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가씨 이런 점이 가장 좋아요. 어떤 사람은 상대가 결혼했든 말든 마음에 들면 사랑이라고 떠들어대면서 남의 결혼 생활을 파탄 내버리잖아요. 난 그런 사람이 가장 싫어요.”새언니의 이 말은 진심이었다. 성소현의 됨됨이가 바른 덕에 시댁 식구들처럼 그녀를 예뻐했다. 만약 진상이었더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언니, 나 괜찮으니까 가서 더 자요. 오빠한테도 내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요. 나 성소현이 결혼 못 하는 것도 아닌데 뭐가 걱정이에요.”“알았어요. 그럼 이만 방으로 돌아갈게요. 아가씨도 더 잘 거예요?”“아니요. 이따가 예정 씨한테 가려고요. 아 참, 어제 우리 집 파티셰가 만든 디저트를 먹어봤는데 맛있더라고요. 아직 더 있어요? 있으면 예정 씨랑 효진 씨한테 가져다주려고요. 두 사람 다 디저트를 좋아하거든요.”그녀의 새언니도 디저트를 참 좋아한다.원래는 파티셰 없이 요리사가 다 만들었었지만 새언니가 시집온 후 오빠가 직접 새언니를 위해 파티셰를 모셔왔다. 그 덕에 매일 여러 가지 맛있는 디저트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새언니가 웃으며 말했다.“나도 먹어보니까 맛있더라고요. 오늘 파티셰님한테 몇 가지 해달라고 했는데 내려가서 봐봐요. 아마 다 만들었을 거예요. 예정 씨한테 많이 가져다줘요. 입맛에 맞으면 매일 가져다줘도 돼요.”하예정이 남편의 사촌 여동생일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새언니는 하예정을 만나기도 전에 벌써 그녀에게 호감이 생겼다.“분명 좋아할 거예요.”하예정과 심효진 얘기에 성소현은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새어 나왔다. 누가 절친 아니랄까 봐 두 사람은 먹는 것도 좋아했고 성격도 비슷했다.화제가 자연스럽게 바뀌었고 성소현도 전태윤의 결혼을 잊은 듯했다. 새언니는 그제야 마음 놓고 방으로 돌아갔다.성기현은 방에서 아내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소현이는 괜찮아요?”“아무래도 가장 먼저 알아서 그런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씩씩하더라고요. 하지만 아침부터 또 그 소식을 들었으니 기분이 좋지 않겠죠. 앞으로
성기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그래. 아쉬움이 남아야 인생이지.’...하예정은 언니의 월세방으로 가서 숙희 아주머니와 주우빈을 픽업한 후 전태윤과 함께 가게로 갔다.그녀는 전태윤의 차를 타지 않았지만 전태윤이 기어코 뒤에서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부려 하는 수 없이 따라오게 내버려 두었다.엄마가 곁에 있으니 주우빈의 상태도 한결 나아졌고 숙희 아주머니와도 재미있게 놀았다. 하예진은 그제야 마음 놓고 회사로 출근했다. 아직 수습 기간이 채 끝나지 않아 계속 휴가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가게에 도착하자마자 전태윤이 하예정에게 말했다.“다이아몬드 반지.”하예정이 말했다.“알았어요. 지금 바로 낄게요. 앞으로는 절대 빼지 않고 왼손에 계속 끼고 있을게요.”그녀는 카운터 앞으로 다가가 키로 카운터 서랍을 열었다. 값비싼 다이아몬드 반지가 서랍의 구석에 처박혀있었다.그 광경을 본 전태윤의 낯빛이 확 어두워졌다.‘저렇게 아무렇게나 둔다고?’하예정은 다이아몬드 반지를 꺼내 다시 약손가락에 꼈다. 어젯밤에 잠시 낀 금반지는 오늘 집에서 나오기 전에 뺐다.“봤죠?”하예정이 일부러 손을 펼쳐 보이고 나서야 전태윤이 흐뭇하게 웃었다.“얼른 출근해요. 이러다 늦겠어요.”전태윤은 어이가 없었다.‘맨날 내쫓기만 해! 그렇게 나랑 같이 있기 싫어?’“우빈아.”안에서 나오던 심효진이 주우빈을 보자마자 활짝 웃으며 다가오더니 주우빈을 번쩍 안아 들고는 전태윤에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인사를 대신했다.원래는 아내에게 입맞춤한 후 출근할 계획이었지만 심효진이 나타난 바람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전태윤도 고개를 끄덕이며 심효진에게 인사했다. 그러고는 이미 곁을 떠난 여자를 그윽하게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그런데 몇 걸음 가지도 않고 다시 고개를 돌려 하예정을 쳐다보았다.심효진은 하예정이 손에 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발견했다. 하예정이 마침 손을 내밀며 심효진에게 반지를 자랑하던 참이라 전태윤을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그 모습에 전태윤은 기분이 확 다운되었
