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지연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했고 신연은 그런 그녀를 보며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손에 든 케이크를 내려놓지 않았고 태지연에게 다시 물었다. “왜 안 좋아해?” 그는 아무런 기복이 없는 목소리로 물었는데 마치 정말 태지연과 케이크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오늘 입은 옷과 팔찌는 다 신연이 태지연에게 골라준 것들이었는데 예쁘긴 하지만 태지연은 자기 자신이 바비 인형이 된 듯 한 기분이 들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태지연은 신연의 손에 들려있는 케이크를 슥 쳐다봤는데 그건 그녀가 늘 좋아하고 즐겨먹는 티라미수 케이크였다. 그녀는 그 케이크를 내려다보며 귓가에 들려오는 신연의 목소리에 생각에 잠겼다. 그는 고작 20대 초반의 나이였지만 부산에서 소문난 사업가이자 대표였다. 그러나 목소리는 여전히 앳된 청년의 목소리였다. 태지연은 순간 눈앞에 그때 벚꽃나무 밑에 서있던 신연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니 눈앞에는 반짝반짝 빛이 나고 귀티 나는 성공한 남자, 지금의 신연이 보여졌고 그녀는 그런 그가 낯설었다. 태지연은 늘 신연이 야망이 있고 교만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신연이 싫기는커녕 그런 점마저 좋았다. 그러나 나중이 돼서 신연이 자신의 부모님마저 가두려 하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신연의 교만함이 절대로 자신의 상상처럼 그렇게 청렴결백하지는 않다고 느꼈다. 신연은 마치 독을 가득 품은 독뱀마냥 마음속으로는 늘 멍청한 그들을 깔보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언젠가는 그들이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싹싹 비는 날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연은 여전히 티라미수 케이크을 든 채로 태지연을 달래며 말했다. “착하지? 이거 한번만 먹어봐.” 태지연은 입술을 꽉 깨물며 고개를 들어 신연을 쳐다보았고 저도 모르게 움츠러 들었다. 신연은 그녀의 행동에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말했다. “추워?” “아니.” 태지연이 괜찮다고 대답을 했지만 신연은 자신의 외투를 벗어 자상하게 그녀에
신유리는 놀라서 물었다. “네?”그러나 태지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신유리를 속인 것도 아니었다. 그녀도 자신이 언제 신연과 결혼했는지 몰랐다. 신연이 그녀를 데리고 해외에서 돌아온 지 3일째 되는 날, 그는 직접 혼인신고서를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지연아, 넌 원래부터 내 거였어.”태지연은 눈을 감은 채 감히 혼인신고서를 건네받던 그 순간의 충격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녀는 친구들과 확인하고 변호사한테 여쭤보고 심지어 구청에도 찾아갔지만 모두 사실이라고 했다. 신연은 그녀가 모르는 상황에서 이미 그들의 이름을 묶어버렸다. 그녀에게 알리지 않은 채.하지만 그녀는 어쩔 수 없었다.큰언니는 해외에 있어 돌아올 수 없고, 둘째 오빠는 행방불명, 부모님은 별장에 감금된 상태였다. 태지연은 맞서 반항할 수 없었다. 부모님이 아직도 신연의 손에 있기 때문에 감히 그를 건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신유리와 태지연이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신연이 나타났다. 신유리는 눈치 보며 자리를 비웠다. 그녀는 행사장 안으로 돌아가 서준혁을 찾았다. 서준혁은 몇몇 지인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신유리는 서준혁을 찾으러 가려다가 누군가와 부딪힐 뻔했다. 그는 통화 중이었는데 상황을 보고 전화를 끊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신유리는 고개를 들자 익숙한 얼굴에 당황했다. “재훈 씨?”박재훈은 잠시 멈칫하더니 곧 알아차린 듯 미소를 지었다. “유리 씨, 오랜만이네요.”박재훈은 임아중의 동창이었고 전에 부산시에서 신유리와 만난 적 있었다. 그는 반가워하며 말했다. “여기서 유리 씨를 만나다니 정말 인연이네요.”신유리는 박재훈에 대한 인상이 좋았다. 그녀는 예의 바르게 말했다. “재훈 씨, 성남에 오신 김에 제가 식사라도 대접해야겠네요.”“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마침 어디서 밥을 얻어먹을까 고민 중이었거든요.”박재훈은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중이가 또 저를
