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정은 우빈의 뒤를 따라서 집을 나오더니 조카의 뒷모습을 보면서 소리쳤다.“우빈아, 그렇게 빨리 뛰지 마! 넘어져!”“안 넘어지니까 걱정하지 마세요.”우빈은 장난감 가득 들어있는 큰 가방을 들고 한 무리의 아이들을 따라 뛰어갔다.우빈의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하예정은 자신을 따라 나온 전태윤에게 말을 건넸다.“이 녀석, 워낙 성격이 좋아서 아무하고 잘 놀아요.”그러자 전태윤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그러면 좋은 거지. 만약 우빈이가 누구와도 놀지 못하고 온종일 어른들에게만 달라붙는다면 모두 두통이 발작할지도 몰라. 사람 노릇을 하는 것은 참 어려워. 애들도 얼마나 어렵겠어. 활발하면 장난꾸러기 소리를 듣고 조용하면 무뚝뚝하다고 평가받잖아. 애들이 뭘 해도 어른들에게 꾸지람듣고 있어.”흠... 사람 노릇을 하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듯했다.“좀 더 쉴래요?”하예정이 물었다.전태윤은 아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면서 웃었다.“내가 잠꾸러기도 아니고. 오전 내내 잤는데 더 자면 밤에 잠이 안 올 거야.”“넌 휴식하고 싶어?”하예정이 대답했다.“네. 조금 있다가 다시 자려고요. 지금 너무 배불러서 바로 자면 불편할 것 같아요.”“마침 잘됐네. 그럼 나랑 산책도 할 겸 소화도 좀 시키자. 그러다가 돌아와서 쉬면 되겠네.”하예정도 동의했다.그녀는 먼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찾아 걸어갔다. 한 무리의 아이들은 모두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고 우빈은 가지고 나온 장난감 한 가방을 구석에 둔 채 정신없이 친구들이랑 놀았다.전태윤 부부는 가까이 가지 않았다.아이들의 노는 것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두 사람이 가까이 간다면 노동자들의 아이들은 마음껏 놀지 못할 것이다.“정자 밑에 가서 앉아 바람 좀 쐬자. 오늘 날씨도 참 상쾌하네. 태양도 나오지 않았지만 어두운 편도 아니고. 바람도 불고 정말 편안하고 시원한 날씨야.”전태윤은 사랑하는 아내를 이끌고 근처 정자에 가서 앉았다.잠시 앉아 있던 하예정은 핸드폰을 꺼내 모멘트를 뚜졌고 뉴스 실시간
도차연의 능력이 나쁜 편은 아니었다. 적어도 도기범이 두각을 뚜렷하게 나타내기 전까지 도씨 가문과 그룹의 사람들은 도차연이 도씨 그룹의 후계자로 될 것이라고 여기고 있을 것이다.“전태윤 씨, 이 뉴스 좀 봐요.”하예정은 휴대전화를 남편에게 건네주었다.전태윤이 아내를 나무랐다.“여보라고 불러줘. 네가 전태윤 씨라고 부를 때마다 내가 긴장돼. 또 잘못해서 너에게 꾸지람 듣는 것 같단 말이야.”전태윤은 말하면서 아내의 손에서 휴대전화를 건네받으면서 물었다.“무슨 뉴스야?”그는 휴대전화를 한 번 보더니 아내에게 돌려주며 얼굴빛이 약간 굳어지며 말을 건넸다.“이 여자 뉴스가 뭐가 재미있다고. 이 여자를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여자 아버지뿐이야.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이 여자 아버지가 잘 관리할 거야.”만약 도윤표가 그의 딸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정말 전태윤이 어쩔 수 없이 손을 쓰게 된다면 도씨 그룹은 분명 큰 타격 입을 것이 틀림없다.감히 그와 하예정의 결혼을 깨뜨리게 될 사람이 나타난다면 전태윤은 분명 마음을 독하게 먹을 것이다.그리고 전태윤과 같은 별장에 사는 낯선 여자도 그는 안면이 없었기에 이름조차 기억나지는 않았다.전태윤은 그 여자가 언제 전태윤을 만나 그에게 빠졌는지도 모른다.때때로 전태윤은 자신이 너무 억울하다고 생각했다.그는 여태껏 적극적으로 그 여자들을 건드린 적이 없는데 그녀들은 그를 스스로 좋아했다. 그와 뭔 상관이랴!다른 사람의 마음을 통제할 수도 없는데.전태윤은 자신의 마음을 잘 통제할 수 있었다. 그의 마음은 하예정에게 빼앗겼다.전태윤은 평생 하예정의 남자로 살고 싶었다. 다른 여자를 더는 마음에 담을 공간이 없었기에 그녀들이 아무리 많은 것을 희생해도 헛수고일 뿐이다.“도기범 씨가 도 대표님 조카예요?”“맞아. 도 대표님 큰 형의 아들이자 도 대표님 가장 큰 조카야. 도기범은 사업 수단도 있고 눈에 독기가 있어. 능력도 도차연처럼 강해. 도씨 그룹에서도 도 대표님 오른팔이야.”“도차연 씨가 입사하기 전
