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연성빈의 체취를 다시 맡은 세리는 자기도 모르게 두 눈을 꼭 감았다.민우를 임신하면서 입덧이 심할 때, 그리고 낳는 순간 너무 아파 고통스러울 때 그녀는 몇 번이고 연성빈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하지만 헤어지면서 그가 했던 모진 말들이 머릿속에 떠올라 그녀는 매번 생각을 접고 포기했었다.그 절망스러웠던 기억이 다시 떠올라 연성빈을 밀쳐내려던 순간 그의 전화기가 울렸다.그리고 차 안에 민우의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아빠, 제가 알려준 대로 엄마한테 사드렸어요? 아마 에그타르트를 본 순간 아빠를 용서할 거예요
그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 조수아 쪽으로 다가가 그녀를 품에 안고 웃으며 말했다.“수아가 아시다시피 지금 임신 중이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갑자기 접촉하면 안 좋습니다. 혹시나 세균이 아이한테까지 전파되면 안 되니까 조금만 양해 부탁드릴게요.”그의 말을 들은 박씨 가문 사람들은 저마다 주먹으로 육문주를 때리는 시늉하며 말했다.“너 이 자식, 두 사람이 만약 아직 혼인 신고를 하지 않았더라면 넌 진작에 내 손에 얻어맞았을 거야.”“그깟 혼인 신고가 뭐가 대수야, 아직 결혼식 하지도 않았는데. 이 혼사를 만약 우리가 동
조수아는 천천히 설매의 영정사진 앞에 다가가 어머니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잠긴 목소리로 인사했다.“엄마, 저 수아예요. 엄마가 목숨을 걸고 구해낸 딸이 이제서야 엄마 보러 왔어요.”조수아의 말에 오현자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냈다.눈물은 두 볼을 타고 마구 흘러내렸다.“설매야, 네 소원대로 드디어 우리가 수아를 찾게 되었어. 그러니까 이제 걱정하지 마. 이제부터 수아는 우리가 돌볼 테니까 너도 하늘에서 편히 쉬어.”말을 마친 뒤 그녀는 수아에게 향 하나를 건넸다.“수아야, 엄마에게 향 꽂아드리고 절하렴. 그리고
“육문주, 내일 가족 파티에서 어디 두고 봐!”아까부터 쭉 문밖에서 기다리던 삼촌들은 그들이 나오는 모습에 우르르 몰려오더니 한껏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육문주를 바라보았다.“학진아, 걱정하지 마. 우리 박씨 가문의 공주님을 데려가기 전에 먼저 우리의 관문부터 통과해야 하니까. 내일 우리 미래 사위랑 어디 제대로 마셔봐야겠어.”대략 20여 명의 도발에도 육문주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조수아와 같이 오면서 이런 각오는 이미 해두었기 때문이다.그도 진작에 박씨 가문의 남자들이 여자 쪽을 매우 아낀다는 사실
민우는 씩씩하게 방에 걸어가 조수아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민우의 눈에는 조수아와 육문주만 가족이었고 곁에 있던 외삼촌들은 모두 나쁜 사람이었다.조수아는 얼른 전화를 끊고 민우를 따라 연회장으로 향했다.두 사람이 연회장에 들어서자 삼촌 몇 명은 테이블에 엎드려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다.사촌오빠 몇 명은 육문주 곁에 다가가 게임을 하고 있었다.조수아가 그의 눈에 들어오자 줄곧 이기던 육문주는 바로 정신이 팔려 1점을 잃었다.조수아의 사촌들은 신이 나서 육문주가 벌주를 마시도록 부추겼다.육문주는 머뭇거리지 않고 술잔을 들고는
육문주가 취한 척 연기하는 사이에 민우가 조수아를 뺏으려고 하자 육문주도 더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육문주는 몸을 뒤척이며 자연스레 조수아를 품에 안고 고개를 숙여 그녀와 입을 맞췄다.조수아는 육문주의 가슴을 툭 치며 밀어냈다.“문주 씨, 너무 취했어. 민우도 있으니까 적당히 해.”육문주는 못 들은 척하며 조수아의 얼굴에 쉴 새 없이 입을 맞췄다.옆에 있던 민우는 눈이 휘둥그레서 쳐다보자 조수아는 다급하게 말했다.“민우야, 얼른 엄마 아빠한테 가서 자. 시간이 늦어서 이모가 내일 같이 놀아줄게.”민우는 내키지 않았지
