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훈의 자유로운 생활은 전씨네 할머니 때문에 깨졌다. ‘할머니는 도대체 어떤 역술인을 찾으신 거야... 정말 능력이 있다면 오히려 복권 번호를 추측해 내는 쪽이 빠르겠어, 식은 죽 먹기로 부자가 될 텐데...’소지훈이 떠났다.성기현은 집 앞에 서서 소지훈이 떠나가는 것을 한참 지켜본 뒤에야 돌아서서 집으로 돌아갔다. ...하예진은 노동명과 같이 저녁 식사를 한 후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눈 후에야 우빈이를 데리고 호텔을 떠나 서원 리조트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하예진은 여러 통의 전화를 받았다.모두 전씨 집안의 어르신들이 그녀에게 우빈이가 보고 싶다고, 언제 우빈이를 데리고 오냐는 등 묻는 전화였다.하예진은 지금 돌아가는 길이라고 대답해서야 어르신들의 재촉 전화를 겨우 막을 수 있었다.거동이 불편한 노동명은 주말에 어쩌다 쉬는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서원 리조트에는 따라가지 않았다.노동명은 한 시간 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가 경호원에게 자기를 노씨 저택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방에 들어오기도 전에 노동명은 집안에서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를 들었다. 오랜만에 듣는 웃음소리였다.노동명이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로 집안은 생기라곤 없었다. 기뻐할 만한 일이 있더라도 가족들은 모두 노동명을 피해 뒤에서 몰래 기뻐했다. 그의 민감한 마음을 자극할까 봐 두려워 감히 앞에서 기뻐하지도 못했다.노동명은 이런 가족들이 너무 조심스럽다고 느꼈다.그도 자신이 한때 자포자기한 적이 있었다는 걸 인정한다. 성격도 매우 나빠져서 사람을 보기만 하면 욕하고 싶었었다.부모님은 그의 불같은 성질 때문에 몇 번이나 우셨는지 모른다.하지만 퇴원 후 그는 마음을 열었고 삶에 대한 자신감도 되찾았다.재활도 열심히 하고 자신의 인생을 대해서도 웃는 얼굴로 마주했다.가족들은 이젠 정말로 그들의 웃음이 그의 예민한 신경을 자극할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당분간 들어가지 마요.”노동명이 집 앞에서 경호원에게 나지막이 말했다.“여기에서 잠깐만 앉아 있다가
어머니가 하는 말을 들은 노동명은 어머니가 하예진을 원망하고 있다고 느꼈다.이어 그는 손은경이 어머니의 말에 대답하는 것을 들었다.“아주머니, 감정에 대해 절대 강요해서는 안 돼요. 동명 오빠가 저를 좋아하지 않는 건 인연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잖아요. 아주머니도 이건 팔자라고 하셨잖아요. 동명 오빠가 설사 저와 사귄다고 해도 사고가 나지 않을 거라는 장담을 할 수는 없어요. 또한 동명 오빠도 이젠 현실에 마주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절대 동명 오빠 앞에서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 돼요. 아주머니께서 예진 씨를 원망하고 있다고 생각할 거예요. 예진 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수동적인 위치에 있었어요. 게다가 한동안 동명 오빠를 직접 돌보고 격려도 많이 해줬지만 오빠에 대한 태도가 늘 그대로였잖아요.”윤미라가 또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맞아, 우리도 다 알고 있어. 예진 씨는 아직 동명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동명이가 걸을 수 없는 것 때문에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재혼할 생각을 하지 않은 거지. 