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윤은 한 손으로 하예정이 건네준 꽃다발을 받고 다른 한 손으로 하예정의 볼살을 꼬집으며 말했다.“내가 열 받은 거 알기는 해?”하예정이 미안한지 웃으며 말했다.“저도 그 정도 자아 성찰은 해요.”하예정이 머리를 돌려 경호원에게 말했다.“별일 없으니 다들 가서 일 봐요.”네 명의 경호원이 동시에 전태윤을 바라보았다.전태윤이 그들을 책망할까 봐 걱정되는 모양이다. 그러자 하예정이 그들을 도와 말했다.“갑작스레 발생한 일이고 운초가 그들과 웃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기에 아는 사람인 줄 알았죠. 누구도 이런 일이 생길 줄 몰랐어요. 그러니 이번 일은 이분들의 직무 과실 아니에요. 너무 뭐라 하지 마요.”전태윤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사모님이 말을 했으니 각자 돌아가 일 봐.”“사모님, 고맙습니다.”네 명의 경호원이 하예정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그리고 하예정이 다시 여운초의 두 명의 경호원에게 말했다.“두 분은 운초 곁으로 가요. 사건의 경위는 내가 이진 도련님한테 설명할게요. 두 분의 책임이 아니라고 내가 잘 말할게요.”두 명의 경호원이 하예정에게 재차 고맙다고 인사했다.그들은 혹시 전이진이 화낼까 봐 두려웠다.큰 사모님의 말대로 당시 그들은 차에서 내릴 때 둘째 예비 사모님과 말하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둘째 예비 사모님이 그들과 웃으면서 얘기하는 모습을 보고 서로 아는 사인 줄 알고 곁으로 다가가지 않았는데 이런 반전이 생길 줄은 누구도 생각 못 했다.큰 사모님이 그 시간에 마침 도착했고 큰 사모님이 태권도 능력자인 동시에 반응이 빨라 짧은 시간 내에 둘째 사모님을 차에서 끌어 내렸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그 결과를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비록 그들이 암암리에서 보호하고 있었고 또한 필사적으로 둘째 사모님을 구출한다 해도 이건 큰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큰 사모님이 그들을 도와준 동시에 사건 목격자이기에 둘째 도련님의 책망을 모면할 수 있었다.사실 둘째 사모님의 눈이 안 보이기에 그들은 한 발짝도 떨어져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감히 여운초에게 손을 대다니, 전이진은 진범을 찾아서 반드시 그의 목덜미를 힘껏 내리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기절하는 기분이 어떨지 맛보게 하고 싶었다.여운초는 손을 뻗어 전이진을 잡으려고 했고 전이진이 재빨리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았다.여운초는 전이진의 손을 잡고 앞으로 끌어당기면서 냄새를 맡더니 익숙한 냄새를 맡으며 신분을 확인했고 그제야 바로 전이진을 잡고 있던 손에서 힘을 풀었다.“운초 씨?”전이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여운초가 말을 이었다.“먼저 차에 타자. 집에 곧 도착할 수 있지? 집에 가서 얘기해.”“집에 거의 다 왔어. 알았어. 집으로 가서 말하자. 뒷목이 아직도 아파?”“아파.”“집으로 돌아가면 약 발라줄게.”여운초는 아무 말도 없이 차에 올라탔다.곧 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여씨 가문 저택으로 돌아갔다.전이진은 약혼녀를 안고 들어가려다 여운초에게 거절당했다. 여운초는 20여 년 넘게 살아온 집에서는 길을 안내해 줄 사람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매우 익숙한 환경이었기 때문이다.“아가씨, 둘째 도련님.”집사가 방에서 나오더니 두 사람을 보고 공손하게 인사했다.여운초는 집사의 안부에 대답도 없이 담담한 표정으로 집사 곁을 지나갔다.집사도 여운초 태도에 습관이 되었다.여씨 가문 하인들은 여운초를 관심하고 있었지만, 그에 대해 완전히 충성심을 보이지 않았다.여운초는 그들을 모두 바꾸지 않았다. 그들이 모두 도련님에게 더 충성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만약 그들이 다른 마음을 가진다면 여운초는 그들을 진작 모두 바꿔 버렸을 것이다.게다가 현재 여씨 집안에는 전씨 가문의 사람들도 들어있었다. 여운초는 전이진이 안배한 사람들을 더 믿었기에 집사의 존재감은 더욱 낮아졌다.여운초는 집에 들어서더니 바로 위층으로 향해 올라갔다.전이진은 묵묵히 여운초를 따라갔다. 며칠 전에 여운초의 방에 방음 기능을 설치해 놓았기 때문에 방음 효과가 매우 좋았다.두 사람이 중요한
