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작에 이 모든 것을 준비해서 고현이 걸려들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사실 자신감이 없었다.고현은 20년 넘게 남자로 살아왔기 때문에 갑자기 그 가면을 벗고 여자라는 현실에 맞서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전호영은 고현이 이곳에서 자신이 밤새 수영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도 있다고 짐작했다.전호영은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고현은 나오지 않았다.“설마 마음이 바뀐 건 아니겠지?”전호영은 걱정하며 중얼거렸다.전호영은 일어나서 여자 탈의실에 가보려 했다.이때 탈의실 문이 열렸다.고현은 자신의 가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수줍어하면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전호영은 그녀의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안에서 주무시는 줄 알고 가보려는데 나오셨네요.”전호영은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고현 씨 자신감은 어디로 가신 거죠? 이렇게 수줍어하면서 고개도 못 쳐들고 움츠러드는 모습이 마치 거북이 같네요.”고현은 전호영을 무시한 채 여전히 두 손으로 가슴을 감싸고 있었지만 더 이상 우물쭈물하거나 움츠러들지 않았다.그녀는 익숙하지 않았다.고현은 조심스럽게 수여장 옆으로 걸어가더니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물에 들어간 순간에야 비로소 가슴을 감싸던 두 손을 풀었다.오랫동안 수영을 하지 않은 탓인지 고현은 물속에 머리를 박았고 조심하지 않아 물을 삼켜 기침을 몇 번 했다.전호영은 수영장 옆에 서서 피식 웃으며 물었다.“괜찮으세요?”고현은 무시했다.오랫동안 수영을 하지 않았지만 고현은 본능적으로 물에서 한 바퀴 헤엄칠 수 있었다. 하지만 피곤한지 이내 물가로 헤엄쳐 올라가서 앉았다.“준비운동도 안 하고 물에 들어가면 다리에 쥐가 나기 쉬워요.”전호영이 한마디 내뱉었다.고현은 한참을 말이 없다가 그제야 대답했다.“수영을 너무 오래 안 했더니 벌써 피곤하네요.”“앞으로 수영하고 싶으면 저한테 와서 시원함을 맘껏 즐기세요. 물에 들어가면 개운하지 않아요?”전호영은 고현의 옆에 살짝 앉았다.전호영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고현
고현이 수영장에서 나와 일어났을 때에야 전호영이 더 일찍 수영장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주위에 없는 것으로 보면 탈의실에 있을 것이다.고현은 별생각 없이 탈의실로 향했다.탈의실에 들어선 고현은 조금 전에 벗어놓았던 남성 옷들과 가짜 가슴 근육이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여성복만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고현이 헤엄치는 틈을 타 전호영이 여자 탈의실로 들어와 그녀가 벗어놓은 남자 옷들을 훔쳐 간 것이 분명했다.그 뻔뻔한 남자가 고현에게 치마를 입으라고 강요하는 것이다.고현은 치마를 입어본 적이 없었다.고현은 몸을 돌려 여자 탈의실을 빠져나와 남자 탈의실로 가서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제 옷과 물건들을 모두 돌려줘요!”“제가 잘 정리해 두었어요. 나중에 집에 가서 돌려드릴게요.”전호영의 뻔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고현은 굳은 얼굴로 명령했다.“전호영! 당장! 당장 내 옷 돌려줘!”고현이 치마를 입고 집으로 돌아가면 집안의 하인들이 모두 그녀가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고현은 여자의 신분을 회복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전호영을 믿지 말았어야 했다.이놈이 가장하고 싶은 일이 바로 고현의 여자 신분을 회복시켜준 다음 그가 동성애자라는 혐의를 벗게 할뿐더러 그녀를 사모하는 여자들을 모두 단념하게 하는 것이다.“옷 남겨놨어요.”“그건 여자가 입는 옷이잖아요!”“당신도 여자인걸요.”고현은 문득 말문이 막혔다.잠시 후, 고현은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전호영 씨, 문을 열지 않으면 문을 부숴버릴 거예요.”“부숴보시든가요. 저 지금 옷을 안 입었거든요. 만약 문을 부수고 들어온다면 저의 모든 것을 볼 수 있은걸요.”“그렇게 된다면 고현 씨가 저를 끝까지 책임져야 할걸요. 저한테 장가오지 못하겠으면 시집와도 저는 좋다고 생각해요.”전호영은 그의 뻔뻔함을 유감없이 발휘했다.“전호영!”고현영은 전호영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는 것을 믿지는 않았지만 감히 그 위험을 무릅쓰지는 못했다.정말로 문을 열고 들어갔을
