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373화

작가: 박혜은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07-06 19:00:00
신유리는 그대로 내리는 비를 쫄딱 맞고 있는 와중에 서준혁과 시선이 마주쳤고 어느새 그녀의 옷은 흠뻑 젖어가고 있었다.

뒤에 있는 여자아이는 주언을 졸졸 따라다니며 아프냐고, 괜찮냐고 물어댔고 이석민은 주언을 부축해서 다가오며 신유리에게 말했다.

“신유리 씨, 차 문 좀 열어주세요.”

신유리는 이석민의 말에 고개를 들어 서준혁을 슥 쳐다보고는 말했다.

“고마워요.”

그리고는 빠르게 문을 열어 이석민과 함께 주언을 차에 태웠다.

만약 서준혁이 허락하지 않았더라면 이석민도 다가와 도움을 줬을 리는 없었기에 신유리는 먼저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주언이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이동이 불편해져 신유리는 어쩔 줄 몰라했는데 서준혁의 차가 있으니 편하기도 하고 시간도 절약할 수 있었다.

그녀는 주언을 잘 앉혀놓고 다른 쪽으로 차에 올라타려고 하였지만 이석민이 빠르게 다가가 주언의 옆자리를 차지하는 바람에 신유리는 하는 수 없이 조수석에 타야만 했다.

신유리가 차 문을 여려는 순간,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거리에 울려퍼졌다.

“언니, 핸드폰 좀 빌려주실 수 있어요? 아빠한테 전화 좀 할게요. 그래야 병원비리도 물어주죠.”

방금 전까지 주언만 챙기는 바람에 여자아이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고 있던 신유리는 아이의 몸과 머리, 그리고 옷에 잔뜩 묻은 모래와 빗방울들을 번갈아보았다.

그녀가 뭐라고 대답을 하려는 시각, 서준혁이 문을 열어 차에서 내리더니 신유리의 옆으로 다가와 그녀를 바라보았고 신유리는 자기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는 문을 열어주며 담담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타세요, 제가 처리합니다.”

신유리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고 얼음같이 차갑고 굳어있는 서준혁의 표정에는 어딘가 불쾌하다는 기분이 드러나 있었다.

그는 손을 뻗어 신유리의 머리를 슬쩍 막아주며 다시 말했다.

“비 많이 옵니다, 계속 이렇게 서있으면 감기 걸려서 일이 더 복잡해질 수도 있습니다.”

비는 끊을 기미가 없어보였고 이미 흠뻑 젖어버린 신유리는 그의 말대로 순순히 차에 올라탔다.

앉자마자 느껴
잠긴 챕터
앱에서 이 책을 계속 읽으세요.

관련 챕터

  • 나 말고 다   제374화

    주언은 오늘 수술까지 받고 다리까지 삐는 바람에 정말로 몸과 마음이 불편해왔다.게다가 비싼 차로 이동을 하는 것도 확실히 다른 차보다는 편했었다.[무조건 서준혁 씨가 엄청 질투하게 만들어야 돼, 알겠어?]주언은 임아중이 자신에게 했던 당부의 말들도 잊지 않았었고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변 공기들은 조용해졌다.이석민은 아무렇지않아하며 혼자 평온한 얼굴을 하고 서있는 주언과 어두운 안색으로 서있는 서준혁의 옆모습을 번갈아보며 마른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어차피 다들 호텔로 돌아가야 하니 같이 갑시다, 서 대표님께서도 별로 신경을 쓰시지는 않을 겁니다.”신유리는 탐탁치 않았지만 지금 마침 출퇴근시간인지라 차가 많이 막히는 시간대였고 비까지 내리니 택시도 잡기 쉽지 않아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서있었다.그녀는 주언의 손에 들려져있는 봉지를 건네받으며 이석민과 서준혁을 쳐다보며 말했다.“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서준혁은 무감정한 눈빛으로 신유리에게 시선을 옮기고는 물었다.“신유리 씨는 검사 안 받아도 되겠습니까?”신유리는 아까 전 주언에 의해 끌어당겨질 때 충격을 받았었고 비까지 다 맞아버렸기에 확실히 검사를 받아봐야 할 것 같았다.돌아가는 길 내내 비는 그칠 기미도 없이 점점 거세게 내렸고 신유리는 여전히 조수석에 앉아 거리에 이미 자욱하게 낀 안개를 창밖으로 내다보며 멍을 때리고 있었다.주언의 다리가 다친 사실을 안 이석민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열정적이게 주언을 부축하여 방까지 데려다주었고 서준혁도 그들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주언을 방 앞까지 데려다 준 뒤, 신유리가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서준혁은 신유리 방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녀는 발걸음을 멈칫거리다가 마음을 먹은 듯 다가가 먼저 말했다.“주언 씨가 오늘 다쳐서 차에 오르고 내릴 때 혹시 차가 더럽혀졌다면 제가 세차비 드릴게요.”서준혁은 새까만 눈동자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이렇게까지 철저하게 계산을 해야겠습니까?”신유리가 대답했다.“자매나

