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희는 한심하다는 말투로 말했다.“너 이번에 이혼하면서 예진에게 그 많은 돈을 나눠줬어. 그나마 예진이는 널 위해 아들을 낳았으니 나눠줄 만 하지. 나도 뭐라 안 해. 하지만 돌아서서 곧바로 결혼식을 올리고 예물까지 준비하려면 또 엄청난 금액일 거 아니야. 형인아, 네가 은행 행장이라도 된 것 같아?”“엄마, 걱정하지 마. 나랑 현주 결혼식에 쓸 돈은 전부 내가 부담해. 절대 엄마, 아빠한테 손 내밀지 않아.”설사 그렇다 한들 김은희는 여전히 내키지 않았다.어리석게 하씨 일가 사람들을 찾아가 하예진을 이혼하지 못하게 설득하라고 수백만 원을 쓴 걸 생각하면 김은희는 당장이라도 돌멩이를 찾아와 제 머리를 찍고 싶었다.‘내가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했지? 형인이가 이혼 절차 마무리하면 하 영감을 찾아가 내가 준 돈 다 돌려받을 거야.’하 영감은 부르는 게 값이라고 그녀에게 수백만 원을 요구했고 돈을 받더니 제가 직접 나서서 하예진이 이혼하지 못하게 설득하겠다고 맹세했지만 결국 약속을 어겼으니 돈도 당연히 되물어야 한다.10분 후 가정법원에 도착했다.하예진 자매가 먼저 도착해 법원 입구에서 주형인 가족을 기다렸다.주형인이 도착한 후 그들 부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가정법원에 들어갔다.3년 전 두 사람은 나란히 손을 잡고 혼인신고를 했었다.그때 하예진은 주형인과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잘 살 거로 여겼다.하지만 몇 년도 채 되지 않아 부부는 이혼 절차를 밟으러 가정법원에 들어가고 있었다.두 사람은 합의 이혼이라 다툼 없이 차분하게 필요한 서류들을 챙기고 제 차례가 될 때까지 대기했다. 이곳 직원들은 하루에도 수없이 이혼 사례를 처리해야 하기에 감정이 무뎌져 더이상 부부에게 화해를 권유하지 않고 절차대로 진행했다.하예정과 주형인의 부모님은 한쪽 옆에서 기다렸다.요즘 세월에 혼인신고 하는 커플은 적지만 이혼하는 부부는 줄을 지었다. 세 사람 모두 이 현실에 한탄했다.하예정은 주형인의 부모를 힐긋 노려보며 속으로 생각했다.‘이혼율이
“가전제품도 전부 네가 산 게 아니야. 함부로 옮기지 마.”김은희는 괜히 본인들이 산 가전제품까지 그녀가 모조리 가져갈까 봐 생색냈다.“걱정 마시라니까요, 아줌마. 내가 산 거 아니면 건드리지도 않아요. 물건 적어진 거 있으면 바로 날 찾으세요.”김은희는 코웃음 칠 뿐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띠리링...”이때 주형인의 휴대폰이 울렸다.대표님한테서 걸려온 전화에 주형인은 재빨리 받았다.대표님이 뭐라고 말했는지 주형인은 낯빛이 확 어두워진 채 목소리를 가다듬고 물었다.“대표님, 제 일은 이미 해결했습니다. 지금 바로 회사 가서 처리하려 했는데 발주가 취소되다니요? 걱정 마세요 대표님. 제가 반드시 잘 처리해서 그 발주서를 만회하겠습니다.”전화를 끊은 후 주형인이 부모님께 말했다.“아빠, 엄마, 나 회사에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 엄마, 아빠는 택시 타고 돌아가.”그리고 하예진에게도 말했다.“예진아, 밤 10시 전까지 짐 빼면 돼. 나 그때 돼야 집에 돌아가.”그러고는 부랴부랴 자리를 떠났다.그녀에게 잘 지내라는 안부도 남기지 못한 채 회사로 향했다.주형인의 부모는 아들이 황급히 떠나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주경진은 하예진 자매를 뒤돌아보더니 더 말하지 않고 아내와 함께 길옆에 서서 택시를 불러 집으로 돌아갔다.