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혜는 한껏 힘없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허연후 씨, 그냥 내려줘요. 혼자 걸어갈 수 있어요.”허연후는 싱긋 미소를 짓더니 그녀에게 말했다.“제가 이 기회에 지혜 씨한테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요? 걱정하지 말아요. 지혜 씨가 그날인 것도 알고 그 정도로 굶주린 인간이 아니거든요. 제가 이미 퀵으로 약을 집에 배달 시켰놨는데 가서 링거라도 맞고 있어요.”그의 말을 들은 한지혜는 그제야 한시름 놓이는 것 같았다.10여 분 뒤 허연후는 한지혜를 안고 집안에 들어섰다.수액과 약은 이미 배달되어 있어 허연후는 능숙한 솜씨
그걸 본 허연후는 자기도 모르게 두 주먹을 꽉 쥐었다.예전에 허가은이 아무리 어리광을 부린다고 해도 그저 무시하면 지나갈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이런 독한 음모까지 꾸미다니.바로 이때, 허연후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그는 발신인을 본 순간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수화기 너머에서는 허가은의 애교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오빠, 어디야? 왜 아직도 안 들어와?”허연후는 애써 감정을 추스른 뒤 낮은 소리로 답했다.“지금 지혜 언니 쪽에 일이 생겨서 갈 수 없어.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그러자 허가은이
집사는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아가씨만 잘 지낸다면 이런 고생쯤은 아무것도 아니에요.”다른 한편.얼마나 잔 건지 한지혜가 눈을 떴을 땐 이미 커튼 사이로 햇빛이 새어 들어왔다.손에 꽂혀 있던 링거도 보이지 않았다.허연후도 방에 없고.한지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컨디션이 아주 좋아진 것 같았다.방에서 나오자 맛있는 음식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한지혜가 좋아하는 만둣국 냄새였다.인기척을 들은 허연후는 주방에서 뛰쳐나와 한지혜 곁으로 천천히 걸어갔다.허연후는 몸을 숙여 한지혜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
한지혜는 허연후를 노려보더니 숟가락을 뺏으며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다시는 그럴 일 없어요.”“다시는 어떤 일이요? 다시는 날 안 좋아하는 일이요? 그럼, 예전에는 날 좋아했다는 거죠?”허연후는 몸을 앞으로 치우치며 잘생긴 얼굴을 한지혜의 눈앞에 가져다 댔다.웃음을 머금고 있는 요염한 눈에는 음탕하면서도 다정한 눈빛이 담겨있었다.한지혜는 눈초리를 치켜세우며 담담하게 말했다.“다시는 먹여줄 필요 없다고요. 그리고 예전에 좋아했는지 아닌지 뭐가 중요해요? 어차피 지금은 아닌데.” 말을 마친 한지혜가 고개를 숙여 숟가락에
한지혜가 허연후를 욕하는 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자신이 오해했음을 알아차렸다.신하준은 가볍게 문을 몇 번 두드렸다.집안에서 한지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엎드린 채로 움직이지 말아요.”한지혜는 연고를 내려놓고 달려가 문을 열었다.신하준을 본 한지혜는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오셨어요.”신하준은 손에 든 꽃을 한지혜에게 건네주며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지혜야, 미안해. 이 꽃은 사과의 의미로 사 온 거야. 우리 엄마 때문에 화난 마음 풀었으면 좋겠어. 엄마가 너한테 막말하고 손찌검까지 한 거 내가 대신
한지혜는 까맣고 반짝이는 눈으로 허연후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지혜는 이 일을 허연후가 꾸민 일이라고 의심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한지혜는 허연후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비록 두 사람은 자주 싸우기는 했지만, 한지혜는 허연후가 이런 추잡한 짓을 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한지혜가 눈을 내리깔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허연후는 갑자기 웃기 시작하더니 차가운 손끝으로 한지혜의 보들보들한 볼을 몇 번 쿡쿡 찌르며 말했다.“왜 대답이 없어요? 날 믿고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게 그렇게 싫어요? 한지혜
허연후의 물음에 민태구는 당황했다.이런 상황에 두려움을 느꼈는지 허가은은 변명을 늘어놓았다.“나는 오빠가 감정 때문에 상처를 받았을까 봐 걱정돼서 밥을 못 먹은 거야.”허연후는 차갑게 웃으며 물었다.“진짜 그 이유 때문이야?”“진짜야. 오빠, 날 믿어줘.”민태구도 잇달아 대답했다.“아가씨는 진심으로 도련님을 생각해서 그런 거예요. 예전에 도련님이 아가씨를 구해준 적이 있으시다고 한평생 도련님한테 고마워해야 한다고 그러셨어요. 저 또한 도련님께서 빨리 이 구질구질한 감정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오길 바랐을 뿐이에요. 한지혜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앞으로는 도련님의 분부만 따를게요.”허연후는 민태구한테 가까이 다가가 천천히 몸을 숙인 뒤 차가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해고를 막을 방법이 한 가지 있긴 한데요.”“방법이라뇨?”“솔직히 말해보세요. 이번일 도대체 누가 꾸민 겁니까?”기대에 차 있던 민태구는 다시 실망한 듯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제 생각입니다. 아가씨와는 아무 상관도 없어요.”허연후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가 허가은이랑 상관있다고 물은 적 있었나요? 혹시 제 발 저린 거예요?”“아닙니다. 이번 일은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