사 문 앞에는 아직도 연예부 기자들이 둘러싸여 있었다. 소정남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인내심도 참 대단해. 어젯밤부터 쭉 지키고 있잖아. 태윤이도 그래, 애인 자랑을 조용히 할 것이지 뭘 이렇게 세상을 발칵 뒤집어?”다만 세상은 발칵 뒤집혔을지언정 사모님은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전태윤은 아내를 극진히 아꼈다.회사 사람들은 하예정을 본 적이 있지만 아무도 감히 소문을 퍼뜨리지 못했다.전씨 일가의 사람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도 가족들은 전부 입을 꾹 다문 채 한 글자도 얘기하지 않았다.오늘 관성 상류층 사람들이 만나서 하는 첫 얘기가 바로 전 대표님의 아내가 누구인지 묻는 말이다.사업 얘기를 나누다가도 맨 마지막엔 바이어들이 전 대표님의 아내가 누구인지 두어 마디 여쭙곤 한다!소정남도 귀찮아 죽을 지경이었다.그와 전태윤이 사이가 좋다 보니 적잖은 사람들이 그에게서 소식을 캐물으려 했다.다만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소정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 사태의 주인공 전태윤은 정작 차분하게 업무를 보고 있었다.점심시간이 되자 예전처럼 경호원들의 철통 보호를 받으며 관성 호텔로 가서 식사했고 늘 그래왔듯 미리 권 매니저에게 전화해 하예정이 좋아하는 요리를 몇 개 만들어서 보내주라고 했다.그리고 가는 길에 권 매니저더러 꽃 가게에 들러 꽃을 한 다발 사서 그녀에게 전해주라고 했다.오늘 하루 유독 전태윤의 예상을 벗어난 일이 하나 있다면 바로 그의 호텔 입구에서 성기현과 마주친 일이었다.성씨 그룹은 자기만의 호텔이 있고 성기현과 전태윤이 또 서로 경쟁자이다 보니 성기현이 관성 호텔에 나타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그런 그가 오늘 바이어와 함께 이곳에 온 걸 보아 아무래도 바이어 쪽에서 미팅 장소를 관성 호텔로 정한 듯싶었다.서로 마주친 두 대표님은 나란히 걸음을 멈췄다.전태윤의 뒤엔 경호원들이 서 있었고 성기현의 뒤엔 회사의 몇몇 임원과 비서
“행운아가 어느 재벌 가문의 따님인지 몹시 궁금하네요!”성기현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꿋꿋이 물었다.여동생이 대체 어떤 여자 때문에 패배를 당했는지 알아야만 했다.전태윤은 깊은 눈동자로 성기현을 쳐다보다가 잠시 후 말을 이어갔다.“성 대표님, 이건 저의 사생활이라 대답을 거부할게요.”‘이럴 줄 알았어.’성기현은 이 결과를 달갑게 받아들이며 근엄하게 미소 지었다.“대표님께서 아내분을 몹시 아끼시네요.”“결혼할 때 평생 아끼고 사랑하고 보살펴주겠다고 약속했거든요.”성기현이 겨우 대답했다.“대표님은... 그야말로 진국이시네요.”그의 여동생 성소현과 전태윤은 결국 인연이 닿지 않았다.전태윤을 포기하라고 그렇게 말렸건만 여동생은 도통 오빠의 말을 듣지 않더니 인제 결국 고통의 맛을 보게 되었다.성기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전태윤이 성소현을 사랑한다면 실은 그도 오빠로서 여동생이 전태윤과 함께하는 걸 응원해주고 동생을 위해서라도 전씨 그룹과의 불화를 개선할 생각이었다.왜냐하면 전태윤은 그 누구보다 일편단심이니까.그는 누군가를 사랑하면 평생 그 한 사람만 사랑한다.하여 전태윤이 배신을 당하면 아마 평생토록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성 대표님도 진국이시죠. 사모님께서 매우 행복한 나날을 보내시잖아요. 이 업계에서 성 대표님은 팔불출이라고 소문이 쫙 났어요.”아내의 말에 성기현의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저도 전 대표님처럼 애초에 결혼할 때 평생 아내만 사랑하고 아껴줄 거라고 약속했거든요.”“성 대표님과 사모님의 감정은 모두를 부럽게 해요. 나중에 성 대표님께 팔불출이 된 비결을 여쭤봐야겠어요.”뭇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줄곧 불화를 이루던 두 사람이 팔불출이 되려는 주제로 나란히 얘기를 나누는 모습에 다들 입이 쩍 벌어졌다.성기현이 웃으며 말했다.“전 대표님은 이미 팔불출이 되셨어요.”그렇지 않으면 걸음을 멈추고 그와 얘기를 나누지 않았을 테니까.전태윤이 잠깐 침묵하
