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도 그만하면 팔자가 좋은 거예요. 잃어버리긴 했지만 다시 찾아왔잖아요. 게다가 다 아가씨를 잘해주셨고. 우리 지연이는, 지연이의 친아버지가 도박 빚 대신 내 남편에게 판 거예요. 그런데 우리 집에 온 뒤로 누구 하나 찾아오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도대체 부모라는 사람이 얼마나 고약하면 이렇게 애한테 독할까 싶더라고요.”권성은의 말을 들은 허연후는 가슴이 아파 났다.“하지연은 그때 몇 살이었어요? 부모님에 대한 기억은 없어요?”권성은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집에서 맞고 살았는지 아이가 우리 집에 왔을 때 한동안 말도 안
방 안에서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데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한지혜는 허연후가 돌아온 줄 알고 마지못해 걸어가서 문을 열었다.하지만 문 앞에는 허연후가 아닌 천우가 멋진 운동복 차림으로 서 있었다.천우를 본 한지혜는 순간적으로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말했다.“어머머 천우야, 이모가 보고 싶어 하는 걸 어떻게 알았어? 며칠 못 봤는데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네. 이리 와봐, 이모가 뽀뽀해 줄게.”하지연는 즉시 허리를 굽혀 천우를 품에 안고는 천우의 볼에 연속으로 입을 맞추었다.뽀뽀를 받던 천우는 목을 움츠리며 화가 난 얼굴로
전화를 끊고 한지혜는 곧바로 조수아를 바라보며 말했다.“병원 가서 하지연을 좀 보고 와야겠어. 너희 둘은 여기 있어.”“같이 가자. 아래층에 경호원도 있어, 도움 될 거야.”세 사람은 즉시 계단을 내려갔다.병원 병실.하지연은 울면서 하정국을 향해 말했다.“아빠, 저는 돈이 없어요. 있는 돈은 전부 병원비로 냈단 말이에요. 이것도 모자라는데 허 선생님께서 공짜로 치료해 주겠다고 하셔서 그나마 병원에 있을 수 있는 거예요. 아니면 저는 진작에 죽었을 거예요.”하정국은 푸르딩딩한 얼굴을 한 채 매서운 눈으로 하지연을 쏘아보며
‘오빠'라는 소리를 들은 허연후는 가슴이 칼에 찔린 것처럼 아파져 왔다.이 소리는 어린 시절 늘 꿨었던 악몽에서 여동생이 허연후를 부르던 목소리였다.꿈속에서 여동생은 늘 이렇게 억울하면서도 가련한 목소리로 오빠를 불렀었다.왜 허연후는 하지연한테 이런 비범한 느낌이 드는 걸까?허연후는 즉시 하지연을 바닥에서 안아 올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지연아, 무서워하지 마. 오빠 여기 있어.”그 소리에 눈을 천천히 떠 허연후의 얼굴을 본 하지연의 입가에는 웃음이 번졌다.그리고 다시 의식을 잃었다.허연후는 즉시 의료진들한테
권성은은 울며 말했다.“불쌍한 우리 지연이, 이런 게 가족이었다는 걸 알았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전부 다 고소할 거예요. 그 사람들이 우리 지연이를 이렇게 만든 거예요.”“그래요. 그럼 우시지만 마시고 상세한 상황을 저한테 얘기해주세요.”고인우도 즉시 공책을 꺼내 들며 말했다“조 변호사님, 저도 법을 배우고 있거든요. 기록은 제가 할게요.”조수아와 권성은은 응급 수술실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사건을 분석하고 있었고 한지혜는 천우를 데리고 응급 수술실 문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한지혜의 안색이 좋지 않자 천우는 마음
전화를 끊은 한지혜는 권성은의 곁으로 다가가 몸을 웅크린 채 물었다.“아주머니, 그 짐승 같은 놈을 누군가 와서 구해줬다네요. 혹시 평소에 누구랑 자주 연락하는지 아세요?”권성은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말했다.“불량배 같은 친구들이 많아요. 전부 다 싸움과 도박을 하는 사람들인데 본 적이 거의 없어요. 매번 그런 사람들을 집에 데리고 오면 제가 항상 지연이를 데리고 나왔거든요. 혹시나 아이한테 악심이라도 품을까 봐 두려워서.”“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한 사람만 찾으면 돼요.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쉽게 찾을 수 있어
