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겁 없는 놈이 감히 전이진의 약혼녀를 건드려?전이진이 빠른 속도로 회사 밖으로 달려 나가보니 길옆에 세워둔 하예정의 차가 있었다.하예정의 옆에는 네 명의 경호원이 서 있었는데 그중 두 명은 전태윤이 암암리에 배정해 놓은 하예정의 경호원이었고 두 명은 여운초를 보호하는 경호원이었다. 조금 전 여운초가 습격당했을 때 그녀를 암암리에 보호하던 경호원은 미처 달려오지 못했지만 다행히도 큰 사모님 덕분에 여운초가 무탈하였다.전이진이 미친 듯이 달려오며 물었다.“형수님.”“운초야, 괜찮아?”전이진이 헐떡이며 달려와 무릎을 꿇고 하예정의 손에서 여운초를 받아 안았다.“운초가 목덜미를 맞고 까무러쳤어요. 곧 있으면 깨어날 거예요. 다행히 제가 큰형님한테 꽃다발 주러 오다 운초를 만났고 운초에게 인사하려고 하는 사이에 이런 일이 발생했어요.”“운초가 그 남자와 말하는 모습을 봤는데 익숙한 사이인 것 같았어요. 운초는 차에 오르려고 하다가 갑자기 손을 뿌리치고 도망치려 했는데 그 남자의 손날에 맞고 까무러쳤어요.”전이진이 여운초를 안고 일어서며 말했다.“형수님. 저 형수님 차 좀 빌려도 될까요? 먼저 운초를 집에 데려다 놓고 이제 깨어나면 무슨 일인지 알아봐야겠어요.”“이 길에 CCTV가 있으니 형님한테 말해서 그 사람들 찾아달라고 해요.”“그래요. 먼저 가요. 방금 형님한테 전화했으니 곧 나올 거예요. 아... 내 꽃다발.”하예정이 차에서 꽃다발을 꺼내면서 시동생보고 여운초를 집에 데려가라고 했다.전이진이 여운초를 안고 차에 오르려고 할 때 큰 형님이 경호원과 함께 달려 나오는 것을 보고 시름 놓고 여운초와 함께 그 자리를 떠났다.전태윤이 경호원 한 팀을 데리고 나왔다.“여보, 무슨 일이야?”“나도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운초가 깨어나야 알 수 있어요. 이진 도련님 보고 먼저 운초를 집에 데려가라고 했어요.”하예정도 아직은 어리둥절한 상태였다.그 남자와 여운초가 모르는 사이라고 하기에는 여운초가 그 남자와 웃으며 얘기를 나누었고 심지
전태윤은 한 손으로 하예정이 건네준 꽃다발을 받고 다른 한 손으로 하예정의 볼살을 꼬집으며 말했다.“내가 열 받은 거 알기는 해?”하예정이 미안한지 웃으며 말했다.“저도 그 정도 자아 성찰은 해요.”하예정이 머리를 돌려 경호원에게 말했다.“별일 없으니 다들 가서 일 봐요.”네 명의 경호원이 동시에 전태윤을 바라보았다.전태윤이 그들을 책망할까 봐 걱정되는 모양이다. 그러자 하예정이 그들을 도와 말했다.“갑작스레 발생한 일이고 운초가 그들과 웃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기에 아는 사람인 줄 알았죠. 누구도 이런 일이 생길 줄 몰랐어요. 그러니 이번 일은 이분들의 직무 과실 아니에요. 너무 뭐라 하지 마요.”전태윤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사모님이 말을 했으니 각자 돌아가 일 봐.”“사모님, 고맙습니다.”네 명의 경호원이 하예정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그리고 하예정이 다시 여운초의 두 명의 경호원에게 말했다.“두 분은 운초 곁으로 가요. 사건의 경위는 내가 이진 도련님한테 설명할게요. 두 분의 책임이 아니라고 내가 잘 말할게요.”두 명의 경호원이 하예정에게 재차 고맙다고 인사했다.그들은 혹시 전이진이 화낼까 봐 두려웠다.큰 사모님의 말대로 당시 그들은 차에서 내릴 때 둘째 예비 사모님과 말하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둘째 예비 사모님이 그들과 웃으면서 얘기하는 모습을 보고 서로 아는 사인 줄 알고 곁으로 다가가지 않았는데 이런 반전이 생길 줄은 누구도 생각 못 했다.큰 사모님이 그 시간에 마침 도착했고 큰 사모님이 태권도 능력자인 동시에 반응이 빨라 짧은 시간 내에 둘째 사모님을 차에서 끌어 내렸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그 결과를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비록 그들이 암암리에서 보호하고 있었고 또한 필사적으로 둘째 사모님을 구출한다 해도 이건 큰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큰 사모님이 그들을 도와준 동시에 사건 목격자이기에 둘째 도련님의 책망을 모면할 수 있었다.사실 둘째 사모님의 눈이 안 보이기에 그들은 한 발짝도 떨어져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감히 여운초에게 손을 대다니, 전이진은 진범을 찾아서 반드시 그의 목덜미를 힘껏 내리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기절하는 기분이 어떨지 맛보게 하고 싶었다.여운초는 손을 뻗어 전이진을 잡으려고 했고 전이진이 재빨리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았다.여운초는 전이진의 손을 잡고 앞으로 끌어당기면서 냄새를 맡더니 익숙한 냄새를 맡으며 신분을 확인했고 그제야 바로 전이진을 잡고 있던 손에서 힘을 풀었다.“운초 씨?”전이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여운초가 말을 이었다.“먼저 차에 타자. 집에 곧 도착할 수 있지? 집에 가서 얘기해.”“집에 거의 다 왔어. 알았어. 집으로 가서 말하자. 뒷목이 아직도 아파?”“아파.”“집으로 돌아가면 약 발라줄게.”여운초는 아무 말도 없이 차에 올라탔다.곧 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여씨 가문 저택으로 돌아갔다.전이진은 약혼녀를 안고 들어가려다 여운초에게 거절당했다. 