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정은 전태윤의 답장을 받지 못한 채 언니에게 말했다. "태윤 씨는 친구랑 재미있게 놀고 있나 봐요.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없네요.""내일은 여기 안 와도 돼, 시간을 내서 제부랑 같이 있어."하예진은 자신의 결혼생활은 파탄이 났지만, 동생의 결혼은 더 오래 지속되었으면 했다.사실 하예진은 전태윤이 마음에 들었다. 동생에게도 잘해 주는 데다 주형인처럼 쪼잔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서로 얼굴을 알고 연애를 한 뒤 결혼까지 한 주형인은, 이제 경제적 여유가 있음에도 늘 돈을 아까워하며 자동차 한 대 사주지 않았다.스쿠터도 동생이 사 준 것이었다."알았어, 언니.""맞다, 친가 사람들 아직도 귀찮게 구니? 어떻게 됐대? 할머니는 수술받으셨으려나?"하예진은 친가 사람들에 대해 물어봤다."한 번 합의하러 오고 나서는 다시 오지 않았어. 자기들도 민망한가 봐. 게다가 실시간 검색어는 진작에 내려갔고 일찌감치 잠잠해졌어. 별로 영향도 안 받았으니까 당연히 다시 안 찾아오지."하예정은 전태윤이 문제를 해결해 준 것도 모르고 친가 사람들이 민망해서 안 찾아온 줄로만 알고 있었다.하예진은 그 말에 한시름을 놓았다.해 질 무렵, 저녁 식사를 마친 뒤, 하예진은 동생을 집에서 쫓아냈다. 심효진은 엄마의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하예정을 따라 발렌시아 아파트에 가, 하예정이 지금 살고 있는 크지 않지만 아늑한 집을 구경했다."예정아, 너랑 태윤 씨 집 참 넓다. 채광도 좋아서 진짜 밝아. 그중에서 이 베란다가 제일 좋아, 한가할 때 그네에 앉아 책도 읽고 꽃구경도 하면 진짜 마음이 너무 편안할 것 같아. 그네 앞에 작은 탁자 하나 놓으면 차도 마실 수 있고 더 편하겠다!"하예정은 웃으면서 말했다. "좋은 제안이야, 내일 바로 작은 탁자 하나 사서 여기에 놓을게!""여기에 있는 꽃들 대부분 태윤 씨가 사 온 거고 나머지는 내가 사 온 거야. 태윤 씨가 어느 가게에서 사 온 지는 모르겠는데 꽃은 진짜 크고 예뻐, 되게 잘 폈더라고"하예정은 전태윤의 일 처
전태윤은 차갑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그런 전태윤의 모습에 하예정은 명치가 턱 막힌 듯 아파왔다.누가 신경을 쓰고 싶댔나?그저 부부간에 최소한의 배려 차원에서 물어본 것이다.하예정은 휙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갔다.하예정이 더 이상 아무 질문도 하지 않고 자신을 신경 쓰지 않자, 전태윤은 기분이 더 안 좋아졌다."앞으로 잠옷 입은 채로 문 열어주지 마!"하예정은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속옷은 입고 있었다고요."하예정은 방금처럼 문을 열어줘야 하는 상황이 생길까 봐 잘 때만 속옷을 벗었다."제가 옷을 어떻게 입는지 태윤 씨가 무슨 상관이에요? 서로 사생활은 개입하지 않기로 계약서에도 썼던 걸로 기억하는데요?."전태윤은 굳은 얼굴로 가만히 있었다.분명 계약서는 전태윤에게만 유리하고 하예정을 구속하는 내용만 적혀 있었다. 그런데 왜 지금 오히려 그 계약서가 전태윤을 옥죄는 느낌인 걸까?하예정은 주방에서 따뜻한 물 한 잔을 받았다. 물이 적당히 식었을 때 꿀을 탄 뒤 잘 저어서 전태윤에게 건네주었다.전태윤은 소파에 기대고 있었지만 잠에 들지는 않았다. 하예정이 나온 것을 본 그는 여전히 차가운 눈으로 하예정을 쳐다봤다.하예정은 꿀물을 전태윤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태윤 씨 많이 취했으니, 뭐라고 하지 않을게요. 꿀물 먹고 방으로 돌아가 씻고 자요."할 말을 마친 뒤, 하예정은 몸을 돌려 방 쪽으로 걸어갔다.