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생각에 잠겼던 전태윤은 결국 도로 식탁에 앉아, 용기 뚜껑을 다시 열고 좋아하지 않는 스프링 롤을 묵묵히 먹었다.하예정과 함께 살다 보니, 그가 조금 평범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평소에는 먹지도 않았던 간식들도 맛보게 됐다.아침 식사를 마친 전태윤은 베란다에 있는 흔들의자에 앉아 그녀가 기르는 화초들을 감상했다.그러다 11시가 되자 울리는 소정남의 재촉 전화에 못 이겨, 전태윤은 방으로 들어가 옷 갈아입고 집 밖으로 나섰다.하예정이 언니의 집에 있다는 것을 생각한 전태윤은 아내와 마주칠 리가 없다고 생각해, 현대 SUV가 아닌 여느 때처럼 고귀한 롤스로이스를 타고, 여러 대의 경호차의 호위 아래 위풍당당하게 식객당으로 향하였다.도착한 뒤에는 할머니의 카페에 주차를 하고 식당까지는 걸어간다면 큰 소란은 일지 않을 것 같았다.전태윤이 식당에 도착했을 때, 이동명과 소정남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전태윤을 발견한 그들이 손을 흔들자, 전태윤은 한 무리의 경호원들을 데리고 안쪽으로 걸어갔다.경호원들은 자연스레 세 사람 옆 테이블에 앉았다. 그러면 가까이서 도련님도 보호할 수 있었고, 도련님과 친구들의 식사도 방해하지 않을 수 있었다.오직 이동명과 소남정이 불러야만 그들의 도련님은 기꺼이 이곳까지 행차했다.전태윤 일행이 선택한 자리는 가장 외진 곳으로, 조용한 곳이었다."전태윤, 네가 주문해."이동명은 메뉴판을 전태윤에게 건네주었다.전태윤은 메뉴판을 보지도 않은 채 무심하게 말했다. "자주 와봤잖아. 사장님한테 자주 먹던 걸로 달라고 해.""이번엔 좀 다른 거 먹지 않을래?"소정남이 맞받아쳤다. "얘는 입이 까다로워서 다른 메뉴는 못 먹을걸. 나도 늘 먹던 걸로."이동명은 친한 친구 두 명이 다 늘 먹던 걸로 하려는 것을 보자, 종업원을 불러 주문을 했다."화장실 다녀올게."전태윤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경호원 한 명도 일어나더니 그의 뒤를 따라갔다.그들은 이곳에 있는 사람이 도련님에게 해를 끼칠까 걱정하는 것보다는, 도련님에게 반한
자리로 돌아온 전태윤은 덤덤한 표정으로 음식이 올라오자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두 친구가 무슨 말을 하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금 전태윤의 머릿속에는 온통 하예정이 김진우에게 반찬을 집어주던 장면뿐이었다."태윤아, 오늘 좀 이상한데?"음식을 한 술 집어 먹은 이동명이 맞은편에 앉아있는 전태윤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너는 왜 말도 안 하고 먹기만 해?"소정남도 이동명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전태윤이 담담하게 말했다. "배고파서."전태윤은 아침에 입맛에 맞지도 않는 스프링 롤을 먹은 데다 양도 얼마 되지 않아 진짜로 배가 많이 고팠다.물론 기분은 더더욱 나빴다.기분이 나쁘니, 계속 먹고 먹고 또 먹는 것이었다.하예정이 김진우에게 반찬을 집어주는 것쯤,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신경 써야 하나? 질투를 해야 하나?그는 진작부터, 질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었다. 못나지 않은가!전태윤과 하예정은 쇼윈도 부부이며 계약서도 체결한 상태였다. 서로의 사생활을 간섭하지 않기로 약속했기에 하예정이 결혼 기간에 다른 남자를 만나더라도 김진우와 동거하는 등 지나친 행동을 하지 않으면 눈을 감아줄 수밖에 없었다.전태윤이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달랬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태윤의 머릿속에는 계속해서 하예정과 김진우가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는 장면이 떠올랐다.두 친구는 전태윤이 할머니의 잔소리 때문에 할머니의 목숨을 구해준 하예정과 결혼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전태윤이 배고프다고 말하자 소정남이 웃으면서 말했다. "너 지금 유부남이잖아? 그런데 왜 배를 곯고 다녀? 아내가 아침을 안 차려줘?"평소에 회사에서 마주쳤을 때 소정남이 전태윤에게 아침을 먹자고 하면 전태윤은 늘 자신은 아내가 있는 사람이라고 한껏 으스대는 투로 말했었다.소정남이 손을 내밀어 전태윤이 입고 있는 옷을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너는 아내도 있으면서 왜 자기가 산 옷을 입고 다니는 거야?"전태윤은 굳은 표정으로 소정남의 손을 내리치면서 말했다. "나와 하예정는 쇼윈도에