성소현은 자신이 잘못 본 거라고 생각했다.전태윤은 이동할 때 보통 롤스로이스를 타고 다녔고 경호원들이 탄 검은 차가 몇 대 따라다니곤 했다. 그리고 전태윤이 이곳에 나타날 리도 없었다.그의 가족 중에 관성 중학교에 다니는 애가 없어 성소현은 더는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하예정의 서점 문 앞에 도착한 성소현이 차를 세우자마자 마침 하예정이 주우빈을 안고 나왔다.“예정 씨, 내가 올 줄 알았어요?”성소현이 차에서 내리며 웃었다.“우빈이까지 안고 날 마중하러 나왔네요?”“그게 아니라 우빈이랑 슈퍼 좀 다녀오려고요.”성소현이 가까이 다가와 주우빈을 안으려 하자 주우빈은 고개를 홱 돌려 하예정의 목을 끌어안으며 말했다.“이모가 안아줘요.”그러자 하예정이 그녀에게 설명했다.“우빈이 점점 좋아지고는 있지만 평소 같이 지냈던 우리랑만 붙어있으려고 해요.”“주씨 가문 인간들 정말 쓰레기만도 못한 인간들이에요!”귀여운 주우빈을 안을 수 없었던 성소현은 화를 주체 못 하고 주씨 가문 사람들을 한바탕 욕했다.“예정 씨 언니랑 그 남자는 이혼했어요?”“네, 어제 이혼했어요. 재산도 나눠 가졌고 인테리어 비용도 전부 돌려받았어요.”주우빈과 함께 슈퍼로 가려 했던 하예정은 성소현이 오자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혹시 유전자 검사 결과 나왔어요?”이경혜 없이 성소현 혼자 온 걸 보고 아무래도 두 사람이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다고 짐작했다.“검사 결과 아직 안 나왔어요. 내일 점심에 엄마가 가지러 가기로 했어요. 오늘은 내가 기분이 안 좋아서 얘기나 좀 하려고 온 거예요. 예진 씨랑 효진 씨랑 얘기 나누면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엄마도 함께 오고 싶어 하셨는데 내가 오지 말라고 했어요. 그래야 내게 제대로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전태윤을 수년간 짝사랑한 성소현에게 짧은 시간 내에 그에 대한 마음을 접으라고 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녀는 마음이 찢어지듯이 아팠지만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가족들 앞에서는 눈물을 보일 수가 없었다.그
성소현이 차를 한잔 마시고는 힘겹게 입을 뗐다.“예정 씨, 대표님이 정말 결혼했어요.”하예정이 두 눈을 깜빡였다.“지난번에 대표님이 결혼반지를 낀 걸 봤다고 하지 않았어요?”‘그런데 왜 또 결혼 얘기를 하는 거지?’성소현이 머뭇거리다가 말했다.“결혼반지를 낀 걸 보긴 했지만 내가 마음을 접게 하려고 일부러 결혼반지를 낀 거라고 요행을 바랐거든요.”심효진이 물었다.“그럼 지금은 확신해요? 전 대표님이 정말 결혼했어요?”성소현이 고개를 끄덕였다.“대표님이 카카오 스토리에 결혼 사실을 밝혔어요. 이 일은 이미 관성의 상류 사회에서 엄청 들끓고 있거든요. 수많은 사람들이 대표님의 아내분이 누군지 궁금해하고 있어요. 지금 전씨 그룹과 전씨 저택 앞에 기자들이 쫙 깔려있어요. 내가 오기 전까지 아무런 기사도 나지 않은 걸 보면 아직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나 봐요.”하예정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언론에서 그 사람의 결혼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많아요?”심효진과 성소현이 동시에 쳐다보자 하예정이 쑥스럽게 웃었다.“우리랑 아예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서 지금까지 별 관심이 없었거든요. 평생 만날 일도 없을 텐데 굳이 뭐 하러 신경 써요, 안 그래요? 그 사람을 신경 쓸 시간에 공예품이나 더 만들어서 돈이나 더 벌겠어요. 그 사람을 알게 된 것도 효진이한테서 들은 거예요. 효진이가 하도 그 사람 얘기를 많이 해서 알게 됐거든요.”그러자 성소현이 말했다.“대표님은 관성의 최고 재벌 집 도련님이자 전씨 그룹의 주인이에요. 신분도 귀하고 얼굴도 아주 잘생겼어요. 지금까지 연애한다는 소리도 못 들었는데 갑자기 결혼 발표를 하니까 다들 이 난리인 거죠. 기자들은 대체 뉘 집 딸이길래 대표님의 아내가 됐는지 엄청 궁금해해요. 기자들뿐만 아니라 나도 궁금해요.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 오빠도 알아내지 못하더라고요. 전씨 가문의 사모님이 대체 누구일지...”성소현은 찻잔에 차를 한잔 더 따르고 목을 축인 후 계속하여 말을 이었다.“가장 불쌍한 건 나예요. 진