전태윤은 웃으며 대답했다.“걱정하지 마. 당신 남편은 절대로 살인 방화 등 법을 어기는 행위는 하지 않을 테니까. 우리 전씨 가문이 하는 사업도 합법적이고 정당한 사업이야. 나의 적이라 할지라도 나는 단지 사업적인 경쟁을 통해 상대방을 천천히 패배시킬 거야.”“그러나 만약 상대방이 대단한 실력을 갖춘 자라면 내가 몇 년을 싸워도 그들을 쓰러뜨릴 수 없을 거야. 우리 그룹과 당신 사촌 오빠네 그룹도 예전에 서로 적대적 관계로 몇 년 동안 싸웠지만 난 여전히 성씨 그룹을 이기지 못했어. 하지만 성씨 그룹도 우리 전씨 그룹을 먹어치우지도 못했지.”“일 분 만에 상대방을 파산시킬 수 있는 재주는 난 아직 키우지 못했어.”전태윤은 자신이 소설 속 남자 주인공처럼 상대방을 일 분 만에 파산시킬 만큼 대단하지 않다고 인정했다. 그는 적수를 무너뜨리는 데는 과정이 필요했다.“당신이 나섰으니 난 상관하지 않을 거야. 난 지금 그런 일에 신경 쓸 만큼 여유가 없어. 어쨌든 난 당신을 믿으니까!”하예정은 머리를 전태윤의 어깨에 기대었고 2분도 채 안 되어 다시 똑바로 앉아 도차연의 뉴스를 보았다.“지난번에 태윤 씨가 도 대표님께 고자질한 뒤로 도 대표님도 외국에서 돌아왔을 거예요. 이치대로라면 도차연 씨도 마음을 거두어들여야 하고 아버지에게 잘못을 인정해야 하는데. 어쨌든 도 대표님도 단 한 명의 딸밖에 없는데 부녀 사이에 지금 이 지경까지 이를 리가 없어요. 혹시 또 다른 일이 발생한 거예요? 태윤 씨가 저한테 숨기는 거 있어요?”전태윤이 대답했다.“아무것도 아니야. 단지 도차연 씨가 찾던 그 대역 남자가 도씨 가문의 재산을 탐냈을 뿐이야. 그 대역 남자가 어렵게 부잣집과 접촉할 기회를 잡았기에 도씨 가문에서 내쫓기 어려웠을 거야. 도차연 씨는 그로 인해 도 대표님과 다툼을 벌인 거고.”“부녀 사이가 갈등은 생긴 데다 도기범 씨가 뒤에서 몰래 부추겨 부녀 사이의 균열이 점점 커진 거지. 도차연 씨와 도차연 씨의 어머니도 도 대표님을 많이 원망했던 모양이야. 도
전호영은 그 꽃다발을 그녀에게 건네주며 히죽히죽 웃었다.“우리 할머니께서 제가 말재주가 좋지만, 고현 씨는 말수가 적어서 우리를 짝지어주셨어요. 그러면 고현 씨도 외롭지 않을 테니까요. 우리는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고 있잖아요. 만약 우리 두 사람 모두 말수가 적으면 집에는 아무런 생기가 없을걸요.”“저도 아무 말도 안 했잖아요. 그냥 우리 큰형과 형수님의 금슬이 부러울 뿐이에요. 우리 형수님 입은 치마가 참 이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한번 입어보시겠어요? 제가 또 고현 씨한테 새 치마를 여러 벌 더 샀는데 고현 씨한테 분명 잘 어울릴 거에요.”고현은 치마를 입어서 그에게 보여주며 그에게만 입어 보이겠다고 말했다.그는 만족해야 했다.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탐욕스러울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그는 고현의 여성 차림을 한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너무 아름다웠다.전호영은 매일 그녀가 여성 옷을 입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그래서 별장에서 나온 전호영은 고현의 곁을 따라다니며 여성 옷의 아름다움에 관해 이야기했다. 여성 옷이 남성 옷보다 더 다양하다고 말하면서 고현의 몸매가 좋다고, 고현이 여성 옷으로 갈아입은 것은 그야말로 여신이 인간 세상에 내려온 것과 다름없다고 칭찬했다.전호영은 고현이 여성 옷차림할 때 그 도도한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그의 두 형수도 모두 아름답지만, 그래도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역시 그의 고현이라고 생각했다.“저는 더는 여성 옷을 안 입는다고 말씀드렸어요. 저번에 보여줬던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에요. 욕심부리지 마세요!”고현은 이를 악물며 아주 작게 말했다. 전호영이 욕심이 너무 많다고 여겼다. 며칠 동안 조용히 있더니 또다시 그녀에게 여성 옷차림으로 돌아가라고 조르기 시작했다.그녀가 여성 옷으로 갈아입지 않으면 그녀를 안 좋아하는 건가?그녀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결과일 것이다.귓가가 조용하니 얼마나 좋은 생활인가!맨날 잔소리만 하는 모습이 마치 아줌마 같았다.전호영은 말주변이 좋고 입만 번지르르하다.전호영과
고현은 전호영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저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요. 저에게 선물을 주지 않아도 돼요.”그가 준 선물은 모두 여자들이나 좋아할 만한 물건들이었다.고현은 여자였지만 여성 물건들을 좋아하지 않았다.“그럼 저에게 선물 주세요. 현이 씨, 제가 현이 씨한테서 단 한 번도 선물을 못 받아봤어요.”전호영은 고현을 쫓아다니며 말했다.“고현 씨가 저에게 주는 선물이라면 저는 뭐든지 다 좋아요.”고현은 상대하기 귀찮았다.정자 안의 전태윤 부부는 전호영 커플을 바라보았고 하예정이 이내 말을 꺼냈다.“두 사람 꽤 말이 잘 통하나 봐요.”“호영이는 말이 많고 고 대표님은 말수가 적어. 