설령 쇼윈도 부부인 데다 결혼 사실을 숨기고 있다고 해도 이동명은 내키지 않았다.전태윤은 두 친구의 말장난에 끼어들지 않고 계속 식사만 했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불러 식사를 멈췄다."난 할머니 카페에 가서 쉬고 있을 거니까, 너희 둘은 천천히 먹어."젓가락을 내려놓은 전태윤은 휴지를 뽑아 입을 닦은 뒤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했다."우리도 다 먹었어. 같이 가자."이동명과 소정남도 젓가락을 내려놓고 전태윤을 따라 옆에 있는 소희 카페로 가려고 했다.경호원도 식사를 마치고 도련님이 자리를 뜨려고 하자 묵묵히 일어섰다. 그리고 도련님을 경호하면서 조심스럽게 밖으로 따라 나갔다.그들은 하예정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하예정이 김씨 가문의 도련님과 같이 식사를 하고 있고 김씨 도련님은 전태윤 도련님을 만난 적이 있다. 하예정에게 들키면 전태윤 도련님의 신분이 발각될 수 있었다.이동명이 계산하려고 카운터로 향했다.소정남이 계산을 마친 이동명을 따라 밖으로 나가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동명아, 오늘 전태윤이 약간 이상하지 않아? 아니, 올 때는 괜찮았어, 표정도 차갑지 않았고."사람들은 모두 전태윤이 진중하고 차갑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는 사석에서 친구들을 만날 때는 차가운 모습보다는 친구들에게 온화하게 대했다."태윤이가 화장실을 다녀온 뒤부터 표정이 변했어."소정남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더니 뒤돌아서서 가게로 돌아가면서 말했다. "화장실에서 어떤 일이 생겼는지 알아봐야겠어."이동명이 소정남의 팔을 잡고 밖으로 끌면서 말했다. "뭘 봤든 간에 이미 지나간 일이야. 아직도 그대로 있지 않을 거야. 전태윤은 항상 그런 식이잖아. 별일 없었을 거야."이동명은 무슨 사람이나, 아무 일이 전태윤의 기분을 순식간에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전태윤은 성격이 진중해, 하늘이 무너져도 표정이 바뀌지 않았다."아니야. 분명히 뭘 봤으니까 갑자기 차가워진 거야."소정남은 전태윤이 화장실에서 무엇을 목격했는지 몹시
하예정은 전태윤이 같은 식당에서 친구들과 식사를 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하예정은 친구와 김진우랑 한참 얘기를 나누면서 식사를 했다.전화를 받은 김진우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하예정이 말했다. "나랑 네 누나도 다 먹었어. 난 먼저 계산하러 갈게. 진우 너는 급한 일 있는 거면 얼른 가봐. 난 효진이랑 옆에 있는 카페에 갈 거야."지난번 심효진의 선 자리를 따라갔던 하예정은 조용한 소희 카페가 마음이 들었다.번화한 거리는 북적거렸지만 소희 카페의 사장님은 돈을 아끼지 않고 방음 소재로 벽을 세운 탓에 카페 안으로 들어오면 창밖의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자신의 사촌 누나가 차를 몰고 왔으니, 조금 있다가 하예정을 집까지 데려다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김진우가 말했다. "효진 누나, 예정 누나, 나 그럼 가볼게.""가봐, 운전 조심하고."심효진이 사촌 동생한테 잔소리 한마디를 했다."누나, 그럼 이따가 예정 누나를 집까지 데려다줘, 부탁할게."사실 하예정에게도 자동차는 있었다. 하지만 기름값이 올라서, 기름을 한 번 가득 채우면 몇만 원이어서 자주 몰고 다니지 않았다.될 수 있으면 몰고 다니지 않았다.하예정은 살림을 위해서 돈을 아껴 쓰려고 했다.비록 전태윤이 준 생활비는 아주 넉넉했지만 하예정은 돈을 마구 낭비하지 않았다.심효진은 웃으면서 말했다. "알았어. 네가 말하지 않아도 너희 예정이 누나를 집에 데려다주려고 했어. 얼른 일이나 보러 가. 주말에 밥 한 끼도 제대로 못 먹네."대기업의 후계자가 되는 일은 쉽지 않았다.김진우는 아쉬운 마음을 누르며 미련 가득한 걸음을 옮겼다.하예정은 계산을 마친 뒤 친구의 팔짱을 끼고 식당 옆에 있는 소희 카페로 걸어갔다.카페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전씨 가문의 경호원들이 그녀를 발견했다.그들은 곧바로 전태윤에게 알렸다.전태윤은 커피를 마시지는 않았다. 그저 할머니 커피숍에서 머리를 조금 식히면서 잠깐 쉬려고 했다.하예정 때문에 복잡해진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했다.경호원
