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우빈은 좋다고 하지도, 싫다고도 하지 않다. "아빠 출근해요."주우빈은 엄마와 이모가 돌보고 있어 아빠라는 사람은 주말에나 한번 만날 수 있었다. 평소 주우빈이 깨어났을 때, 아빠는 일찍 출근했고, 밤에 그가 잠들었을 때, 아빠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주우빈은 아빠에 대한 감정이 정말 깊지 않았다.아빠는 집에 있어도 그와 놀아주지도 않았고, 계속 핸드폰만 했다."예진아, 봐라, 우빈이 며칠째 아빠를 못 보니까 애가 감정에 둔해지지 않았니. 그러면 아이 성장에 좋지 않아. 남자애의 성장에 아빠가 없어선 안 된다? 아빠가 가르쳐줄 일이 얼마나 많은데."김은희는 손자가 아빠를 보고 싶다고 말할 줄 알았다. 그녀는 아이가 문제로 며느리를 고개 숙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도 못 하게 어린 손자가 아빠를 보고 싶지 않다고 한 것이다.다행히 그녀는 약삭빠르게 손자의 말을 받아치며 말했다.하예진은 시어머니의 두 눈을 뚫어지게 보며 냉담하게 말했다. "주형인이 집에 있어도, 형인이가 아이를 돌본 걸 본 적 있어요? 저희 아이지만 항상 저 혼자만 돌보고 있었어요. 아이를 돌보기는커녕 놀아준 적도 없어요.""주말에 한가하게 집에 있을 때, 핸드폰으로 친구랑 수다나 떨지 않으면 영상이나 보면서 멍청하게 웃기만 하고 아들이랑 놀아 줄 생각도 하지 않았죠. 그런 아빠랑, 우빈이 무슨 교감이 생길 수 있나요?"감정은 교감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아무리 혈연으로 이어진 사이라고 해도 서로 함께 지내며 교감을 나누지 않으면 사이가 좋을 리가 없었다.김은희는 입술만 달싹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주서인이 받아치며 말했다: "형인이 평소에 일하느라 바빴잖아. 주말에나 쉴 텐데, 푹 쉬고 싶었겠지. 너는 출근 안 하고 집에서 매일 애만 보고 있잖아. 집안일로 바빴다고는 하지 마. 그 전엔 네 동생이 얹혀살면서 집안일 많이 도와줬잖아. 넌 집안일도 별로 안 했어. 네가 제일 많이 한 건 먹는 거였겠지. 지금 봐봐, 살이 얼마나 쪘니?"주형인만 뚱뚱해지고 못생겨진
하예정은 물건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우빈이를 안아 들며 다정하게 물었다. "우빈아, 죽 먹고 있었어?"주우빈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우빈이 죽 먹고 있어요.""배 불리 먹었어?"주우빈이 배를 만지면서 고민하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우빈이는 아직 덜먹어서 배가 부르지 않았다.하예정이 웃으면서 소파에 앉아 언니 손에서 반쯤 남은 죽을 건네받으면서 말했다. "우빈아, 이모가 죽 먹여줄까?""네.""언니." 심효진은 하예진을 부르며 물건을 식탁에 내려놓은 뒤 주씨 모녀에게는 고개만 까딱했다.하예진은 하예정의 도움을 받아 우빈이에게 밥을 먹인 후에 몸을 돌려서 시어머니와 시누이에게 말을 건넸다. "저는 절대로 형인이를 데려오지 않을 거예요. 형인이가 집에 들어오고 싶으면 스스로 들어올 것이고, 아니면 어머님과 형님이 계속 돌봐주세요."하예진은 주형인이 준 생활비를 그에게 되돌려줬다. 부부가 서로 체면을 차리고 있는데 더 이상 대화할 필요가 없었다.하예진은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녀의 가장 큰 잘못은 주형인을 철석같이 믿은 것이었다.주서인이 말을 하려고 하자 김은희가 그를 가로막았다.김은희가 웃음을 짜내면서 말했다. "그래, 나 돌아가면 형인이한테 집에 돌아가라고 얘기할게. 예진아, 형인이가 돌아오면 말다툼도 하지 말고 싸우지도 말거라. 형인이가 밖에서 일하는데 체면을 살려줘야지. 그렇게 얻어맞으면 사람들 보기 부끄러워서도 일하러 못 나가. 돈을 벌지 못하게 되면 피해를 보는 것은 너희 가족이야."예진이가 비웃으면서 말했다. "형인이는 한 달에 생활비를 50만 원씩 줬는데, 한 푼도 더 주려 하지 않았어요. 더치페이를 하면서 지금은 한 달에 25만 원만 주고 있는데, 전부 다 우빈이 생활비래요. 형인이 월급은 저와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하예진도 일을 안 해본 게 아니었다.결혼하기 전만 해도 그녀는 주형인과 같은 회사에 다녔었다.주형인은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한 달에 최소 500만 원 이상을 받을 수 있다.
