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닦은 하예진은 감정을 추스른 뒤 최대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예상은 하고 있었어. 다만 이렇게 빨리 일어날 줄 몰랐던 거지."주형인은 바람을 피우면서도 아직 그녀에게 숨긴 채 이혼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녀의 예상이 맞다면, 주우빈때문일 것이다. 주우빈은 아직 어려 보살핌이 필요한데 시부모는 딸의 아이를 봐줘야 하니 아이를 돌볼 사람이 필요했다. 주형인은 늘 팔이 안으로 굽어 자기 가족만 챙기는 사람이었다.그는 자신도 아끼는 누나를 부모님이 챙기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이혼을 하게 된다면 주씨 집안에서는 분명 주우빈의 양육권을 가져가려 하겠지만, 주우빈이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 모를까, 주형인은 자신의 부모가 힘들게 아이 둘을 키우는 것을 마음 아파했다.주형인은 아마 아들이 유치원에 다니고 나서야 이혼 이야기를 할 게 뻔했다.지금은 그녀에게 할 수 있는 건 무시와 냉대뿐이었다."언니, 아직 증거가 없으니까 아는 티는 내지 마. 나중에 증거 다 모으고 나면 다시 얘기해. 난 그저 언니한테 미리 마음의 준비하라고 알려주는 것뿐이야. 혹시라도 무슨 짓이라고 벌이면 어떡해."하예정은 언니의 울먹이는 듯한 소리를 들었지만 아는 체하지 않았다. 언니에게도 감정을 쏟아낼 시간이 필요했다.울어서 된다면 그녀는 언니가 속 시원하게 울게 내버려 둘 심산이었다.3년의 결혼 생활로 한 남자의 본모습을 알아내는 건 몹시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녀의 언니는 이제 막 서른이 넘은 젊은 나이였다. 주형인은 이미 불륜을 저질렀으니 그런 남자는 더는 필요 없었다."그래, 예정아. 언니 노력해 볼게. 너도 이제 저녁 먹어, 언니 괜찮아. 언니가 지금 열심히 일자리를 찾고 있는 것도 다 이혼 준비를 위해서였어."갑작스럽게 부모를 잃고 나서 친척들에게 매정한 취급을 받았을 때도 그녀는 무너지지 않고 동생과 함께 힘겹게 지금까지 살아왔다. 남편이 불륜을 저지른 것뿐, 하늘이 무너진 것도 아니니 하예진은 무너지지 않았다."언니도 빨리 자. 나쁜 생각 하지 말
한참을 울던 하예진은 주형인이 돌아온 뒤에야 눈물을 닦고 잠든척했다. 그녀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귀를 쫑긋 세우고 방밖의 기척에 귀를 기울였다.가정 폭력 사건 이후부터 두 사람은 각방을 쓰고 있었다. 아마도 주형인은 잠들었을 때 하예진이 정말로 자신을 토막 낼까 봐 두려웠던 모양이다.방문이 조용히 열렸다. 주형인은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문 밖에 서서 아들과 아내가 잠든 것을 보고 나서야 방문을 닫고 손님방으로 향했다.방문을 닫은 그는 곧바로 서현주에게 전화를 걸었다."주 사장님.""회사 밖인데, 오빠라고 해."주형인은 옆방에 있는 와이프가 들을까 봐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오빠, 집에 잘 들어갔어요? 너무 걱정돼서요. 술을 그렇게 마셔놓고 혼자 운전해서 집에 간다니까 걱정돼 죽는 줄 알았어요. 앞으론 이러면 안 돼요. 음주운전 위험하잖아요. 경찰한테 잡히면 좀 귀찮아요?"서현주는 전화 너머로 주형인을 걱정하며 어르고 달랬다."그래, 네 말대로 할게. 앞으론 음주운전 안 하고 대리 부를게. 현주야, 일찍 자. 굿나잇 인사 하려고 전화했어."주형인의 머릿속엔 지금 온통 서현주뿐이었다. 오늘 밤에도 두 사람은 오랫동안 함께 있다 마지못해 헤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또다시 서현주의 예쁜 얼굴, 섹시한 몸매 그리고 달콤한 목소리도 그리워졌다.그는 서현주의 모든 것이 그리워졌다.술을 많이 마신 탓인지 서현주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주형인은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오빠, 일찍 자요. 내일 아침 또 출근해야 하잖아요. 잘 자요, 꿈속에서 만나요."서현주는 휴대폰에 대고 뽀뽀했다."뽀뽀."주형인은 웃으며 말했다."이건 뽀뽀가 아니야. 내일 다시 해줘. 난 프렌치 키스를 원해. 현주야, 난 네가 너무너무... 알지?""오빠, 잘 자요."서현주는 일부러 그의 말을 못 알아들은 척, 애교 가득한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주형인은 서현주의 말에 더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서현주는 여우처럼 그의 마음을 꽉 잡고 더 깊은 관계로 발전