여운초가 앞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여운초는 상대방의 냄새와 목소리 그리고 발걸음에 의해 사람을 구분했다.하지만 이런 특징들은 쉽게 모방할 수 있었다. 여운초가 조금만 방심해도 속아 넘어갈 뻔했다.이번에는 하마터면 계략에 빠질 뻔했다. 상대방을 따라 차에 타려고 할 때 차 안의 담배 냄새를 맡고서야 진이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전이진은 담배를 거의 피우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차에도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았다.“맞아. 이진 씨인 척하는 거 있지. 목소리와 발걸음 소리 그리고 냄새까지 정말 이진 씨와 너무 똑같았어. 내 생각엔 그들이 우리 일거수일투족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이진 씨를 모방한 것 같아.”“그리고 냄새는 당신도 가끔 향수 치고 다니잖아. 향수 브랜드를 수소문하면 냄새쯤이야 쉽게 모방할 수 있잖아.”전이진이 입을 열었다.“당신 고모 두 분이 계획한 게 틀림없어. 두 분 모두 당신 꽃집 근처에서 자주 어슬렁거리고 있었잖아.”전이진은 여운초의 등 뒤로 돌아가더니 뒤에서 여운초를 꼭 안아줬다. 그리고 나지막이 말했다.“운초 씨, 앞으로 내 말 좀 들어. 당신 시력이 회복되기 전에 경호원들을 데리고 다녀. 오늘 같은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게 말이야.”“나중에 당신이 이상한 낌새를 발견했다고 해도 보이지 않아서 도망가기가 매우 어려워. 오늘 형수님이 마침 회사로 가는 바람에 마주쳐서 다행이지. 게다가 형수님도 싸움 실력이 어느 정도 있어서 당신을 구해낼 수 있었고.”“아니면 그들이 당신을 차에 태워 어디로 데려갈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숨어있던 경호원들이 그 상황을 발견했다 해도 반응이 느려 당신을 구해내기 매우 어려워.”전이진은 손을 풀어 다시 여운초 목의 고통을 덜어줄 겸 어깨를 주물러주었다.“참! 약 있지? 발라줄게.”“괜찮아. 시간이 좀 지나면 안 아파.”“오늘은 정말 위험했어. 차 안에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았다면 정말 속아 넘어갈지도 몰랐으니까. 이진 씨 경호원들도 내가 스스로 차에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 의심하
“하느님은 알고 계실거야. 나 그 당시 너무 놀랐어. 형수님이 전화 와서 당신이 사고 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 혼비백산할 뻔했다니까.”전이진은 두 손으로 여운초의 목을 가볍게 껴안았고 그녀의 목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고 몰래 냄새를 맡기도 하고 가끔 볼에 뽀뽀도 했다. 그러더니 아예 여운초의 얼굴을 바로 잡고 그녀의 입술을 막아버렸다.키스해버렸다.전이진은 의자에 앉았다.여운초는 전의진의 품에 안겨 있었다.전이진은 두 손으로 여운초의 허리를 꼭 껴안았다. 전의진의 손에 의해 아픔을 느낀 여운초는 그의 손을 잡아당기며 조용히 말했다.“너무 힘쓰지 마.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전이진은 바로 힘을 풀었다.“무서워서 그래.”전이진은 나지막이 대답했다.“당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두려웠어.”“다행이야. 다행히도 형수님이 마침 회사로 향하는 길에 운초 씨와 마주쳐서. 형수님이 싸울 줄도 몰랐으면 운초 씨가 정말로 그들에게 끌려갔을지도 몰라.”결과를 상상하던 전이진은 매우 두려웠다.“우리 운초 씨에게 행운이 따른 거지.”전이진은 여운초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 쪽으로 잡아당기면서 말했다.“정 선생님이 이번 달이면 산후조리가 끝나실 거야. 그때 되면 내가 직접 초대해서 당신 눈을 치료해주도록 부탁할게.”여운초의 눈이 잘 안 보이기 때문에 사고가 자주 나는 것이라고 여겼다.만약 사고가 났다고 해도 여운초는 앞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진범의 모습을 진술할 수 없었다.“자꾸 정 선생님을 재촉하지 마. 40일이 지나고 나서 초대해도 돼. 여자들은 아기를 낳으면 몸이 많이 상하거든. 잘 쉬고 잘 회복해야 해.”“당신 자꾸 재촉하면 정 선생님은 성격이 좋아서 따지지 않는다만 그분 남편 예준일은 당신을 절대로 가만 놔두지 않을걸.”여운초는 하예정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예씨 가문 넷째 도련님은 전이진이 자주 정겨울을 찾아가서 여운초의 눈을 치료해 달라고 조르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고 말이다.그 당시 정겨울은 임신 말기였다. 지금도 아직 산후조리 중이
