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정은 일어나 앉아 그가 놓고 간 대추차를 천천히 마셨다.전태윤의 사랑 때문인지 대추차가 작용을 일으킨 건지, 대추차를 마시고 잠깐 누워있었더니 아까보다 한결 나아졌다. 전태윤이 약을 사 왔을 땐 거의 멀쩡하게 휴대 전화로 뉴스를 보고 있었다.“아프다면서 휴대 전화를 봐?”전태윤은 그녀의 휴대 전화를 빼앗고는 약을 건넸다.“너무 늦어서 약국이 문 다 닫았더라고. 그래서 근처 병원 가서 의사한테 처방까지 떼서 사 왔어. 먹고 자.”하예정은 고개를 들고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왜 그래?”그녀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앞에 서더니 감동한 얼굴로 그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태윤 씨 나한테 너무 잘해주는 거 아니에요?”전태윤도 자연스럽게 그녀를 끌어안았다. 대추차를 다 마신 걸 보고 많이 나아졌을 거란 생각에 사랑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와이프한테 잘해주지 않으면 누구한테 잘해주겠어?”그의 진심을 알아주어 나중에 그녀를 속였다는 걸 알게 되더라도 떠나지 않길 바랐다. 그가 지금까지 잘해주었던 것을 떠올리면 용서해주지 않을까?할머니는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라고 했다. 달콤한 말 같은 건 그도 어색했고 하예정도 듣기 거북해했다. 아무래도 평소에 다정하게 잘해주면서 그녀의 마음을 녹이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하예정도 그에 대한 마음을 열고 점점 깊은 사랑에 빠져 미래도 있게 된다.“태윤 씨.”“응.”“아까 나갈 때 뭘 입고 나갔는지 알아요? 잠옷 차림으로 나갔어요.”화들짝 놀란 전태윤은 그녀를 밀어내며 고개를 숙여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확인했다. 그녀의 말대로 정말 잠옷 차림이었다.“거기에 슬리퍼까지 신고 나갔어요.”전태윤은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았다.‘어쩐지 아까 발가락이 자꾸 시리다 했더니, 슬리퍼 신은 채로 나갔었구나.’다행히 늦은 시간이라 그를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안 그러면 내일 관성 뉴스의 헤드라인에 뜰 뻔했다.“아까 나갈 때 네 걱정만 하느라 뭘 입고 있었는지 신경 쓸 새도 없었어.”전태
그녀가 돈 걱정을 하다니!전씨 가문의 도련님이자 전씨 그룹의 주인인 억만장자 전태윤의 아내가 그가 돈이 없을까 봐 걱정하다니...전태윤은 안고 있던 그녀를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예정은 눈을 깜빡이며 그를 쳐다보았다.‘질투쟁이가 또 삐졌나?’하예정은 그를 따라나섰지만 달래진 않고 따뜻한 물 한잔을 떠와 그가 사다 준 약을 먹었다. 이미지까지 포기하고 잠옷과 슬리퍼 차림으로 사 온 약인데 먹지 않으면 그의 정성을 무시한 격이 된다. 어쩌면 더 화를 낼지도 모른다.얼마 지나지 않아 전태윤은 다시 그녀 곁으로 돌아왔다.“손 내밀어 봐!”그가 명령조로 말했다.“왜 그래요?”고개를 들어보니 그가 빨간 반지 케이스를 들고 있었다.“반지예요?”전태윤은 반지를 꺼내 그녀의 왼손을 잡더니 약손가락에 끼워주었다.“이건 내가 그전에 산 건데 나중에 다이아몬드 반지가 더 이뻐서 그걸로 바꾼 거야. 급한 대로 먼저 이 금반지 끼고 있어. 내일 아침 가게 가서 다시 다이아몬드 반지로 바꿔 껴.”전태윤은 커플 금반지를 샀었다. 원래는 성소현이 알아서 물러나게 하려고 산 것이었는데 그녀 생각에 커플로 샀다. 이제 드디어 제주인을 찾아갔다.하예정의 손에 금반지를 끼워준 후 전태윤은 자신의 금반지도 가져왔다. 잠시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빼고 금반지로 꼈다. 그녀와 커플이라는 걸 일부러 보여주려는 듯싶었다.‘정말 아주 제멋대로고 쉽게 삐진다니까. 거기다가 쩍하면 질투도 하고.’하예정은 속으로 마음껏 투덜거렸다.금반지를 낀 전태윤은 하예정의 손을 잡고 깍지를 끼더니 다른 한 손으로 휴대 전화를 꺼내 깍지 낀 두 사람의 손을 찰칵 찍었다.그 모습에 하예정이 웃음을 터뜨렸다.“카카오 스토리에라도 올릴 생각이에요?”전태윤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가 진짜로 올리려고 하자 하예정이 그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못 말려 정말. 그런데 뭐 나름 이쁘게 나왔네요. 사진 나한테도 보내줘요. 나도 카카오 스토리에 올려서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게. 그런데 늦은 밤에 올리면
