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정은 지금에 와서야 자신이 설 쇠러 갔을 때 머물던 고택은 전씨 가족이 오랫동안 비워두었던 집임을 알게 되었다. 그녀를 속이기 위해 시댁 식구들은 집을 다시 깨끗이 청소하고 들어갔던 것이였다.속이느라 정말 힘들었겠네!전태윤은 사랑스러운 눈길로 하예정을 바라보면서 대답했다.“좋아, 당신 말대로 해. 우리 집이니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어. 있고 싶을 때까지 있어도 돼.”“제가 밥 차릴게요.”하예정이 말하면서 전태윤의 앞치마를 벗기려 하자 전태윤은 그녀가 주방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아니야, 두 가지 요리만 더 하면 되니까 당신은 여기서 꽃구경이나 해.”하예정이 그의 얼굴에 키스를 해주자, 전태윤은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주방에 들어갔다.“자기야.”전태윤은 둘만 있을 때 하예정이 ‘자기’라고 불러주면 엄청 좋아한다. “자기가 소 이사님, 노 대표님과 바베큐 파티를 하기로 약속했죠? 사람이 적은 것 같은데, 예씨 가문 다섯째 도련님을 청하는 건 어때요? 제가 효진이와 소현 언니와도 약속을 잡을게요. 그리고 예진 언니도 같이 가고 싶은지 물어볼게요.”전태윤의 목소리가 부엌에서 들려왔다.“알았어, 내가 바로 예준하 씨에게 전화할게.”하예정이 먼저 언니에게 전화했다.“언니, 밥 먹었어?”“지금 가게에서 먹는 중이야.”“언니가 가게에 있을 줄 알았어.”오후 4시쯤 고향에서 돌아온 후 하예진은 지금까지 줄곧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돌아치고 있다.하예진이 웃으며 동생에게 물었다.“너희들은 밥 먹었어?”“태윤 씨가 지금 식사 준비하고 있어. 언니, 내일 친구 몇 명과 함께 태윤 씨네 리조트에 가서 바비큐 파티를 하기로 약속했는데, 우빈이를 데리고 함께 가지 않을래?”“모레가 가게 오프닝 하는 날이라 아직 할 일이 많아. 충분히 준비한 것 같은데 아직도 할 일이 많네. 하지만, 너의 시댁에도 아직 가보지 못해서 또 가보고 싶고.”장소민이 아직 하예진과 이경혜에게 만나자고 요청하지 않은지라, 하예진은 내심 사돈이 여동생에게 불만을
“아빠가 우빈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놀러 갔어요.”“아빤 집에 가셨어?”“네. 그리고 아빠가 내일은 우빈이를 데리고 동물원에 놀러 간다고 하셨어요. 이모, 내일 같이 동물원에 안 가실래요?”오늘 하루 종일 아빠와 함께 즐겁게 논 주우빈은 기분이 좋아서 재잘거리며 아빠 얘기에 신이 났다.“이모는 내일 바비큐 먹으러 가. 엄마도 가는데, 우빈이는 안 갈래?”주우빈은 생각지도 않고 바로 대답했다.“저도 갈래요. 그럼, 아빠랑 동물원에 안 갈래요.”주우빈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야 하예정은 심효진과 성소현에게 전화해서 내일 여행 겸 같이 서원 리조트에 가자고 약속했다.서원 리조트는 경치가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이라고 들었다. 물론 누구나 서원 리조트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여보, 어서 와서 밥 먹어.”전태윤이 마지막으로 볶은 두 가지 요리를 들고 주방에서 나와 테이블에 차려놓고는 베란다를 향해 소리쳤다.하예정은 급히 성소현과 통화를 끝내고 몸을 일으켜 키친룸으로 들어갔다.테이블에 다가간 하예정은 자신이 좋아하는 새우가 있는 것을 보고 손을 뻗어 새우를 집어 입에 넣었다.“새우 껍질을 까서 먹어.”“까기 귀찮아요.”그녀가 다시 손을 뻗어 음식을 집으려고 하자 전태윤은 하예정의 손을 가볍게 두드렸다. “다 큰 어른이 아직도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다니.”하예정은 히죽 웃으며 다시 새우 한 마리를 집어 입에 넣고 나서야 주방에 들어가 수저를 가져왔다.부부가 식사하려고 의자에 앉자마자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전씨 할머니가 들어오셨다.형기로운 음식 냄새를 맡은 전씨 할머니가 다가와서 물었다.“밥 먹고 있었어? 맛있는 냄새가 나는구나.”전씨 할머니가 주방에 들어가 그릇과 수저를 들고 나오며 말했다.“내가 먹을 복이 있다니깐.”“할머니.”하예정은 전씨 할머니에게 의자를 당겨 드린 후 할머니의 손에서 국그릇을 받아 국을 떴다. 할머니의 식사량을 잘 알고 있는 전태윤은 밥그릇에 밥을 절반만 담았다. “할머닌 오늘 집에 안 계시고, 하