"술을 많이 마셔서 냄새나. 얼른 가서 샤워나 해."하예진은 이마를 찌푸리며 발로 그를 툭툭 찼다.하예진안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동생은 그녀에게 주형인이 발뺌하는 것을 막기 위해 먼저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몰래 증거를 수집하라고 했다.하예진은 주형인이 아직 자기한테 해코지할 정도로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지금 과학의 발전해 경찰의 수사 속도는 날로 빨라지고 있어, 주형인이 그녀에게 무슨 짓이라도 한다면 언젠가 밝혀지게 될 것이었다.그는 자신의 미래와 목숨을 담보로 기꺼이 그녀의 목숨과 맞바꿀 사람이 아니었다.주형인은 욕설을 퍼부으면서도 샤워하러 향했다.샤워를 마친 그는 다시 아들 곁에 누웠다. 하지만 몇 분 뒤 다시 일어난 주형인은 아들의 발밑에서 위오 올라오더니 하예진의 다리를 더듬기 시작했다. 의도가 다분했다.그는 하예진의 몸매에 정이 뚝 떨어졌지만 서현주는 내내 애만 태우는 데다 지금은 몸이 달아오른 터라 하예진과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두 사람은 합법적인 부부가 아닌가.예전 같았으면 그가 이렇게 만지면 하예진은 얌전히 맞춰주곤 했다.오늘 밤, 하예진은 주형인이 허벅지를 만지자마자 곧바로 발로 차버렸다. 갑작스러운 발길질에 주형인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그러자 주형인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자리에서 일어나 앉은 주형인은 하예진에게 욕설을 퍼부으려고 했지만 곧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슬리퍼를 들며 당장이라도 싸울 기세인 하예진의 모습에 전에 칼을 들고 자신을 쫓아오던 광경이 생각났다.목 끝까지 차올랐던 욕설이 하나도 뱉어지지 않았다."꺼져!"하예진은 슬리퍼를 던지며 낮은 소리로 얘기했다."애 깨우기만 해 봐!"주형인은 얼굴을 붉힌 채 하예진에게 손가락질을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끝내 씩씩대며 방을 나섰다.하예진은 방문을 닫은 뒤 아예 문까지 걸어 잠갔다.한 시간 전의 동생의 전화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정말 주형인과 잠자리를 가질 뻔했다. 뭐가 됐든 두 사람은 아직 부부이
하예진은 장 보러 간 게 아니었다. 낮에는 일자리를 찾고 주로 저녁이나 되어야 장을 봤다. 저녁에 장을 보면 싸서 돈도 절약할 수 있었다. 아직 직장은 구하지 못한 데다 남편도 더는 믿을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궁핍한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이게 다 동생이 당시에 수를 좀 둬 따로 돈을 모으라고 해줬던 덕이었다.사실 결혼 초반에 회사를 그만두고 임신 준비를 생각했었다. 하지만 하예정은 반대하면서 결혼 전이나 결혼 후나 여자들은 자신만의 고정 수입이 있어야 하며 남자를 전적으로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남편이 잘해주고 있었기에 하예진은 괜찮다고 생각을 했었다. 일단 남편이 싫증을 내거나 바람을 피우게 된다면, 직장이 없어 수입이 없는 사람은 열세에 처하기 마련이라 쉽게 우울에 빠졌다.그녀는 어리석게도 주형인과의 사랑이 돈독하니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었다.주형인은 그녀에게 인테리어 비용을 부담하라고 했고 그녀는 두 사람의 보금자리라고 생각하고 또한 아름답게 꾸미기를 원했다. 그래서 주형인의 제안을 수락했고 몇 년 동안 일해서 모은 몇천만 원을 전부 꺼내 집을 꾸몄다. 그는 그녀에게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임신 준비를 하고 돈 걱정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녀는 그의 감언이설을 믿고 상사의 만류에도 회사를 그만두고 가정에 충실했다. 그 결과, 그녀는 무엇을 얻었는가?상처밖에 없었다. 하예진은 유모차를 밀면서 동생의 서점으로 향했다.바로 발렌시아 아파트로 갈 수 있었지만 아침 일찍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걸으면서 지난 일을 생각하면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미 이혼 준비를 하고 있고 마음의 준비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을 과대평가했던 듯싶었다. 그녀는 속이 상했고, 여전히 마음이 아팠다.그도 그럴 것이 12년을 알고 지냈는데 감정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었다.하예진이 유모차에 주우빈을 눕혔을 때도 주우빈은 자고 있었다. 하예진은 주우빈을 안고 나온 뒤 다시 유모차에 눕혀 재운 것이었다.장소가 바뀌었
그녀는 1층 내려오자마자 전태윤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근처 산책하는 척하던 경호원들은 계단을 내려오는 사모님 모습에 본능적으로 등을 돌리고 못 본 척 산책을 계속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호원들은 도련님이 사모님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하예정은 멈춰 서서 몸을 돌려 전태윤을 바라봤다. 전태윤은 차키를 쥐고 하예정을 향해 말했다."그래도 같이 가지."처제는 주형인의 가정폭력에도 용감히 맞서는 사람으로 나약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그런데 남편이 바람 핀 사실을 안 처형이 참을 수 있었을까?어쩌면 부부가 또 한바탕 다퉜을지도 몰랐다. 