두 사람 함께 한다면 서로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어서 좋아.”전씨 할머니는 그들 형제의 성격에 따라 아내를 골라주었다.그들 형제는 전씨 할머니가 골라준 사람과 지내다 보면 상대방에게 빠져 서로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전태윤은 하예정을 껴안았고 하예정도 남편에게 기대었다.두 사람은 함께 먼 곳을 바라보았다.행복한 시간은 늘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하예정은 결혼 뒤 사흘 만에 처가집으로 돌아갔고 모두의 생활도 정상으로 돌아갔다.출근해야 하는 사람은 출근하고 유치원에 가야 하는 사람도 유치원에 갔다.눈 깜짝할 사이에 또 보름이 지났다.성씨 가문.예준하는 성소현과 함께 아침밥을 먹고 주방에서 나왔다.이경혜 부부는 일찍 일어나 아침 식사를 마치고 산책하러 나갔다.집안이 조용했다.배불리 먹은 성소현은 너무 빨리 외출하기 싫어서 홀의 소파 앞에 가서 앉아 예준하에게 말했다.“잠깐만 앉아 있다가 출근할 거야. 오전에 회의 있어? 회의가 있으면 먼저 가. 난 급하지 않으니까.”“10시에 회의가 있어. 비서에게 앞으로 회의 시간을 아침 9시 전으로 잡지 말라고 말했어. 못 도착할 수도 있으니까.”예준하는 다가와 성소현 옆에 앉으며 부드럽게 물었다.“과일 좀 먹을래?”“아니. 방금 배불리 먹어서 아무것도 못 먹을 것 같아.”아침 식사에는 신
“8시인데 아직 아침 먹으러 안 내려온 것 같아서 올라와 봤어요. 괜찮으세요?”유청하는 습관적으로 불룩한 배를 한 손으로 받치며 웃었다.“괜찮아요. 요즘 잠을 잘 자지 못하여서 침대에 누워있었어요. 기현 씨가 일어났을 때 저는 이미 깨어있었어요. 일어나기 싫어서 누워있었어요. 아직도 출근하지 않으셨어요?”“이따가 갈 거예요. 요즘 별일 없어서 그냥 둘러보다가 서점에 가보려고요. 효진 씨 혼자 서점을 지키고 있거든요. 예정이가 신혼 휴가를 내서 한 달 동안 회사에 돌아오지 않았거든요.”결혼식을 올린 후 전태윤 부부는 신혼여행을 가지는 않았지만, 출근도 하지 않았다.부부는 거의 매일 서원 리조트에 머물며 여유로운 생활을 하며 신처럼 행복하게 지냈다.가끔 성소현은 하예정을 보러 리조트에 갈 때마다 하예정 부부가 한가로운 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정말 부러워했다.“예정이는 아직 신혼이기에 신혼생활의 행복을 만끽할 때가 됐어요. 입덧은 심한가요?”유청하는 방에 있는 소파에 가서 앉았다. 배가 너무 커서 오래 서 있으면 매우 힘들었다.“이제 토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시름 놓은 거죠.”성소현은 새언니 옆에 앉아 새언니 배를 보면서 손을 뻗어 만지며 말을 건넸다.“우리 조카가 장난이 가장 심하네요.”유청하를 무척 괴롭혔다.“움직였어요. 움직여요.”성소현은 태아가 움직이는 것을 느끼더니 무척 신기하다고 여겼다.유청하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지금은 아침이라 움직임이 적어요. 밤에는 정말 잘 움직여요. 기현 씨도 아기와 놀기를 가장 좋아해요.”유청하가 입덧이 심할 때 성기현은 심지어 아이를 없애려고 했다. 하지만 태아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하더니 작은 생명이 그녀의 뱃속에서 건강하게 자라는 것을 느꼈고 성기현도 그제야 아기에게 사랑을 주기 시작했다.유청하는 아이를 낳으면 성기현이 아이를 귀여워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성소현은 또 새언니의 배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아가야. 난 네 고모야. 너도 금방 깬 거야? 나와
말하는 동안, 유청하는 다시 눈살을 찌푸렸고 배를 껴안고 성소현에게 말했다.“저 정말 일찍 낳을 것 같아요. 통증이 심해졌어요.“당장 병원에 가요. 당장.”성소현은 긴장해졌다.성소현이 유청하를 일으켜 세우려고 하자 유청하는 먼저 부탁했다.“먼저 제 캐비닛에 가서 미리 준비해 놓은 출산 가방을 꺼내줘요. 그 가방을 가지고 병원에 가야 해요. 그리고 제 화장대 밑 서랍에서 출산 검사 서류 꺼내줘요. 전부 가져가야 해요.”“알겠어요. 앉아 계세요, 제가 가져올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빨리 가져올게요.”성소현은 재빨리 출산 가방을 가지러 갔다.그리고 유청하의 출산 검사 서류를 가지고 가서 일 층으로 뛰쳐나갔다.유청하는 여전히 성소현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성소현이 출산 가방과 출산 검사 서류들을 가지고 휙 지나갈 줄은 몰랐다. 나갈 때도 유청하를 부르지 않았다.유청하는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시누이가 그녀를 보며 긴장하지 말고 겁먹지 말라고 했지만, 시누이가 더 긴장해 하면서 새언니를 부르지도 못한 채 혼자 아래층으로 내려갔기 때문이다.