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노동명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도 되였다. 그는 하늘 리조트에도 별장이 있었다.다만 하예진이 걱정되고 또 그녀가 외로울까 봐 하씨 집안에 머물렀을 뿐이다.노동명은 하예진이 자신을 집에 보내지 않은 것에 대해 마냥 기쁘기만 했다.그녀는 아직 노동명과의 관계를 명확하게 인정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에게 익숙해졌고 그가 자신의 일상생활에 스며들도록 허락했다.노동명은 더는 하예진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고 그녀도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하지만 함께 지내면서 두 사람 모두 서로를 아끼는 그 마음만은 느낄 수 있었다.“일찍 일어나는 게 익숙해졌어. 어젯밤에 일찍 잤더니 날이 밝아지자 자연스레 깨어나게 되더라고. 늦잠을 자려고 해도 잠이 안 와.”노동명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하예진의 안색을 살펴보더니 그녀가 기분이 많이 좋아진 것을 발견했다.하예진의 벌겋게 부었던 눈에 붓기가 빠진 것을 본 노동명은 그제야 안심했다.너무 오래 버틴 사람들이 갑자기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되면 한 번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하지만 한 번 울고 나면 마음속의 답답함과 짐을 털어놓게 되어 금방 회복을 되찾게 된다.노동명은 하씨 집안 자매가 모두 강인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하예진이 곧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그녀는 노동명을 실망시키지 않았다.하예진이 웃으며 말했다.“저도 그래요. 동명 씨 아직 아침 안 드셨죠?”“안 먹었어. 숙희 아주머니가 방금 아침밥을 차리셨어.”하예진은 노동명의 뒤로 가더니 그의 휠체어를 밀어 식탁으로 갔다.숙희 아주머니는 이미 다 만든 아침밥을 식탁 위에 차려 놓았다.하예진은 현재 하 사장님이라고 불리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존칭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숙희 아주머니 앞에서 여전히 친근한 하예진이였다.숙희 아주머니는 평소에 그들과 함께 식탁에서 밥을 먹었다.“우빈이가 집에 없으니 조용하네요.”하예진도 감탄하며 말했다.“제가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습관적으로 우빈을 깨우러 갔는데 방문을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세요. 이미 많이 진보했잖아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스스로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어하는지 아세요? 동명 씨는 이미 두세 걸음이나 걸을 수 있으니 얼마나 대단해요. 자신에게 너무 스트레스를 주지 말고 건강에 주의해요. 건강이 가장 중요하잖아요.”하예진은 그를 잔디밭으로 밀면서 말을 건넸다.“이 잔디밭에서 천천히 걸어봐요. 넘어져도 아프지 않을 거예요.”노동명도 그의 집 잔디밭에서 재활 치료했다.그는 하예진을 올려다보며 말했다.“나 넘어질 수도 있어. 보기도 흉할 거야. 넌 웃지도 말고 마음 아파하지도 마. 내가 겪어야 할 고통이자 회복하는 과정이니까.”하예진은 노동명이 자존심이 강하다는 것을 잘 알았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웃지 않을게요. 제가 여기 있는 게 스트레스를 줄 것 같다면 제가 자리를 비켜드릴게요.”“괜찮아. 네가 여기 있으면 내가 당연히 스트레스는 받을 거야. 하지만 동기부여도 많이 되고 있는걸. 널 위해서라도 이를 악물고 버틸 거야.”하예진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지 않았더라면 노동명은 재빨리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설 수도 없었을 것이다.아마도 처음 차 사고가 났을 때처럼 자포자기했을 수도 있다.그 당시 노동명은 정말 절망감을 느꼈고 평생 휠체어를 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노동명은 하예진의 생활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를 멀리하고 싶었고 심지어 원망하기도 했다.그러나 하예진은 그를 멀리하지 않았다.하예진은 노동명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고 그의 감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결코 무자비한 사람이 아니었다.노동명이 고의로 하예진을 괴롭혀도, 그녀에게 나쁜 태도로 말해도 그녀는 매일 병원에 가서 노동명을 돌보았다.하예진이 노동명 어머니의 돈을 가져갔다고 말해도, 노동명의 어머니가 정말 그녀에게 돈을 주고 싶어 해도 하예진이 결코 그 돈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도 노동명은 알고 있었다.그녀는 돈을 노리는 여자가 아니었다.“동명 씨, 힘내세요. 당신이 최고예요!”하예진은 그를 향