전태윤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두 여자를 바라보았다.“여보, 국물 먼저 먹어.”하예정이 웃으며 말했다.“다행히 방금 국물을 먹지 않았으니 말이지, 아니면 모두 뿜어냈을 지도 몰라요.”“밥이나 먹자.”전씨 할머니가 웃으며 좋아하는 음식을 집어 맛을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예정아, 이 음식은 네가 한 거 아니지? 맛이 예전과 조금 다른 거 같은데.”“맛없어요?”전태윤이 말했다.“음식이 입에 안 맞으시면, 지금 호영이에게 전화해서 할머니를 호텔에 모시고 가서 산해진미를 대접하게 할게요. 어쨌든 여기 반찬은 할머니 입에 안 맞으니까.”“말투를 보니 태윤이가 요리한 게 틀림없구나.”전씨 할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계속 음식을 집으면서 하예정에게 말했다.“예정아, 태윤의 요리 솜씨가 별로 늘지 않았구나. 주말이면 하루 세 끼를 모두 시켜라. 연습을 많이 해야 음식도 맛있게 할 수 있는 거다.”전태윤이 부르튼 어조로 말했다.“할머니께선 불만을 토하시면서도 계속 드시네요.”“넌 예전에 요리를 전혀 할 줄 몰랐잖니. 만약 예정이가 아니었다면 이 할미가 언제 네가 만든 요리을 먹어보겠니? 기회가 있을 때 많이 먹어야지. 물론 5성급 요리사의 수준은 아니지만 먹을 수는 있다. 먹고 죽지는 않겠지.”“...”“할머니, 우리 내일 바비큐 먹으러 가요.”하예정이 할머니와 손자가 끊임없이 말다툼할까 봐 제꺽 화제를 바꾸었다.“너희 젊은이들이나 가거라, 이도 없는 늙은이가 뭘 먹는다고?”할머니는 두 사람 사이에 끼고 싶지 않았다.전씨 할머니는 지금 넷째 손자의 신붓감을 물색하고 있는데, 아직 목표가 없다.집에 장가보내야 하는 손자가 너무 많아서 걱정이다.“바비큐 먹으러 서원 리조트로 가요.”전태윤이 한마디 덧붙였다. “처형도 가요.”“예진이도 간다고? 그럼 할머니도 너희들과 함께 가서 구경할 테니, 좀 있다가 부모님께 전화해서 잘 준비하라고 해라. 예진이는 비록 젊었지만 친정 가장을 대표하잖아.”“알겠어요.”하예정은 할머니와 손자의 대화를 듣
전태윤이 점점 야위어 가고 위가 나빠져서 식사도 제대로 못 하자 마음이 아파 난 하예정은 그제야 그가 신분을 감추고 그녀를 속인 일을 용서해 주었다.이미 코트를 입은 하예정이 전태윤의 코트를 가지고 방에서 나왔다.“오늘 밤은 바람이 세요. 꽃샘추위가 여전하니 코트를 입어요.”하예정이 다가와 전태윤에게 자상하게 코트를 걸쳐주자, 그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전씨 할머니는 흐뭇한 미소를 띠며 다정하게 손을 잡고 바람을 쐬러 나가는 젊은 부부를 바라보았다.... 주씨 집 셋방.문을 여는 소리를 듣고 마중 나온 김은희가 아들을 보고 관심 조로 물었다.“어떻게 됐어? 문 열었어? 예진이가 우빈이를 데리고 어디 간 거야? 우리가 시끄럽게 굴어서 예진이가 우빈이를 데리고 숨은 건 아니지?”그녀는 아들이 서현주와 헤어지고 다시 하예진과 재혼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희망이 크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여 이젠 손자마저 잃을까 봐 두려웠다.만약 하예진이 주우빈을 데리고 숨어버리면, 그들은 어떻게 찾아야 할지?주형인이 나지막한 소리로 물었다.“엄마, 현주는?”“반찬 사러 나갔다. 밥을 하랬더니 냉장고에 음식 재료가 너무 적다고 하면서 반찬 몇 가지를 사 오겠다고 하더라. 정말 살림할 줄 하나도 몰라. 너희 부부는 지금 직장이 없어서 수입도 없는데, 여전히 절약하는 법을 모르니.”김은희는 새 며느리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안도의 숨을 내쉬며 집으로 들어간 주형인이 주방에 가서 냉장고를 열어보니 냉장고에는 야채와 계란 세 알뿐이었다. 재료가 너무 적긴 했다.“엄마 아빤 집에서 그렇게 한가하신데 장도 좀 보고 그러실 거지. 매일 야채와 계란만 먹으니 나도 견디기 어려운데, 현주는 더 말할 것도 없잖아.”부모가 요리하는 한, 끼니마다 야채 한 그릇과 삶은 계란 세 알뿐이다.삶은 계란 3알마저도 아빠, 엄마와 주형인이 1알씩이고, 서현주 몫은 없다.한두 번은 참을 수 있었지만, 횟수가 많아지니 서현주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소파에 앉아 잠시 침묵을 지키던 주형인이 입을 열었다.“노 대표가 예진이를 좋아하는 것 같아. 아니, 진짜 좋아하고 있어. 예진이를 좋아하는 게 아니면 왜 자꾸 가게에 가겠어?”“형인아, 내 말 좀 들어봐. 예진이가 꾸린 토스트 가게는 아침 손님이 많아서 장사가 잘될 거야. 예진이는 워낙 요리 솜씨가 좋고 부지런하고 살림살이도 잘하니... 