    최신 업데이트 : 2024-07-07
  • 나 말고 다   제375화

    성남경찰서에서는 이미 수차례나 송지음에게 전화를 걸어 조사에 협조하라는 재촉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순순히 돌아간다면 좋지 않은 결과만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서준혁도, 경희영도 송지음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리가 없었다.더군다나 한세형, 그는 송지음이 경찰에 소환 당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얼른 그녀와 손절하려고 애를 썼고 아예 모르는 사람인냥 굴었다.지금 송지음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신연이었다.송지음은 마치 마음을 굳게 먹은 듯 입술을 꽉 깨물고 성큼성큼 발걸음을 회사 내부로 옮겼다.갓 들어서자마자 송지음은 마르고 예쁜데다가 흰 피부까지 가지고 있어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여자를 발견했고 그녀에게서 쉽사리 눈을 떼지 못했다.태지연은 송지음의 시선을 느낀 듯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태지연의 순수하고 맑은 눈빛에 송지음은 무의식적으로 거부감이 들었다.[멍청하고 가식덩어리 같은 저 눈빛 정말 싫어.]송지음은 성큼성큼 카운터로 향했고 직원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안녕하세요, 신연 씨 좀 만나려고 왔는데요.”카운터에 있던 직원이 물었다.“언제 만날지 미리 약속은 하셨나요? 시간은 언제죠?”송지음은 순간 짜증이 치밀어 올라 고개를 바짝 쳐들고는 대답했다.“저 신연 씨 친구 되는 사람입니다. 중요한 일이 있어서 왔어요. 전에도 신연 씨가 저 데리고 여기로 온 적 있고요.”회사 밖으로 나가려던 태지연은 순간 그녀의 말에 발걸음을 잠시 멈추더니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송지음의 빼빼 마른 뒷모습뿐이었다.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눈을 깜빡거리다가 이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송지음의 옆에 멈춰선 태지연은 머뭇거리며 물었다.“안녕하세요, 신연 씨 잘 아세요?”카운터 앞에 서있던 송지음은 묻는 태지연에게 시선을 돌렸고 그녀의 청아하고 고운 소리에 탐탁치 않아하며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죄송해요, 제가 아직 자기소개를 안했네요. 저는 신연 씨-”태지연은

    최신 업데이트 : 2024-07-07
  • 나 말고 다   제376화

    잠시 침묵이 흘렀고 신유리의 눈에는 냉기가 짙어졌다.“모욕?”그녀도 송지음이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짐작했지만 이렇게 역으로 청승 떨 줄 몰랐다.“유리야, 그래도 좀 더 준비해 두는 게 좋을 거야. 송지음 씨의 변호사는 부산에서 온 분이신데 예전에도 많은 사건을 맡은 아주 유명한 분이야.”신유리는 부산이라는 두 글자를 듣고 경찰서에서의 그 합의서를 떠올렸고 그녀는 눈을 내리깔며 생각을 감췄다.연우진도 더 이상 뭐라고 말하기가 곤란했는데 신유리에게 조심하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그쪽도 바빠진 지 얼마 되지 않아 통화를 끝냈다.신유리는 휴대전화를 들고 그 자리에서 침묵을 지키고 서 있다 화장실로 들어갔다.성남시 경찰의 전화는 다음 날 아침 일찍 걸려왔고 구체적인 상황을 설명하며 신유리에게 가능한 한 빨리 성남으로 돌아오라고 알렸다.송지음의 문제 외에도 이연지가 있는데 그녀는 지금 정신이 좀 안 좋아 가끔 주국병에 관한 욕설을 퍼붓다가는 펑펑 울기까지 한다고 한다.신유리는 듣고 아무런 감흥이 없었는데 경찰 측에 대충 몇 마디 대답하고는 통화를 끝냈다.전화를 끊고 그녀는 책상 위의 서류를 보며 알 수 없는 한숨을 쉬었다.오늘은 이미 목요일이었고 나인성은 다음 주 월요일 비행기로 부산에 돌아간다고 한다.게다가 중간 며칠 동안 나인성에게 직접 전달할 자료를 하나 더 만들어야 해서 시간이 촉박했다.하지만 다행히 그녀도 요 며칠 동안 방안 연구에 몰두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해도 성남시로 돌아가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다. 단지 조금 힘들 뿐.신유리는 마음속으로 잠시 망설이다가 결심을 내렸다.그녀는 이신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말했고 이신도 그녀에게 먼저 돌아가서 일을 처리하라고 했으나 지금 유일하게 골치 아픈 것은 남진이었다.그는 다쳐서 방에서 요양하고 있었는데 신유리가 성남으로 돌아가면 아무도 신경 안 써줄 것이었다.그러나 그녀의 이 걱정은 분명 쓸데없는 것이었다. 그녀가 막 이신과 전화를 하고 나서 짐을 꾸리기

