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씨 가문 할머니의 눈에 들 수 있다는 것은 그녀의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다는 뜻이었다.전태윤은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볼 게 뭐가 있다고. 다 똑같이 눈 두 개에 코 하나, 입 하나지.""하하."이동명은 폭소를 터트렸다.그는 자신의 친구가 하예정을 소개해 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소정남은 어쩌면 이미 만났을지도 몰랐다. 심지어 하예정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소정남은 가십에 관심이 많은 데다 정보망도 있어 하예정의 조상의 뿌리까지 다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이동명은 이 화제를 더 이어 나가지 않았고, 친구의 일이 바쁘다는 것을 아는 그는 이내 통화를 마쳤다.시간은 빠르게 흘러, 눈 깜짝할 새에 또다시 깊은 밤이 되었다.전태윤은 롤스로이스 안에 앉아 미간을 어루만졌다. 조금 피곤했다.아마 요 며칠, 정말 뭐에 홀린 건지도 몰랐다. 하루에 이틀, 심지어는 사흘 치의 일을 했으니 힘들지 않을 리가 없었다."도련님, 오늘도 로열 팰리스로 모실까요?"기사가 물었다.전태윤은 뒤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눈을 감은 채 기사의 말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2분쯤 지나고 나서야 그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발렌시아로 가.""네."도련님의 대답을 들은 강일구는 온 신경이 다 풀어지는 것만 같았다.도련님이 드디어 사모님의 곁으로 돌아갔으니 그들도 이제는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비록 전태윤은 경호원들에게 뭘 어쩌지는 않았지만 요 며칠 기분이 안 좋은 티가 너무 나 경호원들도 혹시라도 작은 실수를 저질러 전태윤에게 쫓겨날까, 따라서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었다.전태윤은 회사에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접대를 하러 갔던 터라, 집으로 오는 길이 조금 멀었다.그렇게 20분이 지나서야 겨우 발렌시아 아파트에 도착했다.전태윤이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집 안은 어두컴컴했다.'아직 안 돌아 온 건가?'불을 키고 시계를 확인하니 11시였다. 곧 하예정이 돌아올 시간이었다. 빨리 올라와서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전태윤이 다시 마네키네코를 들어 올리는데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거 제가 성소현 씨에게 만들어줬던 것보다 조금 더 커요. 열심히도 만들었고요. 어때요, 진짜 같죠?"자신의 것이 성소현 것보다 더 크다는 이야기를 듣자 전태윤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덤덤하게 대답했다."진짜 같네."하예정은 웃으며 대답했다."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요."그녀는 차 키를 티 테이블 위에 올린 뒤 곧장 주방으로 향했다."야식으로 국수해 먹을 건데, 당신도 먹을래요?"전태윤이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는 스스로 답을 내렸다."아, 참. 깜빡했네요. 당신은 살찐다고 야식 안 먹죠."전태윤은 할 말을 잃었다. 그녀가 다 대답까지 했는데 그에게 무슨 할 말이 있을까?하지만 전태윤은 확실히 배가 고프지 않았다.하예정은 주방에서 면을 삶기 시작했다.잠깐 제자리에 멈춰서있던 전태윤은 이내 주방 입구로 향했다. 그는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문 앞에 서서는 하예정이 고명까지 준비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녀는 국수를 먹을 때면 고명을 올린 뒤 계란에 겨자까지 올리는 것을 좋아했다.겨자를 올리면 독특한 맛이 있어 더 맛있다고 했다."따르릉…"하예정의 휴대폰이 울렸다.하던 것을 멈춘 하예정은 작게 구시렁거리며 휴대폰을 확인했다."이렇게 늦었는데, 누가 전화를 하는 거지?"그러다 발신인이 김진우인 것을 확인한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내 전화를 받았다. 전태윤의 귓가에 하예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응, 진우야. 무슨 일이야?"김진우의 전화라니!전씨 가문 도련님의 귀는 순식간에 토끼 귀마냥 쫑끗 세워졌다."예정 누나, 누나 형부 이름 주형인이지 않아?"김진우는 집에 돌아오고 나서야 주형인의 이름이 왜 익숙한지를 떠올렸다. 하예정의 형부 이름이 그 이름이었던 것이 떠오른 그는 곧바로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물론 하예정이 자신에게 고마워하길 바라는 사심도 담겨 있었다."우리 형부 이름이 주형인이 맞긴 한데, 왜? 아는 사