“그 예쁜 치마는 제가 고현 씨를 위해 심혈을 기울여 산 치마인걸요. 입어보지 그래요. 그 치마를 입고 나와보기라도 하면 얼마나 좋아요. 저도 고현 씨가 치마 입은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싶어요.”전호영은 고현이 수영하기 전에 벗어놓은 옷을 돌려주며 말을 건넸다.“감기 걸리지 않게 빨리 갈아입고 와요.”고현은 굳은 얼굴로 자신의 옷을 건네받고는 바로 여자 탈의실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고현이 화가 난 것은 사실이었다.하지만 자신이 연이어 재채기를 하여 감기에 걸릴까 봐 전호영이 문을 바로 열어주었던 행동들도 고현은 마음에 담고 있었다.이 남자는 뻔뻔할 때는 항상 고현을 화를 치밀어 오르게 했지만 또 그와 반대로 고현을 배려할 때에는 전호영은 따스함으로 고현의 마음을 감싸주곤 했다.고현이 다시 남자로 변장하려면 시간이 좀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옷을 갈아입은 전호영은 수영장에 있는 리클라이너에 누워 검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치마를 입은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적어도 여자 수영복을 입은 모습은 볼 수 있었다.전호영은 이따가 고현을 데려다주고 따뜻한 생강차 한잔을 끓여주고 재워야겠다고 생각했다.30분 후.고현은 그제야 탈의실에서 나왔다.고현이 다시 미남의 모습을 되찾은 것을 보자 전호영이 일어나면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우리 두 사람이 결혼하면 당신은 저의 아내도 되고 저의 형제도 될 수 있겠네요. 문득 이런 모습도 괜찮다는 생각이 드네요.”고현은 눈에 힘을 주며 톡 쏘아붙였다.“전 당신과 결혼하겠다고 한 적 없거든요.”“당신이 시집오고 싶지 않다면 제가 당신에게 시집가면 되겠네요. 예단비는 얼마나 줄 수 있어요? 부동산 소유증에 저의 이름을 올려줄 수는 있어요?”“결혼하게 되면 누가 돈을 관리해요? 고현 씨가 저에게 예단비를 주는 가치만큼 제가 혼수를 장만해서 가져올게요. 절대로 당신이 손해 보는 일은 없게끔 할게요.”고현이 바로 말을 이었다.“제가 당신과 결혼하면 아이를 낳
고현은 비꼬면서 말했다.“당신 할머니가 발견하지 않으셨다면 당신도 시각장애인이나 다름없거든요. 할머니 공로를 자신에게로 돌릴 생각하지 마세요.”전호영은 말문이 막혔다.사실이기 때문이다.전씨 할머니가 직접 조사하시고 나서 사진을 전호영에게 건네주면서 고현을 아내로 맞이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전호영도 애당초 할머니께서 잘생긴 남자와 인연을 맺어주어 자신을 동성애자로 살게 하려는가 하는 의심까지 하게 되었다.고현과 접촉한 후에도 전호영은 그녀가 여자라는 허점을 찾지 못했다. 만약 큰 형수와 둘째 형이 그에게 직접 추구하라고 제안하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고현이 여자라는 사실을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고현의 부모님 아니었더라면 고현의 여성 신분을 확인받을 수 없었다.전호영이 자신의 말에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자 고현은 그제야 기분이 좋아졌다.“그래도 시름이 안 놓여요. 제가 남자로서 지켜야 할 매너는 지켜야죠.”전호영은 기어코 고현을 집까지 바래다주겠다고 고집했다.“직접 집까지 바래다주지 않으면 저도 안심할 수 없어요.”고현은 또 전호영의 속셈을 꿰뚫어라도 본 듯 말했다.“제가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거로 생각하는 건 아니죠? 저를 집까지 바래다주면서 또 밤이 깊어졌으니 호텔로 돌아가지 못한다면서 우리 집에서 자야 한다고 그러실 거잖아요.”전호영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저를 양아치 취급하지 마세요. 고 아저씨도 저를 당신 집에서 하룻밤 묵으라고 초대하셨기도 했고 아주머니도 제가 만든 아침을 좋아하신다고 하셨거든요.”“제가 당신 집에서 하룻밤 묵는 이유가 단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맛있는 아침을 준비해 드리기 위한 거에요.”고현은 또 비꼬며 말했다.“당신이 없는 동안에도 우리가 굶어 죽지 않았거든요. 게다가 우리가 매일 아침 먹는 밥도 매우 맛있거든요.”“제가 만든 아침이 좀 더 맛있을걸요.”고현은 또 말을 잇지 못했다.고현은 전호영의 요리 솜씨를 진심으로 인정해주었다.고현 별장의 요리사마저도 전호영만 오면 모