허가은은 돈을 권성은의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말했다.“봐요, 우리 오빠가 받으라고 하잖아요. 사양하지 말고 받아요. 하지연을 잘 돌봐줘요. 그럼 전 이만 갈게요.”막 떠나려는 찰나 허가은은 몸을 일으키며 부주의로 하지연의 책가방을 땅에 떨어뜨렸다.책가방 안의 물건들이 너저분하게 떨어졌다.허가은은 연속으로 사과했다.“죄송해요. 제가 부주의로 떨어뜨렸네요. 제가 주울게요.”말을 마친 허가은은 허리를 굽혀 물건을 줍기 시작했다.문득 허가은은 곰돌이 그림이 그려져 있는 분홍색 지갑을 발견했다.허가은은 지갑을 급하게 줍더니 궁
이 말을 들은 한지혜는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을 움츠렸다.한지혜는 이 모든 게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이상했다.하지만 허재용처럼 세심하고 똑똑한 사람이 이런 일에 실수했을 리가 없었다.필경 이건 허씨 가문 핏줄에 관한 문제니까.한지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소설을 너무 많이 읽었나 봐요. 괜히 잘못 생각하고 있지 않나 싶어서요.”허연후는 웃으며 한지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역시 여우주연상답게 영화 같은 생각만 하네요. 우리 아빠와 할아버지가 허씨 가문의 핏줄을 잘못 데려올 정도로 바보는 아니
그 말을 들은 송학진은 눈이 촉촉해졌다. 그는 이 작은 아이가 그런 장면을 목격하고 그로 인해 마음에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지난 3년 동안 차서윤과 그녀의 딸이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는 아림을 꼭 끌어안고 큰 손으로 아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오늘 밤은 아저씨가 같이 있어 줄게.” 그는 아림을 다른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며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눈 감고 자. 아저씨는 계속 여기 있을 거야.”
정말 짐승 같은 놈이네!그는 바로 아이를 안심시키려고 말했다. “너희 엄마는 괜찮아. 술을 많이 마셔서 탈수된 거야. 링거 맞으면 금방 나을 거니까. 조금 있으면 엄마를 볼 수 있을 거야. 알겠지?”아림은 이해심이 깊은 아이였다.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저씨, 제가 암호를 하나 알려줄게요. 제가 문을 열어줄 때 그 암호를 말해야 문을 열어줄 거예요. 아니면 절대 문을 열지 않아요.”그 말을 듣고 송학진은 이 아이가 더욱 안쓰럽게 느껴졌다.그는 생각할 것도 없이 이 아이가 자주 혼자 집에 있을 거라는 걸 알 수
얇은 검은 천 아래로 드러난 여자의 새하얀 피부가 눈길을 끌었다. 그녀는 침대 위에서 몸을 자꾸 비틀며 저항하는 듯했지만 어쩐지 보는 이를 자극하는 모습이었다. 그 광경을 본 송학진의 눈빛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그는 곧장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눈을 가리고 있던 검은 천을 거칠게 벗겨냈다. 막 꾸짖으려던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눈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그는 멈칫했다. 그녀의 입술은 떨리고 있었으며 이를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간신히 힘을 내어 부드럽고 연약한 목소리로 애원했다. “제발... 저를 건드
송학진은 즉시 아버지를 위로하며 말했다. “아버지, 인제 그만 우세요. 우리 작은 공주님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게 우리가 수아에게 못 줬던 사랑을 아이들에게 두 배로 주면 되잖아요.” “그래! 내 돈은 전부 세 아이한테 쓰겠다. 어차피 너는 결혼도 못 할 테니 네 몫으로 남겨둘 필요도 없겠지.” “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결혼을 못 한다니요? 언젠가 아내랑 아이들까지 데리고 올지 누가 알아요?” 이 말을 듣고 육문주가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그것도 나쁘지 않지. 천우가 너랑 아림 엄마랑 잘되
