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명의 말에 조아영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녀는 감히 해명도 하지 못한 채 연신 고개만 주억거렸다."대표님,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그런 뒤 하예진에게로 가 사과했다."하예진 씨, 제가 겉으로만 판단하고 모욕을 준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부디 용서해 주세요."하예진도 화가 가라앉아 조금 민망한 기색으로 말했다."조아영 씨, 저도 잘못이 있어요. 저도 거친 말투로 화를 자극했어요. 부디 용서해 주세요."두 사람은 서로 사과를 했고, 조아영은 하예진에게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냐고 물었다.드디어 일자리가 생긴 탓에 하예진은 속으로 기뻐하며 미소 지은 얼굴로 말했다."저 언제든지 다 가능해요.""그럼 내일부터 출근하세요.""네, 고마워요, 조아영 씨. 감사해요, 이동명 씨."인사를 한 뒤 자신의 이력서를 챙긴 하예진은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며 밖으로 나갔다."하예진 씨."이동명이 그녀를 불렀다.얼른 걸음을 멈춘 하예진은 등을 돌려 웃으며 말했다."다른 하실 말씀 있으세요?""내일부터 출근이라고 했죠? 매일 출근하기 전에 이쪽 정원 밖의 길을 따라 다섯 바퀴 러닝하고 출근하세요. 다 뛰지 못하면 출근 못 합니다."이동명도 하예진이 지나칠 정도로 뚱뚱하다고 생각했지만 친구의 체면을 봐서 하예진에게 일자리를 준 것이다.다른 동료들의 눈을 위해서라도 하예진은 다이어트를 할 필요가 있었다.그건 하예진에게도 좋은 것이었다.하예진의 얼굴에 미소가 그대로 굳어버렸다.아직 출근을 하기도 전에 대표 이사에게 매일 다섯 바퀴씩 뛰라는 요구를 받다니.회사 빌딩 밖의 정원을 보니, 한 바퀴가 적어도 1, 200m는 되는 것 같았다? 다섯 바퀴라니, 듣기만 해도 힘들어 보였다."알겠어요, 이동명 씨. 앞으로 매일 뛰도록 할게요."오늘 같은 일을 겪으니 하예진도 이대로 계속 살이 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동명은 일자리가 간절한 그녀의 심리를 이용해 일자리를 빌미로 런닝을 해 다이어트를 하도록
이동명과 하예진이 다 떠나고 난 뒤에야 사람들은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모두 대표이사와 하예진이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추측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그들의 대표는 하예진을 꽤 챙겨주는 것 같았다."대표님의 친척은 아닐까요?""친척일 리는 없어요. 그 여자가 대표님을 '이동명 씨'라고 부르는 거 못 봤어요? 한껏 예의를 차린 호칭이잖아요. 어쩌면 두 사람은 서로 얼굴만 알고 교류는 별로 없는 사이일 지도 몰라요.""있잖아요, 혹시 우리 대표님잉 그 여자를 좋아하는 거 아닐까요? 우리 대표님 35살인데 아직 여자친구도 없잖아요."이동명도 나름 젊고 유망한 대기업 대표였지만 얼굴에 있는 흉터가 너무 눈에 띄는 데다 키가 크고 우람하고 눈빛이 날카로워, 언뜻 보면 본능적으로 조폭이나 건들이 떠올랐다.그 탓에 35살이 되도록 아직 여자친구도 없었다.사람들은 그 말을 한 남자를 쳐다봤다. 조아영은 아예 상대의 뒷통수를 탁 내리치며 말했다."무슨 생각하는 거야.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어. 그 여자, 같은 여자인 우리의 눈에도 들지 못하는데 남자 눈에는 말할 것도 없지.""우리 대표님도 얼굴에 흉터가 있을 뿐이지 얼굴만 보면 꽤 잘생겼어. 대표님 신분으로는 결혼하려면 어떤 여자를 못 만나겠어? 굳이 그 뚱뚱한 여자에게 손을 대겠어?""게다가 하예진은 이미 결혼을 했어. 두 살짜리 아들도 있고."사람들은 그제야 두 사람을 이성적으로 엮지는 않았다.하지만 그래도 하예진과 이동명의 사이가 궁금하기는 했다.이동명이 하예진에게 달리기로 다이어트까지 하라고 요구하다니. 그건 분명 하예진을 위하는 행동 아니던가. 두 사람 사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기엔 귀신도 믿지 않을 소리였다.이동명은 정말 억울했다. 이제 아무리 해명을 해도 소용이 없어졌다.…...성소현은 점심 열한 시에 곧바로 관성 중학교를 떠나 관성 호텔에서 전태윤과 우연히 마주치기를 기다렸다.하예정이 음식을 다 하자, 전태윤이 도착했다."삼촌."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주우빈은