전태윤은 하예정을 안고 함께 꿈나라로 빠지려 했다. 그런데 두 눈을 감자마자 문득 뭔가 떠오른 전태윤은 하예정을 살며시 밀어내고 일어나 앉더니 침대 머리맡에 놓인 하예정의 휴대 전화를 잡았다.그가 카카오 스토리에 올렸으니 지인들이 알게 되어 퍼져나가는 건 시간문제다. 전태윤은 사진이 퍼져나가는 게 두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조금만 손을 쓰면 하예정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하예정이 이렇게나 빨리 기자들에게 둘러싸이는 걸 원치 않았다.하지만 하예정이 올린 건 성소현이 볼 가능성이 크다. 하예정과 성소현이 꽤 가깝게 지내고 있으니 분명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았을 것이다.성기현이 다른 사람에게서 그가 올린 사진을 보고 성소현이 하예정이 올린 걸 본다면 대충 비교해봐도 하예정이 그의 아내라는 걸 성소현은 알게 된다. 아직 그와 하예정의 관계를 성소현이 당분간은 알게 해서는 안 된다.하예정과 이경혜의 유전자 검사 결과는 이틀 뒤에 나온다고 한다. 결과가 어떻든 하예정과 성소현이 합이 척척 잘 맞는다는 건 사실이다. 만약 성소현이 그의 정체를 밝힌다면 결과가 어떨지 전태윤은 상상만 해도 두려웠다.그가 하예정의 휴대 전화를 들고 카카오 스토리에 들어가려 했지만 비밀번호가 걸려있었다.“비번.”전태윤이 눈살을 찌푸렸다. 조금 전 하예정이 휴대 전화를 만질 때 힐끗 보긴 했었다.‘비번이 뭐더라?’잠깐 생각하던 전태윤이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하지만 첫 번째도 틀렸고 두 번째도 연달아 틀렸다.전태윤은 손가락의 움직임을 멈추고 침착하려 애를 썼다. 그러면서 하예정이 비밀번호를 입력할 때 어느 숫자 버튼을 눌렀었는지 곰곰이 돌이켜보았다.몇 분의 침묵이 흐른 후, 전태윤은 다시 한번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이번에 드디어 비밀번호를 풀었다.전태윤의 입꼬리가 귀에 걸리다 못해 수천억짜리 계약을 체결한 것보다 더 기뻐하는 것 같았다.그는 재빨리 하예정의 카카오톡 연락처를 뒤져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성소현의 연락처가 있었는데 다행히 본명으로 저장하여 쉽게 찾을 수 있었
“참 다정하단 말이야.”하예정은 옷을 챙긴 후 바로 침대에서 내려오지 않고 한 손에는 옷을, 다른 한 손에는 휴대 전화를 들고 평소처럼 카카오 스토리를 열었다. 밤새 받은 문자는 없었지만 좋아요 개수가 몇 개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사적인 공간을 지키려고 친한 지인들에게만 그녀의 카카오 스토리를 볼 수 있게 설정해놓았고 사업상의 파트너들은 볼 수가 없었다. 하여 평소 소소한 일상을 올려도 보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어젯밤 업로드한 사진에 가장 먼저 좋아요를 누른 사람은 전태윤이었다. 하예정은 순간 멈칫했다.‘우리가 연락처를 서로 추가할 때 내 스토리를 볼 수 있게 설정했었나?’아무래도 연락처를 추가할 때 그가 보지 못하게 설정하는 걸 까먹었나 보다. 혼인신고 한 후 그녀가 만든 공예품과 베란다의 꽃을 올린 것 외에 다른 걸 올린 적이 없어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전태윤의 욕을 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그때 전태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깼어?”운동복 차림인 걸 보니 조깅하고 온 듯싶었다.“이 추운 날에도 아침 일찍 일어나 조깅하네요.”“이미 습관 됐어.”전태윤은 방문을 닫고 다가오더니 침대 옆에 앉아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배 아직도 아파?”“안 아파요.”하예정은 옷과 휴대 전화를 챙기고 침대에서 일어났다.“아직 옷 갈아 안 입죠? 나 먼저 화장실 쓸게요.”“그래, 너 먼저 써. 난 아침 준비할게.”하예정이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할 수 있겠어요?”전태윤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의 표정 변화를 느낀 하예정이 황급히 말했다.“이상한 생각 하지 말아요. 내 말은 태윤 씨가 한 아침을 먹을 수 있겠냐는 거예요.”전태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앞으로 다가가더니 헝클어진 그녀의 머리를 정리해주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네가 직접 시험해봐야 알지.”그녀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대화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하예정은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전씨 그룹에 출근한 후
