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아, 우리 관계 언제 끝낼래?”임유진은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담담히 물었다.이에 강지혁의 손이 멈칫하더니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리고 웃었다.그녀가 원룸 방에서 그에게 웃어줬던 것처럼.“누나, 우리 사이에 끝은 없어.”강지혁은 단호하게 말을 뱉었다.그는 이 관계를 끝낼 생각이 없다....많은 일이 한꺼번에 벌어져 임유진은 그날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로펌에 도착하자 차 변호사가 그녀에게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유진 씨 몸은 좀 어때요, 정말 다친 데 없어요?”어제 그녀와 통화하던 중에 전화가 갑자기 끊겼고 다시 걸어보니 좀처럼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에 그는 발을 동동 구르다 신고할까도 생각했었다.다행히 그런 생각이 들던 찰나 임유진이 다시 전화를 걸어왔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 얘기해준 뒤에야 그는 한시름을 놓았다.“네, 정말 괜찮아요. 이따 어제 일 물어볼 겸 경찰서에 한번 가보려고요.”“그럴 필요 없어요. 아침 일찍 내가 이미 다녀왔거든요. 어제 유진 씨 해하려고 했던 남자, 소지혜 팬이더라고요. 전에 두 번이나 유진 씨 해하려고 했던 것도 전부 그 남자가 꾸민 짓이었어요. 그리고 어제 유진 씨가 얘기해줬던 사건의 단서 말이에요. 그거 경찰서 쪽에 의뢰해 보니 루비 반지를 끼고 있던 사람은 운전석에 앉아 있는 거로 나왔어요.”임유진은 그 말을 듣더니 활짝 웃었다.이렇게 되면 사고 당시 운전석에 앉아 있던 사람이 소지혜라는 증거가 더 확실해지게 된다!“그런데 그 남자가 저를 두 번이나 해하려 했다고 직접 시인하던가요?”임유진이 의문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아니요. 그게 들어보니까 어젯밤에 웬 서류가 경찰서에 보내졌대요. 거기에 그 팬이라는 남자가 인터넷으로 유진 씨를 해하려 했다는 증거들이 전부 다 들어 있었고요.”“그거 보낸 사람은요? 누구래요?”“그건 경찰 쪽에서 얘기를 안 해주더라고요.”임유진은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경찰서 쪽에서 모르
변호사 자격증이 있다고 해도 의뢰를 받지 못하면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앞으로 유진 씨에게 작은 사건을 자주 배당해줄게요. 일단 경력을 쌓고 신뢰도를 높이면 앞으로 변호사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고마워요, 차 변호사님.”차 변호사가 다시 자리로 돌아간 후 임유진은 데스크 직원으로부터 곽동현이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임유진은 아래로 내려가 곽동현을 데리고 작은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멀쩡한 임유진과는 달리 곽동현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그녀를 만나자마자 안절부절못하면서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동현 씨 나한테 뭐 할 말 있어요? 괜찮으니까 얘기해요.”“여기 오기 전에 재하 사건 관련해서 들었어요. 소지혜 그 여자가 드디어 피고인석에 앉게 된다면서요? 차 변호사님이 오늘 아침 재하 부모님께 전화해서 이 모든 게 유진 씨가 발견한 단서 덕분이라고 하셨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유진 씨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아 이렇게 찾아왔어요.”“동현 씨가 그날 소지혜가 루비 반지를 끼고 있던 얘기를 해줘서 나도 생각난 거예요.”임유진은 미소를 지었다.“고맙다는 인사는 동현 씨가 아니라 내가 하는 게 맞아요.”곽동현은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짓더니 잠시 뒤 또다시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물었다.“참, 예전에 봤던 그 동생분이 바로 어제 경찰서에 왔던 강지혁 대표인 거죠...?”임유진은 잠깐 흠칫하더니 이내 솔직하게 대답했다.“네, 맞아요.”“역시 그랬군요...”곽동현은 이미 그럴 줄 알고 있었음에도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그럼 유진 씨는 어쩌다 강지혁 씨의 누나가 된 거예요?”곽동현은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그 질문에 임유진은 자조하듯 웃었다.그의 말처럼 어쩌다 그녀는 ‘혁이’가 아닌 강지혁의 누나가 됐을까?곽동현은 그녀의 표정을 보더니 서둘러 입을 열었다.“미안해요. 대답하기 곤란하면 굳이 얘기 안 해줘도 돼요. 난 그냥 어제 강지혁 씨도 그렇고 강현수 씨도 그렇고..
