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인 그룹의 일로 시끄러워지자 신유리도 여러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심지어 신연과 업무를 보고할 때조차 신연은 서준혁의 수법이 자신의 예상 밖이었다고 덧붙였다. 신유리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숨기는 것에 능숙한 사람이죠.”“사실 너무 섣불렀어요. 고씨 가문과 여씨 가문을 완전히 끌어들인 다음 움직였더라면 지금처럼 번거롭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아마도 당신이 서창범의 타깃이 된 것을 보고 참지 못해 충동적으로 움직인 것 같은데요.”신유리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담담하게 말했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이만 끊을게요.”신연은 서준혁이 야망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 역시도 야망이 작지는 않았다. 해외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도 태씨 가문을 속이고 혼자 추진한 것이었다. 똑똑한 사람이라면 신연의 계획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신연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는 신유리는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는 것 외에는 개입하지 않았다. 신연도 본질적으로 서준혁과 다를 바가 없었다. 서준혁이 저지른 일은 대중에게 낱낱이 폭로되었다. 화인 그룹을 손에 넣기 위해 이토록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을 줄 누가 예상했겠는가? 물론 신유리도 계획의 일부분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유리는 처음부터 그의 계획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우연히 상황에 말려든 존재였을 뿐이다. 아니면 그녀를 이렇게 가차 없이 버렸을 리가 없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서준혁은 아마 몇 년 전부터 지금을 위해 준비해 왔을 것이다. 그가 본사를 떠날 때였거나, 아니면 더 이른 시점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의 계획에 신유리는 한 번도 포함되었던 적이 없었다. 다만 그가 만든 함정 속에서 신유리가 헤매는 모습을 지켜보며 어쩌면 계획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차 없이 그녀를 버렸다. 신유리는 창가에 서서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꽤 평온한 기분을 느꼈다. 사실 서준혁이 어떻게 되든 그녀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고 더 이상 그에게 시간을 낭비할 생각도 없었다. 북쪽 나라
김가영은 한 손으로 턱을 괴며 말했다. “전에 화인 그룹에서 일했었죠? 준혁 씨랑 아는 사이인데 유리 씨가 저한테 물건 가져다준 기억이 있어요.”신유리는 입술을 오므린 채 말했다. “지금은 그만뒀어요.”“알아요.” 김가영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는 신유리의 손에 든 서류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은 버닝 스타에 있잖아요. 이직하는 게 뭐 대수겠어요? 그냥 오랜만에 귀국해서 반가운 사람을 봤더니 이런저런 얘기나 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제가 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신유리는 여전히 거절했다. “집에 일이 있어서 좀 곤란할 것 같아요.”신유리는 자신이 김가영과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필경 전에 서준혁에게 건넸던 호텔 키는 김가영과 머물렀던 호텔이었다.신유리는 아무리 일을 위해서라도 김가영에게 마냥 친절하게 대할 수 없었다. 더구나 김가영을 보면 서준혁이 떠오르기 마련이었다.김가영은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고 아쉬운 듯 신유리와 다음 만남을 약속하며 서로 연락처를 교환했다.집 근처에 도착할 때쯤 이신이 전화를 걸어왔다.“뭐해?”“방금 미팅하고 헤어졌어.”“피곤해 보이는데?”“응, 조금.”신유리는 별다른 말 없이 아마 갑자기 김가영을 보게 되면서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오르다 보니 마음이 지쳤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신은 잠시 멈칫하더니 갑자기 물었다. “그럼 어떡해? 혹시 내가 방해한 거 아니야?”코너를 도는 순간 집 앞에 서 있는 훤칠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신유리는 미처 반응하지도 못했다.그녀는 멈칫하더니 곧 웃으며 말했다. “오기 전에 미리 연락하지.”이신은 뒤 돌아보며 미소를 띠고 말했다. “원래는 깜짝 놀래켜 주고 싶었는데, 내가 망친 것 같네.”“놀랐잖아.”신유리는 이신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자두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서 이신을 맴돌며 장난을 쳤다.“전엔 한동안은 못 온다고 하더니 어떻게 된 거야?”이신은 어머니의 일 때문에 출국해야 했고 신유리가 성남을 떠
