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창범은 비서와 함께 카페를 나섰고 신유리는 여전히 앞에 놓인 두 종이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한참간이나 멍하니 보고만 있다 눈을 질끈 감았는데 아까보다 호흡이 더 거칠어졌다.얼마나 지났을까, 신유리는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고는 계약서 복사본을 내려다보았다.서창범이 말한 것대로 이 계약서에는 문제와 허점들이 많아 화인에서 고소를 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그녀를 재판장까지 세울 수 있었다.서류에 적힌 글씨도 분명 신유리가 직접 쓴 사인이었다.하지만 이 계약서는 분명-신유리는 가슴에 솜이 가득 찬 것처럼 답답하고 숨이 막혀 불편해졌고 그러는 바람에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힘들어졌다.그러는 와중 임아중에게서 걸려온 전화 한 통 덕분에 신유리는 정신을 겨우 차렸다.“끝났어? 내가 지금 데리러 갈게, 우리 먼저 밥이나 먹고 검사하러 가자.”임아중은 해맑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신유리는 상위에 놓인 서류들을 보며 어찌 해야 할지를 몰라 임아중의 말에도 고개를 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참 뒤, 임아중이 자신의 행동을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문득 든 신유리는 잔뜩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아니, 나 별로 가고 싶지 않아졌어.”“왜? 갑자기 왜 가고 싶지 않아? 유리야, 너 무슨 일 있어? 그 서창범인지 뭔지하는 사람이...”임아중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신유리는 바로 말을 잘라버리며 대답하고는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미안, 내가 지금 일이 좀 있어서.”같은 시각, 화인의 어느 한 사무실.이석민은 우서진을 데리고 들어왔고 그는 전에 건방져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사뭇 진지한 모습으로 자료 하나를 손에 들고 있었다.우서진은 그 자료를 바로 서준혁의 앞에 툭 내려놓으며 말을 했다.“네가 알아서 봐, 나는 쓸데없는 말 안할게.”사인을 하던 서준혁의 손이 뚝 멈추더니 고개를 들어 그가 건넨 자료를 보았다.서준혁은 아주 평온하고 담담한 모습이었고 얼굴에도 전혀 파동이 느껴지지 않았다.우서진은 한참간이나 기다렸지만 서준혁이 먼저 말을 하자 않
서창범은 그의 말에 눈빛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서준혁을 쭉 훑어보았다.서준혁의 하얗고 깨끗한 피부는 머리위에 있는 조명 덕분에 평소보다 더 차갑게 보였다.그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서창범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만족하셨다면 그 더러운 수작 이제 그만 하시죠.”서창범이 서준혁의 말에 대답하려고 입을 움찔거렸을 때, 서준혁은 이미 몸을 돌려 떠나버린 뒤였다.하정숙의 옆을 스쳐지나가던 서준혁은 그녀를 힐끔 쳐다보고는 아무 말 없이 가던 길을 갔고 그 순간, 뒤에서 서창범의 고함소리가 울렸다.“너 지금 이게 무슨 태도냐!”하정숙은 그의 말에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서창범에게 대답했다.“쟤가 무슨 태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신도 참 못난 어른이네요, 혼자 가서 자기 아들보다 어린 여자애한테 협박이나 하고... 안 쪽팔려요?”그녀의 말에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오른 서창범이 되물었다.“네가 뭘 안다고 지껄여?”“그래요! 나 아무것도 몰라요. 근데 그래도 당신보다는 나은 사람이에요! 준혁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이게 다 당신한테서 배운 거잖아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지.”집안에서 두 사람이 다투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고 그 소리가 듣기가 싫었던 서준혁은 밖으로 나와 옆에 세워져있던 차에 기대섰다.담배를 피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서준혁이지만 답답한 마음을 조금 달래고자 오래간만에 담배를 손에 들었다.진한 니코틴의 향기와 자욱한 연기가 피어오르자 서준혁의 마음은 약간 뚫리는 듯 했고 연기는 그의 눈빛에 묻어있던 냉랭함을 조금이나마 덮어주는 것 같았다.신유리는 임아중의 손에 이끌려 병원으로 향해 검사를 받았는데 그녀 또한 신유리가 병원 관계자에 의해 낙태실로 끌려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임아중은 진지한 표정을 하고 신유리에게 조심스레 물었다.“너 그 검사결과가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게 아니라는 확신은 있어?”신유리는 그녀의 말에 순간 눈이 동그래지더니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답을 얻은 것 마냥 그대로 굳어버렸다.요 며칠 온통 다른