전태윤의 다정함에 녹아내린 하예정과 달리 성소현은 아직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아침부터 충격을 받았다.전태윤이 하예정의 휴대 전화로 설정을 바꾼 탓에 성소현은 하예정이 올린 사진은 보지 못했지만 새언니가 전태윤이 올린 사진을 그녀에게 보여주었다.성소현이 눈을 뜨자마자 새언니가 노크하고 들어오더니 아무 말 없이 사진 한 장을 클릭하여 보여주었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성소현은 새언니의 뜻을 알아차릴 리가 없었다.성소현이 새언니에게 물었다.“언니, 대체 누구길래 아침부터 솔로인 나한테 보여주면서 충격을 주는 건데요?”새언니는 입을 꾹 다문 채 그녀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사실 그녀는 성소현이 진정한 사랑을 쫓길 바랐다. 그녀의 눈에 전태윤과 성소현이 참 어울렸지만 아쉽게도 전태윤은 성소현에게 관심이 없었다.성소현도 마음을 접으려고 노력했지만 몇 년이 지나도 포기하지 못하자 결국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대시한 것이었다. 그런데 전태윤이 갑자기 자신이 유부남이라고 폭탄선언을 했다.새언니는 전태윤이 성소현에게 충격을 주어 마음을 접게 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줄 알았지만 오늘 아침 남편의 친구가 보낸 사진을 본 순간 사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사진은 다름 아닌 전태윤이 카카오 스토리에 올린 사진이었다.전태윤이 아무런 멘트 없이 사진 한 장만 올렸지만 다들 결혼을 발표했다는 걸 알아챘다.성기현은 그 사진을 아내에게 보내 성소현에게 보여주라고 했다. 그러면 전태윤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접을지도 모르니까.성기현의 아내는 남편에게 아침부터 이런 충격을 주면 성소현의 기분이 온 하루 좋지 않을 거라면서 걱정했었다. 하지만 성기현은 성소현이 언젠가는 알게 된다고 했다. 어쨌거나 관성의 상류 사회 사람들이 다 알게 되면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으니 말이다.그들은 성소현의 가족으로서 다른 사람이 얘기하기 전에 먼저 성소현에게 보여주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괜히 보여주지 않았다가 숨겼다고 오해를 받으면 안 되었다.“언니, 왜 그렇게 봐요? 내가 올린 것도 아닌
새언니는 그런 그녀가 마음 아파 꽉 안아주며 위로를 건넸다.“아가씨, 전태윤 씨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으니 더는 미련 갖지 말고 마음 접어요. 이 세상에 좋은 남자가 전태윤 씨 한 명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포기하면 훨씬 더 좋은 남자가 많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아가씨는 참 좋은 사람이에요. 전태윤 씨가 아가씨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을 부정하지 말아요. 언니 말대로 전태윤 씨를 잊어요. 나랑 기현 씨가 아가씨한테 어울리는 좋은 남자 소개해줄게요. 앞으로 전태윤 씨보다 더 행복하게 살게 해줄게요. 전태윤 씨는 너무 차가워서 그 사람과 결혼해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어요. 생각해봐요. 어떤 여자가 그런 얼음같이 차가운 남자랑 맨날 함께 있으려 하겠어요?”성소현은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어찌나 꽉 깨물었는지 피라도 날까 걱정되어 새언니가 남편을 호되게 욕했다.“기현 씨는 정말 나쁜 사람이에요. 아침부터 날 빌런으로 만들잖아요! 아가씨, 속상하면 그냥 울어요. 울면 한결 나아질 거예요. 내가 남도 아니고 내 앞에서 울어요, 그냥. 아니면 나랑 쇼핑하러 갈래요? 아가씨 사고 싶은 거 다 사요. 쇼핑도 싫으면 친구랑 놀러 갈래요?”성소현은 눈을 비비며 꽉 깨문 아랫입술을 풀었다. 애써 웃음을 짓는 모습이 우는 것보다 더 안쓰러웠다. 성소현이 말했다.“나 괜찮아요, 언니. 사실 진작 알고 있었어요. 태윤 씨가 결혼반지를 낀 걸 본 그날 바로 알았어요. 언니 말이 옳아요. 이 세상에 좋은 남자가 얼마나 많은데 한 남자한테만 목을 맬 순 없죠. 이젠 다른 여자의 남편이니 그만 포기할래요. 드디어 마음을 접을 수 있게 되어서 차라리 잘됐네요.”전태윤이 결혼반지를 낀 걸 본 그날 오빠를 찾아가 한바탕 울었었다. 이제 더는 울고 싶지 않았고 울어도 소용이 없었다.눈물을 흘려서 전태윤이 싱글이 된다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질 정도로 울 수 있었다.“아가씨, 정말 울고 싶지 않아요? 한바탕 울고 나면 한결 나아질 텐데.”성소현은
