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혜는 텔레비전 리모컨을 들고 채널을 끊임없이 돌리며 남편에게 말을 건넸다.“요즘 드라마는 정말 별로예요. 예전처럼 재미있지도 않고 배우들은 다 비슷하게 생겼잖아요. 제가 시대에 뒤떨어져서 그런지, 미에 대한 관념이 특별해서 그런지 모르겠다니까요.”성문철이 웃으면서 대답했다.“당신이 TV를 잘 안 봐서 그래. 볼 시간도 없잖아. 언제 TV를 재미있게 보기나 했어?”“음악을 틀어서 들어보기나 해.”이경혜는 퇴직하기 전에는 일을 중시하는 유능한 여성이었다. 매일 일 때문에 바빠서 TV를 볼 시간도 없었다.예전에는 자식들이 어려서 일이 끝나면 세 아이의 학업에 신경을 써야 했고 아이들이 모두 자고 나면 이미 밤이 깊어진 터라 TV를 볼 여력과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제때 일어나서 일과를 시작해야 했다.성씨 그룹 장남이 성씨 그룹을 맡을 능력이 있었기에 성문철 부부가 회사의 일에 신경 쓰지 않고 퇴직할 수 있었다. 그 뒤로 집에 있게 되면서부터 비로소 한가해지게 되었다. 이경혜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억하면서 말했다.“그러네요.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TV를 보지 않았네요. 그 시간이면 뒷마당에 땅을 만들어 채소와 과일을 심는 게 나아요.”“당신이 심고 싶다면, 저녁때 해가 지고 날씨가 덥지 않으면 우리 함께 흙을 갈아엎고 땅을 만들면 돼. 채소와 과일도 심고 앞마당에 당신이 좋아하는 꽃도 심고. 매일 그 꽃들을 돌보기만 해도 너무 지루하지 않을 거야.”성씨 그룹의 권력 중심에서 물러난 뒤로 부부는 연회에도 거의 참석하지 않았고 친분이 두터운 사람들의 연회에만 얼굴을 내밀곤 했다.침착한 발소리를 들은 성문철이 입을 열었다.“기현이 돌아왔어.”이경혜는 맞는다면서 현관문을 바라보았다.곧 장남의 훤칠한 자태가 이경혜의 시야에 들어왔고 성큼성큼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성기현의 손에 든 서류봉투를 본 이경혜는 자신이 장남에게 조사하라고 시킨 일을 떠올리게 되었고 이내 TV를 꺼버렸다.그리고 장남이 다가오자 물었다.“기현아. 잘 조
이경혜의 말이 끝나자마자 성소현과 예준하가 급한 걸음으로 들어왔다.아까 집사가 두 사람을 찾아가 큰 도련님께서 지금 돌아오라고 하신다고 전했다. 그래서 둘은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빨리 달려왔다.“엄마, 오빠, 무슨 일인데요? ”성소현이 다가오면서 물었다.그녀는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가족들을 둘러보더니 곧장 어머니 곁에 다가가 앉아 어머니의 손에 들고 있는 자료들을 가져다 보며 물었다.“엄마, 이것들은 뭐예요?”예준하도 조용히 이경혜의 표정을 살펴보았다.성소현의 옆에 한 사람이 더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비어있었지만, 그는 일부러 성기현과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찾아 앉았다.이경혜가 아직 자신을 완전히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예전에 비해 태도가 조금 더 좋아졌을 뿐이다.이경혜의 코앞에서 성소현과 너무 다정한 관계를 보일 담이 없었다.“아무 일도 없어. 네 오빠가 강성의 이씨 가문의 사람들을 조사해서 자료를 좀 정리한 것뿐이야. 소현이 넌 예준하 쪽에 있지 않았어? 인테리어는 어떻게 됐어?”이경혜는 예준하를 힐끔 쳐다보더니 딸에게 물었다.성소현은 손에 들고 있는 자료들을 보면서 대답했다.“아까 오빠가 집사를 불러 나와 준하에게 집으로 돌아오라고 알려서 온 거에요. 난 또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서둘러 왔죠 뭐.”이경혜는 미소를 지었다.“그래? 어쩐지 둘이 같이 왔다 했어.”그녀는 문득 딸이 예준하와 사귀는 것에 동의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예준하는 A시 사람이지만 관성에 부동산이 있고, 현재 인테리어를 하는 별장도 그들 성씨 일가의 집과 이웃이다.만약 집에 무슨 일이 있다면 5분도 안 돼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두 사람이 정말 결혼해서 같이 살게 된다면, 성소현은 하루에 수십 번이나 친정집에 갈 수 있다.“인테리어는 아직이에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할 생각이라서요. 퀄리티가 우선이잖아요.”인테리어와 관련된 질문에 대답한 것은 예준하이다.현재 인테리어를 하는
