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에 전태윤은 입꼬리에 작게 경련이 일었다.하지만 반박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하예정에게 방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마찬가지로 그도 하예정의 방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또 한 번, 전태윤은 자신이 맺은 계약이 자신을 속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가장 먼저 계약을 어기려는 사람이 자신이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이제와서, 후회해도, 소용이 있을까?하예정이 계약서를 어디에 숨겼었지? 그녀가 집에 없는 틈을 타 몰래 계약서를 훔쳐 와 증거를 인멸할까?그런 생각이 전태윤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이내, 전태윤은 그 생각을 꾹 참았다.전씨 가문의 큰 도련님으로서, 그는 이렇게 뻔뻔한 짓은 할 수가 없었다."강아지 엄청 귀엽다."심효진은 강아지의 털을 매만지며 귀여움을 칭찬했다.전태윤의 안목은 참으로 뛰어났다. 고른 강아지와 고양이는 귀엽기 그지없었다.그러니 주우빈은 더 말할 것이 없었다. 전태윤의 품에서 강아지랑 놀겠다고 내려달라고 온갖 발버둥을 쳤다.하예정은 휴대폰을 꺼내 강아지와 고양이의 사진을 찍었지만 바로 SNS에 올리지는 않았다.전태윤은 전에는 그녀의 SNS를 시시각각 관찰했었지만 지금, 두 사람은 막 냉전을 끝낸 상태였다."예정아, 방금 찍은 사진 나한테도 보내줘."전태윤은 하예정의 기분이 좋은 틈을 타 멍석을 깔아주었다.하예정은 본능적으로 받아쳤다."제 연락처도 다 차단했는데 제가 어떻게 사진을 보내요? 알아서 찍어요. 마음대로 찍고 싶은 만큼 찍어요."전태윤은 침묵했다.한참이 지나, 그녀는 하예정의 곁으로 가 조용히 그녀의 옷자락을 잡았다.하예정이 그를 쳐다봤을 때, 전태윤은 얼굴를 살짝 붉힌 채 작게 말했다."예정아, 내가 잘못했어. 우리 서로 차단 풀어주면 안 될까?"하예정은 눈을 깜빡였다. 전태윤의 얼굴은 점점 더 붉어졌다. 그같이 오만한 사람이 간만에 이렇게 고개 숙이는 데다, 강아지와 고양이도 선물해 준 것을 봐 하예정은 통이 크게 그를 차단 목록에서 해제했다."앞으로 또 이러
"태윤 씨, 왔어요?"매부도 있는 것을 본 하예진은 매부를 향해 웃더니 곧장 다가가 아들을 안았다. 그런 뒤 주우빈의 얼굴에 세게 입을 맞추자 주우빈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처형."전태윤은 처형을 불렀다."어머, 웬 강아지랑 고양이야? 너무 귀엽다!"하예진은 아들에게 입을 맞춘 뒤에야 가게에 새 멤버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태윤 씨가 키우라고 선물해 준 거야. 언니, 일자리 찾은 거야?"언니가 방금 전 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하예정은 오랜만에 봤다.하예진은 매부가 사 온 동물을 귀엽다고 칭찬한 뒤 동생에게 말했다."찾았어. 정말 우연히 말이야. 나도 아는 사람을 만날 줄은 몰랐어. 예정아, 나 어디에 취직했는지 알아?"'"이씨 그룹이야."하예정은 그 대기업들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관성에서 제일 유명한 전씨 그룹도 친구가 자주 전씨 그룹 도련님을 언급했기에 알게 된 것뿐이었다. 그리고는 전태윤과 초고속으로 결혼했고, 전태윤은 전씨 그룹에서 일하는 탓에 더 잘 알게 된 것이었다.성씨 그룹은 성소현 때문에 알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대기업의 이름에 대해 하예정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그녀는 자신이 대기업의 사람과 교류가 있을 리 만무하다고 생각해 딱히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럴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공예품이나 더 만드는 게 나았다.이씨 그룹을 들은 뒤 하예정은 웃으며 물었다."언니, 이씨 그룹 대기업 아니야? 거기서 이직한 옛 동료라도 만난 거야?"하예진은 드디어 일자리를 찾아 기분이 좋은 데다 동생의 앞에서 숨길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에 사실대로 모든 과정을 동생에게 말했다.이야기를 다 들은 하예정은 조금 화가 났다. 언니는 조금 뚱뚱하기는 했지만 언니를 무시하고 차별하는 조아영이라는 사람은 확실히 교양이 없어 보였다. 만약 이동명을 만나지 않았다면 언니는 그대로 쫓겨났을 게 뻔했다."예정아, 언니도 잘못한 게 있어. 말을 그렇게 험하게 했으니 조아영 씨가 화를 낸 거잖아. 이제 다 지나간 일이고, 일자리도 생겼잖아.