한편 하예정은 언니를 싣고 집에 돌아가 짐을 옮겼다.“언니, 보아하니 주형인 요즘 일이 잘 안 풀리는 것 같아?”하예정은 전 형부가 대표의 전화를 받았을 때의 식겁한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어쩌며 그 인간 오늘 이 자리까지 올라간 것도 다 언니 덕이지 않을까? 이젠 이혼하고 더는 언니 덕을 못 보니 그 인간 커리어도 내리막길을 걷나 보네.”하예정은 이렇게 되기만을 바랐다.어떤 남자들은 아내가 가정에 충실하고 묵묵히 책임진 덕에 근심 걱정 없이 밖에서 큰 사업을 벌일 수 있다. 그런 아내들이 진정 현명한 아내이다.하예진이 담담하게 말했다.“내리막길을 걷든 말든 어차피 난 돈을 다 챙겼어. 예정아,
하예정이 차를 세웠다.“예정아, 다 잘 돼가?”심효진이 관심 조로 그녀에게 물었다.하예정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완전 잘 돼가지.”하예정은 차에서 내려 아파트 출입 카드를 꺼내서 긁으며 경비원에게 말했다.“저 이사하려고요. 이 사람들은 제가 이사를 도와달라고 청한 사람들이에요.”경비원은 아파트 입구의 한 무리 사람들을 보며 하예정에게 물었다.“대체 이사예요 철거예요? 저 사람들 무슨 공구를 저렇게 많이 들고 왔어요? 이사하고 인테리어 다시 하려고요?”“네, 맞아요.”다만 그녀의 돈을 쓰는 건 아니다.경비원은 더이상 캐묻지 않았다.싸우러 온 사람만 아니면 되니까.한 무리 사람들은 하예정을 뒤따라 호탕하게 광명 아파트로 들어갔다.수많은 사람들이 이 광경에 이끌려 걸음을 멈추고 구경했다.“예진 씨,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데려왔어요?”아는 사람이 하예진과 인사하는 척하며 질문을 건넸다.하예진은 웃으며 대답했다.“제가 이사하려고요. 원래 인테리어를 허물고 리모델링하려고 사람들을 데려왔어요.”“왜 멀쩡한 집을 리모델링해요?”“지금 인테리어가 마음에 안 들어 허물고 다시 해보려고요.”그 사람은 알겠다며 칭찬을 남발했다.“남편이 잘 버니까 번거롭더라도 리모델링을 하는 거죠.”보통 사람들은 한번 인테리어한 집은 더이상 리모델링하지 않는다.하예진이 웃으며 대답했다.“저 그럼 먼저 가볼게요.”주형인이 잘 버는 건 맞지만 이젠 그녀와 아무 연관이 없다.하예정과 심효진은 할머니를 모시고 맨 뒤에서 따라오며 길을 안내하는 하예진을 흐뭇하게 쳐다봤다.“이혼하니까 우리 언니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아. 위풍당당한 모습 말이야.”심효진이 머리를 끄덕였다.시집 한번 잘못 가면 진짜 한 여자의 인생을 망치는 수가 있다.“예정아, 너희 언니 앞으로 무슨 계획이야?”어르신이 친절하게 물었다.“재혼하고 싶다면 이 할미한테 얘기해. 내가 직접 좋은 남자로 골라줄게. 제2의 인생은 무조건 처음보다 더 찬란하게 꽃 필 거야.”하예정은
“아니 그쪽은 대리기사잖아요?”하예정은 강일구를 알아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강일구는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실은 제가 예정 씨 남편분에게 명함을 남겼어요. 남편분께서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얘기하라고 했어요. 제가 돈만 주면 뭐든 다 하거든요.”하예정도 대리기사가 종일 콜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니 집에서 놀기보다 다른 일을 겸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며 강일구의 거짓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그럼 잘 부탁드려요.”