심효진은 성소현에게 마구 휘둘려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녀는 성소현의 손을 떼어내면서 말했다.“소현 씨, 난 정남 씨랑 소개팅만 한 게 다예요. 내가 여쭤봐도 아무 대답 없을 거라고요.”“소정남 씨와 소개팅을 했다고요?!”성소현이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소정남 씨도 우리 관성에서 몸값이 가장 비싼 싱글이란 말이에요.”심효진이 소정남과 소개팅했다는 말에 성소현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심효진도 재벌가의 딸이고 그녀의 고모는 김씨 가문의 사모님이라 평소 상류층의 연회에 고모와 함께 자주 출석하곤 했으니까.다만 심효진이 도 사모님의 생일 파티에서 벌러덩 누운 이후로 고모는 두 번 다시 심효진을 데리고 연회에 참석하지 않았다.“예정의 남편이 소개해줬어요.”하예정이 웃으며 솔직하게 인정했다.“우리 남편이 소 대표님의 덕을 많이 본 건 사실이에요. 대표님께서 업무가 다망하고 아직 미혼이다 보니 효진이와 어울릴 것 같아서 과감하게 한 번 얘기해봤어요.”“예정 씨 남편분도 참 대단하시네요. 소정남 씨의 도움도 받고 전씨 그룹에서 꽤 잘 나가잖아요. 소정남 씨는 전 대표님의 오른팔이라 그룹 내에서 전씨 일가의 다른 도련님들보다도 지위가 높아요. 회사 동료들뿐만 아니라 우리 같은 사람들도 소정남 씨에게 도움을 받고 싶어 할 정도라니까요. 아쉽게도 소정남 씨는 전 대표님과 절친한 사이이고 전 대표님이 날 싫어하다 보니 소정남 씨도 덩달아 날 보면 멀리 피하더라고요. 난 그분 도움을 받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요.”심효진과 하예정은 말을 잇지 못했다.‘소 대표님이 이 정도로 대단했어?! 성소현 씨와 같은 재벌 집 따님도 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싶어 안달이라니. 소정남 씨가 이 정도면 전 대표님은... 굉장히 어마어마한 분이시겠지!’하예정은 혼자만의 생각에 푹 빠졌다.‘전 대표님의 도움을 받는 자는 관성을 휩쓸고 다닐 수도 있겠어!’“효진 씨, 그래서 소정남 씨는 어땠어요?”성소현은 인제 소정남을 통해 전 대표님의 아내가 누구인지 알아내고 싶었다.
그는 사인펜을 내려놓고 창가 옆으로 걸어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회사 문 앞에는 아직도 연예부 기자들이 둘러싸여 있었다. 소정남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인내심도 참 대단해. 어젯밤부터 쭉 지키고 있잖아. 태윤이도 그래, 애인 자랑을 조용히 할 것이지 뭘 이렇게 세상을 발칵 뒤집어?”다만 세상은 발칵 뒤집혔을지언정 사모님은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전태윤은 아내를 극진히 아꼈다.회사 사람들은 하예정을 본 적이 있지만 아무도 감히 소문을 퍼뜨리지 못했다.전씨 일가의 사람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도 가족들은 전부 입을 꾹 다문 채 한 글자도 얘기하지 않았다.오늘 관성 상류층 사람들이 만나서 하는 첫 얘기가 바로 전 대표님의 아내가 누구인지 묻는 말이다.사업 얘기를 나누다가도 맨 마지막엔 바이어들이 전 대표님의 아내가 누구인지 두어 마디 여쭙곤 한다!소정남도 귀찮아 죽을 지경이었다.그와 전태윤이 사이가 좋다 보니 적잖은 사람들이 그에게서 소식을 캐물으려 했다.다만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소정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 사태의 주인공 전태윤은 정작 차분하게 업무를 보고 있었다.점심시간이 되자 예전처럼 경호원들의 철통 보호를 받으며 관성 호텔로 가서 식사했고 늘 그래왔듯 미리 권 매니저에게 전화해 하예정이 좋아하는 요리를 몇 개 만들어서 보내주라고 했다.그리고 가는 길에 권 매니저더러 꽃 가게에 들러 꽃을 한 다발 사서 그녀에게 전해주라고 했다.오늘 하루 유독 전태윤의 예상을 벗어난 일이 하나 있다면 바로 그의 호텔 입구에서 성기현과 마주친 일이었다.성씨 그룹은 자기만의 호텔이 있고 성기현과 전태윤이 또 서로 경쟁자이다 보니 성기현이 관성 호텔에 나타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그런 그가 오늘 바이어와 함께 이곳에 온 걸 보아 아무래도 바이어 쪽에서 미팅 장소를 관성 호텔로 정한 듯싶었다.서로 마주친 두 대표님은 나란히 걸음을 멈췄다.전태윤의 뒤엔 경호원들이 서 있었고 성기현의 뒤엔 회사의 몇몇 임원과 비서