그 말에 전태윤은 입꼬리에 작게 경련이 일었다.하지만 반박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하예정에게 방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마찬가지로 그도 하예정의 방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또 한 번, 전태윤은 자신이 맺은 계약이 자신을 속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가장 먼저 계약을 어기려는 사람이 자신이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이제와서, 후회해도, 소용이 있을까?하예정이 계약서를 어디에 숨겼었지? 그녀가 집에 없는 틈을 타 몰래 계약서를 훔쳐 와 증거를 인멸할까?그런 생각이 전태윤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이내, 전태윤은 그 생각을 꾹 참았다.전씨 가문의 큰 도련님으로서, 그는 이렇게 뻔뻔한 짓은 할 수가 없었다."강아지 엄청 귀엽다."심효진은 강아지의 털을 매만지며 귀여움을 칭찬했다.전태윤의 안목은 참으로 뛰어났다. 고른 강아지와 고양이는 귀엽기 그지없었다.그러니 주우빈은 더 말할 것이 없었다. 전태윤의 품에서 강아지랑 놀겠다고 내려달라고 온갖 발버둥을 쳤다.하예정은 휴대폰을 꺼내 강아지와 고양이의 사진을 찍었지만 바로 SNS에 올리지는 않았다.전태윤은 전에는 그녀의 SNS를 시시각각 관찰했었지만 지금, 두 사람은 막 냉전을 끝낸 상태였다."예정아, 방금 찍은 사진 나한테도 보내줘."전태윤은 하예정의 기분이 좋은 틈을 타 멍석을 깔아주었다.하예정은 본능적으로 받아쳤다."제 연락처도 다 차단했는데 제가 어떻게 사진을 보내요? 알아서 찍어요. 마음대로 찍고 싶은 만큼 찍어요."전태윤은 침묵했다.한참이 지나, 그녀는 하예정의 곁으로 가 조용히 그녀의 옷자락을 잡았다.하예정이 그를 쳐다봤을 때, 전태윤은 얼굴를 살짝 붉힌 채 작게 말했다."예정아, 내가 잘못했어. 우리 서로 차단 풀어주면 안 될까?"하예정은 눈을 깜빡였다. 전태윤의 얼굴은 점점 더 붉어졌다. 그같이 오만한 사람이 간만에 이렇게 고개 숙이는 데다, 강아지와 고양이도 선물해 준 것을 봐 하예정은 통이 크게 그를 차단 목록에서 해제했다."앞으로 또 이러
"태윤 씨, 왔어요?"매부도 있는 것을 본 하예진은 매부를 향해 웃더니 곧장 다가가 아들을 안았다. 그런 뒤 주우빈의 얼굴에 세게 입을 맞추자 주우빈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처형."전태윤은 처형을 불렀다."어머, 웬 강아지랑 고양이야? 너무 귀엽다!"하예진은 아들에게 입을 맞춘 뒤에야 가게에 새 멤버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태윤 씨가 키우라고 선물해 준 거야. 언니, 일자리 찾은 거야?"언니가 방금 전 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하예정은 오랜만에 봤다.하예진은 매부가 사 온 동물을 귀엽다고 칭찬한 뒤 동생에게 말했다."찾았어. 정말 우연히 말이야. 나도 아는 사람을 만날 줄은 몰랐어. 예정아, 나 어디에 취직했는지 알아?"'"이씨 그룹이야."하예정은 그 대기업들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관성에서 제일 유명한 전씨 그룹도 친구가 자주 전씨 그룹 도련님을 언급했기에 알게 된 것뿐이었다. 그리고는 전태윤과 초고속으로 결혼했고, 전태윤은 전씨 그룹에서 일하는 탓에 더 잘 알게 된 것이었다.성씨 그룹은 성소현 때문에 알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대기업의 이름에 대해 하예정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그녀는 자신이 대기업의 사람과 교류가 있을 리 만무하다고 생각해 딱히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럴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공예품이나 더 만드는 게 나았다.이씨 그룹을 들은 뒤 하예정은 웃으며 물었다."언니, 이씨 그룹 대기업 아니야? 거기서 이직한 옛 동료라도 만난 거야?"하예진은 드디어 일자리를 찾아 기분이 좋은 데다 동생의 앞에서 숨길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에 사실대로 모든 과정을 동생에게 말했다.이야기를 다 들은 하예정은 조금 화가 났다. 언니는 조금 뚱뚱하기는 했지만 언니를 무시하고 차별하는 조아영이라는 사람은 확실히 교양이 없어 보였다. 만약 이동명을 만나지 않았다면 언니는 그대로 쫓겨났을 게 뻔했다."예정아, 언니도 잘못한 게 있어. 말을 그렇게 험하게 했으니 조아영 씨가 화를 낸 거잖아. 이제 다 지나간 일이고, 일자리도 생겼잖아.