그 모습을 본 소정남은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설마 지난번에 전태윤이 회사에서 자기 앞에서 아내를 자랑한 것이 진짜로 연기였던 말인가.하지만 전씨 가문 할머니는 이미 회사 일에서 손을 뗐고, 회사도 거의 나오지 않는데, 전태윤이 자신의 앞에서까지 연기할 필요가 있었을까?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되었다, 전태윤의 사생활이니 알아서 잘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친구들인 그들은 무슨 일이 있었을 때 그저 옆에서 팝콘이나 집어 먹으면 그만이었다.구경할 거리도 없는 참에 소정남은 집에 돌아가 잠이나 자야겠다고 생각했다.두 시간 후.시계를 쳐다보니 벌써 오후 세 시라 하예정은 친구한테 말했다. "효진아, 우리 그만 가자. 나 언니 집에 가봐야 해.""그래."심효진은 시계를 보더니 하예정의 말에 응했다. "이따가 마트에 들러서 과일도 좀 사고, 장난감도 한두 개 사서 나랑 같이 언니네 집에 가자. 나는 집에 가기 싫어, 엄마가 짜증 내는 것을 보고 싶지 않고."하예정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게 누가 도씨 가문의 파티에서 드러누우래? 너뿐만 아니라 고모님의 체면까지 다 잃었는데, 어머님께서 화를 안 내시는 게 더 이상하지."자신이 저지른 짓을 떠올린 심효진은 웃으면서 말했다. "체면 좀 잃으면 어때? 엄마와 고모는 내가 미모도 있고 재주도 있어서 어디 왕비라도 될 수 있을 줄 안다니까? 두 분 생각을 바꿔놔야 내가 편안해질 수 있단 말이야.""어, 예정아, 저 테이블에 앉아있는 세 사람 봐봐? 네 남편 아니야?"심효진은 자리에서 일어서다 전태윤을 발견하고는 다급하게 하예정의 어깨를 두드리며 재촉했다.심효진이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본 하예정은 전태윤을 발견했다."맞네."전태윤처럼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은 보기 드물어 하예정은 전태윤을 한눈에 알아봤다."가서 인사 해야 하는 거 아니야?"하예정은 망설이다 말했다. "친구랑 같이 있잖아, 전태윤 씨 친구들과 잘 아는 사이도 아닌데, 인사는 좀 아닌 것 같아."사실 하예정은 전태윤
심효진이 놀랍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발렌시아 아파트가 고급 아파트긴 한데, 롤스로이스를 끌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고? 롤스로이스를 끌고 다니는 사람은 별장에서 살아야 하는 거 아니야?""전태윤 씨 말로는 애가 근처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발렌시아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거래, 애가 학교 다닐 때 편하라고. 별장이 여러 개 있을 수도 있어."심효진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 우리 가서 쇼핑하자. 참, 전씨 가문 할머니도 온다고 했지?""안 오신대.""왜?""집주인이 못 오게 해서."심효진은 말문이 막혔다.하예정의 집주인은 전태윤이 아닌가? 전씨 가문 할머니의 손자인데, 할머니가 같이 주말을 보내겠다는데 손자가 못 오게 하다니. 너무 불효막심한 것은 아닌가?하예정과 심효진이 차를 타고 소희 카페를 떠났다.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백화점에 도착했다.백화점에 들어가서 쇼핑을 마친 두 사람은 양손에 가득 쇼핑백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그순간, 하예정은 전태윤과 쇼핑했던 추억이 떠올랐다. 전태윤이 곁에 있었으면 아무리 많이 사도 들어줄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심효진은 물건을 차 트렁크에 내려놓고 헥헥거리면서 말했다. "이럴 땐 남자가 곁에 있어야 하는데, 이것저것 다 사다 보니 너무 많아져서 무거워 죽는 줄 알았네. 이렇게 많이 사지 말아야 했는데."하예정은 그 말에 그저 웃기만 했다.그들은 절친이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생각하는 것마저 이렇게 똑같지 않은가.전태윤과 쇼핑했을 때 좋았던 점을 떠올리자마자 친구인 심효진이 바로 말을 하다니."그럼 빨리 남자 친구를 사귀던가. 쇼핑이 많이 편해질 거야."심효진은 운전석에 앉아 안전띠를 매면서 말했다. "그게 쉬운 일인가? 나랑 잘 맞는 데다 마음까지 동하는 사람을 찾아야지. 그렇게 쉽게 만날 수 있다면 나도 이렇게 혼자 살지 않았을 거야. 집에서 하도 결혼하라고 재촉해서 이제는 집에도 가기 싫어.""아직 인연을 못 만난 거야. 급할 것 없어, 겨우 스물다섯 살인데, 아
두 사람은 하예진이 사는 아파트로 향했다.차에서 내리면서 익숙한 차를 발견한 하예정은 표정이 굳어버렸다."왜 그래?""언니 시누이의 차가 와 있어. 언니한테 한마디 하려고 온 게 분명해. 그 사람은 우리 시골 친척들과 막상막하일 정도로 막무가내야."하예정의 말을 들은 심효진이 급하게 말했다. "빨리 올라가자. 예진 언니를 괴롭히고 있으면 우리가 같이 쫓아내야지."하예정이 물건을 들고 걸어가자 심효진은 재빨리 따라갔다.주씨 집안에서 사람이 온 것이 맞기는 했다. 찾아온 사람은 주서인 두 모녀였다.그들은 하예진 더러 그들 집으로 가서 주형인을 데려가라고 온 것이었다.주형인은 본가로 돌아가서 지냈지만 식사는 누나네에서 해결했다. 왜냐하면 주형인의 부모는 누나네인 주서인의 집에서 아이를 돌보면서 밥을 했기 때문이었다.