그는 이내 김진우를 떠올렸다. 가장 큰 이유는 김진우는 오늘 재계 모임에 참가하기 위해 관성 호텔로 향했다. 김진우는 김씨 그룹에서는 아직 일개 직원에 불과했지만 김씨 가문에서 내정한 후계자인 데다 김씨 가문 도련님이니 모임에서 물 만난 듯, 사람들에게 떠받들어지고 아부를 받았을 게 뻔했다.전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름의 묵인이었다."아니면, 지금 보내줄까? 너 발렌시아 아파트에 묵고 있지?"소정남은 자신의 친구가 아내가 될 사람의 인품을 시험하기 위해 신분을 속이고 결혼한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특별히 발렌시아 아파트에서 정교하게 인테리어를 마친 집으로 이사까지 했다."됐어, 내일 주면 돼. 시간이 늦었는데 얼른 쉬어. 나도 이제 쉬어야겠어."소정남은 전태윤과 하예정의 일을 전부 다 목격했지만 전태윤은 그래도 소정남에게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했다. 이내 전태윤은 통화를 끊었다.소정남은 구시렁거렸다."오늘 잘 수나 있겠어? 연적이 공로까지 다 빼앗아 가는 마당에."전태윤이 잘 잘 수 있을지 없을지는 오직 그만이 알 수 있었다.김진우의 말을 다 들은 하예정은 그다지 놀라워하지 않았다. 속에 가득 찬 것은 오로지 분노뿐이었다."진우야, 알려줘서 고마워."하예정은 곧바로 분노를 터트리지 않았다. 그는 김진우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물었다."혹시 두 사람 사진 있어?"어찌 됐건 김진우가 만난 것이 주형인 그 쓰레기가 맞다는 증거가 필요했다."같이 사진은 안 찍었다. 당시에는 그저 이름이 익숙하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누가 얘기했던 건지는 떠오르지 않았었어. 그러다가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누나 매형 이름이 그 이름이었던 것 같아서 전화로 물어보는 거야. 예정 누나, 얼른 누나 언니한테 조심하라고 해. 몰래 증거도 좀 모으고, 혹시 몰래 재산을 빼돌릴 수도 있으니까 그것도 유의하고.""응, 알겠어. 고마워."김진우는 웃으며 말했다."무슨 큰일도 아닌데 뭘, 감사 인사는 필요 없어, 누나.""그럼 방해 안 할 테니까 얼른
하예정은 라면을 먹으며 언니에게 자냐고 문자를 보냈다.키보드 두드릴 시간이면 통화를 하고도 남는다고 생각한 하예진은 답장 대신 전화를 걸었다."예정아, 나 아직 안 자. 넌 이제 집에 들어갔어?"하예진은 자신의 동생 생활 패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예전에 그녀의 집에서 함께 지낼 때, 하예정은 제일 늦게 잠들고 제일 빨리 일어나는 사람이었다.하예진은 동생이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를 차리고 집안일을 했던 것은 다 자신의 남편이 기분 나빠할까 봐 걱정돼서 그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렇게 많은 일을 하고 다달이 돈도 보태줬음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그래도 주형인에게 공으로 빌붙어 지낸다고 한 소리를 들었다.침대 옆자리가 비어있지만 이제 하예진도 더는 상관없었다.하예정은 지금 오직 동생만 마음에 두고 있었다."응. 지금 야식 먹고 있어. 언니, 나 언니한테 할 말 있어. 진우가 오늘 관성 호텔에서 모임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형부를 만났대. 예쁜 여자랑 같이 있었다더라. 진우말로는 형부가 그 여자를 엄청 잘 챙겨주는 게 다정한 커플같다고 하더라.""진우는 형부 이름만 알고 만나 본 적은 없잖아. 뒤늦게 생각났다고 나한테 알려줬어. 유진테크 사장이라고 하는 걸 보면 열에 아홉은 형부가 맞는 것 같아. 언니 그 사람 재산 같은 거 빼돌리지 못하게 잘 주시해. 언니 스스로도 꼭 지키고."요즘 세상에, 아내를 죽이는 일은 너무나도 많이 벌어졌다.하예정은 언니에게 자신을 보호하라는 말부터 했다.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혼하면 그만이었다. 남자 하나때문에 목숨까지 잃는 건 너무 무가치한 일이었다.동생의 말을 들은 하예진은 한참 동안이나 말이 없었다.사실 그녀는 주형인이 바람을 피웠을지도 모른다고 전부터 예상하고 있었다.주형인은 이제 겨우 30이 조금 넘은 나이에 그럭저럭 잘생긴 데다 직장에서도 잘나가고 있었다. 밖은 고사하고 회사 안에만 해도 어리고 예쁜 여자들이 아주 많았다. 매일 회사에서 어리고 예쁜 여자들만 만나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몸매가