전의 결혼생활로 인한 상처가 너무 컸나 봐. 난 예진 씨를 원망하지 않아. 아무 잘못이 없다는 걸 알아. 그냥 동명이 없을 때 해본 소리인걸.”손은경이 윤미라를 위로했다.“아주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오빠는 재활하기를 원하는걸요. 의사도 말했잖아요, 재활을 계속하면 90%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고요. 그리고 요즘 동명 오빠가 가끔 회사에 돌아가서 업무를 처리한다고 들었는데, 오빠의 마음가짐이 좋으면 되는 거예요.”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했다.보통 마음가짐이 좋은 사람이 더 오래 살 수 있는 법이다.윤미라는 그녀의 말에 응했다.“그래도 예진 씨에게 감사해. 비록 동명이의 감정을 받아주지는 않았지만 항상 동명이를 응원하고 격려해 줬어. 예진 씨는 동명이의 버팀목이야. 동명이도 지금 예진 씨를 위해 재활을 계속하고 있는 거야. 아휴, 난 이젠 아무 생각 없어. 동명이가 잘 나을 수만 있다면, 예진 씨가 결혼을 동의해 주기만 한다면 우리 가족은 아무 의
“그래.”윤미라는 직접 손은경을 배웅했다.그녀는 대문 앞에 서서 손은경이 멀어지는 것을 보며 못내 아쉬워했다. 이렇게 좋은 여자아이가 그녀의 아들과 인연이 없는 것을 생각하자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사람과 사람의 인연은 정말 이상하다.노동명은 어느 방면을 보아도 훨씬 우수한 손은경에게는 전혀 마음이 가지 않았고 오히려 평범한 하예진을 마음에 두고 있다.윤미라는 잠시 생각하다가 천천히 집으로 돌아갔다.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아들이 경호원의 부축도 없이 혼자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소파에 가서 앉는 것을 보았다.윤미라는 그런 아들을 보며 매우 감격했다.경호원은 휠체어를 옆에 세워놓은 후 말없이 밖으로 나갔다.“동명아.”윤미라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아들 옆에 앉았고 관심으로 가득 찬 시선은 아들의 두 다리로 향했다. 아들의 다리가 떨고 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또 마음이 아파 손을 뻗어 아들의 종아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아직도 많이 아파?”노동명이 그에 응했다.“처음 혼자 일어섰을 때보다는 통증이 덜해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요. 천천히 좋아질 거예요.”“그래, 차차 좋아질 거야. 너도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해.”노동명이 고개를 끄덕였다.“오늘은 토요일인데 예진 씨는 오늘도 바쁜 거야? 놀러 오라고 하지 그래? 우빈이가 좀 보고 싶구나.”“태윤이가 예정 씨를 데리고 리조트에 휴가를 보내러 갔어요. 정남이네 부부도 같이 따라갔고요. 전씨 집안 어르신들이 예진에게 빨리 우빈이를 데려오라고 재촉하셔서 예진이는 이미 리조트로 떠났어요. 아마 일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태윤이네랑 함께 시내로 돌아올 거예요.”노동명은 자기 다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서원 리조트에 못 가본 지 오래돼서 가보고는 싶은데 내가 가면 다른 사람들의 기분에 영향을 줄까 봐 걱정돼요. 내가 가면 마음 놓고 즐겁게 놀 수도, 내가 괴로워할까 봐 너무 기뻐하지도 못할 거잖아요. 날 챙기느라 마음대로 놀지도 못할 거니까 그냥 가지 않기로 했어요.”노동명은 유난히 옛날이 그리웠