하예진이 말대꾸하자 김은희는 입술만 달싹였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아들과 며느리의 더치페이는 김은희가 먼저 얘기를 꺼낸 것이었다. 더치페이가 아니었더라도 아들이 돈을 며느리에게 주지 않은 사실 역시 알고 있었다."엄마, 우리 가자."하예진의 태도에 불만을 가진 주서인은 김은희가 말을 하기도 전에 엄마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나가기 전에 하예정과 심효진이 가져온 물건을 흘겨봤다.집 밖으로 나온 주서인이 김은희에게 말을 했다. "엄마, 하예정과 갑자기 결혼한 남자가 대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다는데, 월급이 어머어마한 거 아니야? 하예정이 여기 올 때마다 항상 한 보따리 사 들고 오잖아. 내가 아까 잠깐 봤는데, 엄청 비싼 과일이었어.""두리안이며 체리며, 다 엄청 비싼 과일이잖아. 두리안은 한 개에 거의 5만 원이고 체리도 키로당만원은 넘어."딸의 말에 김은희가 대답했다. "네 동생 월급을 생각해 봐. 하예정의 남편은 전 씨 그룹에서 일한다잖니. 네 동생도 전 씨 그룹은 관성에서 가장 큰 대기업이라잖아. 엘리트 중의 엘리트만 들어갈 수 있는 기업이라고.""형인이 말로는 자기 능력으로도 전 씨 그룹에 들어가기 힘들대. 하예정 남편은 능력도 좋으니 수입도 네 동생보다 많이 높겠지. 그리고 하예정은 자기 언니한테 잘해주잖아. 형인이 돈을 주지 않으니 하예정이라도 자기 언니를 도와줘야 하지 않겠어?""전태윤은 하예정과 결혼한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알콩달콩하니 돈이 아깝지 않겠지. 그런데 하예정이 계속 자기 언니한테 돈을 주면 전태윤도 나중에 짜증 내기 마련이야. 자기 아내가 계속 친정 식구 도와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김은희가 표독스럽게 말을 했다. "두고 봐, 하예정도 조만간에 남편한테 버림받을 거야. 이렇게 돈 흥청망청 쓰는 여자를 누가 좋아하겠어? 집에 돌아가면 형인이한테 말해야지, 절대로 예진이한테 돈을 주지 말라고. 예진이가 하예정한테 계속 돈을 달라 하면, 하예정의 남편이 가만있지 않을 거야.""언제까지 날뛰는지 지켜보자
"난 조금 걱정돼. 형인이 지금 서현주 말만 고분고분 듣는다니까. 그 계집애도 참 여우 같은 게, 한 번도 형인이랑 잠자리 한번 가진 적 없잖아. 가지지 못할수록 갖고 싶어진다더니 형인이 더 안달 내잖아.""두 사람이 만약 결혼이라도 해서 형인이가 월급 통장을 갖다 바치기라도 하면 우리 모두 힘든 나날 보내게 될 거야."주서인은 동생이 매달 부모님께 생활비를 주던 것이 떠올랐다. 부모님은 그 돈을 모두 가정을 돌보는 데 썼고 덕분에 그녀도 적지 않은 이익을 봤다. 이런 좋은 일을 올케에게 뺏길 수 없다 생각한 주서인은 하는 수 없이 대답했다. "됐어요, 그건 형인이랑 하예진 일이니까 부부간에 알아서 하라고 해요.""형인이 계속 하예진한테 숨기고 들키지만 않는다면 나도 굳이 걔 일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아. 세상에 믿을 남자 하나 없어. 좀 잘난 것 같으면 다 밖에 애인 하나쯤 둔다니까."김은희는 오히려 아들이 능력 있다 생각했다. 애 아빠가 돼서도 밖에서 그렇게 젊고 예쁜 여자애를 만났으니 말이다.어차피 그녀의 자식은 아들이니 어찌 됐든 손해 볼 건 없다 생각했다.하예진은 시어머니랑 형님이 자신의 험담을 할 줄은 알고 있었지만 모녀 둘이 형인을 도와 바람난 사실까지 숨겨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얄미운 두 모녀를 떠나보낸 후 그녀는 여동생과 효진에게 얘기했다. "예정아, 효진아. 너희 뭘 또 이렇게 많이 사 가지고 왔어.""효진 언니, 그냥 과일이랑 간식 좀 사 온 거야, 비싼 것도 아닌데 뭘."심효진은 웃으며 대답했다. "어차피 집에 언니랑 우빈이만 있으니까, 얼마를 사든 어차피 다 둘이 먹을 거니까 많이 샀지. 언니 다 못 먹는 건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천천히 꺼내 먹어."그녀는 주서인이 떠나기 전에 이 물건들을 두 번 힐끔거리는 걸 유심히 봤다.지난번에 하예정 부부가 하예진에게 보낸 물건을 주형인이 자기 부모와 누나에게 주는 바람에 하예진은 화가 나 넘어갈 뻔했었다.하예정은 조카 먹을 것을 챙겨준 후 새 장난감을 건네주면서 옆에서 혼자 놀게