그 말을 들은 송학진은 다리에 힘이 풀려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그가 가장 두려워하던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설매의 기사님인 임정민은 임다윤의 먼 친척이었다. 임정민은 공교롭게도 설매가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 암으로 사망했다.하지만 그는 암에 걸린 사실을 숨긴 채 계속 송씨 가문에서 일했다.당시 임정민에게는 삼 개월의 시간이 남았고 누군가 그에게 살인 청부를 했다면 응했을 가능성이 높았다.게다가 설매가 교통사고를 당한 후 임다윤은 임정민의 아내에게 삼천만 원의 위로금을 입금했다.우연이라기에 임다윤이 미리 계획해 놓은 것처
“임다윤 씨만 아니었으면 미진이가 지금처럼 망가지지 않았을 거예요. 다윤 씨가 직접 친딸을 해친 거예요.”임다윤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연신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가 없어. 왜 조수아가 죽지 않은 거야? 미진이가 그렇게 됐을 리가 없어. 네가 지금 나를 속이는 것을 모를 것 같아? 나 절대 안 믿어.”임다윤은 송군휘의 멱살을 덥석 잡더니 금방이라도 그를 죽여버릴 기세였다.그때, 티비에는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는데 마침 조수아가 화면에 잡혔다.임다윤은 순간 동작을 멈추고 뉴스를 봤다.연하늘색 머메이드 스커트를 입은 조수아는
이미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던 송학진한테 차서윤의 말은 마치 휘발유처럼 그를 더욱 불타오르게 했다.송학진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선물?”차서윤은 고개를 들어 그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하고 말했다.“먼저 씻어요. 조금 후면 알게 될 거예요.”송학진은 차서윤의 코를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여보, 내가 뭘 원하는지 잘 알잖아. 저쪽 칸에서 씻을 테니까 자기가 여기서 씻어. 씻고 나왔을 때 선물이 날 실망하게 하지 않길 바랄게.”“그럴 일 없어요.”차서윤은 송학진을 방에서 밀어내고 물건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송학진
“외삼촌이 그럴 리가 없어요. 외숙모와 아림이도 나 때문에 만난 거잖아요. 만약 유치원에서 내가 아림의 치마를 적시지 않았다면 외삼촌이 외숙모를 만날 일이 있었을까요?”천우의 말을 잠깐 생각해보던 육문주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만약 천우가 아니었다면 송학진은 어쩌면 아직도 솔로였을 수도 있었다.갑자기 뿌듯해진 육문주는 잔을 들고 자리에 있는 형제들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너희들 우리 아들한테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니야? 천우가 아니었으면 우리 이 축하주를 언제 마셨을지도 모를 일이야.”곽명원은 웃으며 말했다.“천우가 아니었
박서준은 웃으며 말했다.“배은망덕한 건 아닌 것 같네. 보살펴준 보람이 있어. 왔던 김에 가족들이랑 며칠 시간 좀 보내다 갈 거야.”박서준의 말에 곽서연은 즉시 활짝 웃으며 말했다.“정말요? 그럼 우리 그동안 같이 있을 수 있는 거예요?”박서준은 곽서연을 흘려보며 말했다.“삼촌이랑 헤어지는 게 그렇게 싫어?”“네. 매일 매일 삼촌이랑 같이 있고 싶어요.”“왜 이렇게 달라붙는 거야? 천우보다 더하네?”곽서연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삼촌은 내가 달라붙는 게 싫어요?”박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싫다고 그러면 또 울