지금 살도 빠져서 예전보다 훨씬 더 예뻐졌더라. 노 대표 같은 남자도 좋아서 쫓아다니는 걸 보면, 예진이가 여전히 몸값이 꽤 간다는 걸 알 수 있어.”김은희는 이 기회에 아들에게 권유했다.“중요한 것은 예진이에게 대단한 친정 식구들이 생겼다는 거야. 하예정이 전씨 가문 사모님인 건 말할 것도 없고, 예진이의 이모만 보더라도 대단한 부잣집 사모님이더라. 엄마가 여기저기 수소문해 봤는데 그 성씨 사모님이 성씨 일가에서 매우 존경받고 있다고 하더라.”“그래서요?”“네가 예진이와 재혼하면 성씨 가문이든 전씨 가문이던 모두 너한테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야. 네가 직접 회사를 차리고 사장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니.”김은희는 꿈도 야무졌다. “서현주는 젊고, 예쁘고, 몸매도 좋아서 애인으로는 좋지만, 좋은 마누라는 될 수 없어. 너도 보다시피, 매일 날이 밝자마자 나가서 저녁 늦게 돌아오면서 집안일도 하지 않잖아. 이렇게 게으른 여자는 돈을 모을 수 없어. 매일 요란하게 차려입고 나가서 무엇을 하는지... 일자리를 찾는 것도 아니고. 형인아, 현주가 바람을 피우지 않는지 조심해. 엄마가 예전에 너한테 말했잖니, 집 살림은 예진이가 잘한다고.”주형인의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허탈하게 말했다.“엄마, 몇 번이나 말했어, 신혼집 인테리어는 현주가 맡아서 한다고. 현주가 매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것도 인테리어 작업하는 것을 보러 가는 거야. 나도 자주 가 보잖아. 인테리어가 쉬운 일이라고 생각해? 예전에 예진이도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 늦게 돌아오면서 인테리어 작업하는 것을 지켜보던 거 기억 안 나?”“...”“현
“...”문 여는 소리가 들리자, 서현주가 돌아온 것을 눈치챈 주형인이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니나 다를까, 문이 열리더니 서현주가 도시락 두 개를 포장해 왔다.“여보, 마침 잘 오셨어요, 내가 도시락 두 개 사 왔어요.”서현주는 도시락을 들고 다가와 주형인 옆에 앉더니 그중 하나를 꺼내 주형인에게 건넨 뒤 자신의 몫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도시락 뚜껑을 열고 먹기 시작했다.주형인이 엄마와 서현주를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왜 두 개만 사 왔어? 엄마 아빠 도시락은?”서현주가 음식을 먹으며 말했다.“아버님, 어머님 도시락은 사지 않았어요. 드시고 싶으면 직접 해 드시라고. 집에 라면 두 개가 있으니 두 분이 한 개씩 드시면 돼요. 그리고 계란도 세 알 있으니, 당신들 세분이 한 개씩 넣어서 드시면 돼요.”시부모는 언제나 쌀을 적게 넣어서 밥을 짓는다. 시어머니는 시아버지와 주형인, 그리고 자기 밥만 뜨고 절대 서현주에게 밥을 떠주지 않는다. 서현주가 밥을 뜨려고 하면 밥솥에는 밥이 한 숟가락밖에 남아있지 않다.시어머니는 일부러 그런 것이다. 매번 집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시어머니는 일부러 장을 보지 않고, 장을 보더라도 서현주가 좋아하지 않는 음식만 골라 샀다.야채 한 접시와 삶은 계란 세 알, 며느리 몫은 없다.주형인이 매번 자기의 그릇에 담긴 밥을 절반씩 나눠주고, 삶은 달걀을 그녀에게 주지 않았다면 서현주는 이 집에서 더 이상 버텨낼 수 없었을 것이다.오랜 시간을 함께할수록 서현주는 하예진이 왜서 이혼 후 자기에게 감사하다고 했는지 이해가 갔다.그들이 이렇게 나오면 그녀도 곱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도시락은 주형인 것만 사 오고, 시부모님 몫은 당연히 없다.화가 나서 가슴이 막힌 김은희가 맛있게 먹고 있는 서현주를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다.“엄마, 이걸 자셔, 난 라면 먹을게, 오랜만에 라면을 먹고 싶네.”주형인은 고부간에 또 다른 충돌이 일어날까 봐 서둘러 엄마 손에 자신의 도시락을 쥐여주었다.김은희는 벌떡 일어나서 도시락을