전태윤은 자신의 아내가 운동을 했기에 주형인이 그녀를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따라가야 했다. 적어도 주형인이나 주씨 집안사람들은 자신을 보고 감히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해야 했다.그는 하예정의 남편으로, 그녀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뒷배였다.그는 하예정이 어떤 난관에 부딪쳤을 때 그에게 잘 보일 기회를 주길 바랐다.전태윤은 손을 뻗어 하예정 손에서 도시락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하예정의 손을 잡고 차로 향했다. "이따가 가게로 데려다줄게."전태윤이 굳이 가겠다고 하니 하예정은 더는 거절하지 않았다. 하예정은 언니 집에 도착하고 나면 언니네 집에서 국수 한 그릇이라도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어찌 되었건 빈속에 출근하게 둘 수는 없었다."어젯밤, 언니와 통화하는 거 들었어."전태윤은 미리 소정남을 시켜 주형인이 바람피웠다는 증거를 조사하게 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더욱이 경호원을 통해 호텔에서 우연히 주형인과 그의 애인과 마주쳤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당시 두 사람은 냉전 중이었다.하예정은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진우가 어제 관성 호텔에서 재계 모임에 참가했는데 형부가 젊고 예쁜 여자와 다정하게 있는 것을 봤대요. 아마 형부의 애인이겠죠. 주형인 그 나쁜 놈이 이제는 바람까지!""언니한테 숨기지 않고 바로 말해줬어요. 이런 일은 숨겨서는 안 돼요. 주형인은 물론 주씨 집안
하예정은 언니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잠깐 생각한 후에 그냥 대답했다.”네.”가는 길 내내 두 부부 사이엔 다른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전태윤은 원래 수다를 떠는 성격이 아니었고 하예정도 언니 일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라 새로운 화제를 찾아 대화를 이어 나갈 기분이 아니었다. 게다가 진태윤이 배경 음악도 틀지 않았으니 차 안엔 정적만이 흘렀다.하예정은 고개를 살짝 돌려 창밖 거리의 풍경을 내다보았다.광명 아파트에 거의 도착할 때쯤 하예정이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가 전화를 받자 그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언니, 일어났어? 우빈이도 일어났지? 내가 전복죽 좀 많이 썼는데 언니랑 우빈이도 좀 주려고 가져왔어.“하예진이 멈춰 서서 유모차에 탄 아들을 보면서 말했다.“우빈이 아직 자는 중이야. 예정아, 언니 지금 밖이야. 우빈이를 데리고 산책하러 나왔어. 지금 거의 너희 서점 근처까지 왔으니까 거기로 갈게. 집 말고 거기서 보자.”“그래? 지금 어디야? 위치 공유해 줘. 지금 거기로 데리러 갈게. 같이 서점으로 가자.““그래.“많이 걸어서 그런지 예진이도 힘들었다.원래 살이 쪄서 뚱뚱한데 먼 거리를 걸어오니 더더욱 힘들었다.하예진는 곧바로 동생에게 위치를 공유해 줬다.언니의 위치가 확인이 되자 하예정이 전태윤에게 말했다.“태윤 씨, 언니가 집에 안 계시대요. 지금 내 가게로 오고 있는 길이라니까 이곳으로 먼저 가주세요. 언니랑 우빈이를 데리고 다시 가게로 가는 게 좋겠어요.”“알았어.”하예정이 위치 정보를 보여주자 전태윤은 앞길 목에서 U턴해서 다른 길로 들어섰다.하예진은 본인이 많이 걸어온 만큼 전태윤이 운전하고 오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10분도 되지 않아 하예진이 기다리고 있던 자리까지 차가 도착했다.하예진은 유모차를 민 채로 길가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언니.”차가 멈추자마자 하예정이 차에서 내려 언니에게로 다가갔다.“이모.”주우빈은 금방 잠에서 깼는지 비몽
'언니가 이혼하고 우빈이의 양육권을 빼앗기면 어떡하지?'주씨 집안사람들이 하씨 집안 친척만큼이나 성격이 "일품"이라 우빈이를 주씨 집안에 맡겼다가는 아이가 앞으로 어떤 나날을 보내게 될지 상상하기조차 두려웠다.주우빈은 태어나서부터 두 자매가 키웠으니 하예정한테 주우빈은 조카라기 보다는 아들 같은 존재라서 지금 이 상황이 그녀에겐 뼈를 깎는 고통이었다.조카인 주우빈을 주씨 집안에 뺏길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텅 빈 것처럼 공허해졌다.“언니,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빈이의 양육권을 우리가 가져야 해.”하예진이 조용히 말했다.“그 집에 우빈이를 남겨두면 우빈이가 잘 지내지도 못할 거야. 구박을 당할지도 몰라.”예진이는 입술을 꼭 깨물면서 조용히 말했다.“내 모든 걸 걸어서라도 우리 우빈이 양육권 가져올 거야.”전태윤이 운전하면서 말했다.”처형이 일자리를 구한 뒤 이혼소송을 걸어 양육권을 얻어야 해요. 안 그러면 양육권을 빼앗기기 쉽죠.”아이를 하예진이 키우고 있고 아이가 엄마를 더 잘 따른다고 해도 수입이 없으니 주형인이 주동적으로 우빈이의 양육권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양육권 쟁탈에 있어서는 하예진이 불리해질 수밖에 없었다.