“난 아가씨 이런 점이 가장 좋아요. 어떤 사람은 상대가 결혼했든 말든 마음에 들면 사랑이라고 떠들어대면서 남의 결혼 생활을 파탄 내버리잖아요. 난 그런 사람이 가장 싫어요.”새언니의 이 말은 진심이었다. 성소현의 됨됨이가 바른 덕에 시댁 식구들처럼 그녀를 예뻐했다. 만약 진상이었더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언니, 나 괜찮으니까 가서 더 자요. 오빠한테도 내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요. 나 성소현이 결혼 못 하는 것도 아닌데 뭐가 걱정이에요.”“알았어요. 그럼 이만 방으로 돌아갈게요. 아가씨도 더 잘 거예요?”“아니요. 이따가 예정 씨한테 가려고요. 아 참, 어제 우리 집 파티셰가 만든 디저트를 먹어봤는데 맛있더라고요. 아직 더 있어요? 있으면 예정 씨랑 효진 씨한테 가져다주려고요. 두 사람 다 디저트를 좋아하거든요.”그녀의 새언니도 디저트를 참 좋아한다.원래는 파티셰 없이 요리사가 다 만들었었지만 새언니가 시집온 후 오빠가 직접 새언니를 위해 파티셰를 모셔왔다. 그 덕에 매일 여러 가지 맛있는 디저트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새언니가 웃으며 말했다.“나도 먹어보니까 맛있더라고요. 오늘 파티셰님한테 몇 가지 해달라고 했는데 내려가서 봐봐요. 아마 다 만들었을 거예요. 예정 씨한테 많이 가져다줘요. 입맛에 맞으면 매일 가져다줘도 돼요.”하예정이 남편의 사촌 여동생일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새언니는 하예정을 만나기도 전에 벌써 그녀에게 호감이 생겼다.“분명 좋아할 거예요.”하예정과 심효진 얘기에 성소현은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새어 나왔다. 누가 절친 아니랄까 봐 두 사람은 먹는 것도 좋아했고 성격도 비슷했다.화제가 자연스럽게 바뀌었고 성소현도 전태윤의 결혼을 잊은 듯했다. 새언니는 그제야 마음 놓고 방으로 돌아갔다.성기현은 방에서 아내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소현이는 괜찮아요?”“아무래도 가장 먼저 알아서 그런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씩씩하더라고요. 하지만 아침부터 또 그 소식을 들었으니 기분이 좋지 않겠죠. 앞으로
성기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그래. 아쉬움이 남아야 인생이지.’...하예정은 언니의 월세방으로 가서 숙희 아주머니와 주우빈을 픽업한 후 전태윤과 함께 가게로 갔다.그녀는 전태윤의 차를 타지 않았지만 전태윤이 기어코 뒤에서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부려 하는 수 없이 따라오게 내버려 두었다.엄마가 곁에 있으니 주우빈의 상태도 한결 나아졌고 숙희 아주머니와도 재미있게 놀았다. 하예진은 그제야 마음 놓고 회사로 출근했다. 아직 수습 기간이 채 끝나지 않아 계속 휴가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가게에 도착하자마자 전태윤이 하예정에게 말했다.“다이아몬드 반지.”하예정이 말했다.“알았어요. 지금 바로 낄게요. 앞으로는 절대 빼지 않고 왼손에 계속 끼고 있을게요.”그녀는 카운터 앞으로 다가가 키로 카운터 서랍을 열었다. 값비싼 다이아몬드 반지가 서랍의 구석에 처박혀있었다.그 광경을 본 전태윤의 낯빛이 확 어두워졌다.‘저렇게 아무렇게나 둔다고?’하예정은 다이아몬드 반지를 꺼내 다시 약손가락에 꼈다. 어젯밤에 잠시 낀 금반지는 오늘 집에서 나오기 전에 뺐다.“봤죠?”하예정이 일부러 손을 펼쳐 보이고 나서야 전태윤이 흐뭇하게 웃었다.“얼른 출근해요. 이러다 늦겠어요.”전태윤은 어이가 없었다.‘맨날 내쫓기만 해! 그렇게 나랑 같이 있기 싫어?’“우빈아.”안에서 나오던 심효진이 주우빈을 보자마자 활짝 웃으며 다가오더니 주우빈을 번쩍 안아 들고는 전태윤에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인사를 대신했다.원래는 아내에게 입맞춤한 후 출근할 계획이었지만 심효진이 나타난 바람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전태윤도 고개를 끄덕이며 심효진에게 인사했다. 그러고는 이미 곁을 떠난 여자를 그윽하게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그런데 몇 걸음 가지도 않고 다시 고개를 돌려 하예정을 쳐다보았다.심효진은 하예정이 손에 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발견했다. 하예정이 마침 손을 내밀며 심효진에게 반지를 자랑하던 참이라 전태윤을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그 모습에 전태윤은 기분이 확 다운되었
이윤미는 제법 잘 꾸민 정군호가 젊어 보이면서도 멋져 보인다고 생각했다. 이윤미는 정군호가 이은화보다 십여 세 어린 여자를 껴안은 여자 사진을 보더니 혼자 중얼거렸다.“영감님이 젊었을 때는 보기 드문 미남이었겠네. 지금도 나이가 들었지만 잘 차려입으니 너무 잘생겼군.”어쩐지 이은화가 매우 엄격하게 다스리더라니.밖에서 아들이 준 돈으로 여자와 바람을 핀 사실을 이은화가 알아버린다면 이은화는 어떤 느낌일까?같은 시간, 관성.관성 호텔에서 서원 리조트로 돌아온 하예정은 방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하예정은 여전히 너무 졸렸다.전태윤은 그녀와 함께 방으로 돌아갔다.하예정이 방에 들어가 바로 침대에 올라가서 자려는 모습을 본 전태윤은 침대에 다가가 앉더니 웃으면서 말했다.“졸리면 차에서 자도 되는데. 집에 도착하면 내가 안아서 침대에 눕혀줄 텐데.”“겨우 버티며 왔어요. 여보, 나 좀 잘게. 당신도 잘래요? 안 자면 서재에 가서 책 좀 보시겠어요?”전태윤은 그녀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얼른 자. 