만약 윤미라가 옆에서 보고 있었다면 그녀는 이미 눈물바다가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윤미라는 여전히 자책 속에 살고 있다. 막내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 자신의 탓이라 여겼기 때문이다.만약 그녀가 노동명이 하예진을 만나지 못하도록 자기 죽음으로 협박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그녀가 차를 몰고 하예진을 찾으러 가는 아들을 뒤쫓아 가서 그를 막으려 하지 않았더라면 노동명이 과속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브레이크를 제때 밟지 못해 다리를 다치지도 않았을 것이다.이 모든 게 엄마인 그녀의 잘못이다.노동명이 자포자기했을 때 윤미라는 울었다.노동명이 재활 치료를 할 때의 낭패한 모습을 보고도 울었다.그래서 노동명은 재활 치료를 할 때 엄마가 울고불고하지 않도록 가족이 곁에 남지 못하게 하였다.그가 이미 현실을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자꾸 눈물을 흘리니 짜증이 났다.“응, 좀 더 앉아 있다가 일어설게. 예진아, 물 있어? 목이 좀 말라.”“여기서 쉬고 있어요. 제가 방에 가서 주전자에 물을 담아 올게요. 뭐 좀 드실래요? 먹을 것도 좀 가져다드릴까요?”이런 상황에서 쉽게 허기를 느끼기 마련이다.노동명은 웃으며 말했다.“배는 아직 안 고파. 방금 아침을 먹었잖아. 숙희 아주머니 요리 솜씨가 좋으셔서 내가 여기서 밥을 먹을 때마다 배불리 먹어. 물만 가져와 주면 돼.”“절대 무리하지 말고 다리가 너무 아프면 억지로 버티지 마세요. 제가 물을 가져올게요.”“그래. 내 상태는 스스로 잘 알고 있으니 안심해. 무리하지 않을게.”노동명의 거듭된 보증을 받고서야 하예진은 방으로 돌아가 주전자를 찾아 깨끗이 씻은 뒤 노동명을 위한 따뜻한 물을 담았다.노동명은 정말 목이 말랐다. 그 외에도 하예진이 그의 낭패한 모습을 보고 가슴 아파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하예진이 물을 담기 위해 방으로 가자 노동명은 다시 몸을 일으켜 걸기 시작했다.이번에 그는 두 걸음 더 걸었다. 그는 몹시 기뻐 났다. 이 기쁨을 하예진과 나누려고 몸을
하예진이 주전자를 들고나왔을 때 멀리서 노동명이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 걷기를 반복하며 걷기 연습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혹여나 노동명이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발걸음을 멈추고 멀리서 그의 노력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그의 가장 낭패했던 모습을 본 적이 있지만 아무도 자신의 낭패를 계속 드러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노동명도 체면이 있다. 노동명은 피곤해져서 휠체어에 타려고 했지만 너무 지친 나머지 도저히 일어설 수 없었다. 게다가 주변엔 아무도 없어서 그는 휠체어 앞으로 기어간 뒤 휠체어를 잡고 일어난 뒤에 탔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하예진은 노동명이 두리번거릴 때 얼른 나무 뒤로 숨어서 그녀가 온 것을 발견 못 하게 했다. 노동명이 휠체어 앞으로 기여가 휠체어를 통해 겨우 일어선 것을 보고 하예진은 가슴이 아파 났다. 그가 이렇게 된 것은 그녀와 갈라놓지 못하는 관계가 있다. 그는 끝까지 그녀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그의 엄마의 핍박에 반항하다 차 사고가 난 것이다. 다 그녀 때문이다. 그는 노가의 넷째 도련님으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하늘의 총아였는데 그녀로 인해 오늘 같은 결과를 초래한 것에 대해 하예진은 마음이 아파 났고 또 자신도 자책했다. 그녀가 노동명이 그녀를 좋아하게 한 것은 아니지만 노동명에게 문제가 생긴 것은 그녀가 원인이긴 하였다. 하예진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었다. 한참 후 그녀는 자신의 눈물을 닦고 감정을 추스른 후에야 아무렇지도 않게 주전자를 들고 노동명에게 다가갔다. “동명 씨.” 하예진은 그에게 다가가면서 말했다.“집의 주전자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찾느라 시간 걸렸어요. 오래 기다렸죠?” 그녀는 노동명에게 다가가 주전자를 건네주며 말했다. “따듯한 물이라 뜨겁지 않을 거예요. 얼른 마셔요.” 노동명의 이마가 땀으로 범벅이 된 것을 보고 그녀는 바지 주머니에서 휴지 한 봉지를 꺼냈다. 그녀는 한 아이의 엄마라서 항상 휴지를 지니고 다녔다. 아이가 휴지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쓰기 편리하게 하기 위해