윤미라가 이어 말했다.“깨어난 건 그래도 좋은 일이야. 우빈이가 아직 나이도 어린데, 이렇게 어린 나이에 아빠를 잃으면 얼마나 불쌍해.”노동명이 한마디 했다.“우빈이랑 주형인은 감정이 별로 깊지 않아요. 주형인은 예전에 우빈이를 그냥 예정 자매에게 맡겨놓고는 아무것도 안 한 걸요. 어쩌다가 생각이 나면 놀아주곤 했지만 아이를 울리기 일쑤였어요. 주형인의 부모들도 마찬가지예요. 우빈을 대해서는 아끼는 듯 보이지만 정작 진심으로 관심하는 것도 아니었고요. 아이는 자신을 보살펴준 사람이랑 많이 친하게 되잖아요? 우빈이는 예정 씨랑은 한 가족처럼 친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고모랑은 친하지 않아요. 예진이가 우빈이의 양육권을 쟁취한 게 다행이에요. 우빈이는 예진 씨를 따르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에요.”윤미라가 응했다.“지금 주씨 일가들 우빈이랑 감정을 키우려고 필사적으로 애를 쓰는걸 보면 이미 늦었다고는 하지만... 그 모습을 보면 몇 마디 비꼬고 싶은 생각이 들어.”노동명도 사실 주씨 가족에게 불만이 많다.그는 주씨 일가를 매우 싫어했다.특히 주서인은 교활한 데다가 아주 뻔뻔했다. 예전에 하예진에게 그렇게 못되게 굴고는 지금은 하예진이 장사를 해서 돈을 버는 것을 보고 또 달려들어 피를 빨고 싶어 한다.“우빈이의 고모는 제가 본 사람 중 가장 파렴치한 사람이에요.”노동명은 참다못해 욕을 뱉었다.그는 주형인의 병실에서 보고 들은 것을 어머니에게 말해주었다.“정말 파렴치하기 짝이 없어요. 가족 전체가 다 쓰레기예요. 예진이가 정말 잘 거절했어요. 이런 쓰레기는 상대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니까요. 하도 예진이가 마음씨가 착해서 전 시댁과의 관계를 끊지 않은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이혼 후 바로 아들을 데리고 멀리 떠나 다시는 연락하지 않았을 거예요.”노동명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이혼 합의서에는 주씨 일가가 언제든지 우빈이를 볼 수 있다고 쓰여 있어요. 주형인도 양육비를 꼬박꼬박 보내고 있고요. 어쨌든 아이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
언니가 곧 도착한다는 것을 알고 하예정은 리조트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전태윤은 당연히 그녀와 함께 기다렸다.하예정은 기다리면서 하품을 몇 번이나 했다.그 모습을 본 전태윤이 말했다.“시내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거리가 멀어서 먼저 가서 쉬고 있으라니까. 쉬다가 깨어나면 도착할 때가 된다는데 왜 말을 안 들어. 지금 하품만 몇 번 한 거야.”하예정은 또 하품을 하며 말했다.“누운 후에 다시 일어나지 못할까 봐 그래요. 이런 날씨에 에어컨을 틀고 자면 잘수록 더 몸이 나른해져서 점점 더 일어나기 싫어지는걸요.”깨우지 않으면 오후 내내 잘 수 있을 것만 같았다.“환절기 때문인가 봐. 환절기가 되면 나른해지기 쉬워.”전태윤은 아내의 손을 잡고 자기 얼굴 쪽으로 끌어당기더니 손등에 뽀뽀하고는 다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부드러운 눈길에는 사랑으로 가득했다. “여보, 곧 우리의 결혼 일주년이잖아? 나한테 어떤 선물을 준비해 줄 거야?”하예정은 손을 빼내고는 일부러 남편의 얼굴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아직 생각하지 못했어요. 보름이나 남았잖아요. 지금 난 지연이랑 지호에게 무슨 선물을 준비할지 생각 중이에요. 곧 백일 잔치잖아요?”전태윤은 불쌍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그 두 아이는 예 대표의 아이들이잖아. 