    최신 업데이트 : 2024-07-08
  • 나 말고 다   제377화

    신유리는 천천히 얘기를 꺼냈는데 이건 연우진이 어젯밤 그와 이야기한 후 밤새 찾아본 자료에서 알아본 결과였다.양세원 같은 지위의 인물은 결코 돈이 있다고 해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니 송지음의 배후에는 반드시 사람이 있을 것이다.“그 합의서 아직 기억나? 4000만짜리... 누구일 것 같아?”고홍민은 불가능한 것 같았는데 요 며칠 동안 송지음에게 태도를 바꾼 모습만 봐도 불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다른 사람이 있다면...?그러면 그동안의 교통사고, 미행, 그리고 회의실에서의 그런 이유 없는 문제들...신유리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버닝스타와 화인 그룹은 지금 협력 관계이니 이걸 서준혁에게 알려준 건 그냥 일깨워주고 싶었을 뿐이다.서준혁이 송지음을 위해 또 무슨 짓을 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서준혁은 눈꺼풀을 치켜들며 담담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무슨 뜻이야?”“난 단지 화인이 지금 버닝스타와 한배를 탔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싶었을 뿐이야,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버닝 스타에 대해 생각해 보길 바라.”그녀는 말을 마치고는 문을 열고 내렸다.서준혁은 지하주차장에서 잠시 기다린 후 떠났다. 그가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어르신은 지팡이를 짚고 그를 노려보았다.“왜 유리량 같이 성남으로 가지 않았어? 내가 눈치를 그렇게 줬는데...”“아직 못다 한 일이 남아서요.”“기다리다가 다 끝나겠어. 너의 그 비서가 변호사를 찾아 유리한테 소송을 걸려고 하는 건 알고나 있어? 이 일은 모두 네가 벌인 일이니 네가 알아서 잘 해결해.”어르신은 화가 많이 나 있었지만 서준혁은 담담하게 그의 말을 끊었다.“아버지께서 연락이 오셨어요, 지금 화인의 주식 절반이 하씨 집안 손에 들어갔다네요.”그는 말을 하고는 몸을 돌려 떠났다.어르신은 그 자리에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중얼거렸다.“이거 참, 참... 이게 인과응보라는 건가...”신유리와 남진이 성남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점심이었다.이신이 그들을 데리러 왔고 그의 곁에

    최신 업데이트 : 2024-07-08
  • 나 말고 다   제378화

    신유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이석민 쪽 배경음이 시끄러운 것을 보니 술을 마시고 있는 것 같았다.이석민은 평소 일이 없으면 그녀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었다.“무슨 일 있어요?”신유리가 물었다.“서 대표님 쪽에서 이미 버닝스타 변경 방안의 자료를 다 작성했으니 조만간 시간을 내 화인에 가서 그 이후의 자금을 모두 가져가도 될 거 같아요. 마침 누나도 지금 성남에 있잖아요.”이것은 얼마 전의 일이었는데 이신이 갑자기 원래 정한 계획을 바꾸고 서준혁이 요구한 새로운 방안을 검토했다.“네, 갈 거예요.”“내일 가세요.”이석민은 잠시 멈칫하고는 신유리에게 주의를 시키었다.“이틀만 더 있으면 월말이니 재무 쪽에서 장부를 내지 않을 거예요.”그렇긴 하지.“아, 맞다.”원래 전화를 끊으려고 했는데 이석민이 갑자기 다시 말했다.“서 대표님이 오늘 밤 왕 사장과 저녁 식사를 하셔서요, 이 협력은 매우 중요하니 일찍 들어가실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다른 용건은 없죠?”신유리는 서준혁의 일에 대해 듣고 싶지 않았고 그녀는 담담하게 이석민에게 물었다.“네... 없습니다.”신유리는 전화를 끊고 발길을 돌려 들어가려는데 이신이 외투를 들고나오는 것을 보았다.그는 신유리가 몸을 돌리는 모습을 보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나는 네가 좀 더 밖에 있을 줄 알았어.”신유리는 휴대폰을 흔들며 대답했다.“이석민의 전화야, 내일 화인 재무부에 가보라고.”그녀를 쳐다보는 이신의 눈은 등불 아래서 유달리 따뜻해 보였다.그는 신유리를 쳐다보며 말을 하지 않았고 외투를 그녀의 몸에 걸쳤다.“밤에 한기가 심하니 감기에 걸리지 않게 조심해.”“고마워.”그녀는 목소리가 낮았는데 육안으로 보기에도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변호사에 관한 일은 내가 선배한테 물어볼게. 양세원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네 증거가 확실하니 그도 쉽게 판을 뒤집을 수는 없을 거야.”“그렇지 않으면 법이 너무 보잘것없는 거 아니야?”신유리는 몸에 걸친 외투를