눈물을 닦은 하예진은 감정을 추스른 뒤 최대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예상은 하고 있었어. 다만 이렇게 빨리 일어날 줄 몰랐던 거지."주형인은 바람을 피우면서도 아직 그녀에게 숨긴 채 이혼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녀의 예상이 맞다면, 주우빈때문일 것이다. 주우빈은 아직 어려 보살핌이 필요한데 시부모는 딸의 아이를 봐줘야 하니 아이를 돌볼 사람이 필요했다. 주형인은 늘 팔이 안으로 굽어 자기 가족만 챙기는 사람이었다.그는 자신도 아끼는 누나를 부모님이 챙기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이혼을 하게 된다면 주씨 집안에서는 분명 주우빈의 양육권을 가져가려 하겠지만, 주우빈이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 모를까, 주형인은 자신의 부모가 힘들게 아이 둘을 키우는 것을 마음 아파했다.주형인은 아마 아들이 유치원에 다니고 나서야 이혼 이야기를 할 게 뻔했다.지금은 그녀에게 할 수 있는 건 무시와 냉대뿐이었다."언니, 아직 증거가 없으니까 아는 티는 내지 마. 나중에 증거 다 모으고 나면 다시 얘기해. 난 그저 언니한테 미리 마음의 준비하라고 알려주는 것뿐이야. 혹시라도 무슨 짓이라고 벌이면 어떡해."하예정은 언니의 울먹이는 듯한 소리를 들었지만 아는 체하지 않았다. 언니에게도 감정을 쏟아낼 시간이 필요했다.울어서 된다면 그녀는 언니가 속 시원하게 울게 내버려 둘 심산이었다.3년의 결혼 생활로 한 남자의 본모습을 알아내는 건 몹시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녀의 언니는 이제 막 서른이 넘은 젊은 나이였다. 주형인은 이미 불륜을 저질렀으니 그런 남자는 더는 필요 없었다."그래, 예정아. 언니 노력해 볼게. 너도 이제 저녁 먹어, 언니 괜찮아. 언니가 지금 열심히 일자리를 찾고 있는 것도 다 이혼 준비를 위해서였어."갑작스럽게 부모를 잃고 나서 친척들에게 매정한 취급을 받았을 때도 그녀는 무너지지 않고 동생과 함께 힘겹게 지금까지 살아왔다. 남편이 불륜을 저지른 것뿐, 하늘이 무너진 것도 아니니 하예진은 무너지지 않았다."언니도 빨리 자. 나쁜 생각 하지 말
한참을 울던 하예진은 주형인이 돌아온 뒤에야 눈물을 닦고 잠든척했다. 그녀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귀를 쫑긋 세우고 방밖의 기척에 귀를 기울였다.가정 폭력 사건 이후부터 두 사람은 각방을 쓰고 있었다. 아마도 주형인은 잠들었을 때 하예진이 정말로 자신을 토막 낼까 봐 두려웠던 모양이다.방문이 조용히 열렸다. 주형인은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문 밖에 서서 아들과 아내가 잠든 것을 보고 나서야 방문을 닫고 손님방으로 향했다.방문을 닫은 그는 곧바로 서현주에게 전화를 걸었다."주 사장님.""회사 밖인데, 오빠라고 해."주형인은 옆방에 있는 와이프가 들을까 봐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오빠, 집에 잘 들어갔어요? 너무 걱정돼서요. 술을 그렇게 마셔놓고 혼자 운전해서 집에 간다니까 걱정돼 죽는 줄 알았어요. 앞으론 이러면 안 돼요. 음주운전 위험하잖아요. 경찰한테 잡히면 좀 귀찮아요?"서현주는 전화 너머로 주형인을 걱정하며 어르고 달랬다."그래, 네 말대로 할게. 앞으론 음주운전 안 하고 대리 부를게. 현주야, 일찍 자. 굿나잇 인사 하려고 전화했어."주형인의 머릿속엔 지금 온통 서현주뿐이었다. 오늘 밤에도 두 사람은 오랫동안 함께 있다 마지못해 헤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또다시 서현주의 예쁜 얼굴, 섹시한 몸매 그리고 달콤한 목소리도 그리워졌다.그는 서현주의 모든 것이 그리워졌다.술을 많이 마신 탓인지 서현주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주형인은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오빠, 일찍 자요. 내일 아침 또 출근해야 하잖아요. 잘 자요, 꿈속에서 만나요."서현주는 휴대폰에 대고 뽀뽀했다."뽀뽀."주형인은 웃으며 말했다."이건 뽀뽀가 아니야. 내일 다시 해줘. 난 프렌치 키스를 원해. 현주야, 난 네가 너무너무... 알지?""오빠, 잘 자요."서현주는 일부러 그의 말을 못 알아들은 척, 애교 가득한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주형인은 서현주의 말에 더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서현주는 여우처럼 그의 마음을 꽉 잡고 더 깊은 관계로 발전
"술을 많이 마셔서 냄새나. 얼른 가서 샤워나 해."하예진은 이마를 찌푸리며 발로 그를 툭툭 찼다.하예진안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동생은 그녀에게 주형인이 발뺌하는 것을 막기 위해 먼저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몰래 증거를 수집하라고 했다.하예진은 주형인이 아직 자기한테 해코지할 정도로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지금 과학의 발전해 경찰의 수사 속도는 날로 빨라지고 있어, 주형인이 그녀에게 무슨 짓이라도 한다면 언젠가 밝혀지게 될 것이었다.그는 자신의 미래와 목숨을 담보로 기꺼이 그녀의 목숨과 맞바꿀 사람이 아니었다.주형인은 욕설을 퍼부으면서도 샤워하러 향했다.샤워를 마친 그는 다시 아들 곁에 누웠다. 하지만 몇 분 뒤 다시 일어난 주형인은 아들의 발밑에서 위오 올라오더니 하예진의 다리를 더듬기 시작했다. 