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아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연성빈을 바라봤다.“근데 왜 들킬까 봐 두려운 사람처럼 자꾸 저보다 일찍 온 거에요? 세리 언니한테 물어봐도 모르는 눈치던데. 제 아이를 보러 와주는 건 고마운데 굳이 이렇게 숨긴 이유가 뭐예요?”조수아의 통찰력 있는 분석에 연성빈은 그럴듯한 핑계가 떠오르지 않았다.연성빈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우리는 네가 허튼 생각 할까 봐 그런 거야. 네가 육 대표님과 안 좋게 헤어졌는데 내가 부탁을 들어주는 걸 알게 되면 네가 나를 미워할까 봐 계속 말을 못한 거야.”연성빈이 아무리 해명해
주지훈이 천우에게 한 말이 2년 전 육문주가 아이에게 했던 말과 똑같았다.육문주는 허구한 날 엎드려 조수아를 배를 붙잡고 매일 아이에게 경고하던 일을 조수아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그는 조수아의 뱃속에 떡하니 자리 잡은 아이를 보며 나중에 태어나면 엉덩이부터 때려주겠다고 겁을 줬다. 하지만 천우는 세리의 아이였고 2년 전 세리와 연성빈은 주지훈과 아예 모르는 사이였다.모든 의혹이 비등점에 도달한 포트 안의 물처럼 금방이라도 흘러넘칠 것 같았다.조수아가 사실을 알아차릴 수 없도록 무언가가 두 눈을 가리는 듯했다.조수아는
모자 사이에 마음이 통하기라도 한 듯 천우는 바로 조수아의 속마음을 읽어냈다.결국 주지훈은 천우와 솜사탕을 사러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네가 방금 한 말 똑똑히 기억해 둬. 지금 수아 씨한테 솜사탕 사주러 가는 거야. 너는 한 입도 먹으면 안 돼.”“알겠어요.”잠시 후, 세리와 벤치에 앉아 얘기를 나누던 조수아는 문득 멀리서 두 사람의 그림자가 시선에 들어왔다.주지훈의 품에 안긴 천우는 한쪽 손에 핑크색 솜사탕을 들고 있었다.천우의 햇살처럼 부드러운 미소는 조수아의 마음마저 따뜻하게 했다.주지훈은 중저음 보이스로 입을
천우는 말하면서 작은 손을 조수아의 두 볼에 얹었다.진지하면서도 경건한 천우의 모습에 조수아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조수아는 울먹거리며 천우에게 물었다.“내가 진짜 너를 내 아이로 생각해도 돼?”천우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물론이죠. 저희 엄마가 화낼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제가 이미 엄마와 동의를 구했어요. 엄마도 흔쾌히 허락했고요.”우려하던 것들이 모두 사라지자 조수아는 천우를 꽉 끌어안았다.잃은 아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온종일 슬픔에 잠겨 있었던 조수아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사진첩을 한 페이지씩 넘길 때마다 주지훈은 가슴이 아팠다.천우의 성장 과정이 담겨있을 뿐만 아니라 조수아와 천우가 얼마나 애틋한 사이인지 보아낼 수 있는 사진들이었다.이런 요소들이 모여 주지훈의 가슴에 상처를 내기에 충분했다.한편, 천우는 잔뜩 신나서 주지훈의 커다란 손을 툭툭 건드렸다.“먼저 보고 있어요. 저는 엄마가 요리하는 걸 보러 갈게요.”이윽고 천우는 짧은 다리로 주방에 총총 뛰어갔다.그는 작은 의자를 옮겨와 조수아 곁에 앉아 턱을 괸 채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귀여운 천우의 모습에 조수아는 마음이 몽글몽
밤낮으로 그리워하던 얼굴을 드디어 보게 된 박주영은 마치 꿈꾸는 것 같았다.그리고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인 채 그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정말 우리 문주야? 내 아들 문주가 맞아?”육문주의 눈시울도 덩달아 뜨거워졌다.박주영이 자기 어머니란 사실을 알게 된 후 이번 처음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육문주는 다정하게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답했다.“어머니, 아들 육문주가 이제야 인사드려요.”그의 확신에 찬 말에 박주영은 더는 참지 못하고 뜨거운 눈물을 마구 쏟아냈다.그리고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래. 우리 아들, 이 어머니
