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정이 말했다.“이진 도련님이 아직도 운초에게 꽃 심부름을 시켜요? 장미 한 다발 주세요.”“네.”점원이 장미꽃다발을 포장하는 것을 기다리면서 하예정이 요즘 장사가 어떠냐고 물었다.점원이 웃으며 말했다.“사장님이 저희 급여 올려주셨어요. 요즘 사장님이 가게에 자주 안 오세요. 다른 가게 일 때문에 자주 회의해야 해서요.”여운초가 아직 눈이 보이지 않기에 매번 회의할 때마다 한동호와 함께 참석했다. 한동호는 지금 여운초의 두 팔이고 그녀의 대변인이었다. 한동호의 말이면 여운초의 뜻이기도 하다.두 사람의 배합이 맞기에 여씨 그룹이 여 대표가 수감된 후 잠깐의 부진이 있었지만 이젠 정상 상태로 회복됐고 상승의 기미도 보인다.여씨 가족은 이제야 시름을 놓게 되었다.비록 최씨 가문과 김씨 가문이 가끔 여씨 그룹을 찾아가 욕하고 부수고 행패를 부리긴 하지만 여씨 그룹 운영에는 별로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한동호가 매번 경찰에 신고하기 바쁘게 최씨와 김씨 가문은 도망갔다.경찰서에 연행될 때도 있지만 저지른 범행이 며칠 구류하거나 몇십만 벌금하는 것으로 끝나기에 크게 무서워하지도 않았다.두 가문은 여운초가 그들을 불쾌하게 했기에 그들도 여운초를 불쾌하게 하겠다는 것이다.하지만 그들은 전이진이 무서워 관성에서 여운초에게 직접 태클을 걸지 못했다.“큰 사모님, 우리 사장님 눈 완치될 수 있어요?”점원이 여운초의 눈이 걱정되어 물었다.“나도 아직 모르겠어요. 하지만 정겨울 선생님이 아기 낳고 돌아오면 운초 눈을 봐주겠다고 했으니 희망이 있어요. 정겨울 선생님이 독물 치료로는 일등이잖아요. 선생님이 봐주겠다고 했으면 치료할 수 있을 거예요.”만일 정겨울 선생님이 가망이 없다고 하면 그건 정말 가망이 없는 것이다.이 말은 하예정이 입 밖에 꺼내지 못했다.“사장님 눈이 빨리 나아지셨으면 좋겠어요. 눈이 안 보인다고 나쁜 사람들이 자꾸 괴롭히잖아요.”“그 두 가문에서 아직도 가게에 와서 행패 부려요?”“아니요. 하지만 이 부근에서 왔다 갔다 하는
점원이 장미꽃다발을 포장하여 하예정에게 넘겨주었다.하예정이 돈을 지불하고 꽃다발을 받으며 고맙다고 인사하고 나서 말했다.“수고해요. 나는 우리 태윤 씨한테 꽃다발 선물하러 가야겠어요. 나 때문에 화났으니 가서 달래야겠죠?”점원이 웃으며 말했다.“사모님 빨리 가세요.”전씨 가문 남자들은 달래야 말을 듣는 타입이다.꽃집 사장님도 가끔 전이진을 달래야 했다.점원들이 가끔 사장이 사적으로 푸념하는 것을 들을 때가 있었다. ‘남자가 돼서는 어떤 때 보면 여자보다도 옹졸해.’하예정은 꽃필 무렵에서 나와 전씨 그룹으로 향했다.거의 전씨 그룹에 도착하려 할 때 여운초를 보았다.차 한 대가 여운초의 곁에 멈춰 있었고 선글라스를 쓰고 까만 마스크를 한 남자가 여운초의 곁에 서서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그러더니 여운초가 웃으면서 그 남자의 부축을 받으며 남자가 이끄는 대로 차 곁으로 가서는 차를 타려 했다.그러던 여운초가 갑자기 그 남자의 손을 뿌리치고 몸을 돌려 도망가려 하자 그 남자는 여운초의 목덜미를 손날로 내리찍었고 여운초는 그 자리에 바로 쓰러졌다.이 광경을 본 하예정은 액셀을 힘껏 밟고 차를 쌩하니 달려 그 차 앞으로 돌진했다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으니 바퀴와 바닥이 마찰이 생기면서 찌지직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차에 있던 사람과 여운초를 차로 밀어 넣던 남자가 본능적으로 이쪽을 향해 쳐다보았다.하예정이 급히 차에서 내려 달려가면서 까만 마스크를 한 남자를 향해 힘차게 발길을 날리니 그 남자는 발길에 채어 멀리 나가떨어졌다. 그 틈을 타 하예정이 여운초를 차에서 끌어 내리려 했다.그러자 똑같이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하고 차에 앉아 있던 남자가 다급하게 액셀을 밟으며 도망치려 했지만 하예정의 차가 바로 정면에 멈춰있는 탓에 그대로 직진을 못 하고 속도를 낮춰 하예정의 차를 비껴가려는 틈을 타 하예정이 여운초를 차에서 끌어 내렸다.하예정의 발길에 채워 나뒹굴던 남자가 일어나서 달려오면서 하예정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지만 다시 하예정의 발에 채여 나가