조용히 듣고 있던 성소현이 입을 열었다.“정말 증거가 하나도 없어?”“아직은 아무것도 못 찾았어. 아마도 시간이 너무 짧아서일 수도 있으니 천천히 찾다 보면 뭐라도 찾을 수 있을지 몰라. 하지만 너무 큰 희망은 품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수십 년이나 지난 지금 증거가 있다고 해도 이미 다 지워버렸을걸. 그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도 얼마 없을 거야.”성소현은 더는 뭐라 하지 않았다.이경혜는 그런 딸을 보며 말했다.“너희들은 이 일에 대해 너무 신경 쓰지 마. 엄마가 시간이 있으니 천천히 증거를 찾으면 돼. 정말 완벽하게 모든 증거를 없앨 수는 없을 테니까.”“아주머니, 저도 큰형님께 말해볼게요. 형수님의 친정에 조사를 부탁드려도 되고, 주 대표님께 부탁드려도 도움이 될 거로 생각해요.”주재풍은 곽씨 가문의 사위이다. 곽씨 가문도 소씨 가문처럼 정보에 능통하다.“필요할 때 말씀드릴게요, 고마워요.”이경혜는 예준하의 도움을 거절하지 않았다.사람이 많으면 힘도 큰 법이다.또한 이런 일은 전문적인 사람에게 맡기는 편이 훨씬 효율적일 것이다.“조금 있다가 큰형에게 전화하겠습니다.”예준하는 자신을 표현할 좋은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했다.미래의 장모님을 도와 이번 일을 해결할 수 있다면, 장모님의 마음에 들어 가산점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여인을 품에 안을 수 있을 날이 머지않을 것 같았다.이때 집사가 다가와서는 먼저 성소현을 한번 힐끔 보더니 이경혜에게 말했다.“소 도련님께서 아가씨께 드릴 꽃다발과 액세서리, 그리고 기타 선물들을 들고 오셨습니다.”“...”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소지훈은 성소현에게 고백하기 시작한 이후로 정말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존재감을 드러냈다.그는 직접 찾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계속 선물을 보내왔다. 이는 매일 예준하의 신경을 건드렸다. 성소현도 이런 소지훈에 대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 때문에 예준하는 업무를 처리하는 시간을 줄였고 더욱 많은 시간을 들여 성소현의 곁에 붙어있었다. 자기가 옆에
성소현도 소지훈이 자신을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또한 그녀도 부잣집 출신이라 비싼 물건들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어 그의 공세에 함락되지 않았다.그녀는 소지훈이 보내온 꽃다발 외의 선물들을 모두 따로 놔뒀다.이제 소지훈이 더는 이런 행동을 하지 않을 때 다시 그에게 돌려줄 생각이었다.성소현은 적어도 예준하와 약혼 또는 결혼을 해야만 여태 받은 선물들을 소지훈에게 돌려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만약 지금 바로 선물들을 돌려주면, 소씨 일가의 현임 가주가 이 일을 알게 되어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른다. 소씨 일가 현임 가주의 크레이지 한 면에 대해 성씨 일가 사람들은 모두 잘 알고 있다.한마음 한뜻으로 장남을 바른길로 이끌어가려고 하는 소씨네 현임 가주가 소지훈이 성소현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는 성소현의 의견도 고려하지 않고 바로 성씨 일가를 방문하여 혼담을 꺼낼 것이다.성소현은 이미 소지훈의 행동 때문에 골치가 아플 대로 아팠다. 만약 여기에 소씨네 현임 가주까지 참여한다면... 평온한 날이 없을 것이다.그래서 참을 수밖에 없다.그녀의 가족들도, 예준하도 어찌할 방법이 없어 참고 있다.예준하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성소현에게 더욱더 잘해주어 성씨 일가에게 잘 보이는 것뿐이다.그는 소지훈이 꽃다발 외의 다른 선물을 보낼 때마다, 꼭 비슷한 것을 골라 성소현에게 선물했다. 소지훈이 성소현의 마음을 빼앗아 갈 틈을 주고 싶지 않았다.곧 소지훈이 들어왔다.그는 빈손으로 들어왔는데, 그가 사 온 선물은 모두 도우미에게 부탁해 들여오라고 했다.“어? 시끌벅적하네요. 제가 오는 걸 알고 일부러 기다리신 건 아니겠죠?”소지훈은 거실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보며 호탕하게 웃고는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는 빈 소파가 없는 것을 보고도 어색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예준하의 곁으로 다가가 말했다.“준하 씨, 우리 둘이 좀 비집고 앉을까요?”예준하가 이경혜 부부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걸 본 소지훈은 그의 곁에 나란히 앉아