신유리는 어젯밤 어쩌다가 깊은 잠에 들어 꿈을 꾸게 되었고 꿈속에는 갓 스무 살이 넘은 신유리 본인, 서창범, 서준혁과 송지음 그리고 주현까지 나타났었다.꿈속의 모든 사람들은 왜 웃는지 모르겠지만 다들 깔깔대고 있었고 그들의 시선을 따라간 신유리는 또 다른 제 2의 자신이 구석에 서서 볼거리가 되어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그 모습에 놀란 신유리가 두 눈을 번쩍 떴고 어두운 방안에서 정신을 차리고 나서는 애를 써도 잠이 오지 않았다.자두는 신유리 옆에 있는 작은 침대에서 새근새근 잠에 들어있었고 그녀가 핸드폰을 들어 캐톡을 열자 마침 가 영상 하나를 보내왔다.영상을 열자 보이는 사람은 신유리와 이신 그리고 자두였는데 그날 같이 마트에 가서 찍힌 사진에 김가영이 귀여운 이모티콘과 자막을 달자 한층 더 깜찍해졌다.[일부로 몰래 찍은거 아니고 우연이 길가다가 찍은 거예요, 너무 다정하고 잘 어울려서.]신유리는 김가영이 보내온 영상 속에 담긴 자두의 얼굴을 보고 또 보다가 아이의 성장을 기록해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그 영상을 저장했다.[고마워요.]그녀가 답장을 하자 김가영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빠른 속도로 문자를 또 보내왔다.[아직도 안 주무시고 뭐해요? 저 그럼 이 영상 올려도 돼요? 제가 요즘 제 일상을 찍어 기록하고 올리고 있는데 마침 이 장면이 찍혀버려서...][절대로 이 장면만 단독으로 올리지 않을 거니까 걱정 안하셔도 돼요.]김가영은 자신의 vlog 영상을 하나 보내줬고 그녀의 뒤에 이신과 신유리의 모습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하지만 그녀들의 생각과는 달리 영상이 올려 지자 모든 사람들은 뒤에 찍힌 세 사람의 모습에만 집중을 해버렸다.서준혁은 핸드폰을 들고 영상을 보고 있었는데 그의 시선은 김가영이 아닌 뒤에 있는 신유리에게 고정되어있었고 흐릿했지만 그는 한 눈에 신유리임을 알아차렸다.당연하게도 영상을 쭉 보던 서준혁의 눈에 세 사람의 화목한 모습이 들어왔고 그들이 뭐라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는 신유리의 목소리가 귓가에
호텔은 딱 설산 아래에 위치하여 있어 가만히 풍경만 보고 있어도 힐링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신유리는 자두와 함께 먼저 방으로 돌아갔고 아까 장다혜가 말한 농담 섞인 말들이 생각이 났지만 잘생긴 남자와 우연한 만남에 대해서는 별로 흥취가 없었다.그들이 오후에 호텔로 도착한 이유로 오늘 저녁이 아닌 내일 제대로 놀기로 결정하였다.저녁밥을 먹을 때, 장다혜는 머리를 수그린 채 핸드폰만 해댔고 그녀의 모습에 신유리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먼저 물었다.“이렇게 행동이 빠른 사람이었어요?”장다혜는 신유리의 말에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못 얻어냈어요 연락처, 그 남자 되게 개성 있어 보이던데요? 저는 절대 가능성이 없어보였어요.”신유리는 장다혜를 위로하듯 말을 했다.“너무 한 나무에만 매달려있지 마요, 세상에 남자가 얼마나 많은데.”“유리 씨는 이신 씨 같은 잘생긴 남자가 옆에 있으니 이런 말이 나오는 거죠.”장다혜가 한숨을 푹 내쉬며 대답했다. 이신은 요즘 매일 신유리를 데리러 오기 때문에 장다혜도 이신에 대해 알게 되었다.그녀는 신유리를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말했다.“원래 끼리끼리 논다고 하잖아요? 잘생긴 남자 옆에는 꼭 더 잘생긴 남자가 있을 거예요, 이신 씨 주위에 다른 친구들 없어요?”신유리는 장다혜의 말에 문득 허경천과 연우진이 떠올랐지만 옅은 미소를 띠며 대답해줬다.“어떻게 우연히 만난 그 잘생긴 남자랑 잘 해볼지 생각해보는게 좋을 것 같아요.”장다혜는 땅이 꺼질 듯 한숨을 쉬었고 신유리는 고개를 숙이고 자두에게 우유를 먹여주었다.“어머!”갑자기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신유리는 놀란 기색 하나 없이 고개를 수그린 채로 물었다.“왜 그래요?”“그 남자 식당에 밥 먹으러 왔어요.”주변에 많은 유명한 식당이 있었지만 너무 지쳐 호텔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기를 선택한 그들이었다.하지만 호텔의 식당에서 밥을 먹는 사람은 적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은 여기까지 놀러와 이 지역의 소문난