하예정은 오늘 전 대표님이 유부남인 데다가 팔불출이란 빅 뉴스를 귀가 닳도록 들었다. 그녀는 저녁에 화장대 앞에 앉아 팩을 붙이며 전태윤에게 말했다.“있잖아요, 나 오늘 종일 태윤 씨 회사 대표님의 스캔들만 들었지 뭐예요.”전태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렇지 않은 듯 그녀에게 물었다.“무슨 스캔들?”“아직 몰라요?”하예정이 머리를 돌리고 그를 쳐다봤다.“태윤 씨 대표님께서 유부남인 걸 공개 선언했대요. 다만 부인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라요. 소현 씨가 말하길 이 사건은 그들 상류층에서 엄청난 파란을 일으켰다던데요. 태윤 씨는 전씨 그룹에서 출근하는데 뭐 알아낸 거 없어요? 전씨 그룹 사모님은 대체 누구래요? 기자들이 회사 문 앞에서 엄청 오래 기다렸는데 아무 소식도 얻지 못한 채 하는 수 없이 돌아갔대요.”전태윤은 의자를 끌고 와 아내 곁에 앉아서 그녀가 붙인 팩을 쳐다보다가 팩 포장의 브랜드를 유심히 관찰했다. 이는 가격대가 있는 럭셔리 브랜드였다.“소현 씨가 줬어요. 오늘 밤에 어쩌다 한 번 효과 있나 보려고 붙였어요.”전태윤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앞으론 성소현 씨가 주는 화장품 쓰지 마. 네가 애용하는 브랜드를 내게 말하면 내가 알아서 사줄게.”“소현 씨가 엄청 많이 줬어요. 안 쓰면 다 버리잖아요. 소현 씨는 여자인데 지금 설마 여자까지 질투하는 거예요?”전태윤은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어루만졌다.“네가 날 1순위로 두지 않는 한 너의 관심사를 뺏어간 사람은 누구든 다 질투할 거야.”“참 나, 애초에 ‘난 질투 같은 거 전혀 몰라’ 라고 말한 사람이 누구였더라?”전태윤은 말문이 막혔다.“태윤 씨, 얼른 말해봐요. 그래서 전씨 그룹 사모님이 누군데요?”전태윤이 웃으며 되물었다.“넌 우리 대표님한테 별로 관심 없잖아.”“없다기보단 일부러 알려고 하지 않죠. 어쨌거나 나랑 태윤 씨 대표님은 아예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잖아요. 태윤 씨는 전씨 그룹에 다니면서도 대표님 얼굴 한 번 뵙기 힘든데 난 더 말할 것도 있
“예정아, 너 소현 씨 어머님이랑 함께 한 유전자 확인 검사 결과 나왔지?”전태윤은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더는 본인에 관한 스캔들을 듣고 싶지 않았으니까.그는 단지 사랑에 빠졌다는 걸 자랑하고 싶어서 카카오 스토리에 유부남이란 사실을 공개했을 뿐인데 이렇게 큰 여파가 몰아올 줄은 예상치 못했다. 그의 아내까지 종일 그에 관한 스캔들만 들었으니 말이다.“소현 씨가 내일 결과서를 가지러 간대요.”전태윤이 알겠다며 대답한 후 곧이어 말을 이었다.“만약 결과서에 너랑 소현 씨 어머님이 혈연관계가 있다고 나오면 꼭 다시 만날 거야. 그땐 내가 너랑 함께 성씨 일가에 못 갈 것 같아. 내일 출장 가야 하거든.”하예정이 머리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난 또 태윤 씨가 출장 안 가도 되는 줄 알았어요.”전태윤은 묵묵히 그녀를 바라봤다.역시나 그녀는 전태윤이 빨리 출장 가길 바랐다.다만 그는 너무 두려웠다. 출장 갔다가 돌아오면 하예정이 아예 그를 기억하지 못할까 봐...“티켓 끊었어요? 몇 시 비행기예요? 내가 공항까지 바래다줄게요. 내일 아침 일찍 깨나서 태윤 씨 짐 정리를 도와줄게요.”하예정은 자신이 매우 자상하다고 느껴졌다. 남편이 출장 가니 짐 정리도 도와주고 공항까지 바래다주니 말이다.“오전 10시 35분 비행기야. 공항까지 바래다줄 필요 없어. 오전에 회사로 돌아가서 서류들 챙기고 동료들도 함께 가야 해. 회사에서 공항까지 가는 전용차를 마련해줬어.”하예정은 알겠다며 대답했다.‘그래, 그럼 난 홀가분하고 좋지.’“너랑 소현 씨 어머님 검사 결과가 나오면 내게 문자 보내. 출장 중엔 매우 바삐 돌아칠 거야. 보통 밤늦은 시간엔 문자 볼 시간이 나. 그러니까 문자만 보내면 내가 알아서 볼 거야.”“네, 결과 받으면 바로 문자 보낼게요.”전태윤은 출장 중에 바쁘니 밤이 깊어야만 문자를 확인할 수 있다고 일부러 강조했는데 이는 하예정이 낮에 그에게 전화했다가 성소현도 함께 있을까 봐 두려워서였다.“아 참, 효진이랑 소 대표님 일은 우리