주형인 부모의 집은 주서인의 집과 아주 가까웠다. 같은 동네에 있는 맞은편 건물이었다.주서인은 부모님이 매일같이 동생에게 맛있는 것을 많이 사주는 것을 보자, 비록 주서인의 식구들도 같이 먹었지만 부모님이 편애한다는 생각에 내내 심기가 불편했다. 동생이 돌아오자마자 그렇게 비싼 음식들을 하다니.하지만 다행히도 주서인은 싹수가 없지만 염치는 있어서 자기의 불만을 털어놓지 않았다.주서인은 부모님이 오랜 기간 도와준 탓에, 도움을 독차지하는 것에 익숙해졌다.동생이 집에서 며칠 지내자, 주서인은 동생과 동서의 싸움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동생을 자기 집에서 쫓아내려고 했다."예진아, 부부는 모두 싸우면서 사는 거야. 평생 한 번도 안 싸우는 부부는 없어. 싸우면 며칠 동안 쳐다보지도 않다가 결국 화해하는 거야. 앞으로도 계속 같이 살 거잖아?""형인이는 남자잖아, 남자 자존심이 있지. 지금 분명히 후회하고 있을 거야. 그날 널 먼저 때린 것은 그 자식이 잘못한 거야. 우리도 그 자식의 편을 들어줘서 미안해. 그래도 기회를 주고 네가 찾아가서 집으로 데려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세 식구가 행복하게 잘 살아야지."하예정은 문을 열
주우빈은 좋다고 하지도, 싫다고도 하지 않다. "아빠 출근해요."주우빈은 엄마와 이모가 돌보고 있어 아빠라는 사람은 주말에나 한번 만날 수 있었다. 평소 주우빈이 깨어났을 때, 아빠는 일찍 출근했고, 밤에 그가 잠들었을 때, 아빠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주우빈은 아빠에 대한 감정이 정말 깊지 않았다.아빠는 집에 있어도 그와 놀아주지도 않았고, 계속 핸드폰만 했다."예진아, 봐라, 우빈이 며칠째 아빠를 못 보니까 애가 감정에 둔해지지 않았니. 그러면 아이 성장에 좋지 않아. 남자애의 성장에 아빠가 없어선 안 된다? 아빠가 가르쳐줄 일이 얼마나 많은데."김은희는 손자가 아빠를 보고 싶다고 말할 줄 알았다. 그녀는 아이가 문제로 며느리를 고개 숙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도 못 하게 어린 손자가 아빠를 보고 싶지 않다고 한 것이다.다행히 그녀는 약삭빠르게 손자의 말을 받아치며 말했다.하예진은 시어머니의 두 눈을 뚫어지게 보며 냉담하게 말했다. "주형인이 집에 있어도, 형인이가 아이를 돌본 걸 본 적 있어요? 저희 아이지만 항상 저 혼자만 돌보고 있었어요. 아이를 돌보기는커녕 놀아준 적도 없어요.""주말에 한가하게 집에 있을 때, 핸드폰으로 친구랑 수다나 떨지 않으면 영상이나 보면서 멍청하게 웃기만 하고 아들이랑 놀아 줄 생각도 하지 않았죠. 그런 아빠랑, 우빈이 무슨 교감이 생길 수 있나요?"감정은 교감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아무리 혈연으로 이어진 사이라고 해도 서로 함께 지내며 교감을 나누지 않으면 사이가 좋을 리가 없었다.김은희는 입술만 달싹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주서인이 받아치며 말했다: "형인이 평소에 일하느라 바빴잖아. 주말에나 쉴 텐데, 푹 쉬고 싶었겠지. 너는 출근 안 하고 집에서 매일 애만 보고 있잖아. 집안일로 바빴다고는 하지 마. 그 전엔 네 동생이 얹혀살면서 집안일 많이 도와줬잖아. 넌 집안일도 별로 안 했어. 네가 제일 많이 한 건 먹는 거였겠지. 지금 봐봐, 살이 얼마나 쪘니?"주형인만 뚱뚱해지고 못생겨진
소지훈을 처음 만났을 때, 정윤하는 소지훈을 보더니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자기도 모르게 헛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알고 지낸지 오래되면 도장의 코치 선배들과 다를 바 없다고 느꼈고 이내 두근거림도 사라졌고 헛된 생각도 하지 않았다.정윤하는 그녀와 소지훈이 사이도 친구와 같은 사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소지훈이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할 줄은 전혀 몰랐다.정윤하는 얼굴이 뜨거워졌다.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더니 스스로 가볍게 얼굴을 치며 혼잣말을 했다.“정윤하, 부끄러워하는 거야? 어떤 남자가 널 좋아한다고 해서 이렇게 기뻐한 거야? 좀 진정해. 진정하자고.”소지훈은 정윤하의 소개팅 상대들처럼 그녀가 나중에 가정폭력을 행사할까 봐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소지훈은 정혁주까지 이길 수 있을 정도로 무술 실력이 엄청나게 뛰어난 남자였다.정윤하조차도 정혁주를 이기지 못하는데.소지훈이 정혁주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소지훈의 무술 실력이 정윤하보다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소지훈이 걱정할 게 뭐가 있을까!