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진은 장 보러 간 게 아니었다. 낮에는 일자리를 찾고 주로 저녁이나 되어야 장을 봤다. 저녁에 장을 보면 싸서 돈도 절약할 수 있었다. 아직 직장은 구하지 못한 데다 남편도 더는 믿을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궁핍한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이게 다 동생이 당시에 수를 좀 둬 따로 돈을 모으라고 해줬던 덕이었다.사실 결혼 초반에 회사를 그만두고 임신 준비를 생각했었다. 하지만 하예정은 반대하면서 결혼 전이나 결혼 후나 여자들은 자신만의 고정 수입이 있어야 하며 남자를 전적으로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남편이 잘해주고 있었기에 하예진은 괜찮다고 생각을 했었다. 일단 남편이 싫증을 내거나 바람을 피우게 된다면, 직장이 없어 수입이 없는 사람은 열세에 처하기 마련이라 쉽게 우울에 빠졌다.그녀는 어리석게도 주형인과의 사랑이 돈독하니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었다.주형인은 그녀에게 인테리어 비용을 부담하라고 했고 그녀는 두 사람의 보금자리라고 생각하고 또한 아름답게 꾸미기를 원했다. 그래서 주형인의 제안을 수락했고 몇 년 동안 일해서 모은 몇천만 원을 전부 꺼내 집을 꾸몄다. 그는 그녀에게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임신 준비를 하고 돈 걱정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녀는 그의 감언이설을 믿고 상사의 만류에도 회사를 그만두고 가정에 충실했다. 그 결과, 그녀는 무엇을 얻었는가?상처밖에 없었다. 하예진은 유모차를 밀면서 동생의 서점으로 향했다.바로 발렌시아 아파트로 갈 수 있었지만 아침 일찍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걸으면서 지난 일을 생각하면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미 이혼 준비를 하고 있고 마음의 준비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을 과대평가했던 듯싶었다. 그녀는 속이 상했고, 여전히 마음이 아팠다.그도 그럴 것이 12년을 알고 지냈는데 감정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었다.하예진이 유모차에 주우빈을 눕혔을 때도 주우빈은 자고 있었다. 하예진은 주우빈을 안고 나온 뒤 다시 유모차에 눕혀 재운 것이었다.장소가 바뀌었
그녀는 1층 내려오자마자 전태윤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근처 산책하는 척하던 경호원들은 계단을 내려오는 사모님 모습에 본능적으로 등을 돌리고 못 본 척 산책을 계속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호원들은 도련님이 사모님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하예정은 멈춰 서서 몸을 돌려 전태윤을 바라봤다. 전태윤은 차키를 쥐고 하예정을 향해 말했다."그래도 같이 가지."처제는 주형인의 가정폭력에도 용감히 맞서는 사람으로 나약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그런데 남편이 바람 핀 사실을 안 처형이 참을 수 있었을까?어쩌면 부부가 또 한바탕 다퉜을지도 몰랐다. 전태윤은 자신의 아내가 운동을 했기에 주형인이 그녀를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따라가야 했다. 적어도 주형인이나 주씨 집안사람들은 자신을 보고 감히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해야 했다.그는 하예정의 남편으로, 그녀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뒷배였다.그는 하예정이 어떤 난관에 부딪쳤을 때 그에게 잘 보일 기회를 주길 바랐다.전태윤은 손을 뻗어 하예정 손에서 도시락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하예정의 손을 잡고 차로 향했다. "이따가 가게로 데려다줄게."전태윤이 굳이 가겠다고 하니 하예정은 더는 거절하지 않았다. 하예정은 언니 집에 도착하고 나면 언니네 집에서 국수 한 그릇이라도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어찌 되었건 빈속에 출근하게 둘 수는 없었다."어젯밤, 언니와 통화하는 거 들었어."전태윤은 미리 소정남을 시켜 주형인이 바람피웠다는 증거를 조사하게 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더욱이 경호원을 통해 호텔에서 우연히 주형인과 그의 애인과 마주쳤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당시 두 사람은 냉전 중이었다.하예정은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진우가 어제 관성 호텔에서 재계 모임에 참가했는데 형부가 젊고 예쁜 여자와 다정하게 있는 것을 봤대요. 아마 형부의 애인이겠죠. 주형인 그 나쁜 놈이 이제는 바람까지!""언니한테 숨기지 않고 바로 말해줬어요. 이런 일은 숨겨서는 안 돼요. 주형인은 물론 주씨 집안