    최신 업데이트 : 2024-07-09
  • 나 말고 다   제379화

    정혜의 말에 신유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숍으로 따라갔다.“얘기해 보세요.”정혜는 시간을 보고는 다시 눈을 돌려 신유리를 바라보았다.곁을 지켰던 장원도 곧바로 메모장을 꺼내며 신유리를 진지하게 바라보았다.“신유리 씨, 자세한 정황을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신유리는 정중한 표정을 지었고 눈꺼풀을 떨어뜨리고 생각에 잠겼다가 가장 명료한 말로 일의 경과를 정혜에게 알렸다.“정 변호사님, 모든 증거는 제가 가지고 있고 제 말도 모두 사실입니다.”정혜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증거가 확실한데 꼭 제가 나서야 하죠? 유리 씨 말이 사실이라면 이 사건은 누가 와도 똑같은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상대방 변호사가 양세원이기 때문입니다.”신유리는 남에게 들통나버린 군색함이나 당황함이 전혀 없었으며 그녀의 눈빛은 밝고 깨끗했다“양세원 변호사는 사건 번복을 가장 잘하기 때문에 저는 모험을 할 수 없습니다.”정혜가 말을 하지 않고 신유리를 쳐다보기만 했다.눈빛에는 신유리의 말을 믿지 않는 것 같았는데 그녀를 자세히 살펴보고 훑어보았다.신유리는 마음속으로 사실 긴장했는데 그녀는 긴장하여 손가락을 꼬았다.그녀가 말한 것처럼 그녀는 위험을 감수할 수 없었다. 기회는 한 번뿐.그녀는 등을 곧게 펴고 정혜의 눈총을 고스란히 받았다.정혜라는 사람은 그녀의 명성과 마찬가지로 매우 엄숙하고 아무 표정도 감정도 없으며 말이나 일을 할 때도 맹렬한 기세를 가지고 있었다.신유리는 입을 오므리며 말했다.“정 변호사님, 변호사님이 저를 도와 소송을 하신다면 변호사님이 제기하는 어떤 조건도 들어드리겠습니다.”정혜는 진심 어린 눈빛으로 간절한 애원과 기대를 담은 그녀의 눈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오후 2시 10분에 구체적인 자료를 로펌으로 보내주세요, 시간이 지나면 저도 어쩔 방법이 없을 것 같네요.”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일어나서 떠났는데 동작이 빠르고 깨끗했다.“선생님은 시간관념이 없는 사람을 싫어하시니 빨리 돌아가 준비하시는 게 좋을

    최신 업데이트 : 2024-07-09
  • 나 말고 다   제380화

    신유리는 복도 끝에 서 있었는데 이쪽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그녀는 구석에 있는 타일을 쳐다보며 물었다.“정혜가 내 소송을 도와주는 걸 원하지 않는 거야?”그럼 그렇지.그녀가 고소할 사람은 송지음이고 서준혁은 보호하지는 못할망정 어떻게 화인의 법무가 그녀를 돕게 할 수 있겠는가?신유리가 입을 열려고 할 때 서준혁이 무심코 말하는 것을 들었다.“그냥 정 변호사랑 양세원 사이에 사연이 있었다는 걸 알려주려고.”서유리는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사연이라니?”“정 변호사와 양세원은 동문인데 한 사건으로 보기 흉하게 난리가 났었어. 정혜는 원고 변호사이고 양세원은 피고였고.”“누가 이겼는데?”“원고가 고소를 취하했지.”신유리는 잠시 숨을 돌렸고 이내 서준혁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두 사람은 업계에 소문 난 앙숙이야.”어쩐지 정혜는 양세원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망설임 없이 승낙하더라 했다.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고 서준혁에게 물었다.“그냥 이걸 알려주려고 연락한 거야?”“나는 단지 나인성이 월요일에 귀국한다는 것을 너에게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야. 잊지 말라고.”서준혁은 유유한 목소리로 말했다.옆에서 서류를 전해주러 온 이석민은 그의 말을 듣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서준혁이 신유리에게 나인성의 일을 강조한 후 그는 그제야 주저하며 서준혁에게 물었다.“대표님, 저희도 오늘 밤 성남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눈을 치켜든 서준혁의 눈동자에는 아무런 감정 기복이 없었고 손끝으로 서류를 찍었다.“본사 쪽 서류는 준비됐어요?”“지금 가 준비하겠습니다.”다만 미처 돌아서기도 전에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한 통이 날아왔고 그는 내용을 확인하고는 이내 정색을 한 뒤 서준혁에게 휴대전화를 건넸다.신유리 쪽은 이연지 때문에 오후까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그러다 저녁에 그녀는 낯선 전화를 받았고 상대방은 중년 남자의 목소리였다.“신유리 씨, 저는 양세원입니다. 만나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신유리와 양세원은 근처에 약속을 잡았고 그녀가