소지훈은 아버지의 재촉에 불만이 많이 쌓여있었다.역술인도 인연을 강제로 찾을 필요 없다고 했다. 때가 되면 그의 마음에 맞는 여자가 나타나 그도 정상적인 남자로 될 거라고 했다.하지만 성미가 급한 아버지는 소지훈에게 나이가 적지도 않은데 언제 하늘의 뜻을 기다리겠는가 한다. 만약 하느님이 깜빡 졸고 인연을 맺어주지 않는다면, 평생 독신으로 살게 될 것이라고 했다.이에 소지훈은 이제 30대인 자기가 아직 늙지 않았다고 반박하고 싶었다.‘아직 마흔도 되지 않았는데... 마흔이 되었다고 해도 한창 장년이란 말이에요.’지금의 사람은 수명이 보편적으로 길어 소지훈은 자신이 100세까지 사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아직 30대 중반일 뿐인데, 전혀 조급해할 필요가 없었다.성기현이 참지 못하고 웃으며 말했다.“전씨네 어르신도 지훈 씨 아버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역술인을 내세워 달래셨던 것 같아요.”현명해만 보이던 소씨네 현임 가주가 정말 결혼을 재촉할 줄을 누가 알았을까?그 때문에 소씨 일가의 젊은 세대들은 만약 결혼 적령기가 되어도 남녀 친구가 없으면 모두 도망갔다. 모두 출장을 가지 않으면 아예 출국해 버렸다. 어쨌든 절대로 관성에 남아있지 않았다.현임 가주가 결혼하라고 재촉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소지훈이 결혼 독촉을 거세게 받는 것을 보고 그의 경호원들조차 머리가 아파 났다. 현임 가주가 그들의 결혼문제까지 해결해 줄까 봐 두려웠다.“지훈 씨, 아버지 때문에 아주 힘들다는 건 이해가 가지만, 그 불쾌함을 저에게까지 전달해 주시는 건 아니지 않나요? 여태 지훈 씨가 준 선물들을 전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어요. 오늘 이렇게 오셨으니, 모도 도로 가져가는 건 어때요? ”성소현은 자신도 소지훈 때문에 영향을 받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진작부터 지훈 씨에게 돌려드리고 싶었어요. 혹시라도 당신 아버지에게 들킬까 봐 줄곧 돌려주지 못한 거예요.”이에 소지훈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제 선물이 싫다면 다른 사람에게 주든지, 아예
소지훈의 눈길이 서류 쪽으로 갔다.그걸 눈치챈 이경혜는 숨기지 않고 말했다.“참, 소지훈 씨, 제가 부탁이 하나 있는데...”만약 소씨 일가가 도와준다면, 부모님이 사망한 진짜 원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경혜는 생각했다.소지훈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편하게 얘기하세요.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꼭 도와드리겠습니다. 최근에 소현 씨에게 폐를 끼쳐서, 사실 저도 마음속으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사모님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다면 저도 마음이 한결 편해질 겁니다.”소지훈은 성소현이 제수씨와 관계가 좋은 것을 잘 알고 있다. 제수씨의 체면을 봐서라도 도와줄 것이다.이경혜는 자신의 신상과 부모님이 의외로 사망한 일을 소지훈에게 알렸다.소지훈은 이경혜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일어나 가려고 했다.성기현과 예준하는 거의 동시에 일어나서 그를 잡아당겨 제자리에 앉혔다.“폐를 많이 끼친 것 같으니 전 이만 먼저 물러나겠습니다.”이경혜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소지훈 씨, 혹시 도와주실 생각이 없는 건가요?”“사모님, 제가 돕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다시 증거를 찾는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조사한다고 해도 알아낼 수 있을 일이 아니라서요. 애초에 이 일을 계획한 사람도 아무 흔적을 남기지 않았을 거로 생각해요. 그 당시 흔적을 남겼다고 해도 긴 세월 속에 묻혀버린 지 오랄 거예요. 이 일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도 이미 다 이 세상을 떠났을 거고요. 이 일은 정말 제가 돕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도와드리기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제가 승낙을 했다가 결국 유용한 정보를 내놓지 못하고 성씨 일가의 기대를 저버리게 될까 봐 걱정되네요.”소지훈은 이런 일에 처음부터 개입하지 않는 편이 좋을 거로 생각했다.그는 자신이 그 서류들에 눈길이 간 것을 후회했다.‘어이구, 쓸데없는 호기심하곤.’잠자고 지켜보고 있던 성소현이 물었다.“지훈 씨, 정말 아무 정보도 캐낼 수
성소현은 자신이 어머니의 유일한 딸이라는 것을 생각하자 머리가 아팠다.만약 어머니가 정말 이씨 일가의 가주 자리에 앉게된다면... 딸인 그녀가 그 자리를 이어 앉아야 할 것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그만한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다.성소현은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어머니의 생각을 돌려놓기로 했다.“엄마, 이제 정말 이씨 일가의 가주 자리에 앉게 되거든 절대 그 자리를 저에게 물려줄 생각 하지 말아요, 알겠죠? 엄마 딸이 어떤 사람인지 엄마도 잘 알 거 아니에요. 전 한 가문을 이끌어가는 등 무거운 짐을 질 능력이 없어요. 오히려 예정이가 나보다 잘 맞을 것 같아요. 예정에게 몇 년의 시간만 주면 훌륭한 가주 후임자로 성장할 수 있을 거예요.”성소현은 하예정을 끌어내 방패로 삼았다. 우선 책임을 떠넘기고 볼 생각이었다.이경혜는 그런 딸을 흘겨보며 말했다.“예정이가 지금 얼마나 바쁘게 보내고 있는데, 넌 그런 말이 나와? 