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447화

작가: 박혜은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08-08 19:00:00
신유리의 생일은 여느 때보다 더 뜨거운 분위기 속에서 보냈고 새벽이 다 되어서야 이미 잠은 든 자두를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자두를 안고 가는 신유리를 발견한 이신은 얼른 다가와 낮은 소리로 물었다.

“내가 안을까?”

고기를 구워먹은 탓에 신유리의 옷에 베여버린 냄새와 그와 달리 고기를 안 좋아해 얼마 먹지 않아 깨끗하고 향긋한 냄새가 나는 이신의 옷.

자두도 이제는 조금 커버려 체중이 꽤나 무거워 신유리가 안고 있기에는 무리가 있어 이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두를 안겨주었다.

“고작 3개월 지났는데 얘 왜 이리 무거워졌어?”

“3개월이나 지난 사실을 알고는 있었나보네.”

이신이 묻는 말에 갈 길을 가던 임아중이 다시 돌아오더니 그에게 말을 이어갔다.

“3개월이면 꽃도 다 폈다가 시들고 남은 시간이겠다, 너 이제 돌아와 놓고 그런 말 하지마. 자두가 크는건 당연한 거고 유리가 마음만 먹으면 둘째까지 낳았겠어.”

임아중은 술을 조금 마시는 바람에 아무 말이나 막 내뱉었고 듣고 있던 신유리는 민망해 얼굴이 빨개졌지만 이신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왜 웃어?”

신유리는 웃는 이신을 째려보며 물었다.

“다행히 아직 꽃이 안 시들 어서.”

이신이 애매한 대답을 남겼고 신유리는 이신을 가만히 보며 무슨 말을 할지 몰라 했다.

생일을 보낸 지 얼마 안지나 임아중과 다른 사람들을 밀린 업무가 있어 남주시로 떠나버렸다.

이신도 따라갈 줄 안 신유리는 그가 며칠만 더 있다가 간다는 뜻밖의 말을 들었다.

“너 성남에 뭐 더 볼 일 있어? 그때 되게 중요한 일 아직 못했다며.”

신유리가 물었다.

이신을 묻는 신유리의 말에 잠시 뜸을 들이다 천천히 대답했다.

“다른 일이 좀 있어서, 그리고 중요하다고 했던 일은 이미 다 해결했어.”

“그래?”

더는 묻지 않는 신유리를 본 이신은 웃음을 참지 못하며 그녀에게 되물었다.

“너는 어떤 중요한 일인지는 안 궁금해?”

“사적인 일이야 아니면 공적인 일이야?”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묻는 신유리는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려는 뜻이 하나도 없어 이
잠긴 챕터
앱에서 이 책을 계속 읽으세요.

관련 챕터

  • 나 말고 다   제448화

    전에 서준혁의 병실에서 오담윤을 스치듯 봤던 신유리는 지금에서야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서창범과 비슷한 이목구비 외에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포스는 서창범과 아예 달랐다.만약 서창범의 포스가 누가 봐도 기가 세고 무서워 보인다면 오담윤은 교활하고 가식적인 사람같았다.그는 분명히 웃고 있었지만 안경 뒤에 숨어있는 눈빛에는 계산적이고 계획이 가득해보였다.신유리는 이런 사람들과 어울리면 자신이 그들에 의해 장난감처럼 조종되는 기분이 들어 같이 있기를 꺼려했다.그녀는 몸을 일으키며 어색한 적막을 깨뜨렸다.“회장님께서 일이 바쁘신 것 같으니 저는 먼저 가볼게요.”신유리의 말에 오담윤은 옅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신유리 씨, 이렇게까지 급히 떠나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친구 분이 아이를 캐어하고 있으니 이승윤 씨 같은 사람이 다시 나타나 뺏어갈 확률은 없지 않습니까?”신유리는 이상하리 만큼 소름이 돋는 그의 말에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무슨 뜻이죠?”묻는 신유리의 말에 오담윤은 차분한 말투로 말을 했다.“신유리 씨가 딸을 데리고 성남으로 돌아왔고 아이는 오늘 같이 오지 않았으니 무조건 친구 분이 봐주고 있는 거겠죠, 그리고 이승윤 씨 일은 이미 성남에서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그는 조롱 섞인 눈빛으로 신유리를 쳐다보며 계속 말했다.“서 대표님도 이젠 사랑에 눈이 멀어 앞을 내다보지 못하시지 않습니까?”“오 매니저님.”신유리는 자신을 바라보는 오담윤의 눈빛이 너무도 불편해 고개를 들어 그를 똑똑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지금 말씀하시는 방식 듣기가 아주 거북합니다, 빙빙 돌려서 말하지 말고 똑바로 말씀해주세요.”오담윤은 일부로 자두와 이승윤에 관한 말들을 꺼내 지금 이 대화의 승자를 겨루고 있었다.당연하게도 신유리는 이미 여러 사람들과 많이 만나본 탓에 어느 정도 이상한 사람에 대해 익숙해져있었다. 아무리 다가가기가 힘든 사람일지라도 신유리는 티를 내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는데 왜인지 오담윤과는 그