“행운아가 어느 재벌 가문의 따님인지 몹시 궁금하네요!”성기현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꿋꿋이 물었다.여동생이 대체 어떤 여자 때문에 패배를 당했는지 알아야만 했다.전태윤은 깊은 눈동자로 성기현을 쳐다보다가 잠시 후 말을 이어갔다.“성 대표님, 이건 저의 사생활이라 대답을 거부할게요.”‘이럴 줄 알았어.’성기현은 이 결과를 달갑게 받아들이며 근엄하게 미소 지었다.“대표님께서 아내분을 몹시 아끼시네요.”“결혼할 때 평생 아끼고 사랑하고 보살펴주겠다고 약속했거든요.”성기현이 겨우 대답했다.“대표님은... 그야말로 진국이시네요.”그의 여동생 성소현과 전태윤은 결국 인연이 닿지 않았다.전태윤을 포기하라고 그렇게 말렸건만 여동생은 도통 오빠의 말을 듣지 않더니 인제 결국 고통의 맛을 보게 되었다.성기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전태윤이 성소현을 사랑한다면 실은 그도 오빠로서 여동생이 전태윤과 함께하는 걸 응원해주고 동생을 위해서라도 전씨 그룹과의 불화를 개선할 생각이었다.왜냐하면 전태윤은 그 누구보다 일편단심이니까.그는 누군가를 사랑하면 평생 그 한 사람만 사랑한다.하여 전태윤이 배신을 당하면 아마 평생토록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성 대표님도 진국이시죠. 사모님께서 매우 행복한 나날을 보내시잖아요. 이 업계에서 성 대표님은 팔불출이라고 소문이 쫙 났어요.”아내의 말에 성기현의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저도 전 대표님처럼 애초에 결혼할 때 평생 아내만 사랑하고 아껴줄 거라고 약속했거든요.”“성 대표님과 사모님의 감정은 모두를 부럽게 해요. 나중에 성 대표님께 팔불출이 된 비결을 여쭤봐야겠어요.”뭇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줄곧 불화를 이루던 두 사람이 팔불출이 되려는 주제로 나란히 얘기를 나누는 모습에 다들 입이 쩍 벌어졌다.성기현이 웃으며 말했다.“전 대표님은 이미 팔불출이 되셨어요.”그렇지 않으면 걸음을 멈추고 그와 얘기를 나누지 않았을 테니까.전태윤이 잠깐 침묵하
하예정은 오늘 전 대표님이 유부남인 데다가 팔불출이란 빅 뉴스를 귀가 닳도록 들었다. 그녀는 저녁에 화장대 앞에 앉아 팩을 붙이며 전태윤에게 말했다.“있잖아요, 나 오늘 종일 태윤 씨 회사 대표님의 스캔들만 들었지 뭐예요.”전태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렇지 않은 듯 그녀에게 물었다.“무슨 스캔들?”“아직 몰라요?”하예정이 머리를 돌리고 그를 쳐다봤다.“태윤 씨 대표님께서 유부남인 걸 공개 선언했대요. 다만 부인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라요. 소현 씨가 말하길 이 사건은 그들 상류층에서 엄청난 파란을 일으켰다던데요. 태윤 씨는 전씨 그룹에서 출근하는데 뭐 알아낸 거 없어요? 전씨 그룹 사모님은 대체 누구래요? 기자들이 회사 문 앞에서 엄청 오래 기다렸는데 아무 소식도 얻지 못한 채 하는 수 없이 돌아갔대요.”전태윤은 의자를 끌고 와 아내 곁에 앉아서 그녀가 붙인 팩을 쳐다보다가 팩 포장의 브랜드를 유심히 관찰했다. 이는 가격대가 있는 럭셔리 브랜드였다.“소현 씨가 줬어요. 오늘 밤에 어쩌다 한 번 효과 있나 보려고 붙였어요.”전태윤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앞으론 성소현 씨가 주는 화장품 쓰지 마. 네가 애용하는 브랜드를 내게 말하면 내가 알아서 사줄게.”“소현 씨가 엄청 많이 줬어요. 안 쓰면 다 버리잖아요. 소현 씨는 여자인데 지금 설마 여자까지 질투하는 거예요?”전태윤은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어루만졌다.“네가 날 1순위로 두지 않는 한 너의 관심사를 뺏어간 사람은 누구든 다 질투할 거야.”“참 나, 애초에 ‘난 질투 같은 거 전혀 몰라’ 라고 말한 사람이 누구였더라?”전태윤은 말문이 막혔다.“태윤 씨, 얼른 말해봐요. 그래서 전씨 그룹 사모님이 누군데요?”전태윤이 웃으며 되물었다.“넌 우리 대표님한테 별로 관심 없잖아.”“없다기보단 일부러 알려고 하지 않죠. 어쨌거나 나랑 태윤 씨 대표님은 아예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잖아요. 태윤 씨는 전씨 그룹에 다니면서도 대표님 얼굴 한 번 뵙기 힘든데 난 더 말할 것도 있
“준하 씨와 소현 언니가 바래다주러 가셨어요.”소정남이 말했다.“온 지 이틀도 안 됐는데 벌써 가셨어요? 제가 음식 대접할 시간도 없었네요.”하예정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시간 있을 때 A시에 가서 식사 초대하면 되죠. 준하 씨가 이번에 관성으로 온 이유는 단지 용정이가 우빈이와 함께 놀게 하려는 것뿐이에요.”소정남은 전씨 가문의 대표 부인 앞에서 그의 고통을 호소했다.“제가 시간이 전혀 없었어요. 태윤이가 결혼 휴가를 내서 오늘에야 출근했는데... 제가 너무 바빠서 물 한 잔 마실 시간도 없었어요. 제가 태윤에게 말할 틈이 없었는데 내일 제가 휴가를 내야겠어요. 좀 이따가 태윤이가 동의하지 않으면 예정 씨가 저를 도와주셔야 해요. 제가 한 달 동안 푹 쉬지 못했거든요. 내일 휴가를 내는 것도 휴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효진이와 함께 임신 검사받으러 가기 위해서예요.”하예정이 흔쾌히 대답했다.“좋아요. 태윤 씨가 정남 씨의 휴가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제가 도와서 말씀드릴게요. 요즘 정말 수고 많으세요. 필요하시면 제가 태윤 씨에게 휴가 이틀 내주라고 설득할게요. 