오히려 앞으로 소지훈과 싸울 때 그에게 터져 맞아 땅에 짓눌리지 않게 정윤하가 걱정해야 할 것이다.정윤하는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던 정윤하는 자신 있게 웃으며 중얼거렸다.“못생기지는 않았는데! 아저씨가 역시 보는 눈이 있네.”단 정윤하는 자신과 소지훈이 어울리는지 잘 몰랐다.소지훈은 대기업의 대표이고 집안도 재벌가이고 만나는 사람마다 재력이 강하거나 신분이 높은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정씨 가문은 가난하지 않고 연성에서도 부자에 속했지만 소씨 가문과 비교하면 그래도 차이가 컸다.정윤하는 소지훈이 보통 여자들과 다른 자신을 가지고 놀다가 질려버리면 자신을 버리고 딴 여자를 좋아할까 봐 무척 걱정했다.남자는 돈이 있으면 나빠지고 여자가 나빠지면 돈이 많아지게 되는 법!소지훈은 부자인 데다 잘생겼기에 여자에게 심장까지 꺼내어 잘해주면 그 여자는 분명 그에게 퐁
“형, 그럼 제가 뭘 하면 될까요?”정혁주가 자신을 인정해 주는 것을 본 소지훈은 그를 자신의 편으로 생각하며 물었다.정혁주가 대답했다.“여기 남아서 지켜보든지, 아니면 돌아가서 우리 어머니를 도와 요리를 하든지 하세요. 어쨌든 정윤하가 뭘 하든 상관하지 마세요. 저녁에 돌아올 테니까요. 돌아오면 두 사람 다시 얘기해 봐요. 소 대표님이 하신 얘기가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만 믿게 하면 돼요.”“네. 정말 감사해요. 그럼 저는 돌아가서 이모님을 도와 요리할게요.”윤미연에게 잘 보이면 정윤하의 마음을 훔치는 이 길은 훨씬 쉬워질 테니까.정윤하는 소지훈의 고백에 놀란 것이 아니라 별로 믿기지 않아서였다. 어떤 남자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도장에서 나와 찬 바람을 쐬고 추워지니 머리가 맑아지는 것만 같았다.정윤하도 밖에서 오래 돌아다니지 않고 곧 집으로 돌아갔다.다행히 도장은 집에서 매우 가까웠다.윤미연은 오늘 밤 샤브샤브를 먹을 요리들을 준비하고 있었다.추운 날에는 역시 샤브샤브를 먹어야 속이 편안할 것이다.집이 난방이 안 되면 그녀도 이렇게 편하게 있지는 못한다.겨울이 되면 윤미연은 거의 외출하지 않았다. 장 보는 것도 자식들에게 맡기곤 한다.그녀는 따뜻한 도시에서 정씨 가문으로 시집온 사람이다. 그녀는 너무 추위를 타서 연성에 시집온 지 수십 년이 되었지만, 겨울만 되면 여전히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좋아했다.문 여는 소리를 듣고 문 앞으로 향하던 윤미연은 정윤하인 것을 확인하더니 바로 물었다.“이 시간이면 수업해야 할 시간 아니야? 왜 돌아왔어? 밖에 여전히 눈이 오지? 부엌에 뜨거운 생강차를 끓여놨는데 한 잔 마셔.”윤미연은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왜 혼자 왔어? 너희 오빠들은?”윤미연은 바쁘게 일하면서도 정윤하에게 물어보았다.정윤하가 대답했다.“저는 일이 있어서 먼저 돌아왔어요. 엄마, 아빠는요?”“네 아빠가 약속 있어서 나가셨어. 저녁에 밥 먹으러 돌아오지 않을 거라면서
소지훈이 일어나 정윤하를 쫓아가려 하였으나 정혁주가 가로막았다.그는 고개를 돌려 정혁주인 것을 확인하더니 성깔 좋게 말했다.“형, 제가 나가 볼게요.”“지금 가지 말고 윤하에게 혼자 생각하게 시간 좀 줘요. 윤하가 지금 소 대표님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이 소식을 소화해야 할 거예요. 윤하는 지금 친구 감정이 아닌 이 남녀 간의 감정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에요.”“밖이 추운데... 눈이 내리면 추워질까 걱정돼요.”그러나 정혁주는 친여동생의 모든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소 대표님은 추울지 몰라도 윤하는 연성 토박이라 어렸을 때부터 이런 추위에 익숙해요. 그러나 소 대표님은 아니죠. 당신은 관성에서 왔으니 관성 쪽에는 겨울이 없다고 볼 수 있죠. 윤하가 추워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나가서 바람 좀 쐬게 내버려 둬요. 마음을 다잡고 잘 생각해 보게 내버려 둬요. 갑자기 고백하니, 윤하는 심리 준비도 하지 않아 혼란스러워졌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소 대표님도 그래요. 때가 되면 고백하셔야지... 꽃다발 하나로 윤하가 소 대표님 마음을 알 거로 생각하세요?”소지훈은 입을 오므리다가 대답했다.“윤하 씨에게 꽃다발을 선물해도 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 뻔하기에 그래서 직접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말하지 않으면 영원히 모를 것 같아서요. 제가 한 트럭의 꽃을 선물한다고 해도 윤하 씨 성격으로는 이 꽃들로 얼마나 많은 꽃 떡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할 테니까요.”정혁주도 공감하며 입을 열었다.“그... 그럴 수도 있겠네요.”정윤하도 분명 감히 그런 생각을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그녀를 사랑한다면 확실히 말해야 했다. 그녀가 알도록 명확하게 알려줘야 할 것이다.“형, 윤하 씨가 이렇게 황급하게 나갔는데 정말 저를 피하는 거 아니에요? 윤하 씨는 제가 너무 늙었다고 싫어하지 않을까요? 저는 윤하 씨보다 10세 4개월이나 많은데.”그의 나이는 그녀보다 11살 많다고 말은 했지만 진지하게 계산하면 10년 4개월 연상이다.정
