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층이에요?”“16층.”주형인은 서현주의 캐리어를 차에서 내려놓고 끌어가며 그녀와 함께 들어갔다. 그런데 마침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아는 이웃과 만나게 되었다. 서로 인사를 마친 후 이웃이 먼저 물었다.“예진 씨가 오후에 사람들을 가득 데려와서 이사하는 것 같던데 왜 다시 들어온 거예요?”“그 사람 짐만 옮긴 거예요.”이웃은 서현주를 힐끗 보더니 바로 알아챘는지 주형인을 향해 웃음을 짓고는 가던 길을 갔다.‘어쩐지 지난번에 예진 씨가 칼을 들고 형인 씨를 막 쫓아다닌다 했더니, 바람피운 거였구나. 이혼했나 본데?’하예진이 집을 나가자마자 주형인이 예쁜 여자를 데리고 왔다. 이혼한 게 아니라면 이렇게 대놓고 데리고 오지 못했을 것이다.“저 사람 혹시 뭐 알고 있는 게 아니에요?”아무래도 내연녀였던지라 당당하지 못하고 저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주형인은 한 손으로 캐리어를 끌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며 씩 웃었다.“나 오늘 오후에 뭘 했는지 잊었어? 예진이랑 이혼했고 이젠 싱글이야. 넌 이제부터 내 여자친구니까 당당하게 다니면 돼. 저 사람들이 알면 뭐? 현주야,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우린 드디어 당당하게 함께 다닐 수 있어.”서현주가 말했다.“그렇죠, 정말. 형인 씨 이혼했죠.”그녀는 더 이상 숨어다닐 필요가 없었다.엘리베이터가 16층에 도착했다.“다 왔어.”주형인이 자기 집 문을 가리켰다.“저 집이야.”서현주는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주형인은 키를 꺼내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집안이 칠흑같이 어두운 게 잠깐이지만 기분이 뭔가 이상했다. 전에는 그가 몇 시에 들어오든 항상 그를 위한 등이 밝혀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등은 영원히 켜지지 않을 것이다.“너무 어두워요. 얼른 불 켜요.”주형인과 함께 안으로 들어온 서현주가 불을 켜라고 했다. 주형인이 익숙하게 문 뒤의 전등 스위치를 눌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는 제대로 누르지 못한 줄 알고 다시 한번 눌렀지만
“툭.”휴대 전화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액정도 산산이 조각났다.주형인은 재빨리 허리를 숙여 휴대 전화를 주었다. 하지만 깨진 액정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다시 한번 집안을 비춰보았다.서현주도 휴대 전화를 꺼내 플래시를 켰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는커녕 인테리어 전보다도 허름하기 그지없었다.“형인 씨, 정말 잘못 들어온 거 아니에요?”서현주는 아직도 요행을 바랐지만 주형인이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아니야. 잘못 들어왔으면 아예 문을 열 수가 없었지. 우리 집 왜 이렇게 됐지? 가전제품은 다 어디 가고 이것밖에 안 남았어?”주형인의 낯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본인이 직접 산 식탁 앞에 멍하니 서 있던 주형인은 뇌리에 뭔가 잠깐 스쳐 지나가더니 드디어 모든 걸 깨달았다.하예진의 짓임이 틀림없었다!“하예진이야!”그는 생각나는 대로 전부 내뱉었다.“하예진이 내 집을 부숴버렸어.”분노가 극에 달한 주형인을 보며 서현주가 말했다.“얼른 경찰에 신고해서 잡아가라고 해요. 