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민이 서준혁에게 먹을 것을 사다주려고 외출한 탓에 온 방에는 서준혁과 신유리 둘만 남아있었다.“신연 씨는 제남에 처리할 업무가 있어 왔다고 합니다, 내일 아침 바로 부산으로 돌아갈 계획이라고 하니 설 명절은 제남에서 보낼 것 같지 않습니다. 태 씨 가문의 할아버님도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 좀 힘들 텐데...”조용한 방안에 서준혁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그는 소파에 기대앉아 고개를 들어 신유리를 쳐다보았고 몸이 아픈 탓인지 미간은 살짝 찌푸리고 있었고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욱 낮았다.신유리는 그런 그를 흘깃 쳐다보았고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태씨 가문과 신연 사이를 익히 들어왔지만 도통 어찌된 영문인지 쉽게 이해하지 못한 상황이었다.하지만 신연이 자신을 찾아와 조건을 제시할 때의 태도가 자꾸 생각나는 신유리는 신연에게 더 이상 무엇을 물어볼 흥미도, 의지도 없어져버렸다.신유리는 원래 서준혁이 떠난 후 바로 샤워를 하고 휴식을 취할 예정이었지만 외출을 한지 한참이 흐른 이석민이 갑자기 전화가 와 부근에 문을 연 식당이 없다는 소식을 전했다.필경 성북 거리는 성남 거리와는 달리 북적거리지 않고 조용한 곳이라 식당이 있다고 해도 개인가정에서 하는 자그마한 식당뿐이었다.게다가 지금은 마침 명절을 보낼 시간들이라 대부분 식당 주인들은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있을 것이 분명했다.이석민의 전화가 뚝 끊기자 서준혁의 시선은 신유리에게 향했고 신유리는 어두워진 안색으로 말을 꺼냈다.“조금 있다가 이석민 씨 오면 집에 데려다 주라고 할게요.”“네.”서준혁은 짧은 대답과 함께 몸을 일으키더니 신유리에게 물었다.“주방 잠간만 써도 되겠습니까?”신유리가 대답하기도 전, 서준혁은 이미 주방으로 발을 들였고 마치 이 주방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인 듯 냉장고에 얼려두었던 만두를 꺼냈다.그러나 이런 일을 잘 해보지 못했던 그인지라 만두를 꺼내고는 뭐부터 해야 할지를 몰라 헤매는 눈치였다.신유리는 서준혁이 아까운 음식을 행여나 낭비할까 두려웠고 무표
서창범은 끊임없이 서준혁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지만 서준혁은 단 한통도 받지를 않았다.신유리는 입맛에 전혀 없어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고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차가운 눈빛으로 서준혁을 바라보더니 물었다.“이제 그만 떠나시는게 어때요?”그녀의 말에 서준혁은 멈칫했고 옆에 있는 핸드폰은 무음 상태도 설정했지만 여전히 메시지와 전화가 수도 없이 오는 것이 눈에 보여졌다.신유리가 또다시 입을 열었다.“되게 방해되는데요, 저한테.”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예능은 어느덧 하이라이트로 향했고 관객들이 박수소리와 환호소리는 밖에서 터지는 폭죽들의 소리와 묘하게 어울렸다.서준혁의 새까만 눈동자로 신유리를 바라보더니 한참을 침묵하고 나서야 입을 뗐다.“신유리 씨는 제가 당신을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그럼 아니에요?”신유리는 여전히 냉랭한 눈빛으로 물으며 대답을 이어갔다.“업무상의 일로 저를 찾아오시는 거면 받아들일 수 있어요.”“오늘 섣달 그믐날이에요, 그래도 명절의 예절과 풍습이 있으니 오늘까지 서준혁 씨와 다투고 싶지 않아요. 지금 이미 저를 많이 방해하고 계시니까 빨리 떠나주셨으면 좋겠어요.”또박또박 한 글자씩 말을 하는 신유리의 태도는 누구보다 더 단호했다.서준혁은 그녀와 조금 눈을 마주쳤고 그녀의 시선은 또 다시 서준혁의 핸드폰으로 향했다.한통의 메시지가 더 전송되고 나서야 그는 몸을 일으켰고 핸드폰을 들고 신유리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꼿꼿하게 앉아 무표정한 얼굴로 있었다.낡은 건물의 방음은 매우 좋지 않았고 문도 잘 닫히지 않았는데 서준혁이 문밖으로 나설 때, 부실 듯 세게 닫는 소리는 온 방에 울렸다,신유리는 밥상에 앉아 잠시 멍을 때리는 듯싶더니 다시 젓가락을 들어 밥을 먹기 시작했다.밖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었고 서준혁은 짜증이 가득 난 표정으로 핸드폰을 내려다보며 전화를 받았다.수화기 너머 발신자는 그가 갑자기 전화를 받을지는 몰랐는지 조금 침묵하다다 말을 했다.“오늘 명절인데 너는 집에 올 생각도 없는 거냐? 네 눈