집에 건물이 하도 많아 임대비용을 받다가 지쳐 쓰러질 정도라는 걸 누가 상상이나 해봤을까?심씨 일가가 바로 이런 재벌 가문이다.“그냥 효진이랑 소 대표님이 계속 만나게 놔둬요. 서로 알고 지내다 보면 사랑이 싹틀 거예요.”성소현한테서 소정남에 관한 얘기를 듣자 심효진과 소정남은 같은 부류의 사람인 듯싶었다. 둘은 모두 시끌벅적한 걸 좋아하고 소정남이 생생 정보통이다 보니 모든 가십거리를 제일 먼저 알게 된다.“소 대표님께 물어봤는데 효진 씨를 아주 좋게 보고 있더라고. 대표님께 시간을 좀 줘. 알아서 움직이실 거야. 인제 곧 구정이라 회사 전체가 바삐 돌아치고 있어. 소 대표님의 직급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설 연휴가 시작되면 대표님도 개인감정을 케어할 시간이 생길 거야.”전태윤이 출장 가는 동안 소정남과 전이진은 함께 회사에 남아 분주히 보내야 한다.하예정은 알겠다며 머리를 끄덕였다. 실은 그녀도 심효진을 멀리 시집 보내고 싶지 않았다. 만약 심효진과 소 대표가 함께 있으면 전태윤에게도 매우 유리하다. 소 대표의 도움을 받고 승승장구하여 연봉도 오르고 두 사람의 경제조건도 점점 더 여유로워질 테니까.‘나 지금... 친구 팔아서 돈을 벌려는 거야?’그들 부부는 소개팅에 관한 얘기를 한참 나눴다. 하예정은 팩을 뗄 시간이 다 돼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잠시 후 그녀는 화장실에서 나오더니 곧게 침대 머리맡에 다가가 슬리퍼를 벗고 침대에 누우며 옆자리를 툭툭 쳤다.“태윤 씨, 이리 와요. 내 몸 따뜻하게 녹여줘요. 몸이 따뜻해지면 금세 잠들 것 같단 말이에요.”전태윤은 표정이 확 어두워졌다.“날 핫팩 취급하는 거야?”“핫팩은 충전해야 하잖아요. 당신은 충전할 필요도 없고 핫팩보다 더 따뜻하니 가성비 굿이에요.”전태윤은 말문이 턱 막혔다.그는 가까이 다가와 그녀를 향해 누워서 가볍게 이마를 톡 두드렸다.“그럼 난 너한테 핫팩 말곤 다른 용도는 없는 거야?”“당신한테 달라붙어 몸을 녹이는 것 말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이윤미는 제법 잘 꾸민 정군호가 젊어 보이면서도 멋져 보인다고 생각했다. 이윤미는 정군호가 이은화보다 십여 세 어린 여자를 껴안은 여자 사진을 보더니 혼자 중얼거렸다.“영감님이 젊었을 때는 보기 드문 미남이었겠네. 지금도 나이가 들었지만 잘 차려입으니 너무 잘생겼군.”어쩐지 이은화가 매우 엄격하게 다스리더라니.밖에서 아들이 준 돈으로 여자와 바람을 핀 사실을 이은화가 알아버린다면 이은화는 어떤 느낌일까?같은 시간, 관성.관성 호텔에서 서원 리조트로 돌아온 하예정은 방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하예정은 여전히 너무 졸렸다.전태윤은 그녀와 함께 방으로 돌아갔다.하예정이 방에 들어가 바로 침대에 올라가서 자려는 모습을 본 전태윤은 침대에 다가가 앉더니 웃으면서 말했다.“졸리면 차에서 자도 되는데. 집에 도착하면 내가 안아서 침대에 눕혀줄 텐데.”“겨우 버티며 왔어요. 여보, 나 좀 잘게. 당신도 잘래요? 안 자면 서재에 가서 책 좀 보시겠어요?”전태윤은 그녀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얼른 자. 난 안 졸려.”하예정은 눈을 감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하예정이 몇 분 만에 달콤하게 잠든 것을 보고 전태윤은 몸을 숙여 그녀의 이마에 뽀뽀해 주었다. 그리고 손을 하예정의 평평한 아랫배에 올려놓으며 그녀의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예정아, 수고했어.”전태윤은 그 자리에서 잠시 앉아 있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침에서 나와 작은 서재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책들이 놓여 있었다. 그 책들은 임신에 관한 지식 책이었다. 전태윤은 이미 다 읽었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전태윤은 책 한 권의 내용을 모두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하예정이 임신하기 전에 전태윤은 임신에 관한 지식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나 하예정이 임신한 후에는 비록 많은 사람이 전태윤을 도와 함께 하예정을 돌봤지만, 그는 여전히 직접 아내를 돌보고 싶었다.그리고 서점으로 달려가 임신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사고는 소정남을 찾아가 소정남이 산 책들이 자신이 산 책과 비슷한 것을