난 안 졸려.”하예정은 눈을 감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하예정이 몇 분 만에 달콤하게 잠든 것을 보고 전태윤은 몸을 숙여 그녀의 이마에 뽀뽀해 주었다. 그리고 손을 하예정의 평평한 아랫배에 올려놓으며 그녀의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예정아, 수고했어.”전태윤은 그 자리에서 잠시 앉아 있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침에서 나와 작은 서재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책들이 놓여 있었다. 그 책들은 임신에 관한 지식 책이었다. 전태윤은 이미 다 읽었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전태윤은 책 한 권의 내용을 모두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하예정이 임신하기 전에 전태윤은 임신에 관한 지식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나 하예정이 임신한 후에는 비록 많은 사람이 전태윤을 도와 함께 하예정을 돌봤지만, 그는 여전히 직접 아내를 돌보고 싶었다.그리고 서점으로 달려가 임신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사고는 소정남을 찾아가 소정남이 산 책들이 자신이 산 책과 비슷한 것을
이윤정은 전호영을 언급할 때 마다 이를 악물면서 전호영이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고현을 빼앗아 갔다면서 욕설을 퍼부었다.“윤미 씨 아버지께서 바람난 일을 전호영 도련님께 맡겨보는 건 어떠세요? 전호영 도련님은 안팎으로 이씨 가문을 괴롭히거든요.”이씨 가문 사람들에게는 전호영이 적수나 다름없다.이씨 가문과 이경혜 자매의 관계, 그리고 이윤미가 관성 쪽에 대한 태도를 생각하던 방윤림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방윤림은 아마도 이윤미가 관성 쪽의 사람들과 적수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여겼다.이윤미는 이씨 가문의 전임 가주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조사하려고 했다.방윤림은 만약 전임 가주가 이은화의 손에 죽었다는 증거가 나오기만 하면 이윤미가 더는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이씨 가문을 떠나 그녀의 작은 세계로 돌아가리라 추측했다.아니, 그녀가 반드시 원래 생활로 돌아갈 것이라고 확신했다.이윤미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연약한 사람이 아니다.사실, 이씨 가문에 돌아가기 전에 이윤미는 이미 사업에 성공한 젊은 여자였다. 이윤미의 양부모가 늘 그녀의 피를 빨아들이려는 생각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회사의 대표라는 사실을 계속 숨기고 있었다.이윤미는 사람들이 그녀를 연약하고 무능한 사람인 줄로 알게 하여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이윤정일 수도 있으리라 추측하게 했다.그러나 이씨 가문의 철칙은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일이다.이윤정은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니기도 했고 또한 이윤정의 능력도 훌륭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윤정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그녀가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닌 것이 밝혀진 이상 이씨 가문을 이어받을 자격을 잃게 될 것이다.이윤미가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호영 씨도 이 사실을 알아 버린 이상 모른 체 하지 않을 거예요. 호영 씨는 원래 이씨 가문이 잘 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끼어들지 않아도 스스로 그 사실을 터뜨릴 겁니다.”“우리가 아무런 수를 쓰지 않아도 증거가 호영 씨의 손에 있는 이상 가만히 있지