고개를 돌리자 하예정은 아예 그를 보지도 않은 채 음식만 챙기고 있었다. 하예정이 들고 잇는 음식을 보니 채소볶음 한 접시를 제외하고는 죄다 해산물이었다.그건 성소현이 선물한 해산물이었다.그는 성큼성큼 다가가 하예정의 손에서 그릇을 빼앗았다."들어온 김에 대신 날라줄게. 괜히 왔다 갔다 하기 힘들잖아.""고마워요, 태윤 씨."막 걸음을 옮기려던 전태윤은 끝내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봤다."왜 그래요?"하예정은 그가 그릇을 빼앗아 간 뒤 다른 그릇을 들었다. 그러다 어두워진 눈빛으로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을 본 그녀는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옷이 더러워진 것도 아니었다."당신, 태윤 씨라고 안 부를 수는 없어?"전태윤은 홧김에 마음속의 불만을 털어놓았다.하예정과 지내면서 무슨 불만이 있으면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이 제일 좋았다. 하예정에 추측하라고 두기에는 미안하지만 그녀는 그럴 시간이 없었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그녀는 계약 내용을 철저히 지키고 있었다."그럼 뭐라고 불러요?"전태윤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순간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그의 이름만 부르기에는 그도 어색했다.여보라고 부르기에는, 생각해보지 않아도 부르지 않을 것 같았다.그리고 전태윤도 어쩐지 하예정에게 남편이라고 불리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마음대로 해."전태윤은 그 한마디만 내뱉은 뒤 음식 그릇을 들고 나갔다.하예정은 작게 중얼거렸다."태윤 씨가 아니라, 남편이라고 부르면 뭐 대답이나 해줄래요?"전태윤은 당분간 결혼 사실을 숨긴다고 말했고, 지금까지 그들이 부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정말 많지 않았다.하예정은 그 일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은 채 음식 그릇을 들고 날랐다.심효진과 하예진은 이미 테이블을 깨끗이 닦은 뒤 다 차려놓았다.부부가 음식을 들고나온 것을 보자 심효진과 하예정도 주방에 들어가 도왔다.비록 오늘은 할머니가 전태윤에게 하예정에게 새우 껍질을 까주라고 귀띔해 주지는 않았지만 한 번 경험이 있었던 그
전태윤이 그렇게 말까지 한 마당에 하예진도 더 아무 말 없이 아들에게 일회용 장갑을 씌워줬다.식사를 마친 뒤, 전태윤은 아내를 도와 그릇을 거둬 주방에서 설거지를 했다.하예진은 동생의 앞에서 매부의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동생에게 전태윤에게 잘하라고 신신당부했다.그녀는 자신의 결혼생활이 실패했다는 이유로 동생이 결혼 생활에 실망을 할까 봐 걱정이었다.주형인은 쓰레기였지만, 그렇다고 모든 남자가 다 쓰레기인 건 아니었다.이 세상에, 좋은 남편은 그래도 있었다.다만 하예진은 운이 좋지 못해 만나지 못한 것뿐이었다.하예정은 알겠다는 듯 대답했다."언니, 알았어. 그렇게 태윤 씨 칭찬만 수백 번 하지 않아도 돼. 난 들어가서 설거지나 도와야겠다."말을 마친 하예정은 괜히 언니가 옆에서 전태윤이 얼마나 좋은지 칭찬하며 전태윤에게 잘하라는 잔소리할까 봐 얼른 주방으로 들어갔다.듣고 있으면 마치 자신이 평소에 전태윤을 괴롭히는 것 같지 않은가.심효진도 옆에서 몰래 웃음을 터트렸다.막 설거지를 하려는데 발걸음 소리가 들려 와 전태윤은 고개를 돌려 주방 입구 쪽을 쳐다봤다. 하예정을 본 그가 무심하게 말했다."내가 할 테니까 당신은 좀 쉬고 있어. 한 상 가득 차리느라 고생했을 텐데.""당신이 와서 먹는다길래 그렇게 많이 준비한 거예요."하예정은 아예 그를 옆으로 밀어냈다."태윤 씨는 나가 차라도 마시고 있어요, 제가 할게요. 태윤 씨 처형은 제가 태윤 씨를 괴롭히고 학대할까 봐 매일같이 제 앞에서 '태윤 씨는 좋은 남자야, 꼭 잘해줘야 해.'라고 잔소리하는데, 귀에 딱지가 다 앉을 지경이에요."전태윤은 그녀와 설거지를 하겠다 실랑이를 하지 않았다. 손을 씻은 그는 동의한다는 듯 말했다."처형은 겪어 본 사람이니, 잘 아는 거지. 안목도 있고, 틀린 말이 아니네.""…"하예정은 대꾸할 말을 잃었다."당신 형부가 바람을 피운 증거 가져왔어. 차에 있는데 지금 처형한테 가져다줄까?""이렇게 빨리 증거를 찾았어요?"전태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