이윤정은 전호영을 언급할 때 마다 이를 악물면서 전호영이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고현을 빼앗아 갔다면서 욕설을 퍼부었다.“윤미 씨 아버지께서 바람난 일을 전호영 도련님께 맡겨보는 건 어떠세요? 전호영 도련님은 안팎으로 이씨 가문을 괴롭히거든요.”이씨 가문 사람들에게는 전호영이 적수나 다름없다.이씨 가문과 이경혜 자매의 관계, 그리고 이윤미가 관성 쪽에 대한 태도를 생각하던 방윤림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방윤림은 아마도 이윤미가 관성 쪽의 사람들과 적수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여겼다.이윤미는 이씨 가문의 전임 가주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조사하려고 했다.방윤림은 만약 전임 가주가 이은화의 손에 죽었다는 증거가 나오기만 하면 이윤미가 더는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이씨 가문을 떠나 그녀의 작은 세계로 돌아가리라 추측했다.아니, 그녀가 반드시 원래 생활로 돌아갈 것이라고 확신했다.이윤미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연약한 사람이 아니다.사실, 이씨 가문에 돌아가기 전에 이윤미는 이미 사업에 성공한 젊은 여자였다. 이윤미의 양부모가 늘 그녀의 피를 빨아들이려는 생각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회사의 대표라는 사실을 계속 숨기고 있었다.이윤미는 사람들이 그녀를 연약하고 무능한 사람인 줄로 알게 하여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이윤정일 수도 있으리라 추측하게 했다.그러나 이씨 가문의 철칙은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일이다.이윤정은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니기도 했고 또한 이윤정의 능력도 훌륭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윤정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그녀가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닌 것이 밝혀진 이상 이씨 가문을 이어받을 자격을 잃게 될 것이다.이윤미가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호영 씨도 이 사실을 알아 버린 이상 모른 체 하지 않을 거예요. 호영 씨는 원래 이씨 가문이 잘 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끼어들지 않아도 스스로 그 사실을 터뜨릴 겁니다.”“우리가 아무런 수를 쓰지 않아도 증거가 호영 씨의 손에 있는 이상 가만히 있지
아무튼, 그 여자가 어느 우두머리의 내연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정군호도 몰랐을 것이다. 아니면 그런 사람의 내연녀를 건드리지는 않았을 것이다.영상과 사진을 본 이윤미는 방윤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그냥 놔둬요. 제 카카오톡 기록도 삭제할 거예요. 제가 만약 저장해 두면 우리 어머니께서 돌아와서 저를 의심하게 되면서 제 휴대전화를 볼 수도 있으니까요.]방윤림이 회답했다.[제가 이미 저장했습니다. 윤미 씨는 식사하셨어요?”[먹고 있어요. 배달시켰거든요.]방윤림은 눈살을 찌푸렸다.[자꾸 배달 음식을 시키지 마세요. 회사에 식당도 있는데... 정 시간이 안 되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앞으로 제가 매일 요리를 해서 가져다드리겠습니다.]이윤미는 방윤림이 보낸 메시지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이씨 가문에 돌아온 뒤로 이윤미는 고군분투했다. 아무도 그녀를 관심해 주지 않았다.이은화조차도 진정으로 이윤미와 한마음이 아니었다.이은화는 이윤미 혼자만의 어머니가 아니었고 오빠와 이윤정이 어머니이기도 했다.이윤정은 이은화의 앞에서 자연스럽게 애교를 부릴 수 있었지만, 이윤미는 그런 애교를 부릴 수 없었다.다행히도 방윤림이 이윤미의 곁으로 와주었다.이윤미는 방윤림이 그녀의 곁에 있는 의미를 깨달은 뒤로 그에 대한 믿음이 가족보다 더 깊어졌고 방윤림 또한 그녀를 많이 도와줬다.방윤림이 처음 이윤미의 곁에 왔을 때 이윤미에게 앞으로 누구든 이윤미의 곁은 떠날 수 있겠지만, 방윤림만은 이윤미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방윤림이 이윤미 곁으로 파견된 그 순간부터 그는 죽지 않는 한 이윤미에게 충성하면서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만약 방윤림이 죽는다고 해도 누군가가 재빨리 그를 대신할 것이기 때문에 이윤미의 곁에는 늘 충성을 다 하는 심복이 따라다닐 것이다.방윤림은 모든 것을 할 줄 아는 진정한 능력자였다.물론 요리 실력도 훌륭하기 때문에 그가 한 요리는 매우 맛있었다.이윤미는 타자속도가 너무 늦다고 느껴 음성통화를 걸었다.