주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신유리 뒤에서는 누군가의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신유리는 원래 몸을 돌려 확인하기가 싫었지만 공기 속에 은은히 섞여있는 익숙한 향기에 임신 중이던 신유리는 후각이 예민해져 반응을 할 수밖에 없었다.그런 그녀의 앞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서준혁은 신유리를 무뚝뚝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아까 금방 신유리 씨에게 제가 오늘 약혼 할 때 필요한 물건을 사러 왔다고 알려줬어요.”주현은 애교를 부리듯이 서준혁에게 말을 했고 그녀의 목소리에 서준혁은 하던 생각을 멈췄다.그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주현을 바라보며 냉정한 말투로 대답했다.“다 샀으면 이석민 씨보고 데려다 주라고 하겠습니다, 제가 회사에 남은 업무가 좀 있어서...”서준혁의 말에 일제히 그의 뒤를 확인한 사람들은 그의 뒤에 이석민이 업무용 가방을 들고 서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주현은 서준혁의 대답에 표정이 굳어지더니 무언가 참는 것처럼 이빨을 꽉 깨물며 입을 열었다.“필요한 물건들을 어떻게 이렇게 빨리 사겠어요? 그래도 약혼 할 때 쓰일 물건인데 신중하게 사야죠, 평생 단 하나 뿐인 결혼인데... 저랑 같이 구경하지 않으실래요? 우리 둘 일이라 저는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어요.”그녀는 서준혁이 대답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으며 고개를 돌려 신유리를 보더니 말을 이어갔다.“아, 맞다. 신유리 씨? 아버지께서 성남에 가서 신유리 씨 찾으러 다니신다던데... 만나셨나요?”주현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솔직하게 말하자면 우리 엄마가 그쪽 아버지에게 비행기 표도 사줬어요.”빙빙 돌려 말하는 주현이지만 이미 문선경까지 얘기를 꺼낸 그녀의 의도를 신유리가 모를 리가 없었다.신기철이 문선경에게 잘 보이려고 기를 쓴다는 사실을 신유리에게 재차 강요해 그녀를 민망하게 만들려는 속셈이었다.신유리는 고개를 들어 주현을 바라보며 담담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주현에게 물었다.“보아하니 신기철 씨랑 그쪽 엄마 사이가 무척이나 좋은가 보네요, 신기철 씨를 아빠라고 불러야
신유리는 오전 10시 비행기였고 임아중은 데려다주겠다고 말을 했지만 신유리가 거절해버렸다.핸드폰으로 부른 택시가 이미 별장에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 나가려는 때에 이신은 신유리를 대신해 캐리어를 들어주었고 임아중은 기분이 안 좋은 듯 무표정한 얼굴로 서있었다.“이번에 부산에 내려가서 한참 있겠다고 했지? 곡연 씨도 먼데도 공부하러 떠나고... 나 혼자 성남에서 심심해서 어떻게 살아?”신유리가 어린 아이를 달래듯 대답했다.“부산으로 와, 나 찾으러.”임아중은 원망스런 눈빛으로 신유리를 바라보며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을 했다.“됐어, 난 부산 안 좋아해. 그쪽 사람들 다 너무 열심히 살아, 재미없게.”이신은 트렁크에 신유리의 캐리어를 잘 정리해놓고는 조용하게 신유리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신유리는 이번에 부산으로 돌아가 홍란의 모든 과정들을 따라야 했고 적어도 3개월은 걸릴 듯싶었다.임신을 한 이래로 살이 찌기는커녕 나날이 야위어 가던 신유리를 바라보며 이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기다릴게.”그가 손을 내밀자 그의 손바닥 위엔 평안부적 하나가 쥐어져있었고 신유리는 조금 당황해하는 기색이었다.[명절 보낼 때 금방 주지 않았나..?]“그때 절에 갔을 때 되게 용하다고 해서... 내가 사왔어.”이신은 쓸데없는 말 하나 없이 신유리를 보았는데 그의 눈빛엔 다른 감정들이 가득 섞여져있는 것 같았다.“가져, 유리야.”이신의 목소리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듯 부드러웠고 신유리는 자상한 그의 목소리에 홀린 듯 평안부적을 건네받았다.사람들과 인사를 다 마친 신유리는 차에 올라 공항으로 출발했고 기사가 코너를 돌 때 신유리는 백미러로 낯선 하얀색 승용차 하나를 발견했다.그 차는 출발할 때부터 신유리가 탄 택시를 따라왔지만 그녀는 별 생각없이 슥 보고는 시선을 돌렸다.하지만 어느 다리에 다다랐을 무렵, 그 차는 여전히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고 일정한 거리를 항상 유지하고 있었다.“기사님, 조금만 빨리 가주실 수 있으실까요?”신유