유청하는 혼자 일어나 여전히 한 손으로 배를 받치면서 천천히 방을 나섰다.계단 입구로 내려갔을 때는 이미 아래층으로 내려간 시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유청하는 시누이가 물건을 들고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자신이 따라가지 않은 것을 발견한다면 시누이의 반응이 어떨지 매우 궁금했다.유청하는 걸음을 멈추고 휴대전화를 꺼내 남편에게 전화하려다가 시누이처럼 남편도 긴장해 겁에 질려 허둥지둥할 것을 생각하더니 이내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시어머니도 거센 파도를 거쳐오신 분이셨고 또 경험자이기도 했다.이경혜는 이내 며느리의 전화를 받았다.“어머님, 어디세요? 곧 돌아오세요?”“너희 아빠랑 집에 가는 길인데, 왜?”“배가 좀 아파요. 출산할 수도 있어요.”그러자 이경혜가 바로 말을 이었다.“당황하지 마. 내가 곧 도착해. 뭐 좀 먹었어? 먼저 뭘 좀 먹고 있어. 첫 아이는
“엄마.”성소현은 창문을 누르고 차를 세운 뒤 부모님께 말했다.“새언니가 출산할 것 같아요. 배가 좀 아프다고 하세요. 우리 빨리 새언니 모시고 병원으로 가야 해요.”이경혜가 물었다.“누구를 병원에 데려다준다고?”“새언니요. 곧 낳을 것 같아요.”성문철이 되물었다.“청하는?”성소현은 고개를 돌렸고 뒷좌석에 출산 물품이 있을 뿐 새언니가 없다는 것을 그제야 발견했다.그녀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성소현은 그제야 무릎을 '탁' 치며 예준하에게 말했다.“빨리 돌아가야 해. 새언니가 아직도 집에 계셔.”이경혜는 결국 참지 못하고 또 웃기 시작했다.이런 일이 아들이 아닌 딸에게 일어날 줄은 몰랐다.성소현의 얼굴이 이내 빨개졌고 부끄러워하며 말을 건넸다.“새언니가 물건을 가지러 오라고 하시기에 제가 물건만 가지고 뛰어왔죠. 새언니가 이미 차에 탄 줄 알았어요.”예준하는 웃으면서 차를 돌렸다.“너무 웃긴 거 아니야? 너무 웃겨. 나도 네가 소리치는 바람에 얼른 너 따라서 차에 탔어. 주인공이 차에 못 탈 줄이야!”차 머리를 돌린 예준하는 차를 세우고 이경혜 부부가 차에 오르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집으로 함께 돌아갔다.다행히 그들은 멀리 가지 않았다. 병원에 도착한 뒤로 유청하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아마도 놀라서 주저앉아버릴 것이다.10분 후.“새언니! 새언니!”성소현은 방으로 들어가며 소리쳤다.아침을 느릿느릿 먹던 유청하는 성소현의 외침 소리에 웃으며 대답했다.“저 여기 있어요.”곧 성소현이 뛰어왔다.유청하는 그녀를 보고 웃기만 했다.“왜 저를 부르시지 않으셨어요.”성소현은 얼굴을 붉히면서 불평했다.유청하는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소현 씨가 너무 빨리 움직여서 부를 겨를도 없었어요. 휙 하고 방을 뛰쳐나가서 아래층으로 내려가셨잖아요. 기현 씨를 부르려고 했지만, 더 긴장해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소현 씨가 실수할 줄은 몰랐어요.”성소현의 얼굴은 더 빨개졌다.“아직도 배가 아프세요?”유청하가
“우리 가게에는 유아용 교재가 없어서요. 다른 문구 방에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하예정의 서점은 중학교 앞에 위치해 주 고객층이 중학생이었고 유치원용 책은 들여놓지 않았다.“아, 그렇군요. 그럼 잠시 후 다른 문구 방에 가봐야겠어요.”젊은 여자는 책값을 지불하고 책을 들고 나가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녀가 가게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하예정은 어딘가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아마도 전태윤과 함께 행사에 참석했을 때 스치듯 본 적이 있을지 몰랐지만 깊이 알지는 못해 기억나지 않는 것이라 여겼다.‘잠시 후 태윤 씨한테 물어봐야겠다. 어떤 가문일까? 장남은 결혼했고 작은아들은 중학생이고 막내딸은 유치원이라니...’젊은 여자는 스물한두 살쯤으로 보였고 남편도 젊을 가능성이 컸다. 하예정은 임신 전 상류층 모임에 자주 참석했지만 어느 집안 자제가 그렇게 일찍 결혼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그녀가 아는 젊은 여자들은 대체로 그보다 나이가 많았기에 방금 본 여자가 속한 가문은 아직 명문으로 자리 잡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여자의 차는 근처에 주차된 흰색 BMW7 시리즈였다. 차 앞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두 명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가 가까이 다가가자 두 남자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경의를 표했다. 