전태윤은 밖에 앉아 잠깐 쉬었다. 이내 회사로 돌아가야 할 때, 마침 설거지를 마치고 나온 하예정은 가려는 그를 보자 따라 나왔다.그는 조용히 차에서 서류 봉투를 꺼낸 뒤 하예정에게 건네며 말했다."여기 전부 다 있어."주형인이 불륜 증거를 받은 하예정은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한 뒤 짙게 가라앉은 그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하예정은 주변을 둘러보다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는 이내 생각을 접었다."가는 길 조심해서 가요. 회사에 도착하면 문자 보내고요. 잘 도착했는지 궁금해요."전태윤은 입술을 꾹 다문 채 가라앉은 목소리로 짧게 대답했다.차에 올라탄 뒤 그는 그윽한 눈으로 하예정을 몇 번 힐끔 보고 나서야 차에 시동을 걸고 떠났다.하예정은 제자리에 서서 멀어지는 차를 바라봤다. 왠지 두 사람 사이가 이상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조금 애정이 생긴 기분이었다.어쩌면 이대로 숨지 않고 다시 슬쩍 고개를 내밀어 사랑을 느껴봐도 되지 않을까?반년 계약이 아직 다 차지 않았으니 기회는 있었다.그렇게 생각한 하예정은 휴대폰을 꺼내 카톡으로 전태윤에게 문자를 보냈다."방금 전에 입 맞추고 싶었는데 옆에 사람이 있어서 못 했어요."메시지를 보낸 그녀는 전태윤의 답장을 기다리지는 않았다.잠시 망설이던 하예정은 이내 서류 봉투를 들고 가게로 돌아갔다.주우빈은 엄마 품에서 쿨쿨 자고 있었다.심효진은 고양이 두 마리를 데리고 놀다 들어오는 하예정을 보고는 물었다."너희 그이 갔어?""응, 출근 시간이잖아. 일도 바빠서 툭 하면 밤이 늦어야 집에 와."하예정도 고양이 두 마리를 쓰다듬었다.선물로 랙돌 고양이 두 마리를 턱턱 주는 전태윤은 그녀에게 사실 아주 잘해주고 있었다.강아지도 몹시 귀여웠다.동물이 생겼으니 조금 있다가 인터넷으로 강아지 사료를 좀 구매할 생각이었다."언니, 저기 작은 침대 있어. 우빈이 거기에 눕혀, 힘들게 안고 있지 말고."하예정은 다가가 조카를 안아 든 뒤 서류 봉투를 언니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건 태윤 씨가 친구한테 부
하예진은 입술을 깨물면서 겨우 눈물을 그쳤다.하예진은 주형인을 위해 울었었고 더 이상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했다.하예진의 눈물은 그이의 연민을 얻어낼 수 없게 돼서, 눈시울을 붉힐 의미가 없었다."나는 괜찮아."하예진은 종잇장을 봉투에 집어넣으면서 애써 꿋꿋하게 말했다."나 지금 마음이 많이 진정됐어. 인제 와서 그이가 나를 배신했다는 것을 안 것도 아니야.""예정아."하예진은 봉투를 예정이에게 건네면서 말했다."이 증거들을 네가 언니 대신 보관해 줘. 집에 가져갔다가 그이한테 들키면, 재산을 미리 빼돌려서 나한테 불리할 수 있어.""그래."하예정이 봉투를 건네받으면서 침착하게 말했다."네가 말한 것처럼 모르는 척하고 있다가 일자리가 안정되면 그때 가서 이혼하자고 말할 거야. 내 몫을 확실히 챙겨서 그들을 가만두지 않을거야!"하예진은 결혼 후에 직장을 다니지 않았지만, 가정을 위해 헌신했다. 결혼 후에 주형인이 번 돈은 부부 공동 재산에 속하기에, 하예진은 그이가 모아둔 돈을 빼앗아서 그이의 심정을 편찬하게 하려고 했다.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인테리어 비용도 하예진이 낸 것이었다.그래서 주형인에게서 인테리어 비용을 돌려받으려고 했다."언니 화이팅!"하예정은 하예진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언니, 마음 놓고 싸워, 내가 곁에 있어 줄게!""예정아."하예진은 하예정을 꼭 껴안았다.열다섯 살에 엄마 아빠가 세상을 떠났고 하예진과 하예정은 서로를 의지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하예진은 쓰레기 같은 주형인 때문에 무너지지 않았다."링링링......"예진이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하예진은 하예정의 품에서 떨어져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 표시를 봤다. 주형인이 걸어온 전화였다.하예진은 말없이 전화를 받았다."하예진, 너 지금 어디야?"주형인이 다짜고짜로 하예진에게 질문했다."하루 종일 밖에서 뭐 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엄마랑 누나가 집에 찾아갔다가 지금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어."하예진은 쌀쌀맞은 말투로 말
"예정이는 당신한테 빛진 것 없어. 당신 엄마랑 누나가 먹고 싶다는데 왜 내 동생이 사줘야 하는데? 주형인, 내가 결혼하면서 삼 년 동안 일을 안 해서 돈을 벌어 오지 못했지만, 대신 집안일을 했어. 내가 뒤에서 받쳐주지 않았으면 네가 그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해?""돈을 주지 않으면 사지 않을 거야. 그리고 돈을 보낼 때 인건비도 보내. 네가 말했잖아, 우린 더치페이라고. 그들은 네 엄마고 네 누나니까 내가 밥해줄 의무가 없어. 네가 밥해주라고 했으니 당연히 인건비도 줘야 해.""삼 년 넘게 같이 살아온 정이 있으니, 인건비는 3만 오천 원만 받을게."주형인이 전화로 욕설을 퍼부었다."돈 쓰고 먹는 줄만 알아서 지금처럼 뚱보가 된 거야. 집안일을 뭐 했는데? 난 그런 적 한 번도 못 봤어. 나의 사업은 내가 노력해서 이뤄낸 거야. 너랑 아무 상관도 없어.""그리고 인건비? 나의 엄마는 네 엄가가 아니야? 며느리가 시어머니한테 밥해주면서도 돈을 받아? 사람들이 알까 봐 창피해서 얼굴도 못 들고 다니겠다.""돈 없으면 밥을 하지 않을 거야."