고개를 돌리자 하예정은 아예 그를 보지도 않은 채 음식만 챙기고 있었다. 하예정이 들고 잇는 음식을 보니 채소볶음 한 접시를 제외하고는 죄다 해산물이었다.그건 성소현이 선물한 해산물이었다.그는 성큼성큼 다가가 하예정의 손에서 그릇을 빼앗았다."들어온 김에 대신 날라줄게. 괜히 왔다 갔다 하기 힘들잖아.""고마워요, 태윤 씨."막 걸음을 옮기려던 전태윤은 끝내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봤다."왜 그래요?"하예정은 그가 그릇을 빼앗아 간 뒤 다른 그릇을 들었다. 그러다 어두워진 눈빛으로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을 본 그녀는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옷이 더러워진 것도 아니었다."당신, 태윤 씨라고 안 부를 수는 없어?"전태윤은 홧김에 마음속의 불만을 털어놓았다.하예정과 지내면서 무슨 불만이 있으면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이 제일 좋았다. 하예정에 추측하라고 두기에는 미안하지만 그녀는 그럴 시간이 없었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그녀는 계약 내용을 철저히 지키고 있었다."그럼 뭐라고 불러요?"전태윤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순간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그의 이름만 부르기에는 그도 어색했다.여보라고 부르기에는, 생각해보지 않아도 부르지 않을 것 같았다.그리고 전태윤도 어쩐지 하예정에게 남편이라고 불리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마음대로 해."전태윤은 그 한마디만 내뱉은 뒤 음식 그릇을 들고 나갔다.하예정은 작게 중얼거렸다."태윤 씨가 아니라, 남편이라고 부르면 뭐 대답이나 해줄래요?"전태윤은 당분간 결혼 사실을 숨긴다고 말했고, 지금까지 그들이 부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정말 많지 않았다.하예정은 그 일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은 채 음식 그릇을 들고 날랐다.심효진과 하예진은 이미 테이블을 깨끗이 닦은 뒤 다 차려놓았다.부부가 음식을 들고나온 것을 보자 심효진과 하예정도 주방에 들어가 도왔다.비록 오늘은 할머니가 전태윤에게 하예정에게 새우 껍질을 까주라고 귀띔해 주지는 않았지만 한 번 경험이 있었던 그
전태윤이 그렇게 말까지 한 마당에 하예진도 더 아무 말 없이 아들에게 일회용 장갑을 씌워줬다.식사를 마친 뒤, 전태윤은 아내를 도와 그릇을 거둬 주방에서 설거지를 했다.하예진은 동생의 앞에서 매부의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동생에게 전태윤에게 잘하라고 신신당부했다.그녀는 자신의 결혼생활이 실패했다는 이유로 동생이 결혼 생활에 실망을 할까 봐 걱정이었다.주형인은 쓰레기였지만, 그렇다고 모든 남자가 다 쓰레기인 건 아니었다.이 세상에, 좋은 남편은 그래도 있었다.다만 하예진은 운이 좋지 못해 만나지 못한 것뿐이었다.하예정은 알겠다는 듯 대답했다."언니, 알았어. 그렇게 태윤 씨 칭찬만 수백 번 하지 않아도 돼. 난 들어가서 설거지나 도와야겠다."말을 마친 하예정은 괜히 언니가 옆에서 전태윤이 얼마나 좋은지 칭찬하며 전태윤에게 잘하라는 잔소리할까 봐 얼른 주방으로 들어갔다.듣고 있으면 마치 자신이 평소에 전태윤을 괴롭히는 것 같지 않은가.심효진도 옆에서 몰래 웃음을 터트렸다.막 설거지를 하려는데 발걸음 소리가 들려 와 전태윤은 고개를 돌려 주방 입구 쪽을 쳐다봤다. 하예정을 본 그가 무심하게 말했다."내가 할 테니까 당신은 좀 쉬고 있어. 한 상 가득 차리느라 고생했을 텐데.""당신이 와서 먹는다길래 그렇게 많이 준비한 거예요."하예정은 아예 그를 옆으로 밀어냈다."태윤 씨는 나가 차라도 마시고 있어요, 제가 할게요. 태윤 씨 처형은 제가 태윤 씨를 괴롭히고 학대할까 봐 매일같이 제 앞에서 '태윤 씨는 좋은 남자야, 꼭 잘해줘야 해.'라고 잔소리하는데, 귀에 딱지가 다 앉을 지경이에요."전태윤은 그녀와 설거지를 하겠다 실랑이를 하지 않았다. 손을 씻은 그는 동의한다는 듯 말했다."처형은 겪어 본 사람이니, 잘 아는 거지. 안목도 있고, 틀린 말이 아니네.""…"하예정은 대꾸할 말을 잃었다."당신 형부가 바람을 피운 증거 가져왔어. 차에 있는데 지금 처형한테 가져다줄까?""이렇게 빨리 증거를 찾았어요?"전태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
