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음은 서준혁을 바라보면서 말투를 부드럽게 바꿨다. 신유리를 대하던 모습과 완전히 달랐다. 그녀는 약간 촉촉해진 눈으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오빠, 밖에 나가서 얘기하자. 바로 근처에 좋은 커피집이 있어요.”이석민은 미간을 찌푸리며 송지음을 한 번 흘겼다. 그는 송지음과의 관계가 별로 좋지 않았고 서로 친하지도 않았다. 송지음은 서준혁의 비서로 임명되면서 몇 가지 문제를 일으켰고 대부분 이석민이 마무리했었다. 비록 모두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일들이었지만 그런 일이 계속되면 짜증이 났다.송지음은 여전히 서준혁을 바라보며 자신이 화인 그룹을 언급하면 서준혁이 반드시 승낙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녀는 기대에 부풀었지만 서준혁은 아무런 감정도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하는데?”송지음은 당황해하며 설명했다. “하지만 화인 그룹 쪽에서는...”서준혁은 미간을 찌푸리며 송지음을 흘긋 살폈다. 그의 시선은 무관심해 보였다.송지음은 떨리는 마음으로 서준혁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해졌다. 그녀는 당황해하며 서준혁과 이석민을 번갈아 봤다.그녀는 좌우를 두리번거리다가 마지막으로 서준혁을 바라보며 손바닥을 꽉 쥐더니 겨우 긴장한 마음을 안정시키며 말했다. “화인 그룹의 일 외에 홍란의 일도 있잖아요. 오빠, 홍란을 이기고 싶지 않아? 듣기로 오빠가 이번 기획안을 위해 줄곧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하던데, 내가 도와줄게.”송지음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1층 회의실은 최근 금융 회의로 북적였고 서준혁 외에도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송지음의 목소리는 원래 조용했지만 말하다 보니 점점 커졌다. 서준혁에게만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서준혁을 도울 수 있다고 강조하는 듯 보였다. 서준혁은 눈을 반쯤 감은 채 송지음의 목소리가 귀가에 계속 들려와도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이석민이 적시에 말했다. “송 비서님, 회의가 곧 시작될 예정이니 대표님께서 쉬시도록 그만 가주시겠습니까?”송지음은 난처해하며 그 자리에 서서 말했다.
잠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조심해.”서준혁은 한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비스듬히 뒤쪽으로 당겼다. 신유리는 그제야 자신이 신기철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작은 계단 앞까지 다다랐고 바로 앞에 작은 틈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마터면 잘못 밟으면 넘어질 뻔했다.그 틈새를 바라보는 신유리의 얼굴에 냉기가 감돌았다. 신기철이 일부러 그랬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렇게 긴 계단에서 굳이 이쪽으로 데려온 것은 분명 의도적이었다.사람들은 오가면서 모두 이 틈새를 피했다. 신기철은 갑자기 신유리의 표정 변화를 보면서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으로는 약간 불안해졌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엄숙한 표정을 유지하며 서준혁을 바라보더니 낮게 기침하고 말했다. “서 대표님, 정말 우연이군요. 유리를 데리러 왔습니다.”사실 그의 말은 다소 억지스러워 얼굴의 엄숙함마저도 유지하기 어려웠다. 이전에 서준혁을 자신의 사위라고 착각한 것은 단지 오해였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그는 서준혁에게 미안한 감정이 있었다. 그리고 신유리 때문에 서준혁에게 실례를 범했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신기철은 분노가 가득 담긴 채 명령하듯 신유리에게 말했다.“같은 말을 두 번 다시 하게 하지 마렴. 네가 만약 그 아이를 기어이 낳으려 한다면 난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신유리는 그 말을 들으며 눈에 비웃음이 차올랐다. 신기철의 이런 자기중심적인 태도는 그녀를 어이없게 했다. 그는 10년 이나 그녀를 돌보지 않았으면서 그녀의 아이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말하다니?신유리의 목소리는 약간 떨리고 있었고 그녀는 정말 신기철의 파렴치함에 화가 났다. 그녀는 주먹을 움켜쥐며 비웃는 듯 신기철에게 반문했다. “당신은 나를 10년 넘게 방치했으면서, 이제 와서 내 아이의 할아버지가 되겠다고? 당신이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요?”신기철은 그녀의 반항적인 태도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신유리를 향해 손을 들어 올렸지만 서준혁은 재빨리 팔을 뻗어 신유리