신유리는 이미 바쁘게 일을 하고 있는 동료들을 보고는 잠시 침묵하더니 자두를 서준혁에게 안겨주며 말을 했다.“부탁 좀 드릴게요.”하지만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손이 서준혁에 의해 잡혀버렸고 그는 신유리를 번쩍 들어 안고는 차에서 내리게 하였다.서준혁이 신유리를 조심스레 내려놓았고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이러면 더 안전할 것 같아서요.”신유리는 굳어진 표정으로 서준혁을 째려보며 대답했다.“손 놔요, 누가 이렇게 해 달랬어요?”서준혁의 손은 아직까지도 신유리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고 비록 그녀의 품에 자두가 안겨있다 해도 두 사람의 동작은 친밀해보이기 그지없었다.그녀의 날선 말에 서준혁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곧바로 손을 떼버렸고 신유리는 그의 존재를 무시해버리고는 자리를 떠나버렸다.갑작스러운 서준혁의 행동에 심기가 불편해진 신유리는 짜증이 나 미칠 것 같았다.자두가 품에 안겨있었고 요즘 피곤이 쌓인 탓에 하마터면 자두를 놓칠 뻔 한 신유리는 무례한 서준혁에게 잔뜩 화가 났다.장다혜는 두 사람이 걸어오는 모습에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서준혁을 쳐다보더니 말했다.“조금만 더 늦게 왔으면 우리는 우리 몰래 이상한 짓을 하는 걸로 착각할 뻔했어.”신유리는 어두워진 안색으로 자두를 다른 동료에게 맡겨버리고는 텐트를 치는 일에 동참하였고 장다헤는 그녀의 뒤를 따라와서는 물었다.“왜 이렇게 화가 나있어요?”“아니에요, 아무것도.”장다혜는 머쓱한지 자신의 코를 만지작대더니 옆에 있는 서준혁을 보며 말했다.“준혁아.”신유리는 그 목소리에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땅에 버려버렸고 장다혜는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입을 닫아버렸다.강가에서 물건들을 씻고 있던 신유리는 생각하면 할수록 아까 안겼을 때 나는 그 익숙한 냄새가 생각이 나 짜증이 밀려왔다.익숙한 향기에 옛날 일들이 생각이 났지만 그 어떤 일도 행복하고 기쁘지는 않았다.물건을 다 씻은 후, 텐트로 돌아간 신유리는 사람들이 몰려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았고 사람들 틈에는 익숙한 누군
서준혁은 좋지 않은 안색으로 신유리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더니 다친 그녀의 왼발을 보고는 표정이 점점 굳어져갔다.“아까는 왜 달린 겁니까?”신유리는 그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빠른 속도로 달렸던 거고 서준혁의 다가와 묻자 얼른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을 피해버렸다.서준혁은 그녀의 모습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신유리는 그의 숨소리에 원래부터 불편하던 마음이 폭발한 듯 입을 열었다.“제발 제 앞에 나타나주시지 않으면 안돼요?”그녀의 말에 서준혁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어갔고 한참동안이나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자신의 말에 서준혁이 당연히 떠날 줄 알았던 신유리가 안도하려는 그때, 서준혁은 갑자기 그녀를 들어 안고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심하게 부상을 당한 것 같은데, 이럴 때에는 제 말 좀 들으세요.”자신의 몸이 붕 떠있는 느낌에 불쾌감을 느낀 신유리는 차디찬 목소리로 외쳤다.“저 좀 내려놓으세요!”“다쳤잖습니까.”“그쪽이 상관할 일 아니니까 내려놓으라고요.”서준혁은 날선 그녀의 태도에 발걸음을 멈췄고 신유리는 그의 몸에서 나는 그 익숙한 냄새에 속은 더욱 더 불편해졌다.그는 신유리를 내려놓기는커녕 더욱 꽉 안더니 천천히 입을 뗐다.“죄송합니다.”서준혁은 항상 신유리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이 상황이 짜증이 나 죽겠다는 듯 썩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미안하다는 말 진즉에 했어야 했는데 이미 늦은 걸까?]서준혁은 그녀의 굳은 얼굴을 보고 있자니 머릿속이 후회로 가득 차버렸다.신유리는 서준혁에게 안겨있을 때, 풍기는 향기에 사람의 기억력이란 참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분명 그들은 오랫동안 이렇게 친밀한 행동도, 말도 한 적이 없지만 그까짓 향기와 온도 하나도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생각이 나면 날수록 화가 치밀어 오른 신유리는 서준혁을 조롱이라도 하듯 물었다.“김가영 씨 혼자 두고 오면 안 삐져요?”서준혁은 신유리의 물음에 멈칫하는 것도 잠시 곧 대답을 했다.“저랑 김가영 씨는 아무런 사이