곽서연과 박서준이 동시에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곽명원이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박서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형네 집 공주님께서 발을 삐끗해서 울고 계시잖아.”곽명원은 별생각 없이 곽서연 곁으로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그녀의 발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마구잡이로 잡고 돌리는 턱에 아파 난 곽서연은 바로 소리를 질렀다.“아! 삼촌 살살 좀 해요.”곽서연은 참을 수 없는 아픔에 고여있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곽명원은 그녀를 한번 쳐다보고 웃으며 말했다.“그렇게 아프다고? 어릴 때처럼 아픈 척하
송학진의 차가운 태도에 화가 난 강한나는 눈시울을 붉히고 입술을 깨물며 경호원을 바라보고 말했다.“내 발로 나갈 테니까 비켜요.”말을 마친 강한나는 도도한 걸음으로 이곳을 떠났다. 많은 사람이 뒤에서 그녀에게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렸다.모든 것이 끝나고 송학진은 차서윤을 데리고 방으로 돌아와 예복을 갈아입었다.송학진은 차서윤의 붉어진 눈을 보더니 그녀의 뺨을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서윤아, 이제 내가 있으니까 누구도 감히 널 괴롭히지 못할 거야.”송학진은 차서윤이 이십여 년간 저런 아버지 밑에서 보내다 겨우 그
차경훈은 한순간 얼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차서윤이 모든 증거를 모으고 있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차경훈은 울며 빌었다.“서윤아, 아빠가 그때는 정신이 없었어. 앞으로 안 그럴 테니까 고소만 하지 말아줘. 제발 부탁이야.”차서윤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고소뿐만 아니라 부녀지간의 관계까지 끊을 거니까 앞으로 다시는 내 인생에 끼어들지 마세요. 더는 꿈에서조차 보기 싫으니까. 우리 이젠 죽을 때까지 연락하지 말죠.”차서윤의 말에 경호원은 차경훈을 강제로 현장에서 끌고 나갔다.차서윤의 완강한 태도에 겁을
그 말을 들은 차서윤의 눈에서 눈물이 줄 끊어진 구슬처럼 양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송학진의 볼에 입맞춤하고 눈물을 머금은 채 결심을 내렸다.“감사해요. 근데 저는 학진 씨가 다른 사람들의 오해를 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 마음속의 흉터를 모든 사람에게 공개해야 한다 해도 학진 씨를 위해서 뭐든 할 거예요.”말을 마친 차서윤은 신부 들러리로부터 핸드폰을 가지고 송학진에게 건네줬다.“제 핸드폰과 스크린을 연결해 주세요.”그 말은 들은 송학진은 차서윤이 무슨 일을 하려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이렇게 행복한 순간에 그녀에게 무수한 악몽을 남겨준 악마 같은 남자를 보자 차서윤은 지금 자신의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분노와 슬픔이 있었고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감옥에 있어야 할 차경훈이 왜 멀쩡하게 결혼식장에 나타난 것일까.송학진이 재빨리 다가와서 그녀를 품에 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해 줬다.“괜찮아. 내가 사람을 불러서 저 사람을 감옥으로 돌려보낼게.”그가 매니저에게 눈치를 보내자 매니저는 사람을 불러와서 송학진을 제압했다. 경호원들에게 잡힌 차경훈은 그들의 손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네가 안고 자고 싶다면 될 일이야? 네가 그러다가 이모부한테 쫓겨 나오면 내 잘못 아니다.”둘째와 셋째는 아빠와 천우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고 신바람이 나서 쉴 새 없이 옹알이했다.육문주는 셋째를 끌어안고 볼 뽀뽀를 하며 행복한 얼굴로 말했다.“그래도 딸이 좋아. 역시 우리 보배 딸이 제일이야. 너희 오빠 한번 봐봐. 고작 3살밖에 안 됐는데 아빠 엄마는 안중에도 없고 와이프를 입에 붙이고 살잖아.”셋째는 아빠의 따뜻한 품에서 웃음꽃을 피우고 입을 비죽이며 뭐라 말했다. 아기의 귀여운 모습에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