어떤 겁 없는 놈이 감히 전이진의 약혼녀를 건드려?전이진이 빠른 속도로 회사 밖으로 달려 나가보니 길옆에 세워둔 하예정의 차가 있었다.하예정의 옆에는 네 명의 경호원이 서 있었는데 그중 두 명은 전태윤이 암암리에 배정해 놓은 하예정의 경호원이었고 두 명은 여운초를 보호하는 경호원이었다. 조금 전 여운초가 습격당했을 때 그녀를 암암리에 보호하던 경호원은 미처 달려오지 못했지만 다행히도 큰 사모님 덕분에 여운초가 무탈하였다.전이진이 미친 듯이 달려오며 물었다.“형수님.”“운초야, 괜찮아?”전이진이 헐떡이며 달려와 무릎을 꿇고 하예정의 손에서 여운초를 받아 안았다.“운초가 목덜미를 맞고 까무러쳤어요. 곧 있으면 깨어날 거예요. 다행히 제가 큰형님한테 꽃다발 주러 오다 운초를 만났고 운초에게 인사하려고 하는 사이에 이런 일이 발생했어요.”“운초가 그 남자와 말하는 모습을 봤는데 익숙한 사이인 것 같았어요. 운초는 차에 오르려고 하다가 갑자기 손을 뿌리치고 도망치려 했는데 그 남자의 손날에 맞고 까무러쳤어요.”전이진이 여운초를 안고 일어서며 말했다.“형수님. 저 형수님 차 좀 빌려도 될까요? 먼저 운초를 집에 데려다 놓고 이제 깨어나면 무슨 일인지 알아봐야겠어요.”“이 길에 CCTV가 있으니 형님한테 말해서 그 사람들 찾아달라고 해요.”“그래요. 먼저 가요. 방금 형님한테 전화했으니 곧 나올 거예요. 아... 내 꽃다발.”하예정이 차에서 꽃다발을 꺼내면서 시동생보고 여운초를 집에 데려가라고 했다.전이진이 여운초를 안고 차에 오르려고 할 때 큰 형님이 경호원과 함께 달려 나오는 것을 보고 시름 놓고 여운초와 함께 그 자리를 떠났다.전태윤이 경호원 한 팀을 데리고 나왔다.“여보, 무슨 일이야?”“나도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운초가 깨어나야 알 수 있어요. 이진 도련님 보고 먼저 운초를 집에 데려가라고 했어요.”하예정도 아직은 어리둥절한 상태였다.그 남자와 여운초가 모르는 사이라고 하기에는 여운초가 그 남자와 웃으며 얘기를 나누었고 심지
전태윤은 한 손으로 하예정이 건네준 꽃다발을 받고 다른 한 손으로 하예정의 볼살을 꼬집으며 말했다.“내가 열 받은 거 알기는 해?”하예정이 미안한지 웃으며 말했다.“저도 그 정도 자아 성찰은 해요.”하예정이 머리를 돌려 경호원에게 말했다.“별일 없으니 다들 가서 일 봐요.”네 명의 경호원이 동시에 전태윤을 바라보았다.전태윤이 그들을 책망할까 봐 걱정되는 모양이다. 그러자 하예정이 그들을 도와 말했다.“갑작스레 발생한 일이고 운초가 그들과 웃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기에 아는 사람인 줄 알았죠. 누구도 이런 일이 생길 줄 몰랐어요. 그러니 이번 일은 이분들의 직무 과실 아니에요. 너무 뭐라 하지 마요.”전태윤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사모님이 말을 했으니 각자 돌아가 일 봐.”“사모님, 고맙습니다.”네 명의 경호원이 하예정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그리고 하예정이 다시 여운초의 두 명의 경호원에게 말했다.“두 분은 운초 곁으로 가요. 사건의 경위는 내가 이진 도련님한테 설명할게요. 두 분의 책임이 아니라고 내가 잘 말할게요.”두 명의 경호원이 하예정에게 재차 고맙다고 인사했다.그들은 혹시 전이진이 화낼까 봐 두려웠다.큰 사모님의 말대로 당시 그들은 차에서 내릴 때 둘째 예비 사모님과 말하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둘째 예비 사모님이 그들과 웃으면서 얘기하는 모습을 보고 서로 아는 사인 줄 알고 곁으로 다가가지 않았는데 이런 반전이 생길 줄은 누구도 생각 못 했다.큰 사모님이 그 시간에 마침 도착했고 큰 사모님이 태권도 능력자인 동시에 반응이 빨라 짧은 시간 내에 둘째 사모님을 차에서 끌어 내렸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그 결과를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비록 그들이 암암리에서 보호하고 있었고 또한 필사적으로 둘째 사모님을 구출한다 해도 이건 큰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큰 사모님이 그들을 도와준 동시에 사건 목격자이기에 둘째 도련님의 책망을 모면할 수 있었다.사실 둘째 사모님의 눈이 안 보이기에 그들은 한 발짝도 떨어져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감히 여운초에게 손을 대다니, 전이진은 진범을 찾아서 반드시 그의 목덜미를 힘껏 내리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기절하는 기분이 어떨지 맛보게 하고 싶었다.여운초는 손을 뻗어 전이진을 잡으려고 했고 전이진이 재빨리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았다.여운초는 전이진의 손을 잡고 앞으로 끌어당기면서 냄새를 맡더니 익숙한 냄새를 맡으며 신분을 확인했고 그제야 바로 전이진을 잡고 있던 손에서 힘을 풀었다.“운초 씨?”전이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여운초가 말을 이었다.“먼저 차에 타자. 집에 곧 도착할 수 있지? 집에 가서 얘기해.”“집에 거의 다 왔어. 알았어. 집으로 가서 말하자. 뒷목이 아직도 아파?”“아파.”“집으로 돌아가면 약 발라줄게.”여운초는 아무 말도 없이 차에 올라탔다.곧 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여씨 가문 저택으로 돌아갔다.전이진은 약혼녀를 안고 들어가려다 여운초에게 거절당했다. 여운초는 20여 년 넘게 살아온 집에서는 길을 안내해 줄 사람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매우 익숙한 환경이었기 때문이다.“아가씨, 둘째 도련님.”