차라리 휴가 낼 필요 없이 내일 효진이와 함께 검사받으러 가세요.”전태윤 부부가 결혼식 후 편안한 신혼여행을 보내게 되었다. 비록 관성을 떠나지 않았지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소정남이 전태윤의 업무량을 분담한 덕이다.이제 전태윤이 회사로 돌아왔으니 적절한 시기에 가장 바삐 돌아쳤던 소정남을 쉬게 해야 했다.소정남이 대답했다.“이틀 쉴 수 있다면 더없이 좋죠. 날씨도 추워졌는데 효진이가 샤브샤브를 먹고 싶어 하더라고요. 제가 줄곧 데리고 나갈 시간이 없었어요. 집에서 먹을 수는 있지만, 저의 사촌 누나가 자꾸 잔소리를 늘어놓으셔서 먹는다고 해도 효진이가 불편해해서 늘 나가서 먹고 싶다고 했거든요. 내일 함께 검사를 받고 저녁에 샤브샤브 먹으러 가야겠어요. 효진이가 임신한 뒤로 뭐 먹고 싶을 때마다 즉시 입에 넣고 싶어 하던데 예정 씨도 그
우빈은 형이 될 사람이기 때문에 동생들을 사랑할 줄 알았다.“내가 그렇게 연약한 사람이 아니야. 네가 서너 살밖에 안 되는데 무거우면 얼마나 무겁다고.”하예정은 웃으며 우빈을 안았다.우빈은 뚱뚱하지 않다.녀석은 정말 졸렸는지 하예정에게 안긴 지 2분도 안 되어 금세 잠이 들었다.30분 후, 차 두 대가 전씨 그룹으로 들어섰다.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려고 생각했지만 고민 끝에 그를 놀라게 해주기로 했다.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저녁에 퇴근할 때 데리러 오겠다고 했지만 언제 올지는 알려주지 않았다.지금 앞당겨 도착한 그녀는 갑자기 그의 사무실에 갑자기 나타나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했다.심효진은 부부가 함께 지내면서 때때로 상대방에게 서프라이즈 해주면 부부 감정을 두텁게 해준다고 말한 적 있다.소설을 많이 본 성소현은 서프라이즈를 해주는 능력이 하예정보다 더 대단했다.하예정은 성소현에게서 이런 것들을 많이 배웠다.“사모님, 제가 우빈을 안아드릴게요.”경호원은 하예정의 품에서 우빈을 안아오려고 했다.그러나 하예정이 거절했다.“괜찮아요. 제가 안으면 돼요. 1층에서 기다리세요. 만약 볼 일이 있으면 먼저 가서 일을 보셔도 돼요. 태윤 씨가 퇴근하기까지 기다려야 하거든요.”그녀는 남편의 차를 타고 집에 가도 된다고 생각했다.경호원은 공손히 대답했다.“다른 개인적인 일은 없습니다. 큰 사모님을 보호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하예정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경호원들과 함께 회사 안으로 건물로 들어섰다.들어가는 길에 하예정을 본 직원들은 전부 예의 바르게 그녀에게 인사했다.하예정은 우빈을 안고 엘리베이터에 들어갔고 경호원들은 1층 귀빈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하예정과 우빈을 싣고 곧장 맨 위층으로 올라갔다.우빈은 너무 정신없이 놀고 피곤한지 아주 달콤하게 잠들었다. 아마 깨우지 않으면 어두워질 때까지 잘 수 있을 것이다.전태윤은 하예정이 일찍 도착할 줄은 몰랐다.전태윤의 비서가 대표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
모연정도 맞장구쳤다.“맞아요. 용정은 가끔 혼자 놀 때 아무도 그를 보고 있지 않고 인기척을 듣지 못할 때 용정을 찾아가 보면 분명 사고를 치고 있는 거예요. 한 번은 녀석이 제 립스틱으로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니까요.”성소현은 아이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가장 많이 접하는 아이가 바로 우빈이였다.성소현은 우빈이가 항상 철이 들고 귀엽고 총명하다고만 느꼈지, 이런 면이 있을 줄은 몰랐다.그녀의 눈에는 어린아이들이 전부 천사로 보였다.성소현의 친조카처럼 막 태어났을 때는 그다지 예뻐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갈수록 예뻐지고 있다.그녀는 친조카의 성장 다큐멘터리를 찍어준다며 매일 조카의 사진을 몇 장씩 찍어두었다.다만 눈물이 좀 많을 뿐이다.배가 고프면 울고 응가 해도 울었다. 말을 못 한 탓으로 아기는 입만 벌리면 울었다.모연정과 하예정은 잠시 아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예지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쌍둥이가 깨어난 것을 보자 모연정은 일어나서 아들을 안으러 갔다.딸은 이미 예준성에게 안겨 있었다.예준성은 한 손으로 딸을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캐리어를 끌었는데 예준하가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말했다.“형, 내가 도와줄게. 내가 지연이 안아줄게.”예준성은 캐리어를 예준하에게 건네면서 말했다.