다음날, 날이 밝자 노동명은 얼른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아침도 먹지 않고 집을 나섰다.엄마가 일어나면 손은경을 데리고 다니라고 할까 봐 걱정 돼서이다.보기만 하면 항상 결혼을 재촉하는 엄마에게는 삼십육계 줄행랑이 상책이다.노동명은 사실 엄마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그는 스물여섯 살이 아닌 서른여섯이나 먹은 노총각이니까. 노동명의 큰 조카가 곧 아내를 맞는데 작은삼촌인 그가 아직 여자 친구 하나 없으니, 왜 조급해하지 않을까.그는 이른 아침 발렌시아 아파트로 달려가 동네 입구에서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예정을 끌어안고 침대에 누워있던 전태윤은 친구의 전화를 받자, 얼굴이 푸르뎅뎅해서 소리쳤다.“이른 아침부터 왜 전화질이야? 꺼져!”“...왜 화를 이렇게 내는 거야? 우리의 오랜 친분으로 너희 집에 가서 아침을 좀 얻어먹으면 안 돼?”“지금이 몇 신데, 아침부터 전화질이야? 왜, 집에 호랑이라도 와서 너를 잡아먹으려고 하냐? 아침도 안 먹고 이렇게 뛰어와?”전태윤이 화가 나서 노동명에게 소리 질렀다.그는 오늘 요리를 하지 않으려고 특별히 전호영에게 호텔에서 아침을 포장하여 서원 리조트로 가는 길에 그걸 자기 집으로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전호영:한 길이 아닌데요... 하지만 형의 분부이니, 가는 길에 들르는 수밖에요.’노동명이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7시가 다 되어가네. 난 어떻게든 너희 집에서 아침을 먹을 거니 그렇게 알아둬. 그리고 태윤아, 너 참 귀신처럼 잘 알아맞혔어, 우리 집에 정말 호랑이가 왔어. 암호랑이에게 물리면 뼈도 남기지 못하고 죽을 것 같아서 너의 집에 피난을 온 거야, 넌 나의 든든한 방패잖아.”노동명의 말에 전태윤은 말문이 막혀버렸다.하예정이 눈을 뜨니 전태윤이 억이 막힌 표정을 짓고 있었다.“누구 전화예요?”전태윤이 노동명과의 통화를 끊으며 대답했다.“피난민.”피난민?어리둥절해난 하예정이 궁금해서 물었다.“누가 피난을 와요?”“노동명 말고 누가 있겠어. 소정남은 인제 심효진이 있으
“노 대표님도 오셨는데 빨리 일어나서 모시고 들어와요.”하예정은 다시 자기를 끌어안으려는 전태윤을 피해 침대에서 일어났다.그녀가 갈아입을 옷을 가지러 가는 뒷모습을 보며 전태윤이 말했다.“내가 동명이를 부른 것도 아니고, 자기 절로 온 건데 기다리라지 뭐. 호영이가 오면 강일구가 나가서 두 사람을 데리고 들어오면 돼. 그럼, 강일구도 두 번 가지 않아도 되고.”하예정이 자신이 갈아입을 옷과 전태윤의 양복 한 벌을 가져왔다.“휴가 중인데, 정장 안 입을래.”하예정은 양복을 들고 돌아가서 곧 다른 옷으로 바꾸어 가져왔다.그녀가 옷을 갈아입으려고 욕실에 들어가자, 전태윤은 자기 옷을 들고 사랑하는 와이프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여보, 우리 사이에 이젠 같이 옷을 갈아입어도 부끄러울 게 없지 않아?”하예정은 못 들은체하였다.둘만 있으면 전태윤은 점점 더 느끼해지고, 점점 더 질척거린다.어떤 건 정말 남자의 천성이라서 가르치지 않아도 된다.하예정이 욕실에서 나오니 전태윤은 여전히 상의를 벗은 채 침대에 앉아 있다가 잘생긴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며 하예정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여보, 안아줘.”하예정이 다가가서 그가 들고 있던 상의를 한 손으로 빼앗은 다음, 그를 끌어당겨 상의를 입혀주었다.“옷을 입지 않고 감기에 걸리면, 매일 한약을 마시게 할 거예요!”전태윤이 웃음을 거두며 원망했다.“여보, 내가 그렇게 매력 없어? 당신 마음 안 끌려? 내가 복근이 몇 개인지 세어보지 않을래?”“당신 말대로 우리 사이에 내가 아직도 당신 몸매가 어떤지 모를까 봐요? 쇼는 여름에 하시고, 추운데 무슨 몸매 자랑이에요? 감기에 걸리면 어쩌려고요.”그를 도와 상의 단추를 채운 후, 하예정은 발끝으로 서서 그의 귓가에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전태윤은 싱글벙글 웃으며 힘껏 하예정을 껴안은 후, 진지한 성인군자의 모습을 되찾았다.“여보, 날 속이면 강아지야.”“그래요, 내가 당신을 속이면 강아지예요. 어차피 사람을 속