신유리는 가볍게 입을 맞추고 나서 서준혁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이미 뒤로 물러나 있었다.하지만 서준혁 역시 빠르게 대응했다. 그는 신유리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다시 자기 품으로 끌어당겼다.서준혁은 고개를 숙여 신유리의 이마에 닿을 듯이 빈틈없이 밀착했다. 따뜻한 숨결이 속눈썹 위로 느껴졌다. 서준혁은 그녀의 허리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야릇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서준혁의 목소리는 약간 쉬어 있었다. “어디 도망가려고?”넓은 욕실 안, 신유리는 서준혁의 어깨 너머에 있는 거울을 볼 수 있었다.따뜻한 조명 아래, 서로 껴안고 있는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다정해 보였다.서준혁의 손은 여전히 그녀의 허리를 꽉 감싼 채 그녀는 고개를 들며 말했다. “아파.”서준혁의 목구멍에서 가벼운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는 손에 힘을 풀고 신유리의 귀 옆에 흩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하린이 없어.”오늘 서준혁과 신유리는 연회에 참석해야 했기 때문에 자두를 할아버지께 맡기고 저녁에도 데려오지 않을 예정이었다.신유리는 서준혁의 뜻을 알아차렸다.아무리 둘이 함께 살고 있어도 자두를 돌봐야 했기 때문에 많이 피곤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불편하기도 했다.욕실의 샤워기가 언제 켜졌는지 모르게 물소리와 함께 물안개가 자욱해서 분위기는 한층 더 야릇해졌다.결국 신유리는 서준혁에게 안겨 방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없이 지쳐 있었다. “머리 말리고 자, 감기 걸린다.”신유리는 쉰 목소리로 서준혁을 째려보며 말했다. “누구 탓인데?”서준혁의 눈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그는 신유리를 침대에서 일으켜 세우고 수건으로 머리를 닦아주며 달랬다. “내 잘못이야, 내가 책임질게.”신유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서준혁이 닦아주는 대로 두고 눈을 감은 채 쉬었다.신유리는 어느새 깊이 잠들었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환하게 밝아 있었다.“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더 자도 돼.
외할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 그는 매년 신유리를 위해 평안 부적을 하나씩 구해 주셨다. 나중에 신유리가 서준혁과 함께 외할아버지를 뵈러 갔을 때도 외할아버지는 서준혁을 위해서 평안 부적을 구해 주셨다.신유리는 서준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난 네가 버린 줄 알았어.”사실 신유리와 서준혁은 좋게 헤어진 게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서준혁이 외할아버지가 준 물건을 소중히 여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서준혁은 차를 몰면서 앞을 바라보며 냉정한 얼굴에 잠시 부드러운 미소가 스쳤다. “어떻게 버릴 수 있겠어. 어르신은 내 평안을 기원해 준 첫 번째 분이잖아.”심지어 그의 할아버지도 서준혁을 위해 평안을 기원해 준 적이 없었고 서창범과 하정숙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그래서 신유리의 외할아버지로부터 처음 평안 부적을 받았을 때 서준혁은 날아갈 듯이 기뻤다.다만 나중에 서준혁이 하고 싶은 일이 많아지면서 외할아버지가 준 그 평안 부적들은 부드러움을 일깨우는 스위치처럼 느껴졌다. 그는 그것들을 보면서 마음이 흔들릴까 봐 두려워서 정리해 두었을 뿐이다.신유리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외할아버지가 알면 정말 기뻐하실 거야. 너도 알잖아, 할아버지는 널 참 좋아하셨어.”“응.” 서준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외할아버지가 병환 중이었을 때 병원에도 찾아갔었어. 그때 너도 나랑 마주쳤잖아.”신유리는 한참 생각한 끝에 반응했다. 아마 서준혁이 송지음과 함께 아버지를 찾아뵈러 갔을 때였다.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외할아버지는 나한테 말한 적 없었어.”“내가 할아버지께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거든.” 서준혁의 목소리는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유리야, 난 네 앞에만 서면 마음이 너무 약해져.”그는 자신이 신유리 앞에서 쉽게 마음이 약해지기 때문에 몇 번이고 자신을 다그치면서 가장 차가운 모습으로 마주하려 했다. 그러다 보니 둘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생겼다.서