“따르릉...”여운초의 휴대전화 소리가 울렸다.여운초는 틈만 나면 자신에게 키스하는 남자를 밀어냈다.전이진은 두 손으로 여운초 얼굴을 다시 바로 잡고는 자신의 키스를 피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나지막이 한마디 내뱉었다.“받지 마.”전이진은 여운초에게 달라붙어 억지로 키스를 오랫동안 했고 그제야 아쉬운 듯 손에서 힘을 풀었다.집사는 여운초의 방문 앞에 서 있었다.집사는 여운초의 방에 방음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문을 두드리는 대신 전화를 걸었다.여운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집사는 먼저 전화를 끊은 후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여운초에게 전화를 걸었다.여운초는 그제야 전화를 받았다.“아가씨, 전씨 가문 사모님께서 오셨어요.”집사가 전화로 공손하게 말했다.“오셨으면 집안으로 모셔요. 금방 내려갈게요.”여운초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고 집사는 방안에서 일어난 일을 알지 못했다.집사는 두 사람이 방 안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결혼하지 않은 두 남녀가 같은 방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약혼한 사이였고 예비부부기에 사람들의 비웃음거리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집사는 또 공손하게 대답했다.“알겠어요.”여운초는 휴대전화를 귓가에서 떼고는 전화를 끊었다.집사는 문에 기대어 귀를 기울였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체념한 듯 몸을 돌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여운초는 방 안에서 전이진을 밀어내면서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옷을 담담하게 정리하며 전이진이게 물었다.“나 어때 보여? 이상해 보여?”전이진은 과감하게 여운초의 몸을 한번 훑어보더니 슬며시 웃으면서 대답했다.“내가 운초 씨 옷을 헝클어뜨린 것도 아닌데 뭐가 이상해?”두 사람은 약혼한 사이지만 가장 친밀하게 한 행동은 키스뿐이었다. 전이진이 여운초의 다른 부분에는 손대지 않았다.여운초를 사랑했기에 여운초를 존중했다.혼인 신고하고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 굶주린 늑대로 변신할 계획이었다.그리고 또 하나, 여운초는 전이진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전이진은 여운초를 데리고 계단을 내려왔고 전태윤 부부에게 다가가서 인사했다.여운초도 따라서 두 사람을 향해 인사했다.그리고 바로 전태윤 부부 맞은편에 앉았다.하예정이 걱정하면서 물었다.“운초 씨, 괜찮아요?”“괜찮아요. 다만 목이 좀 아플 뿐이죠. 형수님, 저를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운초는 감격하면서 하예정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하예정이 입을 열었다.“한 식구인데 별말씀을요. 하지만 앞으로 경호원들을 데리고 다니세요. 운초 씨가 안전해야만 우리 모두 안심할 수 있어요.”“오늘 저도 우연히 만났기에 구해줄 수 있었어요. 만나지 못했더라면 후과가 매우 엄중했을 거예요.”여운초도 두려워하면서 말을 이었다.“아까 이진 씨도 그렇게 저한테 얘기했어요. 앞으로 경호원들을 곁에 두고 다닐게요.”만약 여운초가 여씨 가문의 사업을 이어받지 않았다면 경호원들이 따라다닐 필요 없었다. 하지만 지금 여운초는 두 고모의 눈엣가시가 되었다.여운초는 오늘의 일이 아마도 두 고모가 저지른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안전 문제에 있어서 여운초는 더는 고집하지 않고 전이진의 안배에 따랐다. 여운초는 경호원들이 더 이상 몰래 보호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곁을 따라다니면서 보호하게끔 허락했다.“잘 생각하셨어요. 사실 경호원들이 따라다니는 것이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점차 나아질 거예요.”하예정도 예전에 경호원들이 따라다니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경호원들이 따라다니며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남편이 장악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은 아주 익숙해졌다.전태윤도 하예정과 약속했다. 경호원들이 따라다니며 하예정의 안전에 관한 문제만 관여할 뿐 다른 일들은 하예정의 동의 없이는 전태윤에게 알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전태윤과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하예정도 경호원들의 수행에 적응할 수 있었다.“이 일에 대해 의심되는 사람이 있어요?”전태윤이 나지막이 물었다.여운초가 대답했다.“고모 두 분 말고는 없을 거예요.”“네.”