장소민은 하예정과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그녀는 며느리의 말을 잘 들었다.하예정은 그녀에게 아들이 다 컸는데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설득했다.전창빈 또한 진지하게 일하러 가려고 했다.게다가 전창빈의 사업도 안정적이어서 다른 사람의 가정 요리사로 되어도 그의 사업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전창빈이 미래의 아내에게 요리해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니 장소민도 막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예정아, 나 이제 기분이 풀렸어. 가자, 우리 내려가서 우빈이 보러 가자.”장소민이 몸을 일으켰다.하예정은 웃으며 장소민과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박 집사는 우빈과 함께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었는데 녀석은 아주 몰입해서 보고 있었다.발소리를 들은 박 집사가 바로 일어섰다.“이모!”우빈은 하예정이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것을 보자 TV를 뒤로 한 체 하예정과 장소민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장소민에 다시 다정하게 할머니라고 불렀다.장소민은 우빈을 안아주며 유치원에서 즐겁게 지냈는지 물어보았다.우빈은 하나하나 대답하며 장소민에 유치원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어 장소민의 웃음을 자아냈다.한 시간 후, 전현림과 전창빈이 도착했다.시아버지와 시동생이 왔다는 박 집사의 말을 들은 하예정은 직접 집 밖으로 마중 나갔다.장소민은 우빈을 끌어안고 움직이지 않고 입으로 중얼거렸다.“황제도 아니고 왜 사람 마중 나가게 만들어...”하지만 하예정의 행동에 장소민은 매우 만족했다.하예정은 별장을 나서자마자 전현림과 전창빈이 차에서 내려 서둘러 걸어오는 것을 바라보았다.“아버님.”하예정이 인사했다.전현림은 마음이 초조했지만, 여전히 하예정에게 상냥한 얼굴로 인사했다.전창빈도 하예정에게 안부를 물었다전현림이 조용히 하예정에게 물었다.“예정아, 네 엄마가 안에 계시지?”하예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집에 계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 이제 기분이 많이 풀렸어요.”“여기로 도망 온 것도 모르고 난 방에 있는 줄로만 알았어. 강제로
이제 장소민은 하예정을 완전히 받아들였다.앞으로 그녀는 천천히 하예정을 이끌어 전씨 가문의 집안일을 조금씩 가르쳐주어 전부 하예정에게 넘겨주려고 했다. 그렇게 되면 장소민도 은퇴할 수 있었다.하예정도 배우고 싶어 하고 또 열심히 배울 것이다. 그녀도 진취심이 있고 야망이 커서 전태윤에게 매우 적합했다.전태윤도 야망이 큰 남자였다.물론, 장소민은 전태윤이 이미 하예정의 손에 꽉 잡혀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아들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하예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아들이 행복하기만 하다면 며느리 출신이 후져도 상관없다.게다가 이제 하예정이 강성의 이씨 가문의 후손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으니 나쁘지도 않은 것 같았다.옛날에 이씨 가문이 전성기에 이르렀을 때 심지어 전씨 가문과 대등한 사이로 되기까지 했다.하예정의 친이모가 성씨 가문의 사모님이기도 했고 하예진도 지금 열심히 분발하고 강해져 하예정의 후원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장소민은 하예정 자매의 삶에 대한 태도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상류사회라는 바닥에서 다른 사람들이 사적으로 뭐라고 말하는지 장소민도 알고 있었으나 그 사람들이 그녀 앞에서 말하지 않으면 그뿐이었다.만약 그녀가 듣게 되면 하예정 대신 그 사람과 싸울지도 모른다.지금 장소민이 며느리를 보호하는 좋은 시어머니라는 걸 누가 모르겠는가?“예정아, 네 둘째 숙모가 이틀 후에 운초를 데리고 연회에 참석한다고 하는데 나도 참석할 거야. 너도 갈래?”장소민은 말을 마치더니 다시 말을 꺼냈다.“됐어. 집에서 너 자신을 잘 돌보는 게 낫겠네. 연회 장소가 붐비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실수로 널 넘어뜨릴까 봐 더 걱정이야. 혹시라도 네 배에 부딪혀 너와 아이를 다치게 하면 안 되니까.”장소민은 평생 후회할 것이다.하예정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런 걱정을 하지 않지만, 태윤 씨가 저를 보내지 않을 거예요. 지금 매우 긴장하고 있거든요. 제가 아기를 낳는 당일에 태윤 씨는 아마 긴장해서 쓰러질 수도 있어요.”장소민이 말을 이었다.“아닐걸.