앞으로 전씨 일가의 안방마님이 되어야 할 몸이야, 스트레스가 얼마나 크겠어? 그런 아이에게 어떻게 이씨 가문이라는 무거운 짐까지 맡길 수 있겠어?”“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어쨌든 저에게는 그런 책임을 떠맡을 능력이 없으니까요. 전 머리가 그 정도로 똑똑하지도 않아서 큰일을 도맡는 건 무리라고요. 예정이가 안된다면 예진 언니에게 맡기면 되잖아요. 예진 언니가 우리 셋 중 맏이 아닌가요? 이씨 일가의 장녀는 하나같이 우수하다고 하지 않았나요? 엄마와 이모를 봐요. 엄마도 대단한 사람이지만 저 하나만 낳았어요. 하지만 이모에게는 딸이 둘이나 있고, 예진 언니가 이모의 장녀이니 제일 능력 있는 사람일 거예요. 이제 가주 자리에 오르거든 예진 언니보고 그 자리를 이어라 해요.”성소현은 자기 아이디어가 아주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진 언니가 이씨 집안의 가주가 된다면... 노 대표와도 어울릴만한 신분을 가지게 되는 거 아니에요? 그다음 노 대표와 사귄다 해도 너무 큰 부담 없게 될 거니 일거양득이죠.”소지훈이 입을 열었다.“예진
이경혜 모녀가 얘기를 나눌 때 소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모녀가 더 이상 이씨 가문은 누가 이을지에 대해 논의하지 않자 소지훈은 다시 일어나 인사했다.“여러분 얘기하는 것에 더 이상 방해하지 않고 먼저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시간 나면 식사 대접하겠습니다.”성씨 일가가 더 이상 만류하지 않았다. 이경혜는 아들에게 소지훈을 밖까지 배웅하라고 했다.성기현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지훈은 거절하지 않았다.안방을 나서자 성기현이 소지훈에게 물었다.“지훈 씨, 제 여동생에게 마음이 없으면서 언제까지 연기를 할 겁니까? 누가 연기하라고 시킨 거예요?”성기현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감히 소지훈에게 이렇게 행동하라고 강요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글쎄요, 말하기 싫어요. 창피해요.”성기현은 말이 안 나왔다.소지현은 장연준과 한 내기에서 져서 무조건 그의 말대로 해야 했다.장연준이 제기한 조건은 예준하와 성소현이 약혼하기 전에 성소현에게 ‘구애'해야 한다는 것이다.이경혜는 예준하의 집이 다른 도시에 있어 너무 멀다고 싫어하고 있다.반면 소지훈은 같은 관성 사람이니 아주 가까웠다.하지만 이경혜가 감히 자기 딸을 소지훈에게 시집보낼 수 있을까?그건 불가능했다.이경혜는 소지훈과 비교하면 예준하가 훨씬 좋다고 생각되었다.“성 대표님, 듣기로는 사모님께서 소현 씨에게 자신의 마음에 드는 다른 우수한 남성을 소개해 줄 생각이라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성기현이 대답했다.“...이런 일이 있다고요? 저는 전혀 들은 바가 없어서.”‘엄마도 참 열심이셔.’이럴 때일수록 어머니의 신상에 대한 일은 어머니 스스로에게 맡겨 천천히 조사하게 하는 것이 적절했다. 동생과 예준하를 괴롭힐 시간이 없게 말이다.“있거나 없거나 성 대표님께서 어머니께 말씀 좀 전해주세요. 만약 소현 씨에게 또 다른 남자친구를 소개해 주실 생각이라면 제가 찾아가 소현 씨는 제 여자친구라고 말할 생각이라고요. 누가 감히 저한테서 여자를 빼앗을 담이 있겠어요?”“...지훈 씨,
하지만 하예정은 아직 용씨 가문 사모님과 여운별이 한자리에 함께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기에 그녀가 여운별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두 사람이 동시에 눈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 의혹을 완전히 떨쳐낼 수 없을 것이다.여운별은 애초에 하예정을 기다리지 않았다.지금 두 사람의 만남은 우연이어야 했다. 만약 그녀가 미리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 너무 작위적으로 보였을 것이다.지나친 의도는 하예정의 의심을 부추겼을 것이다.하예정이 그녀를 조사하고 있다고 용태호가 알려준 적이 있었다.물론, 아무리 뒤져도 쓸 만한 정보는 나오지 않을 터였다.하예정은 이미 그녀가 여운별일 거라고 의심하고 있었다.여운별은 문득 가장 증오하는 얼굴이 떠올랐다. 언젠가 마주했던 언니의 목소리, 그 익숙한 울림이. 하예정의 의심을 부추긴 것은 분명 여운초의 말 때문일 것이다.하지만 다행히도 용태호는 능수능란한 사람이었다.하예정이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이었다.그녀가 찾아낼 수 있는 건 모두 그의 손끝에서 빚어진 허상일 뿐이었다.그러나 하예정이 심효진과 친밀한 사이라는 점은 우려할 만했다. 심효진은 소씨 가문의 며느리였고, 소씨 가문은 정보망이 촘촘하기로 유명했다.하예정이 누구를 조사하려면 소씨 가문의 손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하예정은 빈손이었다. 여운별이 여씨 가문의 둘째 딸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여운별은 마음 한편이 가벼워짐을 느꼈다.그리고 그 여유는 곧 그녀의 표정에 스며들어 하예정을 마주할 때면 그녀는 점점 더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었다.마치 자신이 진짜 용씨 가문 사모님인 것처럼, 여운별이라는 사람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듯 말이다.용태호는 그녀한테 내일 밤에 있을 연회에 두 명의 경호원과 함께 참석하라고 말했다. 용씨 가문 사모님의 신분으로 참석하라는 것이었다.그 연회에는 관성시 상류 사회의 귀부인들이 모일 터였다.전씨 가문의 명해은도 내일 밤 연회에 참석할 예정이며 며느리인 여운초도 데려갈
