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어둑해지자 송지음은 차에서 내렸고 차에는 아직도 달콤한 향수 냄새가 남아있었다.신연은 다소 불쾌한 눈빛으로 티슈 박스에서 소독 티슈 한 장을 꺼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닦았다.모든 손가락을 닦은 후 그는 무표정으로 차에서 내려 그 티슈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다시 차에 오르지 않고 롤스로이스 옆에 기대어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고 있었다. 100번째 수자를 세었을 때 핸드폰 벨 소리가 갑자기 울렸다. 신연은 전혀 의외가 아니라는 듯 몰라지 않고 시간을 확인했다. 정확히 여섯 시였다. 벨 소리가 세 번 울린 후 신연은 느릿느릿 전화를 받았고 전화 너머로 신기철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이번 달 돈은 왜 아직 안 보냈어? 신연, 너 내가 너희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태씨 가문에 말하면, 태씨 가문의 아가씨께서 너 같은 잡종이랑 계속 만나려고 할 것 같아?”신연은 그의 욕설을 듣고도 눈빛에 일말의 파동도 일지 않았다. 겨우 신기철이 말을 멈출 때까지 기다려서 비로소 입을 열었다. “왜? 당신의 소중한 딸한테서 돈을 받지 못했어? 그래서 나 같은 잡종에게 돈을 요구하는 거야?”신기철은 잠시 멈추더니, 더욱 거칠고 저속한 욕설을 퍼부었다. 신연은 차 문을 열고 핸드폰을 차 안에 던졌다. 그러고 나서 차 문을 잠그고 여전히 바깥에서 라이터를 가지고 놀았다. 이 라이터는 그가 금방 담배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태지연이 준 것이다.신유리와 주언은 회의장을 떠난 후 그녀는 다시 주언에게 밀크티를 돌려주며 말했다. “임산부는 밀크티를 마시면 안 돼요, 그래도 고마워요.”주언은 눈을 내리깔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그럼 내일 텀블러를 사 올까요?”“꼭 무언가를 사줄 필요는 없어요.”그녀는 주언이 텀블러를 안고 그녀를 데리러 오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날 밤 바쁜 업무로 주언과 함께 저녁을 먹지 못했고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이신의 전화를 받았다.신유리는 마침 그에게 물어볼 게 있었다며 웃으며 말했다. “너 정말 때맞
할아버지는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고 신유리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대답했다. “급하지 않아요. 검사하러 가실 때 같이 갈게요.”“그냥 작은 검사일 뿐이니 괜찮아.”어르신은 손을 흔들며 거절했다. 그는 참지 못하고 경고하는 눈빛으로 서준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녀석이 나를 덜 화나게 하는 게 최고지.”신유리는 할아버지가 말하는 기운이 넘치고 얼굴색도 나쁘지 않은 것을 보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그녀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서준혁을 쳐다보았다. 그의 어깨에는 아직도 물 자국이 선명했고 눈꼬리는 아래로 처져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신유리는 갑자기 오다 보니 주최 측에 휴가를 내지 않았다. 게다가 마무리 단계가 다가올수록 정리해야 할 내용이 많아져 할아버지에게 큰 문제가 없는 것을 보고 다시 회의장으로 돌아가려 했다. 할아버지는 그녀와 함께 밥을 먹고 싶어 했지만 신유리는 고개를 흔들며 회의장으로 돌아가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며 거절했다. 할아버지는 더 이상 설득하지 않았고 마침 류 사부님이 옆에서 약을 먹을 시간을 일깨워주었다. 신유리는 저녁에 와서 함께 식사하겠다고 약속했다. 요 며칠 날씨가 그다지 좋지 않아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어두컴컴했다. 신유리는 짐을 정리하고 떠날 준비를 했다. 방에서 나오는 순간, 서준혁이 따라 나왔다. 그의 손에는 외투가 들려있었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데려다줄게. 마침 홍연시와 미래의 일에 대해 할 말이 있어.”신유리는 차분하게 그를 바라보며 거절하지 않았다. 서준혁은 옷을 갈아입고 신유리를 데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여전히 이석민 차를 운전했고 그들은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행인들은 모두 겨울옷을 입고 있었고 신유리는 회색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할 말이 뭔데?”“어젯밤 진규성이 보낸 파일에 따르면 이신은 임시로 일부 디자인을 수정했어. 비용 예산이 다시 초과될 거야.”서준혁은 눈을 내리깐 채 핸드폰을 보며 고개를 들지 않고 말했다. “명세서