전태윤은 밖에 앉아 잠깐 쉬었다. 이내 회사로 돌아가야 할 때, 마침 설거지를 마치고 나온 하예정은 가려는 그를 보자 따라 나왔다.그는 조용히 차에서 서류 봉투를 꺼낸 뒤 하예정에게 건네며 말했다."여기 전부 다 있어."주형인이 불륜 증거를 받은 하예정은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한 뒤 짙게 가라앉은 그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하예정은 주변을 둘러보다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는 이내 생각을 접었다."가는 길 조심해서 가요. 회사에 도착하면 문자 보내고요. 잘 도착했는지 궁금해요."전태윤은 입술을 꾹 다문 채 가라앉은 목소리로 짧게 대답했다.차에 올라탄 뒤 그는 그윽한 눈으로 하예정을 몇 번 힐끔 보고 나서야 차에 시동을 걸고 떠났다.하예정은 제자리에 서서 멀어지는 차를 바라봤다. 왠지 두 사람 사이가 이상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조금 애정이 생긴 기분이었다.어쩌면 이대로 숨지 않고 다시 슬쩍 고개를 내밀어 사랑을 느껴봐도 되지 않을까?반년 계약이 아직 다 차지 않았으니 기회는 있었다.그렇게 생각한 하예정은 휴대폰을 꺼내 카톡으로 전태윤에게 문자를 보냈다."방금 전에 입 맞추고 싶었는데 옆에 사람이 있어서 못 했어요."메시지를 보낸 그녀는 전태윤의 답장을 기다리지는 않았다.잠시 망설이던 하예정은 이내 서류 봉투를 들고 가게로 돌아갔다.주우빈은 엄마 품에서 쿨쿨 자고 있었다.심효진은 고양이 두 마리를 데리고 놀다 들어오는 하예정을 보고는 물었다."너희 그이 갔어?""응, 출근 시간이잖아. 일도 바빠서 툭 하면 밤이 늦어야 집에 와."하예정도 고양이 두 마리를 쓰다듬었다.선물로 랙돌 고양이 두 마리를 턱턱 주는 전태윤은 그녀에게 사실 아주 잘해주고 있었다.강아지도 몹시 귀여웠다.동물이 생겼으니 조금 있다가 인터넷으로 강아지 사료를 좀 구매할 생각이었다."언니, 저기 작은 침대 있어. 우빈이 거기에 눕혀, 힘들게 안고 있지 말고."하예정은 다가가 조카를 안아 든 뒤 서류 봉투를 언니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건 태윤 씨가 친구한테 부
하예진은 입술을 깨물면서 겨우 눈물을 그쳤다.하예진은 주형인을 위해 울었었고 더 이상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했다.하예진의 눈물은 그이의 연민을 얻어낼 수 없게 돼서, 눈시울을 붉힐 의미가 없었다."나는 괜찮아."하예진은 종잇장을 봉투에 집어넣으면서 애써 꿋꿋하게 말했다."나 지금 마음이 많이 진정됐어. 인제 와서 그이가 나를 배신했다는 것을 안 것도 아니야.""예정아."하예진은 봉투를 예정이에게 건네면서 말했다."이 증거들을 네가 언니 대신 보관해 줘. 집에 가져갔다가 그이한테 들키면, 재산을 미리 빼돌려서 나한테 불리할 수 있어.""그래."하예정이 봉투를 건네받으면서 침착하게 말했다."네가 말한 것처럼 모르는 척하고 있다가 일자리가 안정되면 그때 가서 이혼하자고 말할 거야. 내 몫을 확실히 챙겨서 그들을 가만두지 않을거야!"하예진은 결혼 후에 직장을 다니지 않았지만, 가정을 위해 헌신했다. 결혼 후에 주형인이 번 돈은 부부 공동 재산에 속하기에, 하예진은 그이가 모아둔 돈을 빼앗아서 그이의 심정을 편찬하게 하려고 했다.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인테리어 비용도 하예진이 낸 것이었다.그래서 주형인에게서 인테리어 비용을 돌려받으려고 했다."언니 화이팅!"하예정은 하예진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언니, 마음 놓고 싸워, 내가 곁에 있어 줄게!""예정아."하예진은 하예정을 꼭 껴안았다.열다섯 살에 엄마 아빠가 세상을 떠났고 하예진과 하예정은 서로를 의지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하예진은 쓰레기 같은 주형인 때문에 무너지지 않았다."링링링......"예진이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하예진은 하예정의 품에서 떨어져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 표시를 봤다. 주형인이 걸어온 전화였다.하예진은 말없이 전화를 받았다."하예진, 너 지금 어디야?"주형인이 다짜고짜로 하예진에게 질문했다."하루 종일 밖에서 뭐 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엄마랑 누나가 집에 찾아갔다가 지금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어."하예진은 쌀쌀맞은 말투로 말
고진호도 고현이 여자였기 때문에 며느리가 아닌 사위가 필요했고 따라서 재벌가 딸들에게 희망을 품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전호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꼭대기 층에 올라가서 엘리베이터를 막 빠져나오자마자 고현이 고객을 배웅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 뒤에는 단정하게 양복을 입은 젊은 여성 몇 명이 따르고 있었는데 아마도 고객의 비서일 것이다.전호영과 고객들은 서로를 잘 몰랐다.고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전호영은 말없이 한쪽으로 비켜섰다.고현은 직접 고객을 아래층으로 배웅했다.남 비서가 전호영을 쳐다보자 전호영은 눈빛으로 고현을 따라가라고 신호를 보냈다.전호영은 이미 고현의 사무실에 대해 매우 익숙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남 비서가 그에게 예의를 갖출 필요 없었다.고현의 사무실과 휴게실에 관해 전호영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고현 일행이 엘리베이터에 들어간 후, 전호영은 스스로 고현의 사무실로 갔고 바로 문을 밀고 들어갔다.