    최신 업데이트 : 2024-07-10
  • 나 말고 다   제381화

    신유리의 말은 서준혁을 보고했는데 그녀는 서준혁을 떠보는 거였다.그러나 서준혁은 담담한 얼굴로 눈꺼풀만 치켜들며 되물었다.“그래요?”“그럼 누군지 아세요?”신유리가 따졌다.양세원을 내세워 송지음의 변호를 맡기고 송지음에게 그런 말을 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지위가 낮지 않을 것이다.신유리는 그녀가 부산에서 서준혁과 관련된 모든 인물을 머릿속으로 생각했지만 마땅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다.그래서 그녀는 서준혁에게 직접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서준혁이 그녀를 보는 검은 눈은 깊고 차분해 보였다.한참 뒤 그는 눈꺼풀이 가볍게 움직였다.“모르는데요.”신유리는 그를 뚫어지라 쳐다보았지만 이상한 감정을 감지하지 못했고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시선을 돌렸다.그 후 정혜는 몇 가지 질문을 더 했고 신유리는 일일이 대답해 주었는데 모두 서류에 적힌 것과 비슷했다.“알겠습니다. 구체적인 정황은 잘 알겠어요. 앞으로 또 문제가 있으면 연락할게요.”정혜는 그렇게 대답하고 나서 신유리에게 뭔가를 건네주었다.“절차에 관한 수첩이에요. 봐두시면 좋을 듯싶어요.”신유리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떠나려는데 마침 장원이 들어왔는데 손에 봉투를 들고 있었다.“선생님, 물건은 이미 가져왔습니다.”정혜는 고개도 안 들고 말했다.“서 대표님께 전해드려.”어쩐지 서준혁이 계속 가지 않더라니... 신유리는 입술을 오므리고 문을 나섰다.사무실에서 하던 일을 마친 정혜는 고개를 들어 서준혁을 바라보며 안경을 밀었다.“대표님은 뭐 더 물어보실 거 있으세요? 없으시면 저도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아서요.”서준혁은 표정 한 번 안 변하고 물었다.“변호사님은 자신이 양세원과 비교해 얼마나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세요?”정혜는 잠시 멈칫했다. 그런 걸 물어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다만 서준혁은 현재 한바다 로펌의 큰 고객이라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어도 진중하게 대답했다.“100%는 장담 못 하겠지만 모든 사건에 대해 책임지고 할 겁니다.”신유리는 밖에서 10분을 기다려서야

    최신 업데이트 : 2024-07-10

최신 챕터

  • 나 말고 다   제637화

    태송백은 신연을 향해 내리치려 했다.태지연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본능적으로 신연을 밀어내며 그의 앞을 막아섰다.태송백은 태지연을 보더니 급하게 행동을 멈췄다.그러나 이미 큰 힘을 실은 탓에 갑자기 멈추려 해도 늦었다. 그는 급히 방향을 틀었지만 결국 태지연의 어깨에 맞았다.뼈가 부딪히는 고통에 태지연은 휘청거리며 균형을 잃었다. 팔을 타고 내려오는 통증에 그녀는 눈앞이 어지러워지더니 옆으로 쓰러지며 머리를 부딪혔다. 곧이어 머리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바닥에는 유리 파편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모든 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신연이 반응했을 때 태지연은 이미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쥐 죽은 듯 고요한 방 안에는 태지연의 신음소리만 울려 퍼졌다.“아파...”신연의 눈에는 깊고 검은 파도가 일었다. 그는 태지연의 곁에 무릎을 꿇은 채 다급하게 소리쳤다.“성한빈, 당장 구급차 불러! 지금 당장!”그는 태지연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녀가 다칠까 봐 두려웠다.신연은 이내 고개를 들어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태송백을 노려보며 당장이라도 그를 죽일 것 같은 기세였다.태송백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급히 다가왔다.“태지연... 지연아...”그는 어찌할 바를 모르며 아까의 광기 어린 얼굴은 온데간데없어진 채 공포에 질려 있었다.태지연은 그를 바라보더니 손을 들어 태송백의 옷자락을 붙잡으며 힘겹게 말을 꺼냈다.“오빠... 내 말부터 들어줄래?”태송백은 숨을 죽이며 말했다.“그래, 네 말 들을게. 오빠가 나빴어. 오빠가 미안해... 지연아, 나 진짜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알아. 오빠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거. 오빠는 항상 나를 제일 아껴줬잖아.”태지연은 여전히 고통에 시달린 채 서서히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정신이 점점 혼미해져 갔지만 그녀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며 낮게 말했다.“오빠, 난 신연 편을 들고 싶은 게 아니었어. 그저 엄마 아빠가 더 이상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야. 우리 가족이 다시

  • 나 말고 다   제636화

    태송백은 한층 더 날카로운 눈빛으로 신연을 노려봤다. 한참 후에야 이를 악문 채 말을 내뱉었다.“뒤에서 숨고만 있다가 부하들만 짖게 놔두더니 이제야 직접 나선 거냐? 나한테 기회를 준다고? 신연, 너 진짜 죽을 때까지 정신 못 차리는구나?”태송백은 태지연을 흘겨보며 비웃음을 흘렸다.“너 내 동생을 완전히 속였잖아. 지금도 태지연이 여기까지 와서 헛소리나 지껄이고 있고.”태송백의 말은 가시처럼 날카롭게 태지연의 가슴에 박혔다. 그녀는 주먹을 움켜쥐며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었다.“오빠, 제발 진정 좀 해요.”“태지연, 넌 입 다물어. 계속해서 그 새끼 편을 들면 넌 더 이상 내 여동생도 태씨 가문의 딸도 아니야!”태송백은 격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우리 태씨 가문이 이 꼴이 된 건 전부 그 새끼 때문이야! 아버지께서 지금 병원에 누워 있는 데다 나도 집에 돌아가지 못한 채 숨어 다녀야 하지. 내가 밖에서 무슨 꼴을 당하는지 알기나 해? 모든 게 다 저 새끼 때문이라고.”“엄마는 창녀에 아빠는 손님이고. 참, 너도 신유리 알지? 걘 얼마나 똑똑한지 저 새끼랑 상종도 안 해. 너 혼자 보물인 양 여기고 있는 거야.”태송백은 쌓여 있던 울분을 쏟아냈다. 둘 사이의 갈등은 이미 단순히 말로 풀 수 있는 정도가 아닌 자존심 문제였다.그는 반드시 신연에게 자신이 당한 굴욕을 몇 배로 돌려주겠다고 결심했다.태송백은 한 마디 한 마디에 독설을 내뱉었다.“태지연, 넌 더럽지 않냐?”그녀는 마치 얼어붙은 듯 제자리 굳어버린 채 태송백을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저었다.“오빠, 그만해요... 제발 그만 말하세요.”그녀는 차마 신연을 돌아볼 용기도 없었다.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녀는 목이 바싹 말라오더니 눈앞이 흐려졌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신연 앞을 막아서며 무시해 버리라고 하고 싶었지만 마치 나무 말뚝에 묶인 것처럼 꼼짝할 수 없었다.태송백의 독설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악의 어린 말들이 허공에 울려 퍼지