말을 마친 하예진은 곧바로 통화를 끊었다.아내가 전화를 끊자, 주형인은 화가 나서 핸드폰을 바닥에 던지려고 했다. 하지만 구입한 지 얼마 안 된 새 핸드폰이고 서현주와 같은 신형 모델이어서 참았다. 주형인은 한꺼번에 핸드폰을 두 대 구입해서 서현주에게 한 대를 나눠줬다.핸드폰을 던지기에는 너무 아까웠다."빌어먹을 뚱보년, 우빈이가 유치원에 가면 바로 이혼할 거야! 나를 떠나면 그 꼴로 아마 아무도 받아주지 않을걸? 그래도 난리 칠 수 있을 것 같아?"주형인이 사무실에서 하예진을 한참 욕했다. 그리고 결국 하예진에게 생선값 팔만 오천 원을 보냈다. 하지만 하예진에게 생선을 사면서 영수증을 꼭 챙기라고 했다. 자기가 저녁에 들어가 영수증을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그사람이 언니보고 집가서 음식하래?"하예진이 전화를 끊자, 하예정이 물었다."그 잘난 시어머니랑 시누이가 또 왔어. 주형인이 생선을
전화를 두 번이나 걸어도 하예진이 집에 돌아오지 않자, 주서인은 화를 내면서 전화를 끊고 엄마한테 말했다."엄마, 예진이는 자기 동생의 가게에 가 있어. 우빈이가 자고 있어서 우빈이가 깨어나야 집에 돌아갈 거니까 우리보고 직접 가서 키를 가져가라는데."김은희가 눈썹을 찡그리며 언짢게 말했다."우빈이가 자고 있으면 우빈이를 안고 돌아오면 되잖아. 하예정가 차로 데려다주면 바로 올 수 있 있어."그녀는 며느리가 자기와 딸이 문 앞에서 기다리게 하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한 것으로 생각했다."일부러 그러는 거야. 우리가 자기를 기다리게 일부러 그러는 거야."주서인도 김은희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예전에 엄마가 키를 집에 놓고 왔을 때 예진이가 집에 없어도 전화 한 통이면 바로 돌아와서 문을 열어줬어. 이번처럼 이렇게 오래 기다리라고 한 적이 없어. 엄마, 예진이가 형인이와 대판 싸우면서 태도가 바뀐 것 같아."김은희가 주서인의 말에 응했다."아마 그런 것 같아."주서인이 욕설을 퍼부었다."하예정이 지난번에 형인이를 그렇게 때려놓고, 예진이도 형인이를 집에 데려가려고 찾아오지도 않고, 결국 우리가 형인이를 말려서 집으로 보냈어. 우빈이가 없었으면 형인이한테 말해서 예진이를 집에서 쫓아냈어.""그 집은 형인이 집이야.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형인이한테 말해서 쫓아낼 거야!"하예진은 남편 면목을 봐서 큰누이와 따지지 않았지만, 큰누이는 항상 하예진을 지적하고 구박했다. 주서인은 현재 하예진이 더 마음에 들지 않아 당장 동생에게 말해서 하예진을 쫓아내려고 했다.이혼해도 주형인의 조건이면 서현주같이 젊고 예쁜 아가씨와 결혼할 수 있지만, 하예진은 자기 동생을 떠나면 받아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재혼한다 해도 할아버지들 외에는 받아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그런 말은 나랑 있을 때만 해. 형인이 앞에서는 하지 마."김은희는 예진이에게 불만이 있었지만, 손자를 위해서도 아들과 며느리가 해어지지 않기를 바랐기에 딸을 경고했다.주서인이 주형인 앞
게다가 노동명은 하예진 모자한테 진심으로 잘해줬고 그는 우빈이를 자기 자식처럼 여겼다.그녀가 노동명을 거부하고 재혼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단지 재혼하면 다시 불 구덩이에 빠질까 봐 걱정됐고 또한 우빈이가 괴롭힘을 당할까 봐 두려웠다.하지만 노동명은 그녀를 도와 모든 장애물을 제거했다. 노씨 가문은 그녀를 받아들였고 그녀가 노동명과 결혼하는 것을 고대하고 있었다. 우빈이가 괴롭힘을 당하는 것에 대한 걱정은 더더욱 필요가 없었다. 노동명은 친아빠인 주형인보다 우빈이를 더 아끼고 사랑해 주었다.만약 그녀가 다시 결혼한다면 노동명이 가장 적합한 후보일 것이다.“동명 오빠도 언니한테 피해 줄까 봐 두려워서 그러는 거야. 언니한테 피해보다 행복을 주고 싶은 거지. 그러니까 언니가 좀 더 기다려줘. 동명 오빠가 곧 일어설 거라고 난 믿어.”“알아. 그래서 몇 년이 걸리더라도 그 사람을 기다릴 거야. 기다리는 동안 내 사업도 열심히 발전시키는 중이야.”지금의 그녀는 관성의 3대 재벌 가문의 투자, 후원 및 지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이익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이익보다도 그 속에서 얻은 경험은 돈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언니 화이팅! 우리 언니가 최고야. 난 항상 언니가 자랑스러워.”하예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언니가 많이 힘낼게.”“언니, 수다 그만 떨고 얼른 잠 좀 자.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으면 나한테 꼭 알려줘야 해. 안 알려주면 걱정만 할 테지만 알려 주면 적어도 우리가 해결 방법을 같이 생각하고 모두가 같이 부담하면 훨씬 더 편해지잖아.”“그래 알았어.”자매가 통화를 마친 후 하예진은 계속 자려고 했으나 잠이 오질 않았다.그녀는 일어나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뭐 좀 먹으러 나갈 준비를 했다.이 시간에 호텔 1층 뷔페 레스토랑에서 아침 식사를 제공하지 않아 그녀는 밖으로 나가 아침 식사를 하기로 했다.아침을 먹고 호텔로 돌아온 하예진은 여전히 머리가 아파서 캐리어에서 진통제를 꺼냈다. 그녀는