호텔은 조금 옛날식이라 스스로 계단을 오르고 내려야 했지만 신유리는 서준혁의 품에 안겨 오르고 있었다.뜨거운 그의 체온과 강한 팔 힘으로 자신의 허리를 감싸 안은 서준혁의 손, 신유리는 그의 품에 안겨 쿵쾅거리는 그의 심장소리마저 들리는 것 같았다.서준혁에게서 나는 향기는 비가 와서 그런지 아까보다 많이 옅어져있었다.서준혁은 그녀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천천히 내려주더니 무릎을 꿇고 앉아 왼쪽 발에 신고 있던 양말과 신발을 조심스레 벗겨 다친 곳을 확인했다.차가운 손이 피부에 닿자 신유리는 무의식적으로 뒤로 피했지만 서준혁은 그녀의 발목을 툭 잡더니 말했다.“움직이지 말아요, 다친 곳에 약을 발라야 할 것 같습니다.”신유리는 침묵하다 서준혁의 다정한 모습에 천천히 말을 했다.“서준혁 씨, 지금 되게 본인답지 못한거 아세요?”분명 서준혁은 다정하고 자상한 스타일이 아니지만 그는 지금 억지로 그런 모습을 유지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정말 조금이라도 서준혁답지 못하게 말이다.그는 그녀의 말에 멈칫하더니 무릎을 꿇은 상태로 대답했다.“다 고칠 겁니다, 그게 뭐가 됐든.”신유리가 말했다.“아니요, 고치고 바뀐다 해도 저는 서준혁 씨가 마음에 안들 것 같아요.”서준혁이 아무리 노력해도 전에 신유리의 마음에 입혔던 상처들은 좀처럼 치유되지가 않았고 지금 신유리가 바라는건 오직 앞으로 남은 삶은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었다.서씨 가문도, 서준혁도 없는 그런 안정적인 삶.서준혁이 신유리의 말에 답하려는 순간 장다혜가 자두를 안고 신유리의 방에 들어오더니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서준혁을 발견하고는 당황하더니 물었다.“제가 지금 오지 말아야 할 곳을 온 건가요?”서준혁은 그녀의 물음에 몸을 일으키며 신유리를 바라보더니 떨리는 입술로 입을 열었다.“내려가서 약 좀 찾아보고 오겠습니다.”장다혜는 뒤돌아 떠나는 서준혁의 모습에 얼른 신유리의 곁으로 가 앉더니 물었다.“무슨 일이예요? 그 작은 숲에서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거예요? 왜 두 사람 분위
서준혁은 국내에 있을 때에는 회사 업무로 인해 거의 매일이다시피 회사에서 먹고 자는 생활을 했기에 숨 돌릴 틈도 없었다.겨우 나온 여가시간에는 얼른 달려와 신유리를 찾은 그는 어제 숲에서 외투도 없이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고 밤에는 신유리의 동태를 살피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아예 휴식을 제대로 못 취한 그의 몸에서 지금 적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신유리가 체온계로 서준혁의 열을 재줬고 그는 현재 무려 39도로 열이 펄펄 끓는 상태였다.서준혁은 소파에 앉아 힘없는 상태로 축 처져있었는데 아픈 원인인지 평소 그의 날카로운 모습과는 사뭇 달라보였다.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신유리가 먼저 말을 했다.“열나시는데 병원에 가보셔야죠.”서준혁은 그녀의 말에 더는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뜨리지 않았고 조용히 자신의 외투를 집어 들며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압니다, 열은 전염가능성이 있다는거. 자두도 어려서 면역력이 없을 테니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키가 180이 훌쩍 넘는 그는 허리까지 얇아 섹시하기 그지없었지만 신유리는 왜인지 서준혁이 야위었다는 생각이 들었다,입구까지 걸어 나가던 서준혁은 연신 기침을 해대더니 신유리의 눈치를 살피며 사과했다.“죄송합니다, 기침은 참을 수가 없어서.”신유리는 아까보다 더 빨개진 서준혁의 얼굴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더니 차가운 말투로 입을 뗐다.“저쪽 창고 같은 방에 사람이 없이 비어있어요, 별 일 없으면 거실로 나오지 마시고요. 될 수록이면 우리 하율이한테 가까이 다가서지 마세요.”그녀의 말에 서준혁은 하던 기침을 멈췄고 얼른 신유리를 돌아봤지만 그녀는 이미 자두를 안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서준혁은 손으로 자신의 올라가는 입 꼬리를 겨우겨우 막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신유리는 서준혁을 내보내지는 않고 남겨두었지만 그래도 그와 많이 접촉하기는 싫어 온 종일 방안에만 머물렀다.날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서준혁은 조심조심 신유리의 방문을 두드리며 말을 했다.“냉장고에 먹을 것이 없던데 마트 가서 식재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