하예정이 자주 타는 차는 이미 집 앞에 멈춰 서 있었다.경호원은 우빈에게 차 문을 열어주곤 그를 차에 태운 뒤 안전벨트를 매주었다.하예정은 차에 올라타자마자 하이힐을 벗고 편안한 신발을 갈아 신고는 말했다. “우빈이 안전벨트 다 맸어?”하예정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아저씨가 우빈이 도와서 안전벨트 다 매주셨어요. 작은이모, 이제 출발하셔도 돼요.”하예정은 웃으며 고개를 돌린 뒤 시동을 걸었다.20분 뒤 두 대의 차가 유치원 앞 주차장에 멈춰 섰다.하예정은 차에서 내렸다.우빈이는 이미 스스로 안전벨트를 풀고 작은 책가방을 메고 있었다. 하예정이 차 문을 열자 우빈은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이모, 오후에 아저씨가 데리러 올 때 내 캐리어도 챙겨달라고 부탁해 주세요.”“집에 먼저 들르지 않을 거니?”하예정이 웃으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집에 가서 밥부터 먼저 먹고 갈래?”우빈은 큰 눈을 반짝이며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아저씨는 절대 나를 배고프게 하지 않아요. 아저씨랑 가면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어요.”우빈에게 있어서 노동명은 이미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다. 아이에게 아버지는 언제나 거대한 나무와 같아서 그 곁에 있으면 세상 어떤 두려움도 사라지게 된다.하예정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우빈이 노동명에게 전적으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하예정에게는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노동명과 하예진이 결혼을 한다면 세 사람은 분명히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될 것이다.하지만 이혼 후 아이를 홀로 키우며 재혼하는 여자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 두 번째 남편 또는 그의 가족들이 아이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받아들인다 해도 그 아이를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명과 그의 가족들은 우빈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해 주고 있었다. 그 사실이 바로 하예진이 노동명에게 마음을 열게 된 이유였다.노씨 가문은 노동명이 평생토록 우빈만을 아들처럼 생각하며 지내도 괜찮다는 마음이었다.비록 우빈은 노동명의 친아들이
“잘 자요.”하예정은 남편에게 조용히 인사를 건넨 뒤, 문을 살며시 닫았다.전태윤은 문 앞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그가 먼저 서재에서 자겠다고 말했지만 아내에게 밀려 나가며 문이 닫히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쫓겨난 기분이 들었다.전태윤은 콧등을 문지르며 어쩔 수 없이 서재로 발걸음을 돌렸다.그날 밤은 그렇게 고요하게 보냈다.다음 날 아침, 전태윤이 일어났을 때 그의 아내는 이미 일어나 있었다. 그를 위한 꿀물도 준비해 놓았다.“여보, 좋은 아침이에요.”하예정은 조카 우빈이가 아침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우빈의 작은 책가방을 들고 우빈이와 부엌을 나오던 참에 막 내려온 전태윤을 마주쳤다.그녀는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다.“꿀물을 준비했어요. 마시는 거 잊지 마요.”전태윤은 어젯밤 술에 취하지 않았지만 독한 술을 마셨던 기억이 떠올랐다.숙취로 인한 두통을 걱정한 하예정은 그를 위해 세심하게 꿀물을 준비한 것이다.전태윤이 이렇게 다정하고 배려 깊은 아내를 만난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다.하예정은 그렇게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알겠어, 좀 있다 마실게. 오늘 꽤 일찍 일어났네.”평소에는 항상 그가 먼저 일어났었다.“네, 우빈이가 일찍 일어나서요.”“이모부!”우빈은 맑은 목소리로 전태윤을 불렀다.전태윤은 다가가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유치원에서 말 잘 들어야 해.”우빈은 대답했다.“저 말 잘 들어요. 아주 잘 듣고 있어요. 선생님과 친구들이 저를 엄청 좋아해요.”“그래, 그래, 모두가 너를 좋아하고말고.”전태윤은 웃으며 우빈의 작은 얼굴을 가볍게 꼬집었다.우빈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그럼요, 남녀노소 누구나 다 저를 좋아해요. 관성에서 가장 잘나가는 어린이라고요.”하예정은 웃음을 터뜨리며 우빈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렸다.“그거, 지율 삼촌한테서 배운 거지?”전지율은“관성에서 내가 제일 잘 나가”를 늘 입에 달고 다녔다.우빈은 전지율과 자주 놀았기 때문에 그에게서 이런 말장난을 배운