하예정은 언니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잠깐 생각한 후에 그냥 대답했다.”네.”가는 길 내내 두 부부 사이엔 다른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전태윤은 원래 수다를 떠는 성격이 아니었고 하예정도 언니 일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라 새로운 화제를 찾아 대화를 이어 나갈 기분이 아니었다. 게다가 진태윤이 배경 음악도 틀지 않았으니 차 안엔 정적만이 흘렀다.하예정은 고개를 살짝 돌려 창밖 거리의 풍경을 내다보았다.광명 아파트에 거의 도착할 때쯤 하예정이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가 전화를 받자 그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언니, 일어났어? 우빈이도 일어났지? 내가 전복죽 좀 많이 썼는데 언니랑 우빈이도 좀 주려고 가져왔어.“하예진이 멈춰 서서 유모차에 탄 아들을 보면서 말했다.“우빈이 아직 자는 중이야. 예정아, 언니 지금 밖이야. 우빈이를 데리고 산책하러 나왔어. 지금 거의 너희 서점 근처까지 왔으니까 거기로 갈게. 집 말고 거기서 보자.”“그래? 지금 어디야? 위치 공유해 줘. 지금 거기로 데리러 갈게. 같이 서점으로 가자.““그래.“많이 걸어서 그런지 예진이도 힘들었다.원래 살이 쪄서 뚱뚱한데 먼 거리를 걸어오니 더더욱 힘들었다.하예진는 곧바로 동생에게 위치를 공유해 줬다.언니의 위치가 확인이 되자 하예정이 전태윤에게 말했다.“태윤 씨, 언니가 집에 안 계시대요. 지금 내 가게로 오고 있는 길이라니까 이곳으로 먼저 가주세요. 언니랑 우빈이를 데리고 다시 가게로 가는 게 좋겠어요.”“알았어.”하예정이 위치 정보를 보여주자 전태윤은 앞길 목에서 U턴해서 다른 길로 들어섰다.하예진은 본인이 많이 걸어온 만큼 전태윤이 운전하고 오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10분도 되지 않아 하예진이 기다리고 있던 자리까지 차가 도착했다.하예진은 유모차를 민 채로 길가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언니.”차가 멈추자마자 하예정이 차에서 내려 언니에게로 다가갔다.“이모.”주우빈은 금방 잠에서 깼는지 비몽
'언니가 이혼하고 우빈이의 양육권을 빼앗기면 어떡하지?'주씨 집안사람들이 하씨 집안 친척만큼이나 성격이 "일품"이라 우빈이를 주씨 집안에 맡겼다가는 아이가 앞으로 어떤 나날을 보내게 될지 상상하기조차 두려웠다.주우빈은 태어나서부터 두 자매가 키웠으니 하예정한테 주우빈은 조카라기 보다는 아들 같은 존재라서 지금 이 상황이 그녀에겐 뼈를 깎는 고통이었다.조카인 주우빈을 주씨 집안에 뺏길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텅 빈 것처럼 공허해졌다.“언니,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빈이의 양육권을 우리가 가져야 해.”하예진이 조용히 말했다.“그 집에 우빈이를 남겨두면 우빈이가 잘 지내지도 못할 거야. 구박을 당할지도 몰라.”예진이는 입술을 꼭 깨물면서 조용히 말했다.“내 모든 걸 걸어서라도 우리 우빈이 양육권 가져올 거야.”전태윤이 운전하면서 말했다.”처형이 일자리를 구한 뒤 이혼소송을 걸어 양육권을 얻어야 해요. 안 그러면 양육권을 빼앗기기 쉽죠.”아이를 하예진이 키우고 있고 아이가 엄마를 더 잘 따른다고 해도 수입이 없으니 주형인이 주동적으로 우빈이의 양육권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양육권 쟁탈에 있어서는 하예진이 불리해질 수밖에 없었다.“나도 이제 열심히 일자리 찾을 거야. 우빈이를 위해서라면 일반직이라도 괜찮아.”지금 상황에 회계 팀장은커녕 다른 직무도 구하기 쉽지 않았다. 뚱뚱한 체형 때문에 다들 좋은 이미지로 봐주지 않는 것 같았다.원래는 일자리를 천천히 찾아볼 계획이었지만 주형인이 외도를 저지른 사실을 안 후 한가하게 이것저것 고를 때가 아니었다. 일단 아무 일자리라도 하나 찾는 것이 시급했다.“네.”전태윤이 말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에 도착했다.전태윤은 가게로 들어가지 않았다.“태윤 씨, 이거 받으세요.”하예정이 도시락 두 개에서 하나를 전태윤에게 건네면서 말했다.”아침 아직이잖아요. 이거라도 회사에 가져가서 드세요. 굶으면 안 되죠, 위에 안 좋아요. 방금 가게에서 다시 데웠어요.”전태윤은 그윽한 눈빛으로 하예정을 한참이나 바