하늘이 어둑해지자 송지음은 차에서 내렸고 차에는 아직도 달콤한 향수 냄새가 남아있었다.신연은 다소 불쾌한 눈빛으로 티슈 박스에서 소독 티슈 한 장을 꺼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닦았다.모든 손가락을 닦은 후 그는 무표정으로 차에서 내려 그 티슈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다시 차에 오르지 않고 롤스로이스 옆에 기대어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고 있었다. 100번째 수자를 세었을 때 핸드폰 벨 소리가 갑자기 울렸다. 신연은 전혀 의외가 아니라는 듯 몰라지 않고 시간을 확인했다. 정확히 여섯 시였다. 벨 소리가 세 번 울린 후 신연은 느릿느릿 전화를 받았고 전화 너머로 신기철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이번 달 돈은 왜 아직 안 보냈어? 신연, 너 내가 너희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태씨 가문에 말하면, 태씨 가문의 아가씨께서 너 같은 잡종이랑 계속 만나려고 할 것 같아?”신연은 그의 욕설을 듣고도 눈빛에 일말의 파동도 일지 않았다. 겨우 신기철이 말을 멈출 때까지 기다려서 비로소 입을 열었다. “왜? 당신의 소중한 딸한테서 돈을 받지 못했어? 그래서 나 같은 잡종에게 돈을 요구하는 거야?”신기철은 잠시 멈추더니, 더욱 거칠고 저속한 욕설을 퍼부었다. 신연은 차 문을 열고 핸드폰을 차 안에 던졌다. 그러고 나서 차 문을 잠그고 여전히 바깥에서 라이터를 가지고 놀았다. 이 라이터는 그가 금방 담배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태지연이 준 것이다.신유리와 주언은 회의장을 떠난 후 그녀는 다시 주언에게 밀크티를 돌려주며 말했다. “임산부는 밀크티를 마시면 안 돼요, 그래도 고마워요.”주언은 눈을 내리깔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그럼 내일 텀블러를 사 올까요?”“꼭 무언가를 사줄 필요는 없어요.”그녀는 주언이 텀블러를 안고 그녀를 데리러 오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날 밤 바쁜 업무로 주언과 함께 저녁을 먹지 못했고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이신의 전화를 받았다.신유리는 마침 그에게 물어볼 게 있었다며 웃으며 말했다. “너 정말 때맞
할아버지는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고 신유리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대답했다. “급하지 않아요. 검사하러 가실 때 같이 갈게요.”“그냥 작은 검사일 뿐이니 괜찮아.”어르신은 손을 흔들며 거절했다. 그는 참지 못하고 경고하는 눈빛으로 서준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녀석이 나를 덜 화나게 하는 게 최고지.”신유리는 할아버지가 말하는 기운이 넘치고 얼굴색도 나쁘지 않은 것을 보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그녀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서준혁을 쳐다보았다. 그의 어깨에는 아직도 물 자국이 선명했고 눈꼬리는 아래로 처져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신유리는 갑자기 오다 보니 주최 측에 휴가를 내지 않았다. 게다가 마무리 단계가 다가올수록 정리해야 할 내용이 많아져 할아버지에게 큰 문제가 없는 것을 보고 다시 회의장으로 돌아가려 했다. 할아버지는 그녀와 함께 밥을 먹고 싶어 했지만 신유리는 고개를 흔들며 회의장으로 돌아가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며 거절했다. 할아버지는 더 이상 설득하지 않았고 마침 류 사부님이 옆에서 약을 먹을 시간을 일깨워주었다. 신유리는 저녁에 와서 함께 식사하겠다고 약속했다. 요 며칠 날씨가 그다지 좋지 않아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어두컴컴했다. 신유리는 짐을 정리하고 떠날 준비를 했다. 방에서 나오는 순간, 서준혁이 따라 나왔다. 그의 손에는 외투가 들려있었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데려다줄게. 마침 홍연시와 미래의 일에 대해 할 말이 있어.”신유리는 차분하게 그를 바라보며 거절하지 않았다. 서준혁은 옷을 갈아입고 신유리를 데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여전히 이석민 차를 운전했고 그들은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행인들은 모두 겨울옷을 입고 있었고 신유리는 회색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할 말이 뭔데?”“어젯밤 진규성이 보낸 파일에 따르면 이신은 임시로 일부 디자인을 수정했어. 비용 예산이 다시 초과될 거야.”서준혁은 눈을 내리깐 채 핸드폰을 보며 고개를 들지 않고 말했다. “명세서