“나도 이제 열심히 일자리 찾을 거야. 우빈이를 위해서라면 일반직이라도 괜찮아.”지금 상황에 회계 팀장은커녕 다른 직무도 구하기 쉽지 않았다. 뚱뚱한 체형 때문에 다들 좋은 이미지로 봐주지 않는 것 같았다.원래는 일자리를 천천히 찾아볼 계획이었지만 주형인이 외도를 저지른 사실을 안 후 한가하게 이것저것 고를 때가 아니었다. 일단 아무 일자리라도 하나 찾는 것이 시급했다.“네.”전태윤이 말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에 도착했다.전태윤은 가게로 들어가지 않았다.“태윤 씨, 이거 받으세요.”하예정이 도시락 두 개에서 하나를 전태윤에게 건네면서 말했다.”아침 아직이잖아요. 이거라도 회사에 가져가서 드세요. 굶으면 안 되죠, 위에 안 좋아요. 방금 가게에서 다시 데웠어요.”전태윤은 그윽한 눈빛으로 하예정을 한참이나 바
"우빈이가 남긴 죽을 내가 먹었어."하예정은 입맛이 없었다.우빈이가 도시락에 들어있는 죽을 다 먹지 않자, 하예정이 먹어버렸다. 하예정은 배가 고프지 않았고 배가 부르지도 않았다. 더 먹을 생각이 없었다. 심효진은 아침을 먹고 왔다.하예정은 사양하지 않고 독식했다.하예정은 국수를 빠르게 먹었다. 국수 한 그릇을 빠르게 먹어버렸다.하예정이 설거지하려고 주방에 들어가자, 심효진이 그이를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물어봤다."예정아, 언니 눈 상태를 봤어? 부은 것 같은데, 혹시 운 것은 아니야?"하예정이 말을 하지 않고 설거지했다.한참 후에야 하예정이 속삭였다. "진우가 그러는데, 어제저녁에 재계 모임에 나갔다고 형부가 한 여자를 데리고 참석한 것을 봤대. 둘이 사이가 아주 좋아 보이던데,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고 해도 믿을 사람이 없을 거야. 진우가 집에 들어가서 생각이 나서 나에게 말했어. 나도 언니한테 말해줬어.""뭐?"심효진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네 형부가 바람났어! 더치페이하자고 하고 예진 언니한테 폭행한 이유가 바람나서 그런 거야."과연 남자는 마음이 바뀌면 증조가 나타났다."그 바람둥이 자식 정말 쓰레기네!"하예정이 대답하지 않고 설거지를 끝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하예진이 우빈이를 껴안고 멍하니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하예정은 마음이 아팠다. 언니가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나려고 했다."예정아."심효진이 하예정의 어깨를 두드리며 속삭였다."아직 슬퍼할 때가 아니야."하예정이 입술을 깨물면서 흘리는 눈물을 멈췄다. 그리고 우빈이 곁으로 다가갔다."언니."하예진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언니."하예정이 다시 한번 말했다.그제야 하예진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리면서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하예정에게 응했다."언니, 우빈이를 효진이한테 맡껴."심효진이 눈치 빠르게 다가가 우빈이를 껴안으면서 우빈이를 달랬다. "우빈아, 우리 장난감을 사러 갈까?""좋아요."심효진이
전현민도 벙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경사야. 우리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진아, 이미 이르지 않으니 어서 운초랑 들어가 절차부터 밟아. 직원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부모님의 재촉을 받은 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어머니 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서 구청 안으로 걸어갔다.명해은 부부는 돌아가지 않고 밖에 서서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전현민은 아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이러고 있으니 32년 전에 우리 둘이 이곳에 와서 결혼 증명서를 받던 날이 생각나네. 마치 어제 발생한 일과 같은데, 벌써 우리 큰아들이 이곳에 오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빨라. 우리도 늙을 때가 되긴 됐나 보네.”그는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난 당신과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했었지.”명해은도 감격해서 말했다.“그러게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난 아직도 자신이 18살인가 하는데 우리 큰아들이 벌써 서른이네요. 우린 정말 늙었나 봐요.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네요.”“당신은 조금도 안 늙었어. 내 눈에는 당신이 관음보살과 같이 해마다 18살이야.”명해은은 몸 관리를 잘해서 전이진과 함께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남매로 착각할 정도였다.