사무실에 들어선 전호영은 먼저 커피 한 잔을 타고 소파에 앉았다. 그때 고현이 돌아왔다.“어젯밤 일은 어떻게 됐어요?”고현은 그에게 다가가 나지막이 물었다.“예진 누나를 대신해서 죽은 경호원 가족들이 와서 뒷일을 처리했어요. 이씨 가문도 가족에게 보상을 해주고 보험회사에서도 가족들에게 보상해 줄 거예요. 이씨 가문의 모든 경호원은 거액 보험에 가입했거든요. 저도 이따가 예진 누나에게 전화해서 오늘 오후에 그 경호원의 가족들을 보러 가자고 해야겠어요. 그 경호원은 비록 이씨 가문의 희생 품이지만 그래도 예의는 갖추어야 하는걸요.”현재, 그 차 사고는 잠시 의외 사고로 단정 지어졌다.이씨 가문의 음모라는 증거가 없어서 이씨 가문은 충분한 연기를 해야 만이 사람들의 비난을 받지 않았다.죽은 그 이씨 가문의 경호원은 스스로 재수 없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이은화의 마음이 그토록 모질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하예진을 이씨 가문의 가족 연회에 처음 초대한 당일에 그녀를 죽이려고 했으니 말이다.하예진이 경계
다행히도 이 모든 악몽은 이미 끝났다.하예진은 이미 다시 일어서서 사업을 일으켰다.“호영 씨, 이만 가볼게요. 저도 나가서 일해야 하거든요. 회사를 설립하는 일을 아직 다 마치지 못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회사가 강성에 있어야 다른 회사와 협력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동명 형이 오시는 길일 텐데 더 기다리지 않으려고요?”전호영은 장난치고 싶었다.하예진도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야 도착할 거에요. 동명 씨가 먼저 오면 저 대신 먼저 대접해 주세요. 호영 씨와 동명 씨가 더 친하잖아요.”“저도 좀 이따가 고씨 그룹에 갈 거예요.”“알겠어요. 그럼, 제가 빨리 돌아오죠. 미래의 아내가 더 중요한 법이죠. 호영 씨 둘째 형도 혼인신고 했다면서요. 호영 씨가 설을 쇠러 갈 때면 운초 씨는 아마 임신했을걸요. 힘내셔야겠는데요.”전호영은 그의 잘생긴 얼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누나, 저도 필사적으로 힘을 내는 중이거든요. 우리 현이 씨는 둘째 형수님보다 따르기가 훨씬 어렵거든요.”여운초는 겉으로 보기에는 작고 하얀 꽃처럼 부드럽고 연약해 보였다.여운초가 여씨 그룹을 단단히 장악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전호영도 여운초가 계략과 수단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전혀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끈질긴 열정을 이기는 사람이 없다고 하잖아요.”하예진은 말을 마치고 일어나 전호영의 일을 방해하지 않도록 작별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전호영의 사무실에서 나왔을 때, 하예진은 마침 이경혜의 전화를 받았다.이경혜와 하예진은 전화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하예진이 떠난 지 30분 만에 전호영은 일을 끝내고 호텔을 떠나 고씨 그룹으로 향했다.전호영은 이씨 가문의 뒷일을 고현에게도 알려주려고 했다.이번에 전호영은 꽃도, 보석도 사지 않았다. 고현은 비록 여자이지만, 어려서부터 남장을 하고 성격도 남성적이라 여자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전호영은 그녀에게 손목시계를 하나 사줬다.고씨 그룹의 사람들은
“이 대표님께서도 크게 노하셨을 거예요. 정군호 씨는 잘 모르지만, 이윤정 씨는 그날 밤 쫓겨났어요. 한밤중에 정군호 씨가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실려 갔다고 들었는데, 이 대표님은 아무도 병원에 따라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고 정군호 씨의 상처에 관해 묻는 것도 허락하지 않으셨대요.”전호영은 여기까지 말하다가 문득 말을 멈추었다.하예진은 아직 다 마시지 못한 물잔을 들고 두 모금 더 마시더니 다시 잔을 내려놓고는 조용히 전호영을 바라보며 그가 말을 이어나갈 때까지 기다렸다.전호영이 말을 이었다.“사람을 보내 병원에 가서 알아보게 했어요.”“이모할아버지의 부상 상황은 어떻게 되셨대요? 이모할머니가 벌인 일이래요?”그러자 전호영이 대답했다.“이 대표님께서 저지른 일이 아니라 정군호 씨가 스스로 그 부위를 자른 거래요.”전호영은 정군호가 벌인 일이 이은화의 핍박이라고 추측했다.정군호는 절대로 스스로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다.이은화가 아마도 정군호에게 두 가지 길을 준 것 같았다.정군호 배후의 정씨 집안은 여전히 이씨 가문에 의지하여 살아가야 했기에 정군호는 절대로 이혼하지 않을 것이다. 이혼하지 않으면 정군호는 이은화를 안심시킬 수 없기에 칼을 휘둘러 스스로 그런 짓을 해야만 이은화를 안심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하예진이가 깜빡이며 의아했다. 