“아닙니다. 저는 돈 받고 일할 뿐이에요.”강일구는 말하면서 동료와 함께 소파를 들고 나갔다.이때 심효진이 그녀에게 넌지시 물었다.“아는 사람이야?”“응, 발렌시아 아파트에 살아서 몇 번 봤어. 평소에 대리기사를 하고 있어 태윤 씨가 두 번 취했는데 모두 저분이 집까지 바래다줬어. 또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는 줄은 몰랐어. 이따가 나도 명함 한 장 받아야겠어. 나중에 필요할 때 부르게. 저분 꽤 믿음직한 것 같아.”우빈의 장난감을 정리하던 전씨 할머니는 속으로 묵묵히 말했다.‘강일구는 태윤의 신변을 지키는 경호원 중 한 명인데 어찌 안 믿음직할 수 있겠어?’사람이 많으니 일도 효율적으로 진행됐다.다들 함께 나서서 하예진이 메모지를 붙인 가전제품을 전부 옮겨갔다.하예진 모자의 짐도 전부 밖으로 옮겨갔다.“띠리링...”이때 하예정의 휴대폰이 울렸다.“태윤 씨, 우리 지금 물건 옮기는 중이에요.”하예정은 남편이 비록 현장에 와서 도와줄 순 없지만 이 일을 매우 신경 쓴다는 걸 알고 있어 전화를 받자마자 상황부터 알렸다.전태윤이 다정하게 말했다.“트럭 몇 대 보냈으니까 곧 아파트 입구에 도착할 거야. 네 번호를 기사님께 드렸으니 이따가 나가서 그분들을 아파트에 들어오도록 도와줘. 처형 짐을 새집으로 실어드릴 거야. 처형 새 집에 다 넣을 수 없으면 우리 집에 일단 옮겨놔도 돼.”두 사람의 집은 충분히 크고 물건도 그다지 많지 않다.“그래요, 알았어요. 역시 태윤 씨가 꼼꼼하네요. 우린 와르르 몰려오기만 했을 뿐 짐을 옮
방안에 옮길 수 있는 물건을 전부 옮긴 후 남은 건 주형인이 산 물건들뿐이었는데 그리 많지도 않았다.다들 주형인이 산 가전제품들을 방문 앞에 내려놓고는 바닥 타일과 벽지를 허물기 시작했다.드릴 소리와 벽을 허무는 소리, 망치질하는 소리까지 한데 어우러져 완벽한 하모니를 조성했다.다만 이웃 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쳐드린 것 같아 하예진 자매는 서둘러 편의점에 달려가 과일들을 산 후 사과의 뜻으로 이웃 주민들에게 나눠주었다.그리고 날이 어둡기 전에 무조건 마무리한다고 약속했다.웃는 얼굴에 침 뱉지 못한다고 하예진 자매가 이웃집 주민들과 친분도 있고 과일까지 건네며 사과하자 아무리 시끄러운 소음이라도 주민들은 잠시 참아줄 뿐이었다.집에 애들이 있는 가정은 이 소리를 못 견뎌 아이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 산책했다.두 자매는 또 푸짐한 음식을 사서 집을 철거하는 사람들에게 드렸다.주인이 호탕하니 일꾼들도 깔끔하게 일을 마무리했다.저녁 무렵 뜯을 수 있는 건 전부 뜯어냈고 못 뜯는 건 전부 짓부쉈다.“예진 씨, 쓰레기도 처리할까요?”누군가가 하예진에게 물었다.하예진은 방안을 쭉 둘러보며 말했다.“아니요, 애초에 제가 인테리어를 시작할 때에도 적잖은 돈을 들여 쓰레기를 처리했으니 이젠 이 집 사람들에게 남겨야죠. 내가 애초에 쓰레기 처리 비용으로 썼던 돈을 환불받는 셈 치죠 뭐.”하예정은 방안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벽지도 깨끗이 뜯었고 바닥 타일은 한번 건드리면 무너져서 전부 다 짓부쉈다. 언니가 따로 쓰레기를 처리할 필요가 없다고 하니 남겨두었다가 주형인 일행이 돌아와서 처리하면 된다.“효진아, 네 말 듣길 참 잘했어. 너희 사촌오빠가 데려온 일꾼들 프로다워서 신속하고 깔끔하게 마무리했어.”심효진이 웃으며 말했다.“그 사람들이 하는 일이 바로 이런 거야. 데려오길 참 잘했지?”“일꾼들에게 주는 돈 너희 사촌오빠더러 정산 다 해서 나한테 보내라고 해. 일꾼들 수당은 내가 지급해.”심효진이 대답했다.“오빠랑 다 얘기했어. 일 다 끝내면 오빠가