하예정은 짧게 말을 더 보탰다. "나는 그냥 언니한테 주의만 주는 거야. 일자리 문제는 언니도 너무 급해하지 말고."심효진도 말했다. "천천히 알아봐도 돼요. 자기한테 딱 맞는 일자리 찾는 건 확실히 어려운 일이잖아요. 우리 가게 나오는 건 어때요? 제가 월급 정산해 줄게요. 아니면... 언니도 가게 하나 차리지 않을래요?"아들이 노는 것을 보며 하예진은 무력하게 얘기했다. "나 가게 차릴 돈 없어... 어떤 가게 열지도 모르겠고. 알잖아, 요즘 장사하는 것도 쉽지 않은 거."동생의 서점은 마침 관성중학교 앞이라 가게 장사가 꽤 잘 됐던 거지 만약 다른 위치였다면 잘 될지도 알 수 없었다.관성중학교 문 앞은 작은 가게들은 임대료도 많이 비싼 데다 아무나 빌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느 정도의 인맥이 필요했고, 하예정의 그 가게 역시 심효진 집안에서 아는 사람을 통해 어렵게 구한 것이었다."언니, 아니면 내가 그 공예품 땋는 거 가르쳐줄게. 그걸로 언니 인터넷에서 온라인 스토어 하나 열지 않을래? 그러면 언니 이걸로 집에 앉아서 돈도 벌고 우빈이도 돌볼 수 있잖아, 나 지금 스토어 하고 있는데 장사 엄청 잘 돼. 예약 상품이 많아서 예약 주문 되게 많이 들어오거든. 바빠서 정신이 없을 정도야."이번 달에 온라인 스토어로 번 돈은 서점 매출보다 훨씬 많았다. 서점에서 이번 달에 학생들에게 여러 건의 학습자료를 주문해 줬지만 온라인 스토어의 이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하예정은 돈복이 터졌다고 생각했다.온라인 스토어도 벌써 몇 년 차 접어들었지만 내내 수익이 그저 그런 수준이었다가. 이번 달부터 뜨기 시작했고 게다가 리뷰도 모두 호평이었다."나도 온라인 스토어 경영 확장해 보려고, 공예품뿐만이 아니라 헤어 액세서리 만드는 것도 배워보고 싶어. 나 그런 빈티지 액세서리 되게 좋아하거든."심효진은 친구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꽤나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하예진은 씁쓸하게 웃었다. "예정아, 나는 너처럼 그렇게 뛰어난 상상력이 없어. 네가 땋는
이미 한 달이 지났고 아직 5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이 시간이 지나면 두 사람은 다시 싱글로 돌아갈 거고 각자 재혼하게 되면 더는 아무 사이도 아니게 된다.소정남과 이동명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이동명이 물었다. "너희 전씨 가문 남자는 이혼 못 하지 않아?""나는 예외야."전태윤은 쌀쌀맞게 얘기했다. "나와 하예정의 혼인, 너희도 알다시피 내가 이혼한다 해도 할머니는 나한테 뭐라 못하셔. 다른 사람은 더더욱. 억울한 걸 알 테니까."맞다, 그는 억울했다.할머니의 은혜를 갚아준답시고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를 아내로 맞았다. 결혼하고 나서도 나름 관대하게 포용하며 그녀를 이해해 줬지만, 하예정은 어땠던가?말로는 언니 집에 간다고 해놓고, 알고 보니 김진우와 같이 밥을 먹고 있었다.질투해 놓고 절대 인정하기 싫었던 전 도련님은 자연스레 심효진의 존재를 무시해 버렸고 심효진과 김진우가 사이가 아주 좋은, 그것도 사촌지간인 것 역시 무시했다.소정남과 이동명은 할 말을 잃었다. "...""앞으로 절대 회장 사모라고 불러주지도 마! 그 사람 그럴 자격도 없어!"소정남이 말했다. "며칠 전만 해도 아내가 사준 옷 입고 회사에서 하루 종일 자랑이더니, 오늘은 왜 태도가 싹 변하냐, 두 사람 혹시 싸운 거야?"전태윤은 소정남을 노려봤다. "짜증 나니까 말 걸지 마."소정남에게 그런 소리를 들은 전태윤은 부끄러움에 벌컥 화를 냈다.그는 늘 슈트만 입다가 처음으로 그렇게 싼 옷을 입었다. 왜냐하면 그건 하예정이 사준 옷이었으니까. 앞으로 파트너로서 한동안 함께 살아야 할 텐데 그녀의 체면도 좀 세워주고 싶어서 그녀가 사준 옷을 입은 것이었다.그런데 뭐람, 온 하루가 지내도록 하예정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전태윤은 하예정이 자신이 사준 옷이 어떤 건지 설마 기억 못 하는 건 아닌지 의심했다."싸울 기력 따위도 없어! 가자, 우리 호텔로 가서 술이나 한잔해, 내가 산다."전태윤은 가뜩이나 기분도 언짢았는데 친구가 그렇게 말하니 기분이 더 나빠져서
하예정은 전태윤의 답장을 받지 못한 채 언니에게 말했다. "태윤 씨는 친구랑 재미있게 놀고 있나 봐요.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없네요.""내일은 여기 안 와도 돼, 시간을 내서 제부랑 같이 있어."하예진은 자신의 결혼생활은 파탄이 났지만, 동생의 결혼은 더 오래 지속되었으면 했다.사실 하예진은 전태윤이 마음에 들었다. 동생에게도 잘해 주는 데다 주형인처럼 쪼잔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서로 얼굴을 알고 연애를 한 뒤 결혼까지 한 주형인은, 이제 경제적 여유가 있음에도 늘 돈을 아까워하며 자동차 한 대 사주지 않았다.스쿠터도 동생이 사 준 것이었다."알았어, 언니.""맞다, 친가 사람들 아직도 귀찮게 구니? 어떻게 됐대? 할머니는 수술받으셨으려나?"하예진은 친가 사람들에 대해 물어봤다."한 번 합의하러 오고 나서는 다시 오지 않았어. 자기들도 민망한가 봐. 게다가 실시간 검색어는 진작에 내려갔고 일찌감치 잠잠해졌어. 별로 영향도 안 받았으니까 당연히 다시 안 찾아오지."하예정은 전태윤이 문제를 해결해 준 것도 모르고 친가 사람들이 민망해서 안 찾아온 줄로만 알고 있었다.하예진은 그 말에 한시름을 놓았다.