고현은 전호영의 옷을 잡아당겼다.전호영은 그녀를 따라 걸으며 말을 했다.“이 대표님도 언제쯤이면 돌아오실지... 정말 이씨 가문의 이 재미있는 연극을 보고 싶네요.”고현은 전호영을 힐끗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설령 이 대표님이 남편이 밖에서 바람피우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더라고 밖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고 정군호 씨를 데리고 가서 문을 닫고 난리 칠 거예요. 호영 씨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을 거예요.”전호영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건넸다.“이윤미 씨가 있잖아요. 이윤미 씨가 이씨 가문 겉면의 평화를 깨뜨렸는데 윤미 씨의 아버지 스캔들을 숨길 수 있겠어요? 저는 믿지 못하겠어요. 윤미 씨도 쉽지 않은 사람이에요. 이씨 가문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기회를 보면서 이씨 가문의 도련님들을 한꺼번에 정리할 생각일 거예요.”“그 문제 덩이 사람들만 없다면 이씨 그룹에서 윤미 씨의 지위는 더 확고해질 수 있잖아요. 역시 이 대표님 친딸답네요. 자신의 가족들을 이토록 모질게 다루다니.”고현은 한참 말을 하지 않았다.그리고는 이윤미를 대신해 몇 마디 했다.“윤미 씨는 이씨 가문 여자들의 독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이 대표님과는 조금 달라요. 제가 장담하건대 윤미 씨는 윤미 씨의 오빠들을 최대한 이씨 그룹에서 쫓아내지 않을 거예요. 그들이 이씨 그룹에서 파벌을 만드는 것을 방지하고 사적으로 이득을 챙기는 것을 방지할 뿐이죠. 이 대표님처럼 가족들을 해치지는 않을 거예요.”전호영은 고현이 이윤미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보더니 더는 이윤미에 관한 나쁜 얘기를 이어가지 않고 화제를 바꾸었다.전호영 일행은 호텔에 들어간 뒤 전호영의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으로 갔다. 그 안에는 뷔페가 있었기 때문에 고현은 그녀가 먹고 싶은 음식들을 다 먹을 수 있었다.전호영은 정군호가 내연녀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몰래 사람을 시켜 정군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게 했다.그리고 정군호가 내연녀를 데리고 룸에 들어가면 그들
그 뒤로 이윤미가 그녀의 오빠들과 내연녀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몇 명의 형수님들이 속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형수님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후로 이윤미의 오빠들과 형수님들이 말다툼하기 시작했다.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현은 이윤미가 잘했다고 생각했다.바람을 피운 사람이 자기 오빠라고 감싸면서 오빠들을 도와 형수님들을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자기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모든 사람이 다 알지만, 본인만 모른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이때 전호영이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정군호 씨가 그렇게 멍청하지 않을걸요. 이 대표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정군호 씨는 틀림없이 나가서 바람피우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이 대표님을 도와야 한다고 봐요. 못 봤으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현장을 목격했잖아요. 이 대표님을 만나면 알려줘야 해요. 어쨌든 우리 형수님의 이모시기 때문에 우리 형수님의 친척이나 다름없죠. 안 그래요?”고현은 전호영을 꾸지람했다.“호영 씨도 정말 나쁘네요. 이씨 가문에서 난리가 났으면 좋겠죠? 그런데 저도 호영 씨를 지지할 거에요. 이러고 보니 저도 좋은 사람은 아닌가 봐요.”“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죠. 정군호 씨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보세요. 