정윤하는 그렇게 하면 소지훈에게 폐를 끼친다고 생각하여 말을 내뱉으려다가 다시 생각을 바꾸어 말을 건넸다.“그럼 그때 가서 신세 좀 질게요.”소지훈이 연성에 있을 때 정윤하가 그에게 잘 접대했으니 그녀가 관성으로 가게 되면 소지훈이 잘 접대해 주면 서로에게 빚지지 않을 것으로 여겼다.“윤하 씨, 꽃 떡 말고도 또 다른 생각은 없었어요?”소지훈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정윤하가 소지훈을 쳐다보니 그도 그녀를 보고 있었다.두 사람이 잠시 눈을 마주치더니 정윤하가 입을 열었다.“제가 또 무슨 생각 해야 하죠? 아저씨가 저에게 꽃을 선물했으니 저를 좋아한다는 생각 해야 돼요? 아저씨가 저를 좋아하고 저도 아저씨가 좋아요. 우리가 서로 좋아하지 않으면 친구로 될 수도 없는걸요.”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소지훈이 그 정적을 깨뜨렸다.“윤하 씨는 제가 윤하 씨에 대해 좋아함이 우정이 아닌 남녀 간의 정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아저씨가 남자고, 저는 여자인데 아저씨가 저를 좋아하는 것은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요? 뭐가 달라요?”“제 말은 윤하 씨, 저는 윤하 씨를 사랑하고 있어요. 윤하 씨에게 구애하고 싶단 의미에요. 형제 사이가 아닌 윤하 씨 남편이 되고 싶다는 뜻이에요.”소지훈은 단숨에 속마음을 털어놓았다.정윤하의 되묻는 물음에 화가 난 것이다.소지훈도 충동적으로 그 뜻을 똑똑히 해석해 준 것뿐인데...그녀가 이해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다.소지훈이 그녀에게 고백해야 정윤하가 그의 감정을 알 수 있다고 소정남이 알려주었다.그가 말하지 않는데 털털한 정윤하가 어찌 알 도리가 있겠는가?목소리가 좀 커진 소지훈은 그제야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웅성거리던 도장은 순간 조용해졌고 다들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소지훈은 그들을 쳐다보고는 다시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는 정윤하를 바라보았다.그의 잘생긴 얼굴은 점점 붉은 구름이 떠 올랐다.그는 도장이 아닌 단둘이 있는 곳을 찾아 로맨틱하게 현장을 꾸민 다음 정윤하에게
“윤하 씨, 이 꽃다발... 제 말은 윤하 씨가 이 꽃다발을 받고 무슨 생각이 들었어요?”소지훈은 용기를 내어 정윤하에게 물었다.정윤하는 닭 날개를 다 먹고 또 오징어구이를 먹으며 대답했다.“무슨 생각이요?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누가 키운 꽃인지 정말 아름답고 좋네요. 저 보고 꽃을 키우라고 하면 이 꽃은 이미 죽었을 거예요.”소지훈은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정윤하는 눈치도 없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그리고 꽃다발을 받고 보니 장미꽃 떡이 생각났어요. 갑자기 꽃 떡을 떠올리니 너무 먹고 싶네요. 지금 바로 주문해서 먹어야겠어요.”정윤하는 휴대전화를 꺼내서 인터넷으로 꽃 떡을 사려고 했다.“제가 사드릴게요. 지금 여행 중인 친구가 있는데 꽃 떡 좀 가져다 달라고 하면 돼요. 훨씬 맛있을 거예요.”정윤하가 말을 건넸다.“그들이 현장에서 만들어서 팔지 않는 한 산 것과 인터넷에서 사는 거랑 별반 다르지 않을걸요. 현장에서 만든 것이 맛있다고 들어는 봤는데. 내년에 시간이 나면 저도 여행 가서 현장에서 구운 꽃 떡을 먹어봐야겠어요.”소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부하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즉시 청주성으로 날아가서 꽃 떡을 만드는 것을 배워 정윤하에게 신선한 꽃 떡을 맛보게 하라고 지시했다. 단, 정윤하가 여행을 가지 않고도 신선한 꽃 떡을 먹을 수 있도록 반드시 청주성의 맛과 똑같아야 한다고 강조했다.적어도 온라인으로 구매한 것보다 맛있을 테니까.정윤하는 토픽 X 이라는 앱을 즐겨 사용하는 데 정말 싸다고 말했다.소지훈은 그녀에게 그 앱에서 물건을 사지 말라고 수없이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소지훈이 역시 부자답다고 말할까 봐 걱정했다. 그는 일반인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결국 침묵을 선택했고 그녀의 취향과 선택을 존중해주었다.“정말 주문하셨어요?”정윤하는 소지훈이 핸드폰을 내려놓는 것을 보더니 그에게 물었다.소지훈이 대답했다.“네. 주문해드렸으니 받을 때까지 기다리시면 돼요.”그는 먼저 정윤하에게 인터넷으로