그에게는 그녀 말고도 중요한 것들이 있었으니까.하지만 강현수는 잃을 게 많은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임유진 때문에 극단적인 일도 서슴지 않았고 마치 임유진이 전부인 사람처럼 행동했다.곽동현이 떠난 뒤 임유진은 자리에 가만히 서서 방금 그가 했던 말을 되새겼다.강현수가 그녀를 찾겠다고 하마터면 소지혜를 죽일 뻔했다고?설마 그럴 리가.강현수가 전에 그녀에게 신경 썼던 건 그녀가 어렸을 때 소녀와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배여진이 곁에 있는데 대체 왜...임유진은 어제 경찰서에서 진지한 얼굴로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어릴 때의 강현수가 진지한 얼굴로 그녀를 꼭 찾으러 가겠다고 얘기한 것처럼 그의 진지한 모습은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퇴근 시간이 되고 임유진이 빌딩에서 나오자 강현수가 바로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같이 식사하는 거 어때요? 할 얘기 있잖아요, 우리.”임유진은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 남자를 보고 있으니 문득 아까 곽동현이 했던 얘기가 생각났다.이 남자가 정말 어제 하마터면 살인할 뻔했다는 건가?솔직히 당시 그의 모습이 어땠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그는 언제나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그런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으니까.“아니면 이곳에서 얘기할 거예요?”강현수가 다시 물었다.임유진은 그제야 꽤 많은 사람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강현수는 그의 사회적 지위나 이런 게 아니더라도 존재만으로 충분히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남자였다.그리고 지금 몰려드는 사람들 틈에는 로펌 직원들도 있었다.아마 내일이면 사무실 안에서 강현수와 그녀에 관한 가십거리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자리를 옮기죠.”이대로 사람들 구경거리가 되는 건 사양이었다.그녀는 원래 얘기나 하게 카페 같은 곳을 가려고 했지만 강현수가 배고프다며 기어이 식사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임유진은 결국 그를 데리고 월세방 근처 백반집으로
가게 안에는 그들을 제외하고도 식사하러 온 사람들이 꽤 있었다. 여성들의 시선이 강현수에게 향하는 순간 임유진은 그를 데리고 이곳에 온 걸 후회했다.룸이 있는 음식점으로 가는 게 훨씬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음식을 시킨 후 임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어제 나 찾으려고 고생했다면서요. 고마워요.”“크게 도움이 된 건 없었죠.”“뭐가 됐든 고마운 건 고마운 거죠...”임유진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진지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어제 현수 씨가 한 고백에 대한 대답 지금 할게요. 나는 현수 씨 안 좋아해요. 그러니까 괜한 곳에 시간 낭비하지 말아요.”강현수는 그 말에 미간을 꿈틀거렸다.생각해보면 그를 이렇게까지 확실하게 거절한 여자는 그녀가 처음이었다.사람을 착각했을 때도 그렇고 지금 확실히 감정을 깨달았을 때도 그렇고 임유진은 언제나 거절하지만 했다.“강지혁 때문이에요?”강현수는 전혀 타격 없는듯한 얼굴로 물었다.“아니요.”임유진은 고개를 저었다.강지혁이 어제 그 말을 하지 않아도 그녀는 강현수를 거절했을 것이다.그녀에게는 아직 누군가를 다시 사랑할 만한 여유도, 시간도, 마음도 없었으니까.“그러면 혹시 나한테 여자친구가 많았던 게 신경 쓰여요?”“확실히 현수 씨는 여자친구가 많았었죠. 그리고 하나같이 예쁘고 끼도 많고 능력도 있었고요. 그런데 왜 하필 나예요?”임유라만 해도 그랬다. 그녀도 얼굴이 예뻤기에 그의 여자친구 자리를 꿰차고 그의 서포트를 받으며 꾸준하게 배역을 따낼 수 있었다.강현수는 자조하듯 웃었다.“유진 씨도 알 텐데요. 내가 그 여자들을 곁에 둔 건 어릴 때 그 아이를 그리워해 그 아이와 비슷한 외모의 여자를 둔 것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걸요.”그는 말을 하면서 줄곧 임유진과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유진 씨가 그때 그랬죠? 누군가를 정말 그리워한다면 아무리 비슷한 사람을 옆에 둬도 소용없다고요. 그 말이 맞았어요. 실제로 그럴수록 그리움만 더 켜졌으니까요.”임유진은 그와 시선을 마주한 순