집사가 방에서 나오더니 두 사람을 보고 공손하게 인사했다.여운초는 집사의 안부에 대답도 없이 담담한 표정으로 집사 곁을 지나갔다.집사도 여운초 태도에 습관이 되었다.여씨 가문 하인들은 여운초를 관심하고 있었지만, 그에 대해 완전히 충성심을 보이지 않았다.여운초는 그들을 모두 바꾸지 않았다. 그들이 모두 도련님에게 더 충성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만약 그들이 다른 마음을 가진다면 여운초는 그들을 진작 모두 바꿔 버렸을 것이다.게다가 현재 여씨 집안에는 전씨 가문의 사람들도 들어있었다. 여운초는 전이진이 안배한 사람들을 더 믿었기에 집사의 존재감은 더욱 낮아졌다.여운초는 집에 들어서더니 바로 위층으로 향해 올라갔다.전이진은 묵묵히 여운초를 따라갔다. 며칠 전에 여운초의 방에 방음 기능을 설치해 놓았기 때문에 방음 효과가 매우 좋았다.두 사람이 중요한
여운초가 앞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여운초는 상대방의 냄새와 목소리 그리고 발걸음에 의해 사람을 구분했다.하지만 이런 특징들은 쉽게 모방할 수 있었다. 여운초가 조금만 방심해도 속아 넘어갈 뻔했다.이번에는 하마터면 계략에 빠질 뻔했다. 상대방을 따라 차에 타려고 할 때 차 안의 담배 냄새를 맡고서야 진이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전이진은 담배를 거의 피우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차에도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았다.“맞아. 이진 씨인 척하는 거 있지. 목소리와 발걸음 소리 그리고 냄새까지 정말 이진 씨와 너무 똑같았어. 내 생각엔 그들이 우리 일거수일투족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이진 씨를 모방한 것 같아.”“그리고 냄새는 당신도 가끔 향수 치고 다니잖아. 향수 브랜드를 수소문하면 냄새쯤이야 쉽게 모방할 수 있잖아.”전이진이 입을 열었다.“당신 고모 두 분이 계획한 게 틀림없어. 두 분 모두 당신 꽃집 근처에서 자주 어슬렁거리고 있었잖아.”전이진은 여운초의 등 뒤로 돌아가더니 뒤에서 여운초를 꼭 안아줬다. 그리고 나지막이 말했다.“운초 씨, 앞으로 내 말 좀 들어. 당신 시력이 회복되기 전에 경호원들을 데리고 다녀. 오늘 같은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게 말이야.”“나중에 당신이 이상한 낌새를 발견했다고 해도 보이지 않아서 도망가기가 매우 어려워. 오늘 형수님이 마침 회사로 가는 바람에 마주쳐서 다행이지. 게다가 형수님도 싸움 실력이 어느 정도 있어서 당신을 구해낼 수 있었고.”“아니면 그들이 당신을 차에 태워 어디로 데려갈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숨어있던 경호원들이 그 상황을 발견했다 해도 반응이 느려 당신을 구해내기 매우 어려워.”전이진은 손을 풀어 다시 여운초 목의 고통을 덜어줄 겸 어깨를 주물러주었다.“참! 약 있지? 발라줄게.”“괜찮아. 시간이 좀 지나면 안 아파.”“오늘은 정말 위험했어. 차 안에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았다면 정말 속아 넘어갈지도 몰랐으니까. 이진 씨 경호원들도 내가 스스로 차에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 의심하
“하느님은 알고 계실거야. 나 그 당시 너무 놀랐어. 형수님이 전화 와서 당신이 사고 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 혼비백산할 뻔했다니까.”전이진은 두 손으로 여운초의 목을 가볍게 껴안았고 그녀의 목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고 몰래 냄새를 맡기도 하고 가끔 볼에 뽀뽀도 했다. 그러더니 아예 여운초의 얼굴을 바로 잡고 그녀의 입술을 막아버렸다.키스해버렸다.전이진은 의자에 앉았다.여운초는 전의진의 품에 안겨 있었다.전이진은 두 손으로 여운초의 허리를 꼭 껴안았다. 전의진의 손에 의해 아픔을 느낀 여운초는 그의 손을 잡아당기며 조용히 말했다.“너무 힘쓰지 마.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전이진은 바로 힘을 풀었다.“무서워서 그래.”전이진은 나지막이 대답했다.“당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두려웠어.”“다행이야. 다행히도 형수님이 마침 회사로 향하는 길에 운초 씨와 마주쳐서. 형수님이 싸울 줄도 몰랐으면 운초 씨가 정말로 그들에게 끌려갔을지도 몰라.”결과를 상상하던 전이진은 매우 두려웠다.“우리 운초 씨에게 행운이 따른 거지.”전이진은 여운초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 쪽으로 잡아당기면서 말했다.“정 선생님이 이번 달이면 산후조리가 끝나실 거야. 그때 되면 내가 직접 초대해서 당신 눈을 치료해주도록 부탁할게.”여운초의 눈이 잘 안 보이기 때문에 사고가 자주 나는 것이라고 여겼다.