주현은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얼굴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했고 서준혁은 그녀를 보며 찌푸렸던 미간을 천천히 풀었지만 눈빛에는 아무런 흔들림이 보이지 않았다.“전 그쪽이랑 이런 재미없는 게임 놀아줄 생각 전혀 없습니다.”서준혁은 말을 마치고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갔고 주현은 그의 단호함에 뾰로통한 표정을 짓더니 발 빠르게 그의 뒤를 따랐다.이신과 신유리는 곧장 화원으로 향했고 멀리서부터 이나와 어느 할머니 한분이 같이 서있는 모습을 발견했다.할머니는 희끗희끗한 머리에 꽃무늬 안경을 끼고 있었고 이신은 신유리에게 할머니를 소개시켜줬다.“내 할머니야.”이신의 할머니는 인자한 인상을 지니고 있으신 분이었지만 나이가 드는 바람에 청력이 좋지만은 않아 그들의 말을 온전히 알아듣지는 못했다.그러나 신유리를 보는 눈빛만큼은 유독 자상하고 즐거워했다.신유리 그녀조차도 도통 자신이 왜 이렇게 나이가 있으신 분들에게 인기가 많은지를 이해하지를 못했다.그녀는 할머니와 조금 동안 얘기를 나눈 뒤, 시간도 많이 흘렀고 기온도 그다지 높지만은 않은 날씨였기에 이나는 할머니를 모시고 방으로 들어갔다.서씨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인물이 출중한지라 어디를 가도 한 눈에 보일만큼 유별났다.주현과 문성경, 그리고 하정숙은 환한 미소와 함께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옆에는 서준혁과 서창범이 서있었는데 화목하고 단결된 한 가족 같아 보이는 장면이었다.이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는 신유리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우리 할아버지께서 이번 생일파티에 거의 뭐 이 분야사람들 절반은 넘게 부르신 것 같아, 서 씨 가문은 너도 잘 알지?”“네, 사회생활이라는게 다 이렇죠 뭐.”신유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가 괜찮다면 됐네.”신유리는 주동적으로 먼저 서준혁을 찾아갈 생각이 눈꼽 만큼도 없었으니 딱히 신경을 쓸 생각이 전혀 없었다.그러나 신유리도 이신의 아버지는 오늘 처음 만났는데 서창범과는 달리 부드러운 미소로 그녀를 반겨주며 자상하게 대해줬다.이신이 신유리를 데려가 인사를
주현의 말투는 누가 들어도 불쾌하기 그지없었고 그녀는 신유리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뭐가 됐든 준혁 씨 아이가 아니면 됐어요, 저랑 그 사람 곧 약혼할 사이라 이 시기에 아이가 갑자기 툭 튀어나오면 귀찮잖아요.”신유리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서있었고 주현이 가까이 다가오자 핸드폰을 꽉 쥐더니 허리를 곧게 폈다.주현 또한 키가 꽤 컸고 거기에 하이힐까지 신은 탓에 신유리보다 더 커보였는데 주현은 신유리를 하대하듯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우리 같은 가정에서는 밖에 여자가 있는 거는 참아도 아이가 있는건 못 참는거 잘 아시잖아요.”주현은 잠시 멈칫대다가 신유리의 배를 힐끔 쳐다보고는 다른 곳에 시선을 돌렸고 그대로 베란다를 떠나버렸다.폭죽은 여전히 화려하고 예쁘게 터지고 있었지만 신유리는 그저 차디찬 바람만 느껴졌다.주현의 경고의 말들을 잘 알아들은 신유리는 평평한 자신의 배를 바라보며 생각했다.[신기하네, 여기 안에 새 생명이 들어있다니...]그 순간,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고 임아중과 곡연이 채팅방에 문자를 보내왔다는 것을 확인한 신유리는 몸을 돌려 베란다를 떠났다.실내에 들어서자 마침 이신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발견했고 그의 손에는 외투 한 벌도 들려있었다.그도 신유리를 발견하고는 발걸음을 천천히 멈추며 말을 했다.“밖에 기온이 낮아서... 난 네가 안 들어온 줄 알았어.”신유리는 멀지 않은 곳에서 환하게 웃으며 서준혁에게 다가가는 주현을 보았고 원래 서창범과 얘기를 나누고 있던 서준혁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주현을 쳐다봤다.그리고 늘 엄숙하고 진지한 표정이던 서창범은 주현을 보는 순간 표정이 인자하고 자상하게 바뀌었다.신유리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돌리려 이신에게 물었다.“조금 있다 다른 스케줄 있어?”이신은 신유리가 피곤해 보이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들고 있던 외투를 걸쳐주며 말했다.“아니, 이젠 없어. 집에 데려다줄게.”그의 몸에서 나는 은은한 레몬과 같은 향과 갓 밖에서