고씨 가문의 저택에도 수영장이 있지만 딸이 수영장으로 들어가 본지도 꽤 오래되었다. 여자라는 사실이 알려질까 봐 걱정되었다.“처음에는 물에 들어가지 않고 곁에 서서 제가 수영하는 걸 지켜보았거든요. 제가 물에 들어가지 않으면 헛걸음한다는 말에 고현 씨가 한참을 생각하더니 결국 물 안으로 들어갔어요.”“제가 여성 옷도 준비해 두었는데 결국 갈아입지 않더라고요.”전호영은 유감스러운 표정을 드러냈다.“고현 씨 여성 옷을 입는다면 정말 아름다울 텐데.”전호영은 눈앞에 있는 세 식구를 바라보았다.고빈은 웃으면서 말을 꺼냈다.“저도 못 봤어요. 저도 20년 넘게 누나를 형이라 불러왔는걸요. 이젠 형이라는 말도 익숙해졌어요. 저도 우리 형이 여성 옷을 입는 모습을 못 봤어요. 우리 부모님께 물어보세요. 저는 기억이 안 나요.”진미리도 회억하면서 말했다.“현이가 어릴 때부터 사내아이로 키워졌어. 예전에도 빈이와 똑같은 옷을 입혀서 키웠거든. 여자아이 옷을 입혀 본 적 없어.”고진호도 말을 이었다.“예전에는 딸을 아들처럼 키워서 아들 둘 키우는 것 같아 재미있기만 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수습이 안 되는 거 있지.”그래서 그 세 사람의 시선은 결국 전호영에게로 다시 돌아가고 말았다.전호영이 고현의 마음을 공략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고현이 전호영을 위해 여자 신분을 회복하여 여성 옷을 몇 번 입어서 그들에게 보여주었으면 했다.고진호 부부는 분명 1남 1녀를 낳았지만 친부모로서 딸이 여장한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고빈도 웃었다.“우리 형이 앞으로 쭉 여성 옷을 입으려 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전 대표랑 결혼하게 되면 두 분 다 양복 입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럼 결혼식도 난리 나겠네요. 하하하...”그 장면을 떠올리던 고현은 재미있다고 웃어대고 있었다.감히 말하건대, 고빈의 누나가 깔끔하고 멋진 양복을 입고 전호영과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면 틀림없이 온 도시를 뒤흔들 것이고 언론 기자들도 앞다퉈 보도할 것이다.두 남자의 결혼식이라고
고빈은 깔깔 웃었다.“그래도 호영 씨랑 우리 누나가 진전이 있을 줄 알았어요.”고진호는 아들을 꾸짖었다.“호영이는 너처럼 나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야. 호영이는 정직한 사람인걸. 나와 네 엄마는 사람 보는 눈이 여전히 있거든.”고진호 부부는 전호영이 매우 마음에 들어 그를 고씨 가문으로 납치해 오고 싶었다.놀랍게도 전씨 가문 할머니께서 안목이 있는 분인지라 고진호 부부가 눈치채지도 못한 채 그들의 딸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자기 딸이 전씨 할머니가 전호영에게 골라준 아내라는 사실을 안 후로 고진호 부부는 전호영을 고씨 가문의 진정한 사위처럼 여기고 있었다.전씨 할머니께서 인연을 맺어주는 수평이 너무 좋으시다고 생각했다.현이처럼 말수가 적고 성격이 진지한 아이는 전호영처럼 말재주가 좋은 사람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두 사람이 앞으로 결혼하게 된다면 집안은 틀림없이 조용할 것이다.전호영처럼 말을 재미있게 하는 사람이어야 만이 두 사람 혼인 생활도 재미있고 화젯거리도 많아질 것이다.“아빠, 저도 정직한 사람이거든요.”고빈은 펄쩍 뛰면서 말했다.자신이 매우 정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단 한 번도 여자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네가 올바른 사람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외부 사람들은 모두 널 바람둥이로 볼걸. 사람들이 너와 연락하는 건 분명 현이와 인연을 맺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너도 네 누나처럼 능력도 좋고 모든 면에서 아주 훌륭한데 아무도 너와 인연을 맺고 싶어 하지 않잖아.”“딸을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이라면 누가 자신의 딸을 고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에게 맡기겠어? 네 주위에 수많은 미모의 지인들도 많고 별별 여자들도 다 맴돌고 있는데, 누가 감히 자기 딸을 너에게 시집보낼 수 있겠어?”고진호는 고빈을 한바탕 꾸짖었다.진미리도 한마디 했다.“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재빨리 행동해. 자꾸 여자들과 사랑놀이 하지 말고. 평판이 나빠지면 장가가기도 힘들어.”“그리고 화젯거리인 여자 스타마다 찾아가서