“제 생각에는 이게 그 사람한테는 매우 중요한 물건일 겁니다. 아니면 진작에 저희 할아버지를 죽였을 테니까요.”자기 아버지가 그토록 위험한 곳에 갇혀있다는 생각에 박주영은 자기도 모르게 이를 꽉 깨물었다.“박경준, 그 빌어먹을 놈 때문에 우리 가족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고생하고 있구나. 내가 반드시 이 수모를 그놈에게 되갚아주고 말겠어!”“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꼭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요. 어머니랑 수아가 여태껏 받았던 고통은 제가 두 배로 갚아줄 겁니다.”이때 박서준이 테이블 위의 보석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문득 무
주지훈은 멍한 얼굴로 서 있는 조수아에게 꽃을 건네주며 활짝 웃었다.하지만 조수아는 지금 이 상황이 매우 어색했다. 그녀는 꽃다발을 건네받은 뒤 담담하게 말했다.“연인인 척 연기할 뿐인데 이렇게까지 오버할 필요가 있나요? 중요한 장소에서만 협조해 주시면 돼요.”하지만 주지훈은 들은 체도 안 하고 싱긋 미소를 지으며 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음식을 테이블 위에 올려다 놓았다.그리고 금방 잠에서 깬 천우를 품에 안고 다정하게 말했다.“연기니까 평소에 잘 연습해 놓아야죠. 그러다가 결정적일 때 실수한단 말이에요. 안 그래, 아가야
이미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던 송학진한테 차서윤의 말은 마치 휘발유처럼 그를 더욱 불타오르게 했다.송학진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선물?”차서윤은 고개를 들어 그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하고 말했다.“먼저 씻어요. 조금 후면 알게 될 거예요.”송학진은 차서윤의 코를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여보, 내가 뭘 원하는지 잘 알잖아. 저쪽 칸에서 씻을 테니까 자기가 여기서 씻어. 씻고 나왔을 때 선물이 날 실망하게 하지 않길 바랄게.”“그럴 일 없어요.”차서윤은 송학진을 방에서 밀어내고 물건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송학진
“외삼촌이 그럴 리가 없어요. 외숙모와 아림이도 나 때문에 만난 거잖아요. 만약 유치원에서 내가 아림의 치마를 적시지 않았다면 외삼촌이 외숙모를 만날 일이 있었을까요?”천우의 말을 잠깐 생각해보던 육문주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만약 천우가 아니었다면 송학진은 어쩌면 아직도 솔로였을 수도 있었다.갑자기 뿌듯해진 육문주는 잔을 들고 자리에 있는 형제들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너희들 우리 아들한테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니야? 천우가 아니었으면 우리 이 축하주를 언제 마셨을지도 모를 일이야.”곽명원은 웃으며 말했다.“천우가 아니었
박서준은 웃으며 말했다.“배은망덕한 건 아닌 것 같네. 보살펴준 보람이 있어. 왔던 김에 가족들이랑 며칠 시간 좀 보내다 갈 거야.”박서준의 말에 곽서연은 즉시 활짝 웃으며 말했다.“정말요? 그럼 우리 그동안 같이 있을 수 있는 거예요?”박서준은 곽서연을 흘려보며 말했다.“삼촌이랑 헤어지는 게 그렇게 싫어?”“네. 매일 매일 삼촌이랑 같이 있고 싶어요.”“왜 이렇게 달라붙는 거야? 천우보다 더하네?”곽서연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삼촌은 내가 달라붙는 게 싫어요?”박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싫다고 그러면 또 울