    최신 업데이트 : 2024-08-09
  • 나 말고 다   제449화

    서준혁이 말하지 않는다고 해도 자두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은 아이의 일을 언제가 됐든지 서창범이 꼭 알아낼 것이라고 혀를 내둘렀다.가만히 앉아만 있는 서준혁에게 이석민은 조심스레 하려던 말을 이어갔다.“서 대표님, 하 대표님께서 곧 찾아오실 겁니다.”화인 그룹의 내전은 이미 시작을 알렸고 하씨 가문 사람들은 서준혁의 편을 들어주었다.이석민은 사실 다른 직원들과도 이 “전쟁”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형제지간끼리 싸우는 모습은 많이 봤어도 부자지간이 이리도 심하게 싸우는 모습은 그는 종래로 보지를 못했었다.하지만 지금 이 부자지간의 싸움은 형제끼리 서로 싸우기만도 못하지 않는가?오담윤이 서창범의 사생아라는 사실은 이미 몇몇 사람들이 눈치를 챈 상황이었지만 아버지라는 사람이 자신의 사생아를 위해 친아들인 서준혁을 이리도 처참히 벼랑 끝까지 밀어내는 모습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이 봐도 안쓰럽고 가슴이 아팠다.게다가 이석민도 서준혁의 옆에서 몇 년 동안 그가 스스로의 힘으로 인맥들을 쌓아 지금 이 자리까지 서게 된 모습들을 하나하나 똑똑히 보았다. 만약 서준혁이 이러저러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다면 진즉에 악랄하고 교활한 수법을 쓰는 서창범에게 당했을 것이다.아무리 봐도 서창범이 서준혁을 대하는 태도는 친아들이 아닌 원수였다.신유리는 어젯밤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2”에게서 문자 한통을 받았는데 딱 한마디뿐이었다.[안전제일, 조심하세요.]그녀는 문자만 슥 확인하고는 대화창을 지워버렸고 답장도 하지 않았다.자두는 요즘 호기심이 폭발해 무엇을 봐도 신기해하고 재밌어했다. 어제 오후에는 밖에서 연을 날리는 어린 아이를 보고는 너무 신이 나 하며 들썩이는 자두의 모습에 신유리와 이신은 이른 아침부터 자두를 데리고 연을 날리러 출발했다.별장부근에는 커다란 잔디밭이 있었다. 도착한 이신은 상어모양의 연을 사서 날릴 준비를 했고 신유리는 자두를 안고 그의 옆을 지켰다.임아중도 마침 오늘 쉬는 날이라 특별히 편한 운동복세트를 맞춰 입고는 신

    최신 업데이트 : 2024-08-09
  • 나 말고 다   제450화

    신유리가 말을 마치고 이신 그들을 찾아갔다. 더 이상 서준혁과 이런 지루한 연극을 하고 싶지 않았다.이신은 멀지 않은 곳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녀가 다가오자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다 말했어?”“응.”신유리는 자두를 안아들며 평소처럼 말했다. “이제 돌아가자.”이신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서준혁이 서 있던 곳을 돌아보았는데 서준혁은 아직 떠나지 않고 어두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이신은 담담하게 시선을 거두며 바람에 흩날린 신유리의 머리카락을 정돈해주고 나서 그녀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서준혁은 그들이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신이 신유리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고 신유리와 자두도 같이 웃고 있었다.너무나도 화목해 보였다.오직 자신만이 버려져야 할 운명이었다.신유리와 서준혁의 대화는 그리 유쾌하지 않았지만 신유리도 말한 것처럼 가볍게 넘길 수는 없었다.서준혁의 말이 맞았다. 서창범은 언젠가 그녀들을 공격할 것이고 여러 방면에서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신유리는 지금 마치 어둠 속에서 독사에게 주시당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언제 독사가 튀어나와 자신을 물지 알 수 없었다.서준혁이 서씨 집안에 돌아왔을 때 서창범과 하정숙 그리고 어르신이 이미 있었다.오늘은 서씨 집안의 정기적인 가족 모임이었다. 서창범과 서준혁이 지금처럼 심하게 내분을 겪고 있어도 이 가식적인 가족 체면을 유지해야 했다.서준혁은 서창범과 하정숙이 함께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비웃는 것 같았다.“그 눈빛은 뭐야?” 서창범은 서준혁의 눈빛에 날카롭게 물었다.서준혁은 냉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이 뭐라고 생각하든 그게 맞아요.”“너!” 서창범은 화를 냈고 어르신은 그를 꾸짖으며 말했다. “그만해! 네가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 알고도 그에게 아무 말도 못 하게 하려고?”“그럴 리가요. 다른 아들을 데려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절제하고 있잖아요. 뭘 더 바라요?” 하정숙이 차갑게 말을 보탰다.서창범은 마치 화를 낼 곳을 찾은 것처럼