전태윤은 완벽한 남자가 아니면 그녀의 절친에게 감히 소개할 엄두가 안 난다고 했는데 역시 그의 말은 믿을만했다.소정남은 타이밍이 맞지 않은 것 같아 살짝 아쉬워했다.그는 심효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심효진은 사람들에게 물건을 잘 옮기라고 지휘하다가 소정남을 보더니 곧바로 다가와 대범하게 인사했다.“정남 씨.”“효진 씨.”소정남은 미소 지으며 관심 조로 물었다.“감기는 다 나았어요?”“네, 걱정해줘서 고마워요.”하예정은 살며시 전태윤을 잡아당기며 자리를 피했다. 두 사람에게 얘기 나눌 공간을 마련해준 것이다.하예정은 사석에서 남편에게 칭찬을 남발했다.“태윤 씨 동료분 참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요. 저분도 전씨 그룹에서 대표직을 맡고 있죠? 호텔에서 나올 때 저분도 봤어요.”“대표 맞아. 직급이 높아서 다들 소 대표라고 불러.”곧이어 그는 하예정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소 대표가 비밀로 하라고 했는데 우린 부부니까 말해도 되겠지. 소 대표는 우리 대표님의 오른팔이나 다름없어서 무한한 신뢰를 받고 있어. 우리 회사에서 대표님을 제외하고 소 대표의 직급이 가장 높을걸.”하예정이 눈을 깜빡거렸다.“그렇게 대단해요?”전태윤은 제법 그럴싸한 듯 머리를 끄덕였다.“대단하지. 회사 사람들 소 대표 말만 나오면 다들 경외하지 않는 자가 없다니까.”하예정은 다시 한번 소정남을 바라봤다.한편 전태윤은 그런 그녀의 얼굴을 되돌리고 재빨리 볼에 입맞춤하며 목소리를 내리깔았다.“보지 마. 내가 더 잘생겼어.”“전씨 그룹 도련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 한 번 더 보려고 했던 거예요. 전씨 그룹 도련님의 주변 분들도 다 이렇게 대단한데 그 도련님은 얼마나 더 훌륭할까요? 그래서 소현 씨도 푹 빠져 쉽게 헤어나오지 못한 거였네요.”전태윤은 허리를 곧게 펴고 중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소 대표처럼 훌륭한 분이 달갑게 보조 역할을 하고 있으니 전씨 그룹 대표님은 당연히 소 대표보다 더 뛰어나겠지.”“우리 언니를 도와 주형인의 외도 증거를 수집한 사
시끌벅적한 오후가 지나고 날이 어두워지자 다시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왔다.하예진은 애초에 이 집을 꾸밀 때 엄청 공들이며 적잖은 돈을 썼는데 막상 본인이 산 가전제품을 빼내니 셋집에 모두 담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주 쓰는 물건들만 남기고 나머지는 동생네 집에 맡긴 게 아니라 세일 가격으로 팔아치웠다.이것도 나름 과거와 작별하는 방식 중 하나였다.하예진의 셋집은 정리가 채 안 되어 요리하기가 불편했다. 그녀는 사람들을 데리고 호텔로 가서 음식을 대접했다.본인이 솔로가 된 걸 축하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하예진은 즐거운 마음으로 과거와 작별하고 있지만 주형인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돌아쳤다.밤 9시, 그는 서현주의 아파트에 도착했다.“현주야, 짐이 이게 다야?”주형인은 서현주의 물건이 많지 않은 걸 보더니 앞으로 다가가 캐리어를 밀며 그녀에게 물었다.“다 정리했어?”“나 평소에 혼자 살아서 물건이 많지 않아요. 