여운초는 20여 년 넘게 살아온 집에서는 길을 안내해 줄 사람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매우 익숙한 환경이었기 때문이다.“아가씨, 둘째 도련님.”집사가 방에서 나오더니 두 사람을 보고 공손하게 인사했다.여운초는 집사의 안부에 대답도 없이 담담한 표정으로 집사 곁을 지나갔다.집사도 여운초 태도에 습관이 되었다.여씨 가문 하인들은 여운초를 관심하고 있었지만, 그에 대해 완전히 충성심을 보이지 않았다.여운초는 그들을 모두 바꾸지 않았다. 그들이 모두 도련님에게 더 충성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만약 그들이 다른 마음을 가진다면 여운초는 그들을 진작 모두 바꿔 버렸을 것이다.게다가 현재 여씨 집안에는 전씨 가문의 사람들도 들어있었다. 여운초는 전이진이 안배한 사람들을 더 믿었기에 집사의 존재감은 더욱 낮아졌다.여운초는 집에 들어서더니 바로 위층으로 향해 올라갔다.전이진은 묵묵히 여운초를 따라갔다. 며칠 전에 여운초의 방에 방음 기능을 설치해 놓았기 때문에 방음 효과가 매우 좋았다.두 사람이 중요한
여운초가 앞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여운초는 상대방의 냄새와 목소리 그리고 발걸음에 의해 사람을 구분했다.하지만 이런 특징들은 쉽게 모방할 수 있었다. 여운초가 조금만 방심해도 속아 넘어갈 뻔했다.이번에는 하마터면 계략에 빠질 뻔했다. 상대방을 따라 차에 타려고 할 때 차 안의 담배 냄새를 맡고서야 진이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전이진은 담배를 거의 피우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차에도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았다.“맞아. 이진 씨인 척하는 거 있지. 목소리와 발걸음 소리 그리고 냄새까지 정말 이진 씨와 너무 똑같았어. 내 생각엔 그들이 우리 일거수일투족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이진 씨를 모방한 것 같아.”“그리고 냄새는 당신도 가끔 향수 치고 다니잖아. 향수 브랜드를 수소문하면 냄새쯤이야 쉽게 모방할 수 있잖아.”전이진이 입을 열었다.“당신 고모 두 분이 계획한 게 틀림없어. 두 분 모두 당신 꽃집 근처에서 자주 어슬렁거리고 있었잖아.”전이진은 여운초의 등 뒤로 돌아가더니 뒤에서 여운초를 꼭 안아줬다. 그리고 나지막이 말했다.“운초 씨, 앞으로 내 말 좀 들어. 당신 시력이 회복되기 전에 경호원들을 데리고 다녀. 오늘 같은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게 말이야.”“나중에 당신이 이상한 낌새를 발견했다고 해도 보이지 않아서 도망가기가 매우 어려워. 오늘 형수님이 마침 회사로 가는 바람에 마주쳐서 다행이지. 게다가 형수님도 싸움 실력이 어느 정도 있어서 당신을 구해낼 수 있었고.”“아니면 그들이 당신을 차에 태워 어디로 데려갈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숨어있던 경호원들이 그 상황을 발견했다 해도 반응이 느려 당신을 구해내기 매우 어려워.”전이진은 손을 풀어 다시 여운초 목의 고통을 덜어줄 겸 어깨를 주물러주었다.“참! 약 있지? 발라줄게.”“괜찮아. 시간이 좀 지나면 안 아파.”“오늘은 정말 위험했어. 차 안에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았다면 정말 속아 넘어갈지도 몰랐으니까. 이진 씨 경호원들도 내가 스스로 차에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 의심하
“하느님은 알고 계실거야. 나 그 당시 너무 놀랐어. 형수님이 전화 와서 당신이 사고 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 혼비백산할 뻔했다니까.”전이진은 두 손으로 여운초의 목을 가볍게 껴안았고 그녀의 목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고 몰래 냄새를 맡기도 하고 가끔 볼에 뽀뽀도 했다. 그러더니 아예 여운초의 얼굴을 바로 잡고 그녀의 입술을 막아버렸다.키스해버렸다.전이진은 의자에 앉았다.여운초는 전의진의 품에 안겨 있었다.전이진은 두 손으로 여운초의 허리를 꼭 껴안았다. 전의진의 손에 의해 아픔을 느낀 여운초는 그의 손을 잡아당기며 조용히 말했다.“너무 힘쓰지 마.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전이진은 바로 힘을 풀었다.“무서워서 그래.”전이진은 나지막이 대답했다.“당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두려웠어.”“다행이야. 다행히도 형수님이 마침 회사로 향하는 길에 운초 씨와 마주쳐서. 형수님이 싸울 줄도 몰랐으면 운초 씨가 정말로 그들에게 끌려갔을지도 몰라.”결과를 상상하던 전이진은 매우 두려웠다.“우리 운초 씨에게 행운이 따른 거지.”전이진은 여운초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 쪽으로 잡아당기면서 말했다.“정 선생님이 이번 달이면 산후조리가 끝나실 거야. 그때 되면 내가 직접 초대해서 당신 눈을 치료해주도록 부탁할게.”여운초의 눈이 잘 안 보이기 때문에 사고가 자주 나는 것이라고 여겼다.만약 사고가 났다고 해도 여운초는 앞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진범의 모습을 진술할 수 없었다.“자꾸 정 선생님을 재촉하지 마. 40일이 지나고 나서 초대해도 돼. 여자들은 아기를 낳으면 몸이 많이 상하거든. 잘 쉬고 잘 회복해야 해.”“당신 자꾸 재촉하면 정 선생님은 성격이 좋아서 따지지 않는다만 그분 남편 예준일은 당신을 절대로 가만 놔두지 않을걸.”여운초는 하예정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예씨 가문 넷째 도련님은 전이진이 자주 정겨울을 찾아가서 여운초의 눈을 치료해 달라고 조르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고 말이다.그 당시 정겨울은 임신 말기였다. 지금도 아직 산후조리 중이