모두 웃으며 말했다.“우리가 소 대표님한테 매수된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것뿐이에요. 소 대표님은 정말 좋은 분이에요. 윤하에게 잘 어울려요.”코치 중 한 명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소 대표님도 우리 윤하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윤하가 주로 만나본 젊은 남자들이 우리 말고는 좋은 남자가 없어서 그래요. 게다가 사장님과 사모님도 얼마나 걱정하세요. 만약 소 대표님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도 반대했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보기엔 소 대표님과 윤하가 잘 지내고 있거든요. 근데 우리 윤하가 왠지 소 대표님께 남녀 간의 정이 없다고 느껴져요. 윤하가 우리를 대한 것처럼 똑같이 소 대표님을 대하는 것 같아요.”정혁주는 코치들의 말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깊이 공감했다.도장에는 여성 후배들도 많지만 유독 정윤하가 정혁주를 무척 걱정시켰다.정윤하는 습관적으로 남자들과 형제 사이로 지냈기에 그들도 정말 어찌할 도리가 없다.그들도 정윤하에게 남자 친구를 소개해 주려고 했지만, 그녀가 상대방이 무술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리고 소개를 받을 남자들은 정윤하의 “명성”을 듣더니 심지어 몰래 도장에 가서 정윤하를 지켜보기까지 했다. 그러나 정작 그녀의 막강한 실력을 보더니 정윤하를 다스리지 못할까 봐 걱정하며 결국 투항하게 되었고 다른 맞선남들과 마찬가지로 감히 나서지 못했다.이로 하여 뒷부분의 맥락은 그대로 뚝 끊기게 되었다.정혁주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너희도 사실 소 대표님의 재력에 넘어간 거야. 나조차도 좋게 느껴지는데 너희들은 더 말할 것도 없지. 소 대표님의 재력이 정말 좋은 건 사실이야. 우리도 자기도 모르게 속아 넘어간 거지. 그런데 소 대표님은 꽤 좋은 사람이긴 해. 우리 윤하와도 너무 잘 어울리고. 너희들도 장난치고 있는 걸 알기에 나도 너희들 탓하지 않아. 우리 전부 윤하를 위해서 하는 소리잖아. 내가 소 대표님을 오랫동안 지켜봤는데 그분이 안 좋은 사람이라면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았을 거야.”“너희들의 말처럼 윤하 계집
“들어가요. 밖이 너무 추워요.”정윤하는 꽃다발과 보온도시락을 들고는 소지훈을 도장으로 가자고 말했다.소지훈은 그녀를 따라갔다.도장의 사람들은 정윤하가 꽃다발을 안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두 사람이 썸타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그 꼬맹이들조차 정윤하가 안고 있는 그 꽃다발이 뭔가 다르다고 느꼈다.정윤하는 학생들에게 다가갔다.“코치님, 이 꽃다발이 정말 아름다워요.”“코치님, 바비큐 드실래요? 우리 거의 다 먹었어요.”“코치님, 지훈 아저씨가 선물한 꽃이죠? 왜 코치님께 꽃을 주세요?”정윤하가 웃으며 대답했다.“많이 먹어. 다 먹어도 돼. 지훈 아저씨가 나에게 따로 준비해 줬거든. 너희 지훈 아저씨가 꽃집을 지나다가 꽃집에 있는 꽃이 너무 예뻐서 나에게 꽃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라고 선물해줬어. 어때? 예쁘지? 나도 이 꽃다발이 너무 예뻐서 좋아.”학생들은 꽃다발이 예쁘다고 연신 칭찬했다.정윤하의 사제들은 헤벌쭉한 정윤하를 보고는 또 여우처럼 웃고 있는 소지훈을 보더니 결국 모두 정혁주를 일제히 쳐다보았다.정혁주는 정윤하를 힐끔힐끔 쳐다보고는 평소에 앉던 테이블에 앞에 앉아 바비큐를 먹으며 보이차도 곁들여 마셨다.“선배님.”몇몇 코치들이 정혁주에게 다가가더니 그중 한 명이 작은 목소리로 궁금한 듯 물었다.“소 대표님이 우리 윤하에게 고백한 거예요? 그런데 또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정윤하의 표정을 보면 고백받은 것 같지 않았다.그녀는 자연스럽게 웃으며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소 대표님이 꽃집을 지나다가 꽃집의 꽃이 예쁜 것을 보고 윤하에게 선물했다고 하던데, 이런 어설픈 이유도 윤하가 믿다니, 참! 저렇게 멍청한 꼴을 보니 사람들에게 팔려가도 돈을 세어줄 기세인데.”“윤하가 종일 우리와 함께 지내다 보니 남자답고 털털해서 그래요. 소 대표님만큼 신중하지 못하잖아요. 소 대표님이 윤하에게 직접 고백하지 않는 한 윤하는 분명 별생각 하지 않을걸요.”“어휴, 윤하가 소개팅마다 실패하고 시집을 못 가는 데는 우리 책임도 있어요