송지음은 한세형의 옆에 서서 달달한 시럽 같은 목소리로 일부로 신유리에게 들려주려는 듯 높은 소리로 말했다.그걸 들은 한세형은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가서 통보해, 아니면 유시오더러 통보하라고 하던지.”송지음은 한세형의 대답에 표정이 확 밝아지더니 신유리가 당황해하고 실망한 모습을 보려고 한껏 잘난 체 하며 신유리가 있는 방향을 슥 쳐다보았다.하지만 송지음이 고개를 돌렸을 때에는 신유리가 이미 자리를 떠난 버린 후였다.송지음이 한세형에게 묻는 그 순간부터 더는 이곳에 있기가 싫었던 신유리는 상황을 보아하니 한세형에게 더 볼일이 없을 것 같아 시간낭비를 하고 싶지 않았다.장수영은 송지음에 대한 불만이 들끓어 올랐고 입이 삐죽 나와서는 말했다.“장은광 씨 정말 너무 바보 같지 않아요? 저런 불여시 같은 여자랑 만나고. 그리고 저 한세형이라는 사람도 딱 보니까 별로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신유리는 장수영의 말에 대꾸해주지 않았고 곧 몸을 돌려 오혁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갔다.오늘은 부선생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요즘 마무리 작업 때문에 전문가선생님 몇 분을 불러 이곳을 지키게 하였다.나하진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신유리는 꽤나 알고 있었기에 오늘 부선생을 찾아가 얘기를 좀 나누고 싶었다.오후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송지음은 계속해서 시비를 걸어왔지만 신유리는 항상 기복 없는 단호한 태도로 그녀를 방어했다.거의 끝이 날 때쯤이 돼서야 송지음은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띠고는 몸을 일으키며 한세형에게 낮은 소리로 뭐라고 말을 하더니 고개를 들어 신유리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신유리 씨, 한가지 안타까운 소식 하나 전해드리죠. 저희 회사에서 상의한 결과 버닝스타는 이번 입찰회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는 결론을 얻었어요.”그녀는 서류 하나를 책상에 툭 던지며 말을 이어갔다.“준비하신 서류 다 챙겨서 돌아가세요, 여기 놓으면 방해되니까.”마침 회의도 끝이 났고 모든 사람은 다 제자리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신유리를 민망하게 만
빠르게 대화주제를 바꾸는 서준혁 때문에 신유리는 뭐부터 말해야할지 몰라 조금 멈칫거리며 입을 열었다.“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으면 돼요.”신유리는 전에 가난했던 시절이 있던 터라 근검절약 정신은 이미 몸에 베여있었다.그녀의 말에 서준혁은 피식 의도를 알 수 없는 웃음을 터뜨렸고 호텔로 돌아가서는 도시락을 신유리가 아닌 이석민에게 들려주었다.할아버지는 별로 음식을 드시지는 않았지만 온 저녁 기분이 좋으신지 내내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나이가 있으신 탓인지 8시도 되지 않았지만 슬슬 졸려했고 신유리는 유씨 아저씨더러 얼른 할아버지를 모시고 호텔로 돌아가라는 말을 했다.할아버지는 서준혁과 신유리를 번갈아보며 뭔가 할 말이 있어보였는데 그 모습에 신유리는 할아버지를 달래듯 입을 뗐다.“저랑 준혁 씨는 따로 할 말이 있어서요.”그들은 호텔 2층에서 함께 밥을 먹었고 할아버지 방은 마침 딱 위층에 있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면 되는 간단한 동선이라 안전에 관한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보였다.신유리가 말한 서준혁과 나눌 얘기는 바로 입찰회에 관한 말이었다.버닝스타와 화인은 한곳에 묶여있는 터라 만약 버닝스타가 철저히 거절당한다면 화인그룹 또한 별 희망이 없게 된다.“나하진 씨 구체적인 입국 시간이랑 날자 알고계세요?”신유리는 단도직입적으로 서준혁에게 물었다.“말로는 다음 달 초쯤이랍니다.”서준혁의 말에 시간을 계산해본 신유리는 다음달초가 되기까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남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신유리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급해나는지 서준혁에게 물었다.“제가 오늘 부 선생님이랑 장수영 씨한테 물어봤는데 나하진 씨 대하기가 되게 힘들다던데요, 서준혁 씨 생각에는 나하진 씨가 한세형 씨 쪽을 믿을 것 같나요 아니면 저희를 믿을 것 같나요?”신유리는 무의식적으로 서준혁과 자신을 같은 팀이라고 단정 지었다는 일을 자기가 말하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했다.서준혁은 생각에 빠진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손끝으로 책상을 툭툭 쳐대다가 담담한 말