“따르릉...”여운초의 휴대전화 소리가 울렸다.여운초는 틈만 나면 자신에게 키스하는 남자를 밀어냈다.전이진은 두 손으로 여운초 얼굴을 다시 바로 잡고는 자신의 키스를 피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나지막이 한마디 내뱉었다.“받지 마.”전이진은 여운초에게 달라붙어 억지로 키스를 오랫동안 했고 그제야 아쉬운 듯 손에서 힘을 풀었다.집사는 여운초의 방문 앞에 서 있었다.집사는 여운초의 방에 방음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문을 두드리는 대신 전화를 걸었다.여운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집사는 먼저 전화를 끊은 후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여운초에게 전화를 걸었다.여운초는 그제야 전화를 받았다.“아가씨, 전씨 가문 사모님께서 오셨어요.”집사가 전화로 공손하게 말했다.“오셨으면 집안으로 모셔요. 금방 내려갈게요.”여운초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고 집사는 방안에서 일어난 일을 알지 못했다.집사는 두 사람이 방 안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결혼하지 않은 두 남녀가 같은 방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약혼한 사이였고 예비부부기에 사람들의 비웃음거리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집사는 또 공손하게 대답했다.“알겠어요.”여운초는 휴대전화를 귓가에서 떼고는 전화를 끊었다.집사는 문에 기대어 귀를 기울였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체념한 듯 몸을 돌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여운초는 방 안에서 전이진을 밀어내면서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옷을 담담하게 정리하며 전이진이게 물었다.“나 어때 보여? 이상해 보여?”전이진은 과감하게 여운초의 몸을 한번 훑어보더니 슬며시 웃으면서 대답했다.“내가 운초 씨 옷을 헝클어뜨린 것도 아닌데 뭐가 이상해?”두 사람은 약혼한 사이지만 가장 친밀하게 한 행동은 키스뿐이었다. 전이진이 여운초의 다른 부분에는 손대지 않았다.여운초를 사랑했기에 여운초를 존중했다.혼인 신고하고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 굶주린 늑대로 변신할 계획이었다.그리고 또 하나, 여운초는 전이진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전이진은 여운초를 데리고 계단을 내려왔고 전태윤 부부에게 다가가서 인사했다.여운초도 따라서 두 사람을 향해 인사했다.그리고 바로 전태윤 부부 맞은편에 앉았다.하예정이 걱정하면서 물었다.“운초 씨, 괜찮아요?”“괜찮아요. 다만 목이 좀 아플 뿐이죠. 형수님, 저를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운초는 감격하면서 하예정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하예정이 입을 열었다.“한 식구인데 별말씀을요. 하지만 앞으로 경호원들을 데리고 다니세요. 운초 씨가 안전해야만 우리 모두 안심할 수 있어요.”“오늘 저도 우연히 만났기에 구해줄 수 있었어요. 만나지 못했더라면 후과가 매우 엄중했을 거예요.”여운초도 두려워하면서 말을 이었다.“아까 이진 씨도 그렇게 저한테 얘기했어요. 앞으로 경호원들을 곁에 두고 다닐게요.”만약 여운초가 여씨 가문의 사업을 이어받지 않았다면 경호원들이 따라다닐 필요 없었다. 하지만 지금 여운초는 두 고모의 눈엣가시가 되었다.여운초는 오늘의 일이 아마도 두 고모가 저지른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안전 문제에 있어서 여운초는 더는 고집하지 않고 전이진의 안배에 따랐다. 여운초는 경호원들이 더 이상 몰래 보호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곁을 따라다니면서 보호하게끔 허락했다.“잘 생각하셨어요. 사실 경호원들이 따라다니는 것이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점차 나아질 거예요.”하예정도 예전에 경호원들이 따라다니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경호원들이 따라다니며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남편이 장악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은 아주 익숙해졌다.전태윤도 하예정과 약속했다. 경호원들이 따라다니며 하예정의 안전에 관한 문제만 관여할 뿐 다른 일들은 하예정의 동의 없이는 전태윤에게 알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전태윤과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하예정도 경호원들의 수행에 적응할 수 있었다.“이 일에 대해 의심되는 사람이 있어요?”전태윤이 나지막이 물었다.여운초가 대답했다.“고모 두 분 말고는 없을 거예요.”“네.”