전현민도 몸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젊은 시절에 전씨 가문의 사업에 몰두했기에 심신이 많이 상해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졌다.은퇴한 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염색은 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서면 아내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사실, 두 내외는 불과 한 살 차였다. 명해은은 남편의 칭찬에 웃음보를 터뜨렸다.“나도 해마다 18살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네요. 내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 해도 늙기 마련인걸요.”“내가 당신과 함께 늙어 갈 테니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보다 훨씬 늙어 보여.”명해은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두려울 것 없어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하늘이 무너
여운초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그녀는 다만 전이진을 대신하여 은행카드만 보관할 뿐일 것이었다. 그가 돈 쓰는 것을 제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녀도 그의 돈을 쓸 일이 없을 테였다.전이진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고 나서 다시 그녀를 보면서 벙글벙글 웃었다.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기만 했다.“왜 계속 날 보면서 웃어요?”“좋으니까. 운초 씨, 나 지금 너무 좋아. 그냥 웃고 싶은 걸 어떻게 참아?”이렇게 대답하면서도 그는 또 웃었다.그러는 전이진을 지켜보는 여운초도 참지 못해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둘이서 한참 동안 알콩달콩한 후 전이진이 시계를 보니 어머니가 도착할 시간이 다 되었다. 그는 약혼녀를 보면서 말했다.“운초 씨, 엄마가 곧 도착할 것 같으니 우리 지금 출발해. 우리가 구청에 도착하면 아마 엄마도 도착하실 거야.”그는 꽃집에 가서 장미꽃 한 다발을 사야 했다.여운초가 불시에 결혼 신고하자는 바람에 그가 아직 준비는 못 했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서둘러야 했다.꽃다발, 다이아몬드 반지 둘 중 하나도 빠뜨리지 않을 것이었다.그녀는 자신이 한평생 소중히 여길 여자임으로 절대로 서운하게 할 수 없었다.“그래요.”그가 일어나면서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자, 여운초도 편안하게 자신의 손을 그의 커다란 손바닥에 올려놓은 채 그에게 이끌려 일어섰다.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자고로‘그대의 손만 잡고 이생의 끝까지 살아간다.’라고 했다.그녀는 전이진과 백년해로하고 평생 금실이 좋기를 원했다. 시부모님처럼 애들이 부러울 정도로 몇십 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첫 사람처럼 달콤하게 지내길 원했다.여운초는 저의 집에 있는 차를 안 타고 전이진이 운전하는 차를 타기로 했다.그녀에게는 운전면허증이 없었다. 그녀가 16살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기에 운전면허를 딸수 없었던 것이었다.집에 있는 운전기사는 전이진이 그녀에게 보낸 경호원인데 그녀를 보호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운전도 해줄 수 있었다.20분 뒤.구청 입구명해
“운초씨, 잠깐만 기다려. 내가 엄마한테 당장 전화할게.”전이진은 약혼녀의 볼에 입을 맞춘 후, 바로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명해은은 전화벨이 한참 울린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엄마, 오늘 시간 돼요?”“이제 방금 일어났어. 오늘은 별일 없어서 시간이 남아돌아. 왜? 아들, 엄마 도움이 필요해?”명해은이 잠기가 채 가셔지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아들이 다 크니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점점 적어졌다.애들한테 더는 필요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명해은은 너무 일찍 맛봤다.“저와 운초 씨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를 마치려 하는데 제가 가족관계등록부를 안 가져왔어요. 엄마 혹은 아버지가 지금 저한테 가져다줄 수 있어요? 혹은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보내줘도 되고요. 