“술 냄새도 별로 안 나요. 제가 잠들면 천둥이 쳐도 깨지 못할걸요. 이렇게 고생스레 서재에서 밤을 보낼 필요 없어요.”하예정은 그녀의 아랫배에 올려놓은 전태윤의 큰 손을 잡으며 말했다.“내가 샤워도 하고 따뜻한 물도 마시고 껌 두 알을 먹어서 술 냄새를 좀 없앴어... 창빈이가 그러는데 내 몸에 술 냄새가 심하다고 그러던데.”하예정은 작은 소리로 전창빈을 몇 마디 욕했다.전창빈은 진실만 말했을 뿐인데도 말이다. 전창빈은 전태윤이 입만 열면 술 냄새가 확 난다고 느꼈다. 그리고 전태윤 본인도 자신의 몸에서 술 냄새가 풍겨 하예정이 맡을까 봐 걱정한다고 생각했다.“창빈 도련님이 태윤 씨를 기다린다고 했는데. 만났어요?”하예정이 물었다.전태윤이 대답했다.“응. 원림성의 A시로 선우씨 가문에서 가정 요리사에 지원하겠다고 했어. 예정아, 할머니께서 창빈에게 골라주신 아내가 바로 선우씨 가문의 큰손녀 선우민아 씨라고 해.”“저도 알아요. 어머님이 이 사실을 얘기하자마자 우리 할머니가 창빈 도련님을 위해 아내를 정해주셨다는 사실을 눈치챘어요..”전태윤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역시 내 아내답게 똑똑하네.”“저는 멍청하지 않거든요.”“그럼. 내 아내는 늘 똑똑하지.”만약 멍청하다면 전태윤의 마음에 들지도 않을 것이다.“우리 할머니께서 정해주신 사람은 전부 멀리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아요.”하예정과 여운초만 관성 출신이었다.전태윤은 한참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그렇다면 할머니께서는 나와 이진이를 가장 아끼셨구나. 우리에게 관성의 아내를 골라주셨잖아.”그는 말하면서 또 하예정의 입술에 몇 번 뽀뽀했다.전태윤은 사랑하는 아내를 침대에 데려가고 싶었다.그러나 아기를 위해 그는 또 애써 참았다.“이혁 도련님과 전우 도련님의 아내는 어디 분이세요?”“몰라.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어. 어차피 관성의 사람 아닐 거야. 요즘 두 사람 다 관성에 있는 걸 못 봤어.”전태윤은 하예정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그는 아내를 방으로 데려다주며 부드럽게 말을 건
“형, 너무 늦었어. 형도 힘들 텐데 그만 쉬어 나도 이만 돌아갈게.”전태윤과 얘기를 다 마친 전창빈은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전태윤이 말을 건넸다.“너무 늦었는데 여기서 하룻밤을 보내고 가. 묵을 곳이 없는 것도 아닌데.”전창빈이 말을 이었다.“안 멀어. 여기 방은 있지만 갈아입을 옷이 없어서 그래. 그리고 잠자리를 바꾸면 잠도 잘 안 오고.”전창빈은 장소를 옮기면 새로운 거주 환경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침대를 가리는 사람이 잠자리를 바꾸면 늘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곤 한다.전창빈의 개인 별장이 그리 멀지 않고 잠자리를 가리는 전창빈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전태윤도 더는 전창빈을 만류하지 않았다. 다만 그에게 천천히 운전하고 집으로 돌아가 문자를 보내라고 당부했다.“그럼 얼른 쉬어.”전태윤은 배웅하러 일어나지 않았다.전창빈이 멀리 떠난 뒤 전태윤은 물을 반 잔 더 마시고는 다시 몸의 냄새를 맡았지만, 여전히 술 냄새가 났다.그는 하예정에게 영향을 줄까 봐, 그녀가 깨어날까 봐 서재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그는 2층으로 올라가 자신의 방 입구로 돌아갔다. 그러나 문을 밀어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서 잠시 안을 바라만 보다가 몸을 돌려 서재로 들어갔다.하예정은 한밤중까지 자고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야 했다.자기 전에 우유 한 잔을 마시면 한밤중에 일어나곤 한다.화장실에 다녀온 하예정은 잠에서 깼다.그녀는 그제야 전태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침대 앞으로 돌아와 앉아 침대 머리맡에서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보니 이미 새벽 세 시가 넘었다.전태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단 말인가!‘돌아오지 않은 건가? 언제 돌아오는지 문자도 없고.’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한참 후에야 전태윤이 전화를 받았다.“여보, 아직 안 왔어요? 많이 바빠요?”하예정은 관심 있게 물었다.그는 예전에 아무리 바빠도 새벽에는 반드시 집에 돌아왔다.그러나 지금 새벽 3시가 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이유는 사업에 관한 일이