그녀의 경호원과 운전기사인 듯했다.“출발하죠.”여자는 차에 올라 운전사에게 지시했다. 차가 멀리 떠난 후, 그녀는 가게 쪽을 돌아보았다. 하예정이 더 이상 자신을 보지 못할 거리라고 판단한 순간, 여자는 얼굴을 만지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그 젊은 여자는 바로 여씨 가문의 둘째 딸, 여운별이었다. 그녀는 현재 용태호의 스폰녀로 지내고 있었지만 사교계에서는 용씨 가문 사모님을 사칭하며 활동 중이었다. 이는 용태호가 모든 의심을 피하기 위해 마련한 조치였다.여운별은 용태호가 준 인피가면 덕분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녀의 임무는 하예정에게 접근해 친구가 된 후 용정이라는
“저도 마음이 놓이네요. 엄마, 윤하가 아직 소 대표의 고백을 받아주지 않은 거 맞죠? 제가 대신 받아주고 싶네요. 소씨네 식구들 성격이 다들 시원시원해서 우리 윤하한테 잘 맞는 거 같아요. 윤하도 덜렁덜렁 거리는게 저 집안과 바이브가 맞아요.”윤하 어머니는 혁진에게 말했다. “네 동생 일생의 큰 일이야. 우리가 잘 체크해주고 나머지는 윤하한테 맡겨야지. 지훈한테 시집가는 사람도 윤하도 한평생 같이 살 사람도 윤하 자신이니까 걔가 좋아야 되지. 그리고 윤하 다음은 너랑 혁주야. 너희 둘도 이제 슬슬 준비해야지.”“엄마, 저 쌀 씻으러 갈게요.” 윤하 어머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결혼 잔소리를 했고 혁진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들어갔다.그런 혁진을 보고 어머니는 몇 마디 나무랐다.연성의 겨울은 눈 내린 광경을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관성은 아직도 최고 기온이 25도나 되는 여름이어서 길거리에는 반팔티를 입고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하예정은 서점에서 남편이 데리러 오기를 기다렸다. 두 사람은 관성 호텔에 가서 점심을 먹을 계획이었다.그녀는 이제 더 이상 공예품을 만들지 않았다. 온라인 쇼핑몰도 전에 그녀를 도왔던 아기엄마한테 양도했다.지금은 서점에서 일하고 있고 학생들이 수업이 끝나면 조금 바빠질 뿐, 다른 시간에는 아주 한가해서 옆 가게 탐방도 자주 하곤 했다. 비록 경호원들이 뒤따르지는 않지만 행여나 무슨 일이 생길까 항상 주시하고 있었다.심효진은 소설을 좋아해서 그녀가 서점을 지키고 있을 때는 하루 종일 앉아 소설을 읽곤 했다.하예정은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고전 작품 한 권을 골라 읽었지만 자꾸만 하품이 나와 결국 읽기를 포기했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를 지나 책장 앞에 다가가 먼지털이로 책우의 먼지를 털기 시작했다. 사실 먼지가 별로 없었지만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할 일을 찾아야 했다.그때, 밖으로부터 또깍또깍 하이힐 소리가 들려왔다.처음 보는 젊은 부인이 서점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에르메스 백을 들고 있었고
혁진은 거실에서 지훈이 부모님이랑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지훈이 아버지는 성격이 아주 호탕한 분이셨다. 혁진이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만 두 사람은 말이 잘 통했다.지훈이 마침 아침밥을 들고나오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의형제를 맺을 기세였다.지훈이 어머니는 그런 남편을 몇 번이나 눈치를 주었다.이 양반이 지금 여기가 어디인지 까먹은 거 아니야?여기는 윤하네 집, 예비 사돈댁이라고. 혁진은 예비 며느리 친오빠고, 두 사람이 형제를 맺으면 나중에 아들더러 어떻게 처신하라는 거야. 아주 그냥 엉망진창이네.“아버지, 어머니, 윤하 씨 어머님께서 아침을 준비해 주셨어요. 따뜻할 때 드세요. 저희는 이미 먹었어요.”지훈은 부모님을 주방으로 불렀다. “점심은 여기서 먹어요. 조금 있다가 윤하 씨랑 제가 장 봐 올게요.”지훈이 어머님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좋아, 나도 나가서 눈이 내리는 걸 보고 싶어. 지훈이 아버지, 당신도 같이 가요. 짐도 들어줄 겸.”남편의 의견을 물어보는 듯했지만 사실상 답정너였다. 집에 두고 갔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장 보고 돌아올 땐 이미 혁진이랑 형제를 맺었을지도 모른다.“그래요.”지훈이 아버지는 흔쾌히 대답했다.윤하 어머니는 주방에서 나오며 민망한 듯 말했다. “두 분께서 오시는 줄을 몰라서 제대로 준비 못 했어요. 점심에는 뭘 드시고 싶으세요? 말만 하세요, 제가 다 할 수 있어요. 가족이라 생각하고 편히 말씀하세요. 내외할 것 없어요.”지훈이 어머니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 저희 안 그래요. 이제는 가족이나 마찬가진데요. 저희는 뭐든 잘 먹어요. 아무거나 다 돼요.”“사돈, 윤하는 정말 훌륭한 아가씨예요. 저희 지훈이랑은 비교가 안 돼요. 지훈이 때문에 저희 두 사람 속 많이 태웠어요.”지훈이 어머니는 실수도 사돈이라고 불렀지만 윤하 어머니는 개의치 않았다. “과찬이세요. 저희 윤하도 속 썩일 때가 많았어요. 지훈이야말로 성숙하고 성격도 온화하고 너그럽고 유망한 청년이죠. 저희 윤하보다 훨씬 나은 걸