    최신 업데이트 : 2024-08-10
  • 나 말고 다   제451화

    이웃 아주머니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나서 신유리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속눈썹을 천천히 내리깔았다.잠시 후, 그녀는 예비키로 문을 열었다.오랫동안 방치된 냄새가 순간적으로 몰려왔다. 그녀는 문 앞에 잠시 서 있었는데 집 안의 가구 배치는 신유리가 살던 대로였다.그러나 집 안에는 먼지 하나 없어 누군가 청소한 것이 분명했다.신유리는 세입자에게 전화를 걸자 그는 잠시 멈칫하며 누구인지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순간, 그는 당황해하며 말했다. “유리 씨, 죄송해요. 요즘 너무 바빠서요. 그런데 어쩐 일이시죠?”신유리의 시선은 테이블 위에 멈춘 채 가까이 다가가 보니 짙은 네이비색의 단추가 놓여 있었다.그녀는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감정을 억누르며 물었다. “아니에요, 그냥 집에 문제가 없는지 수리할 곳은 없는지 궁금해서요.”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니요. 너무 편한데요? 이웃들도 좋은 분들이라 잘 지내고 있어요.”신유리는 짤막하게 답했다. “그럼 다행이네요. 실례했습니다.”그녀가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전화 너머로 말소리가 들려왔다.“양 팀장님, 서 대표님께 보내드릴 기획안 오늘 안으로 수정해 주세요. 줄리 씨가 방금도 와서 재촉했어요.”신유리는 아무 표정 없이 전화를 끊고 다시 테이블 위에 놓인 단추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이 디자인을 서준혁한테서 본 적 있었는데 그가 매우 좋아하던 디자인이었다.신유리는 눈을 감은 채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감정을 애써 억눌렀다.한편 화인 그룹, 양지원은 급히 기획안을 대표실에 가져갔다.최근 지사는 본사와 계약을 두고 경쟁 중이라 모두가 바삐 돌아쳤다. 양지원은 기획안을 내려놓더니 망설이며 서준혁을 쳐다보았다.서준혁은 계약서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천천히 들더니 물었다. “할 말이 있으면 하세요.”양지원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방금 신유리 씨가 전화를 걸어와 편하게 지내고 있는지, 수리할 곳은 없는지에 대해 물어보셨어요.”양지원은 사실 마음속으로 조금 망설이고 있었다. 전에

    최신 업데이트 : 2024-08-10
  • 나 말고 다   제452화

    오담윤은 진지하게 말했다. “자두를 본 적 있는데 정말 귀엽고 대표님과도 많이 닮았더군요.”“손녀?”성창범의 얼굴에는 비웃음이 스쳤다. 마치 웃긴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보였다.그는 오담윤을 바라보며 말했다. “신유리와 아이를 우리 서씨 가문에 들일 생각은 전혀 없어!”“하지만 대표님께서 자두를 엄청나게 아끼시는 것 같던데요. 전에 자두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대표님께서는 항상 보러 가셨다고 들었습니다.”서청범은 그를 쳐다보며 어두웠던 눈빛은 더욱 가라앉았다.오담윤은 옆에 서서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으며 마치 모든 것이 그와는 상관없는 것처럼 보였다.신유리가 떠나기 전 임아중은 그녀를 친구가 운영하는 프라이빗 레스토랑에 초대해 함께 식사했다. 임아중은 마음이 울적한 듯 말했다. “네가 이번에 가면 또 얼마나 오래 있다가 돌아오려나. 원래 일하는 것도 지겨운데 이젠 퇴근 후에 같이 밥 먹을 사람도 없어졌어.”임아중은 애처로운 표정으로 신유리를 바라보며 마치 그녀가 배신자라도 된 것처럼 비난의 눈빛을 보냈다.“그냥 출장 가는 거야. 돌아오지 않는 것도 아니고.”“돌아오더라도 성남은 오지 않잖아?” 임아중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전엔 그런 생각조차 못 했는데 시간이 왜 이렇게 빠르게 지나는 거지? 눈 깜박할 사이에 다 떠나버렸어.”신유리는 임아중의 말을 들으며 사실 마음이 씁쓸했다. 그녀도 성남시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만약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누가 본가를 떠나고 싶어 하겠는가? 다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이승윤에 서창범까지 신유리는 확신을 가지기 어려웠다.임아중은 신유리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뒤늦게 떠나려는 이유를 떠올리며 하려던 말을 되레 삼켜버렸다.생각 끝에 신유리에게 한 가지 소식을 전했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정숙 아주머니께서 이미 하씨 가문으로 돌아갔대. 게다가 창범 아저씨와 결혼한 것도 자의가 아니었다더라. 원래 아주 온화한 사람이었다고 했어.”“그런데 생각해 보면 어느 여자가 자기 남편이 몇