전태윤은 손을 뻗어 하예정의 손목을 낚아채 세게 끌어당겼다. 하예정은 막을 새도 없이 전태윤의 품으로 쓰러졌다. 전태윤은 술을 많이 마시긴 했지만 매우 민첩했다. 하예정이 정신 차릴 새도 없이 그녀의 몸을 돌려 소파에 눕혀 꼼짝도 못 하게 했다.순간 세상이 돌아가는 것만 같았던 하예정은 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전태윤에게 잡혀 소파에 눕혀져 있었다."태윤 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여태까지 전태윤은 늘 혹시라도 하예정이 자신을 덮칠까 봐 거리를 두지 않았던가?하지만 지금 전태윤은 하예정의 위에 올라타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마치
전태윤은 하예정의 두 손을 낚아채 하예정의 머리를 누르며 입을 맞췄다.조금도 부드럽지 않은 그 입맞춤은 마치 화를 내는 것만 같았다.입술을 깨물고 뜯는 데다, 강압적이기까지 했다.그런 전태윤에 화가 난 하예정은 참지 않고 전태윤의 입술을 깨물었다. 피가 나자, 밀려오는 고통에 전태윤은 그제야 하예정을 놓아주었다.전태윤이 당황한 사이에 하예정은 전태윤을 넘어뜨린 뒤, 펄쩍 뛰며 도망쳤다. 하예정은 뒷걸음치면서 경계하는 눈빛으로 전태윤을 쳐다봤다.전태윤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입가의 피를 닦았다.안색이 잔뜩 굳어있었다."전태윤! 너 뭐 하는 거야? 술을 몇 잔에 미친 거야?"전태윤은 어두운 낯빛으로 하예정을 노려봤다.전태윤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예정아, 다시 한번만 물어볼게, 너 오늘 진짜 처형 집에 있었어?""나 언니 집에 있었…"하예정은 갑자기 하던 말을 멈췄다.전태윤은 코웃음 치며 말했다. "왜? 이제야 생각났어? 너 김진우랑 식객당에서 희희낙락하며 밥 먹었지? 음식도 챙겨주고 부부보다 더 가까워 보이더라? 하예정, 계약 결혼 기간 동안, 얌전히 바람피우지 말라고 했었지!""내가 얼마나 더 참아야 해! 한 번만 더 이러면 진짜 가만있지 않을 거야!"하예정은 그제야 이유를 깨달았다.어쩐지 술주정을 부린다 했더니, 이제 보니 자신과 김진우가 함께 밥을 먹는 것을 본 것이었다.자신이 김진우로 갈아타려는 것이라고 의심하며 보복하려고 한 것이다.평소에 전태윤은 하예정을 변태 취급하며 신체 접촉을 꺼리더니, 오늘 밤에 이렇게까지 했던 것은 다 남자의 자존심 때문이었던 것이다.하예정은 자기 입술을 매만졌다. 전태윤이 이로 깨문 입술은 아직도 조금 아프게 느껴졌다."태윤 씨, 제가 진우랑 밥 먹는 걸 본 거예요?"전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효진이도 있는 거 못 봤어요? 태윤 씨, 왜 이렇게 의심이 많아요? 저랑 진우를 뭐로 보는 거예요? 전 어렸을 때부터 진우를 봐왔고 계속 동생으로 여기고 있다고요. 누나로서 동생한
전태윤이 물건을 부수든 말든, 어차피 이 집은 그의 것이니 망가져도 손해는 전태윤이 봤다.꿀물을 엎은 전태윤은 방으로 들어가, 정신을 차리려고 찬물을 가득 받아 욕조에 몸을 담갔다.전태윤은 술을 많이 마시긴 했지만, 완전히 취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제정신이긴 했지만 술을 많이 마셔, 쉽게 충동적으로 행동한 것뿐이었다.거실의 불도, 나중에 하예정이 나와 전기세를 아껴주려 끈 것이었다.그날 밤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화가 나,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하예정은 전태윤이 자기를 의심했다는 것에 대해 화가 났다.전태윤은 자신이 직접 본 것만을 굳게 믿기에 하예정이 김진우와 같이 있었다는 것에 화가 났다. 