곽서연과 박서준이 동시에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곽명원이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박서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형네 집 공주님께서 발을 삐끗해서 울고 계시잖아.”곽명원은 별생각 없이 곽서연 곁으로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그녀의 발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마구잡이로 잡고 돌리는 턱에 아파 난 곽서연은 바로 소리를 질렀다.“아! 삼촌 살살 좀 해요.”곽서연은 참을 수 없는 아픔에 고여있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곽명원은 그녀를 한번 쳐다보고 웃으며 말했다.“그렇게 아프다고? 어릴 때처럼 아픈 척하
송학진의 차가운 태도에 화가 난 강한나는 눈시울을 붉히고 입술을 깨물며 경호원을 바라보고 말했다.“내 발로 나갈 테니까 비켜요.”말을 마친 강한나는 도도한 걸음으로 이곳을 떠났다. 많은 사람이 뒤에서 그녀에게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렸다.모든 것이 끝나고 송학진은 차서윤을 데리고 방으로 돌아와 예복을 갈아입었다.송학진은 차서윤의 붉어진 눈을 보더니 그녀의 뺨을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서윤아, 이제 내가 있으니까 누구도 감히 널 괴롭히지 못할 거야.”송학진은 차서윤이 이십여 년간 저런 아버지 밑에서 보내다 겨우 그
차경훈은 한순간 얼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차서윤이 모든 증거를 모으고 있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차경훈은 울며 빌었다.“서윤아, 아빠가 그때는 정신이 없었어. 앞으로 안 그럴 테니까 고소만 하지 말아줘. 제발 부탁이야.”차서윤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고소뿐만 아니라 부녀지간의 관계까지 끊을 거니까 앞으로 다시는 내 인생에 끼어들지 마세요. 더는 꿈에서조차 보기 싫으니까. 우리 이젠 죽을 때까지 연락하지 말죠.”차서윤의 말에 경호원은 차경훈을 강제로 현장에서 끌고 나갔다.차서윤의 완강한 태도에 겁을
그 말을 들은 차서윤의 눈에서 눈물이 줄 끊어진 구슬처럼 양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송학진의 볼에 입맞춤하고 눈물을 머금은 채 결심을 내렸다.“감사해요. 근데 저는 학진 씨가 다른 사람들의 오해를 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 마음속의 흉터를 모든 사람에게 공개해야 한다 해도 학진 씨를 위해서 뭐든 할 거예요.”말을 마친 차서윤은 신부 들러리로부터 핸드폰을 가지고 송학진에게 건네줬다.“제 핸드폰과 스크린을 연결해 주세요.”그 말은 들은 송학진은 차서윤이 무슨 일을 하려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이렇게 행복한 순간에 그녀에게 무수한 악몽을 남겨준 악마 같은 남자를 보자 차서윤은 지금 자신의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분노와 슬픔이 있었고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감옥에 있어야 할 차경훈이 왜 멀쩡하게 결혼식장에 나타난 것일까.송학진이 재빨리 다가와서 그녀를 품에 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해 줬다.“괜찮아. 내가 사람을 불러서 저 사람을 감옥으로 돌려보낼게.”그가 매니저에게 눈치를 보내자 매니저는 사람을 불러와서 송학진을 제압했다. 경호원들에게 잡힌 차경훈은 그들의 손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네가 안고 자고 싶다면 될 일이야? 네가 그러다가 이모부한테 쫓겨 나오면 내 잘못 아니다.”둘째와 셋째는 아빠와 천우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고 신바람이 나서 쉴 새 없이 옹알이했다.육문주는 셋째를 끌어안고 볼 뽀뽀를 하며 행복한 얼굴로 말했다.“그래도 딸이 좋아. 역시 우리 보배 딸이 제일이야. 너희 오빠 한번 봐봐. 고작 3살밖에 안 됐는데 아빠 엄마는 안중에도 없고 와이프를 입에 붙이고 살잖아.”셋째는 아빠의 따뜻한 품에서 웃음꽃을 피우고 입을 비죽이며 뭐라 말했다. 아기의 귀여운 모습에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