지금 노동명은 하예진과 서로 감정에 관해 논하지 않고 하예진 역시 다른 사람과 연애하지 않는다. 이건 좋은 일임이 분명하다. 아, 그 주정뱅이가 하예진한테 구애를 하고 싶어 하긴 한다. 처음에 노동명이 방비하지 않아 주정뱅이가 하루 레스토랑에 찾아와 하예진을 만난 것 빼고는 노동명은 경쟁자의 존재를 안 후부터 매번 몰래 훼방을 놓아 그 사람이 하예진한테 접근조차 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 노동명이 1년 넘어 좋아한 사람인데 남한테 빼앗길까?’ “오늘은 해도 나지 않았는데 명동 씨 얼굴이 왜 빨갛죠?” 하예진이 갑자기 물었다.“...그래? 아까 연습을 너무 오래 해서 숨이 가빠져 얼굴이 좀 빨개졌나 봐.” 그는 하예진이 자신의 땀을 닦아줘서 얼굴이 빨개진 거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마흔이 다 되어가는 사람인데 남녀의 경험은 없다고 해도 이론은 있다. 하물며 반항기 때 사회 경험을 충분히 해본 사람인데 뭔들 못 봤을까? 노동명은 자신을 순수한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본 것도 많고 경험한 것도 많았기에. “동명 씨,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동명 씨의 다리는 아직 회복 중이라 너무 무리하면 다쳐서 오히려 역효과가 나요. 의사 선생님도 동명 씨보고 좀 쉬라고 당부했잖아요.”“괜찮아, 버틸 수 있어. 모레 병원에 가서 재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예진아, 내일에 시간 있어? 나랑 같이 병원에 가줄 수 있어?” 노동명은 물을 마신 뒤 고개를 들어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매번 병원에 가서 재검사를 받을 때마다 부모님이나 형이 동행하였으나 보통은 그의 두 명의 경호원과 함께했다. 그는 몹시 하예진과 함께 가고 싶다. 하예진은 생각도 하지 않고 동의했다. “내일은 예정이가 결혼 후 처음으로 집에 돌아오는 날이에요. 모레는 시간 돼요. 동명 씨 몇 시로 예약했어요? 제가 동명 씨 집에 데리러 갈게요. 그런 다음 우리 병원에 재검사를 받으러 가요.” 노동명은 웃으며 말했다. “데리러 올 필요 없어. 우리 둘의 집이 멀지 않으니
한편 관성 호텔에서 이제껏 한 번도 취한 적이 없는 소지훈이 이례적으로 전태윤의 결혼식에서 만취했다. 그 술 참으로 맛있었다! 곁에 정윤하가 있으니 소지훈은 기분이 좋아서 술을 더 많이 마셨다. 마시면서 좋은 술이라고 연달아 칭찬했다. 그 술의 뒤끝이 생각보다 강했다. 소지훈은 자신이 술에 취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눈을 뜨자 머리가 아파 소지훈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는 아직 충분히 자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충분히 잤으면 머리가 이렇게 아프지는 않을 것이다. 소지훈은 곧 다시 눈을 떴다. 낯선 방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소씨 가문의 저택도 아니고 그의 별장도 아니었다. 그가 술에 취한 후 납치를 당한 건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는 전씨 가문의 서원 리조트에서 축하주를 마셨다. 설령 그가 만취했다 해도 아무도 감히 그를 납치하려 들진 못할 거다. 죽고 싶지 않다면야. 소지훈은 아픈 머리를 고려할 틈도 없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몸을 덮고 있던 이불이 미끄러져 떨어졌고 이불 밑에 옷을 제대로 입고 있는 자신이 보였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관성의 상류사회 사람들은 모두 소지훈이 남자의 탈을 쓴 사실은 내시 같은 사람인 것을 알 것이다. 그가 취한 틈을 타서 그를 어떻게 해보려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외투가 누군가에 의해 벗겨졌다. 소지훈은 일어나 앉아 방안의 모든 것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는 호텔 안에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침대에서 내려와 주위를 바라보고는 곧 자신이 관성 호텔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전씨 가문의 호텔에 있다. 소지훈은 완전히 마음을 놓고 몸을 돌려 다시 침대에 누운 뒤 아파 나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왜 이렇게 아픈 거지? 숙취는 정말 머리가 아픈 거였네. 머리가 깨질 것같이 아파 죽겠어.’ “따르릉...”핸드폰이 울렸다. 자기 바지 주머니를 만져보니 핸드폰이 그의 바지 주머니에 있었다. 그를 호텔에 데려다준
