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윤은 완벽한 남자가 아니면 그녀의 절친에게 감히 소개할 엄두가 안 난다고 했는데 역시 그의 말은 믿을만했다.소정남은 타이밍이 맞지 않은 것 같아 살짝 아쉬워했다.그는 심효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심효진은 사람들에게 물건을 잘 옮기라고 지휘하다가 소정남을 보더니 곧바로 다가와 대범하게 인사했다.“정남 씨.”“효진 씨.”소정남은 미소 지으며 관심 조로 물었다.“감기는 다 나았어요?”“네, 걱정해줘서 고마워요.”하예정은 살며시 전태윤을 잡아당기며 자리를 피했다. 두 사람에게 얘기 나눌 공간을 마련해준 것이다.하예정은 사석에서 남편에게 칭찬을 남발했다.“태윤 씨 동료분 참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요. 저분도 전씨 그룹에서 대표직을 맡고 있죠? 호텔에서 나올 때 저분도 봤어요.”“대표 맞아. 직급이 높아서 다들 소 대표라고 불러.”곧이어 그는 하예정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소 대표가 비밀로 하라고 했는데 우린 부부니까 말해도 되겠지. 소 대표는 우리 대표님의 오른팔이나 다름없어서 무한한 신뢰를 받고 있어. 우리 회사에서 대표님을 제외하고 소 대표의 직급이 가장 높을걸.”하예정이 눈을 깜빡거렸다.“그렇게 대단해요?”전태윤은 제법 그럴싸한 듯 머리를 끄덕였다.“대단하지. 회사 사람들 소 대표 말만 나오면 다들 경외하지 않는 자가 없다니까.”하예정은 다시 한번 소정남을 바라봤다.한편 전태윤은 그런 그녀의 얼굴을 되돌리고 재빨리 볼에 입맞춤하며 목소리를 내리깔았다.“보지 마. 내가 더 잘생겼어.”“전씨 그룹 도련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 한 번 더 보려고 했던 거예요. 전씨 그룹 도련님의 주변 분들도 다 이렇게 대단한데 그 도련님은 얼마나 더 훌륭할까요? 그래서 소현 씨도 푹 빠져 쉽게 헤어나오지 못한 거였네요.”전태윤은 허리를 곧게 펴고 중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소 대표처럼 훌륭한 분이 달갑게 보조 역할을 하고 있으니 전씨 그룹 대표님은 당연히 소 대표보다 더 뛰어나겠지.”“우리 언니를 도와 주형인의 외도 증거를 수집한 사
시끌벅적한 오후가 지나고 날이 어두워지자 다시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왔다.하예진은 애초에 이 집을 꾸밀 때 엄청 공들이며 적잖은 돈을 썼는데 막상 본인이 산 가전제품을 빼내니 셋집에 모두 담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주 쓰는 물건들만 남기고 나머지는 동생네 집에 맡긴 게 아니라 세일 가격으로 팔아치웠다.이것도 나름 과거와 작별하는 방식 중 하나였다.하예진의 셋집은 정리가 채 안 되어 요리하기가 불편했다. 그녀는 사람들을 데리고 호텔로 가서 음식을 대접했다.본인이 솔로가 된 걸 축하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하예진은 즐거운 마음으로 과거와 작별하고 있지만 주형인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돌아쳤다.밤 9시, 그는 서현주의 아파트에 도착했다.“현주야, 짐이 이게 다야?”주형인은 서현주의 물건이 많지 않은 걸 보더니 앞으로 다가가 캐리어를 밀며 그녀에게 물었다.“다 정리했어?”“나 평소에 혼자 살아서 물건이 많지 않아요. 다 정리 마쳤고 안 쓰는 물건들은 전부 버렸어요.”서현주는 애지중지 아끼는 가방을 메고 평소 잠잘 때 안고 자던 인형을 안은 채 주형인과 함께 방문을 나섰다.“이 집은 그냥 빼버려야겠어요.”“당연하지. 내가 사는 집은 여기보다 훨씬 좋아.”