    최신 업데이트 : 2024-08-11
  • 나 말고 다   제453화

    신유리는 오담윤을 따라 들어가자마자 이미 앉아 있는 서창범을 보았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더 이상 다가가지 않았다.서창범은 매섭게 눈을 치켜뜬 채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로 모시기까지 참 어렵구나.”신유리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회장님의 초대는 보통 사람이 감당하기 어렵죠.”이것도 초대라고 할 수 있다면 신유리는 냉소한 눈빛을 숨긴 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창범은 눈을 가늘게 뜨고 신유리를 바라보았다. 권력자의 위압감은 강하게 뿜어져 나왔다.그는 신유리를 날카롭게 흘겨보고는 천천히 자두에게 시선을 옮겼다.자두는 졸린 듯 신유리의 품에 늘어져 있었다.신유리는 그의 시선에 본능적으로 자두를 품에 더욱 끌어안았다. “서준혁이냐?”신유리는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미 알고 있으면서 왜 묻는 거죠?”서창범은 얼굴이 살짝 어두워지며 불쾌하게 바라보았다.그는 눈빛이 변하더니 말했다. “내가 널 못 건드릴 거라고 생각하냐?”서창범은 냉소를 지으며 시선을 자두에게 고정시켰다. “예전부터 네가 일을 망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놈은 하필 믿지도 않고 널 계속 곁에 뒀지.”“결국 자신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고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대들다니." 서창범은 서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 자신의 판단이 옳고,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정이 깊은지 한번 보자고.”서창범의 얼굴은 약간 일그러졌다. 신유리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임아중에게 메시지를 보내려는 순간 이미 몇 명의 경호원이 안쪽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신유리는 얼굴이 즉시 굳어지더니 물었다. “지금 무슨 뜻이죠?”서창범은 콧방귀를 뀌며 신유리를 경멸하는 듯 바라보았다. “그때 병원에서 놓친 게 끝이라고 생각하나? 자네가 계속 운이 좋을 거라고 생각하나 봐?”신유리의 머릿속은 공포로 가득 찼다. 서창범의 냉혹함은 그녀가 이미 경험한 바 있었다.그녀는 자두를 안은 채 몸이 그대로 굳어졌다. 낙태 실에서 느꼈던

    최신 업데이트 : 2024-08-11
  • 나 말고 다   제454화

    신유리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서준혁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왔어?”“오담윤이 알려줬어.” 서준혁은 쉬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신유리는 자두를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고마워.”서준혁이 오지 않았다면 서창범은 그녀들을 가만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자두에게 무슨 짓을 할지도 몰랐다.서준혁은 신유리의 말에 마음이 쓰라렸다. “내 잘못이야.”그는 자신이 신유리와 자두를 위험에 빠뜨리게 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아니면 서창범과 오담윤은 그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서준혁은 호텔의 제일 위층을 바라보며 눈에 차가운 기운이 스쳤다. 입술을 오므린 채 방금 가라앉았던 분노가 다시 치밀어 올랐다.자두가 훌쩍이는 소리에 그는 생각이 끊겼다. 자두는 얼굴이 붉어진 채 신유리의 옷을 잡고 불편해했다.신유리는 자두를 달래줬지만 자두는 점점 더 불편해하는 모습이었다. 서준혁은 마음이 조여들며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자두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그는 자두가 놀랄까 봐 거의 힘을 주지 않은 채 머리 위에 살짝 올려놓았다. 그런데도 자두의 머리카락 몇 가닥이 그의 손바닥에 닿자 감촉이 너무 부드러운 나머지 너무 신기했다.다만 예상 밖에 자두는 마치 감지한 듯 얼굴을 들어 울먹이는 눈으로 서준혁을 바라보았다.그 순간, 서준혁은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먹먹했다.자두가 자신의 친딸임을 알고 나서 처음으로 그녀와 눈을 마주친 순간이었고 다른 생명체의 몸속에 자신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이렇게 분명하게 느낀 것도 처음이었다.서준혁은 그동안 자두를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어르신과 우서진이 자신과 많이 닮았다고 했던 말이 떠 올랐다.그러나 서준혁은 여전히 자두가 엄마를 더 닮았다고 생각했다.특히 눈매는 신유리와 똑같았다.생기 있고 아름다웠다.자두의 이마에 올려놓은 손은 심하게 떨렸고 다만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은 울고 있던 자두는 그를 바라보며 점점 울음을 그쳐갔다.갑자기 신유리의 핸드폰이 울리며 그의 생각을 끊었다.임아중

    최신 업데이트 : 2024-08-12
  • 나 말고 다   제455화

    화인 그룹 본사와 지사 간의 경쟁 소식을 신유리는 해외에서 반달을 머문 후에야 알게 되었다. 신유리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카톡 계정에 로그인하자 화인 그룹의 주가 폭락 소식이 쏟아졌다.그중에서도 양예슬의 메시지가 가장 많이 와있었다. 모두 화인 그룹 주가 문제에 대한 것이었다. 일주일 전에 보낸 메시지였다. 양예슬은 불안해하며 신유리에게 물었다. “화인 그룹이 파산하면 전 이제 어떡하죠?” 그리고 그녀가 몰래 찍은 사진들을 보내왔는데 사무실 사람들은 얼굴에 불안이 가득한 채 모두 바삐 돌아쳤다. “이미 2주 동안 야근 중이에요. 다들 거의 회사에서 살고 있어요. 석민 씨의 말에 따르면 대표님께서 먼저 본사 쪽 협력 기업을 빼앗아 왔다고 했어요.”“유리 언니, 절 받아줄 수 있어요?”서준혁이 화인 그룹 본사와 파트너쉽을 계약한 기업의 절반을 가져갔다는 사실에 신유리는 다소 놀랐다. 서창범의 성격상 서준혁이 그의 체면을 깎아버리는 순간 더 심한 보복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통제 욕이 매우 강해서 조금의 반항도 용납하지 않았다. 화인그룹 지사의 현재 실력으로 볼 때 다소 성급한 결정이었다. 결국 신유리의 예상이 맞았다. 서준혁의 공개적인 저격에 서창범은 거의 모든 분노를 쏟아냈다. 순식간에 양측은 치열하게 맞서기 시작했다. 만약 부자지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원수지간인 줄 알았을 것이다. 서창범과 오담윤의 강렬한 압박을 서준혁은 견뎌냈을 뿐만 아니라 되려 반격할 기세까지 보였다. 서창범은 비서가 건넨 서류를 땅에 내던지며 소리 질렀다. “이 녀석! 그동안 나 몰래 이렇게 많은 준비를 해두었다니!”옆에 있던 오담윤은 놀란 나머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사실 서준혁은 늘 서창범에게 눌려 있었기 때문에 서로 얼굴을 붉히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큰 타격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서준혁이 뒤에서 만반의 준비를 해두고 있었다. 본사와 협력한 대부분의 기업이 그의 손에 있었다.