해 질 무렵, 저녁 식사를 마친 뒤, 하예진은 동생을 집에서 쫓아냈다. 심효진은 엄마의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하예정을 따라 발렌시아 아파트에 가, 하예정이 지금 살고 있는 크지 않지만 아늑한 집을 구경했다."예정아, 너랑 태윤 씨 집 참 넓다. 채광도 좋아서 진짜 밝아. 그중에서 이 베란다가 제일 좋아, 한가할 때 그네에 앉아 책도 읽고 꽃구경도 하면 진짜 마음이 너무 편안할 것 같아. 그네 앞에 작은 탁자 하나 놓으면 차도 마실 수 있고 더 편하겠다!"하예정은 웃으면서 말했다. "좋은 제안이야, 내일 바로 작은 탁자 하나 사서 여기에 놓을게!""여기에 있는 꽃들 대부분 태윤 씨가 사 온 거고 나머지는 내가 사 온 거야. 태윤 씨가 어느 가게에서 사 온 지는 모르겠는데 꽃은 진짜 크고 예뻐, 되게 잘 폈더라고"하예정은 전태윤의 일 처
전태윤은 차갑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그런 전태윤의 모습에 하예정은 명치가 턱 막힌 듯 아파왔다.누가 신경을 쓰고 싶댔나?그저 부부간에 최소한의 배려 차원에서 물어본 것이다.하예정은 휙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갔다.하예정이 더 이상 아무 질문도 하지 않고 자신을 신경 쓰지 않자, 전태윤은 기분이 더 안 좋아졌다."앞으로 잠옷 입은 채로 문 열어주지 마!"하예정은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속옷은 입고 있었다고요."하예정은 방금처럼 문을 열어줘야 하는 상황이 생길까 봐 잘 때만 속옷을 벗었다."제가 옷을 어떻게 입는지 태윤 씨가 무슨 상관이에요? 서로 사생활은 개입하지 않기로 계약서에도 썼던 걸로 기억하는데요?."전태윤은 굳은 얼굴로 가만히 있었다.분명 계약서는 전태윤에게만 유리하고 하예정을 구속하는 내용만 적혀 있었다. 그런데 왜 지금 오히려 그 계약서가 전태윤을 옥죄는 느낌인 걸까?하예정은 주방에서 따뜻한 물 한 잔을 받았다. 물이 적당히 식었을 때 꿀을 탄 뒤 잘 저어서 전태윤에게 건네주었다.전태윤은 소파에 기대고 있었지만 잠에 들지는 않았다. 하예정이 나온 것을 본 그는 여전히 차가운 눈으로 하예정을 쳐다봤다.하예정은 꿀물을 전태윤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태윤 씨 많이 취했으니, 뭐라고 하지 않을게요. 꿀물 먹고 방으로 돌아가 씻고 자요."할 말을 마친 뒤, 하예정은 몸을 돌려 방 쪽으로 걸어갔다.전태윤은 손을 뻗어 하예정의 손목을 낚아채 세게 끌어당겼다. 하예정은 막을 새도 없이 전태윤의 품으로 쓰러졌다. 전태윤은 술을 많이 마시긴 했지만 매우 민첩했다. 하예정이 정신 차릴 새도 없이 그녀의 몸을 돌려 소파에 눕혀 꼼짝도 못 하게 했다.순간 세상이 돌아가는 것만 같았던 하예정은 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전태윤에게 잡혀 소파에 눕혀져 있었다."태윤 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여태까지 전태윤은 늘 혹시라도 하예정이 자신을 덮칠까 봐 거리를 두지 않았던가?하지만 지금 전태윤은 하예정의 위에 올라타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마치
우빈이가 툭하면 어린이집에 안 가는 데 익숙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전에 명확하게 일러둬야 한다고 하예정은 생각했다. 이번에는 용정이 모처럼 놀러 왔고 또 용정이 관성에서 친구란 우빈이밖에 없으니, 이번만은 응낙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우빈이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을 약속했다.용정도 따라서 말했다.“아주머니, 다음번에는 제가 여름방학 혹은 겨울방학을 하는 틈을 타서 올 게요. 그러면 누구도 휴가를 내지 않아도 되잖아요.”“이모, 지금 당장 엄마한테 전화해서 얘기하면 안 돼요?”우빈이한테는 지금 휴가를 내는 일이 급선무였다.그래야 시름 놓고 놀 수 있을 것 같았다.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전태윤을 째려보았다. 전태윤은 일부러 하예정의 시선을 피하여 고개를 돌려 딴 곳을 쳐다보는 척했다. 하혜정은 속으로 남편이 우빈이의 일을 자신한테 떠밀었다고 투덜댔다.“알았어.”하예정은 마지못해 하예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예진이 전화를 받자 하예정이 말했다.“언니, 우빈이가 할 얘기 있대.”그러고 나서 휴대폰을 우빈이에게 넘겨주면서 말했다.“우빈아, 네가 직접 엄마하고 얘기해.”우빈이는 전화를 받아쥐고 하예진에게 휴가를 내려는 사유를 자초지종 말했다.하예진도 하예정과 똑같은 말을 하고 나서 우빈이가 하루 휴가를 내서 모처럼 찾아온 친구랑 노는 것에 응낙했다.그러자 우빈이는 휴대폰을 하예정에게 돌려준 후 용정의 손을 잡고 깡충깡충 뛰면서 기뻐했다. 그러고는 대결하는 자세를 취하면서 용정에게 말했다.“용정아, 나 요즘 아주 열심히 무술을 연마했어. 우리 한 번 대결해.”용정이 자신만만해서 말했다.“넌 나한테 질 거야. 나한테 져서 화내면 안 돼. 알았지?”지난 여름방학 때 두 사람이 함께 놀 때 우빈이가 항상 져서 기분이 언짢아했었다.용정은 그 일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했다.모연정이 용정이보고 우빈이는 손님인데 왜 양보하지 않았냐고 핀잔했다.하지만 용정은 어떻게 양보해야 할지 몰랐다. 아직 자연스럽게 져주는 법을 모르