"우빈이가 남긴 죽을 내가 먹었어."하예정은 입맛이 없었다.우빈이가 도시락에 들어있는 죽을 다 먹지 않자, 하예정이 먹어버렸다. 하예정은 배가 고프지 않았고 배가 부르지도 않았다. 더 먹을 생각이 없었다. 심효진은 아침을 먹고 왔다.하예정은 사양하지 않고 독식했다.하예정은 국수를 빠르게 먹었다. 국수 한 그릇을 빠르게 먹어버렸다.하예정이 설거지하려고 주방에 들어가자, 심효진이 그이를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물어봤다."예정아, 언니 눈 상태를 봤어? 부은 것 같은데, 혹시 운 것은 아니야?"하예정이 말을 하지 않고 설거지했다.한참 후에야 하예정이 속삭였다. "진우가 그러는데, 어제저녁에 재계 모임에 나갔다고 형부가 한 여자를 데리고 참석한 것을 봤대. 둘이 사이가 아주 좋아 보이던데,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고 해도 믿을 사람이 없을 거야. 진우가 집에 들어가서 생각이 나서 나에게 말했어. 나도 언니한테 말해줬어.""뭐?"심효진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네 형부가 바람났어! 더치페이하자고 하고 예진 언니한테 폭행한 이유가 바람나서 그런 거야."과연 남자는 마음이 바뀌면 증조가 나타났다."그 바람둥이 자식 정말 쓰레기네!"하예정이 대답하지 않고 설거지를 끝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하예진이 우빈이를 껴안고 멍하니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하예정은 마음이 아팠다. 언니가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나려고 했다."예정아."심효진이 하예정의 어깨를 두드리며 속삭였다."아직 슬퍼할 때가 아니야."하예정이 입술을 깨물면서 흘리는 눈물을 멈췄다. 그리고 우빈이 곁으로 다가갔다."언니."하예진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언니."하예정이 다시 한번 말했다.그제야 하예진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리면서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하예정에게 응했다."언니, 우빈이를 효진이한테 맡껴."심효진이 눈치 빠르게 다가가 우빈이를 껴안으면서 우빈이를 달랬다. "우빈아, 우리 장난감을 사러 갈까?""좋아요."심효진이
"예정아. 내일부터 네가 우빈이를 픽업해. 난 네 가게까지 뛰어서 올 거야. 다이트할 거야!"하예진은 주형인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서 그이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좋은 이미지로 좋은 직장을 찾겠다고 마음 다짐했다."그래."하예정은 하예진에게 운동을 유지해서 살을 빼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예진아."하예진이 갑자기 하예정을 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아주 크게 대성통곡했다.하예진은 마음이 아주 아팠다.여러 해 동안 조심스럽게 유지했던 사랑이 이렇게 됐는데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가 없었다.하예진은 아들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당당한 척했던 것이었다.하예정도 언니를 끌어안으면서 눈시울이 붉혀졌다.15년 전에 부모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하예진이 학교에 가서 하예정을 데리고 집으로 갔을 때의 모습과 같았다. 하예진은 하예정을 보자마자 껴안고 울었다. 하예정은 그때 이유를 몰랐다.하예진이 하예정에게 말했다."예정아, 우리는 엄마와 아빠를 잃었어."그 말을 들은 하예정은 머리가 하얘지고 하늘이 무너졌다. 다지 정신을 차렸을 때 언니가 우는 모습을 발견했다. 하예정도 이미 하예진처럼 펑펑 울고 있었다."언니."하예정이 하예진을 껴안고 울먹이면서 말했다."언니, 울어, 울고 나면 속이 시원해질 거야."하예정과 하예진은 힘들게 오늘까지 살아왔다. 두 자매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 때 또 새로운 시련을 겪어야 했다."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벌써 알고 지낸 지 12년이나 됐어. 10년 동안 사랑했고 나한테도 얼마나 잘해줬는데? 힘든 세월을 함께 겪으면서 항상 날 지켜주고 아껴줬는데, 하늘이 무너져도 나를 책임지겠다고 말했는데.""결혼하지 3년밖에 안 됐는데 벌써 약속을 잊은 거야? 예정아, 내가 잘못한 거야? 내가 평소에 꾸미지 않아서, 우빈이를 낳으면서 뚱뚱해져서, 직장을 잃어서, 공감대가 사라진 거야?""언니, 언니 잘못이 아니야. 언니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어. 언니 잘못이 아니야."