원래부터 지훈을 마음에 들어 하던 윤하 어머니는 지훈의 특별한 사정을 알고 나서 더욱 자신의 사윗감이라는 확신이 들었다.윤하와 결혼을 하게 되면 지훈은 그녀를 더욱 소중히 아낄 것이 분명했기에 윤하 어머니는 딸이 멀리 관성에 시집가서 마음고생할 거라는 걱정이 사라졌다.윤하와 어머니는 주방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지훈이 부모님을 대접할 아침을 준비했다.지훈도 주방으로 들어와 일손을 도왔다.“지훈 씨, 안 도와줘도 돼요. 가서 부모님이랑 얘기 나눠요.”윤하는 지훈을 밀어냈다.“부모님이 저더러 도와주라고 해서 들어왔는데 저를 또 저쪽으로 보내시면 어떻해요? 누구 장단에 맞춰야 해요? 아차! 아버님이랑 큰형님이 안 보이시는데 아직 주무시나요? 아니면 도장에 일찍 나가셨어요?”지훈은 그 두 사람이 보이지 않자 물어보았다. 아까는 그럴 겨를조차 없었다.“두 사람 볼일이 있어서 아침 일찍 공항에 갔어. 이쯤 되면 아마 비행기에 올랐을 거야.”윤하 어머니가 대답했다.지훈은 별생각 없었다. 고백도 했고 부모님도 인사하러 오셨고 지금은 그저 윤하의 답변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사실 지훈도 내심 많이 긴장됐다.그도 윤하가 자신을 밀어내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옷도 사주고 고백 후에 도망치지도 않았기에 희망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하지만 윤하가 명확히 대답하기 전까지는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었다. 만에 하나 거절할 수도 있기에 두려웠다.윤하가 설령 거절한다고 해도 지훈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할 것이다.질병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가 선택한 사람이라면 평생 그 한 사람한테만 마음을 줄 그런 사람이었다. “어머님, 준비 많이 하시지 마세요. 두 분 간단히 요기하면 돼요. 제가 이따가 두 분 호텔로 모셔다드릴 거예요. 거기서 식사하시면 돼요.”“귀한 손님들이 멀리서 오셨는데 점심은 내가 대접해야지. 외식할까 아니면 집에서 먹을까?”윤하 어머니는 물었다.“집에서 먹으면 윤하랑 혁진이는 오늘 도장 나가지 말고 장 좀 봐줘
윤하 어머니는 고개를 돌려 윤하를 보며 물었다. “뭐라고? 불감증?”“지훈 씨가 질병이 있는데 불감증이래요. 근데 나한테는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이건 치료가 잘되지 않는 병이고요. 운명인가 보죠 뭐.”“오래 살고 볼 일이네. 이런 병은 또 처음 들어봤어. 그럼 네가 지훈이 한테 시집가면 걔가 변심할 걱정도 없고 바람피울 걱정도 없는 거잖아.”윤하는 대답했다. “뭐 그런 셈이죠. 지훈 씨가 그러는데 다른 여자들이랑 있을 때에는 진짜 아무 반응이 없대요. 부모님이 사정을 알고 나서 계속 선을 보게 했는데 지훈 씨가 안 나갔어요. 또 부모님이 젊은 여자들 사진도 많이 보여줬대요. 혹시나 병이 좀 나아질지 해서요. 그런데 아무 효과가 없는 거죠.”윤하는 자신이 알고 있던 사실을 모두 엄마에게 털어놨다.“지훈 씨 부모님이 마음이 급하셔서 지훈 씨가 어떤 여성분에게 눈길을 한 번 더 줬다 하면 혹시나 그 분한테 반응이 있는 걸까 하고 생각할 정도라고 하더라고요.”윤하 어머니는 들을수록 의아했다. “그럼 걔는 어떻게 너한테만은 다르다고 확신하는 거야? 너희 둘이 무슨 일 있었어?”윤하 어머니는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윤하야, 지훈이가 너한테 진심이든 아니든 결혼하기 전까지는 순결을 지켜야 해. 여자는 자신을 아껴야지. 내가 책이랑 동영상에서 많이 봤는데 어떤 여자애들이 결혼하기 전에 임신하는 바람에 시댁에서 업신여겨 예물을 적게 주거나 아예 안 주는 집안도 있대. 이런 집에 시집가면 절대로 행복할 수 없을 거야.”“엄마가 옛날 사람이라서 요즘 젊은이의 사상을 못 따라는 게 아니라 딸 가진 엄마로서 내 딸이 시댁에서 업신여김을 당할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야. 그러니 절대 결혼 전에 사고 치지 마. 약혼했다고 해도 안돼. 혼인 신고를 해야 법적으로 부부가 되는 거야. 그때가 되면 결혼식을 올리든 안 올리든 엄마도 관여하지 않을 거야.”윤하 어머니는 윤하가 충동적인 행동을 할까 봐 걱정했다. 윤하는 나이도 어리고 연애 경험이 적은 것에 비해 지훈은 비록 여자