전태윤이 말하면서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예준성도 뒤를 따라 천천히 달렸다.“다행히 평소에 우리 두 집이 서로 가깝게 지냈고 또 앞으로 친척이 될 사이니 말이죠. 그렇지 않고야 제가 미안해서 어찌 이렇게 이른 아침에 찾아와서 폐를 끼치겠어요.”별장 구역은 아주 조용했다. 가끔 조깅하는 사람들이 한두 명씩 보였다.“용정이 모처럼 왔는데 한시 급히 친구와 놀려고 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요.”“용정의 무술 실력이 아주 많이 는 거 같아요. 아까 차에서 뛰어 내리는 동작과 달리는 속도를 보면 알 수 있어요. 우리 우빈이는 아무리 용을 써도 용정을 못 따라잡아요.”“사람마다 다 장점과 약점이 있어요. 용정의 약점은 식탐이 많아요. 매번 집에만 돌아오면 준영이를 얼려서 먹고 싶은 음식을 다 해달라 해요. 번마다 배를 두드리면서 먹어요.”“연정 씨는 애가 하도 많이 먹길래 배에 탈이라도 날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다행히도 매일 무술을 연습하느라 많은 열량을 뺐지요. 그렇지 않으면 진작 뚱보가 되었을 겁니다.”“애들은 다 그래요. 크면 저절로 다 낫는 법입니다. 우리 할머니가 그러시는데 저도 어린 시절에 먹길 엄청나게 좋아했대요. 하지만 커서 난 식탐 많은 사람으로 취급받은 적 없어요.”커서는 혼자 통제할 수 있으니 제멋대로 먹지 않았을 뿐이었다.예준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제발 그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식탐 때문에 손해 볼 수도 있어요.”두 어른과 두 어린이는 반 시간 남짓이 달린 후 방향을 바꿔서 집으로 달렸다.그들이 별장에 도착할 무렵에 하예정은 이미 일어나 마당에서 산책하고 있었다. 그녀는 우빈이의 웃음소리를 듣고 대문 입구로 마중 나갔다.“이모!”두 꼬맹이가 먼저 대문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하예정을 본 우빈이는 깡충거리면서 뛰어갔다.용정도 우빈이 뒤를 따라 뛰어갔다.“아주머니.”“용정아, 네가 어떻게 왔니?”하예정은 용정을 보고 반색하며 맞았다.비록 마당에 세워진 예준하의 차를 보긴 했지만
전태윤이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이러니 두 사람이 친구로 될 수 있는 거네요. 두 사람이 같은 부류의 사람이니 말이죠. 저도 꼭두새벽에 우빈이의 문 두드리는 소리에 깨어나 함께 조깅하러 나가는 중입니다.”“같이 나가는 건 어때요? 같이 산책해요.”전태윤이 예준성 부자한테 함께 산책하러 가자고 제안했다.예준성이 웃으면서 대답했다.“그럽시다. 어차피 저도 이제 더 잘 수도 없는데요.” 예준성은 용정을 보면서 말했다.“우빈이 데리고 앞에서 놀아야 해. 너무 멀리 가면 안 돼. 알았지?”“우빈이더러 용정을 잘 데리고 놀라고 해야죠. 당신들은 멀리서 온 손님이니 응당히 우리가 주인답게 잘 대접해 드려야죠.”두 아이는 진작 손잡고 앞으로 뛰어 가버렸다.예준성은 두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말했다.“용정은 낯 갈이도 잘 안 하고 처음 만난 사람과도 금방 친숙해져요. 기억력도 참 좋아요. 한 번 다녀갔던 길은 절대 안 잊어요. 길옆에 있는 화초까지 똑똑히 기억할 수 있어요. 걔는 식물 종류도 저보다 더 많이 알고 있어요.”“용정의 스승이 누군지 몰라서 그래요? 의술이 최고인 정 선생님이잖아요.”정겨울은 바빠서 직접 용정을 가르치는 시간이 많지 않지만, 용정이 신의와 함께 지내면서 많은 약재의 이름을 기억했다.용정의 기억력이 비상하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일이었다.“용정은 성격이 참 좋아요.”“그건 모르고 하는 얘깁니다. 성격이 좋을 땐 좋아도 녀석이 횡포한 면도 있어요. 금방 집에 데리고 왔을 때는 먹고 자고, 자고 먹고 말도 잘 안 하기에 똑똑하지 못한 먹보인가 했어요.”“정말 잘못 봤어요.”예준성이 겉으로는 양아들의 단점을 말하는 것 같지만 두 눈은 애틋한 눈빛으로 가득 찼다. 용정은 예준성을 약간 어려워하기에 여태 감히 아빠라고 부르지 못하고 아저씨라고만 불렀고 모연정을 엄마라고 불렀다. 하지만 자신이 모연정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부터는 모연정을 모 엄마라고 불렀다.전태윤이 웃으면서 말했다.“운이 좋은 줄 아세요.