하예진은 감격해하며 말했다."예정아, 제부는 정말 좋은 남자야,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옆에서 널 지켜 주면서 돈도 대주고 힘도 되어주고 너무 잘 선택했어, 잘살아 봐."하예정은 대답했다."언니, 잘 살게."언니에게 전태윤과의 결혼 유효기간이 반년이고 그저 명의 부부라는 것을 말하면 속상해할 게 뻔하니 당분간은 비밀로 해야 했었다."예정아, 언니 결혼 때문에 절대 영향받지 마, 제부를 믿어야 해, 비록 말은 없지만 그래도 실속은 있는 사람이야.""언니, 절대 안 그래."하예진은 자신의 혼인 때문에 동생의 마음과 결혼까지도 영향을 받을 가봐 걱정을 했다. 하예진이 보기에 제부는 동생한테 잘하는 아주 괜찮은 남자였다.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야 알듯이 예전에 주형인도 하예정한테 잘하지 않았었던가?전태윤은 사무실로 돌아와 비서한테 소정남을 지금 오라고 말하려던 찰나 소정남이 노크를 하며 들어왔다."대표님, 여기 원하던 증거."소정남이 서류봉투를 전태윤 앞에 내놓고 앉으면서 말했다. "전부 이 안에 있어, 주형인의 애인은 바로 그의 비서 서현주였어."전태윤은 봉투 안의 증거들을 꺼냈다. 서현주가 주형인의 간을 보고 있는 관계로 그 둘은 아직 호텔에 가지는 않고 그저 같이 쇼핑하거나 밥을 먹는 사진 외에는 가벼운 스킨십만 하는 사진들뿐이었다.다음은 서현주의 기본 자료와 주형인이 지금까지 서현주에게 돈을 쓴 증거들이었다. 소씨 집안의 정보망은 대단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주형인이 서현주한테 줬던 선물들이 무엇인지, 얼마인지, 언제 줬는지에 대한 증거사진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있었다. 전태윤은 증거사진을 보고 나서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말했다."주형인이 처형한테 주는 생활비가 고작 60만 원밖에 안 돼, 그것도 더치페이하기 전이었고 더치페이하고 나서는 30만 원밖에 안 줘.""하지만 서현주한테 주는 선물 중에 제일 싼 귀걸이마저 몇십만 원이고 서현주와 밥 먹으러 갈 때면 비싼 곳으로만 갔어."전태윤은 하예정과 혼인신고를 하던 날이 생각났
그는 하예진이 일을 찾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고 아직 찾지 못한 것도 알고 있었다.왜냐면 하예진은 결혼 전에 하던 일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그건 좀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직도 일을 못 찾은 거였다. 하지만 지금은 주형인이 바람이 난 것을 알게 된 바에 일을 가리지 않고 찾을 것이고 아마 금방 찾게 될 것이었다."이건 쉬운 일이야. 그녀한테 일자리를 마련해 주면 되잖아.""하예정이 나한테 물어본 적이 있어, 하지만 우리 회사는 지금 재무팀장은 필요 없을뿐더러 재무팀도 인원이 차서 자리가 없어. 게다가 내 신분을 숨겼는데 처형을 우리 회사에 들여오기는 곤란해. 그래서 그때 나는 이 일을 상관 안 하고 처형 혼자 일을 찾게 한 거야." 전태윤은 하예진의 일자리를 구해주지 않은 것에 대해 미안하지 않았다.그는 인재를 중요시할뿐더러 원칙도 지키는 사장이었다.하예진은 직장을 떠난 지 3년이 넘어서 업무가 생소할 거라 전씨 그룹에는 들어오기 힘들 것이었다. 하예진이 직장으로 돌아오려는 것은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 것인데 전씨 그룹의 관문은 못 넘을 게 뻔하였다.그의 원칙은 인맥을 통하지 않는 것이었다.일상생활에서는 하예정때문에 원칙을 어긴 적이 많지만 사업적으로는 하예정을 위해서 원칙을 어기고 그녀의 언니한테 일자리를 찾아주지 않았다.만약 하예진이 능력이 되어 전씨 그룹에 들어올 수 있다면 그는 대단히 환영해 줄 것이었다.하지만 하예진을 무작정 그룹에 들어오게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소정남도 침묵을 하다가 말을 했다."다른 일을 찾을 생각은 없대? 큰 회사만이 재무이사가 필요한데 보통 다 자리가 차서 더 이상 채용을 하지 않거든.""그녀는 생각을 바꿀 거야."점심에 하예정에게 가져다줄 생각으로 전태윤은 증거들을 서류 봉투 안에 넣어 서랍에 보관했다."너희 부부 화해는 했어?"소정남이 관심하면서 물었다.전태윤은 그를 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도 하예정과 자신이 화해를 했는지 감이 안 잡혔다. 서로 말도 하고 그도 다시 발렌