신유리의 말이 떨어지자 서준혁은 귀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이명까지 들리기 시작했다.그는 처음엔 당황하고 막연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 나중에는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이 섞인 얼굴로 그 자리에 서서 신유리의 무감정한 눈빛을 보며 가슴에 총을 맞은 느낌이 들어 아파왔다.아프고 시리고 고통스러웠다.숨이 막혀오는 기분은 서서히 서준혁을 잠식시켰고 심장은 누군가의 거대한 손에 의해 꽉 잡힌 듯 점점 조여 오고 점점 아파와 제대로 서있기조차 바빴다.또렷하게 보이던 눈앞이 점차 흐려져 갔고 신유리의 공허한 눈빛만이 병실 안을 가득 채웠다.신유리의 목소리는 한번, 또 한 번 서준혁의 머릿속에서 맴돌았고 그는 견디기 힘들었다.[서준혁 씨 아이 없어졌어요.][서준혁 씨 아이.]서준혁의 냉랭하던 표정이 산산조각이라도 나는 것처럼 부서졌고 그는 신유리를 보며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방황했다.“서준혁 씨.”임아중의 목소리가 둘 사이의 침묵을 깨뜨렸고 그녀는 조롱 섞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지금 그 표정은 무슨 의미죠? 웃기지 않나요? 서 씨 가문에서 유리 뱃속 아이를 지우려고 검사결과도 조작하고 낙태까지 시키려고 끌고 가고... 이런 악독한 일들도 생각해낸 집안사람이 왜 지금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거죠?”“정말 토악질 나오네요, 우리 유리가 서준혁 씨를 만난건 인생에서 제일 재수 없고 잘못된 일이었어요!”임아중은 굉장히 큰 목소리로 신유리의 침대 옆에 서서 그녀를 보호해주며 말을 했지만 서준혁은 임아중에게 시선을 옮기기는커녕 뒤에 있는 신유리만 바라보고 있었다.신유리는 그냥 침대에 앉아있기만 했는데도 핏기 하나 없는 입술과 아무런 생기가 돌지 않는 눈빛 때문에 서준혁과는 아예 다른 세상의 사람 같았다.그녀의 눈에서 흐른 모든 눈물들을 가시가 되어 서준혁의 가슴을 찔렀고 이석민이 서준혁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을 때에는 이미 한시간이나 지난 뒤였다.서준혁은 병원 주위에 있는 크나큰 나무 밑에 서있었지만 이석민은 서준혁이 뭔가 예전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임아중이 도착했을 때, 서준혁은 이미 떠나버린 뒤였다.그녀는 푹 우려낸 삼계탕을 들고 와 건네주며 신유리에게 말을 걸었다.“이거 나 혼자 레시피 찾아보면서 만든 거니까 많이 먹어야 돼, 너 요즘 살이 너무 많이 빠져서 내가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신유리는 입맛이 없어 고개를 푹 떨구고는 핸드폰만 쳐다보았다.그녀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은 빠르게 소문이 퍼졌고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딱히 없던 신유리에게 고객들이 문자를 보내 걱정과 위로를 해줬다.채리연의 문자도 섞여있었고 그녀는 신유리에게 뜬금없이 이런 물음을 물었다.[너 경찰에 신고했다면서?]신유리는 그녀가 보낸 이 문자는 답장을 할 생각이 없어 채리연과 나눈 대화를 지워버리고는 핸드폰을 꺼버렸다.경찰에 신고는 사고가 난 그날, 이신이 직접 신유리를 대신해 해준 것이었다.원래는 흔히 있는 교통사고지만 신유리는 자신의 검사결과와 끌려가 낙태를 당할 뻔 했던 사실까지 모조리 말을 했고 경찰이 서창범에게까지 찾아가 조사를 한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도 신유리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서창범은 너무나 수법이 대담했고 신유리는 그저 작은 먼지와도 같이 보였는지 한치도 숨기지 않았다.하지만 그 또한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런 행동을 쉽게 한 것 이었고 서씨 가문이 누구와 비해도 꿀리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신유리는 이런 일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아주 작은 일이겠다는 예상을 했다.“너무 걱정마세요, 제가 저희 엄마랑 변호사를 통해 알아보라고 했거든요? 이 일 아주 잘 해결될거라고 그랬어요.”서씨 집안에서는 주현이 하정숙을 위로하고 달래주고 있었다.“돈만 많이 쥐어준다면 신유리도 절대 끝까지 쫓아오지는 않을 것 같아요.”하정숙은 잔뜩 썩은 표정을 하고는 피식 웃음을 짓더니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상위에 세게 내려놓으며 대답했다.“돈 가지고 해결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나는 신유리 그 *이 이 기회를 틈 나 우리 준혁이한테 들러붙을까봐 그게 걱정이야.”그녀는 평소와는 다른 진중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했