    최신 업데이트 : 2024-08-12

최신 챕터

  • 나 말고 다   제637화

    태송백은 신연을 향해 내리치려 했다.태지연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본능적으로 신연을 밀어내며 그의 앞을 막아섰다.태송백은 태지연을 보더니 급하게 행동을 멈췄다.그러나 이미 큰 힘을 실은 탓에 갑자기 멈추려 해도 늦었다. 그는 급히 방향을 틀었지만 결국 태지연의 어깨에 맞았다.뼈가 부딪히는 고통에 태지연은 휘청거리며 균형을 잃었다. 팔을 타고 내려오는 통증에 그녀는 눈앞이 어지러워지더니 옆으로 쓰러지며 머리를 부딪혔다. 곧이어 머리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바닥에는 유리 파편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모든 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신연이 반응했을 때 태지연은 이미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쥐 죽은 듯 고요한 방 안에는 태지연의 신음소리만 울려 퍼졌다.“아파...”신연의 눈에는 깊고 검은 파도가 일었다. 그는 태지연의 곁에 무릎을 꿇은 채 다급하게 소리쳤다.“성한빈, 당장 구급차 불러! 지금 당장!”그는 태지연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녀가 다칠까 봐 두려웠다.신연은 이내 고개를 들어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태송백을 노려보며 당장이라도 그를 죽일 것 같은 기세였다.태송백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급히 다가왔다.“태지연... 지연아...”그는 어찌할 바를 모르며 아까의 광기 어린 얼굴은 온데간데없어진 채 공포에 질려 있었다.태지연은 그를 바라보더니 손을 들어 태송백의 옷자락을 붙잡으며 힘겹게 말을 꺼냈다.“오빠... 내 말부터 들어줄래?”태송백은 숨을 죽이며 말했다.“그래, 네 말 들을게. 오빠가 나빴어. 오빠가 미안해... 지연아, 나 진짜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알아. 오빠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거. 오빠는 항상 나를 제일 아껴줬잖아.”태지연은 여전히 고통에 시달린 채 서서히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정신이 점점 혼미해져 갔지만 그녀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며 낮게 말했다.“오빠, 난 신연 편을 들고 싶은 게 아니었어. 그저 엄마 아빠가 더 이상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야. 우리 가족이 다시

  • 나 말고 다   제636화

    태송백은 한층 더 날카로운 눈빛으로 신연을 노려봤다. 한참 후에야 이를 악문 채 말을 내뱉었다.“뒤에서 숨고만 있다가 부하들만 짖게 놔두더니 이제야 직접 나선 거냐? 나한테 기회를 준다고? 신연, 너 진짜 죽을 때까지 정신 못 차리는구나?”태송백은 태지연을 흘겨보며 비웃음을 흘렸다.“너 내 동생을 완전히 속였잖아. 지금도 태지연이 여기까지 와서 헛소리나 지껄이고 있고.”태송백의 말은 가시처럼 날카롭게 태지연의 가슴에 박혔다. 그녀는 주먹을 움켜쥐며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었다.“오빠, 제발 진정 좀 해요.”“태지연, 넌 입 다물어. 계속해서 그 새끼 편을 들면 넌 더 이상 내 여동생도 태씨 가문의 딸도 아니야!”태송백은 격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우리 태씨 가문이 이 꼴이 된 건 전부 그 새끼 때문이야! 아버지께서 지금 병원에 누워 있는 데다 나도 집에 돌아가지 못한 채 숨어 다녀야 하지. 내가 밖에서 무슨 꼴을 당하는지 알기나 해? 모든 게 다 저 새끼 때문이라고.”“엄마는 창녀에 아빠는 손님이고. 참, 너도 신유리 알지? 걘 얼마나 똑똑한지 저 새끼랑 상종도 안 해. 너 혼자 보물인 양 여기고 있는 거야.”태송백은 쌓여 있던 울분을 쏟아냈다. 둘 사이의 갈등은 이미 단순히 말로 풀 수 있는 정도가 아닌 자존심 문제였다.그는 반드시 신연에게 자신이 당한 굴욕을 몇 배로 돌려주겠다고 결심했다.태송백은 한 마디 한 마디에 독설을 내뱉었다.“태지연, 넌 더럽지 않냐?”그녀는 마치 얼어붙은 듯 제자리 굳어버린 채 태송백을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저었다.“오빠, 그만해요... 제발 그만 말하세요.”그녀는 차마 신연을 돌아볼 용기도 없었다.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녀는 목이 바싹 말라오더니 눈앞이 흐려졌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신연 앞을 막아서며 무시해 버리라고 하고 싶었지만 마치 나무 말뚝에 묶인 것처럼 꼼짝할 수 없었다.태송백의 독설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악의 어린 말들이 허공에 울려 퍼지