하예정은 김진우와 안 지 10년이 넘었고 어렸을 때부터 계속 봐왔던 사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또 하예정이 심효진과 친하고, 김진우는 또 심효진의 사촌 동생이기에 전태윤은 두 사람이 10여 년 동안 알고 지냈다는 말을 믿었다.하예정은 김진우를 동생으로 생각한다지만, 김진우가 진짜 동생인 건 아니었다. 두 사람은 조금의 혈연관계도 없었다.게다가 하예정을 바라보는 김진우의 눈빛은 깊은 마음이 담겨 있었고, 김진우는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다.하예정은 정말 모르는 걸까? 아니면 모른 척하는 걸까?뭐가 됐든 전태윤은 마음속의 화가 도무지 가라앉지 않았다.이튿날, 일요일이 되자 하예정은 일찍이 가게로 돌아갔다.평소였다면 주말에는 일반적으로 가게를 열지 않았다.전태윤과 대판 싸우고 나니 기분이 좋지 않을뿐더러 무표정의 전태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하예정은 일찍 가게로 나온 것이다.하예정은 차라리 하루 종일 공예품이나 만드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기분이 나빴던 하예정은 심지어 전태윤에게 아침밥을 차려 주지도 않고 자기 것만 만들어 먹었다.전태윤이 배가 고파 깼을 때는 이미 오전 10시가 넘어있었다.옷을 갈아입은 뒤, 전태윤은 방에서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나왔다.자신의 집인데, 자기가 왜 하예정을 무서워해야 하지?전태윤이 방에 나왔을 때 하예정은
로열팰리스는 관성의 고급 별장 지역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권세가가 아니면 재벌가들이었다.전태윤이 아직 하예정과 혼인 신고를 하기 전에는 거의 매일을 이곳으로 돌아와 지냈고 가끔씩 본가로 가 어른들 곁에 있었다.이곳은 원래 여러 채의 별장으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하지만 전태윤인 그곳을 전부 매입한 뒤, 전부 허물고 새롭게 커다란 별장과 앞뒤로 정원을 지었다. 비록 본가만큼 크지는 않지만 혼자 지내기에는 충분히 넓었다.박 집사는 전태윤이 심지어는 배를 곯으며 온다는 것을 알고는 미리 주방에 점심을 준비하라고 일렀다.전태윤은 늦게 일어난 탓에 지금은 아침과 점심을 함께 먹는 셈이었다.자신의 익숙한 집으로 돌아와 배불리 먹고 마시니 전태윤은 가라앉았던 기분이 조금 좋아지는 것이 느껴졌다.소파에 앉은 그는 소정남에게 전화를 걸었다.소정남은 아직 깨기도 전이었다. 어젯밤, 소정남과 이동명은 목숨을 내놓은 듯 전태윤과 함께 술을 마셔주었다. 전태윤은 주량이 센 탓에 그리 취하지 않았지만 소정남은 직원의 도움이 필요할 지경으로 취했다.주량이 전태윤보다도 좋은 이동명은 하나도 취하지 않았지만, 술을 마시고 운전할 수가 없어 아예 호텔에 남기로 했다."대표님."소정남은 목소리마저 다 갈라져 있었다."좋은 아침이야."잠시 침묵한 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아침이 아니야. 나 방금 점심 먹었어.""…" 소정남은 답이 없었다.휴대폰을 귓가에 떼고 시간을 확인하니 정말로 점심이 다 된 시각이었다. 어쩐지 대표 녀석이 전화로 깨우니 배가 아프다 싶었다. 다행히 머리는 별로 아프지 않았다. 머리마저 아팠다면 하루 종일 침대 신세나 지고 있을 게 뻔했다."왜 그래?""오후에 뭐 하는 거 있어?"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소정남은 다시 한번 휴대폰을 귓가에서 떼어서 확인했다. 자신과 통화하고 있는 사람은 확실히 그의 상사 겸 친구인 전태윤이 맞았다. 소정남은 웃으며 말했다."전태윤, 오늘 해가 서쪽에서 뜨는 거야? 네가 먼저 나한테 뭐 하는 거 없냐고 묻다니.