송학진은 바로 일어나 송군휘를 부축하며 말했다.“아빠, 급해 마시고 제가 부축할 테니 함께 마중 나가요.”“그래. 빨리 가자.”두 사람이 별장에서 나오자 조수아와 육문주는 이미 아이를 안고 차에서 내린 뒤였다.송군휘와 송학진이 다가오는 것을 본 조수아는 순간 눈빛이 어두워지며 송학진을 불렀다.“오빠.”그리고 이내 시선을 다시 송군휘 쪽으로 돌렸다.초점 없는 눈으로 조수아와 육문주의 방향을 보고 있는 송군휘는 많이 늙은 것 같았다.송군휘는 어색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웃고 있었다.조수아는 겨우 입을 떼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천우는 조수아가 깨어나자 즉시 그녀의 품에 안기며 얼굴에 뽀뽀하고 말했다.“조금 있으면 유치원에 가야 하잖아요. 그러면 엄마를 온종일 볼 수 없으니까 지금 많이 봐두는 거예요.”조수아는 천우를 껴안고 뽀뽀를 하며 말했다.“그럼 엄마도 우리 천우 온 하루 뽀뽀 못 해주니까 많이 해줘야지.”조수아의 사랑에 천우는 행복한 얼굴로 그녀의 목을 껴안고 ‘깔깔’ 웃어댔다.마침 방문을 열고 이 화면을 본 육문주는 천천히 걸어 들어와 천우의 엉덩이를 툭툭 치고 웃으며 말했다.“뭐 하는 거야? 나 없는 사이에 내 와이프한테 몰래 뽀뽀하는
육문주의 말에 조수아는 놀라며 물었다.“언제 찾았어? 왜 말을 안 한 거야?”육문주는 예쁘장한 조수아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몇 초 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진작에 찾았었는데, 너한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말 못 했어.”워낙 민첩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던 조수아는 금방 눈치를 채고 물었다.“왜?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이야?”조수아는 육문주가 알고 있었음에도 말하지 않았다는 건, 기증자가 무조건 조수아와 관계가 있을 거로 생각했다.‘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다면 육문주가 굳이 숨길 이유가 없었겠지.’머릿속에서
천우의 진지한 모습이 웃긴 육문주는 천우의 볼을 꼬집고 웃으며 말했다.“남아일언 중천금이 맞아. 그래서 나도 지켜야 해. 네 외삼촌한테 아무하고도 말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 나도 말 못 해. 빨리 자.”육문주는 천우를 눕혀놓게 이불을 잘 덮어준 뒤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조용히 말했다.“감정적인 일은 강요할 수 없어. 네 외삼촌이 만약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면 이미 만났을 거야. 그런데 만나지 않고 혼자 지낸다는 건 아직 그 사람을 잊지 못했다는 거겠지? 우리는 방관자로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권리가 없어.
아림은 알 듯 말 듯 큰 눈을 몇 번 깜박이며 작은 두 손은 서로 손가락을 마주 대고 실망한 듯 말했다.“아쉽다. 아저씨처럼 좋은 남자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은데.”아림은 차서윤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안은 채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위로했다.“엄마, 걱정하지 마요. 내가 꼭 더 좋은 남편을 찾아줄래요.”차서윤은 웃으며 말했다.“됐어. 얼른 씻고 자. 엄마는 해야 할 일이 있어.”침대에 혼자 누워 있던 아림은 생각할수록 이해가 되지 않아 곧바로 일어나 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침대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천우는 전화를 받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