만약 사고가 났다고 해도 여운초는 앞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진범의 모습을 진술할 수 없었다.“자꾸 정 선생님을 재촉하지 마. 40일이 지나고 나서 초대해도 돼. 여자들은 아기를 낳으면 몸이 많이 상하거든. 잘 쉬고 잘 회복해야 해.”“당신 자꾸 재촉하면 정 선생님은 성격이 좋아서 따지지 않는다만 그분 남편 예준일은 당신을 절대로 가만 놔두지 않을걸.”여운초는 하예정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예씨 가문 넷째 도련님은 전이진이 자주 정겨울을 찾아가서 여운초의 눈을 치료해 달라고 조르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고 말이다.그 당시 정겨울은 임신 말기였다. 지금도 아직 산후조리 중이
“따르릉...”여운초의 휴대전화 소리가 울렸다.여운초는 틈만 나면 자신에게 키스하는 남자를 밀어냈다.전이진은 두 손으로 여운초 얼굴을 다시 바로 잡고는 자신의 키스를 피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나지막이 한마디 내뱉었다.“받지 마.”전이진은 여운초에게 달라붙어 억지로 키스를 오랫동안 했고 그제야 아쉬운 듯 손에서 힘을 풀었다.집사는 여운초의 방문 앞에 서 있었다.집사는 여운초의 방에 방음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문을 두드리는 대신 전화를 걸었다.여운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집사는 먼저 전화를 끊은 후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여운초에게 전화를 걸었다.여운초는 그제야 전화를 받았다.“아가씨, 전씨 가문 사모님께서 오셨어요.”집사가 전화로 공손하게 말했다.“오셨으면 집안으로 모셔요. 금방 내려갈게요.”여운초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고 집사는 방안에서 일어난 일을 알지 못했다.집사는 두 사람이 방 안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결혼하지 않은 두 남녀가 같은 방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약혼한 사이였고 예비부부기에 사람들의 비웃음거리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집사는 또 공손하게 대답했다.“알겠어요.”여운초는 휴대전화를 귓가에서 떼고는 전화를 끊었다.집사는 문에 기대어 귀를 기울였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체념한 듯 몸을 돌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여운초는 방 안에서 전이진을 밀어내면서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옷을 담담하게 정리하며 전이진이게 물었다.“나 어때 보여? 이상해 보여?”전이진은 과감하게 여운초의 몸을 한번 훑어보더니 슬며시 웃으면서 대답했다.“내가 운초 씨 옷을 헝클어뜨린 것도 아닌데 뭐가 이상해?”두 사람은 약혼한 사이지만 가장 친밀하게 한 행동은 키스뿐이었다. 전이진이 여운초의 다른 부분에는 손대지 않았다.여운초를 사랑했기에 여운초를 존중했다.혼인 신고하고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 굶주린 늑대로 변신할 계획이었다.그리고 또 하나, 여운초는 전이진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
장 대표가 전호영의 차를 얼핏 보더니 말을 이었다.“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의 차였군요. 셋째 도련님은 정말 매일 고씨 그룹에 가서 고 대표님을 귀찮게 하는군요. 저는 그저 헛소문인 줄로만 알았는데.”“사실이에요. 고 대표님은 우리 장성에서 가장 젊고 우수한 대기업 대표님이죠. 그의 잘생긴 외모는 얼마나 많은 여자를 사로잡았는지 몰라요. 고 대표님은 강성의 모든 젊은 여자들의 이상형일걸요. 여자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전호영 도련님이 해내게 될 줄은 몰랐네요.”“하지만 외모로 보면 전호영 도련님과 고현 대표님은 참 잘 어울려요. 두 사람 중 한 명이 여자라면 정말 천생연분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 모두 남자네요. 너무 아쉬워요.”두 사람의 만남은 수많은 얼마나 많은 여자의 부러움을 자아냈는지 모른다.강성의 명문 아가씨들도 전호영이라는 남자에게 진 것이 자못 못마땅했다.“두 분이 이미 서로 남녀 관계를 확정하셨나요?”장 대표는 계속해서 물었다.“제가 듣기로는 전호영 도련님이 아직도 고현 대표님께 구애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의 일방적인 짝사랑 아닐까요? 사실 고현 대표님이 정상적인 남자인데 전호영 도련님이 게이일 수도 있죠.”“저도 잘 몰라요. 