그 아이들이 나보다 더 우선인 거야? 내가 실망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마음이 안 아파?”결혼기념일에 아내가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받지 못하면 전태윤은 적어도 일 년 동안 슬퍼할 것이다.하예정이 웃으면서 대답했다.“정말 아직 생각하지 못한 거예요. 말해봐요, 당신 어떤 선물을 원하는 거죠? 당신이 원하는 걸로 선물해 줄게요.”그녀는 그날 하루 휴식하면서 남편과 함께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준비할 선물로는 옷, 넥타이, 시계 외에도 목걸이, 결혼 1주년 다이아몬드 반지 등을 생각했다.기념일 당일 하예정은 직접 요리를 해서 세 끼를 차릴 생각이다. 저녁은 조금 더 신경을 써서 로맨틱한 촛불 만찬으로 말이다.전태윤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하예진은 리조트 입구에 차를 세웠다.“우빈아, 일어나. 이모 집에 도착했어.”하예진은 고개를 돌려 아들을 불렀다.꼬마는 차에 타자마자 잠이 들어오는 내내 잤다.우빈이는 달콤하게 잠을 자고 있었다. 어머니의 부르는 소리도 그를 깨우지 못했다.하예진은 먼저 차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언니.”하예정의 얼굴에는 찬란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전태윤도 다가와 처형과 인사했다.“날도 더운데 여기서 이렇게 같이 기다린 거야? 더워 죽겠어, 빨리 들어가. 난 차를 몰고 들어갈게.”전태윤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처형이 온다는 말을 듣고 예정이가 시간을 세더니 거의 도착할 것 같다면서 굳이 나와 기다리겠다고 하지 뭐예요.”하예진은 동생에게 몇 마디 꾸중했다.“나와 기다리면서 양산도 챙기지 않고.”“괜찮아. 우리 아까는 경비실에 잠깐 앉아 있었는데 뭐. 그곳에 에어컨도 있단 말이야. 시간이 거의 된 것 같아서 태윤 씨랑 나와보다가 언니 차를 본 거야.”하예정이 조카를 찾았다.“우빈이는?”“차에서 잠들었어. 깨워도 깨나지 않아.”“먼저 자게 놔둬. 언니는 차 몰고 들어가서 세우고.”말하면서 하예정은 조수석 문을 열고 차에 탔다.전태윤은 차 뒷좌석에 앉아 우빈이가 차 의자에 기대어 달콤하게 자는 것을 보고 아이를 안아 자기 품에서 재우고 싶었다. 안으려고 손을 댄 찰나 우빈이가 깨어났다.눈을 뜬 꼬마는 전태윤을 보자마자 방그레 웃으며 애티 나는 목소리로 불렀다.“이모부.”“우빈이 벌써 깨났어? 더 잘래? 이모부 품에서 잘까?”우빈이는 전태윤의 품에 머리를 기대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아이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에 전태윤의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아이의 작은 얼굴에 뽀뽀했다.어쩐지 어르신들이 그들 부부가 우빈이를 데리지 않고 주말을 보내러 온 것을 보고 표정이 별로 좋지 않더라니... 모두 귀여운 우빈이를 보고파서였다.하예정은 사석에서 남편에게 말했다.“앞으로 우리가 돌아올 때 우빈이를 데리고 함께 오지
하예진이 응했다.그녀는 곧장 차를 몰고 안채로 갔다.얼마 뒤 차가 안채에 도착했다. 차를 세우자마자 장소민이 방에서 마중 나왔다.장소민은 계단을 내려와 차 앞으로 다가가더니 하예진에게 물었다.“우빈이 데리고 온 거죠?”하예진도 웃으면서 말했다.“계속 전화해서 재촉하시는데 제가 어떻게 안 데리고 오겠어요. 뒤에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잠들었어요.”“잠들어도 괜찮아요. 지금 점심시간이라 저도 방금 일어난걸요.”우빈이가 뒤에 있다는 말을 듣고 장소민은 뒷좌석의 문을 열려고 했다. 그때 마침 전태윤이 안에서 차 문을 열었다. 