다행히 소정남은 기혼이고 심효진도 임신했으니 소지훈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정윤하는 능력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일 뿐이다. 소정남은 모든 사람에게 유능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그런 인물이다. 정윤하가 소정남을 칭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발신 번호가 정윤하로 뜨는 것을 보고 소지훈은 두통마저 좀 줄어들었다고 느껴졌다. 그는 곧 정윤하의 전화를 받았다. “윤하 씨.” “아저씨, 깨셨어요? 아니면 제 전화 소리에 깨난 건가요? 지금 거의 10시가 되어가고 있어서 깨났는지 전화 쳐 봤어요.” 정윤하는 술을 마시지 않아 일어난 지 한참 되었다. 그녀는 깨난 후 무술실이 없어 무술 연습을 할 수 없자 일찍이 바깥으로 나가서 러닝 코스를 따라 한참 달린 후에야 호텔로 돌아와 샤워하였다. 그리고 산뜻하게 호텔 1층의 뷔페로 가서 아침밥을 먹었다. 소지훈이 자고 있자 그녀는 그를 깨우지 않고 홀로 아침밥을 먹으러 갔다. 관성 호텔 1층의 뷔페식당은 관성의 모든 호텔 중에서 제일 좋은 곳이다. 먹을 것 마실 것 어느 것 하나 부족하지 않고 종류가 다양하여 세계 각지의 사람들 모두 고향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정윤하는 이 뷔페에서 자신의 세끼 해결하기를 즐겼다. 아이를 데리고 관성에 와서 시합에 참가할 때 관성 호텔에서 머물렀는데 며칠을 여기서 먹다가 연성으로 돌아가니 세날도 못가 관성 호텔 뷔페의 음식들이 그리워 났다. “전 방금 깼어요. 여기가 호텔인 것을 알아채자마자 윤하 씨 전화를 받았어요.” 소지훈은 감격하여 말하였다. “윤하 씨, 어제 윤하 씨가 절 데려다준 거죠? 폐 끼쳤어요. 감사해요. 원래는 제가 윤하 씨를 돌봐야 했는데 오히려 윤하 씨가 저를 돌보게 했어요.” “아저씨의 집이 어딘지 몰라 호텔로 데리고 왔어요. 고마워하실 필요 없어요. 아저씨가 절 전태윤 씨의 피로연에 저를 데리고 가셔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도 먹고 꼭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만났어요. ” “예정 씨가 저를 친절하게 대해주셨고 연락처도 주셔서 나중에 시간 나면
정윤하는 웃으며 말했다. “제가 자주 오는 것도 아닌데요. 아저씨, 머리 아프세요? 뭐 좀 드실래요?” 그녀는 이미 배불리 먹었다. “아프네요. 솔직히 술 취한 건 처음이에요. 숙취 후 두통은 처음인데 머리가 찢어지는 것같이 아파요.” 소지훈은 말하면서도 고개를 들어 아픈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속으로 전태윤이 준비한 술이 너무 맛있어서 술에 취한 거라고 중얼거렸다. 전태윤이 생각했다.‘...맛 좋은 술을 준비해도 원망받아야 해? 신랑인 자신도 안 취했는데 들러리가 취했으니 이건 지훈 씨 술이 약한 거야.’ 소지훈이 생각했다.‘......’소지훈이 말했다. “두통이 심해 먹기가 싫지만 배가 고파요.” 소지훈은 정윤하의 관심을 받으려고 이 말을 불쌍하게 하였다. 정윤하는 아직 그한테 다른 감정이 없었기에 그의 처지에 가슴 아프진 않았다. 하지만 예의상 기본적인 관심은 표했다. “안내대에 가서 꿀이 있는지 물어보고 꿀 좀 달라고 할게요. 꿀물을 타서 마시면 두통이 좀 가라앉을 수 있을 거예요. 정 힘들면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약을 처방해 달라고 해도 되고요.” 정윤하가 말했다. “두통이 심해도 뭐라도 좀 먹어야 해요. 위가 상하면 안 되죠. 아저씨가 드시고 싶은 아침밥은 제가 밖에서 포장해 올게요. 지금 이 시각에 뷔페에서 아침을 먹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곧 점심 먹을 시간이다. 소지훈은 아침도 먹지 않았다. “고마워요. 전 담백하게 먹고 싶어요. 그럼 잘 부탁드려요. 윤하 씨는 드셨어요?” 정윤하가 웃으며 답했다. “전 어제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아서 취하지 않아 오늘 일찍 일어났어요. 하지만 저는 매일 일찍 일어나요. 평소에는 집에서 일찍 일어나 무술을 연마하는데 이곳에 무술실이 없어서 저는 밖에서 달리기하고 돌아와서 뷔페에서 아침을 먹었어요.” “관성 호텔 뷔페가 제 마음에 쏙 들어요. 매번 배부르게 먹어서 벽을 짚고 나올 정도예요.” 소지훈은 그녀의 말에 웃었다. 그러자 머리가 더 지끈거리며 죽을 듯이 아파