풍경을 계속 보던 그녀는 졸음이 밀려 와 그녀에 기댔다. 잠깐 눈 좀 붙이려던 것이 어느새 새벽 5시가 넘어서야 깨어났다. 두 눈을 떴을 때 해가 다 뜨고 있었다.베란다에서 하룻밤을 자게 된 것이다.정신을 차린 하예정은 전태윤이 어젯밤에 돌아오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돌아왔다면 그녀를 깨웠을 게 분명했다.그 사람은 차갑기는 해도 매정한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 꽤 잘해주었다. 아내에게 주어야 할 것들을 그는 전부 다 주었다.의자에서 일어나 거실로 돌아온 하예정은 불을 켰다. 그러자 자신이 가져온 공예품이 여전히 티 테이블 위에 있는 것이 보였다. 잠시 침묵한 하예정은 이내 전태윤의 방으로 향했다.방문은 잠겨 있었고, 하예정에게는 방 키가 없어 문을 열 수가 없었다.돌아오지 않은 거겠지.벌써 월요일이었다. 또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다.비록 전태윤은 밤새 집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하예정도 따로 전화를 하지 않았다. 아직도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는데 괜히 건드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감히 장담하건대, 설령 전화를 한다고 해도 절대로 받지 않을 게 분명했다.전태윤이 집에 없는 탓에 하예정도 집에서 아침을 먹지는 않았다. 날이 밝자, 그녀는 차키를 들고 내려갔다. 밖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산 뒤 언니네로 가 우빈이를 데리러 갈 생각이었다. 오늘도 하예진은 계속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아래로 내려온 하예정은 주차장에 있는 전태윤의 현대 SUV를 발견했다. 걸음을 멈춘 그녀는 그 차를 자세히 살펴봤다. 차량 번호를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이건 전태윤의 차가 맞는데, 차를 가지고 않은 건가?한참 뒤, 하예정은 결국 휴대폰을 꺼내 전태윤에게 문자를 보내 물었다."오늘 출근해요? 보니까 당신 차 집 아래에 주차되어 있네요."문자를 보낸 하예정은 이내 걸음을 옮겨 다른 차로 향했다.이내, 하예정은 차를 몰고 멀어졌다.언니네 집에 도착한 하예정은 놀랍게도 형부인 주형인이 돌아온 것을 발견했다."예정아, 왔니?"주형인이 먼저 처제에게 인사를 건넸다.잠시
주형인은 고개를 돌려 집안을 쳐다봤다. 그는 어젯밤에 스스로 돌아왔다.부모님과 누나의 설득에 겨우 집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그는 부모님 집에 며칠은 더 지내면서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서현주와 알콩달콩 지내고 싶었다.하예진은 보통 시댁에는 잘 가지 않았다. 매번 갈 때마다 시어머니와 시누이에게 트집이 잡히니, 몇 번 가더니 짜증이 일어 별다른 일이 없으면 시댁에는 잘 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주형인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서현주와 애정행각을 벌였던 것이다.그가 휴가를 내고 며칠 쉬고 있는 동안 서현주는 퇴근을 하면 그를 보살피러 왔었다. 그에게 건강보조식품이여 맛있는 것들을 잔뜩 사준 덕에 두 사람의 감정은 빠르게 진전됐다. 만약 서현주가 주형인에게 이혼을 하라고 하며 어물쩡 그와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진작에 침대 위를 뒹굴었을지도 몰랐다.