그녀는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전호영도 정군호의 부상에 대해 계속해서 말하지 않았고 그냥 말 한마디만 내뱉었다.“정군호 씨는 죽지 않았어요. 정군호 씨의 부상은 알아보기 어려울 거예요. 이 대표님께서 엄밀하게 숨기고 있거든요. 남자들에게는 특히 데릴사위인 정군호 씨에게는 존엄 없는 짓이나 다름없으니까요.”하예진은 담담하게 말을 꺼냈다.“데릴사위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 바로 재벌 가문으로 시집가는 여자들이 당하고 있는 일 아닌가요? 성별이 바뀌었을 뿐이죠.”전호영은 순간 말문이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잠시 후, 전호영이 말했다.“누나, 우리 동명 형은 좋은 사람이에요. 과거의 일은 지나
하예진이 위험에 처해 사고가 일어나야만 경호원들이 주동적으로 노동명에게 보고했다.“괜찮으면 됐어. 그럼 됐어. 너무 놀랐잖아. 예진아, 내가 이따가 강성으로 갈 건데 아마 오후 2시 전에 도착할 것 같아.”하예진이 대답했다.“전 괜찮아요. 여기까지 올 필요 없어요.”노동명이 외출하는 것이 너무 불편했기 때문에 하예진은 늘 그를 걱정했다.“내 두 눈으로 네가 멀쩡한 모습을 보고야 말겠어. 네가 괜찮다는 것을 확인해야 내가 시름 놓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저는 정말 괜찮아요. 경호원들에게 물어보면 되잖아요. 우린 다 괜찮아요. 동명 씨가 외출하기 불편하실 텐데 너무 멀리 오면 안 돼요.”노동명은 기어코 가겠다고 고집했다.“네가 보고 싶어서 그래. 너무너무 보고 싶어. 네가 괜찮은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그래.”하예진은 반박하지 못했다.“그럼 조심히 오세요. 만약 몸이 불편하면 고집하지 마시고. 동명 씨, 우리는 각자가 서로를 위해서 자신의 건강을 잘 챙겨야 해요. 아시겠죠?”노동명은 부드러운 어조로 나지막이 대답했다.“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몸이 불편하면 외출하지도 않아. 걱정하지 마. 난 괜찮아. 오후에 봐.”“네, 오후에 봐요.”하예진은 전화를 끊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생각해보면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노동명이 하예진에게 주고 있는 것은 전남편이 줄 수 없는 것들이었다.어쩌면, 노동명이 그녀에 대한 사랑이 진정한 사랑일지도 모른다. 주형인도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적 있었겠지만, 나중에 복잡한 일들이 많이 끼는 바람에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하예진이 지금 묵고 있는 호텔은 강성에 있는 전씨 가문의 사업 중 하나이며 전호영이 맡은 부분이다.하예진은 쉽게 전호영을 만날 수 있었다.그녀는 잠을 더 자려고 해도 더는 잠이 오지 않았다.약을 몇 알 먹은 하예진은 이내 두통이 사라지게 되었고 휴대전화를 들고 일어나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호텔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더니 전호영의 사무
게다가 노동명은 하예진 모자한테 진심으로 잘해줬고 그는 우빈이를 자기 자식처럼 여겼다.그녀가 노동명을 거부하고 재혼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단지 재혼하면 다시 불 구덩이에 빠질까 봐 걱정됐고 또한 우빈이가 괴롭힘을 당할까 봐 두려웠다.하지만 노동명은 그녀를 도와 모든 장애물을 제거했다. 노씨 가문은 그녀를 받아들였고 그녀가 노동명과 결혼하는 것을 고대하고 있었다. 우빈이가 괴롭힘을 당하는 것에 대한 걱정은 더더욱 필요가 없었다. 노동명은 친아빠인 주형인보다 우빈이를 더 아끼고 사랑해 주었다.만약 그녀가 다시 결혼한다면 노동명이 가장 적합한 후보일 것이다.“동명 오빠도 언니한테 피해 줄까 봐 두려워서 그러는 거야. 언니한테 피해보다 행복을 주고 싶은 거지. 그러니까 언니가 좀 더 기다려줘. 동명 오빠가 곧 일어설 거라고 난 믿어.”“알아. 그래서 몇 년이 걸리더라도 그 사람을 기다릴 거야. 기다리는 동안 내 사업도 열심히 발전시키는 중이야.”지금의 그녀는 관성의 3대 재벌 가문의 투자, 후원 및 지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이익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이익보다도 그 속에서 얻은 경험은 돈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언니 화이팅! 우리 언니가 최고야. 난 항상 언니가 자랑스러워.”하예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언니가 많이 힘낼게.”“언니, 수다 그만 떨고 얼른 잠 좀 자.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으면 나한테 꼭 알려줘야 해. 안 알려주면 걱정만 할 테지만 알려 주면 적어도 우리가 해결 방법을 같이 생각하고 모두가 같이 부담하면 훨씬 더 편해지잖아.”“그래 알았어.”자매가 통화를 마친 후 하예진은 계속 자려고 했으나 잠이 오질 않았다.그녀는 일어나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뭐 좀 먹으러 나갈 준비를 했다.이 시간에 호텔 1층 뷔페 레스토랑에서 아침 식사를 제공하지 않아 그녀는 밖으로 나가 아침 식사를 하기로 했다.아침을 먹고 호텔로 돌아온 하예진은 여전히 머리가 아파서 캐리어에서 진통제를 꺼냈다. 그녀는