전태윤이 바로 대답했다.“너와 나 그리고 아홉째 동생을 빼고는 모두 외지에 있어.”아홉째 동생은 아직도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평일에 학교에 머물었고 한 달에 한 번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전이진이 멈칫하더니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아, 맞다. 까먹었어.”그들 형제 모두는 업무 때문에 출장을 가거나 아내를 쫓으러 외지로 나갔다.전이진과 전태윤만이 관성에 남아있었다. 두 사람만이 인생의 큰일을 해결했기 때문이다.“할머니도 안 계셔.”전이진은 그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할머니께서 집에 계실 때에는 내가 무언가 잘못해서 할머니께서 화내실까 봐 항상 긴장한 상태로 있었거든. 벌줄까 봐 두렵기도 하고. 하지만 할머니께서 밖에서 돌아다니시며 집에 계시지 않으시니까 또 너무 보고 싶어.”전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말에 매우 공감했다.그들 형제의 결혼에 관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사람이 바로 할머니였다.예전에 전태윤과 하예정이 싸움하여 냉전을 벌일 때도 전씨 할머니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다. 할머니는 하예정의 집으로 들어가서 며칠 동안 머무르면서 함께 지낸 적도 있었다.그나저나 전태윤 부부도 발렌시아 아파트로 가보지 못한 지도 오래되었다.전태윤 부부는 나중에 또 돌아가서 한동안 머물려고 계획했다.“별일 없지? 지금 출발하자.”전태윤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응.”전이진이 대답했다.전태윤은 몸을 일으키면서 그의 마누라도 챙겼다.“효진이와 소 이사님도 오실 거예요.”“학생들도 곧 학교에서 나올 거야. 효진이는 좀 더 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할 것 같아요.”전태윤이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정남에게 말할게. 정남이가 가서 효진 씨 데리러 가게하면 돼. 서점은 소씨 가문의 경호원들에게 맡기면 되고. 경호원들이 날마다 서점에서 지키고 있으니 아마 익숙해 졌을 거야. 그들이 서점을 잘 돌볼 수 있을 거야.”“그럼 정남 씨에게 말씀드리세요.”전태윤은 바로 소정남에게 전화를 걸었다.얼마 후, 두 형제는 짝을 데리고 서원 리조트로 돌아갔다
장소민은 물론 자기 아들이 건강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극구 부인하고 있었다. 자신의 장남은 건장하고 힘 있는 남자이기 때문에 건강에 문제 있을 리가 없다고 여겼다.전현림은 아내의 손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아 보았지만 의학을 모르는 터라 그 약재들이 어떤 효능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다.전현림이 입을 열었다.“의사 선생님께 직접 진찰받은 것도 아닌데 처방전 한 장으로 어떻게 효과가 있는지 알겠어. 사람마다 신체 상황이 다를 텐데.”“게다가, 우리도 사람들에게 아기 낳는 것을 재촉하지 않는다고 말했잖아. 이 처방전을 예정이에게 전해준다면 예정이도 우리가 아기 낳으라고 재촉하는 줄로 알걸. 그럼 더 스트레스받잖아. 가뜩이나 바쁜 애한테.”“당신이 우리 아들 앞에서 직접 이것을 준다면 태윤이가 바로 찢어버릴걸.”“어머니께서 모셔 오신 점쟁이도 말씀하셨잖아. 그 부부가 올해 가을에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고. 좀 더 기다려 보자. 난 두 사람 모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전현림이 말을 이었다.“두 사람 다 일이 바빠서 그런 것 같으니까 조급해하지 마. 외부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우리는 그들의 입을 막을 수 없지만 우리 가족은 반드시 하예정의 든든한 배후가 되어야 해.”“너무 스트레스를 주지 않도록 배려하고 예정이 앞에서 아기에 관한 얘기도 꺼내지 말아야 해.”장소민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듣는 바에 의하면 그 점쟁이들은 과거를 잘 맞히긴 하지만 미래에 관한 일은 너무 정확하게 맞히는 건 아니라고 해요. 벌써 9월이 다 되어가는데, 다른 도시는 벌써 가을이 다 되었는데.”“우리 도시만 가을이 여름처럼 더워서 계절이 명확해 보이지 않는 거죠.”“저도 임신 재촉을 하고 싶지도 않고 그들 부부에게 너무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요.하지만 매번 나가서 얘기 나눌 때면 친구들이 물어보는 횟수가 점점 많아지니까 저도 회식 자리에 나가기 싫어져요.”“또 저한테 물어보면 너무 민망하니까요.”“그리고 친정집으로 갈 때마다 형수님들과 제수들도, 심지어 우리 어머니도 저에
원림성 A시.전창빈은 모든 요리를 다 하고는 주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휴대전화를 꺼내 뉴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는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온종일을 바쁘게 보냈다.정확히 말하면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것이 전부 오늘 저녁 식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그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주인공이 돌아왔다.잠시 기다린 후, 전이진이 오후 내내 준비한 요리들이 하나둘씩 하인들에 의해 운반되어 나갔다. 물론 그는 나갈 필요가 없었다.