비록 손에 넣지는 못했지만 주형인은 서현주에 대한 마음이 더욱 깊어졌다.가질 수 없는 것을 가장 원하기 마련이었다.서현주는 그 도리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주형인과 부부처럼 뜨겁게 지낸다고 해도 그녀는 마지막 선을 지키며 주형인에게 잡혀주지 않았다."나한테 사과했고, 앞으로는 절대로 손대지 않겠다고 약속도 했어."주형인은 거짓말을 했다.사실 주형인이 돌아온 뒤 두 부부는 각방을 쓰고 있었다. 하예진이 그를 쫓아낸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제 발 저려 지레 겁을 먹은 것이다. 그는 자신이 잠든 뒤 하예진이 자신을 조각낼까 봐 두려웠다.게다가 하예진은 그에게 사과를 하기는 커녕 오히려 경고를 날렸다. 또다시 손을 대면 그때도 칼을 들고 쫓아가 온 집안에 망신을 주겠다고 협박했다.주형인은 정말로 하예진의 기세에 깜짝 놀랐다. 돌아오기 전, 부모님도 그에게 하예진은 반발을 하다못해 아주 격한 반응을 보이니 앞으로는 절대로 손을 대지 말라고 귀띔을 했다. 왜냐하면 부부 둘이 싸우면 누가 이길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었다.그 말을 들은 서현주는 웃음을 흘렸다. 그 하예진도 참 쌤
하예진이 그 말에 대답했다."아침도 안 먹고 그냥 가?""괜찮아. 나가서 포장하면 돼. 점심에는 식사 약속이 있어서 집에서 안 먹을 거니까, 당신이랑 우빈이 먹어."하예진이 묻기만 하며 예전처럼 외투와 가방을 챙겨주지도 않고, 왕을 배웅하듯 그를 배웅해 주지 않자 주형인은 기분이 퍽 나빠졌다. 왠지 자신의 돈으로 먹고 자고 하면서 자신의 시중을 들어주지 않는 기분이었다.그의 누나는 매형에게 아주 잘해주다 못해 매형을 왕처럼 받들어 모시고 있었다.그런 누나도 출근해서 돈을 버는데 하예진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를 제대로 챙겨주지도 않았다.그러니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다고 탓할 것도 없었다. 하예진에게는 자격이 없지 않은가.주형인은 자신의 불륜에 합리적인 이유를 찾으려 했다.그는 자신의 정장 외투를 챙기고 서류 가방과 차 키를 챙긴 뒤 아들에게 인사했다."우빈아, 아빠 출근해. 안녕."아들이 작은 손을 흔들자 그는 그제야 집을 나섰다.집을 나선 그는 곧바로 차를 몰고 관성 호텔로 향했다.그런데 서현주가 무려 관성 호텔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주 사장님."서현주는 직장인답게 정장 차림을 하고 있었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커리어 우먼같은 차림에 세련된 화장까지 더해지니 지금의 하예진보다 몇 배는 예뻐 보였다."왜 온 거야? 내가 포장해 간다고 했잖아? 밖에서는 형인 오빠라고 불러. 난 네가 이름 불러주는 게 좋아."차에서 내려 애인에게 다가간 주형인은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안은 뒤 호텔로 들어갔다."기왕 있으니, 호텔에서 배부르게 먹고 회사로 돌아가자."서현주는 애교 있게 웃으며 말했다."난 그저 오빠랑 같이 먹고 싶어서 얼른 와서 기다린 거예요.""어때요, 깜짝 놀랐죠?""그럼."주형인은 사랑스럽다는 듯 대답하며 빠르게 서현주의 볼에 입을 맞췄다.얼굴이 붉어진 서현주는 그를 살짝 밀어내며 말했다. "좀, 밖이잖아요. 누가 보고 오빠 아내에게 이야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그럼 전 사람들이 다 욕하는 내연녀가 되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