강현수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상반신을 앞으로 기울이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갑작스러운 스킨십에 임유진이 화들짝 놀라 손을 빼내려고 했다.하지만 강현수는 그녀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고 그 손을 자신의 심장 쪽으로 끌어당겼다.“느껴져? 평소보다 더 빨리 뛰는 거?”그의 눈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어제 CCTV를 보다가 그 남자가 널 뒤쫓아 가고 이윽고 네가 화면에서 사라졌을 때 여기가 얼마나 빨리 뛰었는지 알아?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어. 호흡이 가빠와 제대로 숨도 쉬지 못했고 손이 떨려 물컵 하나 제대로 쥐지 못했어.”강현수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그는 마치 어린애가 속상함을 털어놓듯, 사라진 그녀를 질책하듯 그렇게 한마디 한마디 뱉어냈다. 그리고 그 모습은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이래도 너를 향한 내 감정이 착각 같아 보여?”강현수는 그녀의 시선을 집요하게 쫓았다. 그의 눈동자에 비친 그녀는 상당히 놀란 듯한 얼굴이었다.그녀는 강현수가 이런 말까지 할 줄은 몰랐다.그리고 그의 심장에 닿은 손이 점점 뜨거워지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현수 씨...”그녀는 입을 열어 뭐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유진아.”강현수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다른 건 다 의심해도 상관없지만 내가 널 사랑한다는 것만큼은 의심하지 마.”초라한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남자는 몸을 기울인 채 여자의 오른손을 꽉 잡고 그의 왼쪽 가슴에 대고 있었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당혹감도 그리고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서려 있었다.이 순간, 두 남녀는 마치 자신들만의 세계에 들어간 것처럼 주위는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듯했다.옆에서 식사 중이던 사람들은 모두 식사를 멈추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들은 휴대폰를 들어 몰래 그 장면을 찍기도 했다.사람들은 두 사람에게 정신이 팔린 나머지 검은색 승용차 여러 대가 어느새 음식점 밖에 주차된
경호원들은 가게 안으로 들어와 사장님과 얘기를 나누더니 음식값은 모두 계산한다는 말을 하며 손님들을 내쫓기 시작했다.자리에서 버티고 있던 사람들은 검은색 양복 차림의 남자들이 줄지어 들어오자 결국 고분고분 가게를 떠났다.어수선한 분위기에 강현수와 임유진도 드디어 입구 쪽에 멈춰 있던 강지혁을 발견했다.임유진은 강지혁이 이곳에 있는 것에 조금 놀란 얼굴이었지만 강현수는 마치 그가 올 줄 알았다는 듯이 태연한 얼굴이었다.“너도 들어와서 같이 식사하지 그래?”강현수는 강지혁을 보며 말했다.“같이 식사할 거면 지금 추가 주문하고. 우리가 주문한 음식도 아직 안 왔거든.”강지혁은 이를 꽉 깨물더니 천천히 그들이 있는 작은 테이블로 다가왔다.임유진은 저도 모르게 강현수에게 잡힌 손을 빼냈다. 다행히 이번에는 그녀의 손을 다시 잡지는 않았다.“사장님.”강현수는 카운터에서 넋 놓고 있는 사장을 불렀다.사장은 갑자기 꿈에서 깨기라도 한 듯 몸을 부르르 떨며 답했다.“네, 손님!”그러고는 마침 나온 그들의 주문 음식을 들고 다가갔다.“추가 주문할게요.”강현수는 메뉴판을 훑어보고는 두 가지 음식을 추가 주문했다.“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사장은 서둘러 주방장에게로 달려가 주문을 넣었다. 그러고는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주방에 박혀있었다.이로써 홀에는 강현수와 임유진 그리고 강지혁 이렇게 세 사람만 남았다.작은 테이블에 삥 둘러 서 있는 세 사람의 모습이 무척이나 불편해 보였다.임유진은 지금 어찌할 바를 몰라 애꿎은 테이블만 건드렸고 강지혁은 어두운 얼굴을 한 채 강현수를 보고 있었다.임유진은 강지혁이라면 분명히 강현수의 제안을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그의 입에서는 “그러지.”라는 긍정적인 말이 튀어나왔다.그러고는 이내 의자에 앉았다.임유진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강지혁을 바라보았다.정말 같이 식사하려는 걸까?“왜? 나랑 같이 밥 먹기 싫어?”강지혁은 고개를 들어 아직 멍한 얼굴의 그녀를 바라보았다.“아니면 내가