아무튼, 그 여자가 어느 우두머리의 내연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정군호도 몰랐을 것이다. 아니면 그런 사람의 내연녀를 건드리지는 않았을 것이다.영상과 사진을 본 이윤미는 방윤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그냥 놔둬요. 제 카카오톡 기록도 삭제할 거예요. 제가 만약 저장해 두면 우리 어머니께서 돌아와서 저를 의심하게 되면서 제 휴대전화를 볼 수도 있으니까요.]방윤림이 회답했다.[제가 이미 저장했습니다. 윤미 씨는 식사하셨어요?”[먹고 있어요. 배달시켰거든요.]방윤림은 눈살을 찌푸렸다.[자꾸 배달 음식을 시키지 마세요. 회사에 식당도 있는데... 정 시간이 안 되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앞으로 제가 매일 요리를 해서 가져다드리겠습니다.]이윤미는 방윤림이 보낸 메시지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이씨 가문에 돌아온 뒤로 이윤미는 고군분투했다. 아무도 그녀를 관심해 주지 않았다.이은화조차도 진정으로 이윤미와 한마음이 아니었다.이은화는 이윤미 혼자만의 어머니가 아니었고 오빠와 이윤정이 어머니이기도 했다.이윤정은 이은화의 앞에서 자연스럽게 애교를 부릴 수 있었지만, 이윤미는 그런 애교를 부릴 수 없었다.다행히도 방윤림이 이윤미의 곁으로 와주었다.이윤미는 방윤림이 그녀의 곁에 있는 의미를 깨달은 뒤로 그에 대한 믿음이 가족보다 더 깊어졌고 방윤림 또한 그녀를 많이 도와줬다.방윤림이 처음 이윤미의 곁에 왔을 때 이윤미에게 앞으로 누구든 이윤미의 곁은 떠날 수 있겠지만, 방윤림만은 이윤미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방윤림이 이윤미 곁으로 파견된 그 순간부터 그는 죽지 않는 한 이윤미에게 충성하면서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만약 방윤림이 죽는다고 해도 누군가가 재빨리 그를 대신할 것이기 때문에 이윤미의 곁에는 늘 충성을 다 하는 심복이 따라다닐 것이다.방윤림은 모든 것을 할 줄 아는 진정한 능력자였다.물론 요리 실력도 훌륭하기 때문에 그가 한 요리는 매우 맛있었다.이윤미는 타자속도가 너무 늦다고 느껴 음성통화를 걸었다.
고현은 전호영의 옷을 잡아당겼다.전호영은 그녀를 따라 걸으며 말을 했다.“이 대표님도 언제쯤이면 돌아오실지... 정말 이씨 가문의 이 재미있는 연극을 보고 싶네요.”고현은 전호영을 힐끗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설령 이 대표님이 남편이 밖에서 바람피우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더라고 밖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고 정군호 씨를 데리고 가서 문을 닫고 난리 칠 거예요. 호영 씨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을 거예요.”전호영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건넸다.“이윤미 씨가 있잖아요. 이윤미 씨가 이씨 가문 겉면의 평화를 깨뜨렸는데 윤미 씨의 아버지 스캔들을 숨길 수 있겠어요? 저는 믿지 못하겠어요. 윤미 씨도 쉽지 않은 사람이에요. 이씨 가문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기회를 보면서 이씨 가문의 도련님들을 한꺼번에 정리할 생각일 거예요.”“그 문제 덩이 사람들만 없다면 이씨 그룹에서 윤미 씨의 지위는 더 확고해질 수 있잖아요. 역시 이 대표님 친딸답네요. 자신의 가족들을 이토록 모질게 다루다니.”고현은 한참 말을 하지 않았다.그리고는 이윤미를 대신해 몇 마디 했다.“윤미 씨는 이씨 가문 여자들의 독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이 대표님과는 조금 달라요. 제가 장담하건대 윤미 씨는 윤미 씨의 오빠들을 최대한 이씨 그룹에서 쫓아내지 않을 거예요. 그들이 이씨 그룹에서 파벌을 만드는 것을 방지하고 사적으로 이득을 챙기는 것을 방지할 뿐이죠. 이 대표님처럼 가족들을 해치지는 않을 거예요.”전호영은 고현이 이윤미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보더니 더는 이윤미에 관한 나쁜 얘기를 이어가지 않고 화제를 바꾸었다.전호영 일행은 호텔에 들어간 뒤 전호영의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으로 갔다. 그 안에는 뷔페가 있었기 때문에 고현은 그녀가 먹고 싶은 음식들을 다 먹을 수 있었다.전호영은 정군호가 내연녀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몰래 사람을 시켜 정군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게 했다.그리고 정군호가 내연녀를 데리고 룸에 들어가면 그들
그 뒤로 이윤미가 그녀의 오빠들과 내연녀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몇 명의 형수님들이 속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형수님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후로 이윤미의 오빠들과 형수님들이 말다툼하기 시작했다.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현은 이윤미가 잘했다고 생각했다.바람을 피운 사람이 자기 오빠라고 감싸면서 오빠들을 도와 형수님들을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자기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모든 사람이 다 알지만, 본인만 모른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이때 전호영이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정군호 씨가 그렇게 멍청하지 않을걸요. 