“캐리어를 밖으로 끌고 나가서 차에 실어줘. 이따가 우리를 서원 리조트로 데려다줘.”그들의 개인 비행기는 서원 리조트에 주차되었다.예준하의 별장에는 예준하 부부의 개인 비행기를 주차할 수 있는 큰 공간이 없다.예준하는 입을 삐쭉 내밀면서 중얼거렸다.“지연이를 안고 싶은데 자꾸 캐리어만 끌게 하다니. 곧 돌아갈 거면서 지연이를 안지도 못하게 해. 살이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중얼중얼하던 예준하는 결국 예준성을 도와 캐리어를 끌어갔다.예준성은 딸을 안고 하예정 자매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모연정이 예지호를 안고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모연정에게 말했다.“연정아, 가자. 용정은?”“밖에서 우빈이와 놀고 있어요. 나가서 불러오면 돼
하예정은 갑자기 점쟁이가 자신과 전태윤의 결혼을 지지하면서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살 거라고, 아들딸을 낳을 거라는 말을 떠올렸다.만약 하예정이 딸을 낳으면 과연 잘 자랄 수 있을까?만약 전씨 가문의 어르신들처럼 딸을 낳아도 잘 키울 수 없다면 그녀는 아이를 낳지 않을지언정 아이가 자신의 앞에서 목숨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을 도려내는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서원 리조트의 풍수에 문제가 있는 건가!그러나 점쟁이는 리조트의 풍수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점쟁이는 서원 리조트의 풍수 구조가 사업과 자식들이 번창할 것이라고 말했다.“예정아, 왜 그래? 안색이 안 좋아.”하예정의 안색이 변한 것을 유심히 본 성소현이 걱정스레 물었다.“내가 전씨 가문에서 대대로 낳은 딸이 세상을 뜨는 일을 언급해서 그래? 걱정하지 마. 네 뱃속의 이 아이는 틀림없이 아들일 거야. 우빈이가 말했듯이 네 배 속의 아기는 남자 아기일 거야. 게다가 네가 딸을 낳았다고 해도 현재 의학이 발달하고 임신 중에 그렇게 많은 임신 검사를 받을 수 있어서 분명 건강하게 자랄 거야. 태윤 씨 조상들의 일은 옛날얘기잖아. 청나라 말기 때 의학 기술이 얼마나 뒤처졌는데, 감기에 걸리기만 해도 사람 목숨을 빼앗아 갈 수 있는 시기잖아.”고대 궁안의 생활도 아주 좋았지만 죽은 아기들도 얼마나 많았던가!말을 마친 성소현은 일부러 하예정의 어깨를 감싸며 계속해서 말을 건넸다.“너도 태윤 씨에게 딸을 낳을 만큼 그렇게 좋은 팔자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을걸. 너희들은 아들을 낳을 운명인 거지. 안 좋은 일은 생각하지 마. 너 놀란 것 좀 봐. 잘 들어. 내가 아기에게 준비한 선물들은 전부 남자아이 물건들이니까 꼭 아들을 낳아야 해.”하예정은 겨우 마음을 안정시켰다.아직 딸을 낳지도 않았는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로 걱정할 필요 없었다.게다가 점쟁이는 하예정이 아들딸을 낳을 운명이라고 했기에 그녀가 딸을 낳는다고 해도 반드시 건강하게 키워 안전하게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혹은 둘째를 가
하예정은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용정을 예준하 곁으로 먼저 보냈다. 예준성 부부는 관성에 온 뒤로 줄곧 예준하의 별장에 머물렀다.예준하의 집에 도착하여 용정을 모연정 부부의 손에 넘겨주고 나서야 하예정의 긴장했던 신경이 풀리기 시작했다.“아줌마, 저 여기서 좀 더 놀 수 있을까요?”친구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우빈은 아쉬워하며 용정과 한 시간이라도 더 놀고 싶어 했다.우빈이가 입을 열었다.“용정이가 이번에 떠나게 되면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저랑 놀 수 있거든요.”하예정은 모연정을 쳐다보았고 모연정이 말을 건넸다.“저희도 짐을 정리해야 해서 30분 정도 있다가 집으로 갈 거예요. 두 아이를 30분만 더 놀게 해요. 용정도 우빈이와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지만 이렇게 계속 놀게 할 수는 없잖아요. 너무 신나게 놀면 마음을 거두어들이기 어려워져요.”“그러게요. 정신없이 놀다 보면 자꾸 놀 생각만 하고 유치원은 가기 싫어질 거예요. 용정과 비교되지 않았다면 우빈은 아마 그의 사촌 이모처럼 강제적으로 차에 태워야 했을걸요.”성소현이 어렸을 때 유치원에 다니는 것을 꺼린 사실이 언급되자 모연정도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성소현은 예준성 부부를 배웅하러 왔는데 하예정이 그녀의 과거 이야기를 꺼내자 바로 얼굴을 붉히며 하예정을 가볍게 때렸다.“예정아, 너 정말 못된 것만 배운 거 아니야? 누가 어릴 때 유치원에 가고 싶었겠어?”하예정은 히죽히죽 웃었다.“저는 아마 가기 싫어한 적 없을걸요. 어쨌든 우리 부모님께서 내가 어렸을 때 유치원에 가기 싫어했다는 말씀하신 적 없었어요. 우리 언니도 말 한 적 없는걸요.”하예정은 유치원에 간 기억이 없지만, 하예진이 5살 연상이라 하예정이 유치원에 가기 싫어한 경험이 있으면 그녀에게 말했을 것이다.“우빈아, 얼른 놀아. 시간이 30분밖에 없어. 우리 모 아줌마를 배웅해 드려야 해. 그리고 이모부 회사로 가서 이모부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집에 가서 밥 먹자. 오늘 실컷 놀고 내일부터 유치원에 가