  • 나 말고 다   제635화

    성한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둘째 도련님께서 문이 열릴 때마다... 전에 우리 쪽 사람들이 다친 적도 있었습니다. 도저히 대화가 통하지 않습니다.”신연은 바닥에 부서진 유리 조각들을 흘겨보더니 무표정으로 말했다.“아직도 부술 게 남아있어?”성한빈은 순간 안색이 굳어졌다.태지연은 그들의 대화를 신경 쓰지도 못한 채 바닥에 흩어진 유리 조각들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잠시 자리 좀 비켜줄 수 있어? 오빠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어.”신연은 눈을 내리깔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약속하듯 말했다.“아무것도 안 할게. 믿어줘, 응?”“아직 불안정할 텐데. 너희 둘만 남겨둘 수 없어.”“걱정 마. 아무 짓도 안 할 거야. 그래도 내 오빠잖아. 어렸을 때부터 나를 가장 아껴주던 사람이야.”태지연은 신연을 바라보며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물건을 너한테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잖아. 나야말로 누구보다도 이 일이 빨리 끝나길 바라고 있어.”“우리도 빨리 예전으로 돌아가자. 아무리 예전처럼 되지 못하더라도 이 일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어.”태지연의 목소리는 다소 지친 듯했다.“연아, 나 정말 너무 힘들어.”신연은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한참 지나서야 그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한번 얘기해 봐.”태지연이 대답하기도 전에 신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근데 나가진 않을 거야. 보다시피 최근 태송백 상태가 불안정해. 단둘이 두는 건 불안해서 안 되겠어. 여기서 기다릴게.”현관에서는 안쪽 상황을 볼 수 없었다.그녀는 신연이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걸 알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바닥의 유리 조각들을 피하며 안으로 들어갔다.안쪽은 더 엉망이었다. 바닥에는 온갖 유리 파편들과 장식품들이 흩어져 있었다.태송백은 원래 성격이 좋지 않은 편인데 얼마나 화가 났는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그녀는 바닥의 유리 조각들을 피해 가며 간신히 거실까지 다가갔다. 순간 태송백의 격앙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내가 나가라고

  • 나 말고 다   제634화

    다음 날 아침, 신연은 평소처럼 아침을 준비해 두었다.테이블 위에는 더 이상 초콜릿케이크가 보이지 않았고 신연도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행동했다.그는 우유 한 잔을 따라 식탁 위에 놓더니 입을 열었다.“얼른 씻고 아침 먹어. 나 오늘은 일이 있어서 점심에 못 올 거야. 점심은 호텔에서 보내줄 거야.”태지연은 순간 마음이 움찔하며 신연에게 물었다.“회사? 아니면 어디?”신연은 동작을 멈추더니 속눈썹을 내리깐 채 일부러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응, 회사.”“연아.”태지연은 의자 등받이를 꽉 잡으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어젯밤 한 말은 전부 진심이야. 만약 네가 오빠를 건드리면 절대 용서 못 해.”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가라앉았고 손가락이 하얘질 정도로 의자 등받이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신연은 그제야 동작을 멈추고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태지연은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말했다.“만약 네가 오빠를 건드리면 나중에 내가 부모님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어?”조금 이기적일 수도 있는 말이지만 그녀는 어쩔 수 없었다. 어젯밤에 들은 말로만 신연이 정확히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태도를 봐서는 만약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면 태송백을 순순히 놓아주지 않을 게 분명했다.태지연은 손에 힘을 풀더니 힘겹게 신연 곁으로 다가갔다.“연아, 원하는 게 있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대신 찾아줄게.”순간 신연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목젖을 울렁이며 태지연을 내려다보았다.“내가 물건을 찾고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태지연은 잠시 멈췄다가 대답했다.“오빠가 말했어. 자기 손에 너한테 아주 중요한 게 있다고. 연아... 내가 찾아줄게. 내 오빠잖아, 내가 말해볼게.”어젯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그녀의 안색은 좋지 않았고 목소리도 다소 잠겨 있었다.순간 머릿속이 약간 혼란스러워졌다.신연은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마음이 급해진 그녀는