  • 나 말고 다   제635화

    성한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둘째 도련님께서 문이 열릴 때마다... 전에 우리 쪽 사람들이 다친 적도 있었습니다. 도저히 대화가 통하지 않습니다.”신연은 바닥에 부서진 유리 조각들을 흘겨보더니 무표정으로 말했다.“아직도 부술 게 남아있어?”성한빈은 순간 안색이 굳어졌다.태지연은 그들의 대화를 신경 쓰지도 못한 채 바닥에 흩어진 유리 조각들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잠시 자리 좀 비켜줄 수 있어? 오빠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어.”신연은 눈을 내리깔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약속하듯 말했다.“아무것도 안 할게. 믿어줘, 응?”“아직 불안정할 텐데. 너희 둘만 남겨둘 수 없어.”“걱정 마. 아무 짓도 안 할 거야. 그래도 내 오빠잖아. 어렸을 때부터 나를 가장 아껴주던 사람이야.”태지연은 신연을 바라보며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물건을 너한테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잖아. 나야말로 누구보다도 이 일이 빨리 끝나길 바라고 있어.”“우리도 빨리 예전으로 돌아가자. 아무리 예전처럼 되지 못하더라도 이 일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어.”태지연의 목소리는 다소 지친 듯했다.“연아, 나 정말 너무 힘들어.”신연은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한참 지나서야 그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한번 얘기해 봐.”태지연이 대답하기도 전에 신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근데 나가진 않을 거야. 보다시피 최근 태송백 상태가 불안정해. 단둘이 두는 건 불안해서 안 되겠어. 여기서 기다릴게.”현관에서는 안쪽 상황을 볼 수 없었다.그녀는 신연이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걸 알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바닥의 유리 조각들을 피하며 안으로 들어갔다.안쪽은 더 엉망이었다. 바닥에는 온갖 유리 파편들과 장식품들이 흩어져 있었다.태송백은 원래 성격이 좋지 않은 편인데 얼마나 화가 났는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그녀는 바닥의 유리 조각들을 피해 가며 간신히 거실까지 다가갔다. 순간 태송백의 격앙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내가 나가라고

  • 나 말고 다   제634화

    다음 날 아침, 신연은 평소처럼 아침을 준비해 두었다.테이블 위에는 더 이상 초콜릿케이크가 보이지 않았고 신연도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행동했다.그는 우유 한 잔을 따라 식탁 위에 놓더니 입을 열었다.“얼른 씻고 아침 먹어. 나 오늘은 일이 있어서 점심에 못 올 거야. 점심은 호텔에서 보내줄 거야.”태지연은 순간 마음이 움찔하며 신연에게 물었다.“회사? 아니면 어디?”신연은 동작을 멈추더니 속눈썹을 내리깐 채 일부러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응, 회사.”“연아.”태지연은 의자 등받이를 꽉 잡으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어젯밤 한 말은 전부 진심이야. 만약 네가 오빠를 건드리면 절대 용서 못 해.”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가라앉았고 손가락이 하얘질 정도로 의자 등받이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신연은 그제야 동작을 멈추고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태지연은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말했다.“만약 네가 오빠를 건드리면 나중에 내가 부모님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어?”조금 이기적일 수도 있는 말이지만 그녀는 어쩔 수 없었다. 어젯밤에 들은 말로만 신연이 정확히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태도를 봐서는 만약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면 태송백을 순순히 놓아주지 않을 게 분명했다.태지연은 손에 힘을 풀더니 힘겹게 신연 곁으로 다가갔다.“연아, 원하는 게 있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대신 찾아줄게.”순간 신연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목젖을 울렁이며 태지연을 내려다보았다.“내가 물건을 찾고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태지연은 잠시 멈췄다가 대답했다.“오빠가 말했어. 자기 손에 너한테 아주 중요한 게 있다고. 연아... 내가 찾아줄게. 내 오빠잖아, 내가 말해볼게.”어젯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그녀의 안색은 좋지 않았고 목소리도 다소 잠겨 있었다.순간 머릿속이 약간 혼란스러워졌다.신연은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마음이 급해진 그녀는