의도가 다분했다.그는 하예진의 몸매에 정이 뚝 떨어졌지만 서현주는 내내 애만 태우는 데다 지금은 몸이 달아오른 터라 하예진과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두 사람은 합법적인 부부가 아닌가.예전 같았으면 그가 이렇게 만지면 하예진은 얌전히 맞춰주곤 했다.오늘 밤, 하예진은 주형인이 허벅지를 만지자마자 곧바로 발로 차버렸다. 갑작스러운 발길질에 주형인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그러자 주형인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자리에서 일어나 앉은 주형인은 하예진에게 욕설을 퍼부으려고 했지만 곧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슬리퍼를 들며 당장이라도 싸울 기세인 하예진의 모습에 전에 칼을 들고 자신을 쫓아오던 광경이 생각났다.목 끝까지 차올랐던 욕설이 하나도 뱉어지지 않았다."꺼져!"하예진은 슬리퍼를 던지며 낮은 소리로 얘기했다."애 깨우기만 해 봐!"주형인은 얼굴을 붉힌 채 하예진에게 손가락질을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끝내 씩씩대며 방을 나섰다.하예진은 방문을 닫은 뒤 아예 문까지 걸어 잠갔다.한 시간 전의 동생의 전화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정말 주형인과 잠자리를 가질 뻔했다. 뭐가 됐든 두 사람은 아직 부부이
하예진은 장 보러 간 게 아니었다. 낮에는 일자리를 찾고 주로 저녁이나 되어야 장을 봤다. 저녁에 장을 보면 싸서 돈도 절약할 수 있었다. 아직 직장은 구하지 못한 데다 남편도 더는 믿을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궁핍한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이게 다 동생이 당시에 수를 좀 둬 따로 돈을 모으라고 해줬던 덕이었다.사실 결혼 초반에 회사를 그만두고 임신 준비를 생각했었다. 하지만 하예정은 반대하면서 결혼 전이나 결혼 후나 여자들은 자신만의 고정 수입이 있어야 하며 남자를 전적으로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남편이 잘해주고 있었기에 하예진은 괜찮다고 생각을 했었다. 일단 남편이 싫증을 내거나 바람을 피우게 된다면, 직장이 없어 수입이 없는 사람은 열세에 처하기 마련이라 쉽게 우울에 빠졌다.그녀는 어리석게도 주형인과의 사랑이 돈독하니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었다.주형인은 그녀에게 인테리어 비용을 부담하라고 했고 그녀는 두 사람의 보금자리라고 생각하고 또한 아름답게 꾸미기를 원했다. 그래서 주형인의 제안을 수락했고 몇 년 동안 일해서 모은 몇천만 원을 전부 꺼내 집을 꾸몄다. 그는 그녀에게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임신 준비를 하고 돈 걱정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녀는 그의 감언이설을 믿고 상사의 만류에도 회사를 그만두고 가정에 충실했다. 그 결과, 그녀는 무엇을 얻었는가?상처밖에 없었다. 하예진은 유모차를 밀면서 동생의 서점으로 향했다.바로 발렌시아 아파트로 갈 수 있었지만 아침 일찍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걸으면서 지난 일을 생각하면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미 이혼 준비를 하고 있고 마음의 준비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을 과대평가했던 듯싶었다. 그녀는 속이 상했고, 여전히 마음이 아팠다.그도 그럴 것이 12년을 알고 지냈는데 감정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었다.하예진이 유모차에 주우빈을 눕혔을 때도 주우빈은 자고 있었다. 하예진은 주우빈을 안고 나온 뒤 다시 유모차에 눕혀 재운 것이었다.장소가 바뀌었
정군호가 어떻게 선택했는지 멀리 있는 관성에 있는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한밤중에 전태윤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는 벨 소리에 잠을 깨고 재빨리 핸드폰을 가져갔다.전태윤은 휴대폰 화면에 뜬 번호도 확인하지 않은 채 몸을 일으켜 살금살금 침대에서 내려와 침실을 나갔다.그리고 나지막이 물었다.“여보세요?”“형, 나야.”“호영아, 늦은 시간까지 왜 아직도 안 잤어?”전호영에게서 걸려온 전화인 것을 깨달은 전태윤은 급히 침실 문을 닫았다.그리고 방을 나선 뒤에야 비로소 큰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전호영이 먼저 물었다.“형, 형수님은 아직 안 깼지?”“아니. 임신 중이라 잠들면 깊은 잠을 자거든. 우리 처형이 무슨 일이라고 생겼어?”전호영이 한밤중에 한가하게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을 것이다.전태윤은 걱정하기 시작했다.