모연정네 다섯 식구는 저녁에 전용기를 타고 A시로 돌아갈 계획이었다.예준성도 거대한 예진 그룹을 관리하느라 매우 바빴다.“언니가 어젯밤에 늦게 잠들어서 아직도 엄청나게 졸려. 언니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나 조금만 더 잘게.”하예진은 정신이 몽롱했고 머리도 약간 아팠다. 그녀는 동생한테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 뒤 계속 잠을 청하기로 했다.“언니, 앞으로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 꼭 나한테 먼저 말해줘. 알았지?”“난 잘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넌 집에서 몸조리 잘하고 맘 편히 일하면서 우리 우빈이를 잘 돌봐주면 돼. 언니 걱정은 하지 마. 얼른 일 봐.”하예정은 잠시 침묵한 뒤 말했다.“언니, 나랑 우빈이는 언니가 돌아오기를 항상 기다리고 있어.”하예진은 웃으면서 말했다.“이모가 맡기신 일을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너희 보러 돌아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 조카가 태어나면 꼭 보러 돌아갈 거야.”그녀의 유일한 여동생이 아이를 낳으면 그녀는 반드시 돌아가 지킬 것이다.그녀는 동생의 가족이니까.“내년에야 출산할 수 있을 거야. 아직 배도 안 나왔어.”하예진은 웃으면서 말했다.“2개월이 지나면 배가 나오기 시작할 거야. 다시 출근하더라도 조심해야 해. 중요한 일이 없으면 집에서 태교하면서 쉬어. 어차피 세 사람이 공동으로 출자한 회사니까 소현이가 주요하게 관리할 거고 너랑 효진 씨는 태교에 집중하면 돼.”“나 아직 움직일 수 없는 단계는 아니야. 뭔가 하긴 해야 해. 매일 집에만 있으면 지루하고 짜증만 나서 태교에 더 안 좋아.”전태윤은 그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집에서 태교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임신 후기에 집에서 태교해도 너무 늦지 않았고 임신 8개월까지 회사에 나가겠다고 요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알았어. 네가 좋을 대로 해. 아무튼 몸조심하고 절대 무리하지 마. 무리하면 언니가 가만있지 않을 거야.”“나 임산부인데 자꾸 뭐라고 할 거야?”“당연히 해야지. 넌 분명히 나 때와 달리 집에서 편안하게 태교할 수 있단 말
“오빠, 난 이제 빈털터리인데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정일범은 그래도 이윤정을 많이 아꼈다. 그는 지갑을 꺼내서 연 후 안에 있는 모든 현금을 꺼내 이윤정의 손에 쥐여주고 또 카드 한 장을 꺼내 이윤정에게 쥐여주면서 말했다.“오빠가 줄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어. 비밀번호는 내 생일이야. 비록 돈은 많지 않지만 당장 눈앞의 어려움을 해결하기에는 충분할 거야.”“일단 호텔을 찾아서 머물고 몸조리를 해. 며칠 후에 엄마 화가 풀리면 내가 네 상황을 엄마한테 설명해 볼게.”이윤정은 현금과 카드를 받고 울면서 말했다.“오빠 정말 고마워. 역시 오빠밖에 없어.”정일범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얼른 가봐. 그 사람들이 내가 너한테 돈을 준 걸 알면 다시 뺏어올 거야. 그때 가서 넌 진짜 빈털터리 되는 거야.”이윤정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녀가 여기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세 형수로부터 온갖 수모와 모욕을 당할 거란 걸 알고 있다.그뿐만 아니라 하인들이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과 이윤미의 고고한 자태만으로도 그녀의 가슴을 찌르기에는 충분했다.“정일범!”큰 사모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곧바로 이윤정한테 달려들어 현금과 카드를 뺏어갔다.정일범이 아내를 끌어당기려고 손을 뻗자 그녀는 돌아서서 그의 뺨을 내리쳤다.“정일범, 나랑 애들이 집에서 쫓겨나게 하고 싶어? 어젯밤에 어머님이 이 년을 쫓아내라고 할 때 뭐라고 했는지 당신도 들었잖아! 근데 감히 어머님의 말씀을 어기고 이년한테 돈과 카드를 주다니! 죽고 싶은 거면 당신 혼자 죽어. 나랑 애들을 끌어내리지 마!”아내한테 화를 내려고 했던 정일범은 욕을 얻어먹은 후 찍소리 못했다.큰 사모님은 남편이 더 이상 이윤정을 돕지 못하도록 끌고 갔다.오늘과 같은 결과는 그녀가 열심히 판을 짜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얻은 속 시원한 결과였다. 그래서 이대로 남편이 이윤정을 도와 어려움을 헤쳐나가게 할 수는 없었다.“꺼져. 당장 안 꺼지면 사람 불러서 쫓아낼 거야!”큰 사모님은 남편을 끌고