지훈은 그저 그들에게 손주를 안겨주는 도구로 몰락할지도 모른다.“고구마가 이렇게나 많아요? 그럼 군고구마 만들어 먹어요. 밖에서 사면 한 개에 삼천 원 정도 하잖아요, 너무 비싸요.”윤하는 역시나 고구마를 보고 기뻐했다.윤하는 차 문이 열려있는 쪽으로 걸어가서 안을 들여다보고는 혀를 내둘렀다.”이게 전부 다 고구마예요?”고구마인지 곤약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도 물건들을 나르기 시작했다.곧 혁진이 도와주러 나왔다.그렇게 세 젊은이는 몇 번을 왕복해서 겨우 차 안에 가득했던 농산품들을 거실로 옮겨갔다. 값비싼 삼과 제비집도 그중 어느 안에 들어있었다.지훈은 부모님이 정말로 농산품만 갖고 온 줄 알았다.소씨 집안에서 가지고 온 선물들을 윤하 어머니께서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번 방문에서 아주 중요한 포인트었다.지훈이 부모님이 방문한 탓에 윤하와 혁진은 도장으로 가지 않고 집에서 접대를 도왔다. 소씨 가주 내외가 아침을 못 드신 걸 알고 윤하 어머니는 윤하와 함께 주방으로 들어가 아침 준비를 했다.윤하는 그 틈을 타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 아버지랑 큰오빠는 이렇게 일찍 도장으로 나갔어요? 두 사람한테 전화했었는데 둘 다 안 받던데요.”윤하 어머니는 밖을 한번 힐끗 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늘 아버지랑 혁주가 관성에 갔어. 지훈이 집안에 대해 좀 알아보려고. 근데 지훈이 부모님이 여기로 오실 줄 누가 알았겠니?”“저 아직도 고민 중인데 둘이서 벌써 관성에 갔다고요?”“그러니까 네가 고민이 끝나기 전에 미리 알아보는거지. 네가 시집살이 안 한다는 확신이 있어야 시름 놓고 너희 둘을 미뤄줄 거 아니야.”윤하 어머니는 계속해서 말했다. “지훈이 부모님을 보니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 봐. 두 분이 너를 아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 소씨 집안이 어떤 집안인데 처음 집에 인사 온다고 농산품들을 가지고 온 것 봐. 다 우리를 생각해서 그런 거잖아. 우리한테 맞춰주려고 한다는 것은 그만큼 너를 중요시한다는 거야. 그
사실 지훈도 부모님 몰래 일을 꾸몄으나 두 분이 보통 눈치가 빠른 사람이 아니라서 지훈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다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을 했다.집 문 앞에서 지켜보던 윤하 어머니는 딸과 함께 들어오는 두 사람의 얼굴이 지훈이랑 아주 비슷한 걸 보고 누군지 바로 알아챘다.그러고는 얼른 문을 활짝 열었다.지훈 어머니는 윤하 어머니를 보자마자 하마터면 사돈이라고 부를뻔했지만 너무 이른 감이 있어 당황하실까 봐 목구멍까지 나온 말을 되려 삼켰다.윤하 어머니는 지훈의 부모님이 오실 줄은 생각 못 했다.아들과 남편이 방금전에 관성으로 출발했는데 두 분이 집에 찾아오시니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관성에서 두 사람에 대해 알아볼 때 마주치거나 들킬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정씨 집안 식구들은 지훈이 마음에 들었다. 지훈이 집안 사람들까지 인품이 좋으신 분이라면 멀기는 멀어도 윤하를 소씨 집안으로 시집 보낼 의향이 있었다.다만 걸리는 점이 있다면 바로 지훈의 질병이었다. 어젯밤, 두 형제는 지훈에게 이게 관해 물어보지 않았고 윤하도 가족들한테 말하지 않았다. 그저 윤하가 지훈을 대하는 태도에서 아마 큰 문제는 아닐 것이라고 윤하 어머니는 짐작했다.전에 질병이 있었다가 이제는 다 완치됐을 가능성도 있었다.두 집안 어르신이 만나고 나서 윤하 어머니는 지훈의 부모님 두 분 다 성격이 좋으시고 친근하신 걸 느꼈다.사돈 될 분들한테 부담이 될까 봐 일부러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 왔다. 행여나 너무 부유해 보여 정씨 집안에서 윤하를 시집 안 보내겠다고 하면 아들이 손해 보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지훈의 부모님은 정씨 집안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고 두 가문이 딱 어울린다고 생각했다.엄밀히 말하면 오히려 정씨 집안이 손해 보는 셈이었다. 지훈은 이제 중년이 다 된 아저씨이고 윤하는 아직 꽃다운 어린 아가씨이기 때문이다.지훈의 부모님은 소씨 집안 가주라는 기세 없이 자세를 낮추어 얘기했다.윤하 어머니와 혁진은 두 분을 대접하고 있고 윤하는 지훈을 도와 짐 나르러 갔
지훈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윤하 씨는 언제든지 예뻐요. 긴장하지 말아요, 저희 부모님 그렇게 어려운 분들 아니세요.”“긴장 안 했거든요. 처음 뵈는 자리니까 잘 꾸미지 않더라도 예의는 갖춰야 하니까요. 제가 문 열게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윤하는 지훈보다 먼저 뛰어가 문을 열었다.검은색 승합차 한 대가 문 앞에 서 있었다.윤하가 문을 열자 차에 앉아 계시던 분이 창문을 내리고 바로 차에서 내렸다.중년 여성분이셨는데 지훈과 많이 닮아서 누가 봐도 소지훈 어머니인 것을 알 수가 있었다.윤하는 내심 지훈의 어머니의 미모에 감탄하고 있었다. 관리를 아주 잘하셔서 겉보기에는 어머니가 아니라 누나같이 보일 정도였다. 두 사람이 함께 서 있으면 전혀 모자같이 보이지 않았다.지훈 어머니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걸어오며 물었다. “아가씨가 윤하 씨구나. 사진 본 적이 있어요. 나는 소지훈 엄마 되는 사람이에요.”“어머님, 안녕하세요.”