“예진 씨는 이미 나갔어요?”서현주는 아파트의 문을 잠그고 아파트 열쇠를 열쇠고리에서 빼내 아래층 경비원에게 건넸다. 아파트 대문을 지키는 경비는 집주인의 친척이었다.“집주인한테 방 뺄 거라고 얘기했어요. 집세, 수도세, 전기세 전부 완납했으니 아저씨는 방 청소만 해주시면 돼요. 내가 아직 쓸만한 실용적인 물건들을 빼지 않았어요.”이 말의 뜻인즉슨 경비원 아저씨더러 얼른 방 청소하러 가서 그녀가 쓰지 않는 실용적인 물건들을 주워 쓰라는 것이다.경비원 아저씨는 열쇠를 건네받고는 곧장 아내더러 방 청소하러 가라고 했다.주형인은 캐리어를 끌고 서현주와 함께 차 쪽으로 걸어갔다.“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예진이한테 문자 왔는데 이미 짐을 다 뺐대.”그리고 계좌번호도 보내주며 주형인더러 앞으로
“몇 층이에요?”“16층.”주형인은 서현주의 캐리어를 차에서 내려놓고 끌어가며 그녀와 함께 들어갔다. 그런데 마침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아는 이웃과 만나게 되었다. 서로 인사를 마친 후 이웃이 먼저 물었다.“예진 씨가 오후에 사람들을 가득 데려와서 이사하는 것 같던데 왜 다시 들어온 거예요?”“그 사람 짐만 옮긴 거예요.”이웃은 서현주를 힐끗 보더니 바로 알아챘는지 주형인을 향해 웃음을 짓고는 가던 길을 갔다.‘어쩐지 지난번에 예진 씨가 칼을 들고 형인 씨를 막 쫓아다닌다 했더니, 바람피운 거였구나. 이혼했나 본데?’하예진이 집을 나가자마자 주형인이 예쁜 여자를 데리고 왔다. 이혼한 게 아니라면 이렇게 대놓고 데리고 오지 못했을 것이다.“저 사람 혹시 뭐 알고 있는 게 아니에요?”아무래도 내연녀였던지라 당당하지 못하고 저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주형인은 한 손으로 캐리어를 끌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며 씩 웃었다.“나 오늘 오후에 뭘 했는지 잊었어? 예진이랑 이혼했고 이젠 싱글이야. 넌 이제부터 내 여자친구니까 당당하게 다니면 돼. 저 사람들이 알면 뭐? 현주야,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우린 드디어 당당하게 함께 다닐 수 있어.”서현주가 말했다.“그렇죠, 정말. 형인 씨 이혼했죠.”그녀는 더 이상 숨어다닐 필요가 없었다.엘리베이터가 16층에 도착했다.“다 왔어.”주형인이 자기 집 문을 가리켰다.“저 집이야.”서현주는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주형인은 키를 꺼내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집안이 칠흑같이 어두운 게 잠깐이지만 기분이 뭔가 이상했다. 전에는 그가 몇 시에 들어오든 항상 그를 위한 등이 밝혀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등은 영원히 켜지지 않을 것이다.“너무 어두워요. 얼른 불 켜요.”주형인과 함께 안으로 들어온 서현주가 불을 켜라고 했다. 주형인이 익숙하게 문 뒤의 전등 스위치를 눌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는 제대로 누르지 못한 줄 알고 다시 한번 눌렀지만