진실한 사실이 어떠할지 누가 알겠어요. 고 대표님은 냉담한 분으로서 수많은 대표님과 접촉하시지만 진정으로 친한 친구는 얼마 없어요. 고 대표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없거든요.”“하지만 고현 대표님께서 전호영 도련님을 점점 더 포용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이 고 대표님을 위해 여성 옷을 입으며 여자로 분장한 적이 있거든요. 그 두 사람 중에서 아마 전호영 도련님이 더 비정상인 것 같아요. 고 대표님께서 좋아하는 사람이 여성이기 때문에 전호영 도련님이 여성 옷을 입었을 거라고 봐요.”전호영은 여성 옷차림으로 고씨 그룹에 왔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그 현장을 목격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전호영을 위해 비밀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소문을 퍼뜨리고 그렇게 일파
멀리 장성에 있는 전호영도 전이진이 보낸 카카오 스토리를 보았다. 그는 여운초와 전이진이 혼인 신고서를 받은 모습을 보고 무척 부러워했다.그는 결국 다시 자리를 떠나 호텔 사무실을 나오더니 차를 몰고 고씨 그룹으로 향했다.이때 고현이 사업에 관한 얘기를 방금 마쳤을 때였다.그녀는 일어나서 손을 뻗어 고객과 악수하며 부드럽게 말했다.“장 대표님, 수고하셨어요.”장 대표도 이내 대답했다.“즐거운 협력이 되길 바랍니다.”고현은 예의 바르게 말했다.“벌써 식사 시간이 되었네요. 우리 함께 식사하는 건 어때요? 제가 대접해 드릴게요.”“감사합니다, 고 대표님. 제가 이번에도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네요. 곧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거든요. 다음에요. 다음에 제가 고 대표님께 음식 대접해 드릴게요.”고현은 이해하며 말했다.“장 대표님께서 오신다면 당연히 제가 음식 대접해 드려야죠. 다음에 오시면 꼭 저에게 대접할 기회를 주셔야 해요.”“당연하죠. 약속드릴게요.”장 대표는 웃으며 대답했다.고현이 고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쳐다보자 고빈은 눈치껏 일어나사 미리 준비한 특산품을 장 대표에게 가져다주었다.“장 대표님, 이것은 우리가 장 대표님을 위해 준비한 강성의 특산품이에요. 귀한 물건은 아니고 우리 강성의 특색이에요. 한 번 맛보세요.”장 대표는 사양하다가 웃으며 선물을 받았다.“고 대표님, 고마워요.”고현과 사업해 본 사람들은 비록 고씨 그룹의 오더를 따내기가 쉽지 않지만, 고현의 인품은 흠잡을 데가 없다고 했다.고현은 사람이 엄숙하고 차갑지만, 그녀와 사업을 해본 사람들 모두 그녀를 칭찬하곤 했다.하지만 이렇게 좋은 청년 인재가 동성애자라니... 아깝기만 했다.고현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많은 대표가 아마 정말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고현이 게이가 아니라면 그들은 모두 자신의 딸과 고현을 맞세워주고 싶어 했다.고현 남매와 고위층 몇 명 인사들이 함께 장 대표를 고씨 그룹 앞까지 배웅하고 장 대표 일행을 미리 준비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엄마가 관성 호텔에 예약해 놓았어. 가서 축하할 겸 밥 먹자. 그리고 모두한테도 관성 호텔에 오라고 전화해 놨어. 할머니께서도 너희 두 사람이 혼인 신고한 일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운초야, 내가 방금 네 고모도 초대했어. 너와 이진이 결혼에 관해 상의하려고. 아직 설이 몇 달 남았는데 그 전에 결혼식 좀 올리자.”명해은이 무척 급했던 모양이다.전이진과 여운초가 혼인 신고하자마자 바로 결혼에 관한 일을 상의하려고 했다.여운초의 새아버지와 친어머니는 아직 감옥에 있는데다 여운초가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 명해은은 혼례 문제에 관해서 여준희와 상의하려 했다.하지만 추미자는 결국 여운초의 친어머니였기에 명해은은 여운초의 뜻을 물었다.“운초야, 네 어머니께 말씀드려야 되지 않을까?”명해은은 추미자한테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기에 그냥 결혼 사실을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여운초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이진 씨와 함께 감옥으로 만나러 가서 말할게요. 저와 이진 씨 결혼에 대한 모든 일은 저의 작은 고모와 상의하면 돼요. 여씨 가문에 사람들이 수많지만,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건 제 작은고모뿐이거든요.”여천우도 여운초와 사이가 가까웠지만, 아직 어리기에 이런 일에 관해 잘 모를 것이다.