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한 차림에도 성수현의 화려한 이목구비를 가릴 수 없었다.그중에도 유독 눈가에 있는 빨간 점이 조수아를 더욱 놀라게 했다.그녀를 처음 본 순간 조수아는 분명 이 여자를 어디선가 봤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조수아는 아무런 내색하지 않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선생님, 안녕하세요. 아빠의 수술을 의뢰하고 싶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어요.”성수현은 자애로운 미소로 그들을 맞이했다.“제가 얼른 짐을 쌀 테니 먼저 안으로 들어와 목을 추리고 계세요. 모든 준비를 마치면 바로 떠나죠.”그들은 성수현의 뒤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병실 안은 순간 조용해져 서로의 숨소리만 들릴 뿐이었다.성수현은 눈시울을 붉히며 조병윤을 한참 동안 바라만 봤다.그녀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천천히 조병윤에게 다가갔다.가는 손이 조병윤의 손목에 닿자 눈물이 기다렸다는 듯 왈칵 쏟아졌다.뜨거운 눈물이 조병윤의 팔에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성수현의 이상한 반응에 조수아는 드디어 그녀를 어디서 봤던 건지 어렴풋이 기억났다.조병윤의 사진첩에는 줄곧 한 여인의 사진이 뒤편에 숨겨져 있었다.조수아의 기억이 맞다면 그 사진 속 여인이 바로 성수현이었다.조병윤이 고이 간직
상황을 지켜보던 조수아는 휴지를 꺼내 조병윤의 눈물을 닦아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아빠,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거 알아. 그러니까 빨리 깨나. 우리 모두 아빠가 깨나길 기다리고 있어.”조병윤은 조수아의 말에 응하는 듯 눈을 파르르 떨었다.성수현은 가방에서 침을 꺼내 조병윤의 머리에 꽂았다.한 시간 후, 성수현은 침을 다시 뽑아냈다.조수아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성수현을 바라보며 물었다.“선생님, 저의 아빠는 좀 어때요?”성수현은 침을 도로 가방에 차곡차곡 넣으며 말했다.“예상한 것 보다 상태가 훨씬 좋아요
강지영은 말 한마디로 육문주가 그녀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두터운지 나타낸 동시에 조수아를 경멸했다.조병윤을 병문안하는 일 마저 직접 하지 않는 육문주였다.강지영의 여우 같은 속셈을 조수아는 바로 알아차렸다.조수아는 피식 웃으며 핸드폰을 꺼내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강지영을 바라봤다.“그래요? 아직도 저의 아빠가 잘해줬던 걸 기억하고 있다니, 제가 직접 문주 씨한테 전화해서 감사 인사라도 해야겠네요.”이윽고 조수아는 전화를 거는 시늉을 하자 강지영은 서둘러 그녀를 말렸다.“지금 대표님께서 회의 중이라 바쁘실 거예요. 괜히
갑작스러운 플러팅에 조수아는 눈앞에 남자가 순간 육문주로 보였다.조수아는 눈을 비비적대고 눈앞의 남자를 자세히 들여다본 후에야 바보 같은 생각이 사라졌다.그때, 조수아의 핸드폰이 벨을 울렸다.수신인이 천우인 것을 확인한 조수아는 얼른 전화를 받았다.방금까지도 얼음장처럼 차갑던 얼굴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온화한 미소가 자리 잡았다.심지어 목소리도 한결 부드러워졌다.“아가야.”조수아의 아가라는 소리에 천우는 기뻐서 짧은 다리로 침대 위에서 펑펑 뛰었다.이내 천우는 겨우 흥분을 가라앉히고 작은 입으로 쫑알거렸다.“이모,
조수아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연성빈을 바라봤다.“근데 왜 들킬까 봐 두려운 사람처럼 자꾸 저보다 일찍 온 거에요? 세리 언니한테 물어봐도 모르는 눈치던데. 제 아이를 보러 와주는 건 고마운데 굳이 이렇게 숨긴 이유가 뭐예요?”조수아의 통찰력 있는 분석에 연성빈은 그럴듯한 핑계가 떠오르지 않았다.연성빈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우리는 네가 허튼 생각 할까 봐 그런 거야. 네가 육 대표님과 안 좋게 헤어졌는데 내가 부탁을 들어주는 걸 알게 되면 네가 나를 미워할까 봐 계속 말을 못한 거야.”연성빈이 아무리 해명해
주지훈이 천우에게 한 말이 2년 전 육문주가 아이에게 했던 말과 똑같았다.육문주는 허구한 날 엎드려 조수아를 배를 붙잡고 매일 아이에게 경고하던 일을 조수아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그는 조수아의 뱃속에 떡하니 자리 잡은 아이를 보며 나중에 태어나면 엉덩이부터 때려주겠다고 겁을 줬다. 하지만 천우는 세리의 아이였고 2년 전 세리와 연성빈은 주지훈과 아예 모르는 사이였다.모든 의혹이 비등점에 도달한 포트 안의 물처럼 금방이라도 흘러넘칠 것 같았다.조수아가 사실을 알아차릴 수 없도록 무언가가 두 눈을 가리는 듯했다.조수아는
모자 사이에 마음이 통하기라도 한 듯 천우는 바로 조수아의 속마음을 읽어냈다.결국 주지훈은 천우와 솜사탕을 사러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네가 방금 한 말 똑똑히 기억해 둬. 지금 수아 씨한테 솜사탕 사주러 가는 거야. 너는 한 입도 먹으면 안 돼.”“알겠어요.”잠시 후, 세리와 벤치에 앉아 얘기를 나누던 조수아는 문득 멀리서 두 사람의 그림자가 시선에 들어왔다.주지훈의 품에 안긴 천우는 한쪽 손에 핑크색 솜사탕을 들고 있었다.천우의 햇살처럼 부드러운 미소는 조수아의 마음마저 따뜻하게 했다.주지훈은 중저음 보이스로 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