윤하는 예의를 갖춰 인사를 했다. 지훈도 윤하를 따라 인사 한마디 건넸다.지훈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윤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번 훑어보고는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예쁘고 아들이랑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지훈 어머니는 첫눈에 바로 윤하가 마음에 들었다.자기 아들을 구해준 유일한 여자애라고 생각해서 사진을 볼 때부터 이미 마음에 들었고 흡족해하셨다.지훈이 아버지도 차에서 내렸다.“윤하 씨, 안녕하세요, 저는 지훈이 애비되는 사람입니다.”지훈이 아버지는 평소에는 근엄하고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로 말하시지만 그 순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윤하는 아버님께도 인사를 건네고 두 분을 집안으로 모셨다. “아버님, 어머님, 빨리 집 안으로 들어가요, 밖이 추워요.”“좋아요.”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지훈의 아버지는 차 키를 아들에게 던져주고는 말했다.” 차 안에 있는 물건들 집으로 옮겨와.”“두 분 편히 오시면 돼요, 뭘 들고 오시지 마
지훈의 아버지는 시계를 보시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일찍 오긴 한 것 같아. 여름이면 이쯤 되면 꽤 많은 사람들이 일어났을 텐데. 차에서 조금 기다리다가 노크하러 갈까?”지훈의 어머니가 대답했다. “먼저 아들한테 전화를 걸어 일어나라고 해야겠어요.”그는 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윤하와 입술이 닿는 그 순간, 고막을 찌르는 전화벨 소리가 울려 지훈은 단꿈에서 깨어났다. 지훈은 키스의 여운에 입술을 문지르다 정신이 번쩍 들어 그제야 자신이 꿈꾸었음을 알았다. 윤하는 지훈의 고백을 외면하지 않았지만 곧바로 받아들이지 않고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침 일찍부터 눈치 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달콤한 꿈이 산산조각 나자 지훈은 순간 화가 났다.핸드폰을 집어 든 지훈은 발신인을 확인하지 않고 쌀쌀한 목소리로 물었다.“누구세요? 왜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전화를 거세요? 큰 일이 아니라면……”“아니면 어쩔 건데? 내가 누구냐고? 네 엄마야, 나 지금 윤하네 집 앞이야. 빨리 나와 문 열어. 아니면 내가 들어가서 혼쭐을 내줄 거니까.”지훈도 한 성깔 하는데 지훈의 어머니는 그보다도 한 수 위였다. 말 몇 마디로 바로 지훈을 수그러들게 했다.지훈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놀라서 물었다. “뭐라고요? 지금 집 앞이라고요? 아버지도 같이 있어요?”두 분이 오신다고는 했지만 진짜로 오실 줄 몰랐고 또 이렇게 일찍 올지도 몰랐다.“아버지도 옆에 계셔. 대문이 아직 안 열려있는 것을 보아하니 다들 아직 일어나지 않았나 보지? 아들, 우리가 너무 일찍 온 거 아니야?”지훈은 침대에서 굴러 내려오며 대답했다. “당연한 말씀을, 이 추운 날씨에 이렇게 일찍 오신 거예요? 아버지가 오신다고 하시더니 진짜로 오실 줄은 몰랐어요. 아직 이르다고 말했잖아요, 윤하 씨가 엄마아빠를 만나면 부담스러워할 거예요. 잠깐만 기다려봐요, 제가 내려가서 문 열어줄게요.”입으로는 툴툴거렸지만 정작 부모님들이 밖에서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지훈은 엄마에게 당부 몇 마디 하고
그러고는 윤하한테로 눈길을 돌렸다. 그대로인 동생의 모습을 보고 속으로는 두 사람은 아무리 봐도 커플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그리고 지훈은 도대체 무슨 질병이 있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윤하 어머니는 과일을 꺼내오다 두 사람을 발견했다.“마침 돌아왔네. 얼른 와서 과일 먹어.”“윤하 씨가 저한테 옷을 사줬어요.”지훈은 싱글벌글하며 두 형님 옆으로 가 앉더니 윤하가 선물해 준 옷을 자랑했다.윤하는 그런 지훈을 보고 얼굴이 빨개져 자리에 앉지 않고 꽃다발을 손에 든 채 곧장 위층으로 올라가며 말했다. “엄마, 오빠들, 나 먼저 올라가 쉴게.”혁주와 혁진은 옷자랑에 바쁜 지훈에게 맞장구를 쳐줬다. 윤하가 안목이 좋다, 옷이 멋지다, 두께감이 있어 따뜻하겠다 등등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그러면서 또 이십몇 년간 같이 살면서 오빠들은 옷 잘 사주지 않는다고 투덜거렸다.하여튼, 지훈은 옷 몇 벌에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고 연애의 맛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주위 친구들이 늘 자랑하던 얼마 안 되는 선물이라도 좋아하는 사람한테 받으면 엄청 행복하다던 그 감정도 알게 되었다.