지훈은 그저 그들에게 손주를 안겨주는 도구로 몰락할지도 모른다.“고구마가 이렇게나 많아요? 그럼 군고구마 만들어 먹어요. 밖에서 사면 한 개에 삼천 원 정도 하잖아요, 너무 비싸요.”윤하는 역시나 고구마를 보고 기뻐했다.윤하는 차 문이 열려있는 쪽으로 걸어가서 안을 들여다보고는 혀를 내둘렀다.”이게 전부 다 고구마예요?”고구마인지 곤약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도 물건들을 나르기 시작했다.곧 혁진이 도와주러 나왔다.그렇게 세 젊은이는 몇 번을 왕복해서 겨우 차 안에 가득했던 농산품들을 거실로 옮겨갔다. 값비싼 삼과 제비집도 그중 어느 안에 들어있었다.지훈은 부모님이 정말로 농산품만 갖고 온 줄 알았다.소씨 집안에서 가지고 온 선물들을 윤하 어머니께서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번 방문에서 아주 중요한 포인트었다.지훈이 부모님이 방문한 탓에 윤하와 혁진은 도장으로 가지 않고 집에서 접대를 도왔다. 소씨 가주 내외가 아침을 못 드신 걸 알고 윤하 어머니는 윤하와 함께 주방으로 들어가 아침 준비를 했다.윤하는 그 틈을 타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 아버지랑 큰오빠는 이렇게 일찍 도장으로 나갔어요? 두 사람한테 전화했었는데 둘 다 안 받던데요.”윤하 어머니는 밖을 한번 힐끗 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늘 아버지랑 혁주가 관성에 갔어. 지훈이 집안에 대해 좀 알아보려고. 근데 지훈이 부모님이 여기로 오실 줄 누가 알았겠니?”“저 아직도 고민 중인데 둘이서 벌써 관성에 갔다고요?”“그러니까 네가 고민이 끝나기 전에 미리 알아보는거지. 네가 시집살이 안 한다는 확신이 있어야 시름 놓고 너희 둘을 미뤄줄 거 아니야.”윤하 어머니는 계속해서 말했다. “지훈이 부모님을 보니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 봐. 두 분이 너를 아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 소씨 집안이 어떤 집안인데 처음 집에 인사 온다고 농산품들을 가지고 온 것 봐. 다 우리를 생각해서 그런 거잖아. 우리한테 맞춰주려고 한다는 것은 그만큼 너를 중요시한다는 거야. 그
사실 지훈도 부모님 몰래 일을 꾸몄으나 두 분이 보통 눈치가 빠른 사람이 아니라서 지훈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다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을 했다.집 문 앞에서 지켜보던 윤하 어머니는 딸과 함께 들어오는 두 사람의 얼굴이 지훈이랑 아주 비슷한 걸 보고 누군지 바로 알아챘다.그러고는 얼른 문을 활짝 열었다.지훈 어머니는 윤하 어머니를 보자마자 하마터면 사돈이라고 부를뻔했지만 너무 이른 감이 있어 당황하실까 봐 목구멍까지 나온 말을 되려 삼켰다.윤하 어머니는 지훈의 부모님이 오실 줄은 생각 못 했다.아들과 남편이 방금전에 관성으로 출발했는데 두 분이 집에 찾아오시니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관성에서 두 사람에 대해 알아볼 때 마주치거나 들킬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정씨 집안 식구들은 지훈이 마음에 들었다. 지훈이 집안 사람들까지 인품이 좋으신 분이라면 멀기는 멀어도 윤하를 소씨 집안으로 시집 보낼 의향이 있었다.다만 걸리는 점이 있다면 바로 지훈의 질병이었다. 어젯밤, 두 형제는 지훈에게 이게 관해 물어보지 않았고 윤하도 가족들한테 말하지 않았다. 그저 윤하가 지훈을 대하는 태도에서 아마 큰 문제는 아닐 것이라고 윤하 어머니는 짐작했다.전에 질병이 있었다가 이제는 다 완치됐을 가능성도 있었다.두 집안 어르신이 만나고 나서 윤하 어머니는 지훈의 부모님 두 분 다 성격이 좋으시고 친근하신 걸 느꼈다.사돈 될 분들한테 부담이 될까 봐 일부러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 왔다. 행여나 너무 부유해 보여 정씨 집안에서 윤하를 시집 안 보내겠다고 하면 아들이 손해 보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지훈의 부모님은 정씨 집안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고 두 가문이 딱 어울린다고 생각했다.엄밀히 말하면 오히려 정씨 집안이 손해 보는 셈이었다. 지훈은 이제 중년이 다 된 아저씨이고 윤하는 아직 꽃다운 어린 아가씨이기 때문이다.지훈의 부모님은 소씨 집안 가주라는 기세 없이 자세를 낮추어 얘기했다.윤하 어머니와 혁진은 두 분을 대접하고 있고 윤하는 지훈을 도와 짐 나르러 갔