전태윤이 바로 대답했다.“너와 나 그리고 아홉째 동생을 빼고는 모두 외지에 있어.”아홉째 동생은 아직도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평일에 학교에 머물었고 한 달에 한 번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전이진이 멈칫하더니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아, 맞다. 까먹었어.”그들 형제 모두는 업무 때문에 출장을 가거나 아내를 쫓으러 외지로 나갔다.전이진과 전태윤만이 관성에 남아있었다. 두 사람만이 인생의 큰일을 해결했기 때문이다.“할머니도 안 계셔.”전이진은 그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할머니께서 집에 계실 때에는 내가 무언가 잘못해서 할머니께서 화내실까 봐 항상 긴장한 상태로 있었거든. 벌줄까 봐 두렵기도 하고. 하지만 할머니께서 밖에서 돌아다니시며 집에 계시지 않으시니까 또 너무 보고 싶어.”전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말에 매우 공감했다.그들 형제의 결혼에 관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사람이 바로 할머니였다.예전에 전태윤과 하예정이 싸움하여 냉전을 벌일 때도 전씨 할머니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다. 할머니는 하예정의 집으로 들어가서 며칠 동안 머무르면서 함께 지낸 적도 있었다.그나저나 전태윤 부부도 발렌시아 아파트로 가보지 못한 지도 오래되었다.전태윤 부부는 나중에 또 돌아가서 한동안 머물려고 계획했다.“별일 없지? 지금 출발하자.”전태윤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응.”전이진이 대답했다.전태윤은 몸을 일으키면서 그의 마누라도 챙겼다.“효진이와 소 이사님도 오실 거예요.”“학생들도 곧 학교에서 나올 거야. 효진이는 좀 더 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할 것 같아요.”전태윤이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정남에게 말할게. 정남이가 가서 효진 씨 데리러 가게하면 돼. 서점은 소씨 가문의 경호원들에게 맡기면 되고. 경호원들이 날마다 서점에서 지키고 있으니 아마 익숙해 졌을 거야. 그들이 서점을 잘 돌볼 수 있을 거야.”“그럼 정남 씨에게 말씀드리세요.”전태윤은 바로 소정남에게 전화를 걸었다.얼마 후, 두 형제는 짝을 데리고 서원 리조트로 돌아갔다
화분과 꽃들을 감상한 하예정은 소파에 다시 앉았다.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하예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언니, 동명 오빠가 우빈을 데리고 공항에 갔어요. 저녁에 도착할 수 있을 거예요.]하예정이 곧 전화를 걸어왔다.“언니. ”“나도 동명 씨에게서 메시지를 받았어. 두 사람 곧 공항에 도착할 거라고 했어. 좀 이따가 도착하면 함께 식사하려고 기다리고 있어.”금요일에 우빈은 일찍 하교했다. 관성에서 강성으로 날아가려면 몇 시간밖에 안 걸리기 때문에 하예진은 조금만 더 기다려 노동명과 우빈과 함께 밥 먹을 수 있었다.“우빈이 아빠가 데리러 갔다고?”하예진이 하예정에게 물었다.“아침에 우빈을 유치원에 데려다주다가 주형인 씨를 만났어. 마침 손님을 근처로 데려다주다가 들렸다고 하더라고. 겸사겸사 유치원에 들러서 우빈이가 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는데 그때 우빈이가 이미 유치원에 들어갔거든.”그러나 하예정은 주형인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난 형인 씨가 일부러 유치원으로 갔다고 느껴져. 방금 형인 씨가 우빈과 동명 오빠가 부자처럼 친해진 걸 보더니 질투하고 있는 것 같았어. 우빈을 데려가겠다고 하는 거 있지. 근데 우빈은 형인 씨에게 끌려갈까 봐 동명 오빠와 함께 강성으로 가겠다고 조르더라고. 내가 보기엔 우빈이는 이제 점점 주씨 집안 사람들을 싫어하는 것 같아.”하예정은 비꼬며 말했다.주씨 집안은 유일한 손자 우빈을 매우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의 행동으로 보면 우빈에 대한 감정이 깊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많은 경우에 우빈을 이용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 같았다.그러나 주형인은 우빈에게 진심이었다. 어쨌든 친부 자이니까.하지만 주형인은 먼저 바람을 피우고 이혼까지 했으며 바람난 상대와도 결혼까지 했다.그러나 지금 하예진과 노동명의 일을 알게 된 후로 마음이 불편해져서 하예진에게 다시는 그녀를 방해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실제로 우빈 앞에서는 노동명의 온갖 험담을 했다.우빈은 똑똑한 아이라 누가 그에게 잘해주는지 마음속으로 잘 알