  • 나 말고 다   제633화

    태지연은 말을 마치고 신연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신연은 눈을 내리깐 채 무심한 시선으로 그녀를 훑어보더니 일으켜 세웠다.“네가 좋아하는 케이크 사 왔어. 얼른 먹어봐.”태지연은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신연을 쳐다보며 손을 뿌리치려고 했으나 되레 단단히 잡혔다.신연은 식탁 앞으로 가서 조심스레 케이크 상자를 열고는 라즈베리 초콜릿케이크를 꺼냈다.태지연이 가장 좋아하는 가게의 케이크였다. 평소에도 그녀는 신연한테 퇴근길에 케이크를 사 오라고 조르기도 했었다.하지만 그녀는 가장 즐겨 먹던 케이크를 보면서도 전혀 입맛이 돌지 않았다.그녀는 태송백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다. “오빠가...”그러나 신연이 바로 말을 끊어버렸다. “케이크 가게 주인이 또 둘째를 낳았대. 너도 기억하더라. 시간 되면 한번 들르라고 하길래 내가 대신 대답했어.”“신연...”“맛 좀 봐.”신연은 케이크를 그녀 앞에 건네며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봤다.태지연은 깊이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지금 먹고 싶지 않아. 연아, 다시는 나한테 거짓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 그러니까 솔직하게 대답해 줘. 네가 오빠를 데려갔어?”태지연의 말이 끝나자 거실에는 침묵만이 흘렀다.신연은 그녀를 바라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이것뿐이야?”태지연은 한 글자씩 또박또박 뱉어냈다. “대답해.”신연은 말했다. “일단 케이크부터 먹어봐.”태지연은 움직이지 않고 애써 차오르는 분노를 억눌렀다. 그녀는 이 상황에 점점 지쳐갔다.순간 가족과 신연 사이에서 고민하며 최선의 해결책을 찾으려 했던 자신이 우스꽝스러웠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신연과 가족이 서로 평화롭게 지내길 바랐다.하지만 그녀는 이제야 그토록 바라던 작은 소망이 애초에 이룰 수 없는 꿈이었음을 깨달았다.신연과 태씨 가문은 이미 끊어진 실처럼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사이였다.모두가 이제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오직 그녀만이 되돌릴 수 있다는

  • 나 말고 다   제632화

    태은정은 안색이 어두워진 채 눈 밑에 다크서클이 드리워져 있었다.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일들이 그녀를 지치게 했다. 그녀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지연아, 신연이 송백을 어디로 데려갔는지 알고 있어?”태지연은 잠시 멍해 있다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언니, 왜 항상 무슨 일만 생기면 내가 무조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마치 사람들이 모든 걸 나에게 털어놓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태지연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사실 진실을 모르는 사람은 유일하게 그녀뿐이었는데 말이다.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태은정은 멈칫하더니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무언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태지연을 한참 바라보더니 갑자기 반응하며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피곤한 듯 소파에 몸을 기댄 채 말했다.“그래. 내가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미안해. 지연아, 내가 너무 급했나 봐.”태은정은 미안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눈썹을 만지작거렸는데 이는 태은정이 곤란할 때 나오는 작은 습관이었다.태지연은 고개를 저었다.“방금 신연이 오빠를 데려갔다고? 그게 무슨 뜻이야?”태은정은 지금도 상황이 엉망진창이라고 느꼈다. 태송백은 이미 이틀째 연락 두절인 상태였고 아무리 연락을 해도 닿지 않았다.전혜린과 태성민은 신연의 짓이라고 확신했다. 게다가 태지연과도 연락이 닿지 않다 보니 한편으로는 부모님을 달래야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태송백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연락을 돌려야 했다.게다가 업친 데 덮친 격으로 자신의 문제까지 해결해야 했다. 그녀는 외국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도 이렇게 바쁜 적이 없었다.태은정은 한숨을 내쉬며 신중하게 말을 이어갔다.“그럼 신연이 요즘 뭐 하고 있는지는 알아?”태지연은 대답했다.“대부분은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어. 그리고 나머지 시간엔 회사에 있을 거야.”그녀는 잠시 멈춘 후 덧붙였다.“근데 나도 확신할 수 없어. 보통 자세한 건 나한테 말하지 않

  • 나 말고 다   제631화

    태지연은 마땅한 핑계조차 찾을 수 없었다. 신연은 그녀에 대해 잘 알다 못해 속마음까지 꿰뚫고 있을 정도였다.태지연은 눈물을 흘리며 처량한 모습으로 바라봤다.“왜겠어? 연아, 네가 생각해 봐.”“우리 아빠는 지금 병원에 있고 엄마랑 오빠는 널 원수처럼 대하는데 도대체 내가 어떡해야 하는 건데?”“누굴 탓해야 할까? 내 의사를 물어본 사람은 있어? 나도 모르겠어. 일이 왜 이 지경까지 되어버렸는지...”다들 그녀가 당연히 자신의 편에 서야 할 뿐만아니라 자신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누구도 그녀의 의사에 대해 물어본 적이 없었다.태지연은 바닥에 다리를 웅크리고 앉은 채 서로 사랑하던 사람이 갑자기 왜 그녀의 가족을 해치려는 사람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때 그녀를 아껴주던 부모와 오빠조차 이제는 그녀를 이용하려고만 했다.모두 그녀를 속이면서 정작 그녀한테는 진심을 다하라고 요구했다.태지연은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며 쉬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왜 내가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일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거야?”“날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면서 날 속이는데 왜 난 그걸 받아들여야만 하는 거야? 난 전혀 원하지 않는다고. 진실만을 원할 뿐이야. 그게 다야.”“이렇게 간단한 일조차 해줄 수 없는 거야?”“왜? 내가 바보 같아? 난 그냥 진실을 알고 싶었을 뿐인데 왜 너희는 날 바보 취급하는 거야?”그녀의 눈물은 순식간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머리를 무릎에 묻은 채 어깨가 떨릴 정도로 흐느꼈다.진실이 그녀 앞에 명백히 놓여 있었지만 누구도 진실을 말하려 하지 않았다.그들은 태지연이 절망에 빠진 채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도 계속해서 속이려고만 했다.무언의 눈물에서 작게 흐느끼다 마지막에는 이를 악문 채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태지연은 자신이 고집하는 게 과연 무엇인지 몰랐다. 그저 입술이 터져 피비린내가 느껴질 때까지 입술을 깨물었다.그 순간, 누군가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신연은 그녀의