하예진이 강성에 간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만약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하혜정은 결코 견딜 수 없을 것이다.“사고가 났긴 났지. 우리도 방금 호텔에 돌아왔거든. 내가 예진 누나를 먼저 방에 들어가서 쉬라고 했어. 이 사실은 형한테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지금 이렇게 전화를 걸었어. 내가 지금 알려주지 않는다고 해도 내일이 되면 형도 알게 될 거야.”하예진이 강성으로 데려간 경호원들은 세 가문의 경호원이었기에 전태윤이 배치한 경호원도 내일이면 전태윤에게 보고할 것이다. 노씨 가문과 성씨 가문의 경호원들도 그들의 지도자에게 알려줄 것이다.전태윤은 하예진이 이미 호텔로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한숨 돌렸다.아무 일 없으니 당행이었다.“무슨 사고? 다친 사람은 없고?”전태윤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우리 쪽에는 다친 사람이 없어. 이씨 집안의 경호원 한 명이 돌아가셨고 내 차 한 대가 파손됐어.”하예진이 강성에서 사용하는 차량은 전호영의 차였다.“내가 너에게 차 한 대를 배상해 줄게.”그러자 전태윤이 대답했다.사촌 동생 전호영에게 부탁해서 하예진을 보호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전호영의 차가 손상
사실대로 토로하던 정군호가 갑자기 깨달은 듯 재빨리 말을 건넸다.“여보, 술이 문제인 것 같아요. 술이! 저와 윤정이가 술을 마셔서 그래요. 오늘 밤 집에서 연회가 있는데 누군가가 수를 쓴 게 틀림없어요. 하예진이라는 사람 아니에요? 그 여자가 당신 맏언니의 후손인데 많은 사람이 당신이 맏언니를 죽였다고 수근대던데... 복수하러 왔을 거예요. 당신을 괴롭히려고 당신이 가장 아끼는 윤정이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거예요. 윤정이가 또 당신의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저와 윤정이를 이용해 당신을 괴롭히려고 그러는 거라고요!”이은화도 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이은화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예진이는 들어오고부터 나갈 때까지 술 한 방울도 다치지 않았는데 어떻게 당신을 해칠 수 있겠어? 정군호 씨! 당신 두 사람이 누군가의 계략에 빠졌다고 해도 예진이는 아닐 거야. 나도 예진이가 이번에 강성으로 온 이유가 바로 우리 이씨 가문을 겨냥하여 온 것을 알고 있어.”“내가 나이가 들었지만, 노망나지 않았거든. 이 일의 책임을 예진에게 물으려 한다면 성공하지 못할 거야. 오늘 밤 연회에 참석한 사람은 예진이 말고도 고 대표님과 전호영 도련님도 왔거든. 그들이 모두 현장에 있었고 또 많은 가문의 사람들도 현장에서 식사하고 있었어.”“하예진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가문의 사람들 사이에서도 누명을 씌울 사람이 없어. 당신에게 음식을 챙겨준 사람은 윤정이고 그 술을 건네준 사람은 일범이잖아. 당신을 해친 사람이 일범이야?”정일범의 이름이 언급되자 이은화의 표정은 더 파래졌다.정군호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정녕 정일범이 진범이란 말인가!그럴 리가 없다. 정군호는 정일범 덕에 처음으로 아버지로 되었고 정일범도 정군호의 성씨로 따랐다.정군호가 이윤정을 예뻐한 이유는 단지 부녀간의 감정을 잘 키워 그녀가 가주 자리에 오른 뒤 정씨 집안에 더 많은 이득을 챙겨주기 위함이었다.정일범이야말로 정군호가 가장 아끼는 사람이다. 정군호의 성씨를 따른 정씨
“엄마, 아버지랑 얘기 잘 나누세요. 아버지 설명도 좀 듣고 후회할 결정을 하지 마세요.”이윤미가 온화한 목소리로 어머니를 타일렀다.이은화는 손을 내저으며 자식들에게 나가라고 했다.“아버지, 엄마께 잘 설명하세요. 아버지는 이미 우리 엄마와 수십 년 동안 부부로 생활하셨잖아요.”정군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말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역시 친딸 이윤미는 그와 혈연관계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중요한 시기에 그를 대신해 말을 해주었다.아들딸 네 명이 전부 서재를 나갔을 때 이은화는 다가가서 서재 문이 닫혔는지 확인했다. 그러더니 다시 문을 열어 밖을 내다보았고 아들딸 넷이 모두 엿듣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다시 서재 문을 닫았다.그리고 서재 문을 잠갔다.이은화는 몸을 돌려 정군호 앞에 가서 멈춰 서더니 남편을 내려다보았다.“여보,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정말 모르겠어요.”정군호가 해명했다.이은화가 남편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의자에 앉으며 무뚝뚝하게 물었다.“설명해 봐. 윤정이가 오늘 음식을 당신에게 가져다준 뒤로 무슨 짓을 했는지.”