장소민은 전태윤이 우빈이를 안고 내리려고 하는 것을 보고 급히 두 손을 내밀며 말했다.“우빈이 나한테 안겨.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하고.”전태윤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제가 부딪치는 건 걱정되지 않으세요?”“넌 가죽이 두꺼워서 조금 다쳐도 괜찮아. 기껏해야 껍질이 좀 벗겨지겠지.”장소민은 아들의 손에서 부드럽게 우빈을 안아갔다.우빈을 품에 안은 후 그녀는 나머지 세 사람을 놔두고 먼저 집으로 들어갔다.하예정이 웃기다는 듯 말했다.“어머님 말이에요, 우리한테는 눈길 한번 주시지도 않네요.”“다리가 있으니까 알아서 스스로 걸어 들어갈 수 있잖아. 여기는 너희들 집이니까 따로 가이드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시겠지. 너희들을 손님으로 모실 수는 없잖아.”하예정이 웃으며 언니에게 말했다.“언니는 몰라서 그래. 어제저녁 나랑 태윤 씨가 돌아왔을 때 어머님과 아버님은 먼저 우리 차 주위를 맴도시며 우빈이부터 찾으셨어. 차 안에도 우빈이의 모습이 안 보이자 그제야 우리에게 물으시는 거야. 우빈이를 데려오지 않았다고 알려드리니까 어떤 눈길인지 알아? 마치 우빈이도 데려오지 않고 둘만 돌아와서 뭐하냐고 말하는 듯한 눈길이셨어.”하예진도 웃으며 말했다.“우빈이는 참 행복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까 말이야.”우빈이는 어디를 가나 인기가 많았다.자매는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하예진은 전태윤에게 차 안에 선물
우빈이가 온 후 안채는 곧 떠들썩해졌다.친이모인 하예정은 우빈의 곁에 다가갈 기회도 없어 아예 언니를 데리고 리조트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러 나갔다.서원 리조트의 풍경은 계절마다 다른 특색이 있었다.봄이 되면 온 리조트가 봄기운으로 가득하여 이루 다 감상할 수 없다.여름이 되면 연꽃이 아름답게 피었다.가을에는 산기슭이 단풍으로 물들었다.겨울은 눈을 보는 계절이지만 관성에는 눈이 내리지 않아 설경을 즐길 수 없다. 그래도 리조트의 아름다움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주형인은 어떻게 됐어?”하예정이 언니에게 물었다.“회복 꽤 잘 되고 있어. 방금 깨어났을 때보다 오늘은 컨디션이 많이 좋아졌는데 아직 침대에서 내려와 걸을 수는 없어. 서현주는 주형인을 정말 죽이고 싶었는지 찌른 곳마다 치명적인 상처였잖아. 살아난 것이 기적이라고 의사 선생님도 말했어.”하예정이 잠자코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주형인이 살아 있는 이상 우빈이에게는 자기 친아버지가 있는 거야. 뭐 언니에게는 영향을 미칠 게 없으니까 가끔 우빈이를 데리고 가보면 돼.”하예진이 답했다.“나랑 주형인의 사이가 틀어져서 결국 이혼했지만 우빈이의 친아버지이기도 하고 나도 그 사람이 죽기를 바란 적은 없어. 주씨네가 우빈이를 이틀 정도 병원에 남겨두고 싶어 했는데 우빈이가 거절했어.”하예정이 코웃음을 쳤다.“예전에는 우빈이를 장난감 취급하더니 꼴 좋네. 기분이 좋을 때는 놀아주다가 싫을 때는 쳐다보지도 않았으면서. 우빈이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늘 자기가 직접 키워온 손자를 더 예뻐했지. 우빈이도 그쪽이랑 친하지 않으니까, 언니가 옆에 없는데 당연히 병원에 남아 아빠랑 같이 있고 싶지 않은 거지 뭐.”아무리 가족이라도 감정은 쌓아가야 하는 법이다.할아버지, 할머니로서 손자와 잘 지내본 적도 없고 데리고 놀아준 적도 없으니 손자가 그들과 친할 리가 있을까?“동명 씨도 같이 따라갔었어.”하예진이 한마디 보탰다.하예정은 순간 깨달았다.“어쩐지 우빈이를 병원에 남기고 싶어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