  • 나 말고 다   제633화

    태지연은 말을 마치고 신연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신연은 눈을 내리깐 채 무심한 시선으로 그녀를 훑어보더니 일으켜 세웠다.“네가 좋아하는 케이크 사 왔어. 얼른 먹어봐.”태지연은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신연을 쳐다보며 손을 뿌리치려고 했으나 되레 단단히 잡혔다.신연은 식탁 앞으로 가서 조심스레 케이크 상자를 열고는 라즈베리 초콜릿케이크를 꺼냈다.태지연이 가장 좋아하는 가게의 케이크였다. 평소에도 그녀는 신연한테 퇴근길에 케이크를 사 오라고 조르기도 했었다.하지만 그녀는 가장 즐겨 먹던 케이크를 보면서도 전혀 입맛이 돌지 않았다.그녀는 태송백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다. “오빠가...”그러나 신연이 바로 말을 끊어버렸다. “케이크 가게 주인이 또 둘째를 낳았대. 너도 기억하더라. 시간 되면 한번 들르라고 하길래 내가 대신 대답했어.”“신연...”“맛 좀 봐.”신연은 케이크를 그녀 앞에 건네며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봤다.태지연은 깊이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지금 먹고 싶지 않아. 연아, 다시는 나한테 거짓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 그러니까 솔직하게 대답해 줘. 네가 오빠를 데려갔어?”태지연의 말이 끝나자 거실에는 침묵만이 흘렀다.신연은 그녀를 바라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이것뿐이야?”태지연은 한 글자씩 또박또박 뱉어냈다. “대답해.”신연은 말했다. “일단 케이크부터 먹어봐.”태지연은 움직이지 않고 애써 차오르는 분노를 억눌렀다. 그녀는 이 상황에 점점 지쳐갔다.순간 가족과 신연 사이에서 고민하며 최선의 해결책을 찾으려 했던 자신이 우스꽝스러웠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신연과 가족이 서로 평화롭게 지내길 바랐다.하지만 그녀는 이제야 그토록 바라던 작은 소망이 애초에 이룰 수 없는 꿈이었음을 깨달았다.신연과 태씨 가문은 이미 끊어진 실처럼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사이였다.모두가 이제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오직 그녀만이 되돌릴 수 있다는

  • 나 말고 다   제632화

    태은정은 안색이 어두워진 채 눈 밑에 다크서클이 드리워져 있었다.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일들이 그녀를 지치게 했다. 그녀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지연아, 신연이 송백을 어디로 데려갔는지 알고 있어?”태지연은 잠시 멍해 있다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언니, 왜 항상 무슨 일만 생기면 내가 무조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마치 사람들이 모든 걸 나에게 털어놓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태지연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사실 진실을 모르는 사람은 유일하게 그녀뿐이었는데 말이다.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태은정은 멈칫하더니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무언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태지연을 한참 바라보더니 갑자기 반응하며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피곤한 듯 소파에 몸을 기댄 채 말했다.“그래. 내가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미안해. 지연아, 내가 너무 급했나 봐.”태은정은 미안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눈썹을 만지작거렸는데 이는 태은정이 곤란할 때 나오는 작은 습관이었다.태지연은 고개를 저었다.“방금 신연이 오빠를 데려갔다고? 그게 무슨 뜻이야?”태은정은 지금도 상황이 엉망진창이라고 느꼈다. 태송백은 이미 이틀째 연락 두절인 상태였고 아무리 연락을 해도 닿지 않았다.전혜린과 태성민은 신연의 짓이라고 확신했다. 게다가 태지연과도 연락이 닿지 않다 보니 한편으로는 부모님을 달래야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태송백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연락을 돌려야 했다.게다가 업친 데 덮친 격으로 자신의 문제까지 해결해야 했다. 그녀는 외국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도 이렇게 바쁜 적이 없었다.태은정은 한숨을 내쉬며 신중하게 말을 이어갔다.“그럼 신연이 요즘 뭐 하고 있는지는 알아?”태지연은 대답했다.“대부분은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어. 그리고 나머지 시간엔 회사에 있을 거야.”그녀는 잠시 멈춘 후 덧붙였다.“근데 나도 확신할 수 없어. 보통 자세한 건 나한테 말하지 않

  • 나 말고 다   제631화

    태지연은 마땅한 핑계조차 찾을 수 없었다. 신연은 그녀에 대해 잘 알다 못해 속마음까지 꿰뚫고 있을 정도였다.태지연은 눈물을 흘리며 처량한 모습으로 바라봤다.“왜겠어? 연아, 네가 생각해 봐.”“우리 아빠는 지금 병원에 있고 엄마랑 오빠는 널 원수처럼 대하는데 도대체 내가 어떡해야 하는 건데?”“누굴 탓해야 할까? 내 의사를 물어본 사람은 있어? 나도 모르겠어. 일이 왜 이 지경까지 되어버렸는지...”다들 그녀가 당연히 자신의 편에 서야 할 뿐만아니라 자신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누구도 그녀의 의사에 대해 물어본 적이 없었다.태지연은 바닥에 다리를 웅크리고 앉은 채 서로 사랑하던 사람이 갑자기 왜 그녀의 가족을 해치려는 사람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때 그녀를 아껴주던 부모와 오빠조차 이제는 그녀를 이용하려고만 했다.모두 그녀를 속이면서 정작 그녀한테는 진심을 다하라고 요구했다.태지연은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며 쉬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왜 내가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일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거야?”“날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면서 날 속이는데 왜 난 그걸 받아들여야만 하는 거야? 난 전혀 원하지 않는다고. 진실만을 원할 뿐이야. 그게 다야.”“이렇게 간단한 일조차 해줄 수 없는 거야?”“왜? 내가 바보 같아? 난 그냥 진실을 알고 싶었을 뿐인데 왜 너희는 날 바보 취급하는 거야?”그녀의 눈물은 순식간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머리를 무릎에 묻은 채 어깨가 떨릴 정도로 흐느꼈다.진실이 그녀 앞에 명백히 놓여 있었지만 누구도 진실을 말하려 하지 않았다.그들은 태지연이 절망에 빠진 채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도 계속해서 속이려고만 했다.무언의 눈물에서 작게 흐느끼다 마지막에는 이를 악문 채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태지연은 자신이 고집하는 게 과연 무엇인지 몰랐다. 그저 입술이 터져 피비린내가 느껴질 때까지 입술을 깨물었다.그 순간, 누군가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신연은 그녀의