노동명은 남들이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 그녀의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리고 손등에 한 번, 손바닥에 한번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하예진은 다급하게 손을 뺐다. 그녀의 얼굴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영화관 안은 어두웠고 아무도 그녀를 주시하지 않아 그녀가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볼 수 없었다. “동명 씨, 진지하게 좀 굴어요.”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그를 꾸짖었다. 노동명은 늘 거칠고 대범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비쳤으며 성격도 시원시원했다. 그런 그가 애교를 부리기 시작하면 그녀의 얼굴은 빨개졌다. 그녀는 그의 앞에서 마치 어린 소녀처럼 변했다. 하예정은 언니가 두 번째 사춘기를 맞은 것 같다고 말했다. 노동명은 낮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알았어. 진지해질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예진아, 앞으로 네가 휴식을 원할 때, 쇼핑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가서 바람을 좀 쐬고 싶다면 나에게 말만 해줘. 아무리 바빠도 내 손에 있는 일을 내려놓고 너와 함께 나갈 수 있어. 일도 중요하지만 너의 행복이 더 중요해. 나는 돈도 충분히 있어. 예전에 번 돈이 너무 많아서 다 쓰지도 못했어. 지금 일을 하는 건 그냥 시간을 보내고 약간의 용돈을 버는 정도야. 나에게는 너와 우빈의 행복이 가장 중요해.” 하예진은 그를 꾸짖듯 말했다. “동명 씨가 말하는 약간의 용돈은 다른 사람들이 평생을 바쳐도 못 버는 금액이에요. 동명 씨, 일부러 자랑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이 하예진이 식당을 운영하며 매출이 좋아 월 순이익이 꽤 높다고 하더라도 그가 버는 돈에 비하면 그녀의 이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에잇, 비교하니까 열 받네.’ 그녀는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까지 일하며 온 힘을 다해야 그 정도 돈을 벌 수 있다. 일반 직장인들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노동명이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젊은 시절 고생하며 노력한 결과다. 노동명은 업계에서 십여 년을 뛰어다니며 오늘의 성과를 이루었다. 노
우빈은 새 장난감을 들고 호텔로 돌아가 놀고 싶었다.아직 강성의 밤 구경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하예진이 아들에게 말을 건넸다.“우빈아, 일구 삼촌과 함께 호텔로 돌아가서 놀아달라고 할래? 엄마랑 아저씨랑 좀 더 돌아다니다가 돌아갈게.”우빈은 생각해 보더니 대답했다.하여 강일구는 우빈을 데리고 호텔로 돌아갔다.하예진은 노동명을 밀고 계속 돌아다녔다. 이는 두 사람만의 데이트나 다름없다.“동명 씨, 우리 영화 보러 갈까요? 이 근처에 큰 영화관이 있거든요. 저는 거의 매일 그 영화관 입구를 지나다녔는데도 영화를 보러 갈 시간이 없었어요.”노동명이 간절히 원하던 바였다.그는 즉시 경호원에게 먼저 영화표를 사라고 지시했고 그와 하예진은 천천히 걸어갔다.십여 분 후, 두 사람은 영화관 입구에 도착했다.경호원은 표를 끊고 간식도 사 놓고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간식을 먹으면 심심하지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단지 영화를 보고 싶을 뿐이고 구매한 표도 곧 시작하게 된다.영화관 입구에서 잠시 기다리면 곧 들어갈 수 있었다.노동명은 휠체어를 타지 않고 한 손으로 경호원의 어깨를 잡고 나머지 한 손은 하예진이 부축하여 들어갔다.자리에 앉은 노동명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들 주변에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그와 하예진, 그리고 몇 명의 경호원들이 두 사람 주위에 흩어져 있었다. 경호원들은 그들을 중심으로 둘러싸고 보호하고 있었다.“영화관에 와서 영화를 본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어.”노동명은 자리에 앉은 뒤 감개무량하게 한마디 했다.하예진은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열었다.“저도 몇 년 됐어요. 결혼하고 나서 한 번도 온 적 없어요.”결혼한 뒤로 영화를 보기는커녕 주형인은 그녀와 함께 쇼핑하는 것조차 점점 더 짜증을 냈다.그는 하예진이 물건을 살 때 항상 물건을 이리저리 비교하여 싼 물건을 고르는 모습을 싫어했다.하예진은 그때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배속의 태아를 돌봐야 했다. 저축한 돈은 모두 신혼집을 꾸미는 데 썼기에 돈 가방