장소민이 먼저 집으로 오고 그 뒤로 전현림이 또 왔다.그리고 자기가 사고 쳤다고 생각한 전창빈이 또 따라왔다.전태윤은 묻지 않아도 결과를 짐작할 수 있었다.전창빈은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열었다.“처음에는 동의하지 않으셨어. 엄마는 내가 이미 사업을 하고 있고 잘 경영하고 있는 데다 올해부터 가족 사업을 돕고 있는데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면서. 요리를 좋아하면 집에서 하거나 호텔에서 해도 되는데 굳이 가정 요리사로 일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시거든. 근데 아버지는 날 지지해 주셨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면 된다고 하셨지. 그러다가 두 분이 서로 말싸움하다가 엄마가 이기지 못해서 홧김에 방에 돌아가셔서 문을 닫으셨거든. 아빠가 몇 번이고 오랫동안 문을 두드렸는데도 들어가지 못해서 엄마가 화가 좀 풀리면 다시 들어가려고 했어. 근데 엄마는 아빠가 떠난 틈을 타서 조용히 집에서 나와 형 집으로 오셨지 뭐야. 나랑 아빠는 엄마가 여전히 방에 계시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것도 엄마가 화가 풀리고 나서 아빠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야 엄마가 여기로 오신 것을 알게 됐어. 그래서 따라온 거고.”전창빈은 미안한 듯 계속해서 말했다.“부모님께서 항상 감정이 좋으셨는데 내 결정 때문에 불쾌하게 지내시니 내가 너무 불효자인 것 같아.”전창빈은 자신이 불효하다고 느꼈지만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로 지원하기로 한 결정을 포기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다.“부부싸움도 안 하는 부부가 어디 있겠어? 나와 네 형수님도 많이 다투었거든. 부부간에도 소통이 필요한 법이지. 한쪽이 막무가내로 나오지 않는 한 잘 얘기를 나누다 보면 금세 풀릴 거야. 우리도 그런 억지를 부리고 소통할 수 없는 여자와 결혼하지 않을 거야. 그런 상황도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을 거고.”전창빈은 전태윤이 그에게 말한 부부간의 관계에 관한 얘기들을 잘 듣고 있었다.전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모두 금실이 좋으셨다. 전창빈은 어릴 때부터 이러한 말들을 들으며 자랐기 때문에 사실 이미 부부 관계에 대한 일들에 대
잠시 후, 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할머니께서 나에게 임무를 맡기셨는데 나도 이제 움직이려고. 호영 형처럼 반년 동안 움직이지 않으면 아내를 얻을 수 없을지도 몰라.”전창빈은 그들이 동생으로 태어난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형들의 교훈을 잘 섭취하고 피할 수 있을 테니까.“할머니께서 골라주신 여인은 보통 성품이 좋은 사람이야. 너의 성격에 잘 맞게 골라주셨을 거야. 언제 출발하려고?”전태윤이 문득 물었다.“다음 주 월요일에 출발하려고. 이틀 동안 손에 있는 일을 먼저 정리하려고. 중요한 일들은 형에게 맡길게. 알아서 처리해 줘.”“그렇게 급해?”전태윤은 눈살을 찌푸렸다.전창빈은 약간 쑥스러워하며 말했다.“선우씨 가문은 A시에서 손꼽히는 명문가야. 그 가문에 들어가서 일하면 급여와 대우가 나쁘지 않을걸. 그리고 선우민아 씨가 입맛이 까다롭다고 하는데 수많은 사람이 가서 도전해 보고 싶어 하거든. 그곳에는 이런 말이 전해지고 있대. 가정 요리사가 선우씨 가문에서 석 달 동안 일하고 나오면 일자를 걱정할 필요 없고 반년 이상 버티고 나오면 큰 호텔들이 앞다투어 요구한다고 해. 몇 년 동안 일을 해도 해고되지 않는다면 아마 신으로 불릴지도 모르지.”전태윤은 실소했다!“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야? 그분 입맛이 그렇게 까다롭대?”“선우민아 씨뿐만 아니라 다른 몇몇 아가씨들 입맛도 까다롭대. 전부 먹는 것에 매우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라 요리 실력을 엄청 중요하게 생각하거든. 누군가는 일반적인 야채 볶음 하나에도 통과되지 못한다고 해.”전태윤이 피식 웃었다.“도전해 볼 만하군.”전태윤은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관심이 있는 건 아니라고 추측했다.어쨌든 사진만 보았을 뿐 실물을 본 적도 없고 함께 지내본 적도 없다. 전창빈은 그렇게 쉽게 마음이 흔들릴 남자가 아니었다.하지만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가 되는 것은 매우 도전적인 일이다. 마침 전창빈은 요리를 가장 좋아했다. 그는 아마 십여 년 동안 키워온 요리 실력으로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가 될