“알았어요. 제가 지금 태윤 씨 집 앞에 있어요. 집사가 문 열려고 나오네요. 그러면 만나서 얘기해요.”말을 마친 예준성은 전화를 끊었다.전태윤은 멍하니 서 있었다.전태윤이 어리둥절하여 머리를 숙여 우빈이를 쳐다보니 마침 우빈이도 머리를 들고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이모부, 왜 그래요? 무슨 일 생겼나요?”전태윤은 꼬맹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누군가 우빈이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또 아침 일찍 찾아왔단다.”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혹시 예준하와 성소현의 혼사에 문제가 생겨 예준성이 자신더러 로비스트 되어 달라고 부탁하러 온 건 아닐지 생각했다. 하예정은 그럴 재주가 있지만, 자신은 로비스트로 될 재주가 없다고 생각했다.이윽고 예준성이 동생이 평소에 타고 다니던 차를 운전해서 대문을 지나 마당에 세웠다.예준성이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뒷좌석의 차 문이 열리면서 작고 탄탄한 몸매를 가진 어린애가 차에서 날렵하게 뛰어내리더니 전태윤이 서 있는 곳으로 쏜살같이 뛰어왔다.“우빈아, 우빈아, 내가 왔어!”전태윤이 눈여겨보니 용정이었다.“용정!”용정을 알아본 우빈이는 잡고 있던 전태윤의 손을 뿌리치고 용정이 뛰어오는 방향을 향해 깡충깡충 뛰어갔다.두 꼬맹이는 만나자마자 반갑다는 듯 어른들처럼 상대방한테 커다란 포옹을 해주었다.여름방학 때 작별한 후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두 아이의 키는 눈에 띄게 컸다.용정은 매일 많은 시간을 들여서 무술을 연마했기에 키가 우빈이보다 훨씬 더 컸으며 신체도 우빈이보다 퍽 탄탄해 보였다.방금 용정이가 차에서 뛰어 내리는 동작을 통하여 전태윤은 용정의 무술 실력이 또 늘었다는 것을 알았다. 현재 용정의 무술 솜씨는 우빈이 셋을 합쳐도 못 당할 것이었다. 이 아이는 무술 배우는 방면에서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용정아, 네가 어떻게 왔어?”친구를 만난 우빈이는 기뻐하면서 물었다.“나는 할아버지 따라서 모 엄마와 아저씨 보러 왔어. 사공이 유치원에 일주일 동안 휴가를 신청해
이날 저녁은 별일 없이 지나갔다.돌아오는 날은 일요일이었다.휴식날인데 우빈이는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우빈이는 일어난 후 곧장 하예정이 자는 방으로 달려가서 문을 두드렸다. 전태윤이 안에서 방문을 열어주었다.“이모부, 이모 일어났어요? 들어가서 이모랑 같이 놀래요.”전태윤은 숨을 깊게 들이쉰 후 꼬맹이와 화내지 말자고 스스로 가슴을 달래면서 부드럽게 말했다.“우빈아,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좀 더 자지? 평소에 어린이집 가야 하는 날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자더니 쉬는 날만 되면 아주 일찍 일어나더라.”우빈이가 입을 뾰족이 내밀면서 말했다.“이모부, 나는 한 번 깨어나면 더는 못 자요. 나랑 놀아 주는 사람이 없어 너무 심심해요. 이모 찾아와서 노는 수밖에 없어요.”현재 우빈이는 시 중심에 자리 잡은 전태윤의 개인 별장에서 지내고 있다. 서원 리조트에 있을 때는 그나마 함께 놀아 주는 어린이들이 있었기에 이모를 귀찮게 굴지 않았다.전태윤은 하는 수 없이 두 팔로 우빈이를 부쩍 들어 품에 안으면서 말했다.“이모는 아직도 자고 있어. 이모부가 우빈이랑 같이 놀아 줄게. 뭐 놀까?”“밖에 나가서 놀고 싶어요.”“집에서 장난감 가지고 놀면 좋지 않을까?”우빈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싫어요. 혼자 놀면 재미가 없어요. 이모부는 장난감도 안 놀 거잖아요.”전태윤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알았어. 이모부랑 같이 아침 조깅하러 나갈까? 이모부가 가서 운동복을 갈아입고 나올 테니 얌전하게 기다려야 해?”그는 우빈이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서 내려놓으면서 목소리를 낮추어 신신당부했다.“침실에 들어가서 이모를 깨우면 안 돼. 알았지? 이모부가 얼른 옷 갈아입고 나올 테니.”우빈이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전태윤은 드레스 룸으로 들어가서 먼저 운동복 바지부터 바꿔 입고 우빈이가 그사이에 침실에 들어가서 하예정을 깨울까 봐 걱정되어 웃옷을 입으면서 밖으로 나왔다.우빈이가 조용하게 제 자리에 서서 기다리는 것을 보고야 전태윤은 안도의