신유리는 파티가 끝난 후 바로 서준혁을 데리러 갔다.그녀는 룸 문을 열었고, 열자마자 어린 여자와 마주치게 되었다.여자는 깔끔한 얼굴에 빛나는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의 호감을 사는 얼굴이었다.신유리는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 여자는 바로 비서팀에 새로 온 인턴 송지음이었다.송지음은 고개를 들어 신유리를 쳐다보았고, 그녀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신유리에게 말했다. “유리 언니.”방금 밖에서 들어와서인지 신유리의 몸에는 차가운 공기가 조금 남아있었다. 그녀는 빼어난 용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자주 웃지 않는 탓에 사람들에게 왠지 모를 거리감을 주곤 했다.신유리는 담담하게 송지음의 말에 대답했다. 그녀는 룸 안을 한 바퀴 둘러본 후에야 시선을 송지음에게 멈추었다. “준혁이는?” 그녀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차가웠다.서준혁의 이름을 듣자 송지음은 당황하며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그녀는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더니 신유리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룸 안의 스피커 소리에 거의 묻힐 정도로 작고 부드러웠다.“서 대표님, 제 음료수 사러 가셨어요.”그녀의 말에 신유리는 눈썹을 찌푸렸다. 송지음을 쳐다보는 그녀의 눈빛에 이상한 감정이 조금 더 많아졌다.그녀도 서준혁을 오랫동안 따라다녔지만, 그동안 뭘 해달라고 번거롭게 만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지난달, 신유리의 차는 누군가에게 미행을 당했고 그로 인해 왼쪽 손목이 다쳤었다. 모든 거동이 불편했지만 서준혁은 그녀에게 물 한 잔 따라 준 적이 없었다.위아래로 자신을 훑어보는 눈빛에 송지음은 마음이 더 불안해졌다. 그녀는 옷자락을 만지작대며 어색한 말투로 말했다. “서 대표님, 금방 오실 거예요.”하지만 신유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저번 주에 급히 합정에 회의를 참석하러 갔었다. 오늘 서둘러 서씨 집안의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돌아온 것이다.서준혁은 집안사람들과 사이가 안 좋았다. 그래서 이런 가족 모임은 항상 신유리보고 대신 참
신유리가 다음 날 다시 회사에서 송지음을 보게 되었을 때 누군가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었다.송지음도 신유리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빠르게 시선을 거두었다. 피하는 느낌이 조금 있었다.신유리는 발걸음이 조금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바로 대표 사무실로 들어갔다.단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을 뿐이었다. 점심시간, 비서팀의 리사가 잘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리사가 바로 아침에 송지음을 곤란하게 만든 그 장본인이었다.오후가 되었을 때, 신유리는 대표 사무실에서 송지음을 만나게 되었다.그녀는 쭈뼛거리며 사무실 안에 서 있었고, 풋풋함이 가득한 앳된 얼굴과 낮은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유리 언니, 성 대표님이 대표 사무실로 오라고 하셨어요.”서준혁의 말이 맞다. 송지음은 확실히 착한 사람이었다.신유리는 손으로 서류를 뒤적거렸고 눈꼬리를 치켜올렸다. 비록 앉아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압박감은 엄청났다.그녀의 말투에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서준혁이 너 보고 뭐 하라고 했어?”송지음은 더더욱 떨리기 시작했다. “옆에 따라다니면서 많이 배우라고 하셨어요.”신유리는 서류를 덮더니 담담한 목소리로 그녀의 말에 대꾸했다. 곧이어 그녀는 자리 하나를 그녀에게 가리켰다. “저기로 가.”대표 사무실 비서는 다른 비서들과 달랐다. 신유리까지 합쳐도 세 명밖에 되지 않았다.이렇게 송지음이 많아졌으니, 지금 상황에서는 제일 구석진 자리를 그녀에게 남겨줄수 밖에 없었다.송지음의 얼굴은 대놓고 굳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빠르게 자신의 감정을 조절했다.머뭇대는 송지음의 모습에 신유리가 물었다. “더 할 말 있어?”송지음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고맙습니다, 유리 언니.”신유리는 뭔가 생각에 잠긴 듯 잠시 송지음을 관찰하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 “서준혁이랑 어디까지 갔어?”송지음은 꼬리가 잡힌 듯 서서히 눈을 동그랗게 뜨며 황송한 얼굴로 신유리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불안한 모습으로 신유리에게 해명했다.“저와