  • 나 말고 다   제630화

    신연은 언제나 태지연에게 다정하게 대했다.그의 눈빛은 차분했고 그 어떤 흔들림도 없었다.하지만 태지연은 마치 약점을 찔린 듯 몸이 굳어버린 채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신연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지나치게 평온한 시선이 되레 태지연의 마음을 한껏 졸여왔다.“왜?”신연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지연아, 너도 그 계약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는 거지?”“착하지, 그만 돌려줘.”신연은 아이를 타이르듯 다정하게 말했다. “너한테 있는 거 알아.”“...없어.”태지연은 점점 눈빛이 흐려지더니 힘겹게 입을 뗐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 계약서라니, 난 모르는 일이야.”그녀는 주먹을 꽉 움켜쥐며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그제야 의지와는 다르게 부들부들 떨려오는 손을 진정시켰다.그녀는 오빠가 신연을 해치지 않기를 바랐고 마찬가지로 신연이 오빠에게 어떤 해를 끼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태지연은 누구에게도 그 계약서를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그녀는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을 내리며 모든 생각을 숨기려 했다.신연은 한참 그녀를 바라보더니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지연아, 나 거짓말하는 거 제일 싫어해.”태지연은 순간 몸이 굳었지만 여전히 고집스럽게 말했다. “나 아니야...”“정말이야?”신연이 다시 물었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응.””그럼 이게 뭔지 설명해 줄 수 있겠어?”신연은 말을 마치고 서랍에서 약병과 약을 꺼내 테이블 위에 던졌다.그녀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전에 침대 옆 서랍에 숨겨둔 비타민 약병과 피임약이었다.최근에 산 피임약을 아직 비타민 약병에 넣을 시간이 없었다. 태송백이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깜빡 잊고 있었다.신연은 순간적으로 창백해진 그녀의 얼굴을 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지연아, 말해 봐. 집에 왜 이런 약이 있는 거야?”그녀는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신연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잠긴 목소리로 변명했

  • 나 말고 다   제629화

    태지연은 눈앞이 흐려진 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앞만 보고 계속 걸어갔다. 머릿속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고 오직 신연만이 떠올랐다.그렇게 자존심 강한 사람이 어떻게 그런 가정에서 자랐을까? 신연이 그렇게 말하기를 꺼렸던 그의 가정은 도대체 어떤 모습이었을까? 더군다나 신기철이 진정 신연에게 미안하다면 왜 그에게 한 번도 어떤 보상을 하지 않았을까?모두가 신연이 차갑다고 말했지만 태지연만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신연은 단지 그녀 앞에 갑작스럽게 나타나 자신을 지켜준 소년만이 아니었다. 사실 그 역시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그녀는 고등학교 뒤편 작은 정원에 항상 떠돌이 고양이들이 많았던 게 기억났다. 그리고 신연이 작은 난간에 기댄 채 고양이들에게 사료를 나누어주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새끼 고양이들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항상 신연 주위에 모여서는 그의 다리를 비볐다.그는 분명 귀찮아하는 표정이 있었지만 고양이들을 밀어내지 않았고 마지막에는 새끼 고양이가 그의 발치에서 잠드는 것도 허락했다. 동물들의 감각은 예리한 법이다. 그들은 항상 신연을 잘 따랐다.그런 신연의 모습이 계속해서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며 애써 억눌렀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그녀가 사랑했던 신연은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 너무나도 좋은 사람이었다....갑자기 손목이 세차게 잡히며 태지연은 발걸음을 멈췄다. 그제야 눈앞의 상황이 서서히 선명해지며 뒤에서 태은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딜 그렇게 급하게 뛰어가는 거야?”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엘리베이터 앞까지 와 있었다. 방금 태은정이 그녀를 붙잡지 않았더라면 환자를 밀고 지나가던 간호사랑 부딪힐 뻔했다.그녀는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태은정은 그녀를 흘겨보더니 아무 말 없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데려갔다.차에 타고 나서야 태지연은 정신을 차리고 나지막이 속삭였다.“고마워.”“고맙긴. 내가 네 언니인데.”태은정은 물었다.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