지훈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윤하 씨는 언제든지 예뻐요. 긴장하지 말아요, 저희 부모님 그렇게 어려운 분들 아니세요.”“긴장 안 했거든요. 처음 뵈는 자리니까 잘 꾸미지 않더라도 예의는 갖춰야 하니까요. 제가 문 열게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윤하는 지훈보다 먼저 뛰어가 문을 열었다.검은색 승합차 한 대가 문 앞에 서 있었다.윤하가 문을 열자 차에 앉아 계시던 분이 창문을 내리고 바로 차에서 내렸다.중년 여성분이셨는데 지훈과 많이 닮아서 누가 봐도 소지훈 어머니인 것을 알 수가 있었다.윤하는 내심 지훈의 어머니의 미모에 감탄하고 있었다. 관리를 아주 잘하셔서 겉보기에는 어머니가 아니라 누나같이 보일 정도였다. 두 사람이 함께 서 있으면 전혀 모자같이 보이지 않았다.지훈 어머니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걸어오며 물었다. “아가씨가 윤하 씨구나. 사진 본 적이 있어요. 나는 소지훈 엄마 되는 사람이에요.”“어머님, 안녕하세요.”윤하는 예의를 갖춰 인사를 했다. 지훈도 윤하를 따라 인사 한마디 건넸다.지훈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윤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번 훑어보고는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예쁘고 아들이랑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지훈 어머니는 첫눈에 바로 윤하가 마음에 들었다.자기 아들을 구해준 유일한 여자애라고 생각해서 사진을 볼 때부터 이미 마음에 들었고 흡족해하셨다.지훈이 아버지도 차에서 내렸다.“윤하 씨, 안녕하세요, 저는 지훈이 애비되는 사람입니다.”지훈이 아버지는 평소에는 근엄하고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로 말하시지만 그 순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윤하는 아버님께도 인사를 건네고 두 분을 집안으로 모셨다. “아버님, 어머님, 빨리 집 안으로 들어가요, 밖이 추워요.”“좋아요.”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지훈의 아버지는 차 키를 아들에게 던져주고는 말했다.” 차 안에 있는 물건들 집으로 옮겨와.”“두 분 편히 오시면 돼요, 뭘 들고 오시지 마
지훈의 아버지는 시계를 보시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일찍 오긴 한 것 같아. 여름이면 이쯤 되면 꽤 많은 사람들이 일어났을 텐데. 차에서 조금 기다리다가 노크하러 갈까?”지훈의 어머니가 대답했다. “먼저 아들한테 전화를 걸어 일어나라고 해야겠어요.”그는 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윤하와 입술이 닿는 그 순간, 고막을 찌르는 전화벨 소리가 울려 지훈은 단꿈에서 깨어났다. 지훈은 키스의 여운에 입술을 문지르다 정신이 번쩍 들어 그제야 자신이 꿈꾸었음을 알았다. 윤하는 지훈의 고백을 외면하지 않았지만 곧바로 받아들이지 않고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침 일찍부터 눈치 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달콤한 꿈이 산산조각 나자 지훈은 순간 화가 났다.핸드폰을 집어 든 지훈은 발신인을 확인하지 않고 쌀쌀한 목소리로 물었다.“누구세요? 왜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전화를 거세요? 큰 일이 아니라면……”“아니면 어쩔 건데? 내가 누구냐고? 네 엄마야, 나 지금 윤하네 집 앞이야. 빨리 나와 문 열어. 아니면 내가 들어가서 혼쭐을 내줄 거니까.”지훈도 한 성깔 하는데 지훈의 어머니는 그보다도 한 수 위였다. 말 몇 마디로 바로 지훈을 수그러들게 했다.지훈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놀라서 물었다. “뭐라고요? 지금 집 앞이라고요? 아버지도 같이 있어요?”두 분이 오신다고는 했지만 진짜로 오실 줄 몰랐고 또 이렇게 일찍 올지도 몰랐다.“아버지도 옆에 계셔. 대문이 아직 안 열려있는 것을 보아하니 다들 아직 일어나지 않았나 보지? 아들, 우리가 너무 일찍 온 거 아니야?”지훈은 침대에서 굴러 내려오며 대답했다. “당연한 말씀을, 이 추운 날씨에 이렇게 일찍 오신 거예요? 아버지가 오신다고 하시더니 진짜로 오실 줄은 몰랐어요. 아직 이르다고 말했잖아요, 윤하 씨가 엄마아빠를 만나면 부담스러워할 거예요. 잠깐만 기다려봐요, 제가 내려가서 문 열어줄게요.”입으로는 툴툴거렸지만 정작 부모님들이 밖에서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지훈은 엄마에게 당부 몇 마디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