  • 나 말고 다   제630화

    신연은 언제나 태지연에게 다정하게 대했다.그의 눈빛은 차분했고 그 어떤 흔들림도 없었다.하지만 태지연은 마치 약점을 찔린 듯 몸이 굳어버린 채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신연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지나치게 평온한 시선이 되레 태지연의 마음을 한껏 졸여왔다.“왜?”신연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지연아, 너도 그 계약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는 거지?”“착하지, 그만 돌려줘.”신연은 아이를 타이르듯 다정하게 말했다. “너한테 있는 거 알아.”“...없어.”태지연은 점점 눈빛이 흐려지더니 힘겹게 입을 뗐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 계약서라니, 난 모르는 일이야.”그녀는 주먹을 꽉 움켜쥐며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그제야 의지와는 다르게 부들부들 떨려오는 손을 진정시켰다.그녀는 오빠가 신연을 해치지 않기를 바랐고 마찬가지로 신연이 오빠에게 어떤 해를 끼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태지연은 누구에게도 그 계약서를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그녀는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을 내리며 모든 생각을 숨기려 했다.신연은 한참 그녀를 바라보더니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지연아, 나 거짓말하는 거 제일 싫어해.”태지연은 순간 몸이 굳었지만 여전히 고집스럽게 말했다. “나 아니야...”“정말이야?”신연이 다시 물었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응.””그럼 이게 뭔지 설명해 줄 수 있겠어?”신연은 말을 마치고 서랍에서 약병과 약을 꺼내 테이블 위에 던졌다.그녀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전에 침대 옆 서랍에 숨겨둔 비타민 약병과 피임약이었다.최근에 산 피임약을 아직 비타민 약병에 넣을 시간이 없었다. 태송백이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깜빡 잊고 있었다.신연은 순간적으로 창백해진 그녀의 얼굴을 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지연아, 말해 봐. 집에 왜 이런 약이 있는 거야?”그녀는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신연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잠긴 목소리로 변명했

  • 나 말고 다   제629화

    태지연은 눈앞이 흐려진 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앞만 보고 계속 걸어갔다. 머릿속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고 오직 신연만이 떠올랐다.그렇게 자존심 강한 사람이 어떻게 그런 가정에서 자랐을까? 신연이 그렇게 말하기를 꺼렸던 그의 가정은 도대체 어떤 모습이었을까? 더군다나 신기철이 진정 신연에게 미안하다면 왜 그에게 한 번도 어떤 보상을 하지 않았을까?모두가 신연이 차갑다고 말했지만 태지연만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신연은 단지 그녀 앞에 갑작스럽게 나타나 자신을 지켜준 소년만이 아니었다. 사실 그 역시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그녀는 고등학교 뒤편 작은 정원에 항상 떠돌이 고양이들이 많았던 게 기억났다. 그리고 신연이 작은 난간에 기댄 채 고양이들에게 사료를 나누어주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새끼 고양이들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항상 신연 주위에 모여서는 그의 다리를 비볐다.그는 분명 귀찮아하는 표정이 있었지만 고양이들을 밀어내지 않았고 마지막에는 새끼 고양이가 그의 발치에서 잠드는 것도 허락했다. 동물들의 감각은 예리한 법이다. 그들은 항상 신연을 잘 따랐다.그런 신연의 모습이 계속해서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며 애써 억눌렀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그녀가 사랑했던 신연은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 너무나도 좋은 사람이었다....갑자기 손목이 세차게 잡히며 태지연은 발걸음을 멈췄다. 그제야 눈앞의 상황이 서서히 선명해지며 뒤에서 태은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딜 그렇게 급하게 뛰어가는 거야?”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엘리베이터 앞까지 와 있었다. 방금 태은정이 그녀를 붙잡지 않았더라면 환자를 밀고 지나가던 간호사랑 부딪힐 뻔했다.그녀는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태은정은 그녀를 흘겨보더니 아무 말 없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데려갔다.차에 타고 나서야 태지연은 정신을 차리고 나지막이 속삭였다.“고마워.”“고맙긴. 내가 네 언니인데.”태은정은 물었다.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