윤하의 두 오빠는 결국 지훈이 무슨 질병이 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혁주는 내일 관성으로 가는 티켓을 이미 끊어놓았다. 아버지랑 같이 관성으로 가서 소씨 집안 사람들의 인성을 조심히 알아보려는 계획이었다. 더불어 지훈의 질병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다.그들은 지훈에게 직접 물어도 솔직히 대답하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직접 알아보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그렇게 하룻밤이 지나고 이른 아침이 되자 혁주는 아버지와 함께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그들이 출발할 때 윤하는 아직 꿈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평소에 일찍 일어나던 지훈마저도 윤하에게 키스하는 달콤한 꿈을 꾸느라 잠에서 깨지 않았다. 그도 역시 큰 형님과 윤하 아버지가 일찍이 길을 나선 것을 몰랐다.두 사람이 출발해서 얼마 되지 않아 소씨 가주 내외가 도착했다.두 분은 사돈 될 분들이 놀랄까 봐 경호원들 없이 둘이서 제
지훈이 윤하를 바라보는 눈빛에 사랑스러움이 가득했다.“윤하 씨가 좋아하면 매일 선물해 줄게요. 아니면 지금 도장에 꽃 가지러 같이 갈까요?”“같이 가요. 매일 선물 안 해줘도 돼요. 어쩌다 한 번씩 서프라이즈를 주는 게 더 좋아요. 매일 받으면 또 감흥이 사라져 버릴 수도 있잖아요.”지훈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래요 그럼, 윤하 씨 말 들을게요.”지훈의 꽃 선물에 윤하는 꽃 떡을 떠올렸다.지훈도 자신이 매일 꽃 선물을 하면 윤하가 꽃 떡을 떠올리며 자신의 마음을 몰라줄까 걱정이 됐다.여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물은 아마도 돈이 아닐까?지훈은 돈으로 된 꽃다발을 선물해서 윤하가 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사게 해줄 수도 있었다.“먼저 옷 쇼핑가요, 제가 옷 선물을 해줄게요.”윤하는 꽃 선물에 대한 보답으로 옷 선물을 해주려 했다.“옷을 선물해 준다고요?”지훈은 아주 기뻤다.“지훈 씨가 추울 것 같아서 두꺼운 아우터를 선물해 주려고요. 근데 저는 지훈 씨처럼 명품은 못 사요. 삼십만 원 정도는 해줄 수 있어요. 혹시 마음에 안 들면 버리지 말고 저한테 줘요. 저희 큰오빠가 지훈 씨랑 키가 비슷하니까 큰오빠 주면 돼요.”지훈은 재빨리 대답했다. “마음에 안 들 리가요, 윤하 씨야말로 줬다 뺏기 없어요. 큰형님 옷도 많으시고 두꺼운 옷도 많으시잖아요. 저는 두꺼운 옷 별로 없어요. 저 사실 추위 많이 탄다고요. 집밖에 잘 안 나가고 매일 사무실, 도장, 윤하 씨 집, 난방이 있는 이 세 곳에만 있잖아요.”바로 전까지만 해도 추위를 안 탄다고 하던 지훈은 혹여나 윤하가 사준 옷을 큰형님한테 줄까 봐 추위를 많이 탄다고 엄살을 부렸다.“그럴 줄 알았어요. 남방 사람들은 연성에 오면 다들 춥다고 그래요. 아무리 지훈 씨가 이곳저곳 많이 다닌다고 하지만 그래도 관성에서 보낸 시간이 제일 오라잖아요. 연성이 안 춥다면 거짓말이죠.”지금의 관성은 날씨가 아주 좋아 윤하도 부러울 정도였다.지훈은 웃으며 말했다. “관성은 난방이 없어서 추울 땐 진짜로 추
윤하의 어머니는 잠깐 생각에 잠기다가 말했다. “너희 말이 맞는 것 같아. 그래도 지훈이 돌아오면 너희가 한번 잘 물어봐. 안 그러면 나 계속 걱정돼서 잠 못 자니까. 그리고 지훈이 우리 윤하를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걔는 부잣집 도련님이고 두 집안이 차이가 있잖아. 지훈이 부모님이 우리 윤하를 못 받아들일 수도 있고. 너희 아빠가 돌아오시면 내가 얘기 한번 해봐야겠어. 혁주를 데리고 관성에 가서 지훈이 부모님에 대해 좀 알아보라고 해야겠어.”혁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혼자 가도 돼요. 오늘 저녁에 바로 티켓 끊어서 내일 아침에 출발할게요.”“아버지랑 같이 가. 네가 아직 어려서 사람 보는 눈이 부족해. 아버지는 나이도 많고 사회생활도 수십 년 해왔으니 사람 보는 눈이 괜찮아. 딸을 시집보내는데 아버지가 돼서 시댁이 어떤지는 알아봐야지.”윤하 어머니는 지훈이 의심하지만 않는다면 자신도 함께 관성에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혁진이 말했다. “소 대표의 부모님이 우리 윤하를 싫어하시지는 않을 거예요. 소 대표 나이가 몇인데, 곧 사십이잖아요. 우리 윤하는 이제 스물넷인데 나무랄 게 뭐 있어요. 나무란다고 해도 우리가 소 대표를 나무라야 맞죠.”“소 대표 부모님께서 마음이 조급하시지 않을까요? 드디어 좋아하는 아가씨를 만났는데 그분들이 왜 나무라겠어요? 오히려 서둘러 결혼시키려고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그 집안이 부자면 또 어때요? 우리 집안은 뭐 가난한가? 몇백억은 아니더라도 자산이 적지는 않잖아요. 어머니아버지가 윤하한테 집도 마련해 줬고 상가 부동산도 남들보다 훨씬 많은걸요.”“당연하지, 소씨 집안에서 우리 윤하를 마음에 안 들어 하기만 해 봐요.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잠깐, 우리 윤하가 아직 지훈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잖아요. 나중에 두 사람이 거리를 둔다고 해도 우리 윤하는 전혀 손해 볼 게 없어요.”“아쉬워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지훈이 아닌가.”“그래도 관성에 한번 가서 알아보는 게 좋아.” 혁주는 이미 휴대폰을 꺼내 티켓을 알아