명해은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그래. 알았어. 네 작은고모도 너희들이 혼인 신고한 사실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오후에 오신다고 하셨어.”여운초 전이진이 약혼한 뒤로 전씨 가문은 여운초의 배후에 서 있게 되었고 눈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준희는 이 가엽고 운이 좋은 조카를 전이진에 맡기게 되니 매우 안심했다.여준희도 그녀의 집안에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친정집에 가는 횟수가 예전보다 줄었다.여운초 남매는 서로 자주 연락했다.여운초는 작은고모를 어머니로 여기고 있었다.그녀는 친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모성애를 여준희에게서 느꼈다.“언제 면회를 하러 가려고?”“오후에 가려고요. 감옥에 가서 보고
전현민도 벙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경사야. 우리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진아, 이미 이르지 않으니 어서 운초랑 들어가 절차부터 밟아. 직원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부모님의 재촉을 받은 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어머니 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서 구청 안으로 걸어갔다.명해은 부부는 돌아가지 않고 밖에 서서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전현민은 아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이러고 있으니 32년 전에 우리 둘이 이곳에 와서 결혼 증명서를 받던 날이 생각나네. 마치 어제 발생한 일과 같은데, 벌써 우리 큰아들이 이곳에 오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빨라. 우리도 늙을 때가 되긴 됐나 보네.”그는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난 당신과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했었지.”명해은도 감격해서 말했다.“그러게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난 아직도 자신이 18살인가 하는데 우리 큰아들이 벌써 서른이네요. 우린 정말 늙었나 봐요.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네요.”“당신은 조금도 안 늙었어. 내 눈에는 당신이 관음보살과 같이 해마다 18살이야.”명해은은 몸 관리를 잘해서 전이진과 함께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남매로 착각할 정도였다.전현민도 몸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젊은 시절에 전씨 가문의 사업에 몰두했기에 심신이 많이 상해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졌다.은퇴한 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염색은 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서면 아내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사실, 두 내외는 불과 한 살 차였다. 명해은은 남편의 칭찬에 웃음보를 터뜨렸다.“나도 해마다 18살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네요. 내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 해도 늙기 마련인걸요.”“내가 당신과 함께 늙어 갈 테니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보다 훨씬 늙어 보여.”명해은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두려울 것 없어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하늘이 무너