윤미라는 아들 노동명이 무서웠다.“알았어. 꾸준히 재활 치료할 거야. 네가 돌아올 때면 내가 2~3m나 걸을 수 있을지도 몰라. 참, 언제 돌아올 거야?”하예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대답했다.“설까지 있을 계획에요. 설날이 되면 제가 돌아갈게요.”“그렇게 오래 있겠다고? 우빈이는 어쩌려고?”“예정이가 돌봐주기 때문에 괜찮아요. 제가 보고 싶을 때마다 주말에 시간을 내서 우빈이 보러 가주세요. 시간이 없으면 제부한테 부탁해서 우빈이를 저한테 데려오라고 하는 수밖에 없고요.”하예진은 점점 더 바빠질 것이다.당분간 아들 우빈과 함께할 시간이 적을 것이다.“우빈이가 태어날 때부터 예정이가 곁에서 보살펴서 적응할 수 있을 거예요. 설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갈요.”“사실 네가 너무 보고 싶어 그래!”노동명이 한 마디 내뱉었다.우빈이는 핑계일 뿐, 사실 노동명이 그녀가 그리웠다.시간이 그토록 오래 걸리면 노동명은 자신이 하예진이 무척 보고싶을 것으로 예상했다.전화도 하고 영상통화도 할 수 있지만 그리움의 고통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우빈은 어려서부터 녀석을 키워준 하예정이 있어서 하예진이 곁에 없다고 해도 바로 적응할 수 있지만 노동명은 적응하지 못할 것이다.요즘 그는 매일 하예진을 보는 것에 익숙했다.“예진아, 네가 보고 싶을 때마다 내가 혼자 널 보러 가도 돼? 걱정하지 마. 우리 집에 개인 비행기가 있어서 내가 그 비행기를 타고 경호원들과 함께 가면 돼. 경호원들이 날 돌봐줄 거야. 네가 일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 거고. 널 보러 갈 뿐이야. 너랑 밥 먹고 얘기도 하면서 말이야. 내가 주말마다 널 보러 갔다가 월요일에 돌아올게. 나도 출근해야 하니까.”하예진은 마음이 따듯해졌다.“그럼 주말에 우빈이도 데리고 오세요.”“난 너와 단둘이 주말을 보내고 싶은데 우빈이 녀석도 데리고 가야 해?”하예진은 얼굴이 빨개졌고 이내 웃으면서 대답했다.“동명 씨가 혼자 온 걸 알게 되면 우빈이가 삐질걸
“앞으로 더는 허튼 생각 하지 말아요. 저는 단 한 번도 동명 씨를 싫어한 적이 없어요. 제가 돼지처럼 뚱뚱하고 못생겼을 때도 동명 씨는 저를 싫어하지 않았던 것처럼요.”노동명은 급히 끼어들었다.“넌 못생기지 않았어. 전혀! 예전에 통통할 때도 못생긴 편은 아니었거든. 복스러워 보였어.”“못생긴 거 맞아요. 저는 거울만 봐도 뚱뚱한 제가 너무 싫었어요.”바보 같은 짓은 한 번만 하면 충분했다. 하예진은 다시는 예전처럼 폭식하지 않고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려고 노력했다.살을 빼기 전에 하예진은 살이 너무 많이 쪄서 지방간뿐만 아니라 요산 수치도 높았다.체중 감량 후 요산뿐만 아니라 지방간 수치도 모두 많이 좋아졌다.“하예진아, 우빈한테 장난감도 사주고 옷도 사줬는데 나한테는 뭐 사준 거 없어?”노동명이 화제를 바꾸어 질투하기 시작했다.“동명 씨는 부족한 게 없잖아요. 우빈이는 아이라서 너무 빨리 커요. 해마다 새 옷을 사줘야 하지만 동명 씨는 이젠 다 큰 성인이라 작년의 옷을 올해에도 입을 수 있잖아요. 돌아가게 되면 강성의 특산 제품을 가져다드릴게요.”노동명은 서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우빈이는 크면 남의 집 남편으로 되어 우빈의 아내가 그를 걱정하고 보살피게 될걸. 결국, 내가 영원히 네 곁에 있을 텐데 나를 더 관심해 주어야 하는 거 아니야? 나도 새 옷 사줘. 네가 사준 옷이면 난 다 좋아.”하예진은 하예정에게 거의 선물을 주지 않았다.지난번 하예진은 재혼하고 싶지 않다며 노동명의 감정을 거절했다.그러나 지금, 하예진이 시집가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연인이나 다름없다. 모두의 눈에는 두 사람이 연인으로 보였다.노동명도 자연스레 하예진의 남편 역할을 하고 있었다.노동명은 하예진의 여생을 함께하려고 한다.하예정이 끝까지 노동명에게 시집가지 않더라도, 그가 여전히 그녀의 곁을 지키면서 지금처럼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했을 것이고 남은 인생을 그녀와 함께할 것이다.노동명은 하예진에게 선물을 너무 받고 싶었다. 가격을 따지