정군호는 얼굴이 창백해져 조금 전에 일을 떠올리면서 대답했다.“오늘 기분이 좋지 않아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어요. 술은 일범이가 준 술인데 반병밖에 남지 않아서 일범에게 그 술을 달라고 요구했어요. 윤정이가 음식을 올려온 뒤로 우리 두 사람은 술 한잔하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윤미에게 제 속마음을 털어놓았어요. 여보, 제가 잘못했어요. 당신이 강성에 없을 때 제가 바람을 피우면 안 되는데... 정말 잘못했어요. 제가 여전히 당신을 원망하고 있었어요. 다 제 잘못이에요.”정군호는 감히 숨기지 못하고 이은화에게 이실직고했다. 정군호는 단지 이은화가 너무 횡포하다고 속마음을 이윤정에게 털어놓은 것뿐이었다.이은화는 남편이 원한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결혼했을 때부터 정군호는 늘 억눌려 살았다. 이은화는 그가 바람피워 그녀에게 미안한 짓을 할까 봐 두려웠다.물론 그들 사이
“일범아, 나를 부축해줘. 네 엄마 보러 가야겠어.”정군호는 이윤정을 아끼지만 일단 자신을 보호해야 했다.정신을 차린 그는 이은화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해명해야겠다고 생각했다.정일범은 정일군과 함께 아버지를 일으켜 세웠고 그렇게 부자 넷은 방을 나섰다.“여보.”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정군호는 서재에 앉아있는 이은화를 보자마자 두 아들의 부축에서 벗어나 빠른 걸음으로 이은화 앞으로 다가가더니 털썩 무릎을 꿇었다.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뺨을 세게 후려치기만 했다.이은화는 차갑게 정군호를 쳐다보았다.정일범 형제는 감히 정군호 대신 사정하지도 못한 채 곁에서 서 있기만 했고 정군호가 아무런 존엄도 없이 무릎을 꿇고 자신의 뺨을 때리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정군호는 힘껏 자신의 뺨을 쳤기 때문에 곧 그의 양쪽 얼굴이 전부 빨갛게 부어올랐다.심지어 입가에 피까지 났다.이은화는 여전히 정군호를 차갑게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정군호가 그녀를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오싹할 정도로 차가웠다.정군호는 자신이 이번에 정말 비참할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시간은 그렇게 한참을 흘렀고 이은화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됐어.”정군호는 아직도 자신의 뺨을 때렸다.정일범은 앞으로 다가가 정군호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렸다.“아버지, 엄마가 멈추라고 하셨어요.”정군호는 그제야 동작을 멈추었다.이은화는 네 명의 자식을 보면서 말했다.“윤미야, 일범아. 너희들은 얼른 아래층으로 내려가 있어. 내 동의 없이 절대로 이 층으로 올라오면 안 돼. 그리고 아무도 위층에 올라오지 못하게 해.”“엄마.”이윤미는 이은화를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이은화는 스무 살이나 늙은 것 같은 모습으로 이윤미에게 말을 건넸다.“걱정하지 마. 내가 그렇게 많은 일을 겪었는데, 이 정도 일에 난 쓰러지지 않아.”이은화가 마음만 먹으면 더 젊고 몸이 더 튼튼한 남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정군호가 젊고 예쁜 미녀랑 바람피우는데, 설마 이은화가 밖에서 젊고 힘센 남자를 만나지 못
“어쨌든 저도 그 경호원의 가족을 만나야 해요.”“그분은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셔서 동생만 남겨졌대요. 동생이 오면 다시 예진 씨한테 연락드릴게요. 예진 씨, 지금 우리 집안이 난장판이라 제가 먼저 집안일을 처리하게요.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네.”하예진이 대답했다.이윤미는 전화를 끊었다.“이거 놔요! 저 엄마 볼래요. 엄마 보게 해주세요. 이거 놓으라고요!”정신을 차린 이윤정은 옷을 단정히 입었지만 결국 박수아와 김여희에게 끌려 내려갔다.그리고 조윤이 옷 몇 벌을 챙겨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정일범 형제는 말도 못 하고 정군호를 바라보기만 했다.정군호의 머릿속에는 하얀 종잇장처럼 아무런 기억도 없었다.정군호는 주저앉아 일어설 기력이 없었고 정일범 형제가 옷을 정리해 주는데도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것만 같았다.그는 지금 머리가 텅 비어 이 일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도 몰랐다.정군호는 두려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내뱉지 못한 채 이윤정이 조윤 일행에게 질질 끌려가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정군호의 결말도 좋을 리 없을 것이다!