이 대표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정군호 씨는 틀림없이 나가서 바람피우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이 대표님을 도와야 한다고 봐요. 못 봤으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현장을 목격했잖아요. 이 대표님을 만나면 알려줘야 해요. 어쨌든 우리 형수님의 이모시기 때문에 우리 형수님의 친척이나 다름없죠. 안 그래요?”고현은 전호영을 꾸지람했다.“호영 씨도 정말 나쁘네요. 이씨 가문에서 난리가 났으면 좋겠죠? 그런데 저도 호영 씨를 지지할 거에요. 이러고 보니 저도 좋은 사람은 아닌가 봐요.”“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죠. 정군호 씨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보세요. 정군호 씨가 잘못한 것을 우리가 바로잡아준 거죠. 이 대표님을 위한 것이지 모함하거나 억울하게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저처럼 일편단심인 남자는 정군호 씨의 이런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요. 만약 집안의 아내가 싫으면 이혼할 것이지... 이혼하기는 싫고 또 밖에서 예쁜 여자들이랑 놀고는 싶고... 두 마리 토끼는 다 잡을 수 없는 법이죠. 하늘 아래 어떻게 그런 좋은 일이 있겠어요?”전호영은 정군호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하루 호텔도 카메라가 있었기에 정군호가 내연녀를 껴안고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꼭 찍혔을 것이다.전호영이 정군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아니었다.“이 대표님이 그토록 기가 센데
“저는 배려심이 깊은 신사에요.”고현은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리면서 전호영의 신사다운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하지만 전호영이 고현의 손을 잡고 함께 호텔로 들어가려고 하자 고현은 거절했다.전호영의 안색은 이내 어두워졌다.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시종 전호영과 연인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았다.고현이 말한 것처럼 그녀는 전호영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앞으로나란히 몇 걸음 걷더니 고현이 갑자기 멈추었다.“왜 그러세요?”전호영이 물었다.‘설마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만났나?’전호영은 앞을 보았지만,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보지 못했다.“정군호 씨예요.”고현은 낮은 목소리로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한 뒤 전호영을 잡아당겨 차 뒤로 숨었다. 그녀의 경호원 팀은 고현이 위험한 줄로 알고 본능적으로 최대한 빨리 고현의 앞으로 돌진하며 위험을 막으려고 했다.“얼른 숨으세요. 저를 막지 마시고!”고현은 나지막이 경호원 팀에게 말했다.고현이 누군가의 가십거리를 보고 싶어 했던 모양이다.고현은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옷을 입은 늙은 남자를 가리켰다. 그 늙은 남자는 천가 같은 얼굴과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를 껴안고 있었다.그 여성의 곁을 지나가는 남자라면 모두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몇 번 더 쳐다보았다.“저 남자는 이윤미의 친아버지이자 이 대표님의 남편인 정군호 씨예요. 그 옆에 있는 여자는 저도 잘 몰라요. 놀랍게도 밖에서 내연녀를 만나고 있었네요. 만약 이 대표님께 들킨다면 정말 정군호 씨를 죽여놓을지도 몰라요.”이은화의 남편이라는 말을 들은 전호영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정군호와 내연녀의 동영상을 찍었다.그리고 말했다.“이 대표님은 우리 큰형의 결혼식에 가신 뒤로 계속 관성에 남아계시거든요. 아마도 정군호 씨는 이 대표님이 없는 틈을 타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양이네요”고현도 말을 이었다.“이 대표님께서 남편을 너무 엄격하게 단속하니까 정군호 씨도 아마 진짜로 바람 피우지는 못할 거에요. 기껏해야 지