제가 돌아가서 가져오면 시간이 지체되어 아마도 오후나 돼야 절차를 밟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오후까지 못 기다리겠어요.”가족관계등록부만 손에 가지고 있다면, 전이진은 지금이라도 여운초를 데리고 혼인 신고하러 갔을 테였다.진정으로 여운초가 좋아진 그 시각부터 그는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했다.하지만 그때의 여운초는 앞을 보지 못했기에 훌륭한 전이진을 앞두고 자비감에 모대기었다. 전이진의 사랑마저 그녀는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받아들인 것이었다.그녀는 전이진이 자신의 눈을 고쳐주기 위해 정 선생을 찾으러 여러 번 예진 리조트를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남은 인생을 그와 함께하기로 하고 약혼을 한 것이었다.그래도 그녀는 진정으로 그를 볼 수 있을 때 가서 결혼하기를 원했다.그녀는 자기와 결혼할 남자가 어떻게 생겼는가를 알고 싶다고 했다.전이진이 곧 시어머니로 될 사람에게 하는 말을 들은 여운초의 얼굴은 또다시 붉게 물들었다.‘이 사람 뭐가 그리 급해...’이 반가운 소식을 들은 명해은은 순식간에 잠기가 싹 사라진 듯했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시간이 있고말고, 엄마 시간은 남아돌고 있으니 금방 가져다줄게. 넌 지금 여씨 저택에 있니? 아니면 회사에 있니?” “저는 지금
그는 자신의 사람 보는 안목을 믿을 뿐만 아니라, 할머니도 믿었다. 그는 그녀와 긴 시간을 함께하면서 그녀의 인품, 일하는 스타일 등을 천천히 알게 되었다.“혼인신고를 하고 나면 한평생 같이 살아야 해요. 나는 이혼 따위는 할 마음이 없으니 잘 생각해서 결정해요. 당신처럼 훌륭한 남자는 앞으로도 나보다 더 좋고, 당신한테 더 잘 어울리는 여자를 만날 수도 있어요. 그때 가서 이 결혼은 할머니가 강요하셔서 한 거라고 하면서 그 여자야말로 당신의 진정한 사랑이니 어쩌니 해도 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전이진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그녀의 코끝을 살짝 건드리면서 말했다.“넌 아직도 바깥사람들이 우리 전씨 집안 남자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몰라? 전씨 집안 남자들은 모두 아내한테 일편단심이야. 전씨 집안의 가훈에는 결혼 후 한평생 가정에 충실해야 하고 혼인에 충실해야 하며 바람을 피워선 안 되고 이혼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되어 있어.”“누구든 가훈을 어기는 즉시, 전씨 가문에서 쫓겨나서 더는 전씨 일가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돼버려.”“그리고 내가 당신과 결혼하는 것은 할머니가 당신을 선택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다면 할머니가 강요하셔도 소용없어.”전이진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전화를 걸었다.“누구한테 전화하려고요?”여운초는 그가 할머니에게 전화 드리려나 싶어서 한마디 물었다.“내가 가족관계등록부를 몸에 지니고 다니진 않아. 우리가 혼인신고를 하려면 내 가족관계등록부도 필요할 거 아니야. 내가 엄마한테 전화해서 급히 가져다 달라 하면 우리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 절차를 다 끝낼 수 있을 거 같아.”결혼 증명서를 받고 나면 그들은 합법적인 부부가 될 것이었다.전이진은 여태 자기가 한시 급히 여운초랑 결혼하여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어 한다는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애초에 여운초는 시력이 회복되어 그를 볼 수 있어야만 결혼할 수 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는 이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왔다. 끝내 그녀의 눈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또 법을 어기는 일까지 했다.비록 모든 불법적인 장사는 이미 압류당했고 관련된 금액도 그다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이로 인해 여씨 그룹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어 주가가 폭락하고 매출액이 바닥을 쳤으며 여씨 그룹의 재산도 많이 수축했다.큰누나가 여씨 그룹을 이어받은 후, 한동호 형님과 힘을 합쳐 천신만고 끝에 여씨 그룹을 이끌고 이 힘든 고비를 넘긴 셈이었다.이런 얘기를 큰누나는 그한테 한 적 없었지만, 그는 한동호 형님과 매형을 통해서 알게되었다.비로소 그는 큰누나의 홀가분해 보이는 말투 속에 얼마나 많은 쓰라림이 숨겨져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비록 큰누나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감방으로 보내긴 했지만, 그것은 그의 부모님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비록 큰누나의 대의멸친을 받아들이긴 힘들었지만, 이해만은 할 수 있었다.