다 정리 마쳤고 안 쓰는 물건들은 전부 버렸어요.”서현주는 애지중지 아끼는 가방을 메고 평소 잠잘 때 안고 자던 인형을 안은 채 주형인과 함께 방문을 나섰다.“이 집은 그냥 빼버려야겠어요.”“당연하지. 내가 사는 집은 여기보다 훨씬 좋아.”“예진 씨는 이미 나갔어요?”서현주는 아파트의 문을 잠그고 아파트 열쇠를 열쇠고리에서 빼내 아래층 경비원에게 건넸다. 아파트 대문을 지키는 경비는 집주인의 친척이었다.“집주인한테 방 뺄 거라고 얘기했어요. 집세, 수도세, 전기세 전부 완납했으니 아저씨는 방 청소만 해주시면 돼요. 내가 아직 쓸만한 실용적인 물건들을 빼지 않았어요.”이 말의 뜻인즉슨 경비원 아저씨더러 얼른 방 청소하러 가서 그녀가 쓰지 않는 실용적인 물건들을 주워 쓰라는 것이다.경비원 아저씨는 열쇠를 건네받고는 곧장 아내더러 방 청소하러 가라고 했다.주형인은 캐리어를 끌고 서현주와 함께 차 쪽으로 걸어갔다.“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예진이한테 문자 왔는데 이미 짐을 다 뺐대.”그리고 계좌번호도 보내주며 주형인더러 앞으로
“몇 층이에요?”“16층.”주형인은 서현주의 캐리어를 차에서 내려놓고 끌어가며 그녀와 함께 들어갔다. 그런데 마침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아는 이웃과 만나게 되었다. 서로 인사를 마친 후 이웃이 먼저 물었다.“예진 씨가 오후에 사람들을 가득 데려와서 이사하는 것 같던데 왜 다시 들어온 거예요?”“그 사람 짐만 옮긴 거예요.”이웃은 서현주를 힐끗 보더니 바로 알아챘는지 주형인을 향해 웃음을 짓고는 가던 길을 갔다.‘어쩐지 지난번에 예진 씨가 칼을 들고 형인 씨를 막 쫓아다닌다 했더니, 바람피운 거였구나. 이혼했나 본데?’하예진이 집을 나가자마자 주형인이 예쁜 여자를 데리고 왔다. 이혼한 게 아니라면 이렇게 대놓고 데리고 오지 못했을 것이다.“저 사람 혹시 뭐 알고 있는 게 아니에요?”아무래도 내연녀였던지라 당당하지 못하고 저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주형인은 한 손으로 캐리어를 끌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며 씩 웃었다.“나 오늘 오후에 뭘 했는지 잊었어? 예진이랑 이혼했고 이젠 싱글이야. 넌 이제부터 내 여자친구니까 당당하게 다니면 돼. 저 사람들이 알면 뭐? 현주야,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우린 드디어 당당하게 함께 다닐 수 있어.”서현주가 말했다.“그렇죠, 정말. 형인 씨 이혼했죠.”그녀는 더 이상 숨어다닐 필요가 없었다.엘리베이터가 16층에 도착했다.“다 왔어.”주형인이 자기 집 문을 가리켰다.“저 집이야.”서현주는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주형인은 키를 꺼내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집안이 칠흑같이 어두운 게 잠깐이지만 기분이 뭔가 이상했다. 전에는 그가 몇 시에 들어오든 항상 그를 위한 등이 밝혀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등은 영원히 켜지지 않을 것이다.“너무 어두워요. 얼른 불 켜요.”주형인과 함께 안으로 들어온 서현주가 불을 켜라고 했다. 주형인이 익숙하게 문 뒤의 전등 스위치를 눌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는 제대로 누르지 못한 줄 알고 다시 한번 눌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