서창범의 눈빛에 가득한 경계를 본 신유리는 이 상황이 웃기기 시작했다.[아니, 내가 임신한게 도대체 무슨 상관이지?]주현은 얼굴에 미소를 띠며 신유리와 서창범을 번갈아가며 보다가 서창범의 눈빛을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입을 뗐다.“유리 씨, 우리 운명이라면 운명이지 않나요? 나중에 아이 태어나면 제가 정말 잘해줄 자신 있는데... 제일 좋은 이모해줘도 돼요?”신유리는 주현이 일부로 자신을 조롱하고 놀리려는 의도로 말을 한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고 굳이 주현과 엮이고 싶지 않아 대꾸하기가 싫었다.그리고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 하정숙의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현아,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 저쪽에서는 너랑 말도 섞기 싫어하는데 너는 왜 자꾸 치근덕거리려고 해?”“제일 좋은 이모 같은 소리한다, 나중에 너랑 준혁이가 아이 낳으면 그 누구보다 더 잘난 아이일거야. 쟤 뱃속에 아이가 무슨 핏줄일줄 알고?”신유리는 자신을 깔보는 것이 아닌 뱃속 아이까지 건드리는 하정숙의 말에 심기가 불편해졌고 미간을 팍 찌푸리며 입을 뗐다.“하 여사님, 말 좀 가려서 하시죠?”주현은 이런 신유리의 모습이 의외인 듯 그녀를 휙 돌아보았다.하정숙은 날선 신유리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내가 조심하긴 뭘 조심해? 너 혹시 무슨 수를 써서 준혁이 아이를 임신하고는 아이 엄마라는 명분으로 우리 서 씨 가문에 들어오고 싶은거 아니야?”“신유리, 만약 그런게 맞다면 얼른 그 마음 접기를 바랄게. 네가 보기에는 네 아이가 참 잘나고 소중하겠지만 네 뱃속에서 나오는 아이를 우리 집안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야.”하정숙의 말에는 온갖 조롱과 불평불만이 가득했고 신유리는 들끓어 오르는 분노를 꾹 참아보려 했지만 결국 폭발해버리고 말았다.“하 여사님, 망상증 있으시면 얼른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네요. 제 아이는 서준혁 씨, 그리고 서 씨 가문과는 전혀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 명심해두세요!”그녀의 표정과 목소리는 주변 공기마저
신유리가 성남에 돌아오고 나서부터는 신기철과 아예 연락을 뚝 끊었었다.그는 예전과 별 다른 점 없이 깔끔하고 신사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고 신유리는 먼발치에서 신기철이 아무런 표정 없이 문성경의 허리를 감싸 안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자연스러운 두 사람의 스킨십은 마치 둘의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암시해주는 것 같았고 신유리의 뜨거운 시선이 신기철에게도 느껴졌는지 그는 신유리쪽을 돌아보았다.그러자 신유리와 눈이 딱 마주친 신기철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버렸다.원래 신기철의 품에 폭 안겨있던 문성경 또한 신기철의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는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신유리를 발견한 문성경은 안색이 조금 어두워지더니 입을 열었다.“신유리 씨? 당신이 왜 여기에...”문성경의 물음에 답해려주던 신유리가 입을 떼기도 전에 신기철이 중간에서 가로채버리며 말을 했다.“선경아, 먼저 들어가서 나 기다려줘. 내가 처리할 일이 생겨서 말이야.”문성경의 시선은 신기철과 신유리 사이를 방황했고 그러다 뭔가 알아차린 듯 물었다.“신유리 씨가 당신이 말한 그 전 와이프 딸이라는 애야?”그녀의 눈빛과 말투는 마치 신기철의 머리 꼭대기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였다.신유리가 신기철을 다시 볼 때에는 그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문선경을 달래기 바빴다.문선경은 두 사람을 조롱하기라도 하는 듯 피식 웃더니 신기철의 말대로 먼저 안으로 들어섰고 신유리는 신기철과 문선경 사이가 뭐가 됐건 자신이랑 상관이 없으니 그냥 제 갈길을 가려는 생각뿐이었다.하지만 그녀가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기도 전, 뒤에서 급하게 달려오는 발걸음소리와 신기철의 다급한 부름소리가 들려왔다.“유리야, 잠간만! 기다려.”그의 목소리에 신유리는 발걸음을 멈췄고 신기철은 빠르게 다가와 그녀를 옆으로 잡아당기더니 말했다.“할 말이 있어.”신유리는 자신을 당기는 강한 힘에 흔들려 겨우겨우 중심을 잡은 뒤, 호텔 입구 앞으로 시선을 돌렸고 그곳엔 문선경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았다.[잘 달랬나