장소민은 급히 말했다.“예정아, 넌 정말 행복해야 해. 태윤이가 감히 너를 화나게 하면 나한테 말해. 엄마가 너 대신 태윤이를 혼내줄게. 너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기분이야.”장소민에게는 임신한 며느리가 아들보다 더 중요했다.하예정의 뱃속 아이는 그녀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손자가 들어있다. 손자든 손녀든 첫 손자뻘이기 때문에 장소민 부부의 마음속에는 모두 특별한 존재이다.이제 장소민도 전씨 할머니가 전태윤에 대한 감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첫 번째 손자이기 때문에 전씨 할머니가 전태윤을 가장 아끼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어머님, 저와 태윤 씨는 오랫동안 싸우지도 않았어요. 태윤 씨는 잘 삐지지도 않고요. 걱정하지 마세요.”금방 결혼했을 때 감정적인 기초가 없는 데다 전태윤이 그녀에 대해 오해까지 품고 있었다. 그 당시 전태윤은 하예정이 악의적인 의도로 전씨 할머니에게 접근해 그와 결혼하도록 강요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는 쉽게 갈등이 생겼다.정든 커플이 부부로 되어 같이 산다고 해도 적응 기간이 필요했을 것이다.초고속 결혼한 전태윤과 하예정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장소민은 아들이 아내를 무척 사랑하는 모습을 떠올리더니 웃으며 말을 꺼냈다.“하긴, 내가 뭘 걱정하겠어. 태윤이는 널 많이 사랑하고 있는데. 예정아, 창빈이가 요리사 하고 싶어 하는 게 정말 아내를 쫓기 위한 것일까? 내가 창빈에게 누구 집에 가서 가정 요리사가 될 것인지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더라고. 그토록 비밀유지하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아내를 쫓기 위한 것일 수도 있겠다 싶어.”하예정의 설득을 들은 장소민은 전창빈이 미래 아내의 마음을 훔치러 가정 요리사로 되는 것으로 추측했다.하지만 전창빈이 어느 집안의 요리사가 될지 알기 전에 장소민은 아마 마음을 놓지 못할 것이다.“창빈 도련님이 말하지 않으려 하는 이유가 두 가지예요. 첫째는 어머님께서 방해할까 봐 출근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될까 봐 걱정하는 것이고 둘째는 정말로 아내에게 구애하기 위함일 거예요
전창빈은 이제 다 큰 어른이라 심사숙고 끝에 한 결정일 것이다. 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절대로 충동적으로 행동한 적이 없다.장소민은 전창빈이 요리사로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이유가 아마도 창피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어쩼든 지위가 높은 전씨 가문의 여섯째 도련님인데...“어머님, 창빈 도련님께서 어디로 출근하고 싶어 해요?”하예정은 장소민을 설득하고 나서 궁금한 듯이 물었다.전창빈이 어느 레스토랑이나 호텔에서 출근하고 싶어 하는지 알고 싶었다.장소민이 대답했다.“호텔에 출근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가정 요리사가 되고 싶어 해. 그것도 관성이 아닌 외지에서.”하예정은 아름다운 눈을 반짝이며 장소민에 물어보았다.“어머님, 혹시 할머니께서 창빈 도련님한테 정해주신 아내의 가문에서 가정 요리사가 필요하신 건 아닐까요? 그래서 도련님도 이 틈을 타서 접근하려는 게 아닌가요? 할머니께서 정해주신 아내가 누구인지 아세요?”장소민은 어리둥절해하며 대답했다.“그건 정말 몰라. 나는 단지 어르신이 이혁이와 전우에게 아내를 정해주셨다는 사실만 알고 있어. 창빈과 유하는 아직 고려하지 않은 줄 알았지.”전유하는 갓 사회에 나온 사람이다.이렇게 빨리 아내를 정해주지는 않을 것이다.하지만 전창빈은 이미 상업계에서 몇 년을 뒹굴면서 지냈다. 다만 조용히 지내고 있을 뿐이다.그 이유는 그가 전태윤의 친동생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가 전태윤의 친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를 높이 보곤 했다. 가끔은 그가 큰 성과를 이루어도 전태윤의 도움으로 이루어낸 것이라고 오해받기도 했다.하여 전창빈은 전태윤의 덕을 보고 싶지 않아 사업할 때에도 자신이 전태윤의 친동생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이 전씨 그룹과 전혀 연관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그의 사업은 확실히 전씨 그룹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고 심지어 사업상에서 겹치는 부분도 없다.너무 뛰어난 형을 둔 전창빈은 둘째 아들로서 압박감이 너무 컸다. 늘 전태윤과 비교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장소민은 문을 닫지 않고 대답했다.“내가 기분은 안 좋았는데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무슨 일이 생겼어요?”하예정이 관심 있게 물었다.장소민이 먼저 물었다.“물 마실래?”“안 마실래요. 고마워요.”장소민은 다가가서 하예정을 소파에 앉히며 말했다.“큰일은 아니고, 그냥 여섯째 창빈의 일로 네 아빠와 좀 다투었어.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집에서 나왔어.”하예정이 말을 건넸다.“그럼 아버님께서 어머님이 여기로 오신 것을 모르신다는 말씀이세요?”