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은 빠른 속도로 병실에 달려와 검사를 진행하고는 조수아에게 말했다.“환자분이 운이 나쁘게도 심부전이 생겨 지금 당장 수술실로 옮겨야 합니다.”그 말을 들은 조수아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2년간 조병윤은 여러 차례 응급처치를 받았다.의사가 이렇게 부정적인 말을 내뱉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조수아는 간절한 눈빛으로 의사를 바라보며 팔을 잡아당겼다.“아빠가 의식불명일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했었잖아요. 근데 왜 지금은 말이 달라요?”“환자분이 원래 심장이 좋지 않고 하루 종일 누워 있어 심장이 빠른 속도로 쇠약
한지혜는 서둘러 조수아를 다독였다.“수아야, 그 유명한 의사 있지 않아? 우리가 며칠 안에 그 의사를 찾으면 아저씨를 살릴 수도 있지 않을까?”허연후는 미간을 찌푸렸다.“우리가 2년 동안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 찾았는데도 못 찾았어요. 근데 어떻게 며칠 만에 찾을 수 있겠어요?”한지혜는 허연후를 매섭게 노려보았다.“연후 씨, 그 입 좀 다물어요. 위로해도 모자란 판에, 꼭 사람을 그렇게 짓밟아야겠어요?”“저는 의사라서 사실만 말해야 해요. 수아 씨가 슬퍼한다고 헛된 희망을 심어준다고 뭐가 달라지지 않잖아요. 나중에 그 희망
꿈에서만 들을 수 있었던 엄마라는 호칭에 조수아는 순간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조수아는 송학진의 품에 기대 목 놓아 울었다.잃은 아이에 대한 그리움이 북받쳐 올랐다.2년간 조수아는 슬픈 감정을 참으려 일부러 아이의 생각을 하지 않았다.일에 모든 정신을 쏟아부은 조수아는 자신이 이미 아이의 일을 잊었다고 생각했다.천우가 앳된 목소리로 그녀를 엄마라고 부르는 순간 오랫동안 세워두었던 방어벽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졌다.천우가 슬퍼하는 조수아를 달래려고 하는 소리인 것도, 천우가 그녀의 아이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지금
여태까지 육문주는 행사에 참여할 때마다 진영택을 줄곧 데리고 갔었다.처음으로 강지영을 행사에 데리고 가는 것이었기에 제대로 준비해야 했다.사무실에서 나온 후, 강지영은 바로 한곳으로 전화를 걸었다.강지영의 보고를 듣고 박경준은 의미심장하게 웃고는 비서에게 말했다.“조수아한테 초청장을 보내라고 서준이한테 전해요. 두 사람이 서로한테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게 맞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요.”다른 한편, 조수아는 계속 조병윤의 곁을 지켰다.한지혜는 먹을 것을 사 들고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강소연과 허연후가 함께 사무
육문주는 검은색 옷차림으로 볼캡을 푹 눌러쓰고 검은색 마스크를 낀 채 병실에 나타났다.그는 천천히 조수아 곁으로 다가갔다.한껏 초췌해진 조수아의 얼굴을 한참 동안 쳐다본 육문주는 끝내 참지 못하고 그녀의 하얀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그리웠던 조수아를 이렇게 다시 마주하니 마음이 칼로 찌르듯 아팠다.그의 눈가는 어느새 촉촉해져서 목구멍은 가시가 걸린 듯 턱턱 막혔다.그는 목소리를 잔뜩 내리깔고 중얼거렸다.“수아야, 미안해.”할 수 있는 말이라곤 미안하다는 말뿐이었다.육문주는 유능하기로 소문난 의사를 찾아 조병윤을 다
간호사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조수아가 병실에서 나왔다.간호사는 조수아를 발견하고 얼른 상황을 설명했다.“변호사님, 어서 이쪽으로 와보세요. 이분이 자꾸 환자분을 데려가려고 해요.”조수아는 놀란 기색도 없이 차가운 눈빛으로 장현숙을 쳐다봤다.“아빠가 심장 수술을 두 번이나 받는 동안 얼굴 한번 비추지 않더니 수술을 끝내고 회복한 지 얼마 안 되는 사람 찾아와서 자극하는 바람에 아빠는 목숨을 잃을 뻔했어요. 아빠가 혼수상태인 동안 조씨 가문에서 병문안을 온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근데 아빠가 곧 죽어가니까 찾아온 이
조수아는 조병윤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인 것을 바로 포착했다.그녀는 한걸음에 달려가 조병윤의 손을 뚫어지게 쳐다봤다.“천우야, 할아버지한테 다시 말을 걸어봐.”잔뜩 놀란 조수아를 보고 천우도 뭔가 눈치를 챈 듯 보였다.천우는 의자를 딛고 침대 위로 올라가더니 조병윤의 목을 부둥켜안고 말을 걸었다.“할아버지, 저 할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요. 얼른 일어나서 저랑 놀아주세요. 네?”천우는 말하면서 조병윤의 볼에 뽀뽀했다.그러자 자극을 받았는지 조병윤은 또 손가락을 움직였다.처음엔 우연이지만 우연이 반복되면 더 이상 우연
다음날.조수아와 주지훈은 제로그룹 회장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했다.그녀가 회장실 문을 똑똑 두드리고 문을 열자 키가 180은 훌쩍 넘어 보이는 남자가 창가에 서 있었다.남자는 하얀 티셔츠에 회색 슬랙스 차림으로 나긋하게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조수아가 들어오자 남자의 눈은 잠깐 반짝거리다가 이내 다시 퀭해졌다.그는 담배를 끄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조수아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그의 허스키한 목소리에는 부드러움이 섞여 있었다.“조 변호사님, 워낙 유명하셔서 말씀 많이 들었어요.”조수아는 공손하게 손을 내밀고 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