“네. 우빈아, 안녕! 잘 다녀와.”“이모 안녕히 계세요.”우빈은 노동명에 의해 차에 올라타게 되었고 고개를 돌려 하예정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주형인을 바라보며 입술을 약간 오므리다가 작별 인사했다.“아빠. 다녀올게요.”주형인은 웃으면 지었다.노동명은 우빈을 데리고 경호원과 함께 곧바로 떠났다.여운별은 들통날까 봐 모두가 그녀를 주목하지 않는 틈을 타서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어린이를 데리러 온 부모님들은 픽업 카드를 선생님께 제출하기만 하면 어린이들은 곧 선생님의 안내로 나올 수 있었다.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그러나 그녀가 여기서 계속 기다리면 소위 시누이라는 존재를 데려오지 못하면 하예정의 의심을 받을 것이다.노동명의 차가 멀어지고 나서야 하예정은 자신의 차로 돌아와 차를 몰고 곧 유치원을 떠났다.주형인만 그 자리에 덩그러니 서서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는 친아들이 자신과 점점 멀어지는 것을 종종 느끼고 있다.때때로 그는 우빈의 양육권을 되돌려 받으려고 다시 소송을 제기하고 싶었다. 아이들은 함께 사는 사람들과 친해지기 마련이니까.주경진 부부도 찬성했다.하지만 충동은 충동일 뿐, 방금 진정되었다.우빈의 양육권을 가져오면 우빈이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니까.주형인의 세계와 하예진의 지금 세계는 너무 큰 차이가 났다.우빈의 미래를 고려하여서라도 주형인은 아들의 양육권을 다시 쟁탈할 생각을 단념했다.우빈이 주형인과 친하지 않더라도 어쨌든 그의 친자식이었다.앞으로 우빈에게 큰 능력이 생기면 주형인도 체면이 크게 설 것이다.하예정은 회사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전씨 그룹으로 향했다.전태윤은 손님을 만나러 밖으로 나가고 회사에 없었다. 그러나 곧 돌아올 거라 하예정은 대표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전태윤의 사무실은 예전보다 조금 변했다. 간식 캐비닛이 하나와 화분 몇 개가 늘었으며 인형도 몇 개 더 생겼다.화분은 부자 나무, 돈나무, 부귀 나무 등이 놓여있었다.물론 하예정이 그녀의 남편을 위해
그리고 주형인의 집에 가면 우빈은 늘 주경진이 자신을 보며 한숨만 내쉬는 장면을 봐야 했다.김은희는 우빈에게 집에 돌아가서 하예진과 주형인이 재혼하도록 설득하라고 가르치곤 했다.우빈은 아직 어려서 재혼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고 하자 김은희는 아빠와 엄마가 다시 함께 살게 하는 거라고 자상하게 설명까지 해주었다.우빈은 스스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엄마와 함께 살고 싶을 뿐 아빠와 살고 싶지 않다고 명백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는 주형인 집에 있으면 임정한이 늘 우빈의 장난감을 빼앗았다. 지금은 주경진 부부가 임정한의 편을 들지 않지만, 주서인은 여전히 우빈에게 그의 집에 돈과 장난감이 그토록 많은데 인색하게 임정한에게 놀게 하지 않는다고 잔소리 했다.어리석은 주서인은 심지어 돌려쓸 자금이 모자란다고 어린 우빈에게 돈을 가져다 달라고 설득했다!그러나 우빈은 그에게는 돈이 없다고 거절했다. 그의 돈은 전부 하예진이 도맡아 저축해 주었다면서 말이다.주서인은 그 말을 듣더니 우빈에게 왜 그토록 어리석냐면서, 왜 자신이 돈을 손에 넣어두지 않느냐고 따졌다.하여 우빈은 점점 더 주서인을 싫어했다.주씨 집안은 더 이상 하예진을 방해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우빈이가 보고 싶을 때면 항상 하예진에게 우빈을 데려다 달라고 하거나, 그들의 주씨 집안 사람이 직접 유치원 입구에서 우빈을 데리러 간 후 전화로 하예진에게 알리곤 했다.하예진의 동의 없이 우빈을 유치원에서 데려갈 수 없었다.하예진이 동의하지 않으면 친아버지인 주형인이 데리러 간다고 해도 우빈을 데려갈 수 없었다.누가 예전에 주씨 집안 사람더러 우빈을 따돌려 숨겨놓고 하예진이 아들을 못 보게 숨기라고 했는가!제 버릇 개 못 준다더니, 특히 주서인과 김은희는 매우 못마땅했지만, 하예진 앞에서는 감히 드러내지 못했다.우빈은 똑똑한 아이인지라 주씨 집안의 사람들이 전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주형인이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그와 함께 놀아주지 않는 한 주형인의 집에 가는 것을 꺼렸다.