장소민은 쑥스러워하며 말했다.“아직 말하지 않았어. 박 집사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했어. 나도 좀 진정하려고.”“아버님께서 걱정하실 텐데. 어머님, 창빈 도련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요? 먼저 아버님께 우리 집에 있다고 메시지 보내세요. 걱정하시며 찾아다니실지도 몰라요.”장소민은 입을 오므리다가 대답했다.“내가 여기로 온 지도 벌써 몇 시간이나 지났는데도 찾아오지 않는데 내 걱정은 아예 안 할지도 몰라.”잠시 후 장소민은 작은 소리로 덧붙였다.“내가 몰래 나왔거든. 내가 외출하는지도 모를걸. 아마 내가 여전히 방에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전현민의 성격으로 장소민을 찾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그러면서 장소민은 전현림에 메시지를 보내 전태윤 집에 왔다고 전했다.전현림이 장소민에 수많은 메시지를 보냈지만, 그녀는 읽기만 했을 뿐 답장하지 않았다.장소민이 전현림에 메시지를 보낸 후에야 하예정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창빈 도련님이 왜요?”“예정아, 네가 예전에 창빈이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잖아. 창빈이가 지금 요리사가 되고 싶어 하지만 난 찬성하지 않았고 네 아빠가 허락했거든.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지지해 주시거든.”전씨 가문의 형제들은 전부 요리할 줄 알았다.이것은 전씨 할머니께서 배양해 주신 결과였다. 어르신은 손자마다 전씨 가문의 보호 없이도 스스로 독립할 줄 알고 자신만의 세계를 꾸밀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형제들은 모두 다재다능하여 만약 어느
늙은이는 어린아이와 다름없다고 하더니만, 이럴 때 두고 하는 말인듯하다.전씨 할머니는 장난꾸러기였다.곧 차가 중심 별장 입구에 멈추었다.하예정은 우빈을 도와 작은 가방을 메고 싶었지만, 우빈은 스스로 메겠다고 고집했다.“선생님께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엄마와 이모도 그렇게 가르쳤어요.”하예정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그래, 그래. 내가 그렇게 가르쳤는데도 까먹었네. 맞아. 자기 일은 스스로 해야지.”수많은 사람이 우빈을 사랑해 주었다.하예진 자매는 우빈이가 버릇없이 자랄까 봐 늘 교육을 중시했다.우빈에게 올바른 인생관을 가르쳐 버릇없이 자라지 않도록 말이다.우빈은 자신의 작은 가방을 메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차에서 내린 후 몸을 돌려 작은 손을 뻗어 하예정을 부축했다.하예정은 우빈의 작은 손을 잡았다. 우빈이가 그녀를 부축하여 차에서 내린 것처럼 시늉했다.“우리 우빈이 최고야.”“이모부께서 저와 이모부는 모두 같은 남자로서 앞으로 엄마와 이모를 보호하고 돌봐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하예정은 웃으며 말을 꺼냈다.“다 큰 어른 같네. 우리 우빈이.”하예정의 마음이 따듯해졌다.그녀가 우빈을 친자식처럼 아끼는 것이 헛된 고생이 아니었다.하예정은 전태윤에게 따뜻함을 느꼈다. 그는 우빈에게까지 그녀를 돌봐야 한다고 가르쳤다!우빈은 어릴 때부터 배려심이 많았는데 더 크면 분명 훈남이 될 것이다.장차 어느 집 딸이 복이 있을지 참 기대된다.“오셨어요.”박 집사가 집안에서 마중 나왔다.“집사님, 할머니께서 돌아오셨어요?”하예정이 박 집사에게 물었습니다.“사모님께서 오셨어요. 어르신은 아직 돌아오시지 않으셨거든요.”박 집사는 앞으로 나아가 우빈을 안아 왔다.하예정도 그가 우빈을을 안고 있도록 팔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우빈은 달콤하게 박 집사에게 인사를 건넸다.박 집사는 웃으며 우빈과 인사를 나누고는 녀석을 안고 하예정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박 집사는 걸으면서 목소리를 낮
예준하는 껄껄 웃었다.“그럼, 우리 우빈을 좋아하는 사람이 엄청 많지. 우빈이도 내가 널 좋아해 줄 자리를 남겨 둬야 해. 알았지?”우빈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세요. 당연히 남겨두어야죠.”모두가 한바탕 웃었다.막 집에 들어섰을 때, 전태윤의 전화가 걸려왔고 하예정이 이내 받았다.두 사람은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전태윤은 그의 아내가 성씨 가문으로 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예전에는 하예정이 성씨 가문에 올 때면 전태윤도 따라왔지만, 오늘 밤 너무 바빠서 따라오지 않았다.하예정은 친절하게 말했다.“지금 이모 집에서 밥 먹고 이야기 좀 하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에요. 저녁에 술 많이 드시지 말고 따듯하게 입고 나가세요. 오늘 기온이 또 내려간다고 하니까.”요즘 기온이 떨었지만, 비도 내린다고 했다.겨울에 비가 오면 더 춥게 느껴진다.“술은 마시지 않을 거야. 내가 밖에서 찬 바람을 쐴 필요도 없어서 밖에 아무리 추워도 나랑 상관없어.”전태윤은 매일 난방이 있는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고 설령 외출하여 사업을 논의하더라도 따뜻한 관성 호텔에서 일을 보았다.기온이 아무리 내려가도 대표 전태윤에게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예정아, 너 매일 밖에서 뛰어다녀야 하는데 옷을 더 입고 다녀. 우빈에게도 두 벌 더 입히고. 오늘 저녁 접대 자리에 동명이와 함께 가거든.”노동명이 바삐 돌아치는 이유가 바로 이 일 때문이었다.하예정이 대답했다.“알았어요. 제가 세 살짜리 아이도 아니고, 우빈이도 추워지면 저에게 말할 거예요. 스스로 옷을 찾아서 입을 줄도 알아요.”하예정은 우빈을 위해 이미 따뜻한 옷 한 벌을 입혀주었다.“동명 오빠도 잘 돌봐주세요.”“네가 말하지 않아도 그러려고. 그럼 먼저 밥 먹어. 이따가 내가 동명이 데리러 가야 하니까.”하예정은 그에게 다시 당부한 뒤 통화를 끝냈다.하예정은 휴대전화를 귓가에서 떼어낸 뒤에야 우빈이가 곁에 앉아 그녀가 통화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는 사실