신유리는 파티가 끝난 후 바로 서준혁을 데리러 갔다.그녀는 룸 문을 열었고, 열자마자 어린 여자와 마주치게 되었다.여자는 깔끔한 얼굴에 빛나는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의 호감을 사는 얼굴이었다.신유리는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 여자는 바로 비서팀에 새로 온 인턴 송지음이었다.송지음은 고개를 들어 신유리를 쳐다보았고, 그녀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신유리에게 말했다. “유리 언니.”방금 밖에서 들어와서인지 신유리의 몸에는 차가운 공기가 조금 남아있었다. 그녀는 빼어난 용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자주 웃지 않는 탓에 사람들에게 왠지 모를 거리감을 주곤 했다.신유리는 담담하게 송지음의 말에 대답했다. 그녀는 룸 안을 한 바퀴 둘러본 후에야 시선을 송지음에게 멈추었다. “준혁이는?” 그녀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차가웠다.서준혁의 이름을 듣자 송지음은 당황하며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그녀는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더니 신유리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룸 안의 스피커 소리에 거의 묻힐 정도로 작고 부드러웠다.“서 대표님, 제 음료수 사러 가셨어요.”그녀의 말에 신유리는 눈썹을 찌푸렸다. 송지음을 쳐다보는 그녀의 눈빛에 이상한 감정이 조금 더 많아졌다.그녀도 서준혁을 오랫동안 따라다녔지만, 그동안 뭘 해달라고 번거롭게 만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지난달, 신유리의 차는 누군가에게 미행을 당했고 그로 인해 왼쪽 손목이 다쳤었다. 모든 거동이 불편했지만 서준혁은 그녀에게 물 한 잔 따라 준 적이 없었다.위아래로 자신을 훑어보는 눈빛에 송지음은 마음이 더 불안해졌다. 그녀는 옷자락을 만지작대며 어색한 말투로 말했다. “서 대표님, 금방 오실 거예요.”하지만 신유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저번 주에 급히 합정에 회의를 참석하러 갔었다. 오늘 서둘러 서씨 집안의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돌아온 것이다.서준혁은 집안사람들과 사이가 안 좋았다. 그래서 이런 가족 모임은 항상 신유리보고 대신 참
신유리가 다음 날 다시 회사에서 송지음을 보게 되었을 때 누군가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었다.송지음도 신유리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빠르게 시선을 거두었다. 피하는 느낌이 조금 있었다.신유리는 발걸음이 조금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바로 대표 사무실로 들어갔다.단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을 뿐이었다. 점심시간, 비서팀의 리사가 잘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리사가 바로 아침에 송지음을 곤란하게 만든 그 장본인이었다.오후가 되었을 때, 신유리는 대표 사무실에서 송지음을 만나게 되었다.그녀는 쭈뼛거리며 사무실 안에 서 있었고, 풋풋함이 가득한 앳된 얼굴과 낮은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유리 언니, 성 대표님이 대표 사무실로 오라고 하셨어요.”서준혁의 말이 맞다. 송지음은 확실히 착한 사람이었다.신유리는 손으로 서류를 뒤적거렸고 눈꼬리를 치켜올렸다. 비록 앉아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압박감은 엄청났다.그녀의 말투에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서준혁이 너 보고 뭐 하라고 했어?”송지음은 더더욱 떨리기 시작했다. “옆에 따라다니면서 많이 배우라고 하셨어요.”신유리는 서류를 덮더니 담담한 목소리로 그녀의 말에 대꾸했다. 곧이어 그녀는 자리 하나를 그녀에게 가리켰다. “저기로 가.”대표 사무실 비서는 다른 비서들과 달랐다. 신유리까지 합쳐도 세 명밖에 되지 않았다.이렇게 송지음이 많아졌으니, 지금 상황에서는 제일 구석진 자리를 그녀에게 남겨줄수 밖에 없었다.송지음의 얼굴은 대놓고 굳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빠르게 자신의 감정을 조절했다.머뭇대는 송지음의 모습에 신유리가 물었다. “더 할 말 있어?”송지음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고맙습니다, 유리 언니.”신유리는 뭔가 생각에 잠긴 듯 잠시 송지음을 관찰하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 “서준혁이랑 어디까지 갔어?”송지음은 꼬리가 잡힌 듯 서서히 눈을 동그랗게 뜨며 황송한 얼굴로 신유리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불안한 모습으로 신유리에게 해명했다.“저와