우빈은 고개를 돌려 하예정에게 물었다.하예정은 웃으며 대답했다.“챙겼어. 걱정하지 마. 동명 아저씨가 시간 아끼려고 여기까지 마중 나온 거야. 가자! 너희 엄마가 강성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우빈은 기뻐하며 노동명에게 말을 건넸다.“아저씨, 그럼 우리 빨리 가요. 우리 엄마 오래 기다리게 하면 안 돼요.”노동명은 녀석을 끌어안고 자신의 허벅지에 앉히며 말을 건넸다.“자, 그럼 지금 출발했다!”노동명은 경호원에게 앞으로 가라고 손짓했다.개인 비행기가 유치원 입구에 주차하는 것이 마땅치 않아 노동명은 우빈을 데리고 공항으로 가야 했다.“우빈이 안 배고파?”노동명이 묻고 있었다.“유치원에서 간식 좀 먹었어요.”점심 휴식시간이 지나면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늘 간식을 제공한다.우빈은 먼 길을 떠날 것을 알고 간식을 많이 먹었던지라 녀석은 지금 전혀 배고프지 않았다.노동명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배고프면 차나 비행기 위에서 간식 좀 먹자. 우리 밥 먹지 말고 네 엄마를 만나면 함께 식사하자.”“네.”노동명은 우빈이가 배고플까 봐 다정하게 여러 쥬스와 간식을 많이 준비해 놓았다.하예정도 두 사람을 위해 간식들을 준비해 왔다.그녀는 먼저 차에 가서 우빈의 작은 여행 가방을 꺼내 노동명의 경호원에게 건네주었다.“예정 씨, 우빈이를 제 차에 태워요. 우리를 공항까지 데려다줄 필요 없어요. 힘들어요. 오다 다가 시간도 한참 걸릴텐데. 제가 우빈을 데리고 있으니 안심하세요. 우빈이 머리카락 한 올도 빠지지 않으리라고 맹세할 수 있어요.”하예정은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그럼 저는 배웅하러 가지 않을게요. 우빈아, 도착해서 엄마 만나면 이모한테 문자 한 통 보내라고 전해줘. 그리고 이모도 많이 생각해야 해.”우빈은 하예정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했다.“이모, 그리고 이모부, 다른 이모들도 많이 생각할게요.”노동명은 농담하며 말을 건넸다.“우빈아, 그렇게 많은 사람을 다 생각할 수 있겠어?”모두가 빵 터졌다.우빈은 진지
“이모! 아저씨!”우빈이가 달려 나왔다.그는 멀리서 하예정과 노동명을 보자마자 바로 선생님의 손을 뿌리치고 작은 가방을 멘 채로 빠르게 달려왔다.선생님은 깜짝 놀라 재빨리 그의 뒤를 쫓아왔다.“우빈아, 너무 빨리 뛰지 마. 넘어져! 조심해야지.”하예정이 몇 발짝 앞으로 나가며 소리쳤다.눈 깜짝할 사이에 우빈은 하예정의 곁으로 달려갔다.하예정은 쪼그리고 앉아 그를 안아 주었다. 그러다가 곧 몸부림치며 내려왔다.“이모 뱃속에는 제 동생이 있어요. 동생이 지금 자라는 중이라 이모가 저를 안아 주면 제가 이 동생을 누를지도 몰라요.”우빈은 가끔 이모의 배를 만지면서 하예정 배속의 동생과 인사 나누기도 했다.심지어 배속의 동생에게 왜 여동생이 아니고 남동생이냐고 묻기까지 했다.안타깝게도 그 동생은 아직 그에게 답을 줄 수가 없었다.하예정은 녀석에게 한 달 후, 동생에게 인사를 건네면 움직일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그때면 태아의 움직임이 확연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하예정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괜찮아. 우리 우빈이 전혀 무겁지 않은걸. 동생을 누르지 않을 거야.”임신해도 우빈이 정도는 거뜬하게 안을 수 있었다.다만 다들 우빈이가 함부로 움직여 실수로 그녀의 배를 다치게 할까 봐 안게 하지 못했을 뿐이다.우빈도 철이 든 아이였다.하예진이 그에게 다시는 하예정 품에 안기지 말라고 한 말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아까는 너무 기뻐서 참지 못하고 하예정에게 안긴 것이다. 하하!“아저씨.“우빈은 즐겁게 노동명의 앞으로 뛰어갔다.그는 자연스레 노동명의 허벅지에 올라가 두 손으로 노동명의 목을 껴안으며 달콤하게 소리쳤다.“아저씨, 보고 싶었어요.”“아저씨도 우리 우빈 너무 보고 싶었어.”노동명은 어린 녀석을 껴안으며 마음이 따스해졌다.“어제 아저씨를 못 봤더니 태윤 이모부가 말씀하신 것처럼 하루 못 봤더니 일... 일...”우빈은 전태윤이 한 말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았다.그 뒷부분의 구절이 기억나지 않았다.“하루 못 보니 일 년이나