이은화가 얼마나 모질고 악랄한지 정군호는 잘 알고 있다.그녀를 화나게 하면 정군호와 그의 정씨 집안 사람들도 좋은 결과가 없을 것이다. 특히 정군호는 죽기보다 못할 것이다.이은화는 정군호를 죽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를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못한 생활을 경험하게 할 수도 있다.“아빠.”정일범은 여전히 이윤정을 아꼈다.정일범 형제는 이윤정이 어렸을 때부터 그녀를 사랑해 주었다.그들은 이윤정이 이씨 가문의 후계자로 될 신분이기 때문에 그녀와 남매간의 정을 잘 키우려고 했다. 이윤정이 가주 자리에 오른 후에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그러나 이윤정이 그들의 친동생이 아닐 줄 누가 알았겠는가!이윤정은 이씨 가문의 하인의 딸이었다!그들의 친여동생 이윤미는 하인의 집에서 자랐고 그 하인의 가족들은 이윤미를 괴롭혔다.정일범 형제도 친동생 이윤미에게 잘 해주어야 한다는
조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정말 그렇게 할까요? 윤정이가 깨어나면 윤정이 해명하는 것을 듣지 않으실래요?”이은화는 눈을 부릅뜨고 조윤을 노려보며 화를 냈다.“왜? 내 말이 지금 아무런 힘이 없어진 거야? 내가 시키는 대로 해! 가! 당장 가서 해! 안 할 거면 너도 같이 꺼져!”조윤은 깜짝 놀라 얼른 대답했다.“갈게요. 지금 바로 갈게요. 자꾸 화내지 마세요. 몸 상해요.”조윤은 박수아와 김여희에게 함께 이윤정을 처리하러 가자고 눈빛을 보냈다.진숙녀가 2층으로 올라가더니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이은화의 성난 고함을 들었기 때문이다.조윤 일행이 떠나자 이윤미는 그제야 진숙녀를 발견했다.“엄마, 화내지 말고 물 한 잔 드세요.”이윤미는 물컵을 들어 어머니에게 물 반 컵을 마시게 했다. 물컵을 내려놓은 이윤미는 이은화의 표정이 여전히 어두운 것을 보더니 진숙녀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왜 그러세요?”“아가씨, 예진 씨가 호텔로 돌아가시던 길에 교통사고가 나서 차가 뒤집혀 불이 나고 차가 망가졌대요.”“뭐라고요!”이윤미의 안색이 바로 어두워졌다.진숙녀는 서둘러 해명했다.“아가씨, 예진 씨는 괜찮아요. 그분은 고 대표님 차를 타고 떠났거든요. 예진 씨 경호원들이 술을 마셔서 예진 씨 차는 우리 가문의 경호원이 대신 몰고 갔어요. 예진 씨 차가 파손되었지만 죽은 사람은 우리 가문의 경호원이에요.”진숙녀는 이은화의 눈치를 보더니 계속해서 나지막이 이윤미에게 말을 건넸다.“아가씨, 이 일을 가주님께 말씀드릴까요?”하예진이 무사하다는 말을 듣고서야 안색이 좋아진 이윤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분부했다.“잠시 상황을 봐서 어머니께 말씀드려요. 그리고 교통사고를 처리하라고 사람을 보냈어요? 사망한 사람은 누구죠? 그의 가족들에게 우리를 찾아오라고 전해주세요. 보상금을 드려야죠.”진숙녀가 나지막이 대답했다.“제가 이미 사람을 보내서 처리했어요. 돌아가신 경호원은 친부모가 모두 돌아가셨고 남동생이 한 명 있어요. 갓 대학을 졸업해 강성에서
“엄마, 사고일 거예요. 윤정이가 우리 아버지를 유혹할 리가 없잖아요.”이윤미가 한마디 했다. 그녀는 이윤정 대신 사정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의심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꺼낸 말이다.물론 이 일은 이윤미가 꾸민 일이 아니다.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다.조윤 일행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지 이윤미는 전부 알고 있었다.이윤미는 이윤정을 일깨워주지 않고 사건이 터지도록 내버려 두었을 뿐이다.머리를 쓰지 않아도 이 사건은 이윤정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정군호 또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 뻔했다.정군호가 바람을 피우는 상대가 젊고 예쁘다고는 하지만 그는 절대로 친딸처럼 키운 이윤정에게 그런 생각을 품지 않을 것이다.정군호는 친딸 이윤미가 이씨 가문으로 돌아왔는데도 여전히 이윤정을 가장 아껴주었다.친딸 이윤미에게 정이 가지 않았다.정군호는 심지어 이윤정을 도와 이윤미를 괴롭혔다.그러나 지금 이 두 사람은 함께 있었고 그 장면도 이은화가 목격하게 되었으니 두 사람의 후과는 아마 처참할 것이다.이은화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내 말 안 들려? 이윤정을 내 던져! 다시는 안 보고 싶어! 당장! 얼른 깨워! 윤정이는 더는 우리 가문의 딸이 아니라고! 윤정이는 내 딸도 아니잖아. 이씨 성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얼른 꺼지라고 해!”이은화는 이윤정이 정군호를 꼬셨다고 의심하시는 게 아니다.하지만 20년 넘게 아꼈던 수양딸과 자신의 곁은 지켜주던 남편 정군호가 침대에서 뒹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뿐이다.이은화는 누가 옳은지 그른지 상관없이 다시는 이윤정을 보고 싶지 않았고 예전처럼 이윤정이 그녀 앞에서 알른거리는 것을 내버려 둘 자신이 없었다.그리고 정군호도...이은호의 눈가에는 깊은 원한이 솟구쳐 올랐다. 그녀는 정군호를 폐인으로 만들어 다시는 여자를 건드릴 수 없게 하고 싶었다.“엄마, 화내지 마마세요. 제가 금방 처리할 테니까 화내지 마세요.”이윤미는 어머니의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이윤정을 처리해야 했
