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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인스타를 열어보니 남편이 올린 스토리가 있었다.

스토리를 보니 남편은 환갑이 넘은 나이였지만 자태가 여전히 소나무처럼 꼿꼿하면서 늠름했고 젊을 적 모습이 조금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남편은 문학과 시니어 교수였고 윤아는 문학 평론가였다. 그들은 자주 모여 앉아 문학작품을 토론하곤 했다.

웃음기 없이 무뚝뚝한 남편은 지금 봄바람보다 더 따듯하게 웃고 있었다.

집에서는 집안일이라고는 손에 대지도 않던 아들이 윤아네 정원에서 가지를 자르는 가위로 잎사귀를 정리하고 있었다. 어찌나 열심인지 이마에 맺힌 땀도 닦을 겨를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내가 전에 잘라달라고 할 때는 고속공포증이 있다면서 거절했다.

심장이 자꾸만 아파져 허리가 점점 아래로 꺾어졌다. 눈물이 줄 끊어진 구슬처럼 흘러내렸다.

가정을 위해 바쳤던 세월이 너무 우스워 보였다. 하루도 어기지 않고 새벽 5시에 깨어나 가족들을 먹일 아침을 준비했다. 아침을 먹고 나면 얼른 설거지하고 주방을 정리해야 했다. 아들과 며느리는 출근해야 했기에 손주를 등교시키는 것도 내 몫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 장을 봐야 했고 집으로 돌아오면 방을 거두고 옷을 씻었다. 그리고는 사온 채소들을 다듬고 씻어서 점심을 준비해야 했다.

점심이 준비되면 손주 데리러 다시 학교로 갔다.

손주는 편식하는 편이라 좋아하는 음식은 동그랑땡, 부추전, 새우튀김 등 고소하고 맛있는 것들이었다.

이런 것들을 준비하려면 손이 많이 갔기에 가끔 너무 바쁘면 남편에게 아이를 데리러 가달라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남편은 미간을 찌푸리며 서재에서 책 보는 걸 방해했다고 나무랐다.

매일 팽이처럼 돌아치면서 힘들어 쓰러질 뻔한 적도 있었지만 나는 원망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돌아온 건 이런 결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있으나 마나 한 와이프일 뿐만 아니라 있으나 마나 한 어머니 같았다.

자기 위치가 어떤지 알아본 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런 인간쓰레기들에게 더는 1분 1초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내게 잘해줄 차례가 왔다. 나는 백화점으로 가서 새 옷으로 쫙 빼입었다. 돌아올 때 배가 살짝 출출해 오마카세가서 배부르게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지금까지 돈을 아끼려는 것도 있고 가족에게 건강한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 40년간 회식 자리에 나가는 것 빼고는 종일 주방에서 분주하게 돌아쳤다.

주방은 이제 더는 내 세상이 될 수 없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쇼츠를 감상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자 자리에서 일어나 물 한 모금 마시려는데 밖에서 열쇠를 돌리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이 돌아왔다.

스토리에서 본 온화한 웃음은 온데간데없었고 딱딱한 표정에 금테 안경까지 쓰고 있자 거리감이 확 느껴졌다.

남편은 나를 대할 때면 늘 오만하고 차갑기 그지없었다. 나는 그런 남편이 무서워 결혼 초기에 한 번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표현에 서투른 것뿐이지 마음속에는 내가 있다고 했다.

윤아를 대할 때면 한없이 부드러운 남편을 보고 나니 그는 타고나길 무뚝뚝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역겹고 가식적인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남편은 미간을 주무르며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꿀물 좀 타 줘. 술을 조금 마셨더니 속이 쓰리네.”

평소 같으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타 줬을 테지만 지금은 듣는 체도 하지 않았다.

내가 꿈쩍도 하지 않자 남편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지금 말하고 있잖아.”

예전에는 남편이 언짢아하는 표정을 보면 나까지 바짝 긴장했지만 오늘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시간 없으니까 알아서 타 먹어요.”

남편은 많이 놀란 것 같았다. 하긴, 이렇게 거절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오늘 왜 그래? 아들이 전화했는데도 안 받았다며.”

남편의 안색이 티 나게 굳어졌다.

“오늘 밖에서 외식했으니까 준비할 필요도 없었겠네. 하루 정도 쉬면 되는 거지?”

대꾸하려는데 아들 내외와 손주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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