주현은 협박어린 눈빛으로 서준혁을 바라보며 물었는데 그녀의 목소리는 오직 서준혁과 본인만 들을 수 있게 아주 나지막했다.조금 떨어진 곳에 서있던 신유리는 주현이 뭐라고 하는지 전혀 들리지가 않았고 서준혁과 생글생글 웃고 있는 주현을 보다가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때마침 식당 밖으로 나오고 있던 이신은 뒤돌아선 신유리와 마주쳤다.“나와서 너 좀 찾으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 없었네.”이신이 먼저 신유리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여기 야경이 너무 예쁘다던데, 같이 가서 구경이나 할래?”그의 말에 신유리는 마침 바람을 쐬고 싶은 마음에 빠르게 허락했고 식당을 멀리 떠나서야 반응이 온건지 이신에게 물었다.“곡연 씨랑 다른 사람들은?”“조금 잇다가 술집 간다더라, 유명한 가수가 있다나 뭐라나...”신유리는 술집 같은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장소는 질색이라 이신과 함께 산책을 나온 것이 꽤나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곡연 씨가 너 기분 안 좋아 보인다고 하던데... 맞아?”이신이 머뭇거리며 계속 물었다.“왜 안 좋은지 나한테 말해줄 수 있어?”신유리가 아까 나간 시간에 이신은 마침 걸려온 전화를 받으려고 자리를 비웠고 그러는 바람에 서준혁과 주현, 그들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다.신유리는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 결국 입을 굳게 닫아버렸고 신기철과 문선경 사이는 솔직하게 말해서 자신이랑 큰 상관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하지만 자꾸만 신기철이 말한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내가 성남으로 돌아가지 않는건 다 이유가 있어서야, 나도 힘들다고!]신기철이 힘든 이유는 다 신유리 때문이었을까?성남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사람이 지금 성남을 건너뛰고 바로 시한에 떡하니 머물고 있으니 말이 안 되는 일이지 않는가?신유리는 신기철에 대한 믿음과 희망 따위는 이미 없어진지 오래였지만 그의 말을 생각하고 그의 모습을 떠올릴수록 마음이 불편했다.다음날 새벽, 신유리는 눈을 뜨자마자 바로 아래로 내려갔고 어제저녁에 다
양예슬과의 대화를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아 곡연이 찾아왔다. 버닝 스타가 이전에 시한에서 만났던 고객이 식사 초대를 해서 신유리와 함께 가자고 했다. 신유리는 시한에서 이신을 처음 만났던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그런데 오늘 운이 좋지 않았는지 호텔 문을 막 나서자마자 신기철을 마주쳤다. 신기철은 신유리를 보자마자 얼굴이 굳어지더니 입술을 우물쭈물하며 무언가 말하려는 듯했으나 밖을 한 번 쳐다보고는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신기철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신유리도 굳이 말을 걸지 않았다. 그냥 신기철을 못 본 척 지나쳤다. 다만 신기철은 호텔을 나가자마자 차에 올라타면서 차 문을 여는 순간 한 여성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아마도 문선경일 것이다.고객과의 식사 장소는 시한에서 유명한 한 음식점이었다. 모두가 아는 사이여서 식사 시간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이신은 신유리 옆에 앉아 그녀에게 술을 권하는 고객들을 모두 막아주었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유리 씨는 술을 마실 수 없습니다.”고객은 순간 놀랐지만 이내 크게 웃었다. “이 대표님, 정말, 제가 기억하기로는 버닝 스타에 이런 사람이 없었는데? 언제 새로 추가된 겁니까? 내가 당신을 알기 시작한 이후로 버닝 스타에는 새로운 직원이 없었던 것 같은데.”그는 다 아는 척하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신유리와 이신을 번갈아 보았다.신유리는 조금 놀랐는지 이신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버닝 스타는 계속 사람을 뽑지 않았어?"그녀는 버닝 스타도 화인 그룹처럼 정기적으로 인턴을 채용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버닝 스타에 있는 동안 그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신은 고객과 함께 술을 마셨지만 많이 마시지 않아 은은한 술 냄새만 풍겼다. 그는 일부러 신유리와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그녀의 질문에 가까이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뽑아.”신유리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럼 언제 뽑아? 캠퍼스 리크루트도 해?”이신은 깊은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