하예진은 아들의 이마를 톡 쳤다.“뭐라고 한 거야?”우빈은 하예진이 때린 곳을 만지며 노동명에게 말했다.“아저씨, 엄마가 절 아프게 때렸어요. ‘호’ 해주세요.”노동명은 재빨리 불어주고는 다시 어루만져주며 하예진을 나무랐다.“예진아, 우빈 이마를 자꾸 치지 마. 똑똑한 애가 멍청해지면 어떡해.”“똑똑하면 똑똑하고 멍청하면 멍청한 아이인 거예요. 제가 몇 번 쳤다고 멍청해지는 건 아니거든요. 멍청한 건 녀석이 원래 멍청한 아이였기 때문이에요.”“우리 우빈은 똑똑하거든 멍청하지 않는단 말이야.”우빈은 하예진에게 혀를 내밀고는 얼른 노동명의 품으로 쏙 들어갔다.노동명 아저씨가 그를 보호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우빈을 아껴주던 노동명은 결국 우빈을 데리고 장난감 가게에 들어갔다.가게에 들어간 우빈은 노동명 품으로부터 바닥에 미끄러져 내려와 먼저 몇 권의 유아용 스케치북을 가져와서 하예진의 앞에서 귀여운 얼굴을 들고 물었다.“엄마, 이거요. 저 장난감을 더 사도 돼요?”노동명이 녀석에게 장난감을 사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녀석은 엄마의 뜻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만약 하예진이 그에게 새 장난감을 사지 말라고 고집한다면 그도 사지 않을 것이다.하예진이 대답했다.“하나만 사.”우빈이가 대답했다.“네.”우빈은 장난감 몇 개 더 사려고 했지만, 하예진이 한 가지만 살 수 있다고 하니 하나만 사는 수밖에!녀석은 얼른 가서 그의 장난감을 고르고 있었다.노동명은 우빈이가 여러 장난감을 어루만지며 전부 가지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더니 고개를 돌려 사랑하는 여인에게 말을 건넸다.“우빈이 좋아하는 건 다 사자. 내가 선물로 사줄게.”“동명 씨, 너무 아이 뜻에만 따르면 안 돼요. 한 가지만 고르게 해요. 장난감도 가지고 왔던데.”그러나 하예진은 아들에게 장난감 하나만 사주겠다고 고집했다.노동명은 어쩔 수 없이 하예진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그는 우빈이가 원하는 것을 전부 사서 우빈에게 주고 싶었다.“우빈은 너무 많은 사람이 사랑해주고 아껴
“엄마, 하나만 사줘요. 네?”우빈은 계속해서 졸라댔다.“안 돼. 장난감을 사도 여기저기 쌓여 있을 텐데. 네가 놀다가도 정리하지 않으면 엄마가 대신 치워야 하잖아.”“엄마, 제가 다 치울게요. 앞으로 다 치울게요.”우빈도 스스로 정리하고 있었다. 다만 가끔 치우지 않을 때도 있었을 뿐이다.“장난감을 가지고 왔잖아.”하예진은 우빈에게 장난감을 너무 많이 사주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그 이유는 녀석이 장난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우빈은 입을 삐죽거리며 투덜댔다.“새 장난감 사고 싶어요. 제가 새것 사 가서 동생에게 줄게요.”“그 동생은 아직 어려서 못 놀아.”“그럼, 스케치북을 사줘요. 글씨를 쓰고 숫자도 적으면서 놀래요. 네?”우빈이는 한발 물러서서 스케치북이라고 사고 싶었다.그 장난감 가게에는 연필들과 책들도 많았다.우빈은 그 가게를 다 돌아본 후에야 엄마를 찾으러 돌아와서 사달라고 졸랐다.강일구는 우빈이가 좋아하는 것을 사준다고 했지만, 녀석은 감히 받지는 못하고 하예진의 뜻을 물어보려고 했다.하예진은 항상 우빈의 장난감이 너무 많아서 두 번째 장난감 방도 가득 찼다고 잔소리했다.우빈은 장난감을 매우 사랑했다. 어떤 장난감은 실수로 망가져도 엄마가 버리겠다고 하면 아까워서 버리지 못했다.하예진이 쓰레기통에 버리면 녀석은 전부 도로 주워왔다.“스케치북은 사줄게.”우빈은 금세 원숭이처럼 노동명의 허벅지에 올라가 자신을 안아달라고 요구했다.그리고 하에진이 그들을 밀고 앞으로 가게 했다.“엄마, 그럼 우리 스케치북 사러 가요.”가게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녀석이 원하는 것을 전부 이룰 수 있었다.우빈은 여러 대의 큰 장난감 차와 강아지 인형이 갖고 싶었다.정말 탐나는 장난감이었다!그는 엄청 좋아했다.“스케치북만 사. 이따가 돌아오면 그림도 그려.”하예진은 그녀의 아들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모를 리가 있겠는가!그녀는 손을 뻗어 아들의 이마를 콕 찔렀다.“엄마가 네 곁에 없었는데 유치원에서 돌아와서
노동명은 다정하게 말했다.“널 위해서 늘 재활을 꾸준히 하고 있어. 회사 일은 특히 중요할 때만 나가서 처리하거든. 우리 형도 도와줘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노동명은 그윽한 눈빛으로 말을 건넸다.“예진아, 만약 네가 없었다면 난 정말로 재활을 포기하고 자포자기하면서 평생 일어나지 못했을 거야.”“바보.”“아니거든. 난 단지 너와 우빈을 너무너무 사랑했을 뿐이야. 남들은 네가 이혼한 여자라고 말하고 있어. 내가 널 알게 되었을 때에도 넌 뚱뚱하고 못생겼는데 내가 왜 널 좋아하게 되었는지 몰라... 근데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지 나도 그 이유를 찾고 싶지도 않아. 아마 너의 강인함과 감히 자신을 개변시키는 그 능력에 매료되었을지도 모르지. 난 우빈이가 너무 사랑스러워. 사실 난 아이들이 시끄럽다고 느껴져서 안 좋아하거든. 근데 처음으로 우빈을 보자마자 좋아하게 되었다.”“저도 알아요. 저도 제 아들 덕을 봤죠.”