정일범의 부축을 받아 일어난 이윤정은 그의 품에 안겨 펑펑 울기 시작했다.자신도 피해자인데 무엇을 잘못했다고 이런 일까지 당해야 하는지 그녀는 이해가 안 갔다.정일범은 그녀를 안아주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울지 마. 저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서 너한테 무슨 짓 할지 모르니까 일단 여기서 나가야 해. 지금 저 사람들이 너에 대한 불만이 가득해서 기회만 잡으면 널 계속해서 괴롭히려고 할 거야.”이윤정은 오빠들의 편에 섰단 이유로 그의 아내의 미움을 샀다.그녀가 아무리 같은 여자라고 해도 그들의 여동생으로서 그녀는 당연히 오빠들 편이었다. 시누이로서 형수 편에 서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이윤미가 세 형수의 편에 선 것은 그녀의 정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오빠들에 대한 정이 없어서였다.“오빠, 나 안가.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서 다 설명해 드릴 거야.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난 정말 모르겠어. 난 피해자고 누군가 날 해치려고 하는 게 분명해. 어젯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왜 하필이면 나일까?”“누군가가 나를 망가뜨리려고 꾸민 짓인 게 틀림없어.”그녀를 해친 사람은 그녀보다 훨씬 더 악랄했다.어젯밤에 일어난 일이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게 분명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분석해 보면 누가 그랬는지 짐작이 가긴 했다. 하지만 정일범은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아버지와 이윤정이 마신 반병의 술은 그가 자신의 방에서 다 마시지 못하고 술장에 넣어뒀던 거였다.그날 아버지는 기분이 좋지 않아서 그에게 술 한 병을 달라고 하셨다.그는 아버지가 취하실까 봐 걱정되어 한 병 통째로 드리지 않고 그가 마셨던 걸로 드렸다.그 술에 누군가가 약을 타서 아버지와 이윤정을 해치려고 한 거였다.누구일까?그가 아니라면 그의 아내일 것이다.그의 아내가 왜 약을 탔을까?그날 밤 정일범은 술 한 병을 따서 잔을 채우고 두 모금 마신 후 소변이 급해서 화장실에 갔다. 그가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아내가 섹시한 잠옷을 입고 바에 앉아
“처음부터 네 것 아니었잖아. 20 년 넘게 남의 인생 훔치고 부유하게 살아온 넌 이제부터 짐승보다 못한 가난한 삶을 살게 될 거야. 지금 당장 시골로 꺼져.”“감히 네가 우리 윤미를 촌년이라고 불러? 진짜 촌년은 너잖아! 아퉤!”모든 것을 잃게 된 이윤정에 대한 사모님들의 분노가 치밀어올랐고, 그들은 온갖 비꼬는 말을 퍼붓기 시작했다.이윤정은 앉으면서 말했다.“절대 못 나가요.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서 내가 일부러 그런 거 아니라고, 누군가가 나를 해치려는 거라고 엄마한테 다 설명할 거예요. 누가 나를 해치려고 했는지 알아내면 그 사람 가만히 안 둘 거예요! ”그녀가 갑자기 세 사모님을 노려보며 물었다.“날 해치려고 한 사람이 설마 당신들이에요?”이씨 집안 큰 사모님은 이윤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앞으로 나아가 그녀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너 같은 짝퉁이 내 손을 더럽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싸구려인 것도 모자라 이제는 남 탓으로 돌리는 뻔뻔함까지 갖춘 거니? 이년아, 잘 들어. 네가 아무리 변명해도 어젯밤에 일어난 일은 어머님 머릿속에 새겨져서 절대 잊지 못할 거야. 넌 이제 끝났어.”이씨 집안 셋째 사모님은 몸을 돌려 별장을 향해 걸어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찬물 한 바가지를 들고 다시 나왔다.그녀는 모든 사람이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이윤정의 머리에 찬물을 끼얹었다.“악!”이윤정은 비명과 함께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튕겨 일어났다.가뜩이나 날씨가 추운데 찬물까지 끼얹었으니, 이윤정은 너무 추워서 몸을 벌벌 떨었다. 그녀가 입고 있던 옷은 흠뻑 젖었고 심지어 바닥에 있는 옷들도 꽤 많이 젖어버렸다.“셋째 동서, 가서 물 한 바가지 더 가져와요. 저년이 덮을 수 있는 옷들을 싹 다 적셔버리고 얼어 죽게 내버려둬요. 언제까지 버티는지 한번 보자고요.”큰 사모님은 셋째 사모님에게 물 한 바가지를 더 가져오라고 분부했다.“나도 같이 가요.”둘째 사모님도 뒤를 따랐다.곧 두 사모님은 각각 찬물 한 바가지를 들고나왔다.