현재 여씨 그룹은 큰누나가 통제하고 있지만, 큰누나가 그에게 한 말이 있었다. 자기가 가져야 할 재산은 한 푼도 양보하지 않지만, 자기가 가지지 말아야 할 재산은 한 푼도 탐하지 않는다고. 그가 물려받아야 할 재산은 언젠가는 돌려줄 것이었다.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그와 둘째 누나 단둘의 소송일 것이었다.큰누나는 단지 여천우 부모님에게 속하는 재산만 그에게 돌려줄 것이었다. 그의 부모님에게 자식이라곤 그와 둘째 누나밖에 없으니 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상대는 그일 수밖에 없었다.“누나, 나 먼저 수업 들으러 들게. 수업이 끝나는 대로 휴가 내서 돌아갈 테니 그때 천천히 얘기해.”“알았어, 얼른 가서 수업 봐.”동생과의 통화를 마친 여운초는 동생의 말대로 그의 부모님의 물건들을 그의 방으로 옮겨 놓았다.여운별 방의 물건은 여운초가 기분을 봐서 언제든 연락하여 가져가라고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앞으로 그와 여운별은 남남일 것이었다.“아가씨, 진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 오셨습니다.”여운초는 알았다고 하면서 핸드폰을 손에
“어쨌든 우리 여씨 가문의 재산은 운별 누나가 망치게 해서는 안 돼요. 그리고 우리 두 큰고모도 틀림없이 운별 누나를 달래서 모든 재산을 빼앗으려 할거에요. 운별 누나는 사람 말을 너무 잘 믿어서 조금만 달래면 뭐든지 나누어 줄 거에요.”여천우가 이렇게 한 이유는 단지 여씨 가문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일 뿐이다.추미자 부부가 그들의 명의로 된 재산을 여천우에게 물려주게 하고 또 여천우는 그 재산들을 모두 여운초에 돌려줄 셈이다. 여천우는 여운초의 사람 됨됨이를 믿었다.여천우는 여운초가 그녀의 재산이 아니면 탐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지금의 여운초도 그의 재산을 탐낼 필요가 없었다. 약혼자 전이진의 집에 재산이 엄청 많아서 전씨 가문의 둘째 사모님인 여운초는 여천우의 그깟 재산을 손에 넣지 않을 것이다.“누나, 우리 부모님 명의로 된 합법적 재산이 얼마나 남았어?”여천우는 부모님이 이전에 하신 부분적인 사업들이 법에 어긋난 사업들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불법적인 사업들은 이미 차압되었고 따라서 그 수입도 이미 몰수되었다. 그가 물려받을 수 있는 것은 단지 부모님의 합법적인 소득뿐이었다.여운초가 대답했다.“불법적인 사업과 모든 수익은 차압되거나 몰수됐어. 여씨 가문 기업은 법에 어긋난 사업을 하지 않았어. 다행히 네 아버지께서 여씨 그룹을 불법적인 사업에 손을 대지 않게 했지. 지금 여씨 그룹이 하는 사업은 모두 합법적인 사업이야.”“여씨 그룹의 주식은 우리 아버지가 대부분을 차지하셨어.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우리 아버지께 대부분 주식을 나눠주셨지. 게다가 아버지 본인도 주식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아버지는 주식의 절반을 차지하고 계셨거든. 그리고 나머지는 너의 아버지와 다른 소액주주들의 것으로 되었지. 현재 여씨 가문 주식 가격에 네 부모님 명의로 된 부동산 몇 채를 합치면 마침 200억 원 조금 넘을 거야.”여천우 친아버지 여태웅은 20여 년 전 추미자와 함께 친동생을 살해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 범죄 때문에 중형
틀림없이 누군가가 여운초를 건드려 자극했을 것이다.여운초는 오랜 한을 억누르고 있었는데 누군가에 의해 폭발한 게 틀림없었다. 하여 추미자 부부의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을 비우려고 했을 것이다.또 하나, 여운초는 추미자 부부방의 비밀번호를 몰랐다. 심지어 여천우조차도 몰랐다.추미자는 여천우가 여운초의 편을 든다고 많은 일을 여천우에게 알려주지 않았다.여운초도 사실대로 여운별이 일찍 감옥에서 나와 오늘 아침에 여씨 가문의 별장에 쳐들어온 사실을 여천우에게 알려주었다.여천우가 그 사실을 듣더니 한숨을 쉬었다. 알고 보니 사고뭉치였던 여운별이 나와서 사고를 친 것이다.여씨 가문은 또 시끄러워질 것이 뻔했다.여천우는 여운초에 말했다.“우리 부모님 방에 있던 물건들을 전부 내 방에 가져다줘. 그리고 운별 누나 물건은 운별 누나가 가져가게 해. 그리고 운별 누나 방도 깨끗이 치워.”여천우는 그 별장이 여운초의 별장이었기에 여운초가 여운별이 그 별장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으면 여운초를 존중해 주고 싶었다.여천우는 여운별이 예전에 어떻게 여운초를 괴롭혔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여운별을 도와 여운초에게 사정하지 못했다.여운별이 감옥 안에서 일찍 나온 것도 아마 감옥에서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의 실제 성격을 잘 감추고 있었을 것이다.“그리고 누나, 운별 누나가 소송을 걸어 재산을 나누려고 하면 나에게 알려줘. 재산을 너무 많이 주면 다 써버릴 거야. 아무리 많은 재산일지라도 운별 누나는 분명 다 탕진 할걸. 아무것도 모르면서 성질만 부리면서 돈만 쓰잖아.”여천우는 여씨 그룹을 여운초에게 맡기면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말이지 밤새 뛰어와서 여운별을 막고 싶었다.여천우는 두 누나의 인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여운별은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응석받이로 키웠기에 패가망신할 사람이었다.“절대로 운별 누나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면 안 돼. 내가 지금 휴가를 내고 돌아갈게. 감옥으로 가서 우리 부모님을 만나 그들의 명의 아래에 있는 재산을