윤미라는 노동명이 우빈의 계부가 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적어도 노동명의 가정에는 아이가 있다.어쩌면 두 사람이 결혼하게 되면 하예진이 또 아이를 낳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우빈은 늘 여동생을 원했다.하예정의 배 속에 있는 아기도 다들 아들이라고 여겼다.우빈이가 여동생을 갖고 싶어 하면 아마도 하예진에게 여동생을 낳아달라고 조를 것이고 노동명에게도 친자식이 생기게 될지도 모른다.그 자식이 딸일지라도 노동명의 핏줄이기만 하면 윤미라는 엄청나게 기뻐할 것이다.물론, 윤미라는 이런 생각들을 감히 드러내지 못했다.노동명의 교통사고는 윤미라 부부의 전통관념을 약화시켰던 것이다.“이만 가볼게요. 시간이 나면 또 올게요. 우빈이는 아마 자주 오게 될걸요.”하예정이 여전히 두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가겠다고 고집하자 윤미라도 어쩔 수 없이 영양제를 억지로 하예정에게 쑤셔 넣어주었다.“아주머니, 저의 허리를 보세요. 더 몸보신했다가 허리가 더 굵어질 것 같아요.”하예정이 지금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보양식이다.그녀의 집에는 보양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윤미라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예정 씨가 뚱뚱한 게 아니라 임신하니까 허리둘레가 변한 거예요. 정상인걸요. 임신 말기로 되면 배가 뽈처럼 통통해져 허리가 더 굵어질 거예요. 아기가 나오면 서서히 살이 빠질 테니까 얼른 가져가세요. 이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것은 보양식 외, 우빈이가 좋아하는 간식도 들어있어요. 예정 씨와 우빈을 우리 집에서 밥 먹고 가라고 하고 싶은데 급히 떠나려고 하시길래 이렇게 포장해 드렸어요.”윤미라는 또 돈 봉투 두 개를 꺼내 용정과 우빈에게 건네주었다.두 아이 모두 그 봉투를 받을 엄두를 못 냈다.윤미라는 웃으며 용정에게 돈 봉투를 쥐여주면서 말을 건넸다.“용정아, 네가 우리 집에 놀러 와서 돈 봉투를 주는 거야. 얼른 받아.”용정이가 하예정을 바라보자 하예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받으라고 했다. 용정은 그제야 감히 받아들이며 윤미라에게 고맙다고 인
우빈은 무척 실망했다.우빈은 용정이가 벌받게 하고 싶지 않았다.용정의 말을 들은 하예정은 궁금해하며 물었다.“책을 베껴 쓸 줄 알아? 힘들지 않아?”용정과 우빈은 나이가 비슷했다. 우빈은 지금도 간단한 숫자 몇 개와 시 몇 수밖에 외우지 못했다.하예진 자매는 우빈이가 어릴 적엔 주로 잘 먹고 잘 놀아야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우빈에게 너무 많은 학업적인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다.하여 우빈은 유치원에 가는 것이 너무 쉽고 너무 즐거웠다.우빈도 한동안 유치원에 가기 싫어 맨날 입만 삐죽삐죽 내밀면서 유치원 생활이 너무 재미없다고 느꼈다.“이해하지는 못해요. 사부님께서 의학책을 외우라고 가르쳐 주셔서 외우고는 있지만 무슨 의미인지 몰라요. 베끼지 못해도 베껴야 하거든요. 아니면 사부님께서 맛있는 음식도 주지 않으세요. 그리고 저에게 책을 베끼어 쓰라고 벌할 때면 저는 한 페이지를 아주 오랫동안 베껴야 겨우 완성할 수 있어요.”비록 용정은 총명하고 아는 글자가 우빈보다 훨씬 많으며 쓸 줄도 알지만 어쨌든 겨우 서너 살 된 아이였다. 그런 아이에게 수많은 글씨가 박힌 책 한 페이지를 베끼라고 하니, 용정에게는 아주 무거운 임무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한 번 벌을 받아 본 용정은 겁에 질렸다.사부님은 용정이가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의학책을 베끼어 쓰게 하겠다는 말을 꺼내곤 했다. 그러면 용정은 감히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얌전히 앉아 있었다.하예정은 용정의 머리를 가여운 표정으로 쓰다듬으며 위로했다.“수고했어.”우빈은 아직 근심 걱정 없이 살고 있는데 용정은 지옥의 훈련을 받아야 했다.다행히 신의 일행은 “도”를 잘 장악하고 있어서 용정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는 않는다.그들은 시간이 한참 지나게 되면 용정에게 며칠 휴가를 주었다. 그리고 그를 A시로 돌려보내 예진 리조트에서 며칠 묵게 하면서 긴장을 풀게 했다.너무 심하게 몰아붙이면 역효과를 볼 것이다.윤미라는 용정을 처음 보았다. 용정의 말을 듣던 윤미라는 하예정에게