선우민아가 그의 요리를 맛본 후 만족스럽다면 전창빈을 불러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통보도 없이 주방에 머물다가 선우씨 가족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떠나면 집으로 돌아야 한다.비록 전창빈은 자신의 요리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밖이 완전히 어두워졌는데도 선우민아의 면담 요청이 없었다. 그는 겉으로는 여전히 뉴스를 보며 담담해 보였으나 속으로는 조금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그는 송일우처럼 세 번이나 도전하는 상황은 원치 않았다. 송일우는 몇 년이나 도전했지만 여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 실패한 뒤로는 다시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나이도 점점 들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한편 선우씨 가족들이 이미 식사를 마치고 있었다.선우민아도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선우민아의 어머니 한경주가 관심 있게 물었다.“민아야, 이번 지원자가 만든 음식은 어때?”선우민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한경주는 계속해서 말했다.“엄마 생각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채용하는 게 어때?”선우민아의 남동생 선우민기는 의자에 털썩 앉아 배를 만지며 말했다.“누나, 나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아. 이번 요리는 정말 맛있었어. 오랜만에 이렇게 배불리 먹었어.”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선우민기의 배를 가볍게 톡 치며 눈가에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너는 굶은 적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까지 많이 먹었어? 이번만 먹고 다음 끼니는 못 먹을 거로 생각한 건 아니지? 좀 앉아 이따
도아영이 홀로 관성까지 찾아온 것도 전이혁을 위해서였다.관성에서 그녀의 안전은 그의 책임이다.앞으로 도아영과 결혼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녀는 할머니께서 정해주신 아내 후보였다. 혹여 도아영이 관성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도씨 가문에서 문제를 일으킬 것은 물론 전씨 할머니께서도 그를 혼쭐 내실 것이 분명했다.전이혁은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태윤이 전화를 받자 전이혁이 조심스럽게 부탁했다.“형, 오늘은 형의 스위트 룸에서 하룻밤 자도 돼?”“안방만 빼고 다른 방은 마음대로 써.”전태윤은 거절하지 않았지만 안방 사용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평소 이곳에 머무를 때면 항상 안방을 사용했기 때문이다.“알았어. 고마워. 형.”“도아영 씨는 괜찮아?”“심하게 취해서 토하다가 물 달라고 하길래... 떠날 수 없어서 호텔에서 하룻밤 지내려고. 새벽에 아영 씨를 룸으로 데려다준 후 떠날 계획이야. 같이 묵었다는 사실을 알면 나에게 달라붙을까 봐 겁이 나.”전태윤이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진심으로 도아영 씨와의 관계를 정리할 생각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도 좋아. 그분 명성을 망가뜨리면 안 되지.”전이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형, 사실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영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이고 할머니의 눈썰미는 틀린 적이 없으셨지. 도아영 씨와 함께 지내보니 나랑 잘 맞는 것 같긴 한데... 왠지 그 ‘여우’랑 함께 있을 때가 더 편안하단 말이야.”“‘여우’라고?”“내 꿈에 자꾸 등장하는 그 여자 말이야. 별명이 ‘여우 같은 여자’거든. 화장을 잘하는 건지... 본명도, 고향도, 행적도 전혀 알 수가 없어. 신비로운 느낌을 주어서 나도 자꾸 정복하고 싶어져.”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이름도 모르는 그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다니. 그분이 혹시 만성의 남씨 가문의 큰 사모님과 연관 있는 거 아니야?”만성 남씨 가문의 큰 사모님은 모연정의 사촌 형수이자 A시 허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인데 그녀도 이중생활로 유명한 인물이다.허씨 가문
“네.”우빈이는 전태윤의 말을 믿으며 다시 물었다.“이모부, 그 모기는 어디 갔어요?”전태윤은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 우빈에게 보여주었지만 우빈은 모기를 찾을 수 없었다.“날아갔어. 이모부가 조금 늦는 바람에 잡지 못했어.”“그래요?”우빈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대답했다.하예정은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우빈이가 아무리 영리해도 결국은 어린아이일 뿐, 어른을 이길 수는 없었다.“우빈아, 이모부는 일하러 가야 해. 우리도 집에 가자. 이모부한테 잘 가라고 인사해야지.”우빈은 바로 그의 작은 손을 흔들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모부, 잘 가요!”“집에 가서 빨리 쉬고 이모의 말도 잘 듣고. 이모를 귀찮게 하면 안 돼. 말 잘 들으면 겨울방학에 예진 리조트로 가서 용정이랑 놀게 해줄게.”