고현은 사실 그대로 대답했다.“저는 어른이 된 후로 여행을 갈 시간이 없었어요. 바빠서 미치겠는데 언제 시간을 내서 놀러 가겠어요? 하지만 출장 다니면서 많은 곳은 가봤어요.”“신혼여행은 어디 가고 싶어요?”전호영이 그녀에게 물었다.고현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이었다.“저는 물이 맑고 공기가 좋은 산을 좋아해요. 조용하거든요.”“제가 잘 연구해서 산 좋고 물이 맑은 조용한 곳을 찾아볼게요.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우리 둘만의 세상을 잘살아 봐야죠.”알고 보니 고현은 산과 물이 있는 아름다운 곳을 좋아했다.전씨 가문의 서원 리조트가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이 있는 곳이고 평소에도 매우 조용한 곳이었다.“서원 리조트를 좋아해요?”“좋아하죠.그럼 서원 리조트에서 신혼여행을 즐기려고요?”전호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그건 아니고요. 그곳은 우리 미래의 집이고 신혼여행은 당연히 딴 곳으로 가야죠.”이때 고현이 자신을 스스로 비웃으며 말했다.“제가 지금 시집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벌써 신혼여행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네요. 호영 씨와 함께하면 쉽게 호영 씨 의도대로 따라간단 말이죠. 저의 총명함과 자제력 모두 호영 씨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니까요.”“현이 씨가 아직도 이 일을 고민하고 있다니. 제가 아직도 부족한가요?”전호영은 자신이 고현을 오랫동안 쫓아다녔다고 느꼈다. 그는 모든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고현을 대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시집을 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하여 전호영은 자신이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어떤 방면에서 잘하지 못했는지 알고 싶었다.“아니에요. 충분히 잘하셨어요. 우리 데이트도 별로 안 하고 평소에도 일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아직 결혼까지 할 정도로 감정이 깊지 않은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말처럼 하루 못 보면 일 년을 못 본 것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저는 몰라요. 그런 감정을 못 느낀다는 건 제가 호영 씨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인 것 같아요. 어
경호원 팀은 그들의 전 대표님이 전호영에게 떠밀려 마이바흐 차에 들어가는 모습을 버젓이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차는 곧 고씨 그룹을 빠져나왔다.고빈이 중얼거렸다.“호영 씨는 정말 내가 본 형부 중 가장 오만방자한 형부였어. 처남인 나에게 조금도 아부하지 않고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다니.”고빈은 중얼중얼하긴 했지만,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만약 고빈이 정말 친형이 있다면 그는 전호영이 그의 친형을 해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따라갔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친형은 사실 여자였다. 그의 누나 고현은 시집가야 하는 여자였다. 전호영은 그의 누나와 어울리는 남자였기 때문에, 또 전호영이 고빈의 부모님께 고빈이 너무 방해한다고 고자질하면 안 되었기에 고빈은 더는 따라가지 않았다.지금 고씨 가문에서 전호영은 고현 남매보다 체면이 훨씬 섰다.“고빈 씨가 안 따라왔죠?”전호영은 차를 몰면서 조수석에 앉은 고현에게 물었다.고현은 돌아볼 필요도 없이 이내 말을 이었다.“고빈이는 입만 살아서 그렇지 정말 따라오지는 않을 거예요. 호영 씨가 우리 부모님 앞에서 고빈의 고자질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죠. 고빈은 저보다 10분 먼저 태어났지만 지금 정해진 여자친구가 없거든요.”“저도 호영 씨랑 짝을 지으니 저희 부모님의 눈길도 자연스레 고빈의 몸으로 옮겨졌어요. 호영 씨가 제 동생의 고자질하면 저희 부모님은 그를 욕하다가 결국 결혼 재촉 문제로 돌아가거든요. 제 동생은 결혼 재촉을 엄청 무서워하거든요.”고빈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고정된 여자친구를 찾지 못한 일에 관해 고현도 마음이 조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그녀에게는 전호영이 있었지만, 고빈의 짝은 아직 어디에 있는지...예전에는 고현은 고빈과 이윤미를 맞세워주려고 했지만, 고빈은 이윤미가 재미없다고 느꼈고 이윤미 또한 고빈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이윤미 곁에 방윤림이 있었다.전호영은 빙그레 웃었다.“저도 항상 고빈 씨의 고자질하고 싶지 않아요.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