묻지 않아도 전창빈이 조금 전에 여기에서 TV를 보며 차를 마시고 간식을 먹으며 전태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전창빈은 곧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왔다.그리고 전태윤의 앞에 따뜻한 물잔을 내려놓고 옆에 서서 전태윤의 분부를 기다리면서 언제든지 시중을 들어줄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전태윤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앉아.”“고마워.”전창빈은 얼른 자리에 앉았다.“이렇게 예의를 갖추면서도 사고 치지 않았다고? 말해봐, 네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부모님께서도 의견이 안 맞으시다니.”“형, 나 정말 사고를 치지 않았거든. 그냥 원림성의 A시에 가보고 싶어서 그래.”“가서 뭐 하려고? 설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왜 그렇게 멀리 가려고 해? 집에서 설을 쇠지 않으려고? 할머니께서 아시면 네가 가장 먼저 얻어맞을걸.”설쯤에 전씨 할머니는 자손들이 모두 돌아와 온 가족이 오손도손 모여있는 것을 좋아하셨다.손자며느리가 몇 명 더 있으면 더 좋을 것이지만.이제 고현도 전호영을 따라 돌아올 것이다. 약혼할지는 아직 미지수였다.곧 약혼식도 치를 것으로 보인다.고현은 전호영을 위해 그녀의 여자 신분을 폭로해 그가 게이가 아니라는 오해를 풀어주었다.“나 가정 요리사에 지원하고 싶어. A시의 선우씨 가문에서 요리사를 채용하고 있는데 그 가문 아가씨의 입맛이 엄청 까다로워서 요구가 엄청 높대. 나도 도전해 보려고. 좋은 기회야.”전태윤은 눈살을 찌푸리다가 곧 물어보았다.“할머니께서 선우씨 가문의 딸을 정해주셨어?”원림성의 A시는 너무 멀다.아마 H시와 이웃 도시일 것이다.용정도 그곳 사람이었다.설마 전씨 할머니께서 그 진흙탕에 뛰어드실 계획인 건가...전태윤은 그의 전씨 가문과 예씨 가문의 사이가 가깝고 여운초의 눈도 예씨 가문의 정겨울이 치료해주고 있는 데다 또 성소현은 앞으로 예씨 가문의 다섯째 사모님으로 될 여자였다. 게다가 성소현은 하예정과 사촌 사이로 전씨 가문과 예씨 가문은 서로 얽히고설킨 관계가 되었다.앞으로 예
전태윤은 저녁 12시에야 집에 도착했다.그는 술도 좀 마셨지만 취하지는 않았다.전태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전창빈은 밖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리자 곧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전태윤의 차가 별장 입구에 도착하여 멈추었다.경호원이 차에서 내려 전창빈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는 안부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곧 전태윤의 차 문을 열어주어 그를 부축하려 했지만 거절당했다.“안 취했어.”전태윤이 나지막이 말했다.“형.”전창빈이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가 전태윤을 부축하려고 손을 내밀었지만, 전태윤은 거절했다.“창빈아, 어쩐 일이야?”친동생을 본 전태윤은 매우 놀랐다.“술 한 잔만 마셨어. 취하지 않았으니까 부축해주지 않아도 돼.”“형한테 할 말이 있어서 기다리고 있었어.”전창빈은 여전히 전태윤을 부축해주었다. 전태윤의 술 냄새를 맡은 전창빈이 말을 건넸다.“독한 술을 마셔서 술 냄새가 많이 나네.”“이야기가 잘 풀려서 좀 마셨어.”전태윤은 집 안으로 들어가면서 자신의 옷 냄새를 맡아보며 전창빈에게 물었다.“술 냄새가 많이 나? 네 형수님이 술 냄새를 맡을 수 있겠지?”전태윤은 오늘 밤 서재에서 자야 할지도 모른다.하예정은 그가 술과 담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때때로 그는 담배 한 대 피워도 껌을 씹어 담배 냄새를 제거한 후에야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의 아내가 냄새를 맡을까 봐 걱정했다.특히 하예정은 지금 그들의 사랑의 결실을 배속에 품고 있었다.그런 하예정에게 담배 냄새를 맡게 하면 더욱 안 된다.집에는 담배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그의 친구들도 그가 집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전창빈은 말을 잇기 모호했다.그가 하예정도 아닌데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을지 잘 몰랐다.전태윤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냄새가 나는데? 늦었는데 오늘 예정이를 방해하지 말고 서재에서 하룻밤 자야겠어.”전태윤은 문득 멈춰 서서 고개를 돌려 전창빈에게 물었다.“아까 우리 부모님 차를 본 것 같은데?”전태윤은 자신이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