“이번 주 금요일에 네가 유치원에서 나오자마자 아저씨가 널 데리고 강성으로 올게. 그리고 일요일 오후에 돌아갈 거야, 알았지?”노동명은 우빈에게 약속했다.이렇게 되면 금요일에 노동명은 우빈과 함께 떳떳하게 강성으로 올 이유가 생기게 된 셈이다.“정말? 아저씨, 거짓말 아니죠?”“난 어린이를 속이지 않거든. 아저씨가 성실하다는 생각 안 들어?”우빈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노동명이 정말 성실하다고 느꼈고 이내 대답했다.“그럼 아저씨 믿을게요. 우리가 엄마를 찾아가는 것을 엄마가 허락하셨어요? 우리가 가면 엄마의 일을 방해하지 않을까요?”하예정은 우빈에게 하예진이 요즘 바쁘다고 말했다.우빈은 하예진이 이렇게 바쁜 이유가 바로 자신을 위해서라는 것을, 돈을 많이 벌어 자신을 잘살게 하고 싶다는 도리를 잘 알고 있었다.우빈은 자신의 현재 생활이 매우 좋다고 생각했다.녀석은 자신의 엄마가 고생하지 않았으면 했다.그런데 하예진이 직장을 다니면서 돈 벌어야 한다고 했기에 철이 든 우빈은 늘 하예진을 지지했다.“괜찮아. 주말에 오면 네 엄마도 쉴 거야. 마침 우리가 네 엄마를 모시고 산책하면서 기분 전환도 해줄 수 있잖아. 그러면 다음 주에 출근할 때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고.”우빈은 여전히 걱정하며 말했다.“아저씨, 어머니께서 정말 동의하시는지 잘 물어봐 주세요.”노동명은 웃으며 휴대전화를 하예진에게 돌려주었다. 그렇게 하예진 모자가 전화로 의논하다가 결국 하예진은 아들 우빈의 고집에 못 이겨 그가 금요일에 찾아오는 것에 동의했다.사실 하예진도 우빈이가 보고 싶었다.그녀는 노동명이 곁에 있으면 아무 일도 없을 거로 생각했다.하예진의 허락을 받은 우빈은 무척 즐거워하며 얼마 안 가서 통화를 끝냈다.우빈은 핸드폰을 하예정에게 돌려주었다.하예정은 웃으며 물었다.“이제 괜찮아졌지? 서럽지 않지?”우빈은 기뻐하며 대답했다.“금요일에 엄마를 찾아갈 수 있어요. 이모, 오늘이 무슨 요일이에요?”“월요일이야.”우빈은 또 물었다.“월요일부터 금
노동명은 하예진이 가슴 아파할까 봐, 또 격려의 말들을 늘어놓을까 봐 자신이 폐인이라는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하예진은 호텔에 비치된 주전자를 씻고 주전자로 물을 끓였다. 그리고 컵을 씻어 녹차 한 봉지를 집어 들고 녹차 한 잔을 타서 가져다주었다.하예진은 찻잔을 침대 머리맡 카운터에 놓고 노동명에게 말했다.“지금은 물이 뜨거워서 좀 이따가 마셔요.”따르릉...하예진의 휴대전화가 울렸다.휴대전화를 꺼내 확인하더니 노동명에게 말했다.“예정이에요.”그녀는 하예정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하며 서둘러 받았다.“예정아, 뭔 일 있어?”“엄마.”전화기 건너편에서 앳된 어린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우빈아, 우빈이가 드디어 엄마가 생각났나 보네. 엄마한테 전화할 줄 다 알고.”하예진은 웃으며 우빈을 조롱했다.우빈이 입을 삐죽 내밀며 억울하다는 듯 다시 엄마를 불렀다.아들의 억울한 어조를 알아챈 하예진이 물어보았다.“왜? 기분이 안 좋아? 친구랑 싸웠어?”“아니요. 동명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에요. 정말 나빠요. 저 몰래 아무 말도 없이 엄마 보러 갔어요. 제가 제 친구를 아저씨한테 소개해 주려고 이모한테 부탁해 아저씨 찾으러 왔는데 글쎄 노 할머니께서 아저씨가 엄마 찾으러 가셨다고 한 거 있죠?”우빈 녀석은 너무 서러서 계속해서 말했다.“아저씨는 말도 없이... 제가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저하고 말 좀 하시지. 그럼 저도 아저씨 따라서 엄마한테 갔을 텐데. 아저씨는 약속을 어기는 나쁜 사람이에요.”하예진이 출장을 간 후 노동명은 분명히 우빈에게 나중에 하예진이 보고 싶으면 노동명의 개인 비행기를 타고 강성으로 하예진을 보러 가자고 약속했었다.우빈은 그 당시 노동명이 그의 친아버지보다도 더 잘해준다고 생각했다.주형인은 매번 우빈을 볼 때마다 잘 대해주지만, 우빈 앞에서 노동명의 험담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우빈은 주형인이 그리 좋은 아버지가 아니라고 여겼다.노동명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주형인과 주경진 부부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