예나 지금이나, 미래나 마찬가지였다.고현은 눈이 높아 그 누구도 좋아해 본 적 없었다.참, 남자를 좋아했었지!이제 고현과 전호영은 짝을 지어 다녔다.전호영이 있는 장소에서 종종 고현을 볼 수 있었다. 고현이 나타나기만 하면 반드시 전호영도 따라서 나타났다.젊고 예쁜 아가씨들은 한 남자에게 졌다는 사실에 너무 화가 났지만 그렇다고 또 어쩔 수도 없었다.“왜 이렇게 됐지?”이윤정이가 중얼중얼 혼잣말했다.어젯밤까지만 해도 이윤정은 여전히 이씨 가문의 둘째 딸이었다.그러나 오늘 그녀는 이미 이씨 가문의 쓰레기로 되었다.이은화는 이윤정을 내던졌다.이윤정도 그녀의 양부모님을 대할 면목이 없다.그녀가 친부에게 찾아가려고 해도 그녀의 친아버지는 아직 감옥에 계시고 친어머니는...이윤정은 그녀의 친가족의 부끄러움을 생각하더니 정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이윤정의 친엄마 김현미가 이윤정을 매우 사랑하더라도 이윤정은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김현미 부부가 이윤정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고 심지어 이윤정에게서 이득만 얻어내려고 할 뿐이다.하지만 김현미 부부에게 쫓겨나게 되면 이윤정은 또 어디로 갈 수 있단 말인가!지금 이윤정은 가진 게 하나도 없다.또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이윤정은 재빨리 눈물을 훔치고 다시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을 바라보았다.문을 열고 나온 사람들이 바로 그녀의 세 형수님이었다.이윤정은 희망 섞인 눈빛을 거두어들였다.예전 같았으면 조윤 일행이 그녀의 편 들었을 텐데, 지금은...“형수님.”이윤정은 조윤 일행을 향해 인사했다.“어머, 윤정이 아니야? 너야? 머리를 풀어헤치니 너무 초췌해 보여. 난 거지가 온 줄 알고 동서들이랑 널 내쫓으려고 했는데 너구나. 응? 날 형수님이라고 불렀어? 하지 마. 난 네 형수님이 아니야. 난 거지 시누이가 없어. 윤미가 내 친시누이거든. 너처럼 짝퉁 시누이는 자기 처지도 모르고...”이때 이씨 가문의 둘째 사모님 김여희가 말을 이었다.“내 말이. 짝퉁은 여전히 짝퉁일
이윤미는 너그럽게 대답했다.“우리 엄마 앞에서 조심하세요. 엄마가 지금 여전히 화내고 계시거든요.”이윤미는 집 밖으로 나갔다.집사는 그녀를 따라 걸으며 물었다.“큰아가씨, 실례지만 어젯밤에 어르신과 둘째 아가씨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예요? 가주님께서 화를 내시면서 둘째 아가씨를 내쫓으셨고 또 정 어르신께서도 병원에 실려 갔잖아요. 둘째 아가씨께서 어르신을 해친 거예요?”진숙녀는 예전의 집사가 아니지만, 그녀가 이씨 가문에서 오랫동안 일해왔다.이은화가 가주 자리에 오른 뒤 진숙녀가 이씨 가문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지금까지 줄곧 일했다. 그리고 정군호 부부의 일을 알고 있었기에 이윤정이 정군호를 다치게 했어도 진숙녀는 이은화가 이토록 화를 내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아줌마, 저희 엄마가 아줌마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은 일을 묻지 않으시는 게 나을 거에요 너무 많이 아시게 되면 다치실 거에요. 저도 아줌마를 위해서 하는 소리예요”집사가 웃으면서 대답했다.“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얼른 아침 운동 하세요. 저는 이만 주방에 가서 아침 식사가 어떻게 준비되고 있는지 볼게요. 아가씨가 아침에 건강달리기를 하고 돌아오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아침을 먹을 수 있게 준비해 놓겠습니다.”진숙녀는 방문 앞에 멈춰 서서 이윤미가 멀어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돌아서서 집안으로 돌아갔다.이윤미는 먼저 정원에서 몸을 풀고 두 바퀴를 뛰다가 별장 대문으로 향했다.대문이 아직 잠겨 있었지만 이윤미는 열쇠를 지니고 다녔기 때문에 열쇠로 문을 열었다.문 여는 소리에 구석에 틀어박혀 있던 이윤정이 깨어나게 되었다.이윤정은 고개를 들어 별장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더니 재빨리시 일어나 앉았다. 피곤한지, 옷을 너무 많이 입은 탓인지 일어서기도 힘들었다. 그녀는 몇 걸음 앞으로 다가가더니 비틀거리다가 결국 땅에 넘어졌다.이윤정은 마침 이윤미의 발밑으로 엎어지게 되는 바람에 이윤미에게 큰절하게 된 셈이다.이윤미는 멈춰 서서 이윤정을 내려다보았다.이윤정은