이윤미가 말을 꺼냈다.“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쓰고 헤어스타일을 바꿨을 뿐이에요. 사람들을 몰래 예진 씨를 따르라고 한 것은 감시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의 뒤를 따라가서 예진 씨의 몸매를 익히게 하려고 그런 거예요. 앞으로 예진 씨가 변장하더라도 그녀의 몸매에 대한 인상으로 분장한 예진 씨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해요. 제가 예진 씨와 만날 때마다 예진 씨의 안전을 반드시 책임져야 하니까요.”“만약 그녀가 저를 만나러 오는 도중에 사고가 나면 하예정 일행은 아마 저를 갈기갈기 찢어버릴지도 몰라요. 그리고 예진 씨가 강성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몰래 그녀를 도와주세요. 그저 우리 엄마와 그 늙은 남자에게 들키지 않도록 몰래 도와주면 돼요.”이윤미가 말하는 늙은 남자는 정군호가 아닌 이은화의 특별 비서였다.방윤림은 예의 갖추며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아가씨, 밤이 점점 깊어지는데 얼른 돌아가세요.”이윤미는 한숨을 쉬었다.“정말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그 집에는 따뜻함이 없어요. 서로 다투고 경쟁하고 눈치 보면서... 좋은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방윤림은 말을 어떻게 이어야 할지 몰랐다.주인의 집안이 어떤 상황인지 일개 비서가 관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했다.이윤미는 곧 방윤림과 함께 떠났다.한 시간 후.하루 호텔로 돌아온 하예진은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다시 착용한 뒤 가발을 쓰고 지하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이윤미가 선물한 인간 얼굴 가죽을 쓰기 아까웠다.그렇게 전업적인 도구는 가장 필요한 곳에 써야 낭비하지 않는다.하루 호텔은 전호영이 강성에서 소유하고 있는 호텔 본점이다. 하예진이 분장한 이유는 전호영에게 폐를 끼치게 하고 싶지 않을 뿐, 그를 경계하려는 목적이 아니었기에 그 가죽을 쓸 필요 없었다.하예정은 그녀가 묵고 있던 룸으로 돌아와 방문을 잠근 뒤에야 휴대전화를 꺼내 노동명에게 전화를 걸었다.곧 노동명이 전화를 받았다.“동명 씨, 이렇게 늦었는데 아직도 주무세요?
하예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부부 사이에 한쪽이 바람을 피우면 금방 금이 생기게 되는 법이죠. 이혼을 안 했어도 서로 고된 삶을 살 테니,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나아요. 저의 전남편도 바람을 피우고 저를 폭행하여 이혼했잖아요. 한번이 있으면 두 번, 세 번이 있을 수 있으니 그들이 고치기를 기대하지 마세요.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나아요. 이혼하면 죽는 것도 아닌데.”이윤미가 말을 이었다.“우리 아버지는 절대 떠나지 않을 거예요. 절대로. 아버지는 자신이 이혼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잘 아시거든요. 정씨 집안의 친척들도 우리 가문에서 아무런 이익도 보지 못할걸요. 어쩌면 전에 받은 혜택들도 전부 토해내야 할지도 몰라요. 어쨌든 요즘 우리 가문은 편안할 날이 없어요. 저는 왠지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아요.”이은화의 모진 마음으로는 정말 해낼 수 있을 것이다.하예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이경혜가 하예진을 강성으로 빨리 오게 한 것은 아마도 이씨 가문이 요즘 혼란스러워 이은화가 하예진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야 하예진이 그 틈을 타 사업을 일으킬 수 있고 옛날 사고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될 수 있었다.이 기회를 잡아 이씨 가문의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민심을 얻는 자는 천하를 얻는 것과 다름없다.하예진은 비록 이씨 가문에서 자라지 않았고 강성에서도 사업이 없지만, 그녀의 뒤에는 든든한 후원자들이 서 있다. 그리고 하예진의 외할머니는 이씨 가문의 전임 가주였다. 이씨 가문의 친척들을 끌어들여 그들의 지지를 얻을 수만 있다면 일이 쉽게 풀릴 것이다.“예진 씨, 비행기를 몇 시간 타고 방금 도착하셔서 힘드실 텐데 얼른 가서 쉬세요. 일이 있으면 그 번호로 저에게 연락해 주세요.”하예진이 관심하며 물었다.“저랑 같이 안 갈실래요?”이윤미는 입을 오므리다가 대답했다.“여기 좀 더 있고 싶어요. 마음도 추스를 겸 조용히 있고 싶거든요. 집으로 돌아가도 엉망진창이에요.”“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