우빈은 급히 약속했다.“절대로 이모 귀찮게 안 하고 말 잘 들을게요.”“여보, 빨리 일하러 가요. 우리도 갈게요.”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일하러 가라고 재촉한 뒤 운전 기사에게 출발하라고 말했다.전태윤은 그 자리에 서서 차가 사랑하는 아내를 태우고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차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자 비로소 자신의 차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전이혁과 도아영의 일에 대해서 전태윤은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도아영이 취하면 전이혁이 그녀를 방으로 데려다줄 것이니까.전이혁은 도아영을 그녀의 방까지 데려다주고 외투와 양말을 벗겨 준 뒤 편안한 자세로 눕혔다. 그리고 그가 떠나려던 참에 도아영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옆으로 토해버렸다.전이혁이 쓰레기통을 가져오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는 이미 바닥과 침대를 모두 더럽혔다. 그는 이 광경을 보자 정말로 토할 것 같았다.흠... 전이혁도 토했다. 그는 입을 막은 채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정신없이 토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코와 입을 가린 채로 나왔다.도아영은 시원하게 토한 뒤 다시 침대에 철썩 누워버렸다.전이혁은 침대 반대쪽으로 돌아가 구토물을 보지 않으려 애썼고 최대한 빨리 도아영을 일으켜 안고
도아영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꿈나라에 들어가서 돌아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술 마시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말을 안 듣더니 결국 취했네. 내일 아침이면 정말 고생할 텐데.”전이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도아영의 이마를 쿡쿡 찌르더니 체념했는지 그녀를 안아 들어 로얄 스위트룸 나섰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참! 난 도아영 씨가 어느 룸에 묵고 있는지 모르는데.'그는 걸음을 멈추고 도아영을 내려놓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부축하면서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예정은 금방 전화를 받았다.“형수님, 도아영 씨가 묵고 계신 룸 번호를 아세요?”하예정이 대답했다.“저도 잘 몰라요. 그냥 관성 호텔에 묵는다는 사실만 알고 있어요. 아영이가 취했어요? 잠깐만요. 제가 알아볼게요.”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남편에게 말했다.“여보, 아영의 룸 번호를 알아봐 줘요. 취했대요. 이혁 도련님이 아영이를 모셔다드리려고 하는데 룸 번호를 몰라서.”전태윤은 표정이 굳었다. 그는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하예정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우빈의 손을 잡고 걸어 나갔다가 이내 돌아왔다. 그는 이미 전이혁과의 통화를 끝낸 상태였다.“알아봤어요?”“내가 이혁한테 이미 알려줬어.”전태윤은 여전히 표정이 굳은 표정으로 하예정에게 말을 건넸다.“아까 내가 물어볼 때 프런트 직원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마치 내가 바람피우는 거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 내 동생이 도아영 씨를 데려다주기 위해 그러는 거라고, 내가 대신 물어보는 거라고 설명까지 했어.”하예정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남편의 팔을 다정하게 끌며 달콤하게 웃었다.“설명했으면 그만이죠.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든 우리 감정엔 아무런 영향이 없는걸요. 제가 의심하지 않으면 되잖아요.”“다음부턴 이런 일 나에게 시키지 마. 이혁의 일은 이혁이가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둬. 내가 왜 도와줘야 해? 나도 예전엔 아무 도움 없이 오직 내 진심과 깊은 정으로 너의 마음을 얻었는데.”“알았어요.
전이혁은 침묵했다.도아영은 눈썹을 치켜들며 물었다.“왜요? 전이혁 씨는 그분을 보호하려고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는 거예요? 안심하세요. 저는 공정하게 경쟁하고 싶을 뿐이에요. 수작 부릴 생각은 없어요. 저는 그런 건 못해요. 남자 하나 때문에 그럴 필요도 없고. 제가 이렇게 남자를 좋아한 건 처음이라서 한번 도전해 보는 거예요. 다른 남자였다면 그냥 양보했을 거예요.”도아영이 눈여겨본 건 전이혁이란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전이혁의 뒤에 있는 전씨 가문이 마음에 들었다. 전씨 가문의 훌륭한 가풍은 소문이 자자했으니까.전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사상이 모두 개방적이어서 후손들이 무슨 일을 하든 언제나 지지해 주었다.심지어 반대한다고 해도 다른 집안 어르신들처럼 억지로 가로막지는 않았다.게다가 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특히 아내를 아끼기로 유명했고 한번 정한 인연과 결혼은 끝까지 지키고 있었다.이런 남자들이 흔치 않았다. 여자라면 누구든 한결같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을 것이다.