“툭.”휴대 전화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액정도 산산이 조각났다.주형인은 재빨리 허리를 숙여 휴대 전화를 주었다. 하지만 깨진 액정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다시 한번 집안을 비춰보았다.서현주도 휴대 전화를 꺼내 플래시를 켰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는커녕 인테리어 전보다도 허름하기 그지없었다.“형인 씨, 정말 잘못 들어온 거 아니에요?”서현주는 아직도 요행을 바랐지만 주형인이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아니야. 잘못 들어왔으면 아예 문을 열 수가 없었지. 우리 집 왜 이렇게 됐지? 가전제품은 다 어디 가고 이것밖에 안 남았어?”주형인의 낯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본인이 직접 산 식탁 앞에 멍하니 서 있던 주형인은 뇌리에 뭔가 잠깐 스쳐 지나가더니 드디어 모든 걸 깨달았다.하예진의 짓임이 틀림없었다!“하예진이야!”그는 생각나는 대로 전부 내뱉었다.“하예진이 내 집을 부숴버렸어.”분노가 극에 달한 주형인을 보며 서현주가 말했다.“얼른 경찰에 신고해서 잡아가라고 해요. 배상도 받아내고요. 집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았는데 적어도 인테리어 비용은 물어달라고 해야죠.”‘인테리어 비용?’경찰에 신고하려던 주형인은 인테리어 비용이라는 그녀의 말에 더는 신고하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왜 신고 안 해요? 못하겠어요? 아직도 그 여자한테 미련이 남아있어요?”그가 전화를 걸다가 끊어버리자 분노가 치밀어 오른 서현주는 아무 막말이나 내뱉었다.그와 이 집에서 함께 살려고 서현주는 살던 집까지 뺐다. 원래는 인테리어도 고급스러운 집에서 살면서 가족들에게 자랑할 생각이었으나 눈 앞에 펼쳐진 건 인테리어 전보다도 허름한 집이었다.이건 기대 부푼 그녀의 마음에 찬물을 끼얹은 정도가 아니라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절망에 빠진 듯했다.“신고하면 안 돼. 애초에 이 집 인테리어 비용은 예진이가 냈어. 아마 8천만 넘게 들었을 거야. 이혼할 때 나한테 인테리어 비용을 돌려달라고 했었는데 내가 거절했거든.”주형인의 눈가에 원망이 스쳐 지나갔다.“자기만의 방식으로 인테리어
주형인은 말까지 더듬었다.“쓰... 쓰레기를 잔뜩 널어놓고 치우지도 않아?”그러자 하예진이 피식 웃었다.“그때 인터리어할 때도 쓰레기가 엄청 많았었는데 내가 내 돈으로 일하는 사람을 불러서 청소했어. 그 돈을 나한테 주지도 않았잖아. 그때 못 받은 돈을 다시 되돌려받은 것뿐이야.”“사람을 불러서 청소하는 게 얼마나 든다고 그것까지 다 계산해?”“왜 계산 안 해? 난 뭐 돈 벌기 쉬운 줄 알아? 왜 당신한테 줘야 하는데? 200원이라도 싹 다 받아낼 거야.”말문이 막힌 주형인은 한참이 지나서야 이를 꽉 깨물며 말했다.“그래, 내가 졌다!”“난 그저 인테리어 비용만 돌려받았을 뿐이야. 당신이 그 집을 살 때 그 모습 그대로 다시 돌려놓았어.”주형인은 씩씩거리며 전화를 뚝 끊었다. 그가 전화를 던지려 하자 눈치 빠른 서현주가 휴대 전화를 빼앗았다.“이건 내 휴대 전화예요. 던지지 말아요.”“성질나 죽겠어!”주형인은 끊임없이 화가 치밀었지만 화를 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하예진의 말대로 그녀는 인테리어 비용만 챙겼다. 그가 집을 샀을 땐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집이었으니 누굴 탓하겠는가?“형인 씨, 인제 어떡해요?”서현주도 하예진이 이 정도로 모진 사람일 줄은 몰랐다.‘이러니까 형인 씨한테 버림받았지. 너처럼 독한 여자는 평생 시집도 못 갈 거야.’서현주는 속으로 하예진에게 온갖 욕이란 욕은 다 퍼부었다.“난 형인 씨랑 이런 집에서 못 살아요.”그녀가 원하는 건 비싸고 고급스러운 집이었다.“방도 다 뺐는데 인제 어디 가서 살아요?”주형인은 짜증 섞인 얼굴로 자기 머리를 잡아 뜯으며 서현주에게 말했다.“일단 호텔로 가자. 내일 먼저 아파트부터 구하는 게 좋겠어. 이 집도 다시 인테리어 해야 해. 전의 인테리어도 전부 예진이 취향대로 한 거거든. 인테리어 다시 하면 우리 둘 취향으로 하자. 현주야, 너한테 지금 돈이 얼마 있어?”서현주가 본능적으로 말했다.“이건 형인 씨가 결혼 전에 산 집이잖아요. 그러니까