저녁 식사가 끝난 후, 윤하는 지훈과 함께 산책하러 나갔다.두 사람이 집 문을 나서자 혁진이 형에게 물었다.“형, 윤하 오늘 좀 이상하지 않아요? 얼굴도 자꾸 빨개지고 지훈이랑 눈도 못 마주치고 아주 부자연스러운 것이 평소랑은 많이 달라요. 이십몇 년 동안 오빠와 동생으로 지내면서 오늘 처음 수줍어하는 모습을 본 것 같아요. 쟤도 수줍어할 줄 아는 애였어요. 평소에는 그냥 남자애처럼 덜렁대고 뻔뻔하게 굴더니 수줍어하니 꽤 여자 같은데…”혁주는 말없이 차를 따랐다.윤하 어머니는 주방에서 설거지하다가 혁진의 말을 듣고 주방에서 뛰어나와 두 아들에게 말했다.“너희 둘 이리 와봐, 지훈이 없을 때 할 말이 있어.”“무슨 일이에요? 표정이 심각해 보이는데 안 좋은 일이에요?”혁진은 궁금증을 못 참고 주방으로 들어가다가 엄마의 표정을 보고 사뭇 진지해졌다.차를 따르던 혁주도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뛰어 들어오며 물었다.“엄마, 왜 그래요? 소 대표가 무슨 말 하던가요? 소 대표가 우리 동생한테 고백했어. 근데 윤하가 아무런 준비 없던 상황에서 고백받아서 놀라서 도장을 뛰쳐나갔어. 내가 소 대표 보고 따라가지 말고 윤하한테 진정할 시간을 좀 주라고 했거든. 지금 보니 뭔가 잘될 것 같은 느낌인데?”혁진은 혁주를 돌아보며 물었다. “형, 지훈이가 윤하한테 고백했다고요?”윤하 어머니는 입을 뗐다. “지훈이 질병이 있대. 걔가 윤하한테 솔직하게 털어놨는데 내가 엿듣다 보니 제대로 듣지 못했어. 병명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진짜로 병이 있나 봐. 그래서 여태까지 솔로였대.”“뭐라고요?”두 아들은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두 사람은 안색이 급격히 변하더니 혁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설마 남자구실을 못 하는 건 아니겠죠?”“그렇게 티가 나는 질병이 아닌 것 같았어. 똑똑히 듣고 싶었는데 방문이 열려있어서 더 가까이 가지 못하겠더라. 영문을 모르니 더 속이 타네. 너희 둘은 남자애니까 편하게 얘기할 수 있을까 해서. 조금 있다가 지훈이 돌아오면 너희 둘이
지훈이 대답하기도 전에 윤하의 목소리가 위층으로부터 들려왔다.“얘들아, 밥 먹어.”윤하 어머니가 주방에서 불렀다.식구들은 주방으로 들어가 일손을 도와 식자재를 날랐다. 그리고 둘러앉아 따뜻한 샤부샤부를 먹기 시작했다.정혁주는 아버지가 소장한 술과 잔을 네 개 가져오며 물었다.“엄마, 저희 오늘 한잔하고 싶은데 괜찮죠?”“외출을 안 하면 한 잔씩은 허락할게. 더는 안돼.”많이 마시다가 취하면 내일 출근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정혁주는 동의하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한 잔씩만 하기로.”한잔이라도 아예 못 마시는 것보다는 나았다.“윤하는 많이 마시지 마.”혁주는 동생에서 반 잔만 부어주었다.윤하는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내가 여자는 맞지만 주량은 오빠들 못지않거든요, 한잔 마신다고 취하지 않아요.”“너 계속 그러면 한입밖에 못 마시게 할거야. 그 잔 소 대표님 줘.”혁주는 큰오빠답게 여동생의 음주를 제한했다.혁주는 술을 붓고는 윤하에게 귀속말했다. “적게 마시고 정신 붙들고 있어. 있다가 소 대표님 취하면 너한테 진심인지 아닌지 확인해 봐. 술 취하면 진실을 토하게 되잖아. 그때 물어보면 진심을 알 수 있을 거야.”윤하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어 하며 낮은 목소리로 큰오빠에게 말했다. “지훈씨 주량 엄청 세요, 그 한 병 다 마셔도 멀쩡할걸요.”술 한잔으로 지훈이 취하기를 기대하는 일은 망상에 불과했다.“난 지훈 씨가 한 말이 모두 진심이라고 믿어.”윤하는 지훈에게 반찬을 짚어주며 웃으며 말했다. “지훈 씨도 적게 마셔요, 식사가 끝나면 같이 산책해요.”“좋아요.”“밖에 엄청 추워.”윤하의 어머니가 말했다.“지훈이는 관성에서 왔잖아, 더 추워할걸. 난 시집온 지 몇십 년이 지났는데도 겨울에는 외출 잘 안 하잖아. 연성의 겨울 추위는 시간이 지나도 적응이 안 돼.”시집온 지 얼마 안 되였을 때 윤하 어머니는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친정집으로 가서 겨울을 보냈다.시간이 지나 아기들도 점점 커서 어린이집, 학교에 입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