태지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신연은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는 태지연의 눈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말했다. “네가 내 곁에만 있어 준다면, 난 모든 걸 너에게 줄 수 있어.” 그는 말을 마치고는 태지연의 손을 잡으며 집 안으로 이끌었다. “다른 선물도 준비했어. 네가 좋아할지 모르겠네.” 신연은 태지연을 잠긴 문 앞에 데려가더니 그녀에게 직접 문을 열어보라고 손짓했다. 태지연은 망설이며 문을 열자 하얀 그림자가 안에서 튀어나오더니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치자 신연이 이내 그녀의 허리를 받쳐주었다. 그제야 태사랑은 새하얀 털을 가진 사모예드 강아지라는 것을 알아챘다. 강아지는 혀를 내밀며 열정적으로 그녀에게 달라붙었다. “마음에 들어?” 태지연은 대답하지 못했다. 방금 정말 놀랐기 때문이다. 신연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데려가게 할게.” “아니야, 마음에 들어!” 태지연은 서둘러 대답하며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무 기뻐서 무슨 이름을 지어줘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어.” 신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음대로 해.” 말을 마치자마자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신연은 잠시 눈살을 찌푸리며 부드럽던 얼굴에 금세 차가운 기운이 돌았다. 그는 핸드폰 화면을 잠시 응시하더니 고개를 들었을 때도 차가운 기운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금세 불쾌한 기분을 억누르며 부드럽게 말했다. “처리해야 할 일이 좀 있어서, 강아지 이름을 어떻게 지을지 생각해 봐.” 태지연은 손가락을 움켜쥐며 말했다. “바쁘면 가봐.” 신연이 핸드폰을 들고 마당으로 나가고 나서야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게 그녀는 신연과 함께 있는 것조차 참기 힘들어졌다. 태지연은 사모예드를 쓰다듬으며 차마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강아지를 좋아했다. 신연과 사귈 때부터 사모예드를 키우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신연은 그녀의 모든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 알아, 다 알고 있어.”전혜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화면 속의 딸을 바라보았다. “지연아, 나랑 너희 아빠는 한 번도 네 잘못이라고 생각한 적 없어. 그리고 네 오빠가 평소에 좀 말썽을 부리긴 했지만 회사 주식을 걸고 도박 할 정도로 분별없는 사람은 아니야.”전혜린은 예전보다 많이 수척해졌다. 최근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침착함을 유지하며 태지연을 위로했다. “지연아, 너 지금 어디 있는 거야? 혹시...”그녀는 말을 멈추고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혹시 널 찾아낸 거니?” 태지연은 그 한마디를 듣자마자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태씨 가문에 문제가 생기고 태송백이 실종되면서 신연은 그녀를 교외의 별장에 감금했다. 그녀는 매일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고 그러다 오빠의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되어 연우진의 도움을 받아 별장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녀는 곧바로 부산을 떠나 해외로 나갔다. 당시 그녀는 오로지 오빠를 찾은 뒤 태씨 가문으로 데려가 그의 결백을 증명하는 것만 생각했다.하지만 정작 자신이 떠난 뒤 신연이 부모님을 그냥 놔둘 리 없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지금 전혜린의 수척하고 초췌한 모습에 태지연의 마음이 너무 아파왔다. 만약 그때 그렇게 충동적이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태지연은 붉어진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오빠가 누명을 썼다는 증거를 꼭 찾아내고 태씨 가문을 반드시 안전하게 지킬 거예요. 그리고 태씨 가문을 다시 우리 손에 돌려놓을 거예요.”전혜린은 잠시 멈칫하더니 곧 알아챘다. 그녀의 눈에는 딸에 대한 걱정과 안타까움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하나뿐인 소중한 딸을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화면 너머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연아, 아빠와 엄마는 항상 널 사랑한다는 거 꼭 기억해.”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신연의 일은 네 잘못이 아니야. 우리도 사람을 잘못 봤어. 아빠랑 난 신연