여운초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그녀는 다만 전이진을 대신하여 은행카드만 보관할 뿐일 것이었다. 그가 돈 쓰는 것을 제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녀도 그의 돈을 쓸 일이 없을 테였다.전이진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고 나서 다시 그녀를 보면서 벙글벙글 웃었다.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기만 했다.“왜 계속 날 보면서 웃어요?”“좋으니까. 운초 씨, 나 지금 너무 좋아. 그냥 웃고 싶은 걸 어떻게 참아?”이렇게 대답하면서도 그는 또 웃었다.그러는 전이진을 지켜보는 여운초도 참지 못해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둘이서 한참 동안 알콩달콩한 후 전이진이 시계를 보니 어머니가 도착할 시간이 다 되었다. 그는 약혼녀를 보면서 말했다.“운초 씨, 엄마가 곧 도착할 것 같으니 우리 지금 출발해. 우리가 구청에 도착하면 아마 엄마도 도착하실 거야.”그는 꽃집에 가서 장미꽃 한 다발을 사야 했다.여운초가 불시에 결혼 신고하자는 바람에 그가 아직 준비는 못 했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서둘러야 했다.꽃다발, 다이아몬드 반지 둘 중 하나도 빠뜨리지 않을 것이었다.그녀는 자신이 한평생 소중히 여길 여자임으로 절대로 서운하게 할 수 없었다.“그래요.”그가 일어나면서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자, 여운초도 편안하게 자신의 손을 그의 커다란 손바닥에 올려놓은 채 그에게 이끌려 일어섰다.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자고로‘그대의 손만 잡고 이생의 끝까지 살아간다.’라고 했다.그녀는 전이진과 백년해로하고 평생 금실이 좋기를 원했다. 시부모님처럼 애들이 부러울 정도로 몇십 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첫 사람처럼 달콤하게 지내길 원했다.여운초는 저의 집에 있는 차를 안 타고 전이진이 운전하는 차를 타기로 했다.그녀에게는 운전면허증이 없었다. 그녀가 16살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기에 운전면허를 딸수 없었던 것이었다.집에 있는 운전기사는 전이진이 그녀에게 보낸 경호원인데 그녀를 보호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운전도 해줄 수 있었다.20분 뒤.구청 입구명해
“운초씨, 잠깐만 기다려. 내가 엄마한테 당장 전화할게.”전이진은 약혼녀의 볼에 입을 맞춘 후, 바로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명해은은 전화벨이 한참 울린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엄마, 오늘 시간 돼요?”“이제 방금 일어났어. 오늘은 별일 없어서 시간이 남아돌아. 왜? 아들, 엄마 도움이 필요해?”명해은이 잠기가 채 가셔지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아들이 다 크니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점점 적어졌다.애들한테 더는 필요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명해은은 너무 일찍 맛봤다.“저와 운초 씨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를 마치려 하는데 제가 가족관계등록부를 안 가져왔어요. 엄마 혹은 아버지가 지금 저한테 가져다줄 수 있어요? 혹은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보내줘도 되고요. 제가 돌아가서 가져오면 시간이 지체되어 아마도 오후나 돼야 절차를 밟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오후까지 못 기다리겠어요.”가족관계등록부만 손에 가지고 있다면, 전이진은 지금이라도 여운초를 데리고 혼인 신고하러 갔을 테였다.진정으로 여운초가 좋아진 그 시각부터 그는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했다.하지만 그때의 여운초는 앞을 보지 못했기에 훌륭한 전이진을 앞두고 자비감에 모대기었다. 전이진의 사랑마저 그녀는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받아들인 것이었다.그녀는 전이진이 자신의 눈을 고쳐주기 위해 정 선생을 찾으러 여러 번 예진 리조트를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남은 인생을 그와 함께하기로 하고 약혼을 한 것이었다.그래도 그녀는 진정으로 그를 볼 수 있을 때 가서 결혼하기를 원했다.그녀는 자기와 결혼할 남자가 어떻게 생겼는가를 알고 싶다고 했다.전이진이 곧 시어머니로 될 사람에게 하는 말을 들은 여운초의 얼굴은 또다시 붉게 물들었다.‘이 사람 뭐가 그리 급해...’이 반가운 소식을 들은 명해은은 순식간에 잠기가 싹 사라진 듯했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시간이 있고말고, 엄마 시간은 남아돌고 있으니 금방 가져다줄게. 넌 지금 여씨 저택에 있니? 아니면 회사에 있니?” “저는 지금