정군호 씨가 잘못한 것을 우리가 바로잡아준 거죠. 이 대표님을 위한 것이지 모함하거나 억울하게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저처럼 일편단심인 남자는 정군호 씨의 이런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요. 만약 집안의 아내가 싫으면 이혼할 것이지... 이혼하기는 싫고 또 밖에서 예쁜 여자들이랑 놀고는 싶고... 두 마리 토끼는 다 잡을 수 없는 법이죠. 하늘 아래 어떻게 그런 좋은 일이 있겠어요?”전호영은 정군호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하루 호텔도 카메라가 있었기에 정군호가 내연녀를 껴안고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꼭 찍혔을 것이다.전호영이 정군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아니었다.“이 대표님이 그토록 기가 센데
“저는 배려심이 깊은 신사에요.”고현은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리면서 전호영의 신사다운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하지만 전호영이 고현의 손을 잡고 함께 호텔로 들어가려고 하자 고현은 거절했다.전호영의 안색은 이내 어두워졌다.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시종 전호영과 연인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았다.고현이 말한 것처럼 그녀는 전호영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앞으로나란히 몇 걸음 걷더니 고현이 갑자기 멈추었다.“왜 그러세요?”전호영이 물었다.‘설마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만났나?’전호영은 앞을 보았지만,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보지 못했다.“정군호 씨예요.”고현은 낮은 목소리로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한 뒤 전호영을 잡아당겨 차 뒤로 숨었다. 그녀의 경호원 팀은 고현이 위험한 줄로 알고 본능적으로 최대한 빨리 고현의 앞으로 돌진하며 위험을 막으려고 했다.“얼른 숨으세요. 저를 막지 마시고!”고현은 나지막이 경호원 팀에게 말했다.고현이 누군가의 가십거리를 보고 싶어 했던 모양이다.고현은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옷을 입은 늙은 남자를 가리켰다. 그 늙은 남자는 천가 같은 얼굴과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를 껴안고 있었다.그 여성의 곁을 지나가는 남자라면 모두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몇 번 더 쳐다보았다.“저 남자는 이윤미의 친아버지이자 이 대표님의 남편인 정군호 씨예요. 그 옆에 있는 여자는 저도 잘 몰라요. 놀랍게도 밖에서 내연녀를 만나고 있었네요. 만약 이 대표님께 들킨다면 정말 정군호 씨를 죽여놓을지도 몰라요.”이은화의 남편이라는 말을 들은 전호영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정군호와 내연녀의 동영상을 찍었다.그리고 말했다.“이 대표님은 우리 큰형의 결혼식에 가신 뒤로 계속 관성에 남아계시거든요. 아마도 정군호 씨는 이 대표님이 없는 틈을 타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양이네요”고현도 말을 이었다.“이 대표님께서 남편을 너무 엄격하게 단속하니까 정군호 씨도 아마 진짜로 바람 피우지는 못할 거에요. 기껏해야 지
고현은 사실 그대로 대답했다.“저는 어른이 된 후로 여행을 갈 시간이 없었어요. 바빠서 미치겠는데 언제 시간을 내서 놀러 가겠어요? 하지만 출장 다니면서 많은 곳은 가봤어요.”“신혼여행은 어디 가고 싶어요?”전호영이 그녀에게 물었다.고현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이었다.“저는 물이 맑고 공기가 좋은 산을 좋아해요. 조용하거든요.”“제가 잘 연구해서 산 좋고 물이 맑은 조용한 곳을 찾아볼게요.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우리 둘만의 세상을 잘살아 봐야죠.”알고 보니 고현은 산과 물이 있는 아름다운 곳을 좋아했다.전씨 가문의 서원 리조트가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이 있는 곳이고 평소에도 매우 조용한 곳이었다.