정혁주는 아예 보이차 한 병씩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그는 보이차를 나누어 주면서 소지훈은 학생들이 정윤하 앞에서 좋은 말을 해주기를 기대하며 매번 큰돈을 퍼부었다.소지훈은 도장으로 올 때마다 도장의 사람들에게 맛 나는 음식을 가져다주었고 또 각자의 몫도 전부 챙겨주었으며 심지어 다 먹지도 못할 정도로 많이 사 올 때도 있었다.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음식을 대접하려면 돈도 많이 들었도 또한 보통 사람들에게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정윤하의 말대로 그녀의 수입으로 전체 도장의 사람들에게 음식을 사주면 몇 번이나 사줄 수 있겠는가!정혁주는 도장의 여러 코치 중에서 수입이 가장 높지만, 소지훈처럼 돈이 많지 않았다.역시 대기업 대표답다!정혁주가 보이차를 나누어 줄 때 밖에 서 있는 두 바보를 유의하여 보며 마음속으로 소지훈은 아마 정윤하에게 첫눈에 반했을 거라고 짐작했다.그래서 연성까지 머나먼 길을 달려서 왔을 것이다.소지훈은 지금 출장 중이지만 저녁에 약속도 없이 도장으로 온 것을 보면 아마 출장할 때 처리해야 할 일들을 다 처리한 모양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떠나지 않았다.정씨 저택에 남아서 설을 쇠려고 하는 모양인데...정윤하를 노리고 온 것이 틀림없다.그리고 소지훈은 정윤하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에게서 작은 도움을 받았지만, 소지훈은 기어코 그녀가 자신의 은인이라고 외치며 다녔다.정혁주는 정윤하가 오지랖이 넓고 너무 빨리 움직여 소지훈을 도와주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사실 소지훈의 실력으로 그날 밤 그 건달들 정도는 아주 쉽게 때려눕힐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소지훈의 상대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그렇게 정윤하는 소지훈의 생명의 은인으로 되었다.그리고 정윤하가 전태윤 부부의 연애사에 관심을 두는 모습을 본 소지훈은 천 리 길을 달려와 그녀를 데리고 전태윤 부부의 결혼식에 함께 참석했다.정씨 가문은 관성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관성 전씨 가문의 명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몇 번만 뒤져봐도 관성 전씨 가문이 어떤 가문인지
날은 이미 어두워졌지만 사실 시간은 아직 이르다. 다만 겨울에는 낮이 짧고 밤이 길어서 빨리 어두워질 뿐이다.정윤하의 수업도 마침 끝났다.“지훈 아저씨 오셨어.”한 학생이 소지훈의 차를 보더니 소리를 질렀고 그러자 다른 학생들도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밖으로 나오지 마. 바람이 많이 불어.”소지훈은 웃으면서 소리쳤지만, 학생들은 모두 뛰쳐나갔다.소지훈은 이내 사 온 간식 몇 봉지를 큰 학생들에게 건네고 포장된 바비큐는 조금 작은 학생들에게 건네주어 도장 안으로 들여보냈다.정윤하는 두꺼운 외투를 걸치면서 걸어 나왔다.그녀는 소지훈을 보더니 웃으며 말을 건넸다.“아저씨가 오시기 전에는 제가 도장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는데 이제 아저씨가 가장 인기가 많네요.”정혁주도 따라 나와 정윤하의 말을 이었다.“너무 인색한 거 아니야? 소 대표님처럼 시원스럽게 모두에게 음식을 대접하면 다들 다시 널 좋아하게 될걸.”“내가 인색한 게 아니라 월급이 쥐꼬리밖에 안 되는데 음식을 몇 번 정도 대접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저씨는 회사의 대표잖아. 난 절대로 이 방면에서 아저씨와 다투지 않을 거야. 이런 일들은 돈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잖아... 음? 눈이 오는 것 같아.”정혁주도 하늘을 보며 말을 이었다.“눈이 오는 것 같긴 하네. 근데 뭐가 이상해? 겨울이 되면 눈이 자주 올 텐데, 정상이잖아.”“형님, 얼른 오세요. 보이차 몇 상자 드릴게요. 바비큐를 사 왔는데 혹시라도 학생들이 먹으면 소화가 안 될까 봐 몇 상자 사 왔어요.”소지훈은 보이차 상자를 들면서 정혁주에게 자연스럽게 건넸다.정혁주는 차를 향해 다가갔고 조수석에 놓인 꽃다발을 보더니 눈이 번쩍 뜨였지만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소지훈이 그들 정씨 가문의 저택에 오래 머문 덕분으로 정씨 집안 가족들이 소지훈의 성격과 사람 됨됨이를 잘 알게 되었다.소지훈은 냉혹한 면과 부드러운 면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냉혹한 면을 정씨 가문의 가족들 앞에서 보여준 적 단 한 번도 없었다.하지만 그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