이윤미가 입을 열었다.“형수님 혼자 보는 게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둘째 형수님이랑 셋째 형수님과 함께 봐야 재미있죠. 우리 엄마가 돌아오셔서 형수님들을 보시게 된다고 해도 엄마는 형수님들을 나무라지 않으실 거예요. 엄마가 홧김에 윤정이를 쫓아내서 이씨 성을 따르지 못한다고 하셔도 윤정이가 협조하지 않으면 그뿐이에요. 윤정이는 절대로 성씨를 바꾸지 않을걸요. 윤정이는 자신의 친어머니를 엄청나게 싫어하거든요. 저번에 윤정이 친어머니가 윤정을 찾아왔는데 거지 취급하며 친어머니를 쫓아냈거든요.”지난번에 이윤정의 친어머니 김현미가 이윤정을 찾으러 왔는데 때 이윤정이 김현미에게 어떻게 대했었는지 이윤미는 잘 알고 있다.김현미가 이윤미를 그토록 못되게 굴더니, 이윤정의 미움을 사는 것도 김현미의 업보였다.“저는 저의 엄마가 화가 풀리게 되고 윤정이가 울고불고 사정하면 마음이 약해질까 봐 걱정이에요.”조윤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이 정도로 배반했는데도 어머님께서 또 윤정이를 데려온다고요?”“제 말은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이은화가 이윤정을 끔찍이 사랑하는 모습을 떠올린 조윤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럴 가능성도 있어. 내가 네 둘째 형수님과 셋째 형수님에게 메시지를 보내 이윤정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싶은지 물어볼게.”어젯밤에 그녀들은 감히 밖에 나가 보지도 못했다.이윤정이 조윤 일행에게 끌려가 저택 문 앞에 던져진 뒤로 그녀들은 더는 그곳에 머물지 못하고 집안으로 바로 돌아갔다.이은화의 노여움이 이씨 집안 전체를 불태우려고 했으니, 그녀들은 얌전히 있는 편이 안전할 것이다.“형수님, 그럼 저는 운동을 하러 나가볼게요.”“추운 날씨에 일찍 일어나 달리기를 하다니, 난 네 끈기에 감복할 수밖에 없어. 난 아침 일찍 달리기를 못 하겠어. 내 배를 봐. 점점 더 커지고 있어.”조윤은 자신의 뱃살을 만지며 말했다.“형수님 몸매가 잘 유지되고 있는 편이에요. 중년이 되면 얼마나 많은 여자가 살이 찌고 옆으로 퍼지는지 아세요? 형수님은 조금만 조절을 하
전태윤은 웃으면서 말을 꺼냈다.“우빈이 녀석은 놀음을 잘 탐내는 아이지. 평소 우빈이는 친구가 없어 늘 혼자 놀고 있었어. 우리가 함께 놀아준다고 해도 늘 외로워했지. 애들은 역시 또래 아이들과 놀아야 재미있게 놀 수 있나 봐.”그는 하혜정의 배를 만지며 계속해서 말했다.“우리 이 꼬마는 내년에나 만날 수 있겠지? 이 꼬마가 우빈이만큼 크면 우빈은 아마도 이 꼬마랑 놀아주지도 않겠지?”“우빈이는 우리 아기를 예뻐할 거에요. 큰오빠처럼 잘 대해줄걸요.”“그럼. 얼른 자. 안 자면 내가 무슨 짓을 벌일지도 몰라.”하혜정이 말을 이었다.“잘게요. 저는 이미 잠들었어요.”하혜정은 눈을 감으며 말했다.전태윤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잠들어 있는데도 말하고 있네.”“잠꼬대하는 거예요.”전태윤은 웃으며 하혜정의 입술을 살짝 깨물고 다시 그녀를 껴안고 꿈나라로 들어갔다.두 사람은 하룻밤을 푹 잤다.다음 날 아침, 강성 이씨 가문.일찍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된 이윤미는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상쾌한 기분으로 방을 나섰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쉬는 것을 방해하지 않도록 일부러 살금살금 걸어갔다.어젯밤 일은 아주 늦게까지 실랑이를 벌였다. 그리고 정군호가 병원으로 옮겨진 후에야 비로소 이씨 가문의 저택은 조용해 졌다.이윤미는 정군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어젯밤 이은화가 이윤미와 정일범 형제를 아래층으로 내려오게 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위층에서 아버지의 비명이 들렸고 그 뒤로 구급차가 도착하여 구급대원들이 위층으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모시고 떠났다. 병원에 따라간 사람은 이은화와 그녀의 경호원들뿐이었고 다른 사람은 병원에 따라가지 못하게 했다.정군호가 비명을 지른 이유를 묻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이윤미는 정군호가 살아계신 것만 알면 되었다. 이은화도 네 남매를 생각해서라도 정군호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이윤미는 계단 입구로 가기도 전에 다른 방의 문 여는 소리를 들었고 뒤이어 발소리가 들려 앞을 바라보았다.그녀의 형수님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