하예정의 차는 노씨 그룹 입구에 멈춰 서서 노동명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노동명은 하예정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고 2분도 채 되지 않아 차를 타고 나왔다.“예정 씨.”노동명은 차창을 내리누르고는 웃으며 말했다.“우빈의 여행용 가방은 저에게 맡기면 돼요.”하예정이 대답했다.“어차피 저도 바래다 드려야 해요. 오빠, 우빈이 물건들도 전부 제 차에 있으니 먼저 우빈이 데리러 유치원에 가보세요. 유치원에서 곧 하학해요.”“네.”그러자 노동명이 물었다.“태윤이는 안 왔어요?”“너무 바빠서 얘기도 안 꺼냈어요.”노동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친구는 정말 바쁜 친구였다.하예정이 먼저 차를 몰았고 노동명의 차도 곧 뒤를 따랐다.그런데 유치원에 도착하니 뜻밖에도 여운별을 만나게 되었다.여운별은 매일 유치원 입구에서 하예정과 우연히 만날 기회를 잡고 있었다.“사모님, 또 조카 데리러 오신 거예요?”여운별은 입가에 우아한 웃음을 머금으며 걸어오는 하예정에게 물었다.하예정과 함께 있는 노동명을 보는 여운별은 아름다운 눈을 반짝거렸다. 하예정이 가까이 오지 않았다면 여운별은 아마 노동명과 함께 사진을 찍고 싶었을 것이다.전태윤이 하예정을 미친 듯이 사랑하고 있는데, 그녀가 그의 좋은 형제와 함께 다니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가!“네, 사모님도 시누이를 데리러 오신 거예요?”“네, 유치원에 다니는 동안만 매일 제가 데려다줘야 하거든요. 내일 주말이니까 이틀 쉬어도 되겠네요. 참, 쉬지도 못하겠네요. 애가 자꾸 놀이터에 가겠다고 조를 테니까요. 저희 시부모님께서는 집에서 쉬고는 계시지만 매일 수많은 사업을 해야 하거든요. 손님께 음식 대접도 해야 하고 고객과 함께 골프도 치러 가야 해서 너무 바쁘세요.”여운별은 거짓말을 점점 더 자연스럽게 했다.너무 잘해서 그런지 자신조차 사실 같다고 느껴졌다.마치 그녀가 정말로 용씨 사모님인 듯, 정말로 시누이와 시동생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우리 시누이도 시부모님과 함께 놀지 않고 매일 저에게 달라붙어서
여운초는 짧게 답장을 보냈다.“아주 꿀이 떨어지네요.”하예정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 웃음은 아무리 숨기려 해도 자꾸 새어 나왔다.그녀도 가볍게 답장을 보냈다.“운초 씨도 도련님 사랑 듬뿍 받으시잖아요.”둘은 마치 꿀단지에 잠긴 듯, 사랑의 달콤함에 흠뻑 젖어 있었다.여운초가 바빠 보였기에 하예정은 더는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그녀가 천천히 제 차로 돌아와 막 차에 오르려는 찰나였다. 등 뒤에서 누군가가 그녀를 불렀다.고개를 돌리자 그곳에 주형인이 서 있었다.“처제.”주형인은 다가오며 그녀가 혼자인 것을 보고 물었다.“우빈이는 안에 데려다줬어?”“네. 우빈이 보고 싶으세요?”주형인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손님 모시고 근처를 지나가다가 우빈이 얼굴이나 볼까 해서 왔어. 아직 안 왔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일찍일 줄이야.”“우빈이는 잘 지내요.”하예정은 전 형부에게 무심한 태도로 대꾸했다.주형인은 어색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우빈이는 잘 지낼 거라 믿어. 네가 돌보고 있으니 나랑 너희 언니도 마음 놓고 있어. 우빈이한테 들었는데 너희 언니 출장 갔다며? 오래 걸린다고 하던데.”“그건 왜요?”“아, 별일은 아니고 그냥 물어봤어.”잠시 침묵하던 주형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출장, 정말 오래 걸려?”“정확히는 몰라요.”“아, 그렇구나.”주형인의 얼굴엔 아쉬움이 스쳤다.하예정은 차갑게 말했다.“더 할 얘기 없으시면, 저 먼저 가볼게요.”“아, 그래.”주형인은 무언가 말하려다 끝내 삼켰다. 그저 그 자리에 서서 하예정이 차에 올라 떠나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그녀의 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는 천천히 발길을 돌려 자신의 차로 향했다.주형인은 그때 이후로 다시 회사로 들어가지 않았다. 이젠 갈 곳도, 그를 받아줄 곳도 없었다. 변변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관성시에서 그는 이미 유명했다. 나쁜 쪽으로 유명했다. 그 이름에 따라붙는 것은 조롱뿐이었다.사람들은 그를 두고 인과응보라며 혀를 찼다. 뿌린 대로 거