배상도 받아내고요. 집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았는데 적어도 인테리어 비용은 물어달라고 해야죠.”‘인테리어 비용?’경찰에 신고하려던 주형인은 인테리어 비용이라는 그녀의 말에 더는 신고하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왜 신고 안 해요? 못하겠어요? 아직도 그 여자한테 미련이 남아있어요?”그가 전화를 걸다가 끊어버리자 분노가 치밀어 오른 서현주는 아무 막말이나 내뱉었다.그와 이 집에서 함께 살려고 서현주는 살던 집까지 뺐다. 원래는 인테리어도 고급스러운 집에서 살면서 가족들에게 자랑할 생각이었으나 눈 앞에 펼쳐진 건 인테리어 전보다도 허름한 집이었다.이건 기대 부푼 그녀의 마음에 찬물을 끼얹은 정도가 아니라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절망에 빠진 듯했다.“신고하면 안 돼. 애초에 이 집 인테리어 비용은 예진이가 냈어. 아마 8천만 넘게 들었을 거야. 이혼할 때 나한테 인테리어 비용을 돌려달라고 했었는데 내가 거절했거든.”주형인의 눈가에 원망이 스쳐 지나갔다.“자기만의 방식으로 인테리어
주형인은 말까지 더듬었다.“쓰... 쓰레기를 잔뜩 널어놓고 치우지도 않아?”그러자 하예진이 피식 웃었다.“그때 인터리어할 때도 쓰레기가 엄청 많았었는데 내가 내 돈으로 일하는 사람을 불러서 청소했어. 그 돈을 나한테 주지도 않았잖아. 그때 못 받은 돈을 다시 되돌려받은 것뿐이야.”“사람을 불러서 청소하는 게 얼마나 든다고 그것까지 다 계산해?”“왜 계산 안 해? 난 뭐 돈 벌기 쉬운 줄 알아? 왜 당신한테 줘야 하는데? 200원이라도 싹 다 받아낼 거야.”말문이 막힌 주형인은 한참이 지나서야 이를 꽉 깨물며 말했다.“그래, 내가 졌다!”“난 그저 인테리어 비용만 돌려받았을 뿐이야. 당신이 그 집을 살 때 그 모습 그대로 다시 돌려놓았어.”주형인은 씩씩거리며 전화를 뚝 끊었다. 그가 전화를 던지려 하자 눈치 빠른 서현주가 휴대 전화를 빼앗았다.“이건 내 휴대 전화예요. 던지지 말아요.”“성질나 죽겠어!”주형인은 끊임없이 화가 치밀었지만 화를 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하예진의 말대로 그녀는 인테리어 비용만 챙겼다. 그가 집을 샀을 땐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집이었으니 누굴 탓하겠는가?“형인 씨, 인제 어떡해요?”서현주도 하예진이 이 정도로 모진 사람일 줄은 몰랐다.‘이러니까 형인 씨한테 버림받았지. 너처럼 독한 여자는 평생 시집도 못 갈 거야.’서현주는 속으로 하예진에게 온갖 욕이란 욕은 다 퍼부었다.“난 형인 씨랑 이런 집에서 못 살아요.”그녀가 원하는 건 비싸고 고급스러운 집이었다.“방도 다 뺐는데 인제 어디 가서 살아요?”주형인은 짜증 섞인 얼굴로 자기 머리를 잡아 뜯으며 서현주에게 말했다.“일단 호텔로 가자. 내일 먼저 아파트부터 구하는 게 좋겠어. 이 집도 다시 인테리어 해야 해. 전의 인테리어도 전부 예진이 취향대로 한 거거든. 인테리어 다시 하면 우리 둘 취향으로 하자. 현주야, 너한테 지금 돈이 얼마 있어?”서현주가 본능적으로 말했다.“이건 형인 씨가 결혼 전에 산 집이잖아요. 그러니까
분통이 터진 주형인과 달리 하예정은 오늘따라 더욱 기분이 통쾌했다.언니가 새로 구한 집에서 나온 뒤로 하예정은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녀의 그런 모습에 전태윤도 따라 웃었다.“너무 웃지 마. 그러다가 배꼽 빠질라.”“배꼽 빠져도 좋아요. 주형인 지금쯤 아마 집에 갔을 텐데 집 꼴을 보고 어떤 반응일지 궁금하네요. 무조건 집에 잘못 들어온 줄로 생각할걸요? 하하, 놀랄 모습을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요. 잠깐만 크게 웃을게요. 