예준하가 우빈에게 물었다.“아저씨는 시간이 없어서 이모가 저를 데리러 왔어요. 그리고 아기 보러 왔는데 아기가 잠들어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어요.”우빈은 말주변도 좋고 발음도 똑똑했다.예준하는 이 녀석이 용정과 너무 닮았다고 생각했다.모연정이 용정을 금방 입양했을 때 한 살 남짓했을 때였는데 옹알옹알 말도 잘하지 못했으나 지금은 3살이나 되었다. 녀석은 작은 어른처럼 또래 아이들보다 키가 크고 똑똑했다.용정의 기억력이 아주 좋은 점이 가장 의외였다.그러나 예준하가 우빈을 처음 만났을 때 우빈은 너무 어리고 말도 서툴렀다. 그러나 지금은 똑똑한 개구쟁이로 변했다.예준하는 그와 성소현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도 우빈과 용정처럼 똑똑하고 영리하기를 바랐다.“아기가 아직 어려서 잠을 많이 자거든. 좀 더 크면 우빈과 잘 놀 수 있을 거야.”우빈이 대답했다.“네, 이모도 그랬어요. 아저씨는 바쁘지 않죠? 제가 매번 이모를 보러 올 때마다 아저씨를 보는 것 같아요.”우빈의 눈에는 전태윤과 노동명 그리고 소정남이 가장 바빠 보였다.노동명은 다리가 여전히 불편해서 휠체어를 타서라도 회사로 일하러 갔다.하예정처럼 아주 바빴다.하지만 예준하는 바쁘지 않아 보였다. 만약 바쁘다면 매번 예준하를 볼 수 없었을 테니까.예준하는 웃으며 말했다.“나도 바쁘거든. 그런데 네 소현 이모가 여기로 혼자 오는 게 걱정돼서 일하던 중간에 여기로 데려다준 거야.”우빈은 작은 얼굴을 쳐들고 순진하게 말했다.“그럼 아저씨도 소현 이모에게 경호원을 보내주세요. 우리 예정 이모도 경호원들이 따라다니거든요. 태윤 이모부가 그렇게 해야만 안심하고 일할 수 했어요. 그리고 우리 이모가 나쁜 사람도 때려눕힐 수 있어요. 엄청 대단한걸요. 저는 우리 이모가 가장 좋아요.”예준하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래. 네 이모는 정말 대단하구나. 소현 이모도 싸움할 줄 아는데 난 여전히 걱정되어서 여기까지 데려다줬어. 겸사겸사 여기에서 밥 먹을 겸.”그러자 우빈은 알겠다는 표정으로 말을 건넸
이경혜가 웃었다.“맛있지? 호호호...”말하는 사이에 성소현과 예준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언니가 돌아왔나 봐요.”하예정이 말했다.우빈은 성소현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안고 미친 듯이 뛰쳐나갔다.그가 넘어질까 봐 걱정된 하예정이 얼른 일어나 따라갔다.이경혜는 따라가지 않고 소파에 앉아 고개를 돌려 하예정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이경혜의 얼굴의 웃음기는 이내 사라졌다. 그녀는 일찍 돌아간 여동생 이경희를 떠올렸다.그녀가 아직 살아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이경혜는 자신의 부모님 모두 살아계신다면 대가족이 함께 떠들썩하게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고 동생이 일찍 죽지도, 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여동생이 이 세상에 살아있다면 얼마나 좋을까!‘그 당시 어머니의 특별 비서님은 살아계실지...’이은숙의 특별 비서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다.이경혜가 쓸 수 있는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 찾았지만 결국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사람들이 그 노련한 특별 비서에 대해 기억은 없었지만, 이경혜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의 기억으로 그린 초상화가 맞을지도 모른다.이은화는 수십 년 동안 그 특별 비서를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으나 찾지 못했다.이은화가 그 비서에 대한 인상이 더 깊을 것이다.게다가 만약 살아있다고 해도 나이가 많아서 그 당시 일어난 일을 기억하고 있을지...이경혜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견고한 눈빛으로 속으로 돌아가신 엄마에게 말했다.‘엄마, 제가 반드시 엄마 대신 복수할 거예요. 우리 재산도 반드시 전부 되찾을 거에요! 엄마, 하늘나라에서 꼭 우리 예진이가 강성에서 무사히 우리의 모든 것을 되찾도록 도와주세요! 예진이는 엄마 외손녀예요. 그리고 여동생은... 제가 지켜주지 못했어요.’여동생만 생각하면 이경혜는 마음이 무거워진다.밖에 있던 성소현은 그녀를 향해 달려가는 우빈을 안아 들어 올려 두 바퀴 돌았다. 우빈은 기쁘게 웃으며 성소현에게 말했다.“이모! 더 높이 해줘요! 더요!”성소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