방금 이곳으로 들어오기 전 시선을 마주하고 있는 두 사람을 봤을 때 강지혁은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두 사람이 있는 그 공간은 감히 침범할 수 없다는 듯이, 그녀의 눈에는 오로지 강현수밖에 없는 듯했다.“하지만 아쉽게도 유진이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 앞으로도 그럴 거고.”강지혁은 강현수를 차갑게 바라보았다.“지금은 그럴지도 모르지만 미래 일은 그 누구도 모르는 거야.”강현수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그보다 너는 지금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는 거지? 두 사람 헤어졌잖아. 이제 끝난 사이잖아.”그 말에 강지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지혁아, 난 너한테 많은 기회를 줬어. 그동안 몇 번이나 유진이 손을 놨었으니까.”강현수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 보고 말했다.“헤어지는 걸 택한 건 너야. 나는 더 이상 유진이 손을 놓아줄 생각이 없어.”강지혁이 코웃음을 쳤다.“놓아줄 생각이 없어? 하하... 뭐 집안이라도 걸게?”“너는 너희 집안 걸 수나 있고?”두 남자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히며 분위기가 험악해졌다.그때 사장이 마침 타이밍 좋게 나타나 강현수가 추가 주문한 음식들을 올렸다.그는 이 세 명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잘 몰랐지만 가게 앞을 봉쇄한 것을 보면 뭐가 됐든 지금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게 상책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사장님, 소주 두 병 주세요.”사장이 몸을 돌린 그때 강현수가 뜬금없이 술을 달라고 했다.“네, 알겠습니다... 잠시만요.”사장은 서둘러 소주 두 병을 들고 왔다.그들에게는 와인이나 양주를 건네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아쉽게도 이곳에 그런 고급술은 없었다.강현수는 소주병을 따더니 강지혁을 보며 물었다.“술 한잔할래? 너랑 술 마시는 것도 꽤 오래된 것 같은데.”강지혁은 입꼬리를 위로 올렸다. 입술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그러게. 너랑 술 마시는 것도 오랜만이네. 기왕 이렇게 만난 건 한잔하지 뭐.”그러고는 강현수가 따라주는 술잔을 잡았다. 그러고
고작 7만 원으로 강지혁과 강현우 이 두 남자의 밥을 샀다는 걸 사람들이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임유진은 자기가 생각해도 웃긴 지 웃음을 터트리고는 월세방으로 향했다.그녀는 피곤이 몰려와 화장실에서 빠르게 씻더니 곧바로 침대 위에 누웠다.지금 그녀는 무척이나 힘들었다. 몸이 힘든 것이 아닌 정신이 힘들었다.임유진은 어제오늘 두 날 연속으로 강현수의 열렬한 사랑 고백을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마음을 받아줄 수가 없었다.강현수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했지만 과연 앞으로도 그럴까? 어쩌면 그녀를 향한 그의 사랑은 짧게는 몇 개월일 수도 있고 길어봤자 1년 또 혹은 2년 정도밖에 안 될지도 모른다.임유진은 더 이상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지 않았다. 사랑하고 버림받는 그 아픔이 너무 고통스러워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한번은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다. 두 번도 힘들지만 견뎌낼 수 있다. 하지만 세 번은 그럴 자신이 없었다.그녀는 눈을 감은 채 잡념을 집어 던지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그러다 슬슬 잠에 들려는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노크 소리는 꽤 다급했다.임유진는 눈가를 비비고 문 쪽으로 다가가 물었다.“누구시죠?”시계를 보니 벌써 저녁 10시가 넘었다.“유진 씨, 저 고이준입니다.”고이준의 목소리에 그녀가 멈칫하며 잠깐 망설이더니 결국 문을 열어주었다.의외였던 건 문을 열고 보니 거기에는 고이준 뿐만이 아니라 강지혁도 함께 있었다. 그는 지금 술에 취해 상체를 고이준에게 기대고 있었다. 게다가 얼굴에는 짙은 취기가 어려있었다.생각해 보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신 강지혁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여기로 오는 것이 아닌 강씨 저택으로 가셔야죠.”임유진이 말했다.고이준은 난감한 듯 웃었다.그가 왜 그걸 모를까.문제는 강지혁이 기어이 이곳으로 오겠다고 고집을 피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임유진의 월세방이 아니면 비서직에서 잘라버리겠다고 협박까지 했다.“대