하하하...”그녀의 말에 따라 웃던 전태윤은 하마터면 신호등과 부딪힐 뻔했다. 화들짝 놀란 그가 핸들을 확 꺾고 나서야 겨우 피했다.갑작스러운 상황에 배꼽 빠져라 웃던 하예정도 순간 정색했다가 안전해지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태윤 씨 운전 잘 못 해요? 못하겠으면 앞으로는 내가 할게요. 나 운전 잘하거든요. 레이싱도 문제없어요.”“나 성인이 되자마자 바로 운전면허 땄어. 지금까지 경력이 몇 년인데. 아까는 너 때문에 너무 웃겨서 잠깐 정신이 딴 데 팔렸을 뿐이야.”하예정이 말했다.“알았어요. 그만 얘기할 테니까 운전에 집중해요.”그녀는 고개를 돌려 뒷좌석에 앉은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가 잠이 든 것 같자 남편에게 귀띔했다.“할머니 주무세요. 음악 좀 낮춰요.”숙희 아주머니는 그들을 따라나서지 않고 하예진네 집에 남아있기로 했다.전태윤은 그녀의 말을 고분고분 따랐다. 그때 하예정이 입을 쩍 벌리며 하품했다.“나도 졸려요.”“집에 거의 다 왔어.”“잠깐 눈 좀 붙일게요. 집에 도착하면 나 깨워요.”“너 잠깐 눈 붙이겠다고 하고선 내일까지 잘 거잖아. 그냥 자지 마. 10분이면 도착해. 그사이 얘기나 나누자.”그러자 하예정이 그를 흘겨보았다.“태윤 씨랑 얘기하면 지루해 죽어요.”어이가 없었던 전태윤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하예정, 지금까지 너 말고 나한테 이런 충격을 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난 사실만을 얘기했을 뿐이에요.”하예정은 의자에 기댄 채 휴대 전화로 동영상을 보았다. 영상
“예정아, 왜 그래?”이상함을 감지한 전태윤이 재빠르게 다가가 침대 옆에 앉더니 그녀를 토닥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어디 아파?”“배가 아파요.”“배? 야식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가?”하예정은 원망 섞인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아니야? 그럼 왜 배가 아파?”하예정은 홱 돌아누우며 그를 등졌다.“태윤 씨는 말해도 몰라요. 누워서 조금만 참으면 나아질 거예요.”전태윤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허리를 숙여 침대에 누워있는 하예정을 번쩍 안아 들고는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내가 의학은 몰라도 의사는 알겠지. 지금 당장 병원 가자. 참으면 안 돼. 괜히 참았다가 큰 문제라도 생기면 나중에 후회해도 늦었어.”“병원 안 가도 돼요. 그냥... 생리통이에요.”전태윤이 말했다.“아... 생리... 알았어.”그는 다시 하예정을 침대에 눕혔다.“많이 아파?”집에 젊은 여자가 없어 그는 생리통이 뭔지도 사실 잘 알지 못했다. 부모뻘인 여성 말고는 젊은 여자와 가까이 지낸 적이 없는 탓에 정말 모르고 있었다.매번 하예정이 생리할 때마다 그는 대추차를 끓여주었다. 왜냐하면 전에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끓여주는 걸 봤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생리할 때 대추차를 마시면 좋다는 걸 알게 되었다.“낮에 여기저기 다니고 날씨도 추워서 그런가 봐요. 나 대추차 좀 끓여줄 수 있어요?”“알았어. 조금만 참아. 지금 바로 가서 끓여줄게.”대추차를 끓이러 주방에 간 전태윤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태윤아, 엄마 잠들었어. 무슨 일 있으면 내일 다시 전화해.”전화를 받은 사람은 그의 아버지였다.“아빠, 엄마 좀 깨워주실래요? 엄마한테 뭐 좀 물어볼 게 있어서 그래요.”“대체 뭔데 하필 지금 물어보려는 건데? 엄마 잠들었으니까 깨우지 마. 뭔데 그래? 아빠가 해결할 수 있는지 보자.”전현림에게 있어서 아내의 꿀잠보다 더 중요한 건 없었다. 설령 아들에게 엄청난 큰일이 있어도 말이다.“아빠, 생리통 좀 완화할 수 있는 약이 어떤 게 있는지 아세요?”그러자 전현