온 가족은 전호영을 도와 고현의 마음을 빼앗으려고 애쓰고 있었다.고현은 겨우 스물여덟 살 꽃다운 나이인데 가족들은 자꾸 시집 보낼 생각만 하고 있었다....도씨 가문 별장 입구.차 몇 대가 별장 입구에 세워져 있었지만 별장 안의 도씨 사모님이 알게 될까 봐 감히 경적을 울리지 못했다.차 안의 도차연은 자신의 가방을 손에 들고 차에서 내리려고 했다.“차연 씨.”전태윤을 가장해 친밀한 사진을 찍게 된 김지혁은 결국 참지 못하고 도차연의 허리를 감싸 안으면서 말했다. 김지혁은 얼핏 보면 전태윤과 정말 많이 닮았다.“차연 씨, 저와 함께 있어 줄래요?”김지혁은 도차연과 한동안 함께 지냈고 물론 도차연이 그를 대역으로만 여긴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이 고급 차들, 경호팀 모두 그의 체면을 위해 빌려온 것이긴 했지만 그가 입고 있는 양복만은 도차연이 그에게 사 준 것이었다.김지혁이 입은 양복과 가죽 구두를 볼 때마다 도차연이 그를 보는 눈빛은 매우 뜨거웠다.하지만 김지혁은 도차연이 자신을 통해 다른 남자를 보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그 남자가 누구인지 그는 아직도 몰랐다.돈을 주고 도차연에게 접근하라고 청한 사람도 자신이 도대체 누구를 닮았는지를 알려주지 않았다.도기범의 목적은 도차연의 행동이 둘째 삼촌의 노여움을 사고 둘째 삼촌 부녀의 감정을 이간질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도기범은 도씨 그룹을 이어받아 도씨 가문의 가주로 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도기범은 전태윤을 건드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만약 김지혁이 자신의 몸매가 전태윤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또 진짜 전태윤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나중에 전태윤으로 가장하여 사기를 칠까 봐 두려웠다.하여 도기범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도차연도 똑같은 생각으로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놔요. 선을 넘었어요!”도차연은 차가운 어조로 호통쳤다.“차연 씨, 제가 못생겼나요?”김지혁은 도차연의 뒤를 따라 고급 장소를 드나들면서 부자들의 삶을 체험해 보았고 또 이런 삶
“거기서 안 오고 뭐 해?”도 대표는 엄한 목소리로 호통쳤다.도차연은 어쩔 수 없이 웃음을 짜내면서 아빠 곁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아빠, 언제 돌아오셨어요? 미리 말도 안 하시고.”도 대표는 오늘 밤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전태윤의 연락을 받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몰래 딸의 뒤를 밟으며 딸이 전태윤을 닮은 남자와 다니는 모습을 직접 확인한 후에야 오늘 밤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도 대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도차연은 도 대표 곁에 앉아 말을 잇지 못하는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도차연 어머니 최애라는 남편의 눈치를 보다가도 딸에게 남편이 화가 무척 났다고 눈짓해 주었다.도차연은 조금 전 김지혁이 그녀를 데려다준 것이 생각났다.‘설마 들킨 건 아니겠지?’도차연은 차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올 때 부모님이 방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아빠가 왜 화를 내시지?’“아빠.”도차연은 부모님 앞으로 다가갔고 최애라는 옆으로 살짝 자리를 옮겨 도차연이 앉도록 피해주었다.“아빠, 왜 그래요? 안색이 안 좋으세요. 누가 아빠를 화나게 한 거에요? 저에게 말씀해 주세요. 제가 대신 혼낼게요.”도차연은 팔에 걸고 있었던 가방도 놓지 못한 채 아빠의 곁에 앉아 아빠의 팔짱을 끼며 애교를 부렸다.“아빠께서 이번에 출장 가신지 너무 오래되셔서 엄마와 저도 아빠가 너무 보고 싶었어요.”“출장 다녀오느라 피곤하시죠?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해 드릴게요.”도 대표는 딸을 힐끗 쳐다보며 진지하게 물었다.“오늘 종일 어디 갔었어?”“회사 일 때문에 바빴어요. 아빠가 회사에 안 계셔서 제가 매일 소처럼 일했어요. 너무 힘들었어요.”콜록! 콜록! 최애라는 헛기침을 몇 번 하면서 딸에게 오늘이 주말이라고 일깨워주었다.오늘은 딸이 쉬는 날이었다.도 대표는 부인을 바라보았다.최애라는 방금 남편에게 따라준 미지근한 물잔을 얼른 들어 한 모금 마시더니 입을 열었다.“감기 걸렸는지 기침이 좀 나네요.”“당신이 방금 내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