하여 도아영은 꼭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정말 안 된다면 그건 그녀와 전씨 가문의 인연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애초에 노력도 안 해보고 포기한다면 나중에 분명 후회할 것 같았다.도아영은 평생 후회할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여자였다.전이혁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는 ‘여우’의 이름을 몰랐으니까. 마음의 절반을 뺏긴 주제에 정작 상대방 이름조차 모르고 있다니...도아영은 그가 연적을 보호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약간의 질투를 느꼈지만 더는 따져 묻지 않았다.“전이혁 씨가 그녀를 보호할수록 저는 더 궁금해지네요. 도대체 누가 저 도아영을 이길 수 있는지. 근데 괜찮아요. 언젠가는 제 연적이 누군지 알게 될 거니까.”그녀는 전이혁에게 잔을 들며 말했다.“전이혁 씨, 자! 우리 한잔하죠.”전이혁은 잔을 들고일어나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잔과 부딪혔다. 그리고 도아영이 단숨에 그 술을 들이마시는 걸 지켜보았다.도아영은 더 이상 전이혁과 사랑에 관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도아영은 요즘도 이런 식으로 자식들의 혼사를 정하는 어르신이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요즘은 연애와 결혼이 자유로운 시대인데 아직도 자식들의 혼사를 결정해 주는 집안이 있다고?’도아영은 곧바로 자기 집 안 어르신들을 떠올리더니 다시 묵묵히 조금 전의 의문을 거두어들였다.재벌 가문에서는 많은 혼사가 부모님들에 의해 결정되었고 대부분 어른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곤 한다.그들에게는 결혼의 자유가 많지 않았고 가장 중요한 건 이익뿐이었다. 두 가문 사이에서 이루어진 혼인으로 인해 두 회사에 얼마나 큰 이득을 가져다주느냐가 가장 관건이었다.“그럼 전이혁 씨 할머니께서 왜 저를 선택하셨어요? 저는 할머니를 본 적도 없는데.”도아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그녀는 전씨 할머니를 본 적이 없었다.아마 봤을지도 모르지만 그녀가 전혀 기억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하지만 전씨 할머니는 도아영을 유심히 관찰하고 알아본 뒤에야 전이혁의 미래 아내로 선택한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녀의 사진을 전이혁에게 건네주며 도아영에게 구애하도록 하게 한 것이다.“저도 모르겠어요. 할머니께서는 나이가 많으시지만 아직도 자주 돌아다니시니까. 우리가 감당하기도 힘들 정도로 말이죠. 다행히 할머니의 건강은 좋으시고 관리도 잘 되어서 겉으로 보기엔 예순 정도로 보이세요.“전이혁도 할머니가 어떻게 도아영을 선택하셨는지 모른다.도아영만 궁금한 게 아니라 고현과 여운초도 전씨 할머니께서 언제 그녀들을 눈여겨보셨는지 궁금해했었다.“그래서 저를 알게 되었고 저를 쫓아다녔던 거예요? 전이혁 씨가 저에게 한 행동이 애정 공세가 아니라고 하면 당신 스스로도 믿지 못하겠죠?”전이혁은 입술을 깨물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인정해요. 제가 당신에게 구애했다는 것을.”전이혁은 도아영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다. 모든 면에서 그와 잘 어울렸으니까.하지만...“그런데 왜 한동안 사라지고 저를 무시했어요? 일부러 관심을 끌려는 작전이었던 거예요?”전이혁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전이혁에게는 아무런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도망가려고 해도 너무 늦었다.그는 애써 침착한 척하며 자리에 앉아서 몸만 돌려 옆에 앉은 도아영을 돌아보았다. 전이혁의 깊고 검은 눈빛은 도아영이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없게 했다.이때 도아영은 몸을 굽혀 천천히 전이혁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두 사람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전이혁은 그녀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은은한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도아영이 어떤 향수를 뿌리는지는 몰랐지만 강하지 않은 은은한 향기가 너무 좋았다.“전이혁 씨.”도아영은 그의 이름을 부드럽게 불렀다.“말해봐요, 듣고 있어요.”그도 마찬가지로 부드럽게 대답했다.“제가 한 가지만 물을게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저를 대하는 거예요? 저에게 잘해주는 게 저를 좋아해서 그러는 거예요? 저에게 애정 공세를 하면서 왜 또 저를 무시하는 거죠?”전이혁은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더니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한 가지 물음보다 더 많이 물어본 것 같은데.”잠시 침묵이 흐른 뒤로 전이혁이 말을 이었다.“저도 제 마음이 어떤지 모르겠다고 하면 도아영 씨는 저를 나쁜 놈이라고 욕할 거죠?”그는 그녀에게 구애하고 싶었다.전이혁은 도아영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할머니의 눈썰미가 결코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하지만 그 ‘여자'가 없었다면 전이혁은 도아영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도아영과 함께 살아갈 수 있었을 것으로 여겼다.