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혜는 까맣고 반짝이는 눈으로 허연후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지혜는 이 일을 허연후가 꾸민 일이라고 의심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한지혜는 허연후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비록 두 사람은 자주 싸우기는 했지만, 한지혜는 허연후가 이런 추잡한 짓을 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한지혜가 눈을 내리깔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허연후는 갑자기 웃기 시작하더니 차가운 손끝으로 한지혜의 보들보들한 볼을 몇 번 쿡쿡 찌르며 말했다.“왜 대답이 없어요? 날 믿고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게 그렇게 싫어요? 한지혜
허연후의 물음에 민태구는 당황했다.이런 상황에 두려움을 느꼈는지 허가은은 변명을 늘어놓았다.“나는 오빠가 감정 때문에 상처를 받았을까 봐 걱정돼서 밥을 못 먹은 거야.”허연후는 차갑게 웃으며 물었다.“진짜 그 이유 때문이야?”“진짜야. 오빠, 날 믿어줘.”민태구도 잇달아 대답했다.“아가씨는 진심으로 도련님을 생각해서 그런 거예요. 예전에 도련님이 아가씨를 구해준 적이 있으시다고 한평생 도련님한테 고마워해야 한다고 그러셨어요. 저 또한 도련님께서 빨리 이 구질구질한 감정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오길 바랐을 뿐이에요. 한지혜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앞으로는 도련님의 분부만 따를게요.”허연후는 민태구한테 가까이 다가가 천천히 몸을 숙인 뒤 차가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해고를 막을 방법이 한 가지 있긴 한데요.”“방법이라뇨?”“솔직히 말해보세요. 이번일 도대체 누가 꾸민 겁니까?”기대에 차 있던 민태구는 다시 실망한 듯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제 생각입니다. 아가씨와는 아무 상관도 없어요.”허연후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가 허가은이랑 상관있다고 물은 적 있었나요? 혹시 제 발 저린 거예요?”“아닙니다. 이번 일은 정말
허연후는 방으로 들어와 담배에 불을 붙였다.눈동자는 화 때문에 이글거렸다.허연후는 민태구가 허가은의 이름을 꺼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몰아붙인 건데, 온 가족이 직장을 잃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허가은을 지키려고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민태구가 허가은을 생각하는 마음이 정말 이 정도라고?’‘자기 가족의 생사조차 아랑곳하지 않을 정도로?’허연후은 하얀 연기가 폐를 통과하다시피 담배 한 모금을 깊이 빨아들였다.그러나 니코틴 냄새에도 허연후의 기분은 도무지 나아지지 않았다.허연후는 갈수록 허가은이 이해되지 않았다.성장 환경이
“아가씨도 그만하면 팔자가 좋은 거예요. 잃어버리긴 했지만 다시 찾아왔잖아요. 게다가 다 아가씨를 잘해주셨고. 우리 지연이는, 지연이의 친아버지가 도박 빚 대신 내 남편에게 판 거예요. 그런데 우리 집에 온 뒤로 누구 하나 찾아오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도대체 부모라는 사람이 얼마나 고약하면 이렇게 애한테 독할까 싶더라고요.”권성은의 말을 들은 허연후는 가슴이 아파 났다.“하지연은 그때 몇 살이었어요? 부모님에 대한 기억은 없어요?”권성은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집에서 맞고 살았는지 아이가 우리 집에 왔을 때 한동안 말도 안
방 안에서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데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한지혜는 허연후가 돌아온 줄 알고 마지못해 걸어가서 문을 열었다.하지만 문 앞에는 허연후가 아닌 천우가 멋진 운동복 차림으로 서 있었다.천우를 본 한지혜는 순간적으로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말했다.“어머머 천우야, 이모가 보고 싶어 하는 걸 어떻게 알았어? 며칠 못 봤는데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네. 이리 와봐, 이모가 뽀뽀해 줄게.”하지연는 즉시 허리를 굽혀 천우를 품에 안고는 천우의 볼에 연속으로 입을 맞추었다.뽀뽀를 받던 천우는 목을 움츠리며 화가 난 얼굴로
전화를 끊고 한지혜는 곧바로 조수아를 바라보며 말했다.“병원 가서 하지연을 좀 보고 와야겠어. 너희 둘은 여기 있어.”“같이 가자. 아래층에 경호원도 있어, 도움 될 거야.”세 사람은 즉시 계단을 내려갔다.병원 병실.하지연은 울면서 하정국을 향해 말했다.“아빠, 저는 돈이 없어요. 있는 돈은 전부 병원비로 냈단 말이에요. 이것도 모자라는데 허 선생님께서 공짜로 치료해 주겠다고 하셔서 그나마 병원에 있을 수 있는 거예요. 아니면 저는 진작에 죽었을 거예요.”하정국은 푸르딩딩한 얼굴을 한 채 매서운 눈으로 하지연을 쏘아보며
‘오빠'라는 소리를 들은 허연후는 가슴이 칼에 찔린 것처럼 아파져 왔다.이 소리는 어린 시절 늘 꿨었던 악몽에서 여동생이 허연후를 부르던 목소리였다.꿈속에서 여동생은 늘 이렇게 억울하면서도 가련한 목소리로 오빠를 불렀었다.왜 허연후는 하지연한테 이런 비범한 느낌이 드는 걸까?허연후는 즉시 하지연을 바닥에서 안아 올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지연아, 무서워하지 마. 오빠 여기 있어.”그 소리에 눈을 천천히 떠 허연후의 얼굴을 본 하지연의 입가에는 웃음이 번졌다.그리고 다시 의식을 잃었다.허연후는 즉시 의료진들한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