그래서 녀석의 짐은 미리 노동명에게 맡겨야 했다.하예정은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우빈이가 선생님의 손을 잡고 점점 멀어지자 하예정은 그제야 주차해 둔 차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그때, 막 차에 오르는 용씨 가문 사모님이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두 명의 경호원이 그녀의 곁을 바짝 지키고 있었다.한 경호원이 공손히 차 문을 열어주며 예의를 갖췄다.용씨 가문 사모님은 살짝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러고는 하예정을 발견하자 미소를 머금고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예의상 하예정도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넸다.잠시 후 여운별을 태운 고급 승용차는 부드럽게 하예정의 시야에서 멀어졌다.하예정은 시선을 거두며 휴대폰을 꺼내 여운초에게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운초 씨, 용 사모님을 또 만났어요. 그나저나 동생분께서 찾아와 귀찮게 굴지는 않으셨나요?”여운초는 아직 집을 나서지 않은 상태였다. 오전에는 화상 회의가 예정되어 있어, 꽃집에 들를 틈이 없었다.회사에도 처리할 일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통화로 해결할 업무가 많이 남아 있었다.어쨌든 그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저녁이 되면 남편과 함께 여유롭게 서원 리조트로 돌아갈 예정이었다.그렇게 또 주말이 다가왔다.주말에는 대체로 업무에서 손을 뗐다. 급한 일이 생기면 한동호가 대신 해결해 주곤 했다.꽃집도 믿음직한 직원들이 지키고 있으니 크게 신경 쓸 일이 없었다.그래서 그녀는 주말을 남편과 함께 오롯이 둘만의 시간으로 채울 수 있었다.내일 밤은 시어머니와 함께 연회에 참석할 계획이었다.“네, 괜찮아요. 곧 있다 올지도 모르겠네요.”여운초는 하예정에게 답장을 보냈다.“제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그 용씨 가문 사모님과 여운별이 제 눈에 너무 겹쳐 보이더라고요. 목소리도 어쩜 그렇게 닮았는지…”“여운별은 지금 남자친구도 없고 경호원을 둘 형편도 안 돼요. 고급 승용차라니, 여운별이 타는 차는 제가 익히 알아요.”여운초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다음에 용씨 가문 사모님을
하지만 하예정은 아직 용씨 가문 사모님과 여운별이 한자리에 함께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기에 그녀가 여운별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두 사람이 동시에 눈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 의혹을 완전히 떨쳐낼 수 없을 것이다.여운별은 애초에 하예정을 기다리지 않았다.지금 두 사람의 만남은 우연이어야 했다. 만약 그녀가 미리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 너무 작위적으로 보였을 것이다.지나친 의도는 하예정의 의심을 부추겼을 것이다.하예정이 그녀를 조사하고 있다고 용태호가 알려준 적이 있었다.물론, 아무리 뒤져도 쓸 만한 정보는 나오지 않을 터였다.하예정은 이미 그녀가 여운별일 거라고 의심하고 있었다.여운별은 문득 가장 증오하는 얼굴이 떠올랐다. 언젠가 마주했던 언니의 목소리, 그 익숙한 울림이. 하예정의 의심을 부추긴 것은 분명 여운초의 말 때문일 것이다.하지만 다행히도 용태호는 능수능란한 사람이었다.하예정이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이었다.그녀가 찾아낼 수 있는 건 모두 그의 손끝에서 빚어진 허상일 뿐이었다.그러나 하예정이 심효진과 친밀한 사이라는 점은 우려할 만했다. 심효진은 소씨 가문의 며느리였고, 소씨 가문은 정보망이 촘촘하기로 유명했다.하예정이 누구를 조사하려면 소씨 가문의 손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하예정은 빈손이었다. 여운별이 여씨 가문의 둘째 딸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여운별은 마음 한편이 가벼워짐을 느꼈다.그리고 그 여유는 곧 그녀의 표정에 스며들어 하예정을 마주할 때면 그녀는 점점 더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었다.마치 자신이 진짜 용씨 가문 사모님인 것처럼, 여운별이라는 사람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듯 말이다.용태호는 그녀한테 내일 밤에 있을 연회에 두 명의 경호원과 함께 참석하라고 말했다. 용씨 가문 사모님의 신분으로 참석하라는 것이었다.그 연회에는 관성시 상류 사회의 귀부인들이 모일 터였다.전씨 가문의 명해은도 내일 밤 연회에 참석할 예정이며 며느리인 여운초도 데려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