태지연은 신연 옆에 앉아 있었다. 둘은 매우 가까이 붙어있었고 겉으로는 마치 친밀한 사이처럼 보였다. 하지만 신유리의 시선은 컵을 쥐고 있는 태지연의 손에 머물렀다. 손가락 마디는 긴장한 듯 구부러진 채 편안한 모습은 아니었다. 신유리는 눈을 살짝 내리며 서준혁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사실 신연은 신유리만 초대했지만 서준혁은 신연에 대한 경계심이 늘 강하다 보니 함께 가겠다고 고집했다. 신유리 역시 신연을 완전히 믿을 수 없었고 굳이 자두를 데려오라고 한 점도 의아했기에 서준혁의 동행을 막지 않았다. 신연은 서준혁을 보고 놀라지 않은 눈치였다. 그는 고개를 살짝 들며 말했다. “서 대표님.”서준혁은 맞은편에 앉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인사를 대신했다. 신연은 서준혁에게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그의 품에 아긴 자두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큰 감정 변화가 보이지 않았지만 형식적으로 한 마디 덧붙였다. “아이가 참 귀엽네요.”자두는 반응이 빨랐다. 신연이 자신을 칭찬하는 걸 알아채고 게다가 엄마, 아빠도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낯선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는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신연을 향해 손을 내밀었지만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자 몸을 더 흔들며 다가가려고 했다. 신유리가 말했다. “인사하는 거예요.”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말했다. “...당신을 좋아하나 봐요.”신연의 시선이 자두에게 머문 채 이마에 미세한 주름이 잡혔다. 그는 신유리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유리 씨, 딸이 참 귀엽네요. 정말 예쁘게 생겼어요. 유리 씨랑 많이 닮았네요.”태지연이 말했다. 신유리는 자두를 태지연에게 인사시켰고 자두도 순순히 “이모”라고 불렀다. 태지연은 가방에서 우유 사탕 한 박스를 꺼내 자두에게 건넸다. 자두는 건네받아 신유리의 품에 넣었다. 태지연은 자두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같았고 식사 중에도 종종 자두를 챙겼다. 자두도 낯을 가리지 않은 채 태지연 곁에 바짝 붙어
송지음이 바닥에 주저앉자 룸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챘다.태지연은 입술을 꽉 깨문 채 고개를 숙였다. 호흡은 전보다 거칠어졌고 긴장한 듯 보였다.신연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바닥에 있는 송지음을 힐끗 바라보더니 말했다. “경고하는데 이젠 지연 씨가 아니라 내 와이프야.”송지음은 목이 잠긴 채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전부 제 잘못입니다. 부디 용서해 주세요… 지연 아니, 사모님.”신연의 표정은 조금 만족스러워 보였다. 그는 태지연의 손을 잡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용서할 거야?”태지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신연의 손은 마치 무거운 족쇄처럼 느껴져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송지음의 등장은 신연이 일부러 작정하고 보여준 것이었다.겉으로는 사과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태지연의 모든 것을 자신이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려는 것이었다.그는 태지연의 주위에 그물을 쳐 두고 그녀가 어떻게 하든지 신연이 그물을 거둬들이는 순간 그녀는 순순히 남아야 했다.마치 송지음처럼 말이다. 사실, 태지연은 오늘 송지음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녀를 잊고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지금 태지연 앞에 나타나서 두려움에 떨며 1년 전의 작은 일로 사과를 하고 있었다.과연 사과일까?아니다.그저 신연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었다. 그녀는 순순히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태지연은 감정을 억누르며 한참을 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사과받을게.”신연은 가볍게 대답하고 신유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당신이 그녀를 어떻게 처분할지는 마음대로 하세요.”신유리도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신연이 송지음에게 무슨 짓을 할지 예상은 했지만 그녀가 신연을 이토록 두려워할 줄은 몰랐다.물론 신유리는 송지음을 동정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신연의 수법에 충격을 받았을 뿐이었다.누군가 신유리의 오른손을 꼭 잡고 있었다. 서준혁은 따뜻한 손바닥으로 신유리의 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