모연정네 다섯 식구는 저녁에 전용기를 타고 A시로 돌아갈 계획이었다.예준성도 거대한 예진 그룹을 관리하느라 매우 바빴다.“언니가 어젯밤에 늦게 잠들어서 아직도 엄청나게 졸려. 언니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나 조금만 더 잘게.”하예진은 정신이 몽롱했고 머리도 약간 아팠다. 그녀는 동생한테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 뒤 계속 잠을 청하기로 했다.“언니, 앞으로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 꼭 나한테 먼저 말해줘. 알았지?”“난 잘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넌 집에서 몸조리 잘하고 맘 편히 일하면서 우리 우빈이를 잘 돌봐주면 돼. 언니 걱정은 하지 마. 얼른 일 봐.”하예정은 잠시 침묵한 뒤 말했다.“언니, 나랑 우빈이는 언니가 돌아오기를 항상 기다리고 있어.”하예진은 웃으면서 말했다.“이모가 맡기신 일을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너희 보러 돌아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 조카가 태어나면 꼭 보러 돌아갈 거야.”그녀의 유일한 여동생이 아이를 낳으면 그녀는 반드시 돌아가 지킬 것이다.그녀는 동생의 가족이니까.“내년에야 출산할 수 있을 거야. 아직 배도 안 나왔어.”하예진은 웃으면서 말했다.“2개월이 지나면 배가 나오기 시작할 거야. 다시 출근하더라도 조심해야 해. 중요한 일이 없으면 집에서 태교하면서 쉬어. 어차피 세 사람이 공동으로 출자한 회사니까 소현이가 주요하게 관리할 거고 너랑 효진 씨는 태교에 집중하면 돼.”“나 아직 움직일 수 없는 단계는 아니야. 뭔가 하긴 해야 해. 매일 집에만 있으면 지루하고 짜증만 나서 태교에 더 안 좋아.”전태윤은 그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집에서 태교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임신 후기에 집에서 태교해도 너무 늦지 않았고 임신 8개월까지 회사에 나가겠다고 요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알았어. 네가 좋을 대로 해. 아무튼 몸조심하고 절대 무리하지 마. 무리하면 언니가 가만있지 않을 거야.”“나 임산부인데 자꾸 뭐라고 할 거야?”“당연히 해야지. 넌 분명히 나 때와 달리 집에서 편안하게 태교할 수 있단 말
“오빠, 난 이제 빈털터리인데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정일범은 그래도 이윤정을 많이 아꼈다. 그는 지갑을 꺼내서 연 후 안에 있는 모든 현금을 꺼내 이윤정의 손에 쥐여주고 또 카드 한 장을 꺼내 이윤정에게 쥐여주면서 말했다.“오빠가 줄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어. 비밀번호는 내 생일이야. 비록 돈은 많지 않지만 당장 눈앞의 어려움을 해결하기에는 충분할 거야.”“일단 호텔을 찾아서 머물고 몸조리를 해. 며칠 후에 엄마 화가 풀리면 내가 네 상황을 엄마한테 설명해 볼게.”이윤정은 현금과 카드를 받고 울면서 말했다.“오빠 정말 고마워. 역시 오빠밖에 없어.”정일범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얼른 가봐. 그 사람들이 내가 너한테 돈을 준 걸 알면 다시 뺏어올 거야. 그때 가서 넌 진짜 빈털터리 되는 거야.”이윤정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녀가 여기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세 형수로부터 온갖 수모와 모욕을 당할 거란 걸 알고 있다.그뿐만 아니라 하인들이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과 이윤미의 고고한 자태만으로도 그녀의 가슴을 찌르기에는 충분했다.“정일범!”큰 사모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곧바로 이윤정한테 달려들어 현금과 카드를 뺏어갔다.정일범이 아내를 끌어당기려고 손을 뻗자 그녀는 돌아서서 그의 뺨을 내리쳤다.“정일범, 나랑 애들이 집에서 쫓겨나게 하고 싶어? 어젯밤에 어머님이 이 년을 쫓아내라고 할 때 뭐라고 했는지 당신도 들었잖아! 근데 감히 어머님의 말씀을 어기고 이년한테 돈과 카드를 주다니! 죽고 싶은 거면 당신 혼자 죽어. 나랑 애들을 끌어내리지 마!”아내한테 화를 내려고 했던 정일범은 욕을 얻어먹은 후 찍소리 못했다.큰 사모님은 남편이 더 이상 이윤정을 돕지 못하도록 끌고 갔다.오늘과 같은 결과는 그녀가 열심히 판을 짜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얻은 속 시원한 결과였다. 그래서 이대로 남편이 이윤정을 도와 어려움을 헤쳐나가게 할 수는 없었다.“꺼져. 당장 안 꺼지면 사람 불러서 쫓아낼 거야!”큰 사모님은 남편을 끌고