노동명은 우빈을 좋아하기 때문에 우빈의 엄마, 즉 하예진에게 조금 더 많은 관심과 포용력을 갖게 되었다.그러다가 접촉 횟수가 많아졌고 함께 지내다 보니 서로 정이 들었다.“우빈이가 우리 두 사람 중매를 선 거나 다름없어.”노동명은 헤벌쭉 웃었다.“태윤이도 마찬가지야. 태윤 때문이 아니었다면 널 알지도 못했을걸. 예진아, 네가 강성에서 일을 마치면 나랑 결혼하는 건 어때?”하예진의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에 노동명이 계속하게 말했다.“내가 정상적으로 걷지 못해도 난 결혼하고 싶어. 난 이미 스스로 설 수 있어. 그리고 몇 걸음 정도는 앞으로 걸을 수 있게 됐고. 1년이란 시간을 더 주면 분명 정상적으로 걸어 다닐 수 있을 거야. 근데 난 그때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아.”노동명은 지금 36세이고, 2년만 더 기다리면 38세까지 될 것이다.곧 있으면 마흔이 된다.하예진은 속으로 흐뭇해하며 대답했다.“좋아요. 저야 지금 당장이라도 동명 씨와 혼인 신고를 할 수 있어요. 근데 동명 씨가 원하지 않잖아요.”노동명은 자신이 정상으로 돌아올 수
하지만 가난해 본 여운별은 자신에게 뒷길을 남겨두기 시작했다.용태호로부터 돈을 받을 때면 그녀는 몰래 저축해 놓았다.나중에 관계를 끊으면 수중에 재산이 있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 예전처럼 여천우에게 매달 수십만 원 생활비를 달라고 매달릴 필요 없을 것이다.“태호 씨, 연회의 주인은 제가 누군지 아세요?”“네 신분을 몰라. 나도 관성 지역의 명문가 사모님께 부탁해 널 데려가도록 했어. 잘 들어. 넌 용씨 가문의 사모님이지 여운별이 아니야. 너의 시댁은 조용하게 지내는 가문이라서 넌 남들을 몰라야 해. 옛날 지인을 보더라도 아무리 친해도 모른 척해야 해.”여운별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용태호는 그녀의 턱을 풀어주었다.“날 따라와. 올라가자.”여운별은 어리둥절했다.용태호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면서도 반항할 수 없었고, 감히 반항하지도 못했다. 얌전히 용태호를 따라 위층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강성, 하루 호텔.식사를 마치고 여행 가방을 내려놓은 하예진은 노동명을 밀고 아들과 함께 호텔에서 걸어 나왔다. 근처 거리로 쇼핑하러 갈 준비를 하려던 참이다.우빈은 너무 기뻐서 가는 내내 깡충깡충 뛰며 재잘거렸다.하예진은 강일구에게 우빈을 따라가라고 지시했다, 어린 녀석이 너무 빨리 달려서 잃어버리지 않도록 말이다.강일구와 다른 경호원은 우빈을 따르고 있었고 네 명의 경호원은 노동명과 하예진의 뒤를 따랐다.그러나 노동명과 하예진을 방해하지 않도록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하는 사랑의 말을 무심코 듣고 싶지 않았다.“우빈이가 너무 기뻐하네.”노동명은 웃으며 말했다.“우빈은 외출하는 것을 가장 좋아해요. 몇 달밖에 되지 않았을 때부터 매일 밤 제가 아파트 단지를 몇 바퀴 돌았거든요. 매일 시간이 되어 내려가지 않으면 어찌나 보채는지...”“하하, 그래? 우빈이가 어렸을 때 키우기 힘들었지?”하예진이 대답했다.“맞아요. 특히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달아 다니면서 이것저것 만져보고 기어오르다가도 뛰어내리고... 조금만 부주의해도
“태호 씨, 방금 태호 씨가 한 말 제가 전부 귀담아들었어요.”여운별도 여운초가 그녀를 보고 의심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하예정이 허점을 찾지 못할 수도 있지만, 여운초는 분명 찾을 수 있을 것이다.누가 뭐라고 해도 친자매이니까.여운초는 여운별을 잘 알고 있었지만, 여운별은 오히려 여운초에 대해 잘 알지 못해 몇 번이고 여운초에게 짓밟혔다.가장 두려운 것은 여운별의 남동생이 그녀를 도와주지 않는 점이다.여천우의 머리에는 대체 뭐가 들어있는지 알고도 모를 일이다.여천우가 여운별을 따르지 않을뿐더러 두 고모도 사촌 오빠들을 데리고 관성을 떠나 어디로 갔는지 행방도 모른다.여운별은 이제 의지할 곳이 없어서 용태호의 눈에 들어 바둑판의 알로 사용되고 있고 심지어 용태호의 내연녀까지 되었다.용태호는 탁자 서랍에서 종이 두 장을 꺼내 여운별에게 건네며 말했다.“잘 봐. 이 종이에 적힌 모든 내용을 잘 기억해.”여운별은 그 두 장의 종이를 받았다. 그 종이 위에는 전부 낯선 이름과 낯선 회사들, 그리고 그 회사들이 어떤 사업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적혀있었다.빼곡히 많은 글이 붙어있었다.“태호 씨, 다 기억하여야 하는 거죠?”이는 용태호가 여운별에게 이어준 인맥임을 그녀도 잘 알고 있다. 이 사람들과 회사는 관성에서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여운별은 처음으로 용씨 사모님의 신분으로 연회에 참석하게 된다.연회에서 다른 사람이 시댁에서 무슨 사업을 하는지 물으면 적어도 대답을 해주어야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관성이 이토록 큰데 몇몇 명문가 외에도 많은 새로운 기업들과 수많은 크고 작은 회사들이 있다.모든 사람이 서로의 회사 대표님이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그녀가 말을 꺼내기만 하면 사람들은 그녀의 가족이 정말로 그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고 믿을 것이다.여운별은 이미 하예정에게 자신의 남편 사업이 관성에 있지 않고 관성에 정착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알려주었다.“기억해야 할 뿐만 아니라 능숙하게 외워야 해.”용태호는 담담하게