하예정은 일어나 앉아 그가 놓고 간 대추차를 천천히 마셨다.전태윤의 사랑 때문인지 대추차가 작용을 일으킨 건지, 대추차를 마시고 잠깐 누워있었더니 아까보다 한결 나아졌다. 전태윤이 약을 사 왔을 땐 거의 멀쩡하게 휴대 전화로 뉴스를 보고 있었다.“아프다면서 휴대 전화를 봐?”전태윤은 그녀의 휴대 전화를 빼앗고는 약을 건넸다.“너무 늦어서 약국이 문 다 닫았더라고. 그래서 근처 병원 가서 의사한테 처방까지 떼서 사 왔어. 먹고 자.”하예정은 고개를 들고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왜 그래?”그녀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앞에 서더니 감동한 얼굴로 그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태윤 씨 나한테 너무 잘해주는 거 아니에요?”전태윤도 자연스럽게 그녀를 끌어안았다. 대추차를 다 마신 걸 보고 많이 나아졌을 거란 생각에 사랑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와이프한테 잘해주지 않으면 누구한테 잘해주겠어?”그의 진심을 알아주어 나중에 그녀를 속였다는 걸 알게 되더라도 떠나지 않길 바랐다. 그가 지금까지 잘해주었던 것을 떠올리면 용서해주지 않을까?할머니는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라고 했다. 달콤한 말 같은 건 그도 어색했고 하예정도 듣기 거북해했다. 아무래도 평소에 다정하게 잘해주면서 그녀의 마음을 녹이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하예정도 그에 대한 마음을 열고 점점 깊은 사랑에 빠져 미래도 있게 된다.“태윤 씨.”“응.”“아까 나갈 때 뭘 입고 나갔는지 알아요? 잠옷 차림으로 나갔어요.”화들짝 놀란 전태윤은 그녀를 밀어내며 고개를 숙여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확인했다. 그녀의 말대로 정말 잠옷 차림이었다.“거기에 슬리퍼까지 신고 나갔어요.”전태윤은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았다.‘어쩐지 아까 발가락이 자꾸 시리다 했더니, 슬리퍼 신은 채로 나갔었구나.’다행히 늦은 시간이라 그를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안 그러면 내일 관성 뉴스의 헤드라인에 뜰 뻔했다.“아까 나갈 때 네 걱정만 하느라 뭘 입고 있었는지 신경 쓸 새도 없었어.”전태
그녀가 돈 걱정을 하다니!전씨 가문의 도련님이자 전씨 그룹의 주인인 억만장자 전태윤의 아내가 그가 돈이 없을까 봐 걱정하다니...전태윤은 안고 있던 그녀를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예정은 눈을 깜빡이며 그를 쳐다보았다.‘질투쟁이가 또 삐졌나?’하예정은 그를 따라나섰지만 달래진 않고 따뜻한 물 한잔을 떠와 그가 사다 준 약을 먹었다. 이미지까지 포기하고 잠옷과 슬리퍼 차림으로 사 온 약인데 먹지 않으면 그의 정성을 무시한 격이 된다. 어쩌면 더 화를 낼지도 모른다.얼마 지나지 않아 전태윤은 다시 그녀 곁으로 돌아왔다.“손 내밀어 봐!”그가 명령조로 말했다.“왜 그래요?”고개를 들어보니 그가 빨간 반지 케이스를 들고 있었다.“반지예요?”전태윤은 반지를 꺼내 그녀의 왼손을 잡더니 약손가락에 끼워주었다.“이건 내가 그전에 산 건데 나중에 다이아몬드 반지가 더 이뻐서 그걸로 바꾼 거야. 