분통이 터진 주형인과 달리 하예정은 오늘따라 더욱 기분이 통쾌했다.언니가 새로 구한 집에서 나온 뒤로 하예정은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녀의 그런 모습에 전태윤도 따라 웃었다.“너무 웃지 마. 그러다가 배꼽 빠질라.”“배꼽 빠져도 좋아요. 주형인 지금쯤 아마 집에 갔을 텐데 집 꼴을 보고 어떤 반응일지 궁금하네요. 무조건 집에 잘못 들어온 줄로 생각할걸요? 하하, 놀랄 모습을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요. 잠깐만 크게 웃을게요. 하하하...”그녀의 말에 따라 웃던 전태윤은 하마터면 신호등과 부딪힐 뻔했다. 화들짝 놀란 그가 핸들을 확 꺾고 나서야 겨우 피했다.갑작스러운 상황에 배꼽 빠져라 웃던 하예정도 순간 정색했다가 안전해지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태윤 씨 운전 잘 못 해요? 못하겠으면 앞으로는 내가 할게요. 나 운전 잘하거든요. 레이싱도 문제없어요.”“나 성인이 되자마자 바로 운전면허 땄어. 지금까지 경력이 몇 년인데. 아까는 너 때문에 너무 웃겨서 잠깐 정신이 딴 데 팔렸을 뿐이야.”하예정이 말했다.“알았어요. 그만 얘기할 테니까 운전에 집중해요.”그녀는 고개를 돌려 뒷좌석에 앉은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가 잠이 든 것 같자 남편에게 귀띔했다.“할머니 주무세요. 음악 좀 낮춰요.”숙희 아주머니는 그들을 따라나서지 않고 하예진네 집에 남아있기로 했다.전태윤은 그녀의 말을 고분고분 따랐다. 그때 하예정이 입을 쩍 벌리며 하품했다.“나도 졸려요.”“집에 거의 다 왔어.”“잠깐 눈 좀 붙일게요. 집에 도착하면 나 깨워요.”“너 잠깐 눈 붙이겠다고 하고선 내일까지 잘 거잖아. 그냥 자지 마. 10분이면 도착해. 그사이 얘기나 나누자.”그러자 하예정이 그를 흘겨보았다.“태윤 씨랑 얘기하면 지루해 죽어요.”어이가 없었던 전태윤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하예정, 지금까지 너 말고 나한테 이런 충격을 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난 사실만을 얘기했을 뿐이에요.”하예정은 의자에 기댄 채 휴대 전화로 동영상을 보았다. 영상
“예정아, 왜 그래?”이상함을 감지한 전태윤이 재빠르게 다가가 침대 옆에 앉더니 그녀를 토닥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어디 아파?”“배가 아파요.”“배? 야식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가?”하예정은 원망 섞인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아니야? 그럼 왜 배가 아파?”하예정은 홱 돌아누우며 그를 등졌다.“태윤 씨는 말해도 몰라요. 누워서 조금만 참으면 나아질 거예요.”전태윤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허리를 숙여 침대에 누워있는 하예정을 번쩍 안아 들고는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내가 의학은 몰라도 의사는 알겠지. 지금 당장 병원 가자. 참으면 안 돼. 괜히 참았다가 큰 문제라도 생기면 나중에 후회해도 늦었어.”“병원 안 가도 돼요. 그냥... 생리통이에요.”전태윤이 말했다.“아... 생리... 알았어.”그는 다시 하예정을 침대에 눕혔다.“많이 아파?”집에 젊은 여자가 없어 그는 생리통이 뭔지도 사실 잘 알지 못했다. 부모뻘인 여성 말고는 젊은 여자와 가까이 지낸 적이 없는 탓에 정말 모르고 있었다.