그 말을 듣고 있던 하예진의 안색이 바로 어두워졌다. 그녀는 이 사건이 이은화가 꾸민 음모라고 생각했다.하예진은 이은화가 의외의 사고로 위장하여 자신을 죽이려 했다고 추측했다.그녀는 이은화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연회에서 조용하고 식사했고 음식에도 독이 없었다. 하여 하예진은 이은화가 호텔에 돌아오는 길에 자신의 차에 수를 써서 교통사고를 당할까 봐 고현의 차에 탔다.이은화의 목적은 하예진이었기에 고현의 차를 건드리지 않았고 또 감히 건드리지도 못할 것이다. 하여 고현의 차에 앉는 것이 가장 안전했다.하예진의 경호원들은 전씨 가문과 성씨 가문 그리고 노씨 가문이 그녀에게 배정해준 가장 실력 있는 경호원들이었기 때문에 하혜정도 그 경호원들의 생명을 보장해야 했다.그래서 하예진은 그녀의 경호원들을 향해 윙크하며 술을 마셨으니 운전하면 안 된다고 말하며 고현의 경호원 차에 비집어 올라타게 했고 이씨 가문의 진숙녀에게 부탁하여 이씨 가문의 경호원들을 그녀의 차를 몰고 호텔로 가도록 했다.지금 부딪힌 차는 마침 전호영이 하예진에게 안배해 준 차였다.차가 뒤집힌 뒤로 빠르게 불이 붙는 바람에 누구에게도 구조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 차는 현장에서 부서지고 사람도 즉시 사망했다.하예진을 겨냥하여 꾸민 일이 틀림없다.만약 오늘 밤 전호영과 고현을 따라오게 하지 않았다면 하예진은 아마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설마 이은숙도 이렇게 죽었던 건가!전호영은 나지막이 말했다.“이씨 집안의 그 경호원이 불에 타 죽었어요. 우리가 구조할 기회조차 없었거든요. 불길이 너무 세고 불이 붙는 속도도 너무 빨랐거든요. 누나, 우리 일단 돌아가서 얘기해요. 여기에서 얘기하기가 불편해요.”이은화가 하예진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을 때, 전호영과 하예진은 이 연회가 그들을 해칠 연회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었다. 이씨 가문의 저택을 떠나면 무사할 줄 알았지만 결국 길에서 이런 사고를 당할 줄은 몰랐다.정군호와 이윤정의 사건이 터지지 않았다면 하예진은 아마
하예진이 말을 건넸다.“제 생각에는 사모님 세 분이 꾸민 음모일 가능성이 커요. 어떻게 수를 썼는지 모르지만... 그냥 우리의 추측일 뿐이에요. 대체 누가 진범인지 우리가 알 필요 없는걸요. 아마 그 진범의 실체를 드러내놓지도 않을걸요.”이은화는 기필코 이 일이 알려지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지금 충격과 분노에 휩싸여 미처 진실을 가릴 겨를이 없었다.나중에 이은화가 정신을 차리게 되면 바로 처리 할 것이다.현장을 본 몇몇 친척들도 빨리 도망가긴 했지만 사실 도망갈 수 없다. 이은화가 조사하기만 하면 누가 위층으로 올라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하예진은 내일 이은화가 가장 먼저 그녀를 찾아갈 것이라고 여겼다.그녀에게 외부에 소문내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할 것이고 누가 꾸민 짓인지도 직접 조사할 것이다.나중에 조윤 일행이 이혼을 당했는지, 집에서 쫓겨났는지 눈여겨보면 바로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다.“윤정 씨는 조만간 이씨 가문을 떠나야 할 것 같네요.”고현이 한마디 했다.고현은 이윤정을 매우 싫어했다.이윤정이 그녀를 연모하고 매달리는 것이 싫은 것이 아니라 이윤정을 처음 본 순간부터 싫어했다.이윤정이 그녀를 사랑하든 말든 상관없었다.“정군호도 좋은 결과는 없을 거예요. 요즘 일어난 일들에 관해 이 대표님이 어찌 용서할 수 있겠어요? 설령 정군호 씨도 계략에 걸렸을지라도 이 대표님은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조만간 이씨 가문의 상황도 많이 변할 것 같네요.”펑!갑자기 큰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고현은 하던 말을 멈추었다.고현과 하예진은 고개를 돌렸다.고현의 경호원들의 차를 뒤따르던 검은 차가 대형 화물차에 의해 추돌당한 것이었다!화물차의 속도가 매우 빨랐다.그 검은 차는 경호원들의 차에 부딪혀 반대편 도로로 넘어지면서 네 바퀴가 하늘을 향했다.“차 세워!”고현은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운전기사는 급히 속도를 줄여 길가에 차를 세웠다.모든 차량이 길가에 차를 멈추었다.그 화물차도 멈췄다. 화물차 운전기사는 큰 문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