그는 자신의 사람 보는 안목을 믿을 뿐만 아니라, 할머니도 믿었다. 그는 그녀와 긴 시간을 함께하면서 그녀의 인품, 일하는 스타일 등을 천천히 알게 되었다.“혼인신고를 하고 나면 한평생 같이 살아야 해요. 나는 이혼 따위는 할 마음이 없으니 잘 생각해서 결정해요. 당신처럼 훌륭한 남자는 앞으로도 나보다 더 좋고, 당신한테 더 잘 어울리는 여자를 만날 수도 있어요. 그때 가서 이 결혼은 할머니가 강요하셔서 한 거라고 하면서 그 여자야말로 당신의 진정한 사랑이니 어쩌니 해도 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전이진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그녀의 코끝을 살짝 건드리면서 말했다.“넌 아직도 바깥사람들이 우리 전씨 집안 남자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몰라? 전씨 집안 남자들은 모두 아내한테 일편단심이야. 전씨 집안의 가훈에는 결혼 후 한평생 가정에 충실해야 하고 혼인에 충실해야 하며 바람을 피워선 안 되고 이혼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되어 있어.”“누구든 가훈을 어기는 즉시, 전씨 가문에서 쫓겨나서 더는 전씨 일가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돼버려.”“그리고 내가 당신과 결혼하는 것은 할머니가 당신을 선택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다면 할머니가 강요하셔도 소용없어.”전이진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전화를 걸었다.“누구한테 전화하려고요?”여운초는 그가 할머니에게 전화 드리려나 싶어서 한마디 물었다.“내가 가족관계등록부를 몸에 지니고 다니진 않아. 우리가 혼인신고를 하려면 내 가족관계등록부도 필요할 거 아니야. 내가 엄마한테 전화해서 급히 가져다 달라 하면 우리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 절차를 다 끝낼 수 있을 거 같아.”결혼 증명서를 받고 나면 그들은 합법적인 부부가 될 것이었다.전이진은 여태 자기가 한시 급히 여운초랑 결혼하여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어 한다는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애초에 여운초는 시력이 회복되어 그를 볼 수 있어야만 결혼할 수 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는 이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왔다. 끝내 그녀의 눈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또 법을 어기는 일까지 했다.비록 모든 불법적인 장사는 이미 압류당했고 관련된 금액도 그다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이로 인해 여씨 그룹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어 주가가 폭락하고 매출액이 바닥을 쳤으며 여씨 그룹의 재산도 많이 수축했다.큰누나가 여씨 그룹을 이어받은 후, 한동호 형님과 힘을 합쳐 천신만고 끝에 여씨 그룹을 이끌고 이 힘든 고비를 넘긴 셈이었다.이런 얘기를 큰누나는 그한테 한 적 없었지만, 그는 한동호 형님과 매형을 통해서 알게되었다.비로소 그는 큰누나의 홀가분해 보이는 말투 속에 얼마나 많은 쓰라림이 숨겨져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비록 큰누나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감방으로 보내긴 했지만, 그것은 그의 부모님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비록 큰누나의 대의멸친을 받아들이긴 힘들었지만, 이해만은 할 수 있었다.현재 여씨 그룹은 큰누나가 통제하고 있지만, 큰누나가 그에게 한 말이 있었다. 자기가 가져야 할 재산은 한 푼도 양보하지 않지만, 자기가 가지지 말아야 할 재산은 한 푼도 탐하지 않는다고. 그가 물려받아야 할 재산은 언젠가는 돌려줄 것이었다.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그와 둘째 누나 단둘의 소송일 것이었다.큰누나는 단지 여천우 부모님에게 속하는 재산만 그에게 돌려줄 것이었다. 그의 부모님에게 자식이라곤 그와 둘째 누나밖에 없으니 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상대는 그일 수밖에 없었다.“누나, 나 먼저 수업 들으러 들게. 수업이 끝나는 대로 휴가 내서 돌아갈 테니 그때 천천히 얘기해.”“알았어, 얼른 가서 수업 봐.”동생과의 통화를 마친 여운초는 동생의 말대로 그의 부모님의 물건들을 그의 방으로 옮겨 놓았다.여운별 방의 물건은 여운초가 기분을 봐서 언제든 연락하여 가져가라고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앞으로 그와 여운별은 남남일 것이었다.“아가씨, 진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 오셨습니다.”여운초는 알았다고 하면서 핸드폰을 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