급한 대로 먼저 이 금반지 끼고 있어. 내일 아침 가게 가서 다시 다이아몬드 반지로 바꿔 껴.”전태윤은 커플 금반지를 샀었다. 원래는 성소현이 알아서 물러나게 하려고 산 것이었는데 그녀 생각에 커플로 샀다. 이제 드디어 제주인을 찾아갔다.하예정의 손에 금반지를 끼워준 후 전태윤은 자신의 금반지도 가져왔다. 잠시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빼고 금반지로 꼈다. 그녀와 커플이라는 걸 일부러 보여주려는 듯싶었다.‘정말 아주 제멋대로고 쉽게 삐진다니까. 거기다가 쩍하면 질투도 하고.’하예정은 속으로 마음껏 투덜거렸다.금반지를 낀 전태윤은 하예정의 손을 잡고 깍지를 끼더니 다른 한 손으로 휴대 전화를 꺼내 깍지 낀 두 사람의 손을 찰칵 찍었다.그 모습에 하예정이 웃음을 터뜨렸다.“카카오 스토리에라도 올릴 생각이에요?”전태윤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가 진짜로 올리려고 하자 하예정이 그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못 말려 정말. 그런데 뭐 나름 이쁘게 나왔네요. 사진 나한테도 보내줘요. 나도 카카오 스토리에 올려서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게. 그런데 늦은 밤에 올리면
전태윤은 하예정을 안고 함께 꿈나라로 빠지려 했다. 그런데 두 눈을 감자마자 문득 뭔가 떠오른 전태윤은 하예정을 살며시 밀어내고 일어나 앉더니 침대 머리맡에 놓인 하예정의 휴대 전화를 잡았다.그가 카카오 스토리에 올렸으니 지인들이 알게 되어 퍼져나가는 건 시간문제다. 전태윤은 사진이 퍼져나가는 게 두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조금만 손을 쓰면 하예정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하예정이 이렇게나 빨리 기자들에게 둘러싸이는 걸 원치 않았다.하지만 하예정이 올린 건 성소현이 볼 가능성이 크다. 하예정과 성소현이 꽤 가깝게 지내고 있으니 분명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았을 것이다.성기현이 다른 사람에게서 그가 올린 사진을 보고 성소현이 하예정이 올린 걸 본다면 대충 비교해봐도 하예정이 그의 아내라는 걸 성소현은 알게 된다. 아직 그와 하예정의 관계를 성소현이 당분간은 알게 해서는 안 된다.하예정과 이경혜의 유전자 검사 결과는 이틀 뒤에 나온다고 한다. 결과가 어떻든 하예정과 성소현이 합이 척척 잘 맞는다는 건 사실이다. 만약 성소현이 그의 정체를 밝힌다면 결과가 어떨지 전태윤은 상상만 해도 두려웠다.그가 하예정의 휴대 전화를 들고 카카오 스토리에 들어가려 했지만 비밀번호가 걸려있었다.“비번.”전태윤이 눈살을 찌푸렸다. 조금 전 하예정이 휴대 전화를 만질 때 힐끗 보긴 했었다.‘비번이 뭐더라?’잠깐 생각하던 전태윤이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하지만 첫 번째도 틀렸고 두 번째도 연달아 틀렸다.전태윤은 손가락의 움직임을 멈추고 침착하려 애를 썼다. 그러면서 하예정이 비밀번호를 입력할 때 어느 숫자 버튼을 눌렀었는지 곰곰이 돌이켜보았다.몇 분의 침묵이 흐른 후, 전태윤은 다시 한번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이번에 드디어 비밀번호를 풀었다.전태윤의 입꼬리가 귀에 걸리다 못해 수천억짜리 계약을 체결한 것보다 더 기뻐하는 것 같았다.그는 재빨리 하예정의 카카오톡 연락처를 뒤져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성소현의 연락처가 있었는데 다행히 본명으로 저장하여 쉽게 찾을 수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