신유리는 조용히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서준혁이 말 한 그 일이, 송지음이랑 같이 야근하는 거였구나.그녀는 감정을 가다듬더니 아무 일 없는 척하며 핸드폰을 챙기러 안으로 들어갔다.두 사람은 그제야 그녀의 존재를 발견했다.송지음은 바로 긴장하기 시작했다. “유리 언니, 오늘 내로 꼭 보고서 완성할게요.”“그래.” 신유리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고는 책상에서 핸드폰을 챙겼다. “서 대표님이 도와주시는데, 당연히 다 완성해야지.”그녀의 말이 맞았다. 서준혁 같은 BOSS가 일을 도와주는데, 수월한 게 당연하지.단지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던 송지음의 얼굴이 창백해질 뿐이었다.서준혁은 아무런 생각 없이 고개를 들어 신유리를 쳐다보았다. “왜 아직도 안 갔어?”신유리는 핸드폰을 흔들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 “까먹어서. 지금 갈 거야.”호연의 파티는 금주 호텔에서 진행됐다. 모두 전부터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이었다.혼자 파티에 찾아온 신유리의 모습에 그녀에게 다가와 서준혁은 언제쯤 도착하는지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신유리는 가뿐하게 상황을 처리했다. “저녁에 도저히 미룰 수 없는 회의가 있어서요. 최대한 빨리 오실 거예요.”다들 무슨 상황인지 대충 마음속으로 눈치채고 있었다.근데, 서준혁이 진짜로 왔다.파티가 절반 정도 진행되었을 때, 그가 송지음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남자의 고결한 분위기는 사람을 압도했고, 옆에 서 있던 아가씨도 귀엽고 발랄했다.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신유리와 얘기를 나누던 사모님이 고개를 까닥이며 뒤를 가리켰다. “서 대표 옆에 있는 아가씨는 누구야?”송지음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와인잔을 들고 있던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서준혁도 그녀를 보게 되었다. 오가는 시선 사이로, 그녀는 바로 그의 뜻을 알아차렸다.신유리는 사모님에게 말 몇 마디를 건네고는 그에게로 발걸음을 돌렸다.“안 온다며?” 그녀는 와인잔을 든 채로 나른하게 물었다.“얘한테 좀 보여주려고.” 서준혁의 시선은 옆에 있는 송지음에
그럼 나는.나랑 서준혁이 함께한 8년은 뭔데?신유리는 인내심 넘치게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숨소리도 좀 더 가벼워진 듯했다.서준혁의 말투는 방금 송지음보고 착하다고 했을 때랑 별반 다름이 없었다. 단호하고 담담했다. “너도 알잖아. 너 내 스타일 아닌 거.”그건 맞지.처음에 잠깐동안 서준혁 옆에 여자가 없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나중에 그가 만난 여자들은 모두 신유리와 큰 차이가 있었다.그녀는 착하고 말 잘 듣는 여자를 좋아했다. 하지만 신유리처럼 그의 말을 듣는 여자는 좋아하지 않았다.신유리의 눈동자에는 어둠이 숨어져 있었고, 그 속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목소리만 여전히 물처럼 차가웠다. “오늘 밤 여기 있을 거야?”서준혁은 몸을 일으키더니 옆에 있던 외투를 챙겼다. “됐어.”신유리는 서준혁의 됐다는 말이 두 사람 사이를 가리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단지 다음날 회사에 도착했을 때, 송지음의 자리가 그녀의 옆자리로 바뀌었을 뿐이었다.이 자리는 마침 대표 사무실과 마주 볼 수 있었다. 고개를 들면 바로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송지음은 그녀와 인사를 했다. “유리 언니, 좋은 아침이에요.”신유리는 가방을 챙기더니, 그녀의 눈동자에 담긴 숨길 수 없는 기쁨을 보며 담담한 말투로 대답했다. “내가 배정해 준 자리가 마음에 안 들어? 어제 말하지 그랬어?”그 말에 송지음은 멍해지고 말았다. 그녀는 허둥지둥 해명했다. “마음에 안 든 게 아니에요. 일하는 거 지켜보시겠다면서 서 대표님이 오라고 하셨어요.”말을 하던 그녀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신유리의 존재를 인식했고, 서서히 눈빛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신유리는 본인이 백설 공주 계모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일부러 사람을 괴롭히고 있는 것 같았다.“일해.”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송지음의 자리가 바뀌었다는 말은 빠르게 회사에 전해졌다. 신유리가 인수인계하러 아래층에 갔을 때, 그녀는 이러쿵저러쿵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그들은 신유리의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