“서원 리조트를 좋아해요?”“좋아하죠.그럼 서원 리조트에서 신혼여행을 즐기려고요?”전호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그건 아니고요. 그곳은 우리 미래의 집이고 신혼여행은 당연히 딴 곳으로 가야죠.”이때 고현이 자신을 스스로 비웃으며 말했다.“제가 지금 시집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벌써 신혼여행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네요. 호영 씨와 함께하면 쉽게 호영 씨 의도대로 따라간단 말이죠. 저의 총명함과 자제력 모두 호영 씨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니까요.”“현이 씨가 아직도 이 일을 고민하고 있다니. 제가 아직도 부족한가요?”전호영은 자신이 고현을 오랫동안 쫓아다녔다고 느꼈다. 그는 모든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고현을 대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시집을 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하여 전호영은 자신이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어떤 방면에서 잘하지 못했는지 알고 싶었다.“아니에요. 충분히 잘하셨어요. 우리 데이트도 별로 안 하고 평소에도 일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아직 결혼까지 할 정도로 감정이 깊지 않은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말처럼 하루 못 보면 일 년을 못 본 것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저는 몰라요. 그런 감정을 못 느낀다는 건 제가 호영 씨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인 것 같아요. 어
경호원 팀은 그들의 전 대표님이 전호영에게 떠밀려 마이바흐 차에 들어가는 모습을 버젓이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차는 곧 고씨 그룹을 빠져나왔다.고빈이 중얼거렸다.“호영 씨는 정말 내가 본 형부 중 가장 오만방자한 형부였어. 처남인 나에게 조금도 아부하지 않고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다니.”고빈은 중얼중얼하긴 했지만,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만약 고빈이 정말 친형이 있다면 그는 전호영이 그의 친형을 해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따라갔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친형은 사실 여자였다. 그의 누나 고현은 시집가야 하는 여자였다. 전호영은 그의 누나와 어울리는 남자였기 때문에, 또 전호영이 고빈의 부모님께 고빈이 너무 방해한다고 고자질하면 안 되었기에 고빈은 더는 따라가지 않았다.지금 고씨 가문에서 전호영은 고현 남매보다 체면이 훨씬 섰다.“고빈 씨가 안 따라왔죠?”전호영은 차를 몰면서 조수석에 앉은 고현에게 물었다.고현은 돌아볼 필요도 없이 이내 말을 이었다.“고빈이는 입만 살아서 그렇지 정말 따라오지는 않을 거예요. 호영 씨가 우리 부모님 앞에서 고빈의 고자질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죠. 고빈은 저보다 10분 먼저 태어났지만 지금 정해진 여자친구가 없거든요.”“저도 호영 씨랑 짝을 지으니 저희 부모님의 눈길도 자연스레 고빈의 몸으로 옮겨졌어요. 호영 씨가 제 동생의 고자질하면 저희 부모님은 그를 욕하다가 결국 결혼 재촉 문제로 돌아가거든요. 제 동생은 결혼 재촉을 엄청 무서워하거든요.”고빈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고정된 여자친구를 찾지 못한 일에 관해 고현도 마음이 조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그녀에게는 전호영이 있었지만, 고빈의 짝은 아직 어디에 있는지...예전에는 고현은 고빈과 이윤미를 맞세워주려고 했지만, 고빈은 이윤미가 재미없다고 느꼈고 이윤미 또한 고빈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이윤미 곁에 방윤림이 있었다.전호영은 빙그레 웃었다.“저도 항상 고빈 씨의 고자질하고 싶지 않아요.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