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후의 물음에 민태구는 당황했다.이런 상황에 두려움을 느꼈는지 허가은은 변명을 늘어놓았다.“나는 오빠가 감정 때문에 상처를 받았을까 봐 걱정돼서 밥을 못 먹은 거야.”허연후는 차갑게 웃으며 물었다.“진짜 그 이유 때문이야?”“진짜야. 오빠, 날 믿어줘.”민태구도 잇달아 대답했다.“아가씨는 진심으로 도련님을 생각해서 그런 거예요. 예전에 도련님이 아가씨를 구해준 적이 있으시다고 한평생 도련님한테 고마워해야 한다고 그러셨어요. 저 또한 도련님께서 빨리 이 구질구질한 감정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오길 바랐을 뿐이에요. 한지혜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앞으로는 도련님의 분부만 따를게요.”허연후는 민태구한테 가까이 다가가 천천히 몸을 숙인 뒤 차가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해고를 막을 방법이 한 가지 있긴 한데요.”“방법이라뇨?”“솔직히 말해보세요. 이번일 도대체 누가 꾸민 겁니까?”기대에 차 있던 민태구는 다시 실망한 듯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제 생각입니다. 아가씨와는 아무 상관도 없어요.”허연후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가 허가은이랑 상관있다고 물은 적 있었나요? 혹시 제 발 저린 거예요?”“아닙니다. 이번 일은 정말
허연후는 방으로 들어와 담배에 불을 붙였다.눈동자는 화 때문에 이글거렸다.허연후는 민태구가 허가은의 이름을 꺼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몰아붙인 건데, 온 가족이 직장을 잃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허가은을 지키려고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민태구가 허가은을 생각하는 마음이 정말 이 정도라고?’‘자기 가족의 생사조차 아랑곳하지 않을 정도로?’허연후은 하얀 연기가 폐를 통과하다시피 담배 한 모금을 깊이 빨아들였다.그러나 니코틴 냄새에도 허연후의 기분은 도무지 나아지지 않았다.허연후는 갈수록 허가은이 이해되지 않았다.성장 환경이
“아가씨도 그만하면 팔자가 좋은 거예요. 잃어버리긴 했지만 다시 찾아왔잖아요. 게다가 다 아가씨를 잘해주셨고. 우리 지연이는, 지연이의 친아버지가 도박 빚 대신 내 남편에게 판 거예요. 그런데 우리 집에 온 뒤로 누구 하나 찾아오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도대체 부모라는 사람이 얼마나 고약하면 이렇게 애한테 독할까 싶더라고요.”권성은의 말을 들은 허연후는 가슴이 아파 났다.“하지연은 그때 몇 살이었어요? 부모님에 대한 기억은 없어요?”권성은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집에서 맞고 살았는지 아이가 우리 집에 왔을 때 한동안 말도 안
방 안에서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데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한지혜는 허연후가 돌아온 줄 알고 마지못해 걸어가서 문을 열었다.하지만 문 앞에는 허연후가 아닌 천우가 멋진 운동복 차림으로 서 있었다.천우를 본 한지혜는 순간적으로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말했다.“어머머 천우야, 이모가 보고 싶어 하는 걸 어떻게 알았어? 며칠 못 봤는데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네. 이리 와봐, 이모가 뽀뽀해 줄게.”하지연는 즉시 허리를 굽혀 천우를 품에 안고는 천우의 볼에 연속으로 입을 맞추었다.뽀뽀를 받던 천우는 목을 움츠리며 화가 난 얼굴로
전화를 끊고 한지혜는 곧바로 조수아를 바라보며 말했다.“병원 가서 하지연을 좀 보고 와야겠어. 너희 둘은 여기 있어.”“같이 가자. 아래층에 경호원도 있어, 도움 될 거야.”세 사람은 즉시 계단을 내려갔다.병원 병실.하지연은 울면서 하정국을 향해 말했다.“아빠, 저는 돈이 없어요. 있는 돈은 전부 병원비로 냈단 말이에요. 이것도 모자라는데 허 선생님께서 공짜로 치료해 주겠다고 하셔서 그나마 병원에 있을 수 있는 거예요. 아니면 저는 진작에 죽었을 거예요.”하정국은 푸르딩딩한 얼굴을 한 채 매서운 눈으로 하지연을 쏘아보며
‘오빠'라는 소리를 들은 허연후는 가슴이 칼에 찔린 것처럼 아파져 왔다.이 소리는 어린 시절 늘 꿨었던 악몽에서 여동생이 허연후를 부르던 목소리였다.꿈속에서 여동생은 늘 이렇게 억울하면서도 가련한 목소리로 오빠를 불렀었다.왜 허연후는 하지연한테 이런 비범한 느낌이 드는 걸까?허연후는 즉시 하지연을 바닥에서 안아 올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지연아, 무서워하지 마. 오빠 여기 있어.”그 소리에 눈을 천천히 떠 허연후의 얼굴을 본 하지연의 입가에는 웃음이 번졌다.그리고 다시 의식을 잃었다.허연후는 즉시 의료진들한테
권성은은 울며 말했다.“불쌍한 우리 지연이, 이런 게 가족이었다는 걸 알았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전부 다 고소할 거예요. 그 사람들이 우리 지연이를 이렇게 만든 거예요.”“그래요. 그럼 우시지만 마시고 상세한 상황을 저한테 얘기해주세요.”고인우도 즉시 공책을 꺼내 들며 말했다“조 변호사님, 저도 법을 배우고 있거든요. 기록은 제가 할게요.”조수아와 권성은은 응급 수술실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사건을 분석하고 있었고 한지혜는 천우를 데리고 응급 수술실 문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한지혜의 안색이 좋지 않자 천우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