하지만 그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당당함, 대담무쌍함, 의협심, 기발한 성격, 고요할 때의 차분함과 활발할 때의 성격은 전이혁의 마음을 단단히 사로잡았던 것이다.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그 ‘여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바로 그 ‘여우 같은 여자' 말이다. 도아영 같은 재벌가 따님이 아니라.도아영의 아름다운 눈이 반짝이며 전이혁이 명확한 대답을 해주지 못할 것임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전이혁을 내려다보았다.전이혁은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순간 도아영의 동작과 표정이 마
“예정 언니, 벌써 다 드셨어요?”하예정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우리가 좀 빨리 먹는 편이긴 하지. 평일엔 일이 바빠서 먹는 시간도 쪼개 써야 하다 보니 빨리 먹는 버릇이 생긴 것 같아.”도아영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하예정은 우빈의 손을 잡고 남편에게 사인을 보냈다. 그렇게 세 사람은 로얄 스위트룸을 빠져나왔고 거기에 문을 닫아주는 센스까지 보였다.전태윤은 경호원들에게도 식사하고 휴식을 취하라고 지시했다.전이혁과 도아영은 이 모든 것이 하예정이 그들에게 특별히 남겨준 기회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이제 로얄 스위트룸 안에는 전이혁과 도아영만 남았다.도아영은 와인잔을 들어 우아하게 음미하고 있었지만 시선은 전이혁에게 고정되어 있었다.‘역시 피할 수 없었군.'전이혁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도아영 씨, 혹시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도아영은 대답 대신 잔을 기울이며 그를 바라만 보았다.‘정말 잘생겼어...'그녀는 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모두 잘생겼다는 소문을 들었다. 실제로 본 전태윤도 키가 훤칠한 미남이었지만 지나치게 차가운 인상에, 인사할 때 잠깐 마주친 뒤로는 도아영을 전혀 쳐다보지 않았다.오직 하예정만 바라보는 모습에서 ‘아내 바보'라는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전태윤의 차가운 카리스마와 달리 전이혁은 훨씬 부드러운 인상을 풍겼다.전태윤 앞에서 전이혁은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단둘이 있을 때면 전이혁의 우수함이 빛을 발했다. 그는 도아영이 만난 남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였다.전이혁이 잘해줄 때면 도아영은 그에게 정말 빠져들 것만 같았지만 그녀를 소홀히 대할 때면 화가 치밀어 주먹으로 그를 한 대 패주고 싶을 지경이다.‘내가 무슨 애완동물도 아니고...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하는 애완견이야?'마음 내키면 그녀와 잠시 놀아주다가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버리는 그의 태도에 도아영은 서서히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다.전이혁은 슬그머니 자리를 옮겼다.“전이혁 씨, 왜 자리
하예정은 두 사람 사이의 암투를 모른 척하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좋은 술 두 병 시킵니다. 저는 임신 중이라 못 마셔요. 우리 배 속의 아기 건강 생각해서라도 저는 술을 마시지 못하거든요. 태윤 씨도 술을 잘 마시지 않기 때문에 이혁 도련님이 도아영 씨랑 같이 마실 수밖에 없네요. 도련님, 아영 씨를 잘 모셔야 해요. 저와 태윤 씨가 있으니 도련님이 취해도 괜찮아요. 저희가 책임질게요.”하예정은 도아영에게 윙크했다. 도아영은 슬쩍 OK라는 사인을 보내며 자신 있다는 듯 웃었다.하예정은 그제야 도아영의 주량이 꽤 괜찮음을 눈치채고 안심했다. 하예정은 도아영이 전이혁에게 꼬치꼬치 캐묻다가 술에 취할까 봐 걱정하고 있던 참인데 도아영이 괜찮다는 사인을 보내니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술과 여러ㅓ 요리가 나오자 도아영은 직접 전이혁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자! 전이혁 씨, 건배하죠.”전이혁은 잔을 받지 않고 오히려 도아영의 잔을 가져다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도아영 씨, 공복에는 술에 취하기 쉬워요. 이 술은 독해서 마실 땐 괜찮다가도 나중에 훅 가버릴 수 있어요. 먼저 요리들을 좀 드시고 또 국물도 한 그릇 드세요.”그 말과 함께 전이혁은 도아영에게 국물을 떠주었다.“국물부터 드셔보세요.”도아영은 평소 국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전이혁이 떠준 거라 예의상 한 수저 떠먹었다.“하 대표님, 이 국물이 정말 맛있네요. 저 원래 국물을 잘 안 마시는데 이 국물은 진짜 맛있어요.”“그럼 많이 드세요. 우리 집은 항상 식사 때 국물을 준비하는 게 습관이에요.”하예정은 우빈에게도 국물을 떠주며 물었다. 식습관은 바꾸게 하기 어려운 법이다.도아영은 관성의 사람이 아니라서 관성의 식습관과 달랐다.국물을 마시기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이 국물이 맛있다고 평가하는 것을 보니 그 국물이 정말로 맛있었던 모양이다.“몇 살이에요? 동갑인 것 같은데.”“하 대표님이랑 같은 해에 태어났어요. 제 생일은 연말이라 하 대표님보다 몇 개월 어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