매번 하예정이 생리할 때마다 그는 대추차를 끓여주었다. 왜냐하면 전에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끓여주는 걸 봤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생리할 때 대추차를 마시면 좋다는 걸 알게 되었다.“낮에 여기저기 다니고 날씨도 추워서 그런가 봐요. 나 대추차 좀 끓여줄 수 있어요?”“알았어. 조금만 참아. 지금 바로 가서 끓여줄게.”대추차를 끓이러 주방에 간 전태윤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태윤아, 엄마 잠들었어. 무슨 일 있으면 내일 다시 전화해.”전화를 받은 사람은 그의 아버지였다.“아빠, 엄마 좀 깨워주실래요? 엄마한테 뭐 좀 물어볼 게 있어서 그래요.”“대체 뭔데 하필 지금 물어보려는 건데? 엄마 잠들었으니까 깨우지 마. 뭔데 그래? 아빠가 해결할 수 있는지 보자.”전현림에게 있어서 아내의 꿀잠보다 더 중요한 건 없었다. 설령 아들에게 엄청난 큰일이 있어도 말이다.“아빠, 생리통 좀 완화할 수 있는 약이 어떤 게 있는지 아세요?”그러자 전현
하예정은 일어나 앉아 그가 놓고 간 대추차를 천천히 마셨다.전태윤의 사랑 때문인지 대추차가 작용을 일으킨 건지, 대추차를 마시고 잠깐 누워있었더니 아까보다 한결 나아졌다. 전태윤이 약을 사 왔을 땐 거의 멀쩡하게 휴대 전화로 뉴스를 보고 있었다.“아프다면서 휴대 전화를 봐?”전태윤은 그녀의 휴대 전화를 빼앗고는 약을 건넸다.“너무 늦어서 약국이 문 다 닫았더라고. 그래서 근처 병원 가서 의사한테 처방까지 떼서 사 왔어. 먹고 자.”하예정은 고개를 들고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왜 그래?”그녀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앞에 서더니 감동한 얼굴로 그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태윤 씨 나한테 너무 잘해주는 거 아니에요?”전태윤도 자연스럽게 그녀를 끌어안았다. 대추차를 다 마신 걸 보고 많이 나아졌을 거란 생각에 사랑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와이프한테 잘해주지 않으면 누구한테 잘해주겠어?”그의 진심을 알아주어 나중에 그녀를 속였다는 걸 알게 되더라도 떠나지 않길 바랐다. 그가 지금까지 잘해주었던 것을 떠올리면 용서해주지 않을까?할머니는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라고 했다. 달콤한 말 같은 건 그도 어색했고 하예정도 듣기 거북해했다. 아무래도 평소에 다정하게 잘해주면서 그녀의 마음을 녹이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하예정도 그에 대한 마음을 열고 점점 깊은 사랑에 빠져 미래도 있게 된다.“태윤 씨.”“응.”“아까 나갈 때 뭘 입고 나갔는지 알아요? 잠옷 차림으로 나갔어요.”화들짝 놀란 전태윤은 그녀를 밀어내며 고개를 숙여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확인했다. 그녀의 말대로 정말 잠옷 차림이었다.“거기에 슬리퍼까지 신고 나갔어요.”전태윤은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았다.‘어쩐지 아까 발가락이 자꾸 시리다 했더니, 슬리퍼 신은 채로 나갔었구나.’다행히 늦은 시간이라 그를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안 그러면 내일 관성 뉴스의 헤드라인에 뜰 뻔했다.“아까 나갈 때 네 걱정만 하느라 뭘 입고 있었는지 신경 쓸 새도 없었어.”전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