정일범의 부축을 받아 일어난 이윤정은 그의 품에 안겨 펑펑 울기 시작했다.자신도 피해자인데 무엇을 잘못했다고 이런 일까지 당해야 하는지 그녀는 이해가 안 갔다.정일범은 그녀를 안아주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울지 마. 저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서 너한테 무슨 짓 할지 모르니까 일단 여기서 나가야 해. 지금 저 사람들이 너에 대한 불만이 가득해서 기회만 잡으면 널 계속해서 괴롭히려고 할 거야.”이윤정은 오빠들의 편에 섰단 이유로 그의 아내의 미움을 샀다.그녀가 아무리 같은 여자라고 해도 그들의 여동생으로서 그녀는 당연히 오빠들 편이었다. 시누이로서 형수 편에 서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이윤미가 세 형수의 편에 선 것은 그녀의 정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오빠들에 대한 정이 없어서였다.“오빠, 나 안가.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서 다 설명해 드릴 거야.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난 정말 모르겠어. 난 피해자고 누군가 날 해치려고 하는 게 분명해. 어젯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왜 하필이면 나일까?”“누군가가 나를 망가뜨리려고 꾸민 짓인 게 틀림없어.”그녀를 해친 사람은 그녀보다 훨씬 더 악랄했다.어젯밤에 일어난 일이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게 분명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분석해 보면 누가 그랬는지 짐작이 가긴 했다. 하지만 정일범은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아버지와 이윤정이 마신 반병의 술은 그가 자신의 방에서 다 마시지 못하고 술장에 넣어뒀던 거였다.그날 아버지는 기분이 좋지 않아서 그에게 술 한 병을 달라고 하셨다.그는 아버지가 취하실까 봐 걱정되어 한 병 통째로 드리지 않고 그가 마셨던 걸로 드렸다.그 술에 누군가가 약을 타서 아버지와 이윤정을 해치려고 한 거였다.누구일까?그가 아니라면 그의 아내일 것이다.그의 아내가 왜 약을 탔을까?그날 밤 정일범은 술 한 병을 따서 잔을 채우고 두 모금 마신 후 소변이 급해서 화장실에 갔다. 그가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아내가 섹시한 잠옷을 입고 바에 앉아
“처음부터 네 것 아니었잖아. 20 년 넘게 남의 인생 훔치고 부유하게 살아온 넌 이제부터 짐승보다 못한 가난한 삶을 살게 될 거야. 지금 당장 시골로 꺼져.”“감히 네가 우리 윤미를 촌년이라고 불러? 진짜 촌년은 너잖아! 아퉤!”모든 것을 잃게 된 이윤정에 대한 사모님들의 분노가 치밀어올랐고, 그들은 온갖 비꼬는 말을 퍼붓기 시작했다.이윤정은 앉으면서 말했다.“절대 못 나가요.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서 내가 일부러 그런 거 아니라고, 누군가가 나를 해치려는 거라고 엄마한테 다 설명할 거예요. 누가 나를 해치려고 했는지 알아내면 그 사람 가만히 안 둘 거예요! ”그녀가 갑자기 세 사모님을 노려보며 물었다.“날 해치려고 한 사람이 설마 당신들이에요?”이씨 집안 큰 사모님은 이윤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앞으로 나아가 그녀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너 같은 짝퉁이 내 손을 더럽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싸구려인 것도 모자라 이제는 남 탓으로 돌리는 뻔뻔함까지 갖춘 거니? 이년아, 잘 들어. 네가 아무리 변명해도 어젯밤에 일어난 일은 어머님 머릿속에 새겨져서 절대 잊지 못할 거야. 넌 이제 끝났어.”이씨 집안 셋째 사모님은 몸을 돌려 별장을 향해 걸어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찬물 한 바가지를 들고 다시 나왔다.그녀는 모든 사람이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이윤정의 머리에 찬물을 끼얹었다.“악!”이윤정은 비명과 함께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튕겨 일어났다.가뜩이나 날씨가 추운데 찬물까지 끼얹었으니, 이윤정은 너무 추워서 몸을 벌벌 떨었다. 그녀가 입고 있던 옷은 흠뻑 젖었고 심지어 바닥에 있는 옷들도 꽤 많이 젖어버렸다.“셋째 동서, 가서 물 한 바가지 더 가져와요. 저년이 덮을 수 있는 옷들을 싹 다 적셔버리고 얼어 죽게 내버려둬요. 언제까지 버티는지 한번 보자고요.”큰 사모님은 셋째 사모님에게 물 한 바가지를 더 가져오라고 분부했다.“나도 같이 가요.”둘째 사모님도 뒤를 따랐다.곧 두 사모님은 각각 찬물 한 바가지를 들고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