진정으로 용씨 가문의 모든 것을 물려받을 수는 없다.그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용씨 가문을 잘 다스릴 수 있다 해도 임시 대리인으로 될 수밖에 없다.용정이가 어른으로 되어 다시 가주의 증표와 토템을 가지고 돌아오면 용태호는 아무 말 없이 무조건 자리에서 물러나 열심히 운영해왔던 모든 것을 내줘야 한다.용씨 가문의 진정한 세력과 인맥도 그 녀석에게 충성할 것이다.하여 용태호는 상대방이 아직 어리고 복수할 능력이 없을 때 먼저 증표와 토템을 받은 후 입을 막으려고 했다.그래야만 진정으로 용씨 가문의 주인이 되어 용씨 일족을 호령할 수 있으니까.그러나 그가 막 용정이 모연정의 양자라고 의심하던 찰나에 단서는 끊어졌고 그 아이와 관련된 소식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마치 보호막이라고 생긴 것 마냥 예진 리조트에서 너무 잘 보호되고 있었다.용태호도 손을 내밀어 들어갈 수는 있지만, 그는 정겨울의 배후에 서 있는 노인네와 국내와 국외를 자유롭게 오가는 신비로운 조직 오제당을 감히 건드릴 담이 없다. 용씨 가문은 매우 대단한 가문이지만 용태호는 아직 진정한 용씨 가문의 가주가 아니었다. 따라서 오제당과 맞서지 못할 것이다.그는 먼저 모연정의 양자가 그가 찾는 녀석인지 아닌지를 알아내야 했다.“태호 씨.”여운별은 무언가를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용태호를 불렀다.용태호는 눈빛을 돌려 여운별이 말하기를 기다렸다.“태호 씨, 하예정은 매일 조카를 유치원에 데려다줘야 해서 저도 시누이를 데리러 가는 척했거든요. 유치원 입구에서 우연히 만나려고 늘 기회를 찾고 있었고요. 근데 하예정은 제가 늘 말하는 시누이를 본 적 없어요. 계속 이대로 나아간다는 의심 살 수 있으니 제 일에 협조해줄 수 있는 아이를 배정해 줄 수 있을까요?”용태호는 웃으며 칭찬했다.“좋아. 진보 많네. 그럼 내가 아이 한 명을 찾아서 네 연기에 협조해주도록 하지. 그분 외조카가 유치원 소반이라고 했지? 넌 하예정 씨와 소개할 때 시누이가 몇 살이라고 알려줬어?”“네다섯 살 정도요.”용태호
여운별은 잠자코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하긴, 여운초가 이미 제 목소리를 들었으니 다음에 제가 변성하면 더 의심할 거예요. 이제 다들 저를 의심하는 거예요? 하지만 하예정은 어떻게 저를 의심했죠? 몇 번 만나보지 못했는데.”용태호는 여운별을 힐끗 쳐다보다가 대답했다.“기억력이 좋거든.”여운별은 말을 잇지 않았다.여운초의 기억력도 아주 좋다.여운초는 10년 가까이 눈이 멀어서 기억력에 의존해야 했다.“그리고 네 눈먼 장님 언니도...”“태호 씨, 여운초는 이제 장님 아니에요. 진작에 시력을 회복했거든요. 전이진 도련님이 신의의 제자인가 뭔가 하는 사람을 찾아와서 눈을 치료해 주었다고 들었어요.”여운별은 말하다가 억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그 장님은 왜 이렇게 운이 좋을까!”전이진이 여운초에 접근했을 때 그녀 아직도 장님이었으나 전이진은 싫어하는 기색이 없었다.여운초의 두 고모는 그때 명해은을 만나러 서원 리조트에 찾아가 여운초의 눈이 멀어서 전이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들쑤시기까지 했다.그러나 명해은은 전씨 가문의 사모님은 아무 일도 할 필요 없이 돈 쓸 줄만 알면 된다고 당당하게 쏘아붙였다.그녀의 두 고모를 울분이 터져 미칠 지경이었지만 그렇다고 감히 전씨 가문에서 미치광이처럼 떠들지는 못했다.이제 여운초는 시력을 회복했고 또 전이진과 혼인 신고까지 했다. 그녀가 전씨 가문에서의 지위는 더욱 견고해지기만 할 것이다.내일 저녁에 여운초는 명해은을 따라 연회에 간다고 하지 않았는가!예전에는 상류층에 연회가 있을 때마다 추미자는 여운별을 데리고 참석했지만, 여운초는 절대 데려가지 않았었는데...여운별이 여운초를 심하게 괴롭혔을 때 여운초가 평생 관성의 상류 사회에 들어가지 못할 거라고 비꼬기까지 했다.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지금은 여운별은 상류 사회에서 밀려나게 되었고 여운초는 전이진의 어머니가 데리고 다니며 접대하고 교제하고 있다!여운초는 지금도 여씨 가문의 모든 사업을 관리하고 있다.여운별은 생각하면 할수록 울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