서준혁의 손이 조금씩 떨리더니 잔뜩 어두워진 안색으로 있었는데 딱 봐도 아픈 사람 같은 모습이었다.그는 신유리의 말에도 굴하지 않고 대답했다.“필요한 물건 있으면 가져다 드리고 나가겠습니다.”신유리는 서준혁을 쳐다보다가 시선을 병실 입구로 돌리더니 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서준혁은 신유리가 삐쩍 마른 모습과 야윈 얼굴을 보자 가슴이 너무 아파 숨도 잘 쉬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그는 그 책을 신유리에게서 제일 가까운 곳에 놓아주고는 신유리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나갔고 문 앞으로 다가가자마자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그러자 보이는 것은 신유리가 서준혁이 놓아준 책을 바로 먼 곳에 던져버리는 모습이었다.그는 신유리의 병실 문을 꾹 닫고는 자신의 방으로 향했고 보통 위출혈이 오면 아주 강한 고통에 시달리지만 서준혁은 그런 고통 따위 없이 우울감과 절망감에 휩싸여있었다.“어디 갔었니?”금방 병실로 돌아온 서준혁의 귀에 쨍한 하정숙의 목소리가 들렸다.서준혁은 고개를 들어 하정숙을 쳐다보며 되물었다.“여기는 왜 오셨습니까”“왜 왔냐고?”하정숙은 그의 물음에 순간 목소리가 높아지더니 차가운 시선으로 서준혁을 쳐다보다가 애써 진정한 뒤 대답했다.“물어볼 일이 좀 있어서 왔어.”“듣자하니 네가 스스로 하 씨 가문 사람들을 찾으러 갔다던데 맞아? 누기 너한테 가라고 했어? 그 사람들이 네가 먼저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거 몰랐니?”그녀는 날선 눈으로 서준혁을 쳐다보며 피식 웃더니 말을 이어갔다.“신유리 그 애 때문에 그러니? 너 지금 혹시 걔 그런 모습보고 정신을 못 차리는 거야?”하정숙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준혁은 고개를 들어 하정숙을 노려보며 굳게 잠겨있던 입을 열었다.“말 다 하셨습니까”원래 애써 진정했던 하정숙이 또 다시 화가 나기 시작했고 그녀가 뭐라 고함을 지르기 전에 서준혁이 먼저 말을 이어갔다.“다 말하셨으면 이제 그만 나가주시죠.”하정숙은 왔을 때도 화가 나 씩씩 거리면서 왔지만 갈 때는 더욱 더
서준혁은 심장은 한순간에 누군가에게 꽉 잡힌 듯 조여왔다. 그의 새까만 눈동자는 더욱 깊어졌고 목젖을 위아래로 굴렸다.그는 원래 회사에 회의하러 가려던 참이었는데 가는 길에 하정숙이 병원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거의 즉시 달려왔다. 며칠간의 업무로 그는 눈에 띄게 피곤해 보였다.신유리는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시선은 창밖을 향했다. 비록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지만 거부의 뜻은 뚜렷했다.하정숙의 방문은 사람들을 매우 불쾌하게 만들었다. 임아중은 신유리처럼 참을성이 없어 이를 악문 채 서준혁을 한 번 쏘아보고는 그녀를 쫓아냈다.경찰 쪽의 조사는 이신과 연우진이 맡았다.신유리는 병원에서 이틀 더 머물다가 퇴원했다. 퇴원하는 날 마침 날씨가 좋았다. 임아중은 특별히 그녀에게 빨간 외투를 가져왔다.“나쁜 기운을 날려버려야지.”신유리는 오랫동안 햇볕을 쬐지 못했던지라 병원을 나서는 순간 공기가 매우 신선하게 느껴졌다.그동안 그녀는 병으로 인해 피부가 병약할 정도로 하얬다. 빨간 외투는 그녀의 여위고 창백한 얼굴에 약간의 혈색을 더해주었다.이신은 주차장에 가서 차를 몰고 올 테니 그녀에게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다.그러자 신유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밖에서 기다릴게. 오래 누워있었더니 조금 걷는 게 좋을 것 같아.”임아중은 그녀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병원 입구에는 회화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가지는 이미 말라 있어서 푸른 잎 하나 보이지 않았다.그 나무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눈에 띄는 마이바흐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서준혁은 차 앞에 선 채 깊은 눈동자로 빤히 바라보면서 이쪽으로 걸어오려 했다. 다만 두 걸음도 채 못 가고 이신의 차가 그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신유리는 무심코 고개를 들어 보는데 귓가에 이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타.” 신유리는 그만 시선을 거두었다. 그녀가 입원해 있는 동안 이신은 거의 매일 병원에 갔지만 작업실때문에 바삐 돌아쳤다.임아중은 신유리를 도와 차에 짐을 실었다.“퇴원 축하해. 앞으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