여미란은 추미자가 살아서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여미란은 마음속 깊이 추미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여씨 가문의 사모님 추미자는 먼저 여미란의 남동생에게 시집간 뒤로 그 남동생을 죽이고 또 여미란의 오빠에게 시집갔지만 지금 그 오빠마저도 감옥으로 들어갔다.여미란의 동생이 죽었다고 해도 그녀의 오빠와 관계가 없을 수 없었다. 물론 그 화근은 역시 추미자였다.여미란의 오빠가 추미자와 정정당당하게 함께 있기 위해 동생을 죽인 것이다.여운초에게 복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여운초는 지금 전씨 가문의 둘째 사모님이었고 전씨 가문이 그녀의 배후에 서 있었기에 여미란 일행은 감히 여운초를 찾아 복수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여미란은 마음속으로 여운초를 수천 번, 수만 번 욕하면서 자신을 달래곤 했다.여운초는 여운별이 여씨 가문을 떠나 어디로 갈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최씨 집안과 김씨 집안이 여운별의 피를 빨아들이도록 내버려 두기로 했다.예전에 여미란 자매의 집에 재산이 많았지만 늘 친정집에서 이득을 보려고 애썼다.이제 최씨와 김씨 집안은 부귀한 생활에 익숙해져 꿈에서라도 부자들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 하던 찰나에 여운별이 스스로 찾아와 도움을 청하게 되었기에 그녀의 피를 빨아먹을 수 있는 희망이 생겼다.그때가 되면 여운별은 그녀의 손에 쥐어진 적디적은 재산을 가지고 두 집안에 의해 피를 빨리게 될 것이 뻔했기에 여운초는 곁에서 재미있는 광경을 지켜만 보면 되었다.여운초가 여천우와 말했듯이 여운초는 자신의 재산을 일전 한 푼도 그들에게 주지 않을 것이지만 자신의 재산이 아닌 것은 전부 그들에게 돌려줄 것이다.추미자는 예전에 화려하고 웅장하게 꾸며진 큰 방에서 살았지만 정작 별장 주인인 자신이 가정부와 함께 방을 쓰게 된 기억을 떠올린 여운초는 집사에게 지시했다.“이 방을 깨끗이 청소하세요. 이 방을 다시 새로 꾸밀 거예요.”이 큰 방이 바로 주인의 방이다.여운초는 먼저 금고를 그녀가 지금 사는 방으로 옮기라
정현숙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자 여운별은 자신의 큰고모 여미란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미란이 전화를 받지 여운별이 입을 열었다.“큰고모, 제 물건을 돌려받았어요. 제가 지금 돈이 있으니 고모께서 저에게 아파트 한 채를 찾아 세 들어주시면 좋겠어요. 제가 그곳에 잠시 머물다가 운초에게 소송을 걸어 재산을 많이 분배받으면 그때 큰 별장을 구매할 거예요.”여운별이 그녀의 물건을 가져갔다는 말에 여미란은 바로 물었다.“들어갔어? 들어갔으면 왜 그 집에서 살지 않고. 별장에 살면 얼마나 좋아. 세 들어 살면 돈도 따로 나가야 하는데.”여운별은 한참을 말이 없다가 그제야 말을 이었다.“우리 일단 만나요. 생각처럼 쉽지 않더군요. 제가 지금 차에 기름 넣으러 가야 해요. 그리고 고모 찾으러 갈게요. 둘째 고모와 사촌 오빠들에게 점심에 제가 밥을 사드린다고 전해주세요. 요 이틀 동안 사촌 오빠들 덕분에 잘 지낼 수 있었어요. 제가 성격이 나쁘고 제멋대로지만 배은망덕한 사람은 아니에요. 저는 저에게 잘해주신 사람들을 모두 마음에 담아두거든요.”“지금 제가 좀 초라하긴 하지만 제가 우리 재산을 되찾으면 절대로 고모들께 푸대접하지 않을 거예요. 제가 반드시 고모들을 도와 지난날처럼 부자 생활을 할 수 있게끔 도울 거에요.”그림의 떡은 누구나 다 그릴 수 있었다.여운별도 그림의 떡으로 두 고모를 달래려고 했다.그리고 그녀가 정말 소송에서 이겨 자신의 재산을 가질 수만 있다면 적어도 수백억의 재산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기에 두 고모의 집안에 돈을 조금 주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 사촌 오빠들을 도와 일자리를 하나 더 마련해주겠다고 생각했다.여운별은 회사에 관한 일을 잘 몰랐기 때문에 여씨 그룹으로 돌아가면 지인에게 회사 일을 도와달라고 해야 했다.두 고모 댁의 사촌 남매는 항상 그녀에게 잘 대해주었다. 심지어 사촌 남매들이 그녀에게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그녀에게 잘해줄지라도 여씨 그룹을 그들에게 맡기고 싶었다. 누가 뭐라 해도 사촌 형제들은 여씨 그룹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