신유리는 조용히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서준혁이 말 한 그 일이, 송지음이랑 같이 야근하는 거였구나.그녀는 감정을 가다듬더니 아무 일 없는 척하며 핸드폰을 챙기러 안으로 들어갔다.두 사람은 그제야 그녀의 존재를 발견했다.송지음은 바로 긴장하기 시작했다. “유리 언니, 오늘 내로 꼭 보고서 완성할게요.”“그래.” 신유리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고는 책상에서 핸드폰을 챙겼다. “서 대표님이 도와주시는데, 당연히 다 완성해야지.”그녀의 말이 맞았다. 서준혁 같은 BOSS가 일을 도와주는데, 수월한 게 당연하지.단지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던 송지음의 얼굴이 창백해질 뿐이었다.서준혁은 아무런 생각 없이 고개를 들어 신유리를 쳐다보았다. “왜 아직도 안 갔어?”신유리는 핸드폰을 흔들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 “까먹어서. 지금 갈 거야.”호연의 파티는 금주 호텔에서 진행됐다. 모두 전부터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이었다.혼자 파티에 찾아온 신유리의 모습에 그녀에게 다가와 서준혁은 언제쯤 도착하는지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신유리는 가뿐하게 상황을 처리했다. “저녁에 도저히 미룰 수 없는 회의가 있어서요. 최대한 빨리 오실 거예요.”다들 무슨 상황인지 대충 마음속으로 눈치채고 있었다.근데, 서준혁이 진짜로 왔다.파티가 절반 정도 진행되었을 때, 그가 송지음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남자의 고결한 분위기는 사람을 압도했고, 옆에 서 있던 아가씨도 귀엽고 발랄했다.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신유리와 얘기를 나누던 사모님이 고개를 까닥이며 뒤를 가리켰다. “서 대표 옆에 있는 아가씨는 누구야?”송지음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와인잔을 들고 있던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서준혁도 그녀를 보게 되었다. 오가는 시선 사이로, 그녀는 바로 그의 뜻을 알아차렸다.신유리는 사모님에게 말 몇 마디를 건네고는 그에게로 발걸음을 돌렸다.“안 온다며?” 그녀는 와인잔을 든 채로 나른하게 물었다.“얘한테 좀 보여주려고.” 서준혁의 시선은 옆에 있는 송지음에
그럼 나는.나랑 서준혁이 함께한 8년은 뭔데?신유리는 인내심 넘치게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숨소리도 좀 더 가벼워진 듯했다.서준혁의 말투는 방금 송지음보고 착하다고 했을 때랑 별반 다름이 없었다. 단호하고 담담했다. “너도 알잖아. 너 내 스타일 아닌 거.”그건 맞지.처음에 잠깐동안 서준혁 옆에 여자가 없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나중에 그가 만난 여자들은 모두 신유리와 큰 차이가 있었다.그녀는 착하고 말 잘 듣는 여자를 좋아했다. 하지만 신유리처럼 그의 말을 듣는 여자는 좋아하지 않았다.신유리의 눈동자에는 어둠이 숨어져 있었고, 그 속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목소리만 여전히 물처럼 차가웠다. “오늘 밤 여기 있을 거야?”서준혁은 몸을 일으키더니 옆에 있던 외투를 챙겼다. “됐어.”신유리는 서준혁의 됐다는 말이 두 사람 사이를 가리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단지 다음날 회사에 도착했을 때, 송지음의 자리가 그녀의 옆자리로 바뀌었을 뿐이었다.이 자리는 마침 대표 사무실과 마주 볼 수 있었다. 고개를 들면 바로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송지음은 그녀와 인사를 했다. “유리 언니, 좋은 아침이에요.”신유리는 가방을 챙기더니, 그녀의 눈동자에 담긴 숨길 수 없는 기쁨을 보며 담담한 말투로 대답했다. “내가 배정해 준 자리가 마음에 안 들어? 어제 말하지 그랬어?”그 말에 송지음은 멍해지고 말았다. 그녀는 허둥지둥 해명했다. “마음에 안 든 게 아니에요. 일하는 거 지켜보시겠다면서 서 대표님이 오라고 하셨어요.”말을 하던 그녀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신유리의 존재를 인식했고, 서서히 눈빛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신유리는 본인이 백설 공주 계모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일부러 사람을 괴롭히고 있는 것 같았다.“일해.”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송지음의 자리가 바뀌었다는 말은 빠르게 회사에 전해졌다. 신유리가 인수인계하러 아래층에 갔을 때, 그녀는 이러쿵저러쿵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그들은 신유리의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